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내창업에서 일구어 낸 Radical Innovation – 이지팜

이지팜은 교내 창업에서 출발한 농업 분야 전문 IT업체이다. 우리나라의 농업은 대부분 소농 중심인데 반해, 양돈 산업은 10여 년 전부터 양돈조합을 중심으로 서서히 조직화·규모화를 이루어 현재는 1000두 이상 규모의 농가도 상당수 존재할 정도로 농업부문에서 독자적인 산업으로서 면모를 갖추고 있다. 이지팜은 그 가능성을 일찍이 보고 양돈 농가의 경영관리 시스템을 개발하여 보급하는 사업을 추진하였다. 이지팜은 1994년 서울대학교 교내에서 벤처창업을 한 이후 농업인의 니즈에 맞는 쉽고 유용한 양돈 생산관리 정보시스템인 피그플랜을 개발·보급하는데 성공하였다. 2004년에는 이를 웹버전으로 전환하여 현재 국내 시장점유율 1위를 유지하고 있다. 다른 산업에 비해 뒤떨어져 있는 산업인 농업에 IT혁신을 가지고 온 이지팜의 급진적 혁신(Radical Innovation) 전략을 1) 기술수용모델 2) 대학 기술 창업과 대학 기업가정신 3) 정보시스템성공모형 등 세 가지 이론을 통해 검토해본다.


Q1. 이지팜이 피그플랜을 통해 농업인들에게 새로운 기술을 수용하게 하여 신 시장 창출에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은 무엇인가?
– 신 시장 창출의 성공요인은 무엇인가?
– 시장점유율 1위 업체로의 도약요인은 무엇인가?

Q2. 이지팜은 향후 성장을 위해 피그플랜을 바탕으로 확장된 서비스를 제공하고자 한다. 이지팜은 피그플랜이라는 플랫폼을 통해 양돈 IoT기기 개발 등 하드웨어 분야에 집중해야 하는가? 아니면 피그플랜을 통해 수집된 빅데이터 분석 등 소프트웨어 기반 의사결정지원 분야에 집중해야 하는가?

Q3. (optional question) 최영찬 교수가 초기 교내 창업 이후 스핀오프(spin-off) 형태의 교외 창업을 선택한 것은 바람직한 결정이었는가? 아니면 기술 라이선스 계약 방식을 교외 창업의 방식으로 선택했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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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내창업에서 일구어 낸 Radical Innovation – 이지팜

서양에선 ‘그저 지방덩어리’, 한국에선 ‘삼겹살에 소주 한잔’

서양에선 천대받아 베이컨 제조용으로나 쓰이는 삼겹살이지만 한국에선 ‘국민음식 금겹살’이다. 국내에서 삼겹살이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다. 2014년 농림축산식품부 통계에 따르면 한국인의 육류소비 중 약 50%가 돼지고기며, 구매 부위는 삼겹과 목살에 집중돼 있다. 먹는 방식을 차별화한 덕분인지 삼겹살을 주제로 한 한식시장은 해외에서도 점차 확산 추세다. 미국 동북부의 버지니아주 한인타운인 애넌데일에 있는 ‘꿀돼지(honey pig)’란 음식점은 현지 미국인들이 줄서서 먹는 풍경으로 더 유명하다. 상추쌈에 구운 삼겹살을 싸먹은 외국인들은 만면에 미소를 띄며 “two thumbs up”을 외친다. 문제는 늘어가는 돼지고기 소비량을 공급이 따라잡지 못한다는 데 있다. 국내에서도 매년 20%의 물량을 수입하고 있는 실정이며, 구제역 파동 등 문제가 생기면 상황은 더 심각해진다.

우주영화 <인터스텔라>에서 농축업은 인류를 책임질 가장 마지막 산업으로 등장한다. 전 미국 국립항공우주국(NASA)의 비행사 ‘쿠퍼(매튜 매커트니)’는 무인비행기 드론 안의 태양전지를 농기구에 재활용 하는 등 농축을 계획하고 자동으로 관리하는 시스템을 설계하는 농부로 활약하고 있다. 가까운 미래, 우리는 기후변화로 인해 식량재앙을 맞을 수 있으며, 이 때문에 먹거리를 과학적으로 예측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란 메시지가 담겨있다.

국내에도 이같은 먹거리 예측에 더해 ‘농가 소득향상’이라는 사회적 가치까지 내걸며 농축업의 과학적 생산관리를 주창한 회사가 있다. 바로 (주)이지팜(ezfarm, 이하 이지팜)이다. 농업생산자들이 쉽게 익힐 수 있는 정보시스템을 개발해, 이 프로그램을 쓰면 농업이 더 쉬워지고, 농촌은 더 살기 좋아진다는 의미로 세운 회사다. ‘영세하니 주먹구구식으로 운영할 수밖에 없다’며 안주하고 있던 국내 농업인들에게 ‘IT 강국’의 DNA를 심어주면서 급진적인 혁신을 꾀한 사례다. 점점 산업화해가는 양돈업에 대한 예측, 즉 피그플랜(pigplan)을 모토로 프로그램을 개발한 이 회사는 지난 10년간 823개의 양돈 농가에서 연간 2억 7000만 원의 추가 매출을 올리는 파워를 보여줬다. 작지만 강한 회사 이지팜이 21년간 어떻게 설립되고 성장해왔는지, 7개 시점을 중심으로 한 대본 형식으로 이야기를 재구성해 본다. 시간을 거꾸로 거슬러가기 전 가장 최근의 현장부터 따라가보자.

#1. 2015년 3월 5일, 이지팜 안양 사옥 회의실

“이제 도약해야 합니다. 미래 성장을 위한 명확한 방향을 찾아내지 못한다면 우리 이지팜은 다시 암흑기로 돌아가게 됩니다.” 회의실을 무겁게 누르고 있던 2분여의 침묵이 깨졌다. 짙은 눈썹을 치켜 뜬 박흔동 이지팜 대표이사는 회의 자료를 들여다보고 있는 중간 관리자들의 무표정한 얼굴에 파장을 일으키듯 말을 던졌다.

“그래도 최악의 국면은 넘어선 것으로 보입니다.” 회의 자료를 뒤적이던 회계담당 팀장이 이지팜의 매출현황이 나와 있는 페이지를 들어보이며 이야기한다(Exhibit 1).

“2008년부터 매출 성장은 정체되었고 당기 순이익도 적자를 겨우 면하는 정도였습니다만, 작년 2014년에는 다시 괄목할만한 성장을 일구어 냈습니다.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박흔동 대표는 나지막하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되묻는다. “올해도 괜찮을 것 같습니까? 비즈니스 환경이 바뀌고 있습니다. 최근 10여년 간 우리가 초점을 맞춰왔던 SI(System Integration) 사업은 한계에 달했습니다. 새로운 환경에서는 새로운 먹거리가 필요합니다.” 박흔동 대표는 회의에 참석한 한명 한명에게 눈을 맞추며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우리 전체 매출의 절반 이상이 여전히 공공부문으로부터 정보시스템을 아웃소싱 받아서 개발하여 납품하는 SI사업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2008년처럼 정부가 다시 공공부문 SI사업 지출을 줄이면 우리는 또다시 위기에 빠지게 될 겁니다. 2014년에는 우리의 주력 분야인 농업, 축산업 분야 ICT융복합 관련 사업들과 또 새로운 빅데이터 관련 사업에 대한 정부의 지출이 컸다는 것은 우리에게 매우 긍정적으로 작용했지만, 앞으로도 계속 이런 환경이 지속될까요? 이대로 같은 자리에 머무른다면 2008년 때와 마찬가지로 위기에 대처할 능력을 키울 수 없게 됩니다.”

피그플랜 담당 부서의 김종필 이사는 피그플랜에 관련된 최근 시장 상황에 대해 묻는 박흔동 대표의 질문에 기다렸다는 듯이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피그플랜이 웹버전으로 출시된 후 여러 가지 분석 기능을 추가하면서(Exhibit 2) 현재 전국에 900여 농가가 피그플랜을 사용하고 있고, 양돈조합단위로 보면 대부분의 조합에서 피그플랜을 사용하고 있습니다(Exhibit 3). 현재 연 2억 8000만 원 정도의 매출이 피그플랜에서 생기고 있습니다. 특별한 추가 개발 비용도 발생하지 않고, 순수 사용료 납입만으로 이 정도의 성과를 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최근 우리 피그플랜을 모방하는 제품들도 나타나고 있어서 경쟁이 더욱 심화될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래서 우리도 더 진화된 서비스가 필요합니다. 우리 피그플랜 서버에 축적된 양돈 농가들 데이터를 바탕으로 컨설팅을 해준다거나, 각 농장의 돈사 내 설치된 장비와 함께 유기적으로 연동하여 장비 제어까지 나가는 등 차별화 방안을 마련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투자가 필요할 것으로…”

김종필 이사는 마무리 하지 못한 채 입을 닫았다. 회사에 그럴만한 자원이 있을지 자신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중간 관리자들은 다들 머릿속으로 회사의 재무상황을 그리고 있었다. 작년은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몇 년 동안의 당기순이익을 고려하면 기업의 현금 흐름은 아주 좋은 편은 아니다. 김종필 이사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박흔동 대표는 고개를 떨구면서도 단호한 목소리로 7인의 중간 관리자들에게 이야기했다.

