본 사례의 대상인 ㈜오아시스를 창업한 김영준 오아시스그룹 의장은 IT 시스템 엔지니어 출신이면서 국내 유기농 식품 공동구매 네트워크인 ‘생협’ 1세대로, 신선식품 유통과 IT기술 모두를 이해하고 있다는 특이한 배경을 가지고 있다. 오아시스마켓을 서비스하고 있는 ㈜오아시스의 최대 주주(74.39%)은 IT 기업인 ㈜지어소프트인데, 오아시스마켓의 성장으로 인하여 2020년 지난해 연결 기준 영업이익이 약 100억 원으로 전년 대비 흑자 전환했으며, 같은 기간 매출액은 62% 늘어나 2,589억 원을 기록하고 있다.
오아시스마켓의 물류전략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임대창고에서 20~30억 수준으로 물류센터 시스템을 구현해내는 것이다. 현재 운영 중인 성남물류센터에서는 일 평균 2만 건을 처리하고 있는 데, 최대 7만 건까지 소화할 수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를 위해 15명의 고객을 대신하여 장을 보는 (picking) 직원들이 자신의 스마트폰에서 사용하는 앱인 ‘루트(Route)’와 대형카트, 그리고 부분적인 컨베이어 벨트와 고객에게 배송될 상온, 냉장, 냉동 제품을 하나의 박스에 포장하는 직원(packer)이 있을 뿐이다.
인공지능으로 수요를 예측하고 로봇이 창고에서 일하는 세상에서, 스마트폰 앱과 작업자의 역량에 기대는 시스템이 지속가능성이 있을 것인가? 승자독식이 일반적인 플랫폼 비즈니스에서, 이제 업계 3위인 오아시스마켓이 생존할 수 있을 것인가? 고객에게 보다 더 빠른 물류와 낮은 가격으로 경쟁하는 것 외에 구매경험을 고양시킬 수 있는 방안은 없는가? 이러한 화두가 학습자와 공유되는 기회가 될 수 있었으면 한다.
Q1. 신선식품 주문 및 배송을 받는 온라인 구매 서비스에서 고객이 경험하게 되는 불편함(pain) 과 이익(gain) 은 무엇인가? 이는 어떻게 파악할 수 있는가?
Q2. 신선식품 새벽배송에서 경쟁하고 있는 쿠팡과 마켓컬리와 비교되는 오아시스의 풀필먼트적인 차이점은 무엇인지 창고 내 자동화 중심으로 논의해보자. 이를 위한 고려요소와 선제적 요인은 무엇인가?
Q3. 오아시스마켓이 경쟁사에 대비하여 전국적으로 서비스 확대가 용이할 수 있도록 하는 풀필먼트의 특성은 무엇인가?
가벼운 창고 풀필먼트를 통한 독보적 새벽배송: 오아시스 마켓
온라인 쇼핑: 불편한 마음
온라인 쇼핑이 일상이 된 요즈음, 자정 전까지만 주문하면 다음날 배송해주는 새벽배송에 스스로가 길들여지고 있음을 느낀다. 잠들기 전 스마트폰 앱을 통한 온라인 장보기가 익숙해져 오프라인 쇼핑은 뜸해졌다. 하지만, 편할 것만 같던 새벽배송에도 새로운 불편한 마음이 생겨났다. 신선식품 중 상온식품은 공산품과 같이 골판지 박스에 오지만, 냉장식품은 드라이아이스와 함께, 냉동식품은 접을 수도 없는 스티로폼 박스와 함께 오기에 배송박스와 다양한 충전재들을 보면 재활용품 분리가 새로운 숙제가 되었기 때문이다.
요즘은 회수용 박스를 선택하게도 하지만, 그것을 챙기는 것도 은근히 신경 쓰이는 일이다. 박스와 포장재를 재활용하는 것이 귀찮아서라기 보다는 명색이 교육자라 나름대로 다음 세대에게 부담을 주는 일회용품은 자제하는 삶을 살아왔다. 그런데, 온라인 쇼핑 후에 쌓여 있는 플라스틱들을 보면 꼭 죄를 짖는 기분이 드는 것이다. 나 편하자고 환경을 거스르는 것 같아서, 박스와 테이프를 분리하고 있다 보면 내가 뭐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포장재의 문제와 물류 문제에 대해 많은 기업들이 고민하고 있다는 것을 이미 잘 알고 있다. 또한, 신선식품 새벽배송에 대해서 더 관심을 갖게 된 이유로 제주에서는 신선물류가 안되는 것이 답답했기 때문이다. 본인의 일터가 제주에 있기에 물류 균형화가 안되어 있는 지역적 특성도 잘 알고 있고, C사의 제주물류센터에는 보관기능이 없어 분류(Sorting)만을 할 수밖에 없어 어쩔 수 없다는 것 역시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이미 서울에서 생활하며 새벽배송에 익숙해진 터라 아쉬움이 컸다. 이때 얼마전 고객지향 풀필먼트 스타트업인 콜로세움의 박진수 대표와 합배송에 관한 대화를 나누었던 것이 기억났다.
“이커머스가 대세가 되면서 다양한 분야의 셀러들이 나타나고 있는데요. 판매되는 이커머스 플랫폼과 프로모션에 따라서 배송제품을 인식하고, 제품 특성별로 포장하는 것이 셀러들 업무에서 보이지 않게 큰 병목이 되고 있어요. 묶음 제품들에 걸맞은 포장박스를 갖추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저희가 큰 경쟁력이 있죠”
– 박진수 콜로세움 대표
온라인에서도 마치 마트에서처럼 장바구니 하나 가지고 가서 식재료 특성에 상관없이 다 담아 올 수는 없을까? 그렇다. 합배송도 이미 박스에 포장되어 있는 제품들을 묶어서 배송하는 것이니, 큰 박스 하나에 여러 제품을 담을 수 있게만 해도 집적 공간이 적어져 물류비가 줄어들 것이다. 그러나, 공산품의 경우에는 한 박스에 담을 수 있을지라도 상온, 냉장, 냉동제품을 서로 다른 창고에 보관하는 이커머스 업체 입장에서는 이런 식자재들을 한곳에 모아서 한 박스에 담는 것은 상상도 못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서로 다른 온도에서 보관해야 할 식자재들을 한곳에 모아야 하고, 배송시간을 고려해서 꼼꼼히 한 박스에 쌓아야 할 것이다. 그러려면 누군가 마치 내가 오프라인에서 장을 보듯 마트의 냉장, 냉동, 상온 코너를 돌고, 박스 하나에 다 담아서 집으로 가져오는 일을 대신해주지 않고서는 어려울 것이다. 온라인 쇼핑 후 쌓여가는 포장재와 일회용품들을 보고 있자니 어서 빨리 제주에서도 신선식품 새벽배송을 받고 싶은 마음 한편에 불편한 마음이 커져간다.
