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바이텐은 2001년 인터넷 쇼핑몰, 특히 젊은 디자인과 감성을 중시하는 전문쇼핑몰로 출발하였다. 본 사례는 텐바이텐이 창업 초기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해당 분야의 선두 기업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설립 당시의 지배 구조(지분, 성과 배분, 의사결정 구조 등)가 기업의 성장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에 대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특히 본 사례는 세 번의 시점, 즉 2001년 창업 시점, 2009년 사업부제 도입 시점, 그리고 2011년 대기업으로부터 투자 제안을 받은 시점에서 가장 바람직하다고 판단되는 지배 구조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본 사례의 학습 목표는 창업 당시 다섯 명의 대학 동기로 이루어진 텐바이텐의 지배 구조가 초기에 성공을 거두었던 이유에 대해, 그리고 기업이 성장함에 따라 지배 구조의 변화가 요구되면서 사업부제 구조가 적용되는 과정에 대해, 그리고 2010년 이후 GS그룹(사례 본문에서는 ‘A 사’로 표기)에 편입되는 과정에서 이문재 전 대표 체제에서 최은희 현 대표 체제로 전환되기 직전의 상황에 대해 이해하는 것이다.
텐바이텐은 본 사례 대상 기간 이후 최은희 대표 체제하에서 GS그룹의 투자를 받기 위해 1년 여에 걸쳐 협상을 진행했다. GS그룹과의 협상 내용 중 주요 부분인 기업 가치평가 과정은 본 사례의 초점에서 벗어나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논의하지 않기로 한다. 다만 기존 창업자들의 지분을 거의 유지한 채 인수 기업의 영향력을 확보하기 위해 GS그룹 본사에서 CFO를 파견하기로 함으로써 기존에 CFO를 맡고 있던 백우현 이사는 지분을 정리하고 회사를 떠나게 된다. 창업자의 지분 정리는 기존 5인 체제의 틀이 바뀌는 것이므로 중요한 의사결정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과정에서 백우현 이사가 담당했던 오프라인사업부 아이띵소는 텐바이텐에서 분리되었고, 이창우 전 대표는 텐바이텐에서 업무상 분리되기는 했으나 GS그룹의 요구에 의해 지분은 유지하고 있다. 이후 텐바이텐은 최은희 대표 체제로 운영되고 있으며, 더핑거스라는 신규 사업을 시작했다(Exhibit 1).
Q1. 텐바이텐이 2001년 창업 초기에 택했던 지배 구조(지분 구조, 성과 배분 구조, 또는 의사결정 구조)는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생각하는가? 왜 실제 의사결정 구조와 다르게 공동대표제 대신 단독대표제를 선택했는가? 만약 다른 지배 구조를 가졌더라면 창업 초기의 어려움을 극복하기가 더 수월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Q2. 텐바이텐이 2009년 사업부제 도입 당시에 택했던 지배 구조는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생각하는가? 만약 다른 지배 구조를 가졌더라면 기업이 성장하는 데 있어서 더 도움이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Q3. 텐바이텐이 2011년 A 사로부터 투자 제의를 받았을 당시에 택했던 지배 구조는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생각하는가? 만약 다른 지배 구조를 가졌더라면 외부 자본이 도입되는 과정이 더 수월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Q4. 결론적으로 텐바이텐이 성장해감에 따라 기능형 구조(functional structure)에서 다부서 구조(multidivisional structure)로 변화하는 과정은 적절했다고 생각하는가? 그 과정에서 지배 구조 또는 리더십 스타일도 변화되어야 했다고 생각하는가? 어떤 상황에서 공유 리더십은 수직적 리더십보다 우선시되는가?
독수리 오형제의 비상 – 텐바이텐의 도전
1980년대에 초등학교를 다닌 사람이라면 ‘독수리 오형제’를 기억할 것이다. 1972년 일본에서 ‘과학닌자대 갓챠맨’이라는 제목으로 방영된 이 애니메이션은 독수리, 콘도르, 백조, 제비, 부엉이 형상의 제복을 입은 다섯 명의 대원이 지구 정복을 노리는 비밀 결사대에 대항하여 싸운다는 흥미진진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애니메이션은 아주 인기가 높아서 1996년과 2009년에 원제인 ‘과학닌자대 갓챠맨’이라는 이름으로 한국에서 재방영되기도 했는데, ‘갓챠’는 이들이 하나의 몸체로 합체할 때 독수리 복장의 대원이 ‘got you’를 외치며 일본식으로 발음한 데서 붙여진 이름이었다.
