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는 시행착오가 이뤄낸 혁신 – 지구인컴퍼니

2017년 민금채 대표가 창업한 지구인컴퍼니는 2019년 대체육 브랜드 언리미트를 개발했다. 맛과 질감이 실제 고기와 가까운 언리미트는 국내외 대체육 시장에 빠르게 정착했다. 특히 비건 시장이 이미 자리잡고 성장세에 접어든 해외 시장에서의 반응이 좋아 홍콩, 중국, 미국으로 수출 반경을 넓혀가고 있다. 지구인컴퍼니는 2021년 기준으로 시리즈 B까지의 누적 투자액 146억 원을 유치한 푸드테크 기업으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그러나 2017년 창업 당시 지구인컴퍼니의 비즈니스 모델은 상품성이 떨어져 폐기되거나 재고로 남는 일명 ‘못생긴 농산물’을 재가공해서 파는 업사이클링이었다. 창업 전 우아한형제들 배민쿡에서 밀키트 사업을 총괄하던 민금채 대표는, 유통과정에서 못생기거나 흠집이 있어 상품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버려지는 농산품이 매년 생산량의 10%에 달하는 500만 톤이 넘는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고민 끝에 배민을 퇴사하고 지구인컴퍼니를 창업하기에 이른다.

지구인컴퍼니는 첫 상품부터 성공을 거뒀다. 창업한 해 여름, 상주 포도농가 창고에 쌓여 있던 캠벨포도 5톤을 수매해 포도즙으로 재가공한 ‘못생긴 포도즙’을 출시해 완판시켰다. 민금채 대표의 폭넓은 인적 네트워크, 감각적인 디자인과 빠른 상품기획, 감동적인 스토리텔링은 지구인컴퍼니가 빠르게 시장에 정착하는 데 기여했다. 사과피클, 귤스프레드 등 출시하는 제품마다 완판을 기록하며 창업 1년 만에 16개 농가 1,020톤의 재고 농산물을 살려낼 수 있었다. 그러나 사업은 성공을 거두었지만, 업사이클링 모델의 열악한 비용 구조에서 비롯되는 사업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고민이 시작되었다.

출장 간 샌프란시스코에서 비건을 위한 대체육 패티가 들어간 햄버거를 우연히 맛본 민금채 대표는 그 맛에 깜짝 놀랐다. 지금까지 한국에서 맛보았던 식물성 고기와는 차원이 다르게 실제 고기의 질감과 맛, 육즙까지 유사하게 구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맛의 대체육이라면, 굳이 비건이 아니더라도 가볍게 즐겨볼 만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를 사육하는 데 걸리는 시간과 토지, 사료, 메탄가스를 생각했을 때, 소셜미션의 관점에서도 식물성 재료에 기반한 대체육이 갖는 환경적 가치는 분명했다. 국내에서는 이제 겨우 자리잡았을 뿐이지만, 2017년 이미 42억 달러(약 4조 8,500억 원)를 넘어선 글로벌 대체육 시장의 성장세를 생각하면 시장 기회도 충분했다.

문제는 지구인컴퍼니가 어떻게 대체육을 생산해낼 수 있는가였다. 사실 민금채 대표를 비롯한 지구인컴퍼니 창업멤버들은 디자인과 마케팅 전문가였다. 당장 연구 인력을 구할 수도 없고, 그럴 돈도 없었다. 그동안 지구인컴퍼니는 상품기획과 개발, 생산과정의 각 단계에서 필요에 따라 아웃소싱을 주며 관리해왔지만, 대체육은 지적재산권 및 생산시설을 확보해야 하는, 기존의 사업과는 기술 수준과 규모가 다른 문제였다. 원천기술도, 원천기술을 개발할 자체 인력도 없었던 지구인컴퍼니는 어떻게 새로운 대체육 개발에 성공할 수 있었을까?


Q1. 창업 초기부터 다양한 업사이클링 제품을 기획, 생산하며 빠르게 시장에 안착할 수 있었던 지구인컴퍼니의 핵심 역량은 무엇인가? 민금채 대표가 가진 인적 네트워크의 특징과 전략적 활용을 중심으로 논의해보자.

Q2. 지구인컴퍼니가 대체육 브랜드 언리미트를 개발한 동기는 무엇인가? 지구인컴퍼니는 어떤 과정을 거쳐 언리미트 개발에 성공할 수 있었는지 실현화접근에 근거해 논의해보자.

Q3. 2019년 초, 지구인컴퍼니는 여전히 원천기술을 완전히 확보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구인컴퍼니는 1년 전 투자를 보류했던 투자사 옐로우독으로부터 5억 원 규모의 프리-시리즈 A 투자 유치에 성공할 수 있었다. 2019년 10월에는 신제품 출시와 동시에 40억 원 규모의 시리즈 A 투자를 유치했지만, 당시에도 대체육 기술은 아직 완성 단계가 아닌 고도화과정에 있었다. 지구인컴퍼니의 어떤 요소가 투자자에게 매력적으로 어필할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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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손으로부터의 혁신

못생긴 농산물이라고 해서 맛도 별로인 건 아니니까

지구인컴퍼니를 창업하기 3개월 전까지, 민금채 대표는 우아한형제들이 런칭한 배달서비스 배민쿡의 프로젝트 매니저였다. 배민쿡은 레시피 카드와 요리에 필요한 재료를 함께 배달해주는 밀키트 서비스로, 약 9개월 동안의 베타테스트 기간을 거쳐 2017년 5월에 정식 오픈했다. 민금채 대표는 레시피를 개발하기 위해 한식, 중식, 양식 등 다양한 분야의 유명 셰프, 요리연구가 및 푸드스타일리스트를 만났고, 동시에 신선하고 식재료를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해 전국 방방곡곡의 농가를 돌아다녔다. 에너지가 많이 드는 일이었지만, 적어도 민금채 대표에게는 낯선 일이 아니었다. 10여 년 전 여성지 기자 생활부터 민금채 대표는 식도락을 좋아하는 동료와 함께 한 달에 한두 번씩 농가를 취재하고, 지역의 음식을 맛보고, 캠 핑을 즐겼다. 그동안 쌓인 인맥과 경험이 레스토랑과 농가, 소비자를 긴밀하게 연결해야 하는 배민쿡 기획과정에서 진가를 발휘했던 것이다.