“성과가 있다니 다행입니다만, 뭔가 더 명쾌하고 전력투구할 비즈니스 모델이 있어야 해요. 우리 다시 벤처 정신으로 돌아갑시다.

20여 년전 처음 이지팜이 만들어졌을 때, 아니 이지팜이라는 이름을 붙이기도 전 서울대학교 교내에서 창업했을 때 당시의 비전이 무엇인지 기억 하십니까? 바로 ‘IT를 기반으로 한 과학 영농으로 농가 소득을 향상한다’ 였습니다. 우리 이지팜은 열악한 농업 환경을 극복하고자 창업 전선에 뛰어들었습니다. 지금 우리는 당시의 비전을 구현해 내고 있습니까? 우리가 과학 영농을 하고 있습니까? 우리의 고객인 농업인들의 소득 향상에 진정 기여하고 있나요(Exhibit 4)?”

박흔동 대표의 얼굴엔 옅은 미소가 남아 있었지만, 회의실의 분위기는 더욱 무거워졌다. 최근 수년간 매출의 60% 이상은 정부를 포함한 공공부문에서 발주한 SI사업을 수주하여 달성한게 사실이다 (Exhibit 5). 피그플랜의 성과를 제외하면 IT를 기반으로 한 과학 영농으로 농가 소득을 향상하는데 기여한 프로젝트나 사업은 거의 전무하다. 김종필 이사가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아시다시피 SI사업을 수주하는 것은 일종의 프로젝트일 뿐입니다. 즉, 시작과 끝이 있는 사업이고, 납품하면 그걸로 끝이 나는 거지요. 우리에겐 꾸준히 현금이 흘러 나올 수 있는 영속적인 비즈니스 모델이 필요합니다. 그러니까 저희 피그플랜에 좀 더 힘을 실어 주셔야 합니다. 이지팜의 출발도 피그플랜과 함께 시작하였고, 한 때 어려운 시절도 있었지만 이제 비로소 그 결실을 맺고 있습니다. 이지팜의 지속적인 성장에 기여할 수 있는 건 역시 피그플랜입니다.”

대표는 옛 기억을 떠올리며 크게 한숨을 쉬었다.

“맞습니다. 이지팜의 시작은 피그플랜이었죠. 그때는 말 그대로 발로 뛰던 시절이었습니다. 농업인들과 매일같이 만났었죠. 그 분들과 막걸리도 참 많이 마셨고. 그들의 문제를 어떻게 해야 우리가 해결해 줄 수 있을 것인지 치열하게 고민했지요. 요즘 우리 직원들 중에 농업 현장에 나가서 농업인들과 교감하는 사람이 몇이나 됩니까?”

회의실에는 순간 정적이 돌았다. 대표는 도전적인 목소리로 선언하듯 이야기한다. “우리의 비즈니스 모델은 결국 그들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아닌가요?”

#2. 1994년 11월 8일 서울대학교 농업정보체계 대학원 연구실

20여 년 전 수원에 위치한 서울대학교 농업생명과학대학의 가을 교정은 낙엽으로 붉게 물들고 있었다. 아름다운 캠퍼스 한 켠의 건물 2층의 대학원 연구실에서는 교수와 학생 넷이 둘러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학생들과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30대 중반을 막 지난 작고 다부진 체격의 최영찬 교수는 너무나 즐거운 듯 만면에 미소를 띠고 있다. 교수가 입을 열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농업 현장의 문제를 해결하고, 그 과정에서는 나오는 데이터를 갖고 연구하는 거야. 연구 결과는 현장의 문제를 해결하는 업그레이드된 지식으로 활용하고. 나는 이런 선순환 구조를 우리가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현장에 기여하고 연구도 하고 그리고 너희들의 등록금도 버는 거지!

내 선배들 중에 한 분이 도드람 양돈 협동조합을 하고 계신데, 이분 말에 따르면 우리 농업인들은 중요한 시점에서 의사결정을 잘못 내려서 일하는 만큼 성과를 얻지 못하고 도리어 손해를 보는 경우가 너무 많다는 거야. 결국 우리가 내린 결론은 IT를 기반으로 한 합리적인 의사결정, 또 과학적인 영농활동을 지원할 수 있는 체계가 필요하다는 거였어. 바로 정보 시스템이지. 이를 통해 농가 소득향상을 이룰 수 있을 거야. 이 정보 시스템의 데이터베이스에는 생산 현장의 많은 정보들이 쌓이겠지. 우리는 이 데이터로 연구를 하고 컨설팅을 해주는 거야. 정보 시스템화는 우리 농업정보체계실의 미래 방향이 될 거야.”

교수의 이야기를 경청하던 대학원생 한 명이 잘 모르겠다는 듯 작은 목소리로 천천히 질문을 한다. “중요한 시점에서 의사결정을 잘못 내린다는 게 어떤 건가요?” 교수는 그 질문을 기다렸단 듯 숨도 쉬지 않고 말을 이어 나갔다.

“농업 경영은 농업인들의 소득을 극대화하는게 목적인데, 농업 소득엔 경영주의 판단이 결정젹이야. 예컨대 어떤 방법으로 생산할 것인가, 언제 생산이나 출하를 할 것인가, 어디에 어떻게 판매할 것인가 등의 의사결정을 해야 하는데, 이러한 수많은 의사결정에서 판단을 잘못 내리면 큰 손실이 발생하지(Exhibit 6). 그런데 현장에서는 다들 자신의 감으로 의사결정을 하지. 이 방법은 전혀 과학적이지 않아. 자신이 가장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은 거지. 만약 우리가 데이터와 명확한 알고리즘을 기반으로 그 분들의 의사결정을 지원할 수 있다면 상황은 크게 달라질 거야. 소득이 증대되면, 농업을 그만두고 도시로 오는 농촌 공동화 현상도 훨씬 줄어들겠지. 우리 농촌도 살만한 곳이라는 생각이 들 거야.”

당시 국내의 양돈 프로그램은 주로 사료회사들에 의해 개발되어 농가에 지원하는 프로그램과, 학교나 기관에서 개발된 프로그램, 양돈 사업체에서 자체 개발하여 사용하는 프로그램들도 구분되었다. 이들 양돈 프로그램들은 양돈 농장의 시스템에 대한 분석이 없이 현장 농가나 양돈 조합 등에서의 정보처리능력도 고려하지 않은채 설계돼 입출력이 복잡하고 어려웠다. 또한 내용상 미시적 개체관리 또는 거시적 농장관리에 편향되어 있고, 양돈농가의 합리적인 경영에 필수적인 경영진단 및 설계 등 현장에서 요구하고 있는 주요 내용들이 누락돼 있었다. 결과적으로 농가의 사용이 미진하거나 특정 농가에만 국한되는 한계가 있었다.

네 명의 대학원생은 이해했다는 듯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 와중에 가장 나이가 많아 보이는 대학원생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질문을 한다. “교수님 이게 가능하려면 우선 개발 툴을 구입해야 하는데 그 비용이 만만찮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저희가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요? 또 이런 일과 학업을 과연 병행할 수 있을까요?” 교수는 자신감에 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물론이지! 그리고 비용 문제는 걱정하지마. 먼저 농림부에서 나오는 농가 경영 컨설팅 관련 프로젝트를 따면 그것을 종자돈처럼 활용할 수 있어. 정보 시스템으로 체계적인 컨설팅을 하는 방향으로 제안서를 쓰는 거지. 그 비용으로 프로그램 개발 툴과 데이터베이스 관련 장비들은 충분히 구매할 수 있고, 이 정보 시스템이라고 하는 것이 규모가 그리 크지 않은 농가 단위 정도를 대상으로 하는 거라면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야. 내가 미국에 있을 때 미국 양돈 농가들이 주로 쓰는 농장 관리 정보 시스템을 본 적이 있는데 우리가 충분히 만들 수 있는 수준이야. 아니, 우리가 훨씬 더 잘 할 수 있어. 너희 이미 C언어 정도는 할 줄 알잖아. 컴퓨터에 관심이 많은 학생들은 개발 쪽으로, 계량경제 쪽에 관심이 많은 학생들은 나와 같이 경영을 진단하고 예측하는 알고리즘을 짜는 거지. 개발 쪽의 학생들이 이 알고리즘을 시스템으로 구현하는 거야. 경영 진단 관련 예측 알고리즘은 내가 다 가르쳐 줄게. 이런 알고리즘 쪽을 공부하는 것이 프로그래밍을 익히는 것보다 시간이 더 많이 걸릴 수도 있겠지. 어쨌든 이 모든 것들이 학업의 일부가 될거야. 연구를 하려면 결국 데이터가 필요한 거잖아. 이 일을 하면서 우린 쉽게 데이터를 모을 수 있고, 이 데이터를 기반으로 농가 경영 진단 관련 예측 알고리즘을 짜는 것이 다시 우리의 연구가 되는 거지. 바로 선순환 구조!”