사실 ‘독수리 오형제’라는 제목은 정확하지 않은데, 이들은 형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들 다섯 대원 중 백조는 여자 캐릭터이기 때문에 정확히 말하면 ‘독수리 오남매’가 되어야 한다는 농담을 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이들처럼 한 명의 여성을 포함한 창업 멤버들이 독특한 동업 관계를 유지, 변화시키면서 기업을 성장시킨 사례가 있다. 바로 텐바이텐의 이야기다.
텐바이텐은 한국에서 인터넷 쇼핑몰 사업이 생소했던 2001년에 대학 동기였던 이창우, 이문재, 최은희, 백우현, 서동석 다섯 사람이 의기투합하여 설립한 디자인 전문 쇼핑몰이다. 이 기업은 독특한 점이 있는데, 다섯 창업자가 동일한 지분을 소유하며 공동으로 리더로서의 역할을 해왔다는 것이다. 이후 텐바이텐은 2013년에 국내의 한 대기업에 편입된 후 달라진 지배 구조 체제에서 지금까지 성장을 계속해오고 있다. 과연 이 기업은 어떤 과정을 거치며 쉽지 않은 동업 구조를 유지해 왔을까? 또한 어떤 이유에서 동업 구조에 변화가 필요했을까? 본 사례는 텐바이텐이 동업 구조를 유지하고 변화하는 과정을 살펴보면서 최고경영자 집단의 지배 구조와 관련된 리더십 이슈에 대해 다루고자 한다.
2001년, 텐바이텐의 태동
2001년 어느 봄날, 대기업 인터넷 쇼핑몰 부문에서 일하던 이창우는 이 분야의 성장세를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었다. 특히 해외에서는 일상적인 용품인데 국내에서는 구입하기 힘든 디자인 소품 시장은 틈새시장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30세 이전에 그의 젊음을 던질 가치가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리고 이 분야라면 멋지게 창업자의 길을 걸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터넷 쇼핑몰 사업은 1996년에 시작된 데이콤인터파크(현 인터파크)를 필두로 인터넷을 통한 전자상거래(Electronic Commerce, E-Commerce)가 일반화됨에 따라 그 규모가 급속히 성장하고 있었다. 통계청 발표에 의하면 이미 2000년 6월에 인터넷 쇼핑몰 수가 1,700여 개에 이른 것으로 추정되고, 매출액은 월 1,142억 원으로 소매업 월간 매출액의 1.1%에 달했다.
당시 정부는 IT 강국을 목표로 정책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세계적인 IT 기업을 육성하고, 국민을 대상으로 PC 보급률과 인터넷 이용률을 높이기 위해 전자거래기본법 등 법규 정비와 전자상거래 시스템을 구축하도록 하였으며, 이를 위해 광케이블 설치 등 통신 속도를 높이는 데 힘을 썼다. 우리나라에서 광케이블이 설치된 시기는 1992년이었고, 1998년부터 임기가 시작된 김대중 대통령은 대선 후보 당시 공약으로 초고속 정보통신망 조기 구축과 1인 1 PC 보급 등을 제시하기도 했다. 실제로 멀티미디어 정보통신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공중망에 대한 투자는 2003년에 집중되었는데, 일반 정보통신 이용자가 급속히 증가하여 공중망 완성 목표 시점을 앞당기기도 했다. 소비자의 인식도 변화하고 있었다. 인터넷 쇼핑몰이 처음 등장했던 1996년도만 해도 오프라인 거래의 보조수단으로 인식되었으나 전자상거래가 활성화되면서 ‘낮은 수수료’와 ‘다양한 상품’이라는 강점이 인정받게 되었다. 여기에 성능보다는 개인의 기호를 중시하고 시간 절약형 쇼핑 스타일을 선호하며 자기 주장이 강한 소비계층이 부상하는 등 사회·문화 동향도 인터넷 쇼핑몰 사업의 매력을 더해 주었다.