배민쿡은 차차 형태를 갖춰갔지만, 기획 초반부터 부딪쳤던 난제가 있었다. 양질의 밀키트를 만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좋은 식재료를 갖춰야 하는데, 좋은 식재료를 확보하고 유통하는 데 드는 비용이 만만치 않았다. 통상적으로 중간 유통업체를 통해 식재료를 주문하면 30%가량의 수수료가 붙는데, 상품개발 및 최종 유통비용까지 포함하면, 최종 소비자에게는 이미 부담스러운 가격이었다. 지역농가 네트워크를 통한 생산물 직거래, 계약 재배를 시도해보려 했지만, 아직 서비스가 자리잡지 않은 불확실한 상황에서는 아무래도 제약이 많았다.

방법을 찾던 민금채 대표는 농가에서 버려지는 이른바 ‘못생긴 농산물’까지 진지하게 검토해 보았다. 당시 농가 생산량의 10%는 유통과정에서 버려졌는데, 대부분은 맛이나 신선도에 문제가 있는 것들이 아니라 모양이 예쁘지 않아 납품이 거절되거나, 적당한 시간 내에 판로를 찾지 못해 ‘상실’되는 것이었다. 현장 농부들과 이미 오랜 관계를 맺어왔던 민금채 대표는 못생긴 농산물이 단지 외형상의 문제일 뿐, 영양과 맛 모두 마트 매대에서 파는 여느 상품과 다르지 않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민금채 대표는 못생긴 농산물들이 가격과 맛을 모두 잡을 수 있는 대안이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지만, 유명 셰프의 레시피를 적용해 준비중인 배민쿡 서비스의 식재료로 못생긴 농산물을 쓴다면 브랜드 이미지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있었다. 결국 배민쿡은 예상보다 높은 소비자 가격으로 시작되었고, 부진한 반응으로 정식 런칭 3개월 만에 시장에서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민금채 대표는 멀쩡한 작물들이 유통과정에서 버려지는 것이 못내 안타까웠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다며 체념하는 농부의 얼굴이 눈에 밟혔다. 어쩌면, 맛과 영양 면에서 차이가 없는 이 농산물들이 누군가의 식탁에서 맛있는 요리의 재료로 쓰일 수도 있었을 텐데. 그것도 시중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에. 고민 끝에, 민금채 대표는 사표를 썼다. 지구인컴퍼니의 시작이었다.

네트워크와 기획력, 마케팅의 승리: 첫 크라우드펀딩의 대성공

2017년 7월 창업한 지구인컴퍼니의 비즈니스 모델은 ‘업사이클링 푸드’였다. 당장 사업화 가능한 모델은 수확 시기가 임박한 못생긴 제철 농산물을 시중보다 저렴한 가격에 유통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곧 못생긴 농산물에 대한 인식을 제고하면서도, 소비자에게 부담 없이 매력적으로 다가갈 수 있는 가공품 생산 및 유통으로 확장해갔다. 지구인컴퍼니의 첫 번째 제품이 농산물의 모양과 상관없이 온전히 맛과 당도에 집중할 수 있는 포도즙이었던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처럼 발 빠른 사업 확장은 어떻게 가능했을까?

창업 후 부지런히 전국 방방곡곡의 농가로 출장을 다니던 민금채 대표는 경북 상주의 포도농장 한구석 플라스틱 박스에 쌓여 있던 B등급 캠벨포도 5톤에 꽂혔다. 포도송이가 너무 작거나 중간에 알갱이가 떨어져, 모양새가 중요한 백화점의 품질 기준에 맞지 않아 반품된 제품이었다. 농장주는 다시 비용을 들여 저 귀한 포도를 폐기해야 한다며 수심에 잠겨 있었다. 포도의 맛과 당도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을 확인한 민금채 대표는 그 자리에서 바로 수매 계약을 맺었다. 모양이 문제라면, 모양과 상관없이 판매할 수 있는 가공품으로 바꿔보자는 생각이었다.

민금채 대표는 못생긴 농산물이지만 품질이 우수하고 맛만 있으면 어떻게든 판매할 자신이 있었다. 카카오에서 스토리텔링 마케팅을 담당했던 경력 때문만은 아니었다. 민금채 대표는 그동안 축적한 농부와 셰프, 푸드스타일리스트 네트워크를 생산 가치사슬에 따라 재조직할 구상을 하고 있었다. 사실 민금채 대표가 창업을 길게 고민하지 않았던 이유 중 하나는, 기자 시절부터 축적해왔던 인적 네트워크에 대한 신뢰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취재원으로 잠깐 스친 사람도 장기적인 관계로 만드는 민금채 대표의 친화력이 큰 밑거름이 되었다. 지구인컴퍼니 창업 직전 배민쿡 서비스를 준비하면서 요식업과 유통가공업 전반으로 네트워크가 넓어지기도 했고, 그중 일부는 진지한 협업관계로 발전하는 등 네트워크의 질적인 부분에서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아이템 구상을 마친 민금채 대표는 수매부터 유통, 가공, 홍보와 판매에 이르기까지의 가공공정에 적합한 인재를 직접 섭외하거나, 믿을 만한 이의 추천을 받아 직접 만났다. 민금채 대표가 축적해왔던 인적 네트워크를 지구인컴퍼니의 사업 네트워크로 전환했던 것이다. 그러나 직접고용이 아니라, 목표와 시한이 뚜렷한 단기 프로젝트 계약이었다. 직원 3명으로 이루어진 스타트업에 불과했던 지구인컴퍼니가 초반부터 공격적인 마케팅과 가공품 생산을 동시에 진행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민금채 대표의 인적 네트워크 활용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결과적으로, 민금채 대표는 제품의 기획과 생산, 판매까지 이르는 모든 과정에 걸리는 시간을 1개월 반으로 줄일 수 있었다. 첫 2주 동안, 셰프, 요리연구가, 푸드스타일리스트가 단기 프로젝트로 레시피를 개발하고 제품 컨셉을 잡았다. 기획이 끝난 제품을 크라우드펀딩에 올려 수요를 확보하고, 동시에 생산공장을 섭외했다. 자가공장 없이 필요에 따라 발주 계약을 해야 한다는 것은, 레시피 개발과 생산으로 이어지는 타임라인이 어느 정도 예측가능해야 함을 의미한다. 배민쿡에서 생산과 유통 전반을 총괄했던 민금채 대표의 경험이 퀄리티 컨트롤에 큰 역할을 했다. 와디즈 같은 크라우드펀딩 사이트는, 아직 브랜드가 자리잡기 전이어서 개발가능한 제품군이 한정적이었던 지구인컴퍼니가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플랫폼이기도 했다. 마케팅, 디자인 인력이 전부였던 지구인컴퍼니의 강점이 가장 잘 발휘될 수 있는 공간이기도 했다.