유일한 흑자시현 기업 오아시스, 그 비법은?
오아시스마켓에 관심이 간 것은 물류의 일반적 상식을 뒤엎은 실적을 보여주고 있는 기업이기 때문이다. 물류 서비스는 규모의 경제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이고, 대규모 물류창고에 자동화 분류장비가 투입되면 효율성이 극대화되는 것은 자명하다. 이로 인해 고가의 자동화 장비를 설치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오아시스마켓이 하는 것처럼 타인의 창고를 사용하는 것은 재무적으로 현명하지 않은 의사결정이다.
컨베이어 벨트를 따라 빠르게 분류되는 환적 기능 중심의 창고가 현대 이커머스의 상징이다. 이러한 창고는 특성 및 주요 거점별로 허브(hub)물류센터에서 고객수요를 예측한 최적의 물량을 보관하고, 지역별 물류센터에서는 분류와 배송만을 담당하는 형태의 허브 앤드 스포크(hub&spoke) 전략으로 구성하는 것이 가장 효
율적이다. 마치 자전거의 바퀴처럼 중앙에 허브 역할을 하는 크랭크가 있고 그 주위를 바퀴살이 뻗어가는 것처럼 구성해야 여러 지점을 다 거쳐서 배달하는 물류에서 최소비용으로 모든 배송을 할 수 있다. 이러한 규모의 경제를 이루기 위해서는 높은 수요가 있어야 하는데, 규모의 경제 효과를 더 높이게 되면 효율성이 높아지게 되니 경쟁자보다 빨리 수요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출혈경쟁이 있더라도 선제적 투자가 필수다. 이 업종의 숙명과도 같은 특성이다.
오아시스마켓은 ‘우리생협’의 오프라인 매장을 운영하던 ㈜오아시스의 온라인 쇼핑몰이다. ㈜오아시스는 수도권을 중심으로 이미 37개 매장을 운영하고 있는 상태였으며, 3년 전부터 온라인 마켓을 시작하였다. 온라인쇼핑 서비스를 시작한 첫해부터 흑자를 시현했고, 현재 새벽배송 업계의 3위이자 유일한 흑자 시현 기업이다(Exhibit 1).
오아시스마켓은 2018년 온라인 마켓 서비스를 시작하여 후발주자처럼 여겨지지만, 이전부터 지역 생활협동조합(이하 생협)에서 인근 조합원들의 주문에 대하여 새벽배송을 해왔다. 믿을 만한 유기농 제품 재배농가와의 장기계약을 통하여 고품질 식자재를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다는 장점이 생협의 대표적인 특성이었다. 지역 조합원에게 신선한 상품을 새벽배송으로 보내는 것만큼 좋은 서비스는 없었다. 그러나 내방 고객 대응을 중심으로 구성된 기존의 조직 형태와 레이아웃에서, 배송 중심의 비즈니스 모델을 병행하는 게 그리 성공적으로 이뤄지긴 어려웠다. 기존에 지역별 오프라인 매장을 가진 E마트나 L마트의 온라인 부문이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는 것과는 대별되는 특징이다.
그렇다면 오아시스마켓은 어떻게 흑자전환을 이뤄낼 수 있었을까? 오아시스마켓은 온/오프라인 병행을 통해 재고 폐기율을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소개하지만 이것이 흑자전환의 비결이라면, 오아시스마켓보다 더 강력한 브랜드와 현지 생산업체 네트워크를 가진 대형 마트가 더 발빠르게 성공적인 비즈니스 모델을 보여주었을 것이다. 또한, 생협 조합원의 로열티가 중요하게 작용했다면 E사의 멤버십이 가지는 퇴출장벽이 더 강력했을 것이다. 산지직송뿐 아니라 계약재배를 통한 품질관리에서도 오아시스마켓이 대형마트 대비 더 우월하다고 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즉 이러한 전략은 기존 대형마트에서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전략이었다.
이미 작은 실패를 보여준 새벽배송의 경험이 오아시스마켓을 기존의 대형마트와는 다르게 만들지는 않았을까? 역시 그 해답은 현장에서 찾을 수밖에 없었다. ㈜오아시스 CFO인 안준형 부사장을 소개받았고 성남물류센터에서 진행된 오아시스그룹의 창업자인 김영준 의장과의 인터뷰에서 그 의문을 해소할 수 있었다.
공룡과 생쥐: 제품 특성에 대한 깊은 이해를 기반으로 한 유연성
봄이 얼마 남지 않은 어느 날, 수도권에 위치한 오아시스마켓 성남물류센터를 찾아가는 길은 조금 황량했다. 성남시의 공장지대 인근에서 내비게이션이 가리키는 장소를 지나쳤다가 다시 차를 돌리고 나서야, ㈜오아시스를 찾을 수 있었다. 물류센터를 한 번에 찾지 못하는 경우는 드물다. 대규모 물류를 빠른 시간 내에 처리하기 위해서는 자동화 시설을 갖춰야 하는데, 고가의 외산장비를 임대건물에 두기보다는 커다란 자가 창고를 지가가 싼 도시 외곽에 만드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도로망과의 연결성도 좋아야 하니 고속도로를 지나가면 큰 물류센터가 눈에 띄게 마련이다. 첨단산업단지이기 때문에 신선물류를 하는 데에는 전혀 지장이 없는 환경이지만, 아파트형 공장들이 들어선 중심 지역에 물류창고가 있다면 토지주의 요청으로 이전해야 할 때는 이전 및 시설비가 들어가고 서비스에도 지장이 있을 것이었다(Exhibit 2).
대규모 투자를 통해 규모의 경제를 추구하는 것이 풀필먼트 서비스의 일반적인 성공법칙이라 공부해왔기에, 서비스 초반부터 흑자경영이라는 성과가 마음에 쓰였다. 경쟁사들이 장기적인 풀필먼트 전략하에 출혈을 무릅쓰고 대규모 투자를 하는 데 반하여, 오프라인 매장을 지원하는 중규모의 물류센터를 활용하여 새벽배송에 나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앞섰기 때문이다. 승자독식은 이커머스의 숙명과도 같기 때문에, 소비자에서 선택받는 단 하나의 온라인 마켓이 되기 위하여 미국의 아마존도 지속적으로 물류망에 투자를 하면서 오랜 기간 적자를 감내하였고, 국내의 C사, M사도 이러한 성공모델을 그대로 벤치마킹하고 있다.