인터넷 쇼핑몰 사업을 보다 자세하게 살펴보면 여러 품목을 취급하는 종합쇼핑몰, 특정 품목에 특화된 전문쇼핑몰, 그리고 다른 쇼핑몰들을 유치하는 오픈마켓으로 구분할 수 있다. 종합쇼핑몰은 데이콤인터파크, 롯데백화점, 한솔CS클럽 등 대형유통업체가 주도하다가 2000년도에 들어서면서 KT, SK텔레콤, 프리챌 등 통신서비스업체들이 경쟁에 뛰어들기 시작했다. 전문쇼핑몰은 1997년에 영풍문고와 교보문고가 자사 홈페이지에서 서적을 온라인 판매하면서 시작되었는데, 1999년에는 본격 인터넷 서점인 YES24가 등장하면서 전문적인 인터넷 쇼핑몰 분야로 성장하였다. 전문쇼핑몰 시장에서는 서적 외에도 음반, 화장품, 의류, 전자제품 등을 다루는 전문쇼핑몰들이 탄생하고 사라졌다. 오픈마켓은 2000년에 탄생한 인터파크 구스닥(현 지마켓)을 시작으로 2002년에 옥션, 2005년에 LG e-스토어 등이 서비스를 시작하였다(Exhibit 4).
이창우는 경영 계열이 아닌 건축학 전공자였다. 그러나 그는 사람들에게 편리한 공간과 미적 가치를 제공하는 건축학의 강점을 활용한 전자상거래 사업을 꿈꾸게 된다. 바로 디자인 전문 인터넷 쇼핑몰을 열고자 한 것이다.
이를 위해 사업을 같이할 동업자를 찾기로 한 이창우는 가장 가까운 친구 중 하나인 이문재에게 자신이 구상하고 있는 사업에 대해 의논하게 된다. 이문재는 이창우의 대학 동기로, 그 역시 건축학과를 졸업한 후 건축사무소에서 일하고 있었다. 이창우는 이문재를 설득한다. ‘젊은 시절에 열정을 바칠 일을 저질러 보는 것은 멋지지 않을까!’ ‘대학 시절 희로애락을 같이한 동기와 함께하는 사업이라면 더 멋지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이문재는 사업이나 경영에 대한 지식이 거의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친구인 이창우를 믿고 사업에 뛰어들 준비를 한다.
“경영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면서도 사업을 시작하게 된 이유는 ‘친구와 함께라면 무엇이든 하겠다’라는 의리 내지는 우정 때문이었습니다. 아마 그게 인터넷 사업이 아니라 다른 어떤 사업이었더라도 같이했을 것입니다.”
– 이문재 텐바이텐 전 대표
“저도 물론 인터넷 산업의 전문가와 함께 사업을 하는 것이 더 유리할 거라는 것은 잘 알고 있었지만 결국 사업에서 중요한 것은 ‘저 사람이라면 같이해 볼만 하겠다’라는 확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전문가를 영입할 때 필수적으로 수반되어야 할 것은 조건에 관한 대화거든요. 무엇을 할 것인가, 언제 할 것인가, 수익 배분은 어떻게 할 것인가 등에 대한 조건들을 맞춰가다 보면 사업이 성장하는 데 더 걸림돌이 될 거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대신 친구와 같이 일하는 거라면 그런 걱정이 없을 것 같았습니다. 서로 마음이 맞으면 그것으로 그만이니까요.”
– 이창우 텐바이텐 전 대표
두 동업자는 2001년 3월 신사동에 위치한 한 건물의 반지하 방에 사무실을 차리고 사업 준비를 시작한다. 사무실은 책상 세 개가 들어가는 공간으로, 두 명의 창업자와 한 명의 보조인력이 앉을 자리였다. 그런데 막상 사업 준비를 하면서 보니 인터넷 쇼핑몰 사업을 하려면 작업의 구색을 갖출 최소한의 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초기에 잠깐 사업에 합류했던 동업자 한 사람이 몇 개월 만에 다른 길을 걷게 되자 자연스럽게 건축학과 동기 중에서 다른 동업자들을 찾게 되었다. 이에 동기들 중 친한 사이였던 최은희와 백우현이 사업에 합류하게 된다.