경북 상주의 포도농장에 쌓여 있던 B등급 캠밸 포도 5톤은, 한 달 반의 마케팅, R&D, 제조공정을 거쳐 ‘못생긴 포도즙’으로 재탄생했다. 못생긴 농산물로 만들었다는 것을 숨길 필요도 없었다. 까다로운 제조공정을 거쳐 더 안전하고, 맛에 있어서는 오히려 뛰어난 포도를 깔끔한 디자인의 포도즙으로 만들겠다는 지구인컴퍼니의 첫 크라우드펀딩에 후원이 쇄도했다. 완판이었다(Exhibit 2).

지구인컴퍼니가 사업 초반 시장에 빠르게 자리잡을 수 있었던 배경에는 민금채 대표의 개인 네트워크에 기반한 기민한 가치사슬 구성과 B급 농산물에 대한 사회적 편견에 도전하는 스토리텔링이 있었다. 우박을 맞은 미니 사과로는 우박 맞은 모습 그대로를 보여주는 디저트 피클을 만들고, 크기가 제각각인 귤은 크림치즈와 꿀을 넣어 스프레드를 만들었다. 당도가 낮은 사과는 저온숙성을 통해 당도를 끌어올리고, 명인이 재배한 못생긴 배는 맛과 당도를 부각한 마케팅을 펼쳤다. 그러면서도 가격경쟁력을 위해, 시중보다 30~40% 저렴한 가격으로 못생긴 농산물을 팔았다. 창업 1년 동안 지구인컴퍼니는 16개 농가의 재고를 제로(0)로 만들었고, 이는 양으로 따지면 1,020톤이나 된다. 가성비는 물론 제로웨이스트와 소셜미션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셈이었다.

만만치 않은 현실의 장벽

그러나 민금채 대표의 고민은 이제 시작이었다. 유연하고 신속한 의사결정은 분명 스타트업의 장점이었다. 못생긴 농산물을 어엿이 유통되는 상품으로 만든 것도 만족스러웠다. 그러나 배민쿡에서처럼, 업사이클링 비즈니스에서도 높은 비용구조의 문제를 피할 수 없었다. 우선, 원재료인 못생긴 농산물의 수급이 유동적이었다. 날씨, 토질 등 다양한 요소로 인해 매 해 확보할 수 있는 못생긴 농산물의 규모를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은 지구인컴퍼니에 특히 부담이 되었다. 반응이 좋았던
상품이라고 해서 다음해에 비슷한 가격으로 비슷한 물량을 출시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날씨와 작황에 따라 매번 새로운 농산물과 대체 농가를 찾고, 새로운 제품 기획을 해야 하는 것도 모두 시간과 비용을 필요로 하는 일이었다.

게다가, 비록 업사이클링을 통해 그동안 버려졌던 못생긴 농산물을 유통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었지만 그렇다고 유통과정에 드는 비용이 기대만큼 줄어드는 것은 아니었다. 못생긴 농산물도 퀄리티 컨트롤이 필요했다. 이를테면 농가에서 못생긴 농산물을 출하할 때 예상하지 못한 문제가 발생했다. 지구인컴퍼니는 중량이 일정하지 않거나 약간의 흠이 있는 농산물을 각각 구분해 할인에 차등을 두어 팔았고, 나머지는 가공제품을 만드는 데 썼다. 문제는 농가와 구매자 사이의 직거래 창구를 개통했을 때, 많은 농부들이 자신의 작물에 자부심이 있고 작물 평가에도 관대하다는 걸 간과한 것이다. 즉, 소비자 관점에서 낮은 등급을 받을 만한 제품도 농가에서는 그보다 높은 등급으로 자체 분류되어 유통되는 일이 종종 발생했다. 근본적으로 상품을 보는 시각의 차이에서 비롯되는 것이어서, 가이드라인만으로는 완전한 해결이 어려워 보였다.

공장에 납품할 때 못생긴 농산물의 모양도 문제가 됐다. 기계가 처리할 수 있는 원재료의 크기와 중량은 일정한 범위 내에서만 가능하다. 못생긴 농산물은 이름처럼 크기가 제각각이었다. 따라서, 공장의 기계에 넣기 위해 크기가 너무 큰 것은 자르고, 작은 것은 골라내는 추가적인 손질 작업이 필요했다. 진천에 있는 공장에 모든 직원과 지인들까지 내려가 과일을 씻고, 자르고, 크기에 맞게 골라야 했던 적도 있었다.

무엇보다도 농산물의 안정적인 수급이 불가능해 개별공장의 최소생산물량(Minimum Order Quantity, MOQ)을 총족할 수 없었던 것이 비용구조에 결정적인 부담을 줬다. 물량이 많으면 문제가 되지 않지만, 공급이 적어지거나 불규칙해지는 경우에는 공장의 최소마진을 확보하는 것조차 어려워진다. 생산 안전성을 위해서는 아무래도 주력 공장과 안정적인 관계를 맺는 것이 중요한데, 최소생산물량을 보장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장기 계약을 진행할 수 없었다. 결국 그때그때 상황에 맞추다보니 열 군데가 넘는 가공품 공장들이 전국에 흩어진 상황이 되었다. 이 모든 것이 다 비용이었고, 가성비를 추구한다는 원래의 목표를 유지하는 게 점점 빠듯해질 수 있었다. 규모의 경제가 필요했다.