본사 건물로 들어가며 성남물류센터 외부에 물건들이 야적되는 모습을 보면서, 걱정은 확신으로 바뀌어 갔다. 현재 물류의 트렌드는 보관에서 환적(transshipment)으로 이동했다. 그래야만 주어진 공간 내에서의 생산성을 극대화할 수 있다. 그러려면 완전자동화는 아닐지라도 창고 내에서 지게차로 물건들을 분류하고, 배송트럭에 상·하차를 쉽게 하기 위해 트럭 적재칸 높이에 맞춘 도크를 사용하는 것이 기본이다. 하지만, 오아시스마켓의 물류창고 밖 야적장에서는 각 지역으로 탁송될 신선제품을 싣기 위하여 대기하는 트럭의 주차마저 어려운 상황이었다(Exhibit 3).
과연 이 비즈니스 모델이 지속가능할까? 궁금한 마음에 이 회사의 경영진을 만나고 싶은 마음이 더 커졌다.
㈜오아시스 회의실에서 만난 김영준 의장은 전형적인 현장형 경영자 모습이었고, 안준형 부사장은 꼼꼼하게 회사 살림을 챙길 듯한 이미지였다. 최고경영진이 균형 있게 구성된 것을 보니, 조금 전까지의 느낌이 기우였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투자를 받기는 했지만 왜 경쟁사보다는 규모가 적은지, 자가 사옥으로 비즈니스를 하지 않는지를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부동산에 돈이 묶이면 사업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해 부동산 등을 매입하기보다는 임대하여 진행하는 것을 기조로 하고 있습니다. 이 돈으로는 사업을 해야 합니다. 외부 투자를 굳이 받을 필요가 없지만, 외부에서 보기에 (저희가) 못나서 안 하는 것으로 오해할 수 있는 부분도 있어서, 이를 불식시키는 측면에서 투자를 받게 되었습니다. 투자받은 자금 대부분이 통장에 있습니다.”
– 김영준 오아시스마켓 의장
자신감의 표현으로 이해되었지만, 창업자인 김영준 의장의 이력에 대하여 알고 있었기에 단순히 수긍하기는 어려웠다. 한국에서 생활협동조합이 태동할 때 참여한 생협 1세대이기도 하지만, PLC (Programmable Logic Controller) 엔지니어 출신으로 시스템 자동화의 중요성에 대해서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이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오아시스마켓 서비스를 운영하는 ㈜오아시스는 아직 비상장회사이지만, 최대 주주가 코스닥 상장사인 ㈜지어소프트이기에 IT의 중요성을 잘 알 뿐 아니라, 통제할 수 있는 능력과 자원을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노동력 절감을 위해 시스템에 투자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 쉽사리 납득되지 않았다.
“현재의 신선물류 시스템에서는 무인화 또는 로봇화는 크게 의미가 없습니다. 우리가 취급하고 있는 것이 정밀한 핸들링이 필요한 식자재라는 점을 주목해야 합니다. ‘대파를 들어서 포장하는 것’과 ‘계란을 담는 것’은 표준화된 한 대의 로봇으로 쉽게 대체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영국 O사로부터 시스템을 도입한 유통 대기업인 L사의 경우에도 유지보수에만 엄청난 돈을 쓰고 있는 실정입니다. 신선물류에서의 자동화는 이론상으로는 가능하지만, 공간만 많이 차지하고 실제로 활용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고 봅니다.”
– 김영준 오아시스마켓 의장
그러고 보니 대용량 처리를 위하여 도입된 자동화 설비들은 고속의 컨베이어 벨트 시스템으로 되어 있어서, 이미 박스 단위로 포장된 제품들을 분류하는 데에만 최적화되어 있었다. C사와 같은 물류 프로세스에서 적합한 시스템인 것이다. 여러 판매자들이 이미 박스 단위로 포장된 제품들을 C사 물류창고에 입고시키면, C사 물류센터에서는 품목 단위로 입고된 물건들을 배송 지역별로 빠르게 분류(sorting)하면 되는 것이다. 제품들은 골판지 박스, 그리고 스티로폼 완충재로 보호되고 있으니, 분류기와 컨베이어 벨트의 진동과 충격으로 파손되는 것을 걱정할 정도는 아니었다.
신선물류가 일반 제품물류와 보관 및 운송에서만 차이가 있다고 생각한 것이 잘못된 것이었구나 싶었다. 일반 제품이 상온에서 유통되는 게 일반적인 반면, 신선제품은 상온, 냉장, 냉동에 따라 보관 및 운송 요구가 다르게 발생하기 때문에, 별도의 냉장·냉동 유통 공급망(cold supply chain)을 구성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인식하고 있었다. 공급자·판매자 중심으로 편하게만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Exhibit 4).
제품 보관온도가 서로 다르니, 일반 차량과 냉동탑차를 따로 운행해야 하고, 보관도 상온, 냉장, 냉동창고를 따로 운용하는 것이 비용에 있어 효율적이다. 소비자가 냉장, 냉동, 상온 구분없이 한꺼번에 주문할 것이기 때문에, 서로 다른 창고에 보관된 물건들을 합배송하려면, 허브(hub) 창고로 모아야 네트워크 비용을 최소화할 수 있다.
하지만 간과하고 있던 건, 제품의 ‘보관특성’ 보다 본질적인 ‘취급특성’이다. 쥐고, 들고, 나르고, 포장해야 하는 방식이 품목별로 다르고, 함께 모아 두어도 되는 것과 섞어두면 골치 아픈 것들의 조합도 무한히 많다. 마트에서 장바구니에 아무렇지 않게 담는 것처럼 보이지만, 작은 장바구니에 한 가족 먹거리를 차곡차곡 쌓는 것도 오랜 살림의 노하우가 체화되어야 가능하다. 물론 그런 노하우가 없다면, 제품별로 하나씩 박스에 개별포장해서 가져오면서, 엄청난 부피를 감당해내면 될 일이다.