또 다른 학생이 반신반의한 표정으로 질문을 던진다. “교수님, 과연 양돈 농가에 정보 시스템까지 필요할까요? 우리나라 농업은 가족농 중심의 소농 아닙니까? 농업인들이 과연 컴퓨터를 잘 다룰 수 있을지도 의심스럽고요. 차라리 기존에 사용하던 장부를 효율적으로 작성하는게 더 큰 도움이…..” 교수는 준비한 것처럼 학생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대답을 한다.

“아니야! 최근에 양돈 농가는 우리 농산업 내 작목들 중에서 가장 빠르게 규모가 커지고 있어(Exhibit 7). 또 협동조합을 중심으로 한 조직화도 가장 빠르게 추진되고 있지. 쌀이나 채소류 보다, 또 축산 쪽에서도 한우보다도 훨씬 빠르게 산업화되고 있는 것이 양돈업이야. 매출 규모도 점점 커지는 중이고. 우리나라 양돈 산업에도 10년 후면 미국처럼 규모 있는 조합들이 분명히 생길 거야. 그 때 가서 정보시스템을 만드는 건 아무 소용이 없어. 일부 선도 농가에서는 이미 외산 프로그램을 쓰기 시작했다고. 지금 우리가 시작하지 않으면 10년 후에는 모두가 비싼 로열티를 지불해가며 국내 실정에도 맞지 않는 외산 프로그램을 쓰고 있을 거야. 현재로선 농업인들이 컴퓨터를 잘 다루지 못한다고 해도, 우리가 정보시스템을 사용하기 쉽게 만들어 낸다면 농업인들도 충분히 사용할 수 있을 거야. 사용하기도 쉬운데다 이걸 사용하면 당장 매출이 늘어나는데, 안 쓸 이유가 어디 있겠어? 현재 외산 프로그램은 농장 현황만 보여주고 농가 경영 진단 및 예측은 안 되니, 우리가 알고리즘을 잘 짜서 사용하기 쉽게 만들면 충분히 경쟁력이 있어.”

잠깐의 침묵이 흘렀다. 대학원생들은 기대감과 불안감을 동시에 느꼈다. 농업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벅차면서도 학업과 일의 선순환 구조가 과연 가능할 것인지 불안해 마음이 복잡했다.

교수는 다짐하듯 이야기한다. “우린 출발점에 서 있어. 교내 창업을 한다. 3년 내로 벤처 기업의 형태로 가게 될 거야.” 이어서 확신에 찬 목소리로 외친다. “그 양돈 농가 프로그램. 이미 이름도 정했어. 피그플랜!”

#3. 1997년 12월 31일, 서울대학교 농업정보체계 대학원 연구실

함께 저녁 식사를 마치고 돌아온 최영찬 교수와 7명의 대학원생이 함께 연구실 중앙에 놓여 있는 난로 주위에 모여 있다. 창 밖에는 쌓인 눈에 반사된 달빛이 은은한 장식 조명처럼 캠퍼스를 감싸고 있다. “올 한해 다들 수고 했다. 우리가 피그플랜에 뛰어든 지가 벌써 3년이 되었군.” 교수는 학생들과 일일이 눈을 맞추며 뿌듯한 표정으로 말을 꺼냈다. “교수님께서도 수고 많으셨어요. 벌써 올해의 마지막이라는 게 믿기지가 않습니다.” 헤어스타일에 잔뜩 신경을 쓴 한 대학원생이 웃으며 화답했다. “새해에는 할 일이 더 많을 것 같습니다. 일단 피그플랜은 최대한 빨리 도스(DOS) 버전에서 윈도우 버전으로 업그레이드해야 합니다만 쉽지가 않네요.” 라며 가장 나이가 많은 대학원생이 이어서 말했다.

이에 교수가 인상을 찌푸리며 이야기했다. “비주얼 폭스프로(Visual FoxPro)로 왜 안된다는 거지?” 개발자 역할을 담당한 대학원생이 말한다. “개발 툴 자체의 한계가 명백한 것 같습니다. 데이터베이스 처리에 한계가 있어서요. 이걸로는 피그플랜에서 필요한 기능 두어 가지를 구현하기 어렵습니다.”

교수가 되묻는다. “그것도 제대로 체크하지 않고 개발 툴을 정했다는 게 납득이 잘 안되는데?” 대학원생이 대답한다. “죄송합니다. 저희도 매뉴얼로 배우면서 개발하다 보니, 처음부터 체크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이런 결과가 나오리라고는 생각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럼 대안은 뭔가?”

가장 나이가 많은 대학원생이 대답한다. “비주얼 베이직(Visual Basic)으로 넘어가 보려고 합니다. 관계형 DBMS(Data Base Management System)와 연동이 쉬워서 작업하기가 좋습니다. 그리고 개발자에게 편리한 기능들이 많아서 개발 속도도 단축될 것으로 보입니다. GUI(Graphical User Interface) 개발 툴로써 가장 적당하다고 판단됩니다.”

교수는 전체 학생들을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이제 도스의 시대는 끝났어. 지금은 윈도우의 시대야. 이건 우리 농업인들에게는 아주 좋은 기회지. 너희들도 잘 알지만 농업인들은 여러모로 컴퓨터라거나 정보 시스템이라거나 하는 새로운 혁신을 받아들이기 힘든 상황이야. 윈도우의 시대로 넘어간다는 이야기는 GUI 즉 직관적 인터페이스의 시대가 도래했다는 이야기야. 텍스트 중심이 아닌 이미지 중심의 인터페이스가 되면 농업인들 입장에서는 정보 시스템을 훨씬 쉽게 느낄 거야. 그래서 우리가 빨리 윈도우용 피그플랜을 개발해야 하는 거지. 무엇보다도 사용하기 쉬운 게 중요해.”

다른 대학원생이 대답한다.

“교수님, 물론 농업인들이 사용하기 쉬워야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래도 프로그램의 기능이 얼마나 정교하고 유용한지가 더 핵심적인 것 아닐까요? 말씀하신 것처럼 농업인들은 정보 시스템과 같은 새로운 혁신을 받아들이기에는 힘든 상황입니다. 쉬운 GUI에만 초점을 맞추어 단순하게 사용하기 쉬운 쪽으로 나가다가는 오히려 다양하고 유용한 기능들을 빼야 할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기능적인 부분을 강화해서 대규모 농가를 중심으로 하이앤드 (high-end) 유저를 타겟팅하는 게 낫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피그챔프(Pig CHAMP)와 같은 시장점유율 1위 외산 프로그램들도 충분한 GUI를 갖추고 있진 않지만 전 세계의 많은 양돈 농가들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피그챔프는 미국의 양돈 전산관리시스템으로 당시 국내 양돈 농가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었다. 영어로 돼있다는 어려움과 부족한 GUI로 사용편 의성이 떨어졌지만, 데이터 분석 정확도가 높고 기능이 다양했기 때문에 많은 농가들이 사용했다. 또한 전세계 55개국에서 사용되며 국제적 표준을 지향하고 있어 내 농가의 수준을 세계수준과 비교하면서 타 농가를 벤치마킹 할 수 있다는게 장점이었다(Exhibit 8). 제자의 말을 묵묵히 듣던 교수는 고심 끝에 대답했다.

“차별화의 포인트를 기능의 확충을 통한 유용성 즉, 시스템의 퍼포먼스에 두느냐, 아니면 기능을 일부 포기하더라도 GUI를 기반으로 한 쉬운 사용이 차별화의 초점이 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로군.”

그 때 막 지방 출장을 다녀온 두 학생이 이제 도착했다. “오, 이제 도착했구나? 현장의 반응은 어땠어?” 최영찬 교수는 막 들어 온 두 명의 학생을 올려다보며 물었다. 한 학생이 근처의 의자를 난로 쪽으로 당기고, 목도리를 풀며 대답한다. “연말이라 차가 너무 많이 막혔습니다. 이천에서 오는데 두 시간이나 걸렸어요. 길도 미끄럽고.” 목도리를 풀고 자리에 앉은 학생은 차가운 두 손을 뻗어 난로에 가까이 대며 말을 이었다.