지구인컴퍼니가 생존하기 위한 핵심 경쟁력은 무엇입니까?

규모를 확보하기 위한 투자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민금채 대표는 2018년 초, 임팩트투자사 옐로우독을 찾아가 투자를 요청했다. 그때까지 지구인컴퍼니는 외부 투자를 받고 있지 않았다. 창업한 지 1년이 채 되지 않았던 당시에는 못생긴 농산품을 활용한 업사이클링 비즈니스 모델의 성공 여부가 불확실했고, 시장을 만들어 가야 하는 지구인컴퍼니 입장에서 아직 투자를 유치하는 건 시기상조라는 판단이었다. 그러나 제로웨이스트, 업사이클링이라는 지구인컴퍼니의 소셜미션은 임팩트투자사 옐로우독의 가치 지향에 부합했기에 민금채 대표는 투자 가능성이 낮지는 않을 거라고 내심 기대하고 있었다. 지구인컴퍼니의 창업 이야기를 흥미롭게 들은 옐로우독 제현주 대표는 대화 끝에 한 가지 질문을 던졌다. “3년 후 지구인컴퍼니가 생존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핵심 경쟁력이 무엇인가요?”. 그때 민금채 대표는 말문을 잃고 말았다. 지구인컴퍼니가 시장에서 검증된 사업을 더 잘하려면 비용을 낮추기 위해 규모확장이 필요하다는 투자 동기는 논리적이었다. 하지만, 못생긴 농산물 유통이 앞으로 지구인컴퍼니가 장기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유일한 방향일까? 못생긴 농산물 유통은 3년 뒤에 얼마만큼의 임팩트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확신할 수 없었다. 결국 첫 번째 옐로우독 방문은 빈손으로 끝났지만, 그때부터 민금채 대표는 지구인컴퍼니의 성장과 소셜미션을 장기적으로, 지속가능하게 달성할 수 있는 핵심 역량이 무엇이 될 수 있을지를 두고 깊은 고민에 빠졌다.

임파서블 미트의 충격

2018년 초, 출장 차 들른 샌프란시스코에서 처음 임파서블 버거를 맛본 민금채 대표는 그 맛에 깜짝 놀랐다. 동행한 지인이 말하기 전까지 햄버거 패티가 대체육일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을 정도로 실제 고기의 질감과 맛, 육즙까지 유사하게 구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가끔 접했던 콩고기와는 차원이 달랐다. 민금채 대표는 육식을 즐기는 사람으로서, 콩고기의 이질적인 맛과 식감에는 쉽게 익숙해지지 않았다. 그런데 이런 맛의 대체육이라면, 비건이든 비건이 아니든 충분히 즐겨 먹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셜미션의 관점에서도, 소를 사육하는 데 걸리는 시간과 토지, 사료, 메탄가스를 생각했을 때, 식물성 재료에 기반한 대체육이 갖는 환경적 가치는 분명했다. 2017년 이미 42억 달러(약 4조 8,500억 원)를 넘어선 글로벌 대체육 시장의 성장세를 생각하면 향후 성장 기회도 충분했다(Exhibit 3).

한국으로 돌아온 민금채 대표는 지체 없이 대체육 개발 실험을 시작했다. 그야말로 ‘실험’이었다. 당시 지구인컴퍼니는 못생긴 제철 농산물 수매와 가공을 막 시작한 스타트업일 뿐이었다. 정규직원은 민금채 대표까지 포함해 3명이었고, 디자인, 마케팅 인력이 전부였다. 반면 민금채 대표가 매료되었던 임파서블 푸드는 스탠퍼드대학 생화학과 교수 출신인 패트릭 브라운이 창업한 기업이며, 고도의 기술력과 막대한 초기 투자로 단번에 대체육 시장에 반향을 일으켰다. 과거 대체육 시장은 영양 면에서 우수한 콩고기가 지배하고 있었지만, 임파서블 푸드와 비욘드 미트가 열어젖힌 ‘고기의 색과 맛을 가진’ 대체육은 완전히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있었다. 문제는, 새로운 대체육은 그에 걸맞은 새로운 기술을 요구하는
하이테크 비즈니스였다는 점이다. 시장성이 있다고 해서 누구나 뛰어들 수 있는 시장이 아니었다. 사실 앞에서 언급한 기업들과 스타트업 지구인컴퍼니는 어느 지표로도 단순비교가 어려웠다.

그러나 민금채 대표는 대체육 사업을 할 동기와 기회가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우선, 대체육 생산은 민금채 대표가 오랫동안 고민해왔던 재고 곡물의 처리에 기여할 수 있었다. 채소, 과일류와 달리 곡물은 늘 60% 이상이 재고로 남아, 제로웨이스트 관점에서는 가장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문제였다. 더욱이 도정 직후 판매하는 게 시장의 관행이다보니, 오래된 곡물일수록 판로가 막혀 악성재고가 쌓여 있었다. 당연히 재고 곡물에 대한 농가의 고민이 컸고, 지구인컴퍼니도 셰이크, 미숫가루의 형태로 판로를 모색해 보았지만 다른 어글리푸드 제품군에 비해 소비자 만족도가 상당히 저조했다. 셰이크는 생각보다 풋내가 심했고, 미숫가루는 이미 시장이 포화상태였다. 만약 재고 곡물을 활용해 대체육을 만들 수 있다면, 말 그대로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을 수 있었다. 동기는 명확했다.