“저희는 협력 농가들과 오랜 기간 신뢰자산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공급업체들이 입고 시 소분해서 소포장된 상태로 입고를 해주시니까, 저희는 고객 주문에 따라서 잘 분류하고 잘 담아서 전달해드리면 되는 것이죠. 타 경쟁기업들의 경우, 상품 요구 특성에 따라 특화된 창고를 분산해서 운영하여야 하기에 부득이하게 박스가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이지만, 오아시스마켓은 한곳에 냉동, 냉장, 상온이 모여 있어 효율적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 안준형 오아시스마켓 부사장
이 시스템의 핵심은 마치 고객 대신 장을 본다는 개념으로 풀필먼트 서비스를 하는 것이다. 하나의 장바구니에 제품들을 다 담아서 15명 고객의 장을 한 명의 피커(picker)가 대신 봐주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물류창고가 마트처럼 구성되어 있어야 한다. 냉동, 냉장, 상온의 구역을 따라서 동선이 짜여 있고, 피커들은 한 방향으로 15개 장바구니가 실린 카트와 모회사인 지어소프트에서 개발한 물류관리 앱인 ‘루트(Route)’ 가 깔린 스마트폰과 함께 이동한다. 1인당 15개의 장바구니를 배정한 것도, 바코드 스캐너가 달린 전용 단말기가 아니라 직원의 스마트폰 앱을 사용하는 것도 현장 경험이 녹아들어간 결과물이다(Exhibit 5, 6).
“직원들은 자체 개발한 소프트웨어를 개인 스마트폰에 설치하고 이를 통하여 QR 코드를 찍게 하는 식으로 픽킹(picking)과 팩킹(packing) 등의 근무를 수행합니다. 본인들이 목표를 설정하고 실적도 바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런 성과들이 인사관리 시스템으로도 연동되어 있어서, 정량적으로 엄격하게 관리되고 있습니다. 스스로 목표를 설정하고 관리하는 시스템이어서, 업무를 대충 수행하는 분위기는 없습니다. 물품의 난이도에 따라 가중치도 부여하고, 합리적이고 지속적으로 개선하려고 꾸준히 노력 중입니다.”
– 안준형 오아시스마켓 부사장
신선 물류 프로세스는 제품의 취급특성상 자동화보다는 효율적 관리 시스템의 지원을 받는 숙련 노동자들에 의해 보다 효율적으로 수행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처음부터 모든 공정에 대한 자동화를 주창하다가 공정 지연의 뼈아픈 시련을 거친 후, 현장 노동자들을 고용하는 정책을 수용했던 테슬라의 사례가 떠올랐다. 자동화의 기준은 제품이 요구하는 ‘취급특성’이 되어야 하며, 무분별한 벤치마킹이 왕도가 아니라는 게 중요하다. 중앙집중적인 자동화물류 시스템이 C사에게는 맞지만, C사의 신선물류 시스템에는 적합하지 않을 수 있겠다 싶었다. 신선식품 배송의 선두주자이면서 C사처럼 물류자동화에 매진하고 있는 M사가 떠올라 잠시 혼란스러웠다.
“물론, 저희도 팔레트 단위로 정량화가 가능한 박스를 모아서 쌓는 등의 업무는 자동화를 도입하고 있습니다. 성남물류센터에서 현재 일당 2만 건의 주문을 처리하고 있지만 5만 건 처리를 목표로 두려고 하는데, 이를 위해 물류 프로세스를 더 유연하게 운영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피킹 속도를 건당 0.6초가 되도록 하기 위해서, 신규 인력 투입 및 기존 인력들의 유연한 재배치를 끊임없이 고심하고 있습니다. 현재 저희의 운영 방식은 한곳에서 전국을 커버하는 방식이므로 지방에 많은 수요가 발생하면 동일한 운영 형태를 추가하는 모듈식 구조로 확장시킬 수 있습니다.”
– 김영준 오아시스마켓 의장
제품 배송단가를 낮추는 데에 집중하면 자동화와 외형 성장에 집착하겠지만, ‘제품을 어떻게 더 잘 전달할까’에 집중하면 다양성과 운영 중심으로 경쟁력을 높이는 것이 적절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렇게 되면 대규모 자동화 설비도, 그 설비를 장착할 자가 창고도 필요 없으니 출혈을 감수하는 선제적 물류 인프라 투자 후 고심할 필요 없이, 시장의 수요가 생기면 빠르고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환경이 급변할 때 생존했던 것은 대마불사의 공룡이 아니라, 기민하게 움직일 수 있었던 생쥐였다. 이것이 오아시스의 풀필먼트 전략이었다.
고객의 불편함을 이해하는, 고객으로부터 배우는 물류
오아시스마켓 관련 정보를 찾아보면서 흥미로웠던 기사 중 하나가 폐기물 0%에 대한 것이었다. 온/오프라인 매장을 동시에 운영하다 보니, 온라인 배송 후에 남은 식자재를 오프라인 매장에서 어떻게든 소화해내기 때문에 폐기물 0%가 실현될 수 있다는 기사들이었다. 그래서, 성남물류센터 방문 전에는 오프라인 우리생협 매장과 온라인 마켓용 물류창고가 한곳에 있지 않을까 싶었다.
“현재는 온/오프라인 매장들의 모든 물품들이 창고 내로 들어오면 먼저 온라인에 배정하고 난 후 남는 물품을 오프라인으로 운영하여 실질적으로 재고를 거의 남기지 않는 전략을 취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병행 운영을 해보니, 채널별로 정확히 예측하고 배정하여 운영하는 것이 효율성을 제고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전략적 판단에 도달했습니다.”
– 안준형 오아시스마켓 부사장
주어진 여건에 안주하지 않는 모습이 좋아 보였다. 온라인 채널 잔여분을 오프라인 매장으로 넘기면, 단기적으로는 폐기율 0%를 달성하면서 수익에 기여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채널 간 재고 떠넘기기는 조직 간 갈등의 요인이 될 수 있을 뿐 아니라, 적극적인 재고관리 의지를 약화시킬 수 있는 양날의 칼이다. 흔히 무재고로 비용절감을 추구하는 생산방식으로 여겨지는 JIT(Just-in-Time)는 재고가 필요한 상황(just in case) 자체가 없도록 하자는 품질관리 철학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오프라인 생협 매장에서 받을 수도 있고 남은 식자재로 반찬을 만드는 데도 쓸 수 있으니 조금 넉넉해도 된다고 생각하게 되면, 수요예측에 대해서 느슨해질 수밖에 없다. 대안이 없는 배수진을 쳐야 절실하게 폐기율 관리를 하게 되고, 고객수요 변화에 민감해질 것이다. 짧은 유통기한을 가진 신선물류에서 폐기율에 둔감하게 되면 경쟁력이 약화될 터였다.