“저도 그 당시에 건축사무소에서 근무하고 있었는데 동기인 이창우와 이문재가 사업을 시작한다는 소식에 호기심을 갖게 되었어요. 그런데 사무실이라는 곳에 가 보니까 도저히 일할 만한 공간이 아닌 거예요. 그래도 사업 자체는 흥미가 있었죠. 인터넷 쇼핑몰이라는 사업 분야에 흥미가 있었다기보다는 동기들끼리 같이 사업을 한다는 데에 흥미가 생겼던 거예요. 이문재가 어떤 사업을 했더라도 이창우와 함께 했을 것이라고 말했는데, 저도 같은 생각이었어요. 다만 그 사무실만은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그래서 사무실을 옮기는 것을 조건으로 합류하기로 했죠.”
– 최은희 텐바이텐 현 대표
최은희와 함께 합류한 백우현 역시 건축학과 동기로, 전공을 살려서 방송사 무대디자인 일을 하다가 선배와 3D 모델링 사업을 준비하던 중이었다. 그 역시 친구들과 함께하는 사업에 도전할 의지를 갖게 되었다. 이렇게 의기투합한 네 명의 동기는 2001년 8월, 최은희가 내건 조건대로 논현동에 위치한 새로운 사무실에서 회사를 설립하게 된다. 이것이 텐바이텐의 시작이다.
“텐바이텐은 원래 건축학 분야 서적의 이름이에요. 열 명의 건축 작가가 만든 열 개의 건축물을 소개한 책이죠. 우리는 이 책에서 다양한 제품을 소개하는 인터넷 쇼핑몰의 속성을 발견했어요. 그래서 회사의 이름을 텐바이텐으로 정하게 되었죠.”
– 이문재 텐바이텐 전 대표
인터넷 판매와 관련해 이들이 가진 경험이라고는 이창우가 대기업 쇼핑몰에서 2~3년간 일한 경험이 전부였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경험의 결핍이 이들의 결속을 도왔다고 최은희 대표는 회고한다.
“저는 건축은 인생을 거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1997년에 외환위기를 겪을 때 제가 다니던 건축사무소가 상황이 안 좋아지자 직원을 2,000명에서 250명으로 구조조정을 하는 거예요. 그때까지 건축가는 아티스트라고 믿고 일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기업의 소모품밖에 되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게다가 건축사무소에 여자 이사는 한 명밖에 없었고 정말 중요한 직책은 주지 않았습니다. 그건 공평하지 않은 거죠. 솔직히 말하면 그 당시에는 건축 말고 완전히 다른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었고, 그게 이 사업에 동참하게 된 중요한 이유 중 하나였습니다. 다른 친구들도 각자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었어요. 그러니 유일하게 인터넷 사업에 경험이 있는 이창우의 말에 자연스럽게 전적으로 의지하게 되었죠. 자기의 주장이라는 것이 있을 게 별로 없었으니까요.”
– 최은희 텐바이텐 현 대표
처음에는 이들도 다른 성공적인 벤처 기업들처럼 외부 투자를 받아서 사업을 성장시키려고 했다. 하지만 비전공자가 설립한 태동기 산업의 창업 기업이 투자를 유치하기는 쉽지 않았다.
텐바이텐은 공동대표제가 아닌 단독대표제를 채택했는데, 공동대표제를 채택하지 않은 이유는 외부 투자를 받으려면 단순한 지배 구조가 유리할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아무래도 외부 투자자 입장에서는 매 건마다 합의가 필요한 공동대표제보다는 한 명의 대표와 협상하면 되는 단독대표제를 선호할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그래서 네 명의 대학 동기들은 누구를 단독대표로 세울 것인가에 대한 결정을 해야 했다. 사실 이 결정은 단순하게 이루어졌다. 이 사업을 먼저 제안하고 동업자 중에서 가장 경험이 많은 이창우가 적임자라고 의견이 모아졌다. 만약 이창우가 대표직을 사양했으면 오히려 문제가 될 수 있는 사안이었다. 실제로 지배 구조를 결정하기 위한 회의에서 각각 동업자들이 원하는 것은 모두 달랐다.