민금채 대표는 믿는 구석이 있었기에 대체육도 도전해볼 만한 분야라고 막연히 생각하고 있었다. 믿는 구석이 있었다. 사실 지구인컴퍼니의 어글리푸드 가공품도 민금채 대표가 기술자이거나 연구자여서 생산할 수 있었던 게 아니었다. 민금채 대표가 구축한 광범위한 셰프, 농가, 식품영양 전문가 네트워크가 유일하게 믿는 구석이었다. 이 네트워크의 조언을 얻고 때로는 협업하며, 지구인컴퍼니는 안정적인 유통경로와 생산공장 없이도 빠르고 안정적인 가공품 생산공정을 갖출 수 있었다. 처음부터 임파서블 푸드처럼 완벽한 맛을 낼 수는 없겠지만, 시도를 거듭하면서 개선될 여지가 있다면 못생긴 농산물 사업에서처럼 지구인컴퍼니도 충분히 기회를 포착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실패, 그리고 또 실패: 도대체 고기의 맛이 뭔가요?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임파서블 푸드의 독특한 ‘맛’에 대해 민금채 대표가 아무리 정성껏 묘사해도,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그 맛이 도대체 무엇인지, 어떻게 만들어낼 수 있을지 셰프들마저 뾰족한 방법을 찾지 못했다. 곡물 재고를 해결하려는 미션의 연장선에서, 곡물을 주재료로 했으면 좋겠다는 조건도 제약이 되었다. 물론 곡물은 대체육의 주재료로 이용될 잠재력이 있었다. 하지만, 대체육 생산은 원료보다 기술의 문제였다. 고기의 맛과 식감을 만들어내는 일은 일정한 비율로 원료를 배합하고 양념을 섞는 정도의 수준을 벗어나는 화학적 기술이 필요했다. 셰프들과 협업한 첫 번째 결과물을 맛본 민금채 대표는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난감했다. 딱 감자떡, 메밀전과 비슷한 모양과 맛이었다. 그러나 셰프들도 할 말이 있었다. 도대체 ‘고기와 같은 맛과 식감’의 대체육이 무엇인지 도무지 알 수 없었고, 그래서 결과물이 생각과 다르다며 실망하는 민금채 대표에게 공감하기도 어려웠다. 민금채 대표도 셰프팀의 어려움을 충분히 이해했다.

2018년 당시 비욘드 미트와 임파서블 푸드는 국내에 정식으로 수입되는 제품이 아니었다. 고민 끝에, 민금채 대표는 마장동 축산물시장으로 향했다. 싱싱한 소고기를 부위별로 떼어다가 패티를 만들어 이것이 임파서블 푸드가 만든 대체육의 맛과 가장 유사하다며 셰프들에게 건넸다. 패티를 맛본 셰프들은 경악했다. 이 정도로 고기의 맛이나 질감과 유사한 대체육을 만들어내는 게 가능하다고? 대체육을 만들기 위한 실험이 중단되지는 않았지만, 민금채 대표도 셰프들도 차츰 분명한 결론으로 향하고 있음을 직감했다. 새로운 패러다임의 대체육을 만들기 위해서는 기존 방식과 기술 수준을 뛰어넘는 특별한 무언가가 필요하다는 것을. 그것은 지금까지 민금채 대표가 의존해왔던 네트워크가 한계에 직면했음을 의미했다. 지구인컴퍼니의 비즈니스 전반을 뒤흔드는 질문이었다. 대체육 생산이라는 목표는 현재 지구인컴퍼니의 주력 상품인 어글리푸드 생산에 들어가는 자원을 줄이면서까지 추구할 만한 가치가 있는가? 가치가 있다고 해도, 추가 투자 없이 어떻게 지금 확보하고 있는 기술 수준을 뛰어넘는 파괴적 혁신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인가? 기술 개발을 위해 필요한 자원에 어떻게 접근하고, 확보할 것인가?

손안의 새에 집중하라: 다시 네트워크로, 그러나 다른 목표를 가지고

결론부터 말하면, 지구인컴퍼니는 새로운 자원을 탐색하고 확보하기 위해 곧바로 조직을 확장하거나 공격적으로 투자를 유치하지 않았다. 오히려, 민금채 대표와 지구인컴퍼니가 이미 확보하고 있던 기존 자원을 활용해 기술개발을 진행했다. 솔직히 대체육 생산에 필요한 최신 기술과 인재를 탐색할 시간도 없었고 찾는다 한들 이제 1년도 채 되지 않은, 투자금도 없는 스타트업에 최신 기술을 가진 인력이 이직할 가능성도 낮았다. 그러나 대체육 생산은 어글리푸드의 비용구조, 재고 곡물 해결이라는 소셜미션, 그리고 옐로우독 제현주 대표가 조언했던 지속가능한 핵심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유력한 방향인 것도 사실이었다. 포기할 수는 없었다. 단, 외부의 추가적인 도움을 기대하지 않고, ‘지금 손안에 있는 것’으로부터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지금 지구인컴퍼니의 손에 들린 것은 무엇인가?

“저는 식품공학자가 아니잖아요. 다만 예전부터 호기심이 많은 사람이긴 했어요. 뭔가 해보고 싶다고 생각하면, 직접 발로 뛰어서 눈으로 확인하거나 얘기를 듣거나 직접 만들어봐야 직성이 풀렸어요. 그래서 급한 대로 전공도 아닌 식품, 영양 쪽 논문이랑 특허를 찾아 읽었어요. 국내 특허는 집에서 직접 만들어봤고요. 원료를 사다가 배합비를 맞추면 집에서도 어느 정도는 만들어낼 수 있거든요. 다만, 정밀한 측정이나 기계를 쓰는 것은 집에서 어떻게 할 수 없었어요. 그래서…“

– 민금채 지구인컴퍼니 대표

민금채 대표는 지구인컴퍼니의 초기 시장 안착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던, 그녀의 인적 네트워크로 돌아왔다. 그러나 목표는 달라져야만 했다. 못생긴 농산물 제품군 레시피 개발처럼 네트워크의 지식과 경험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아직 세상에 없는 기술을 실험하고 피드백을 얻을 수 있는 안전하고 믿을 수 있는 실험실로 네트워크를 활용한 것이다. 정밀한 기구가 필요해 집에서 할 수 없던 실험은 셰프의 레스토랑을 빌려서 진행했다. 셰프들과 함께 실험하면서 비약적인 기술적 성취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당시 지구인컴퍼니 수준에서 기술적으로 가능한 요소와 불가능한 요소들의 목록을 객관적으로 파악해 추릴 수 있었던 건 적지 않은 성과였다.