“양돈 농가들의 피그플랜에 대한 반응은 상당히 좋습니다. 일단 생산 일지의 내용만 컴퓨터로 입력하면 현재 생산 관리의 문제가 무엇인지, 그리고 출하 시기가 언제여야 하는지 등에 대한 자료들이 나와서 의사결정에 도움을 주니 다들 좋아들 하시더군요. 특히 발정기 모돈 식별에 대한 건 정말 큰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예전에는 어떤 모돈이 발정기인지 구별하기 힘들었는데 피그플랜을 통해서 쉽게 발정기 모돈을 찾을 수 있으니 비용도 줄고, 생산성도 좋아져서 소득이 실질적으로 올라가는 게 보이는 거죠. 그런데 문제는 컴퓨터를 켜고 피그플랜을 작동시키고, 일지 내용을 입력하고 결과를 출력하고 하는 게 너무 어렵다는 겁니다. 아무래도 컴퓨터에 익숙하지가 않아서 더욱 힘든 것 같습니다. 어제 오늘 이틀 동안 시범 사업으로 설치한 20여 개 농장을 쭉 돌았는데 절반은 지난 보름 간의 데이터 입력을 전혀 못하고 있었습니다. 왜 안 쓰시느냐고 물어보면, 피곤해 죽겠는데 컴퓨터 쓸 시간이 어딨냐고 묻는 분들이 삼분의 일, 나머지 반은 컴퓨터 사용이 어렵다는 분들입니다.”

이야기를 묵묵히 듣던 교수는 눈을 깜빡이며 학생들에게 연설을 하듯 이야기를 시작한다.

“우리 농업 분야가 다른 분야와 다른 것이 바로 이 부분이야. 정보 시스템 사용자의 전반적인 교육 수준도 낮고, 컴퓨터에 대한 사용 경험도 전무하지. 아무리 우리 시스템이 유용하고 좋은 정보를 제공한다고 해도, 사용하기가 어렵다면 농업인들은 피그플랜을 이용하지 않을 거야. 명심해야 해. 우리는 단지 제품을 보급하거나 파는 게 아니야. 혁신 수용을 유도하는 사업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야 해. 그래서 우리 피그플랜의 인터페이스를 빨리 윈도우 기반의 GUI로 업그레이드해야 한다는 거야. 우리 피그플랜의 차별화 포인트는 바로 윈도우 기반의 GUI를 통한 쉬운 사용법인 거지. 우선 농업인들에게 컴퓨터 켜는 것부터 가르쳐야 해야 해. 타이핑하는 법도 가르쳐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발로 뛰어야 할 수 밖에 없는 거지. 책상 앞에 앉아서만은 할 수 없는 일이야. 반은 책상에서, 반은 현장에서! 선순환 구조!”

그러나 곧 한 학생이 섭섭함을 감추지 못하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교수님, 저희도 그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 내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잘 아시다시피 학기 중엔 수업도 들어야 하고, 숙제도 해야 하구요. 학술대회 발표 준비도 있고 해서 현장에 자주 나가는 게 만만치 않습니다. 게다가 업무를 위해서 프로그래밍도 공부해야 하고, 데이터베이스도 공부해야 합니다.”

순간 정적이 흘렀다. 다른 학생 하나는 이 어색한 상황을 이겨 내려고 컵을 두 손으로 만지작거렸고, 가장 나이가 많은 학생은 눈을 깜빡이며 빨갛게 타고 있는 난로의 불을 응시했다.

교수도 깊은 고민에 빠졌다. 지난 3년간 창업을 목표로 달려 왔고 그러면서 연구실의 규모는 더욱 커졌다. 하지만 지난 해에만 두 명의 대학원생이 연구실을 떠났다. 학업과 업무를 같이 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며, 그 선순환 구조가 쉬이 구축되지 않는다는 것도 그는 잘 알고 있다. 대학원을 떠난 두 명의 학생은 집안 형편상 취업을 해야 한다고 했지만, 실은 학업와 업무를 병행하는 것이 힘들어서 떠난 것임을 그는 이미 알고 있었다. 학교에서 창업을 막 시작한 교수에게도 만만치 않은 어려움이 있었다. 펀딩뿐 아니라 인사 관리, 조직 관리, 그리고 영업도 해야 했다. 또 교수 본연의 업무인 강의와 연구도 해야 하며 학생들의 논문도 지도해야 한다. 여기 있는 학생들은 제자이자 동시에 직원이다.

고민에 빠진 교수는 창 밖으로 겨울 밤의 달을 바라보며 생각한다. 나 혼자 이 모든 것을 다 할 순 없어. 전문경영인을 도입하고 회사를 교외로 Spin-Off하는 것이 맞을까? 아니면 다른 유능한 기업에 우리 기술의 라이선스를 판매하는 것이 나을까? 그는 다시 학생들에게 시선을 돌리며 물었다.

“산란계 농장과 육계 농장 쪽의 프로그램 진척 상황은 어떤가?”

헤어스타일에 잔뜩 신경을 쓴 학생이 답을 한다. “지난 한 달여 충북 진천을 왔다 갔다 하면서 작업을 했습니다. 일단 현장에서 업무 분석과 데이터베이스 설계 쪽은 잘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 연구실 내에 개발인력이 부족해서 구현 단계로는 넘어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비주얼 폭스 프로가 문제가 있다면, 이 두 프로그램은 아예 비주얼 베이직으로 시작하는 편이 좋겠습니다. 하지만, 그러려면…”

교수가 말을 받았다. “비주얼 베이직 교육 과정을 좀 알아보자. 세 명 정도 등록을 해 보지. 아냐, 전문 프로그래머를 한두 명 고용하는 편이 나을까?”

가장 나이 많은 학생이 대답한다. “교수님, 학생이 공부해서 개발하는 것 보다는 전문 개발자를 영입하는 편이 좋겠습니다. 아무래도 코딩 업무는 학업이랑은 좀 동떨어져 있어서요. 논문과도 거리가 있습니다.”

교수는 다시 고민에 빠진다. 그는 연구실 학생들로만 창업을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도스 버전의 피그플랜은 이미 현장에서 호평을 받고 있는데, 윈도우 버전으로 넘어가면서 큰 난관에 부딪히게 되었다. 프로그래밍 인력이 문제가 될 것이라는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다. 연구실 학생들 사이에서 프로그래밍은 가장 인기가 없는 업무였다. 논문 작업과는 가장 거리가 멀었기 때문이다. ‘결국 전문 프로그래머를 고용해야 하는 걸까? 어디서 구하지? 연봉은 얼마나 줘야할까?’ 교수의 머릿속은 더 복잡해졌다. ‘역시 전문경영인을 구해서 Spin-Off방식으로 창업을 하면 지금도 업무과중 상태인 학생들이 견뎌낼 수 있을까? 그렇다고 라이선스 방식으로 우리 기술을 다른 기업에 판매하기에는 농업과 정보기술을 아우를 수 있는 적절한 기업이 없단 말이지.’

교수는 갑자기 다른 생각이 났다는 듯 표정을 바꾸며 학생들에게 이야기한다. “전에 의논했던 회사 명칭 말이야. 여러 가지 안들을 가지고 고민해 봤는데, 이지팜(ezfarm)이 어때? 역시 농업 쪽의 정보 시스템은 쉬워야 하고, 또 우리 프로그램을 쓰면 농업이 더 쉬워진다는 의미에서. 이지팜, 어때? 다른 기업에 우리 기술을 라이선스 방식으로 판매하는 것 보다는 우리가 직접 Spin-Off 방식으로 창업을 하자.”

#4. 2003년 3월 18일 이지팜 방배동 사옥 회의실

“그게 ROI(return on investment)가 제대로 나오는 일인 겐가?” 이지팜의 전문 경영인으로 1년 여를 보낸 김한민 대표가 납득하기 어렵다는 표정으로 김종필 차장과 박흔동 부장에게 물었다. 난처한 표정을 짓고 있던 김종필 차장이 조심스럽게 이야기한다.