“저는 이 사업을 통해 무엇을 할 것인가가 가장 중요했어요. 건축 일을 일단 접기는 했지만 뭔가 창의적인 일을 하고 싶었고, 여성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맡을 수 있는가가 중요했죠. 이문재의 의견은 달랐어요. 무엇을 하는가가 중요하다기보다는 친구들이 모여서 하는 사업을 어떻게 진행하는가가 더 중요했어요. 친구들 사이에 불화가 생길 일은 만들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이문재의 주장이었죠. 백우현은 특별한 의견을 내놓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선배와 하던 사업을 중단하고 합류한 만큼 뭔가 신나는 일을 하고 싶었을 거예요. 그런데 이창우는 비교적 명확한 희망을 가지고 있었어요. 무엇을 하든, 어떻게 하든 상관없이 이 사업에서 리더의 직함을 갖고 싶어했어요. 아마도 이 사업을 우리에게 처음 제시했기 때문에 나름대로 책임감을 가졌던 것 같고, 본인의 이름을 걸고 이 사업을 추진하겠다는 사명감이 있었던 것 같아요.”
– 최은희 텐바이텐 현 대표
“사업을 제안한 사람으로서 각자 다른 길을 걷던 친구들을 이 사업으로 초대한 이상 지분과 수익을 n분의 1로 나누는 것은 저로서는 당연한 것이었다고 생각해요. 사실 누군가 월등한 지식을 가지고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더 많은 지분을 갖고 나머지를 이끄는 구조가 더 낫겠지만 어차피 그런 사람이 없는 바에는, 그리고 기왕 친구들이 모인 상황에서는 여러 사람이 동등한 지분과 동등한 수익 배분, 그리고 동등한 의사결정권을 갖는 것이 훨씬 더 나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영화에서 보면 은행 갱단이 처음에는 손발을 착착 맞춰가며 일을 하다가 정작 훔쳐온 돈을 나누는 시간이 오면 서로 배신하고 죽이기도 하잖아요. 창업 기업에서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처음에는 어떻게든 회사를 살리기 위해 서로 도우며 애쓰다가도 수익이 날 시점이 되면 불균등한 이익 배분 문제 때문에 회사가 깨어지는 예를 많이 볼 수 있어요. 저는 그런 구조가 싫었습니다.”
– 이창우 텐바이텐 전 대표
이제 이 신생 기업의 지배 구조는 결정되었다. 이들이 암묵적으로 합의한 것은 다음과 같다. 네 명의 동업자는 수평적 관계를 갖되 대외적인 대표는 이창우가 맡는다. 나머지 세 명은 이사로서 경영진을 구성하고 각자 독립적으로 일하고, 일한 만큼 가져간다. 모든 결정은 전원 합의에 의해 이루어진다.
서동석 동업자는 이 모든 지배 구조가 정리된 후 합류했다. 이제 다섯 명의 동창생으로 구성된 텐바이텐의 최고경영진이 완성되었다(Exhibit 2).
텐바이텐의 성장통
2001년과 2002년의 텐바이텐은 마치 북미 대륙에 정착한 초기의 개척민 같은 처지였다. 2001년 10월에 초기 자본금이 바닥나면서 회사 문을 닫아야 하는 건 아닌지 고민하는 상황까지 간 것이다. 직원 월급을 주기 위해 신용카드 현금서비스까지 받아야 했고, 다섯 명의 창업자들은 월급을 한 푼도 가져갈 수 없었다. 수십 명의 투자자를 만나 사업계획을 설명했지만 외부 투자는 성사되지 않았다. 2000년에 이미 탄생한 수많은 신생 기업 간에 경쟁이 격화된 것도 이들이 고전한 이유 중 하나였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이들이 과연 경쟁자였는가에 대해서도 모호한 부분이 있다.
“초기 경쟁자들은 통신서비스업체들이 다투어 내어놓았던 멤버십 쇼핑몰들이었어요. 유토, 카라 등의 브랜드는 각각 특화된 시장을 대상으로 마케팅을 했죠. 우리가 겨냥했던 20~30대 구매자들과 목표 시장이 겹치는 부분이 있었어요. 그런데 그들은 대기업이었죠. 우리에게는 어려운 상대였어요.”