신선식품 새벽배송을 처음 시작한 건 흔히 알려진 바처럼 M사가 아니다. 오프라인의 우리생협이 지역거점에 존재하기 때문에, 오아시스마켓은 이미 매장을 기반으로 새벽배송 서비스를 수행했었다. 신선식품 배송시장이 형성되기 전에 너무 빠른 시장진입을 한 터라 실패했지만, 이 과정에서 고객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고객의 입장에서 불편함을 해소하는 업무처리 방식을 지향하게 되었다. 대표적으로, 주부들이 과잉 포장과 스티로폼 포장을 꺼린다는 점에 주목했다. 품목별 포장은 분류 자동화를 쉽게 하며, 충전재와 스티로폼 포장은 신선도 하락이 유발하는 고객불만을 줄일 수 있는 방안이지만 이는 모두 업체의 입장이며, 배송 후 뒷처리를 해야 하는 고객의 입장은 고려되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오아시스마켓은 달랐다.
“저희는 가급적 한 박스 안에 모든 제품을 담으려고 하고 있어요. 100% 종이포장을 처음 시작한 것도 저희 오아시스마켓입니다. 종이 포장재를 선택하게 되면서 보냉재 대신 얼린 생수를 사용하는 아이디어도 적용했지요. 저희가 편한 것보다 제품을 받는 소비자 입장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저희 모태인 생활협동조합 자체가 소비자들이 조합원으로 참여하는 모델이었으니까요”
– 김영준 오아시스마켓 의장
고객에게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면 내부 프로세스의 복잡성이 증가하기 마련이다. 고객을 대신해서 장을 보는 부분의 전문성이 높아져야 물류센터의 생산성이 높아지는 구조인데, 피킹 직원이 고객에게 잘 전달할 수 있도록 하는 패킹까지 신경쓰면서 15개 주문을 처리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속도를 높이려면 장바구니에 마구 넣어야 하는데(random stocking), 이렇게 하면 한 박스에 가지런히 담아내는 것은 어렵다. 마트 장보기를 할 때도, 쇼핑하는 순서대로 카트에 담았다가 계산 후에는 다시 박스에 담는 일을 나누어서 하는 것과 같은 원리이다.
하지만, 오아시스마켓의 업무흐름을 보면 볼수록, 고객이 장보는 상황을 그대로 재현하고, 고객이라면 이렇게 했겠다 싶은 형태의 효율화를 추구하고 있다. 많은 주문량을 처리하는 것과 깔끔히 담아야 하는 한 박스 포장을 주문처리 담당 피커와 포장담당 패커의 분업화를 통해서 해결하고 있었다. 장보는 동안에는 속도를 중심으로 승부하고, 포장을 할 때는 박스 내에 차곡차곡 잘 쌓으면서도 냉장, 냉동, 상온제품의 연관성을 고려하는 전문성이 발휘되도록 한 것이다. 분업화는 전문화를 낳고, 그 전문화가 생산성 향성으로 이어지는 것을 풀필먼트 현장에서도 보여준 것이다(Exhibit 7).
“저희 현장이 어수선해 보일지 모르지만, 장보기 공간(picking zone)과 포장공간 (packing zone)으로 나뉘어 있어요. 장보기 공간의 동선도 제품의 신선도가 떨어지지 않도록 배치되어 있죠. 외국에서 도입된 물류시스템에 의지하게 되면, 생산자들이 보낸 박스에서 제품을 꺼내서 표준화된 플라스틱 박스에 정리하고, 그 박스에서 다시 제품을 꺼내서 포장하는 일들을 반복하게 됩니다. 신선식품은 사람의 손이 닿을 때마다 신선도가 떨어지고 상할 가능성이 높아지게 됩니다. 저희는 1차 생산자들이 소비자들에게 전달될 양만큼만 포장해서 저희에게 입고시킬 수 있도록 협업하고, 생산자로부터 입고된 상태 그대로 보관하고 피킹 및 패킹이 되도록 시스템을 구성하였습니다.”
– 김영준 오아시스마켓 의장
인터뷰 후에 서울 집에서 실제 주문을 하고 받은 문화적 충격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오아시스마켓의 주문은 딱 한 박스로 도착했다. 일부러 냉동, 냉장, 상온 식자재를 섞어서 주문했기 때문에, 한 박스로 도착했다는 것 자체가 놀라웠다. 콜드체인 물류에 대해서 나름대로 알고 있기 때문에, 서로 다른 온도를 요구하는 식품들이 각각의 장소에서 보관되다가 서로 다른 방법으로 포장되고 특화된 방식으로 운송되는 것이 상식이라 알고 있기 때문이다.
박스 내에 골판지로 격벽을 만들어서 식자재들이 서로 뭉개지지 않게 한 것은 거의 예술에 가까웠다. 보냉재로 사용한 얼린 생수의 배치도, 유튜브에서 극찬하던 U자 형태로 박스 내벽에 두른 대파의 배치도 대량 주문의 효율성을 추구하는 물류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포장이었다. 피커가 빠르게 장을 봐야 했던 고객의 아바타였다면, 패커는 계란이 깨지고 상추가 물러지지 않게 하면서도 한 박스로 배송할 수 있도록 하는 고난도의 퍼지(fuzzy)한 의사결정을 해야 하는 또다른 고객의 모습이었을 것이다. 그 결과, 분리배출이 가능한 재활용 골판지 보냉박스 하나로 이번주 식자재 쇼핑이 끝난 것이다(Exhibit 8).
편리함의 유혹에 지면서 점점 희미해지고 있던 지속가능한 소비(sustainable consumption)에 대한 윤리의식이 다시 깨어나는 느낌이었다. 그 해법을 오아시스마켓은 고객이 마트에서 장보던 형태에서 배워온 것 같아서 더 신선했다. 수없이 많은 고객들이 따르는 신선식품 구매-포장-배송-소비의 루틴을 따르는 물류라면, 그 지속가능성이 더 높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시스템의 역할: 자동화를 통한 프로세스 기반 생력화 VS. IT를 통한 정보기반 조력화
현장을 방문 하기 전부터 가장 관심있었던 것은 물류자동화를 위한 모회사의 기여도였다. 창업자인 김영준 의장이 엔지니어 시각에서 신선물류에 도입한 아이디어가 시스템으로 자리잡혀 있지 않을까 해서였다.