“대표님, 벌써 50여 양돈 농가가 피그플랜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우리 팀원들이 이를 위해서 정말 많은 시간을 투입했습니다. 아마 우리 농업분야에서 단일 소프트웨어로서 50여 농가가 쓰고 있는 건 우리 피그플랜 포함해서 손에 꼽을 정도입니다. 피그플랜은 피그챔프와 같은 외산 프로그램보다 훨씬 저렴하면서도 사용하기 쉽고, 내 농장의 생산성 지표를 쉽게 비교할 수 있습니다. 제가 하나 확실하게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앞으로 몇 년 내로 지금의 10배, 즉 500농가까지 사용자 층을 확대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그렇게 되면 전체 국내 양돈 농가의 1/4에 피그플랜이 들어가게 되는 거지요. 아직 우리만한 기술을 가진 업체가 없습니다. 우리가 조금만 더 투자하면…”

김한민 대표가 걱정스럽다는 표정으로 빠르게 대답한다. “바로 그 얘길 하고 있는 거예요. 피그플랜에 투자를 더 하면 우리가 수익을 얼마나 기대할 수 있을까? 지금 50여 농가가 쓰고 있다고 했는데, 지금 그들 중에서 우리에게 돈을 내고 있는 농가가 몇 갠가? 500여 농가가 쓰게 된들 우리가 얼마나 돈을 벌 수 있지? 우린 기업이네. 사회 사업하는 곳이 아니야. 농가에게 도움이 되면 좋지. 하지만 우리도 돈을 벌어야 기업을 굴릴 수 있지 않은가?”

김종필 차장과 박흔동 부장은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다. 김한민 대표의 지적은 일리가 있다. 피그플랜에서 오는 수익은 미미했다. 시범사업으로 여러 농장에 설치했던 피그플랜에 대해 각 농가는 돈을 지불하려고 하지 않았다. 무료 배포를 통해 피그플랜을 사용하게 된 농가는 늘었으나, 정보 시스템에 대해 돈을 지불하겠다는 생각을 가진 개별 농가는 드물었다. 박흔동 부장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이야기한다.

“미래 가치를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피그플랜으로 돈을 벌지 못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만약 국내 양돈 농장의 1/4이 우리 시스템을 사용하게 된다면 상황은 달라질 겁니다. 그 데이터로 우리는 양돈 시장 전체의 흐름을 읽고 예측할 수 있게 되고, 이를 알면 각 농가의 경영성적이 대한민국 전체에서 어느 위치에 있는지, 무엇이 상대적 우위에 있고 또 상대적 열위에 있는지, 그래서 무엇부터 개선해야 하는지를 산출할 수 있을 겁니다. 또 이 데이터만 있다면 이를 바탕으로 양돈 농가를 컨설팅하고 이에 대한 수수료를 받을 수 있을 겁니다.”

김한민 대표는 의심스럽다는 듯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답한다. “좋은 이야기야. 하지만 그때까지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을까? 몇 년이나 걸릴까? 얼마나 큰 비용을 투입해야하지?” 침묵이 흘렀다. 김한민 대표는 확신에 찬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나는 이지팜을 기업다운 기업으로 키우기 위해서 왔네. 이지팜은 더 이상 대학 연구실 수준의 벤처여서는 안돼. 이미 이지팜은 Spin-Off 해서 교내 연구실에서 나왔고, 전문경영인의 기업 체제로 변화했어. 이지팜이 ‘진짜’ 기업으로 성장하려면 매출이 있어야 해. 피그플랜에 관련된 알고리즘 개발 등 R&D관련 업무는 최영찬교수님이 계신 서울대학교 농업정보체계 연구실에서 여전히 한 축을 담당해주시고 있지만… 매출 없는 성장은 없어. 잘 알지 않나?

지난번에 파주축협과 판매계약을 얼마에 했나? 기껏해야 1,000만 원 대 계약이네. 40여 농가를 다 돌면서 프로그램 설치해주고, 잘 안 된다고 전화 올 때 마다 가서 해결해주고… 심지어 요즘에는 농가에서 컴퓨터가 고장난 일로도 전화한다고 하더만. 그걸 또 가서 고쳐주고. 피그플랜 판매수익보다 출장비가 더 나오지 않을까? 농림부에서 앞으로 많은 SI 프로젝트들이 나올거야. 우린 거기서 매출을 올려야 해. 이지팜은 농식품분야의 최고의 SI기업으로 거듭날거야. ‘아웃소싱을 받아서 납품하고 수익을 낸다. 그리고 빠르게 다음 프로젝트로 넘어간다.’ 이게 우리 이지팜의 성장 전략일세. 매출에 기여가 적은 일은 하지 않을 거야. 피그플랜에 대한 투자는 부정적이네.”

말을 마친 김한민 대표는 자리에서 일어나 회의실 뒤쪽 문으로 나갔다. 회의실에는 김종필 차장과 박흔동 부장 둘만 남았다. 잠시 침묵이 흐른 후, 박흔동 부장이 먼저 입을 열었다. “피그플랜, 포기하실 겁니까?”

“아니, 그럴 순 없지요. 여기에 우리가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는데요. 이제 성과가 좀 나오려 하는데 그만둘 순 없습니다.”

박흔동 부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역시 확산 속도가 느린 게 문제에요. 일단 제대로 사용만 하면 피그플랜이 자신의 영농 현황 파악과 의사결정에 유용하다는 것을 금방 알텐데, 여전히 사용을 어려워하니 이게 문제입니다. 입력된 자료를 일일이 이지팜으로 전송하도록 하는 일도 상당히 귀찮고, 또 농장주 입장에서는 자신의 성과 자료를 매번 전송하는 일이 썩 내키는 일은 아닐거라고 생각됩니다. 여전히 사용성에 대한 개선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확산 속도를 올리는 길이라고 생각해요.”

김종필 차장은 이미 고민하고 있었다는 듯 답한다.

“맞습니다. 아무리 의사결정에 도움이 되고 영농활동에 유용해도 사용하기 쉽지 않으면 소용없죠. 지금 피그플랜의 사용성이 나쁘다고는 생각지 않지만 농업인의 특성상 더 쉬워야 합니다. 그런 측면에서 이제는 피그플랜이 일반 애플리케이션에서 웹기반 애플리케이션으로 플랫폼을 옮겨야 할 시점이라고 생각해요. 일단 애플리케이션을 따로 설치하지 않아도 되고, 인터넷에 접속해서 로그인만 하면 피그플랜이 작동하고 거기서 바로 데이터를 입력하는 거죠.”

박흔동 부장이 관심어린 눈으로 김종필 차장을 바라보며 답을 한다.

“좋은데요? 컴퓨터에 익숙하지 않은 농업인들도 인터넷은 쓰니까, 훨씬 더 쉽게 피그플랜에 접근할 수 있겠습니다. 게다가 어떤 컴퓨터에서든 인터넷 접속만 가능하면 자료도 입력하고, 또 결과도 출력해서 볼 수 있으니 아주 편리하겠네요. 조금 전에 대표님이 말씀하신 농가의 과도한 요구사항에 대한 문제도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고요. 그리고 장기적으로는 농장의 전체적인 자원을 다 관리할 수 있는 전사적 자원 관리(ERP: Enterprise Resource Planning)의 형태로 나가야할 것 같습니다. 양돈 농가는 피그플랜이면 생산관리부터 회계, 인사관리까지 다 해결되도록 해주는 거죠. 그런데 문제는 비용이로군요. 상당한 비용이 투입되어야 할 것 같은데요. 하지만 대표님께서 저렇게 부정적이시니…”

걱정하는 박흔동 부장에게 김종필 차장이 빙긋 웃으며 답을 한다.

“해결 방법이 하나 있습니다. 지금 P양돈조합에서 통합 양돈 농가 관리 프로그램을 개발하려고 하는데, 자체 개발이 어려우니 아웃소싱을 하려고 합니다. 일종의 SI사업인 셈이지요. 우리가 이 사업을 따내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우리 제안의 핵심 내용은 이 개발을 웹기반으로 하는 것입니다. 즉, 웹기반 플랫폼을 이 사업에서 우선적으로 만드는 거죠. 그리고 그 플랫폼 위에 P양돈조합의 요청에 맞게 커스터마이즈된 정보 시스템을 개발하는 겁니다. 아시다시피 우리 피그플랜이 좀 더 범용 프로그램이라 주요 모듈들은 이미 개발되어 있습니다. 그걸 P양돈조합의 요구에 맞게 커스터마이즈해서 그 플랫폼에 올려서 납품하는 겁니다. 그리고 개발된 플랫폼을 활용하여 우리 피그플랜도 추후에 웹 기반으로 옮겨 가는 거죠. 이렇게 되면 추가 비용은 그다지 많이 들지 않을 겁니다.”

“문제는 그 P양돈조합의 SI사업을 따내는 거로군요?” 박흔동 부장이 되묻자, 김종필 차장은 답한다. “맞습니다. 웹기반 플랫폼으로요. 전력을 다해서 이 사업을 따야죠. 이 방식이라면 대표님도 반대하시지 않을 것 같습니다. 피그플랜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키고, 농업인들이 더욱 사용하기 쉽도록 만들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의기투합한 30대의 두 젊은이는 한기가 도는 회의실을 함께 나선다.