– 최은희 텐바이텐 현 대표
언뜻 보기에 전문쇼핑몰인 텐바이텐과 통신서비스업체들의 멤버십 쇼핑몰은 특별히 경쟁 관계로 보이지 않는다. 경쟁 관계라 하더라도 통신서비스업체의 브랜드들은 종합쇼핑몰에 속하기 때문에 직접적인 경쟁 관계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통신서비스업체의 브랜드들은 이동전화 시장의 경쟁이 격화되면서 등장하기 시작했는데, 특히 SK텔레콤이 TTL이라는 브랜드를 선보이면서 본격적으로 쇼핑몰을 도입했다. SK텔레콤은 TTL, 팅(Ting), 유토(UTO), 카라(CARA), 리더스클럽이라는 다섯 종의 멤버십 제도를 선보이면서 연령별 브랜드 충성도를 확보하는 전략을 추진하며 20대 고객은 TTL, 30대 고객은 유토, 여성 고객은 카라 등으로 시장을 세분화했다. 이에 대응하여 KTF는 나(Na), 비기(Bigi), 드라마(DRAMA), KTF멤버스라는 네 개의 멤버십 서비스를 제공했고, LG텔레콤도 카이, 카이 홀맨, 패밀리라는 세 개의 멤버십 서비스를 제공했다. 사실 이러한 멤버십 제도는 이용자와 비이용자 간의 차별을 유도하여 위화감을 조성한다는 이유로 정부로부터 시정 요구를 받았을 정도로 당시 통신서비스업체들의 주된 마케팅 도구로 이용되었다(Exhibit 3).
세분화된 멤버십 가입자들에게 대폭 할인된 제품을 판매하는 통신서비스업체의 종합쇼핑몰은 구매자 입장에서 보면 텐바이텐의 영역과 중복된다. 즉, 통신서비스 멤버십 쇼핑몰 자체는 종합쇼핑몰 시장이지만 연령과 성별로 세분화된 시장은 전문쇼핑몰의 성격을 띠기 때문에 텐바이텐과 직접 경쟁의 관계에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텐바이텐은 통신서비스업체들과 제휴를 맺어 고객을 확보하고자 했다. 이는 텐바이텐 웹사이트에 자발적으로 찾아오는 고객이 드문 실정에서 텐바이텐이 택할 수밖에 없는 전략이기도 했다.
그러던 중 2002년 크리스마스 시즌에 텐바이텐이 내놓은 기획상품들이 입소문을 타면서 매출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했다. 2002년의 매출액이 6억 3천만 원이었던 것에 반해 2003년에는 매출액이 23억 원으로 껑충 뛴 것이다. 이 추세는 계속 이어져 2004년 44억 원, 2005년 89억 원, 2006년 144억 원으로 성장한다(Exhibit 4, 자세한 손익계산서는 Appendix 1, Appendix 4 참조). 그 덕분에 텐바이텐의 공동창업자들은 몇 십만 원대지만 첫 월급을 받게 된다. 물론 성과에 대해서는 당초의 약속대로 다섯 명이 똑같이 배분하였다.
이창우 당시 대표는 이런 반등이 가능했던 것은 꾸준히 소량의 특화 상품을 만들어 구매자에게 호소했기 때문이라고 회고한다1). 거실, 사무공간, 욕실 등 다양한 장소와 의류, 액세서리, 취미, 기념일 등 다양한 용도에 맞는 상품을 다섯 창업자가 발로 뛰며 발굴한 결과 서서히 구매자들의 관심을 받게 된 것이다. 2002년에 나니쇼라는 디자이너가 기획해 출시한 커플 편지컵(3만 원)은 단일 상품으로 5,000만 원이라는 높은 판매고를 기록하기도 했다(Exhibit 5).
“가장 힘들었던 시기인 2002년, 이 커플 컵 하나가 저희를 구제해 주었어요. 커플 컵이 없었다면 지금의 텐바이텐은 없었을 겁니다. 그래서 지금도 이 상품에 가장 애착을 느낍니다2).