기업 내 S/W 개발자가 많다고 해도 기계장비를 통제할 수 있는 상황은 상당히 제한적이다. 자동화된 물류시스템에서 IT 담당자는 정해진 프로그램에서 일부 설정값을 변경하는 정도만 할 수 있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물류시스템의 자동화는 각 단계에 들어가는 자원은 물론 인력을 최소화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따라서 사용하는 프로그램이 쓰기 편할수록 이미 내재되어 있는 업무 프로세스의 테두리를 벗어나는 것이 힘들어진다. 원하는 업무 프로세스대로 설비가 돌아가게 하려면 직접 기계를 통제하는 PLC(Programmable Logic Controller) 프로그래밍에 대한 경험과 개념이 있어야 한다.
“TFT-LCD 관련 및 잉고트 제작 기계를 만드는 독일계 라이볼트 코리아(Leybold Korea)에서 콘트롤 관련 일을 7년 정도 하였습니다. IMF 시기 모회사가 어려울 때, 시스템 관련부분을 인수하고 공사를 수주하였습니다. 반도체의 경우 고도화 작업과 유지보수 작업이 많기 때문에 관련 공사를 많이 하였습니다. 휴대폰이 막 보급되려고 하는 시점에, 컬러 액정을 만드는 기계가 전 세계에 몇 대 없을 때, 휴대폰을 개조하는 일을 시작했습니다. 이런 시스템은 오픈 시스템이 아니다 보니 기계를 다뤄본 사람들만이 계속할 수 있었고, 이때 시스템에 대한 경험을 많이 쌓았습니다. 반도체 라인의 콘트롤을 해보니 물류 쪽 일들은 수월하게 할 수 있었습니다.”
– 김영준 오아시스마켓 의장
작지만 신선물류 업무에 최적화된 자동화 시스템을 기대하고 방문한 물류센터에는 분주히 움직이는 사람들 사이에 일부 컨베이어 벨트 시스템이 자리잡고 있었다. 보통의 자동화된 공정 현장은 잘 정돈된 작업장과 통합된 통제실, 자동화 기기가 움직이고 작업자는 모니터링을 하고 있지만 오아시스마켓은 반대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피커들이 대형 카트를 끌고 다니는 모습에서도 작업자를 업무량을 줄여주는 접근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컨베이어 벨트가 있지만, 작업자 동선에 다 깔린 것도 아니었다. 하다못해 피커들이 제대로 업무처리를 했는지를 확인하기 위한 필수장비처럼 여겨지는 바코드 스캐너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타 기업에서 적용하는 방법(별도의 리더기 등을 사용)을 배제하고, 현장 작업자들의 편리성을 위해 스마트폰을 활용하고 있습니다.”
– 김영준 오아시스마켓 의장
작업자들은 모두 자신의 스마트폰에 지어소프트에서 개발한 물류처리 업무 앱인 루트를 설치해 사용하고 있다. 물류센터 내에서만 구동되도록 되어 있는 이 앱을 통해서 제품 발주-입고-보관-선별포장의 전 과정이 모바일로 연동되어 있었다. 통상 홈페이지나 인트라넷에서 처리되는 업무의 일부만 스마트폰 앱에서 실행되기 때문에, 처음부터 스마트폰 앱에서 모든 것이 처리되도록 만든 것 자체가 도전적으로 보였다.
김영준 의장이 직접 시연한 루트 앱에서는 작업자의 스마트폰이 바코드 리더이자, 발주 시스템이자, 품질관리 시스템이자, 인사평가 성과관리 시스템이었다. 작업자들은 스마트폰 QR코드 스캐닝 기능으로 고객의 주문내용과 상품위치를 확인할 수 있고, 재고가 소진될 것으로 보이는 제품에 ‘결품’ 버튼을 누르거나 실수로 놓친 제품에 ‘누락’을 눌러서 재고 및 발주관리를 할 수 있었다. 물론, 신선도가 떨어진 제품은 ‘훼손’ 버튼 클릭으로 품질관리를 할 수도 있었다. 이 모든 과정이 모바일로 실시간 연동될 뿐 아니라 개개인의 정량적 성과평가로 이어지니 작업자 스스로 자기관리를 하게 만드는 시스템이었다.
“저희 물류센터는 큰 물류창고 내에 작은 물류창고가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피커들은 본인들이 돌아다니면서 일할 때, 부족한 물건이 발생한 것을 알게 되면 ‘부족’ 버튼을 누르는 식으로 재고 부족을 해결하려고 노력합니다. 패킹을 잘못해서 포장 작업 과정에서 잘못을 인지하는 경우가 발생하면 이에 대한 패널티를 부과할 수 있는 시스템 역시 포함되어 있습니다. 즉 업무 프로세스의 연속에서 누가 잘못하고 실수하는지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 안준형 오아시스마켓 부사장
시간과의 싸움인 새벽배송 물류 현장에서 오아시스마켓은 컨베이어 벨트와 물류 로봇을 통한 프로세스의 자동화와 AI(artificial intelligence)에 의한 의사결정 방식이 아니라, 작업자의 능력에 의지하는 자율화(自律化)를 추구하는 것이다. 보다 정확히는 신선식품을 쇼핑하는 고객의 동선과 행태를 닮은 프로세스를 설계하고, 이를 모바일 기반의 정보처리 앱을 통하여 관리 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직원에 대한 신뢰와 시스템에 의한 통제 사이의 균형점을 찾아서 관리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현장에 계신 분들은 현장만을 중시하면서 하던 대로 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경영하시는 분들이 현장에서 계속 생각하면서 개선해 나갈 수 있게 유도하는 것이 필요해요. 그 사이에서 지속적으로 합의점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진정한 경영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것들이 이루어지려면 적당한 리더십이 필요하며, 시스템이나 인력의 배치, 교육 등 여러 요소들을 고려해야 합니다. 시스템이 자율적으로 운영되도록 하자는 철학을 가지고 있으며, 목표를 130%로 설정한다면 성취도는 100%가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김영준 오아시스마켓 의장
오아시스마켓에서는 ‘사람이 자산이다’라고 할 수 있을 듯했다. 하지만 물류업은 회사의 경영 시스템이 뒷받침되지 않는 상황에서는 자산이 축적되기 힘든 업종이라는 점도 인정해야 한다. 많은 기업들이 기업문화의 중요성을 이야기하지만, 바람직한 기업문화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며, 물류와 같이 이직이 많은 업종에서 사람의 역량에 기대는 것은 한계가 있을 것이다. ㈜오아시스의 경우에도 한 달 내에 그만두는 사람들이 20% 정도이지만, 이 업무를 지속하고자 결정한 직원들은 장기 근속을
선호하는 패턴을 보이고 있다.