#5. 2008년 1월 2일, 이지팜 안양 사옥 인근 T식당

“여러분, 지난 한해 수고 많았습니다.”

2004년부터 이지팜의 2대 대표이사로 취임하여 4년의 시간을 보낸 김태완 대표가 모든 직원이 모인 신년회 점심식사 자리에서 맥주잔을 들면서 이야기한다.

“우리 이지팜은 지난 4년 간 괄목할만한 성장을 했습니다. 우리 이지팜의 매출은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아직 2007년도 결산이 완료되진 않았지만 사상 최고의 매출과 당기 순이익을 예상하고 있습니다.”

80여 명의 직원들은 김태완 대표의 노고와 그들 자신이 흘렸던 땀에 대해 큰 박수를 보냈다. 함께 맥주를 들이킨 뒤, 김태완 대표는 잔을 내려 놓으며 말을 이었다.

“우리 이지팜은 명실상부한 농식품 분야 최고의 SI업체로 자리매김을 하였습니다. 제가 대표이사로 부임하기 전에도 여러분들께서 많은 일을 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2006년도에 공격적인 투자를 통해 가장 우리의 역량을 끌어 올릴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때 전적으로 사람에게 투자했기 때문에, 우리는 2007년에 최고의 성과를 낼 수 있었습니다. 비록 2006년도에 우리가 수행하였던 굵직굵직하고 도전적인 공공부문 SI프로젝트들에서는 큰 수익을 내지 못했지만 거기에서 우리는 많은 학습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당해에 이뤄졌던 고급 개발자 인력 채용은 2007년도의 우리의 업무 수행 역량을 극적으로 끌어올릴 수 있었습니다. 2008년 올 한 해에도 작년만큼만 열심히 뜁시다.”

이지팜의 직원들은 다들 즐거운 분위기에서 점심 식사를 계속 하였다. 김태완 태표는 다시 잠깐 자리에 일어나서 이야기한다. “자, 여러분. 잠깐 주목해 주십시오.”

웅성거리던 소리가 줄어들고, 직원들은 김태완 대표의 미소에 함께 미소지으며 어떤 이야기가 나올지 귀를 기울인다. “비록 우리 이지팜에 별다른 재무적 기여는 없지만, 그래도 꾸준히 노력하고 있는 피그플랜 팀의 올해의 각오를 한번 들어 봅시다.”

다들 웃으며 박수를 치고, 김종필 부장은 쑥스러운 듯 자리에서 일어나서 나지막한 목소리로 이야길 한다.

“네. 김종필입니다. 아시다시피 우리 피그플랜은 2003년 P양돈조합의 SI사업 이후 2004년에 웹기반 플랫폼으로 전환하였습니다. 농업인들 입장에서는 훨씬 쉬워진 것이죠. 지금까지 가입자수가 400농가를 넘어섰습니다. 예전에는 농업인들을 대상으로 컨설팅을 해 주기 위해서는 직접 농가를 방문해서 하드에 저장되어 있는 데이터를 뽑아서 본사로 가지고 와서 분석한 후 다시 내려가서 컨설팅을 해주어야 했었지요. 처음 프로그램을 설치할 때도 직접 농장을 방문해서 설치해 주어야 했고요. 또 농가에서 별의별 불만사항이 얼마나 많았습니까? 심지어는 피그플랜과 전혀 상관없이, 고장난 컴퓨터를 고쳐주러 출장을 가기도 했었죠. 하지만 지금의 웹기반에서는 그럴 필요가 없어져서 비용이 많이 줄었습니다. 또 각 농장의 데이터가 실시간으로 우리 서버로 들어오고, 또 양돈조합별로 농장의 생산성과를 비교•분석할 수 있으니 양돈조합이나 사료회사들이 큰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조합 내 농가에서도 인터넷 접속만 되면 익숙한 웹 환경에서 직관적인 사용이 가능하니까 많은 농가들이 지속적으로 이용하려고 하고 있고요. 그래서 최근에는 개별 농가단위 보다는 양돈조합단위나 사료회사 단위로 한꺼번에 20~30개씩 계약을 맺고 있어서 수익도 크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는 나고 있습니다.”

“여기 계신 몇몇 분들은 이미 아시겠지만 그 수익을 바탕으로 피그플랜을 하드웨어와 결합하는 작업을 하였습니다. 모돈자동급이관리 시스템과 출하돈 선별관리 시스템을 센서 네트워크로 묶고, 모든 것이 자동으로 관리되고 또 기록이 되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안타깝게도 돈사 환경에 먼지도 많고 습도도 높아서 센서에 녹이 슬고 자꾸 에러가 발생하고 있어요. 또 정말 운이 없게도 작년에는 시범 사업 농장에 낙뢰가 떨어져서 장비가 다 타버리는 사고도 발생했습니다. 농장주께서 열받는다고 장비를 다 걷어 내버렸죠(Exhibit 9).”

김종필 부장은 쑥스러운 듯 멋쩍게 웃으며 이야길 했고, 직원들은 유쾌한 웃음을 터뜨렸다. 김종필 부장이 마무리를 했다.

“그래서 본의 아니게 회사에 재무적으로 손해를 좀 끼치고 있습니다만, 이게 100% 완성이 되면 농가 입장에서는 엄청나게 유용할 겁니다. 사료 급이량도 자동으로 조절되고, 출하돈의 개체 중량 관리도 자동으로 되니 상당한 사료 비용 절감 및 인건비 절감을 비롯한 경영 효율성을 높일 수 있겠죠. 각 농장에서 느끼는 우리 피그플랜이 유용성이 매우 클 것입니다.”

김종필 부장이 이야기를 다 마무리 했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자리에 앉자 김태완 대표는 조용히 자리에 일어났다. 김태완 대표는 세 자리 건너편에 앉아 있는 김종필 부장과 신년회가 열리고 있는 식당 뒤쪽 멀리 앉아 있는 직원들을 번갈아 바라보며 온화한 목소리로 이야기한다.

“좋습니다. 다들 잘 아시다시피, 그래도 우리 이지팜을 대표하는 제품, 유일한 제품은 피그플랜입니다. 최근 농림부와 정보통신부에서 유비쿼터스 관련 시범사업 과제가 많이 나오고 있으니 피그플랜을 그쪽과 잘 연결해서 비용도 절감하고, 또 더욱 발전적으로 피그플랜을 만들어 가면 좋겠습니다. 올해 새 정부가 들어서니 아마 이쪽 분야에 더 많은 공공부문 SI투자가 있을 겁니다. 다들 올 한해에도 좋은 성과를 함께 내 봅시다!”

이렇게 이지팜은 2008년 새해를 열었다. 2008년 2월, 새로 들어선 정부는 정보통신부를 폐지하였으며, 공공 IT부문 지출을 줄이고 건설 및 자원 부문으로의 지출을 혁신적으로 늘리는 정책을 발표한다.

#6. 2012년 12월 24일, 이지팜 안양 사옥 대표이사실

머리가 희끗희끗한 최영찬 교수가 먼저 입을 연다. “김 대표님, 요즘 많이 힘드시죠?”

묵묵히 눈 덮힌 관악산을 바라보던 김태완 대표가 이야기한다. “네. 여러 가지 어려운 상황이 많습니다. 최근 5년간 농식품분야 공공 SI사업 예산이 급감했습니다. 그리고 이 분야 SI시장에도 이제 경쟁자들의 역량도 많이 향상되어 우리가 경쟁하기가 쉽지가 않습니다. 시장이 포화된 상황이죠.”

교수 옆에 앉아 있던 박흔동 이사가 이어서 대답한다. “우리 이지팜의 역량은 SI사업을 수주하여, 개발하고, 납품하는 데에 최적화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분야의 SI사업 자체가 줄어드니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거죠. 즉, 다각화에 대한 준비가 부족했습니다. 교수님께서 처음 교내에서 창업하신 후 1997년 이후 15년만에 가장 큰 위기입니다. 최근 몇 년 간 수익을 전혀 내지 못했습니다. 이 상황이라면 내년에 직원들을 일부 내보내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입니다.”

“그럴 일은 없을 거네.” 김태완 대표는 말을 급히 자르며 단호하게 이야기한다. “박 이사, 우리 이지팜이 지금까지 본인의 발로 걸어 나간 직원 말곤, 단 한명이라도 내보낸 적이 있었던가? 우리 이지팜은 언제나 사람 중심의 기업이었잖아?”