사실 고기와 비슷한 맛을 내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대체육 생산에 필요한 기술은, 비욘드 미트와 임파서블 푸드와 같은 선도기업들만이 독점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고도화된 최신 기술이었다. 전문가를 특정하기 어려운, 다양한 학제지식이 결합된 융합기술이기도 했다. 몇몇 선도기업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시장 참여자가 어떤 기술을 어떤 방식으로 조합해야 할지 모르는 불확실성에 직면하고 있는 상황이라면, 역설적으로 지구인컴퍼니에게도 기회가 없다고만 볼 수 없었다. 새로운 조합을 찾는 일이라면 지구인컴퍼니 같은 초심자에게도 기회는 있었다.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손해를 감수하라: 감당할 수 없다면, 선택할 수도 없다

그러나 지구인컴퍼니가 전적으로 대체육 기술개발에만 매달릴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애초에 대체육 개발을 목표로 처음부터 거액의 투자금을 모았던 임파서블 푸드, 비욘드 미트와는 달리, 지구인컴퍼니는 대체육을 만들기 위해 설립된 스타트업이 아니었다. 지구인컴퍼니의 주력사업은 여전히 못생긴 농산물 유통과 재가공이었다. 대체육 개발 시작 당시만 해도 얼마나 자원이 투입되어야 하고, 얼마나 오랜 시간이 소요되며, 어떤 목표를 가져야 하는지도 불확실한 보조사업일 수밖에 없었다. 지구인컴퍼니의 대체육 브랜드인 언리미트 개발 기간에도 지구인컴퍼니는 평상시와 다름없이 못생긴 농산물 상품을 기획하고, 크라우드펀딩을 진행하고, 약속한 일정에 맞춰 공장을 돌려야 했다. 결국, 못생긴 농산물을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대체육을 개발해야 하는 딜레마가 있었던 것이다. 개발에 들어가는 비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지구인컴퍼니에서 대표를 제외한 모든 인력은 기존 비즈니스에 집중하기로 했다. 어느 정도 가시적인 성과를 보일 때까지 전문 인력을 고용하거나 R&D 센터를 만드는 등 많은 비용이 드는 전략은 당분간 보류하기로 결정했다. 그것이 작은 스타트업에 지나지 않았던 지구인컴퍼니가 감당할 수 있는 옵션이었다.

실수를 기회로 만들어라: 시행착오가 쌓아올린 고기의 맛

네트워크를 활용한 일련의 시행착오들은 역설적으로 민금채 대표가 올바른 질문을 찾고 구체화하는자원이 되었다. 바로 ‘고기의 맛은 어떻게 정의될 수 있는가?’ 같은 질문이었다. 다행인 것은 시행착오를겪는 과정에서 셰프들과의 대화와 피드백을 통해 고기의 맛을 구체화할 수 있는 단서들을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이다. 맛, 질감, 그리고 철분의 산미와 같은 것들이었다. 이 몇 가지 단서들을 기초로 민금채 대표는 다시 대체육 관련 논문과 특허를 검색했다. 실제로 식품영양학에서 고기의 맛을 식감, 향, 산성도, 육즙, 색 등 다양한 요소로 구분하여 측정하고 있는 자료를 발견하면서 개발에 속도가 붙었다. 그동안 수많은 시행착오로 축적된 경험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할 수 있었다. ‘고기와 비슷한 무언가’라는 막연한 아이디어를 가지고 개발하는 것과, ph 4~5의 산미 수준으로 구체화된 고기 맛 사이에는 현격한 차이가 있었다. 식품영양학이나 과학적 배경도 없는 자신의 상황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던 민금채 대표는, 새롭게 얻은 지식을 바탕으로 필요한 네트워크를 활용해 전문가의 조언을 얻어 가며 대체육이 지향해야 할 고기의 컨셉을 구체화해 갔다. 식감, 산성도, 육즙, 색, 향으로 목표 기술이 좁혀졌다.

협력할 준비가 된 누구와도 협력하라: 다시 아웃소싱으로

‘고기의 맛’을 구현한 대체육이라는 아이디어는 구체화되고 있었지만, 여전히 문제는 그것을 어떻게 구현하는가였다. 그러나 아무리 쥐어짜도 R&D 센터를 만드는 것은 불가능했다. 전문 인력이 없는 스타트업에 R&D에 필요한 거금을 투자할 투자사는 없었다. 그러나 투자금 없이는 상품개발은 물론 제대로 된 R&D를 진행할 수도 없었다. 게다가 원천기술을 개발한다고 하더라도, 개발역량과 기술의 소유권이 지구인컴퍼니에 없다면 투자사는 역시 투자할 이유를 찾지 못할 것이었다. 어떻게 보면 선택의 여지가 없어 보이는 딜레마 상황이었다. 그러나, 단기간에 학습과 실험을 거쳐 준전문가로 거듭난 민금채 대표는 이전과는 달리 자기중심성을 가지고 아웃소싱 루트를 조직했다. 민금채 대표는 고기의 맛을 식감, 산성도, 육즙, 색, 향 등 각 분야별로 나누고, 항목별로 개별적인 아웃소싱을 맡기는 방식을 구상했다. 아웃소싱의 대상은 기존 셰프, 전문가 네트워크의 범위를 뛰어넘는 것이었다. 필요하다면, 신뢰할 수 있는 기존 네트워크의 추천을 받아 연구소나 대학에도 프로젝트를 의뢰했다. 이때에도 민금채 대표가 구축해왔던 인적 네트워크가 도움이 되었다. 단 아웃소싱은 기존처럼 직접적인 비즈니스 파트너로서가 아니라, 지구인컴퍼니의 새로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새로운, 그러나 믿을 만한 네트워크와 민금채 대표를 이어주는 징검다리로서도 기능했다. 아웃소싱은 구체적인 시간과 목표를 설정할 수 있고, 고급인력을 직접고용하는 것보다 비용이 덜 든다는 장점이 있다. 게다가 지구인컴퍼니가 진행한 개별 아웃소싱의 구체적인 항목은 그 분야의 전공자들에게는 큰 지식과 비용을 필요로 하지 않는 상대적으로 용이한 작업이었다. 하지만 그 모든 작업을 한곳에 조합했을 때, 대체육이라는 가공품을 만들어내는 건 오직 지구인컴퍼니만이 갖고 있는 미션이자 과제였다. 사실 구체적인 목표와 기한을 설정하여 사업을 관리하는 것은 지구인컴퍼니가 포도즙, 귤스프레드를 만들 때부터 익숙한 과제이기도 했다. 다만, 이번에는 아웃소싱을 통해 훨씬 구체적이고 기술적인 요소들로 세분화했고, 지구인컴퍼니는 헤드쿼터처럼 중장기적인 목표를 관리하는 역할을 했다는 점이 다르다.