– 이창우 텐바이텐 전 대표
텐바이텐이 거둔 초기의 성공은 이처럼 여러 디자이너를 직접 발굴하여 새로운 제품을 선보인 데서 기인한 것이었다. 이들은 도기로 유명한 김난영, 최선혜를 비롯해 한국적 문양을 이용해 지갑을 고급화한 이건만, 북아트로 유명한 김나래, 그 밖의 많은 무명 디자이너들을 섭외하여 그들의 상품을 텐바이텐이라는 새로운 유통 경로를 통해 고객들에게 제공하였다. 새로운 유통 경로로서의 텐바이텐이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면서 제품의 시장성을 평가하는 기회를 갖기 위해 텐바이텐에 접촉해오는 디자이너들도 있었다.
매출이 증가하고 사업이 궤도에 오르게 된 것은 텐바이텐이 창업 당시의 불확실성에서 벗어나 성장기에 접어들었다는 청신호였다. 그러나 성장통은 뜻하지 않은 곳에서 나타났다.
인터넷 전문쇼핑몰이 수행하는 활동은 크게 디자인 개발, 협력업체 관리, 고객 서비스, 브랜드 관리 등으로 나눌 수 있는데, 이 중 소홀히 해도 되는 것은 한 가지도 없지만 어디에 중점을 두느냐에 따라 기업의 색채가 결정된다.
예를 들어 반품 및 교환 정책을 보면, 구매자가 제품 교환을 원할 때 먼저 기존의 제품을 반품 받은 다음 새로운 제품을 배송하는 방식과 기존 제품이 반품되기 전에 교환 제품을 배송하는 방식이 있을 수 있다. 선배송 후반품(맞교환) 방식은 구매자의 반품 행위를 100% 신뢰함과 동시에 반품 사유에 대해서도 묻지 않는 방식이고, 선반품 후배송 방식은 반품 사유에 대해 비교적 꼼꼼히 파악하려는 의도가 담긴 방식이다. 브랜드 관리에 관심이 컸던 이창우 당시 대표는 이와 관련해 고객 만족을 위해 맞교환 방식을 택해야 한다는 의견이었고, 고객 서비스와 물류 등 운영 관리를 맡고 있었던 이문재 이사는 반품 사유를 파악하기 위해서라도 선반품 후배송 방식을 택해야 한다는 의견이었다. 그러나 특별히 반대할 이유, 예를 들어 소요되는 비용이나 인력이 과다하지 않는 한 개인의 의견은 존중되는 것이 원칙이었다.
“회사가 성장하면서 성장 방식에 대해 동업자들의 의견이 갈릴 수 있는데, 저를 포함해서 다섯 명의 최고경영진은 각자 옳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 치열하게 토론했어요. 2 대 2가 되면 제가 균형을 잡아가며 설득을 했죠. 그러다가 4 대 1 구조가 되면 남은 한 명을 집중적으로 설득하는 과정을 거치곤 했어요.”
– 이창우 텐바이텐 전 대표
이러한 의견 충돌은 여기저기서 나타났다. 운영 관리, 마케팅, 시스템, 회계, 총괄을 각각 맡고 있던 네 명의 이사와 이창우 당시 대표는 각자가 맡은 분야의 관점에서 최선의 전략을 짜기 위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매출 증대 촉진을 위한 고객 확대 방안 마련 시 최은희 이사가 초창기 매출의 주류를 이루었던 패션 용품에서 리빙 용품으로 제품 카테고리를 확장하는 작업을 추진하면, 그에 따라 운영 관리 작업으로 선반 설치 변경, 창고 부품 구매, 재고관리를 위한 투자 등 이문재 이사의 업무가 급증했다. 또 회계를 책임지고 있던 백우현 이사의 업무에도 영향을 주었다. 최고경영진이 아닌 실무자들이 처리해도 좋을 정보를 다섯 창업자가 모두 공유하기 위해 장시간 회의를 거듭해야 했고, 부서 간의 이해가 충돌할 때마다 이들은 전원 합의에 이를 때까지 밤새도록 회의를 계속했다.