현장 출신 관리자들이 많은 것은 신입 직원들의 입장에서는 본인 역량 성장이 어떤 경력 사다리로 이어질지 시각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장점이다. 또한, 현장에서 몸으로 부딪치는 일이 많은 업종 특성상, 고학력이며 자기성장 기대치가 높은 인력이 장기근속으로 이어지긴 다소 어렵다. 결과적으로 현장 출신 관리자들이 본인 경험에 기반하여 성과평가 체계를 제시하고, 이에 현장 직원들이 빠르게 긍정하고 합의하는 기업문화를 만들었다. 일한 만큼 받아가는 구조와 그 과정이 공정하다는 믿음에 기반한 성과체계로 인해, 직원들 개개인의 스마트폰에서 실시간으로 자신의 성과를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사람의 손이 닿을수록 신선도와 품질이 떨어지는 취급 물품의 특성에 대한 깊은 이해를 기반으로 한 현재의 프로세스는 대규모 설비에 의한 자동화가 아니라 숙련 노동자에 의한 자율화였다. 현장 중심의 경력 사다리를 설계해서 성과 평가에 대한 동상이몽을 없애면서 업무에 몰입하는 구조를 만들었다. 이러한 변화를 작업자들에게 가시화(visualization)하는 방식으로 개별 스마트폰에 솔루션을 구현하고 있는 것이다.
그간 생산운영관리의 시작이 제품이라고 가르쳐왔지만, 제품 특성에 기반하여 모든 업무를 이렇게 잘 배치해둔 경우를 언제 접했는지 가물가물할 정도였다. 물류업에서 풀필먼트는 효율이고, 따라서 대규모 시스템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서는 자가 물류망과 이에 수반한 대규모 투자가 필요하다는 상식에 기반한 사례들이 대부분이었다. 신선식품에만 한정한다면 자동화에 이미 대규모 투자가 진행되고 있는 C사와 M사와는 다른 독자적인 생존 방정식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제주에 가장 먼저 올 수 있는 신선식품 새벽배송은?
“기존 대형 물류업체들이 우리 오아시스 시스템을 도입하면 성공할 것이라고 판단합니다. 이를 대비해서 특허를 준비하고 있는 부분도 있습니다. 관련 소프트웨어 등을 특허로 출원하고 있고, 업무 관련 노하우를 상품화하고자 하는 계획도 있습니다. 해외시장에도 진출할 계획으로, 시애틀에 입점할 예정입니다. 이를 위해 많은 유통업체들을 벤치마킹하면서 준비 중입니다.”
– 김영준 오아시스마켓 의장
제품 특성과 공급망 특성을 잘 이해하고 설계된 시스템이긴 하나, 누구나 너무 쉽게 따라하지 않을까 하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었다. 하지만, 관심이 더 간 부분은 해외 진출 가능성이었다. 마치 콘텐츠 산업에서 성공한 예능 프로그램을 해외에 판권으로, 즉 포맷으로 수출하는 것과 유사할 수 있겠구나 싶었다. 언뜻 보면 바로 따라할 수 있을 것처럼 보이지만, 컨베이어 벨트가 시작하고 멈추는 지점, 피커가 15개 주문처리 바구니를 끌고 다니는 카트, CCTV 모니터링 포인트 등 오랜 경험과 업에 대한 깊은 이해가 있어야 간파할 수 있는 노하우들이 녹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업 아이디어에 대한 특허인 영업방법 (business method) 특허는 정보기술(IT)을 이용하여 실현한 경우에만 한정하여 보호를 받게 되니, 관련 특허를 출원하는 것도 병행해야 할 것이었다. 오아시스마켓은 국내에서는 이미 산지뿐 아니라 오프라인 유통채널과 깊은 신뢰 자산을 형성하고 있는데, 이러한 성공 경험을 외국에서도 실현시킬 수 있다는 자신감이 보였다.
“농산물의 경우 갑작스러운 수요 증가에 대응하는 공급에 큰 문제가 없으며, 또한 운영 공급망에서 문제가 생길 경우 직접 구매와 가락동을 통한 조달 사이에서 적절히 균형을 잡으면서 운영하고 있습니다. 수요에 대한 정보를 공급처에 미리 공유하면 생각보다 쉽게 해당 물량을 공급받을 수 있습니다. 즉, 신뢰 자산이 형성되어 있습니다. 경쟁 업체들이 오아시스에는 더 비싸게 공급하라고 공급처에 압력을 넣는 등의 에피소드도 발생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 안준형 오아시스마켓 부사장
빠르면서도 유연해야 하는 신선유통에서는 산지와의 신뢰 자산과 제품특성에 최적화된 물류 시스템이 함께 있어야 지속적인 경쟁을 유지할 수 있다.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을 수 있어야 수요와 공급망 모두의 변동성이 큰 신선물류에서 지속적 성장이 가능할 것이다. 이 경우에는 오프라인에 많은 매장을 가지고 있는 것이 오히려 유연성을 약화시킬 가능성이 있다. 온라인, 오프라인, 온/오프라인의 3가지 대안이 제시될 때, 온/오프라인을 다 가지고 있으면 경쟁력이 있어 보이지만, 수요에 대응하도록 공급망을 안정적으로 운영하려면 높은 고정비가 필요한 오프라인 매장 병행이 오히려 성장과 지역 확장에 걸림돌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오아시스마켓은 수도권 인근에 새벽배송을 할뿐더러, 지방에도 택배배송 서비스를 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중앙집중형 물류에 기반해 있으며 서로 다른 온도의 배송체계를 설계한 순수 e-커머스 업체에 지방으로의 신선식품 배송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제주 커뮤니티에서 새벽배송 문의글에 M사나 C사 대신 오아시스 사용하라는 추천글이 심심치 않게 보이는 이유가 여기 있었다. 이 부분은 전국에 오프라인 매장을 가지고 있는 유통업체들에게는 또 다른 이야기이다. S사를 통해서는 제주에서도 새벽배송까지는 아니어도 신선식품을 집에서 받아볼 수 있으니까 말이다. 오프라인 매장을 위해 배송되고 보관되는 인프라를 이용하면, 제주에서도 신선식품을 배송할 수 있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오아시스마켓처럼 지역 내 오프라인 점포나 물류 인프라가 없으면서 제주까지 신선식품을 탁송할 수 있는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다. 이는 제품별 취급에 대한 노하우와 이를 한 박스에 합포장할 수 있는 직원들의 역량 덕분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e-커머스 시장이 커지고 디지털 유통이 보다 더 일반화된 세상에서는 전국 어디에서나 새벽배송을 이용하게 될 터인데, 그중 제주는 가장 나중에 새벽배송이 이뤄지는 지역일 것이다. 규모가 작은 시장인 데다가 배나 비행기를 사용해 육상운송보다 높은 운송비도 감당해야 하고, 제주로 들어가는 물량에 비하여 육지로 올라오는 물량이 적어서 상·하방 물류 불균형으로 물류비 개선 여지가 적기 때문이다. 인터뷰를 마치고 제주 집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직접 실험해보지 않고는 못 배기겠다 싶었다. 하루만에 배송되지 못할 터라 상품의 질에 대해 걱정했는데, 최소 포장, 친환경 포장, 보냉재와 추가 포장 중에 선택할 수 있어서, 고객의 상황과 마음을 이해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다만, 3 천 원의 추가 배송비를 내야 하는 것이 불편했지만, 그래도 믿을 만한 식품들을 받을 수 있다는 것에 흡족해졌다(Exhibit 9).