“조직감, 육즙 함량, 피의 색 등 측정할 수 있는 기준을 소고기에 두고 그것을 개발의 KPI 라고 생각했어요. A에게는 6개월 동안 이 수치에 맞는 원료와 공정과정요소를 달라, B 에게는 Ph를 4.0으로 만들기 위해 꼭 넣어야 하는 원료가 무엇인지를 찾아달라 이런 식으로 과제를 쪼갠 거죠. 이것을 한 군데 업체에 맡기면, 그 회사나 연구소의 기술이나 다름없으니까 그래서 전체 공정을 여러 요소들로 나누어 아웃소싱을 준 거예요.”

– 민금채 지구인컴퍼니 대표

아웃소싱이 다각화되었다고 해서 연구기관에 모든 공정을 다 맡기는 건 아니다. 민금채 대표는 자신이 대표로서 기여할 수 있는 분야가 기술이 아니라 아이디어와 다양한 정보제공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동안 농장을 돌아다니면서 접한 생소한 부산물에 대한 정보가 연구진들에게는 자극이 되었다. 땅콩 싹나물, 샐러리 잎사귀 등 일반적인 연구에서는 실험 대상이 되지 못했던 다양한 식재료들이 민금채 대표를 통해 연구진에게 전달되었다. 연구원들은 민 대표와 같은 새로운 스타일의 연구 의뢰자가 다소 당황스러웠지만, 셰프들처럼 금방 적응해 갔다. 인풋이 워낙 많으니, 생각보다 개별 프로젝트의 진척이 빨라졌다. 하지만 전체 그림을 보고 조합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지구인컴퍼니뿐이었다.

부족하므로, 투자가 필요합니다.

모든 과정을 돌아볼 때, 고기의 맛을 느끼게 하는 결정적인 요소는 고기의 식감이었다. 콩고기는 특유의 콩취는 물론, 뽀득뽀득한 식감 때문에 이질감을 느끼기 쉬웠다. 조직감을 살린 고기 특유의 식감은 지구인컴퍼니도 연구진들도 오랫동안 매달릴 수밖에 없는 난제였다. 그러던 2018년 가을의 일이었다. 현미, 귀리, 캐슈넛 등에서 식물성 단백질을 추출해 식감을 살릴 수 있는 기술을 찾던 중 ‘고기의 질감’ 을 살릴 수 있는 특허를 찾은 것이다. 특허가 작동한다는 것은, 두 가지 의미였다. 이제는 상품을 내놓을 만큼 기술 조합이 어느 정도 완성도를 갖추게 되었다는 것이고, 다른 의미에서는 이 특허를 구매하는 것이 가장 빠르고 효과적으로 생산에 이르는 길이라는 것이었다. 직소 퍼즐의 마지막 조각을 맞출 일만 남았는데, 이미 지구인컴퍼니는 가용한 내부 자원들을 거의 소진한 상황이었다. 심지어 민금채 대표는 주말에 프로그래밍 아르바이트까지 뛰며 힘겹게 회사를 유지하고 있었다. 투자가 필요했다. 절실했다. 2018년 초, 지구인컴퍼니는 다시 임팩트투자사 옐로우독의 문을 두드렸다. 핵심 경쟁력이 무엇이냐는 질문으로 민금채 대표를 고민에 빠뜨렸던 옐로우독은 이번에는 달랐다. 무엇보다도, 단 몇 개월 만에 임파서블 푸드를 타깃팅한 대체육 생산을 논의할 수 있는 수준까지 완성도를 높였다는 사실 자체가 놀라운 일이었다. 민금채 대표는 이제 양산에 필요한 특허를 구입하고, 기술조합의 완성도를 높일 R&D 센터를 만들기 위해서 당장 투자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력하게 어필했다. 유례없이, 단 2개월의 빠른 투자심의를 통해 결정이 내려졌다.

통제가능한 영역에 집중하라: 예측할 수 없는, 그러나 통제할 수 있는 혁신

지구인컴퍼니는 임파서블 푸드, 비욘드 미트처럼 시작부터 혁신적인 기술로 시장을 선도한 기업이 아니다. 그것을 바랄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보수적인 식품업계에서는 업계의 표준적인 경로를 따르지 않은 지구인컴퍼니의 혁신을 의아하게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구인컴퍼니가 개척한 길은 틀린 경로가 아닌 다른 경로다. 최고의 기술, 트렌디한 기술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지구인컴퍼니가 보유한 자원에 집중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흥미로운 것은, 지구인컴퍼니가 투자를 거듭하며 보유한 자원이 늘고 세부사항도 달라지면서, 지구인컴퍼니의 혁신 주기도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했던 것이다.