박흔동 이사는 참담한 표정으로 차분하게 대답한다. “맞습니다. 하지만 SI사업을 외주받아서 살아남는 이런 비즈니스 모델은 이제는 끝내야 합니다. 물론 SI사업도 계속해야겠지만, 우리에겐 우리만의 비즈니스 모델이 있어야 합니다. 예컨대 농산물 온라인 유통 시장에 뛰어들거나, 피그플랜을 중심으로 다른 작목까지 확장하여, 아예 IT기반 작목 컨설팅쪽으로 넘어간다거나 하는 전략이 필요합니다.”

곰곰이 듣고 있던 교수가 다시 되묻는다. “박 이사, 요즘 피그플랜은 어떤가?” 이사는 얼굴에서 어두웠던 표정을 지우며 피그플랜에 대해 대답한다.

“피그플랜을 웹기반으로 옮긴 후 지금 700여 농가들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타겟 고객층의 범위를 양돈농가에서 양돈협동조합이나 사료회사로 확대한 후 확산속도가 빠르게 증가했습니다. 초기에는 일반 양돈 농가만을 타겟으로 해서 설치 비용이나 소규모 농가들의 이용 어려움 등을 전부 우리가 떠안아야 했었는데, 최근에는 양돈협동조합이나 사료회사를 고객으로 하니 직접 설치나 A/S를 하러 다니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비용을 농가로부터 일일이 받지 않아도 조합과 사료회사가 일괄 처리를 해주니 미수금도 많이 줄었고, 영업 비용도 많이 줄었지요. 예전에는 농가들을 우리 피그플랜 사이트에 접속하도록 하는 것 자체가 어려웠는데, 이제는 조합이나 사료회사가 나서서 조합에 속해있는 농가, 또 사료를 공급받는 농가들로 하여금 쓰도록 적극적으로 홍보를 하니 훨씬 일하기가 쉬워지고 농가에서의 피그플랜 사용률도 올랐습니다. 이러한 점을 미뤄 B2C에서 B2B로 타겟 소비자를 확대한 것은 정말 잘한 일인 것 같습니다.

또, 피그플랜을 사용한 농가에서의 성과 향상도 홍보에 한 몫을 했습니다. 피그플랜 사용농가의 PSY(Pig Per Sow Per Year)는 전국 농가의 평균 PSY보다 3두 가량 높습니다(Exhibit 10). 물론, 분만율이나, 7일내 재귀율, 비생산일수, 모돈 회전율 등의 지표는 10년간 큰 변화가 없어서 개선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전산기록을 꾸준히 사용한 농가들의 PSY가 월등히 높게 나와서 다른 농가들도 피그플랜의 위력을 인정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정보 시스템이라는 과학 영농을 통한 의사결정을 통해서 성과가 나아지니 농업인들은 피그플랜의 사용에 대해서 만족감이 높아지고 지속적으로 사용하겠다는 마음을 먹게 되는 거죠. 이것이 최근 피그플랜의 구매율과 사용률이 높아진 이유가 아닐까 생각합니다(Exhibit 11).”

“조합이나 사료회사 입장에서는 해당 농가들의 데이터를 피그플랜을 통해 실시간으로 볼 수 있으니, 그들에게 우리 피그플랜이 굉장히 유용하겠군.” 교수는 만족스럽다는 표정으로 응답하였다. 이사가 다시 말을 꺼냈다.

“맞습니다. 전국에 약 5,500 양돈 농가들이 있는데 그중 700여 농가가 피그플랜을 쓰고 있습니다. 농가 비율로는 12%정도지만, 우리 피그플랜을 쓰는 농가들은 대체로 규모가 큰 양돈 농가들이라 사육두수 기준으론 대략 25%정도가 됩니다. 시장점유율은 대략 70%가 되고요. 이 정도면 우리나라 양돈 시장의 전체 판도를 예측할 수 있는 수준입니다. 그리고 농가당 사용료를 매달 5만 원으로 계산하여 조합과 사료회사가 결제해 주니 우리 이지팜의 현금 흐름에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이젠 가만히 있어도 매달 3,000만 원 이상의 현금이 흘러 들어 올 수 있는 거지요. 아, 물론 실제로는 할인해서 2,000만 원 정도 들어 옵니다.”

이사가 말을 마치자, 교수는 미소를 띄우며 말을 이었다.

“당시 양돈 관련 경영 관리 소프트웨어 점유율 1위였던 피그챔프는 굉장히 많은 기능을 보유해 그 시스템의 성과에 초점을 맞추었죠. 하지만 당시 GUI 트렌드에 따라가지 못하고 사용하기 너무 까다롭게 만들었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습니다. 결국, 시장 확대에 실패했고요. 우리 피그플랜은 농가에 필수적인 최소의 기능에 초점을 맞추되, 알아보기 쉬운 GUI에 초점을 맞춰 농업인들이 이용하기 쉽게 설계했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부족한 기능들은 더 추가할 수 있었고, 그래서 기능은 많지만 사용하기 어려운 피그챔프를 누르고 결국 피그플랜이 국내 점유율 1위를 달성할 수 있었던 거죠.”

당시 피그챔프는 개체관리와 경영설계기능을 가진 거시적 관리기능이 있는 프로그램이었지만 프로그램의 내용상 양돈 산업의 환경(사육규모, 경영형태, 기술 및 교육 수준 등)이 양돈 선진국에 비추어 상당한 차이를 보이고 있는 국내 양돈 농가에 적합하지 않는 부분이 많았고, 사용자의 정보처리능력과 사용환경에서 국내 양돈 농가와 차이를 보이고 있어 우리나라 양돈 농가에서 사용하기에는 어렵고 복잡했다.

대표는 허탈하다는 표정으로 웃음을 지으며 이야기한다. “제가 처음 왔을 때만 하더라도 피그플랜이 현금을 까먹는 천덕꾸러기였는데 SI시장이 무너지니 피그플랜이 효자가 되고 있습니다. 허허!”

교수가 말한다. “그래봤자 피그플랜의 이지팜에 대한 매출기여는 3%도 안되는 겁니다. 사용자의 수도 더 늘려야 되고, 더 부가가치를 얻을 수 있는 쪽으로 피그플랜을 발전시켜 나가야 하겠군요. 한 달에 5만 원이 아니라 10만 원을 낼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핵심이겠습니다.”

이사가 응답한다. “그래도 피그플랜은 이제 하나의 완전한 서비스로 돌아가고 있기 때문에 간단한 A/S 비용 밖에 안들어 갑니다. 매출 기여도는 낮지만 수익 기여도는 높은 거죠.”

김태완 대표가 말을 이었다. “교수님, 저희들도 피그플랜의 수익을 바탕으로 부가가치를 늘릴 수 있는 방안을 두고 고심을 했었습니다. 사실은 양돈 분야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우, 육계, 산란계 쪽의 생산관리 정보 시스템을 추가적으로 개발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었습니다.”

교수가 말한다. “맞아요. 농산업의 다른 분야에도 농장관리 정보시스템이 필요하지…”

김태완 대표가 다시 대답한다.

“그런데 김종필 이사가 피그플랜과 IoT(Internet Of Things: 사물통신)에 기반한 양돈 농가의 생산시설과의 연동을 강하게 주장해서, 이쪽으로 R&D 노력을 꾸준히 하고 있는데 이게 잘 안되네요. 잘 아시다시피 양돈 농가의 시설과 장비들은 대체로 덴마크, 네덜란드 같은 곳에서 수입해서 쓰고 있는데, 이 장비들이 우리 피그플랜 솔루션들과 잘 연동이 안돼요. 게다가 아무래도 우리 이지팜이 하드웨어나 센서 쪽 전문기업이 아니다보니 어려움이 많습니다. 미래는 IoT에 있다고들 하는데, 이런 트렌드를 따르는 것이 쉽지 않네요. 아무래도 우리 인력이 SI사업을 위한 개발자들 중심이다 보니…”

교수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답변한다.

“지금 피그플랜이 모으고 있는 이 방대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패턴 분석을 하게 되면 농장의 경영 예측이 더욱 명확해질 것입니다. 출하시기 결정을 포함한 주요 의사결정의 정확도를 혁신적으로 끌어올릴 수가 있어요. 국내 돼지의 25%에 대한 생산관리 데이터를 가지고 있다는 건 굉장한 겁니다. 빅데이터인거죠. 이번에 우리 연구실에서 이 데이터를 분석한 논문도 나왔고요. 이 데이터는 학계에서도 인정을 받는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만큼 피그플랜의 데이터를 활용하는 것이 중요해요.”

대표가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이야기한다. “사실 지금 저희 입장에선 빅데이터 분석을 할 만한 역량이 없고, 신규 인력을 채용하는 것이 재무적으로 어렵습니다. 일단 SI 사업에서 기본적인 매출이 나와 줘야 그 위에서 뭔가를 할 수 있습니다.”