어쩌면 제주에서 새벽배송은 영영 경험해보지 못할 수도 있을 것 같다. 2020년 봄에 제주시 중산간 초입에 들어선 C사의 물류센터도 창고가 아니라 분배를 중심으로 하는 물류 거점이다. 제주에 새벽배송이 가능하려면, 그 물류센터가 콜드체인물류와 일반물류를 한꺼번에 처리할 수 있는 유연성이 있어야 하고 설비 또한 임대창고에도 설치가 가능할 정도로 가벼워야 지가가 비싼 제주에서 서비스가 가능할 것이다. 복잡한 자동화 기계의 설치와 유지보수를 고민하지 않고, 숙련화된 작업자만으로도 물류가 돌아갈 수 있도록 프로세스가 단순해야 할 것이다. 요컨대 시장과 공급사슬 변화 모두에 대응적일 수 있는 오아시스마켓이 제주의 새벽배송을 열 첫 업체가 될 것이라는 확신이 들게 되었다.
신선물류 VS. e-커머스
성남물류센터에서 인터뷰 이후 가벼운 물류, 신선물류를 지향하는 오아시스마켓에도 변화들이 나타나고 있다. 인터뷰에서 회사 미래비전을 이야기하던 안준형 부사장이 오아시스마켓 대표이사 사장에 취임하였고, 오픈마켓뿐 아니라 브랜드몰도 시작하면서 비식품 분야에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향후 오픈마켓에 진출하여 기존 신선식품 제품의 배송과 병행하여 새로운 수익을 창출하려고 합니다. 이를 위해 수수료를 받지 않는 대신에 최저가로 판매할 수 있게 하여 수요를 발생시킬 수 있는 전략을 취하고 있습니다.”
– 안준형 오아시스마켓 부사장
인터뷰 당시 미래 전략방향을 들으면서도 고개가 갸우뚱했다. 경쟁사인 M사가 오픈마켓에 진출하면서 공기청정기도 팔고 있으니 오아시스마켓도 따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에서였다. 중앙집중형 자가창고로 신선물류만을 취급하는 M사의 입장에서 남아 있는 배송 트럭의 공간과 물류 역량을 오픈마켓 제품 판매로 채우려고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우려스러웠다. 공산품 부분 물류 역량을 기반으로 신선식품으로 확대하는 것과는 반대방향이기 때문이다. C사와 같이 상품 물류 인프라에 신선물류가 일부 추가되는 것과 이미 강건한 상품 물류 부분에 도전장을 내미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고정비가 높은 M사가 효율성을 높이기 위하여 선택하는 대안에 대해, 유연하고 가벼운 풀필먼트를 가진 오아시스마켓이 그대로 따라하는 것은 옳지 않다. 또한 M사의 창고 내 운영 역시 자동화 정도가 높아서 무거운 제품들의 분류와 이동에도 무리가 적지만, 피커가 카트를 끌고 다니는 업무 프로세스 위에 공기청정기나 식기 등 무겁고 부피 큰 것들을 한꺼번에 처리하게 된다면, 그 혼선이 기존 경쟁력마저 갉아먹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이러한 우려도 잠시, 지난번에 이어 재주문을 위해 오아시스마켓을 찬찬히 살펴보면서 지금의 생각은 기우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픈마켓에서 취급되고 있는 제품들은 유기농 신선식품이라는 오아시스마켓의 테마와 잘 연결되어 있는 한편 가볍고 작아서 취급이 편리하게 되어 있고, 수수료 제로로 유치한 브랜드몰에서 취급되는 중후장대한 제품들은 판매자 배송으로 처리되어 기존 프로세스에 영향을 주지 않는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Exhibit 10).
이제는 오아시스몰에 삼성 브랜드관이 들어설 정도로 순식간에 e-커머스가 유통의 중심이 되어버린 느낌이다. 이미 오픈마켓과 브랜드몰을 시작한 이상, 오아시스마켓도 신선식품이 아니라 e-커머스의 춘추전국에 참전하게 된 상황이다. 앞으로 어떤 전략을 가지고 자사의 강점을 키워 갈 것인지, 새로운 경영진의 행보가 궁금해진다.
[참고문헌]
서영일. (2021.07.09). ‘샛별배송’ 약발 끝난 마켓컬리, 상장 성공할까?. 포쓰저널.
URL: http://www.4th.kr/news/articleView.html?idxno=2002014
이재은. (2021.05.06). “하반기 경상도 새벽배송…빅모델 광고도” 공격적 확장 나선 ‘오아시스마켓’.
머니투데이. URL: https://news.mt.co.kr/mtview.php?no=2021050614453363291
이준희. (2021.07.07). 오아시스마켓, ‘7500억’ 기업가치로 ‘500억’ 투자유치 성공. 전자신문.
URL: https://m.etnews.com/20210707000092
이형두. (2020.11.30). 메쉬코리아 신 물류센터 개관…“누구나 새벽배송 시대 연다”. 전자신문.
URL: https://m.etnews.com/2020113000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