사실 지구인컴퍼니의 대체육 브랜드인 언리미트의 첫 제품이었던 만두와 밥버거는 현재 언리미트의 원천기술이라고 부를 수 있는 고기 슬라이스와 같은 질감과 조직감을 완벽히 적용한 제품은 아니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버거패티와 만두소에 들어가는 대체육은 다진 형태였기 때문에 식감이 아주 중요하지는 않았다. 그보다는 육즙과 향, 색 등에 중점을 두어야 했고, 그 기술까지는 이미 확보해두었던 지구인컴퍼니가 충분히 개발할 수 있는 제품군이었다. 모든 것이 갖춰졌을 때 이상적인 목표로 단번에 도약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갖춰진 자원으로 할 수 있는 제품군을 전략적으로 선택하고 MVP를 출시하는 데 역량을 집중한 것이다. 게다가 언리미트 만두와 밥버거 출시는 시장에서 확보할 수 없는 값진 소비자 데이터에 접근할 수 있게 했다. 소비자가 선호하는 중량, 스펙, 만두피 등 만두 제품군 리뉴얼에 필요한 데이터는 물론, 대체육 소비 패턴과 소비자들이 중시하는 요소에 대한 데이터를 얻어 고도화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 것이다

지구인컴퍼니는 2019년 1월, 시리즈 A 투자를 받은 대부분의 투자금을 특허 구입과 안태회 소장과 같은 식품영양 전문가 영입, R&D 센터 개소에 투자했다. 그리고 이 결정은 식감을 눈에 띄게 개선한 슬라이스 제품군 개발로 이어졌다. 비욘드 미트나 임파서블 푸드가 오랜 R&D로 고도화된 혁신적인 제품을 출시하며 파괴적으로 시장을 개척하는 경로였다면, 지구인컴퍼니는 단계적으로 체급을 올리며 시장을 잠식해가는 성장 궤적을 그렸다. 민금채 대표를 비롯한 지구인컴퍼니의 주요 성원들이 식품영양학 전문가가 아니었던 것이 역설적으로 이 혁신적인 궤적을 그리는 데 기여했다. 안태회 소장이 지구인컴퍼니에 합류하고 난 후 2019년 말에야 깨닫게 된 것이지만, 민금채 대표가 다섯 가지로 구분했던 고기 맛의 구성요소는 전문가의 시각에서 그보다 더 세분화할 여지가 있었다. 게다가 이렇게 세분화된 영양학적 구성에 대한 견적 없이, ‘진짜 고기와 똑같이’라는 컨셉만 제시한 방법은 업계에서는 낯선 방식이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민금채 대표는 “다 알았다면, 고작 그것만 가지고는 시작도 못했을 거예요”라고 말한다. 플랜 A를 모르니 플랜 B도 짤 수가 없었다. 그러나, 개발 1년 만에 완제품을 만들어낸 것은, 당장 가용 가능한 자원들에 집중한 지구인컴퍼니의 성취였다. 아무것도 몰랐지만, 좌절하지 않고 움직였기에 결과적으로는 기대보다 빠른 성장으로 이어질 수 있었던 것이다.

시리즈 A 투자 이후 2019년 4월 시작한 언리미트 밥버거 크라우드펀딩은 2,000%를 초과하는 달성률로 마무리된다. 다시 지구인컴퍼니의 시간이 돌아온 것이다. 2019년 10월, 545일에 걸친 개발 기간, 300가지 이상의 곡물 재료를 실험한 ‘언리미트’가 세상에 나왔다. 단백질 압축 방식으로 만든 고기를 만두소로 쓴 제품이다. 팝업스토어 테스트 결과 시식한 소비자 중 81%가 일반 고기와 언리미트를 구분해내지 못했다.

빈 손으로부터 만든 혁신

시리즈 A 투자에 참여했던 프라이머사제파트너스의 이기하 대표는 첫 번째 언리미트 상품을 이렇게 기억한다.

“처음에 먹었을 때 맛은 솔직히 실망스러웠어요. 아직 비욘드 미트나 임파서블 푸드와 비교할 수는 없는 수준이라고 생각했어요. (…) 하지만, 지구인컴퍼니가 단기간에 명확한 컨셉의 대체육 상품을 만들었다는 게 솔직히 놀라웠습니다. 불가능해 보이는 것을 어떻게든 구체적인 상품으로 만들어낸 팀 역량이 저희가 빠르게 투자를 결정한 이유였어요. 그리고 더 놀라운 것은, 신제품을 들고 올 때마다 맛이 눈에 띄게 좋아졌다는
것입니다.”

민금채 대표는 이렇게 말한다. “결국 그 시점에 제가 만들었던 것은 원천기술 자체보다는 원천기술에 접근하는 ‘방법’이었던 것 같아요. 그걸 좋게 봐주신 거죠.” 결국 솔루션을 만들어내는 능력, 그리고 솔루션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발현된 네트워크의 동원력, 자원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에서도 어떻게든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지구인컴퍼니의 팀 역량이 투자자에게 어필한 것이다. 처음부터 원천기술과 뚜렷한 목표가 있었다면 투자를 유치하는 것이 훨씬 수월했을지도 모른다. 아무것도 모른 채 소셜미션과 지속가능한 비즈니스 모델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대체육 개발에 뛰어든 민금채 대표의 도전은 무모한 것이었다. 지구인컴퍼니의 첫 결과물도 업계 표준으로 보면 아주 뛰어난 것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구인컴퍼니와 민금채 대표가 추가 자원의 획득이나 투입 없이 단기간에 만들어낸 컨셉과 제품은 벤처투자자의 관점에서 지구인컴퍼니의 역량을 재평가하고 신뢰하게 만든 결정적인 동인이었다. 정제될 필요가 있는 초기 단계의 원천기술은, 팀 역량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오히려 원천기술의 확보를 위한 추가 투자 유치의 정당성을 어필하는 설득력 있는 근거가 되었다. 혁신이 싹튼 장소는, 처음에는 부족해 보이기만 했고 한계를 드러냈던 지구인컴퍼니의 팀 역량 자체였다. 역설적으로 보이지만, 혁신은 빈손으로부터 시작할 수 있다. 지구인컴퍼니는 그것을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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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진

박윤중

박윤중

박윤중은 앨버타대학교 경영학 박사과정에서 공부하고 있다. 연세대학교 사회학과 학석사를 졸업하고, 성수동 소셜벤처에서 일하고 창업했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기업의 오늘과 내일을 공부하기 위해 유학길에 올랐다. 소셜벤처, 임팩트투자, 조직변화를 연구한다 <젠더 안경을 쓰고 본 기울어진 투자 운동장>을 감수하고, <아름다운 거짓말 - 인도의 사회적기업>, <돈의 의미를 묻다 - SOCAP 2017>, <사이드 프로젝트, 명함이 없어도 내 일입니다>, <크라우드펀딩 플랫폼 텀블벅의 견고한 성장방정식>, <임팩트 액셀러레이팅 매뉴얼>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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