곁에서 조용히 듣고 있던 이사는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낸다. “대표님, 이제 SI시장에 의지하는 비즈니스 모델은 가망이 없습니다. 차라리 밭떼기라도 해 와서 소비자들에게 농산물이라도 팔아야 합니다.”

사장은 창밖으로 눈 덮인 관악산을 바라보며 깊은 시름에 빠진다.

# 7. 2015년 3월 5일 이지팜 안양 사옥 회의실

회의실을 길게 내리 누르던 침묵의 장막을 박흔동 대표의 목소리가 날카롭게 찢는다. “결국 우리의 미래는 피그플랜에 있지 않을까요?” 대표는 확신에 찬 눈빛으로 좌중을 둘러보고 천천히 일어나 회의실 앞의 화이트보드로 향한다.

“농식품 분야 공공부문 SI사업도 물론 계속 해야 할 겁니다. 하지만 SI 중심의 수익모델로는 우리 이지팜이 지속적인 성장을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미 경험으로 알고 있잖습니까? 게다가 이런 SI 사업이 실제 현장의 문제를 해결하고, 농업인들이 과학 영농을 구현해 나가는 것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는 것도 사실이지요. 피그플랜을 통해 양돈 농가의 혁신을 꾀하면서 매달 사용료를 받아 나가는 것이 우리 이지팜의 비전에 부합하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피그플랜의 매출도 정체되어 있고, 최근에는 한돈팜스(한돈전산경영관리시스템, HFMS)와 같은 경쟁자도 등장했습니다. 한돈팜스는 한돈 자조금으로 개발된 농가용 전산 프로그램으로, 양돈 농가라면 누구에게나 무료로 제공되기 때문에 무서운 속도로 사용 농가가 늘어가고 있습니다. 게다가 한돈팜스도 피그플랜과 마찬가지로 웹기반으로 개발되었기 때문에 어디서나 이용하기 쉬운 장점이 있어, 피그플랜의 기능적인 차별화가 불가피하게 되었습니다. 2014년 대한한돈협회에서 조사한 전산 프로그램 사용 의향 설문조사에서도 피그플랜이 2위긴 하지만 1위인 한돈팜스에 크게 뒤쳐지고 있는 상황입니다(Exhibit 12).”

박흔동 대표는 화이트보드 앞에서 보드마커를 집어 들며 질문을 던진다. “김 이사님, 조금 전에 말씀하셨던 피그플랜의 발전방향이 뭐였죠?”

“아 네, 피그플랜의 분석 기능 강화를 통한 빅데이터 쪽으로의 진출과 사물인터넷에 기반한…”

“맞아요. 그 두 가지!”

대표는 말이 채 끝나기 전에 보드마커를 집어 들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Exhibit 13). 그림을 그리던 그는 혼자 중얼거린다. “빅데이터로 간다는 것은 좀더 소프트웨어 중심, 분석 중심으로 간다는 것이고, 사물인터넷 쪽으로 간다는 것은 하드웨어 쪽으로 간다는 거로군요. 서로 다른 자원을 필요로 하겠군.” 화이트보드 앞에 서 무언가를 쓰고 있는 대표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김종필 이사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이야기한다.

“이미 피그플랜을 사용하는 농가는 900농가를 넘어섰고, 계속적인 성장추세에 있습니다. 피그플랜이 없는 양돈 산업은 이미 불가능합니다. 농업인들에게 더 많은 가치를 제공할 수 있는 그 무언가가 필요한 시점임은 분명합니다.”

회계담장팀장이 너무도 당연하다는 표정으로 말을 잇는다.“맞습니다. 현재 피그플랜 사용료를 두 배로 올려도 대부분의 농가에서는 피그플랜을 계속 쓸 수밖에 없을 정도로 국내 실정에 맞는 돈사관리 프로그램은 피그플랜이 유일합니다.”

대표는 화이트보드에 ‘소프트웨어 중심 전략 vs. 하드웨어 중심 전략’이라는 글자를 써 놓았다. “좋습니다. 그렇다면 소프트웨어 중심 전략과 하드웨어 중심 전략의 장단점과 각각 어떤 자원이 투입되어야 하는지 의논해 봅시다.”

회의실에 모인 6명은 각자 소프트웨어 중심 전략과 하드웨어 중심 전략의 장단점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전략을 성공하기 위해서 어떤 자원이 필요한지 논의했다. 각자의 자리 앞에는 여러 번 고친 흔적이 남아 있는 종이가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서서히 땅거미가 지기 시작할 무렵 회의실의 화이트보드에는 중간 관리자들의 의견을 반영한, 박흔동 대표가 그려 놓은 그림과 표가 완성되었다 (Exhibit 13).

“이제 결정을 해야 합니다. 소프트웨어 중심 전략과 하드웨어 중심 전략.”

한 마디를 던진 후, 그는 창밖의 도로 위로 달리는 차들을 바라본다. 회의실의 어느 누구도 쉽게 답을 던지지 못한다. 그러는 사이, 하나 둘 자동차의 헤드라이트 불빛이 켜지고, 길가의 가로등도 노란 불빛을 뽐내기 시작한다. 박흔동 대표는 어둑어둑한 회의실의 불을 켜고 결심한 듯이 화이트보드 앞으로 다가서며 말한다.

“자, 우리 다시 벤처 정신으로 돌아가는 겁니다.”

인물소개(가나다순)

김종필은 이지팜의 피그플랜 부서의 이사이다. 피그플랜 개발 투자의 원동력이 되었던 P양돈 통합정보시스템 프로젝트를 수주한 장본인이다. 그 후 피그플랜이 PC버전에서 웹버전으로 발전하면서 이지팜의 효자상품이 된 후, 당시 김종필 부장은 이전에 없었던 피그플랜 사업부를 가지게 되고, 본격적으로 회사 예산을 통해 피그플랜의 개발을 전담하게 되었다.

김태완은 이지팜의 2대 전문경영인이다. 2005년부터 2007년까지 이지팜의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이지팜에서 근무하기 전에 보좌관과 기자로 근무한 경력이 있다. 2005년에서 2007년의 기간은 노무현 정부의 전자정부화가 진행되어 정부 SI 사업이 호황이었던 기간으로, AGRIX (농가정부행정시스템)와 디지털 가축 방역 시스템의 운영과 개발 프로젝트의 수주로 이지팜의 매출이 가장 급증했던 기간이기도 하다.

김한민은 이지팜의 1대 전문경영인이다. 2002년부터 2005년 6월까지 이지팜의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이지팜에서 근무하기 전에 농림수산식품교육문화정보원의 창립멤버이자 6급 공무원 출신으로, 관리 중심의 경영 철학으로 초기의 이지팜을 이끈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박흔동은 이지팜 창업 초기부터 이지팜에 몸담아왔으며, 현재 이지팜의 대표이다. 대표를 맡기 전에는 이지팜내 생활협동조합과 전자상거래 부서에서 근무하였다. 농민들의 농산물 유통 관련 전자상거래 사업과 양돈 생산관리프로그램을 현장에 보급하는 사업 등에 주로 참여하였다. 2006년부터 정보시스템의 발전 방향에 대해 공부하고자 KAIST에서 기술경영 석사, 서울대학교 농생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고 2012년 이지팜에 복귀했다. 이후 대표가 되어 이지팜을 이끌고 있다.

최영찬은 서울대학교 농경제사회학부 교수로, 이지팜의 창업자다. 서울대학교 농생대를 졸업하고, 미시간주립대학교 대학원에서 경제학 석·박사를 수료한 후 노스다코타주립대 교수로 재직했다. 그곳에서 정보화 프로그램을 적용하면서 생산과 유통의 효율성이 획기적으로 높아지는 것을 확인한 그는 한국으로 돌아온 뒤 서울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면서 국내에서 처음으로 농어업정보체계론과 관련과목을 통한 농수산업정보화에 대한 이론적 틀을 마련했다. 그리고 1994년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농업정보시스템 연구실에서 대학 내 벤처로 정보화사업을 시작했으며, 그 규모가 점차 커지면서 2000년 이지팜을 설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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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진

문정훈

문정훈

문정훈은 서울대학교 농업생명과학대 농경제사회학부 교수이다. 푸드 비즈니스랩을 이끌고 있으며 농식품 분야의 산업전략, 마케팅, 정보경영 분야를 연구하고 있다. SUNY at Buffalo에서 경영과학 및 시스템 분야에서 박사학위를 수여한 후, KAIST
경영과학과에서 5년간 교수로 근무하였으며, 2010년에 서울대로 자리를 옮겼다. 2006년 전미 정보시스템학회(AMCIS)에서 올해의 논문상 수상을 시작으로 국내외 학회에서 다양한 활동 및 수상 경력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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