“사업이 자리를 잡고 1~2년이 지나자 이제 친구들도 인터넷 쇼핑몰 사업에 대해 각자의 노하우가 생기기 시작했어요. 지식의 균등화가 이뤄진 거죠. 이제는 이창우가 일일이 손대지 않아도 각자가 맡은 일을 알아서 하게 되었어요. 그런데 사업 규모가 빠르게 커지다 보니 성장의 경로가 여러 가지로 나타나게 되었어요. 어떤 일에 중점을 두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여러 방법이 제시되기 시작한 거죠.”
– 최은희 텐바이텐 현 대표
최고경영진이 각자 자신의 자리에서 각 부서를 이끌게 되자 직원들의 성과 평가에 대한 방식도 바뀌게 되었다. 창업 초기 몇 년 동안은 사원 수가 많지 않았기 때문에 직원 개개인의 성과 평가 방식도 다섯 동업자의 합의에 의해 결정되었다. 그러나 사원 수가 급증하고 각 동업자가 직접 평가하는 부서원 수가 많아지게 되면서 합의에 소요되는 시간은 점점 길어졌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에서도 이들이 꼭 지킨 원칙이 있는데, 그것은 ‘각자 독립적으로 일하고 일한 만큼 가져간다’는 것이었다. 여기에는 ‘모든 동업자가 균등하게 일한다’는 것이 전제되었으므로 결국 동일한 급여를 가져가는 데 아무도 이의 제기를 하지 않았다.
2003년부터 텐바이텐이 급속히 성장하면서 후발 주자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텐바이텐이 디자인 소품 분야에서 선두를 달리자 그와 유사한 전문쇼핑몰들이 등장한 것이다. 주된 경쟁자는 1300K, 바보사랑이 있었고, 그 뒤를 펀샵이 따르고 있었다(Exhibit 6).
이들 경쟁사 대비 텐바이텐의 차별점은 아이띵소(ithinkso)3)와 유아러걸(youareagirl)4) 등 PB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 브랜드들은 신사업 개발에 관심이 많았던 이창우 전 대표에 의해 2004년부터 개발되었는데, 이창우 대표는 직접 콘텐츠개발팀을 적극적으로 챙겼고, 2005년에는 제품개발팀을 신설해 관리를 강화했다(Exhibit 7, Exhibit 8). 제품개발팀에서는 지속적인 제품 발굴과 더불어 새로운 사업을 개발하는 업무를 담당했는데, 적극적으로 업무를 추진할수록 기업이 부담해야 하는 비용이 증가했다. 기업이 지속적으로 성장하기 위해 신사업 개발에 소홀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그 비용이 기존 사업의 성장 또는 유지를 저해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었다.
특히 2005년 즈음에 추진했던 몇몇 새로운 제품 개발이 실패로 돌아가자 최고경영진은 또 다시 신사업 개발에 소요되는 비용이 얼마 정도면 적절한가에 대해 밤을 새워 가며 논의해야 했다. 이때 최고경영진이 내린 결론은 일단 신사업 개발은 장기적으로 별도로 분리하여 이창우 당시 대표가 관리하기로 한다는 것이었다. 이 결론에 따라 텐바이텐은 2008년에 신규사업팀을 별도로 분리하게 된다(Exhibit 9). 그리고 기존의 아이띵소 브랜드는 오프라인팀에서 관리하게 된다.
사업이 성장함에 따라 제기된 또 하나의 문제는 최은희 당시 이사에게 주어진 과중한 업무에 관한 것이었다. 마케팅을 총괄했던 최은희 이사는 온라인과 오프라인 사업을 결합한 온오프사업팀을 이끌고 있었다(텐바이텐의 인적 구성과 조직에 대한 자세한 상황은 부록의 Appendix 7 참조). 그런데 온라인 사업과 오프라인 사업은 업무 주기가 상이하다. 온라인 주문은 주로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발생하는 반면 오프라인 주문은 주로 금요일부터 일요일 사이에 발생하는 것이다. 즉, 두 사업을 총괄했던 최은희 이사는 일주일 내내 격무에 시달려야 했다. 업무량이 증가할수록 이 문제는 최은희 이사를 괴롭혔고, 당시 5세 아이를 키우고 있던 최은희 이사는 체력의 한계를 느끼고 오프라인 사업을 분리해 경영관리팀을 이끌고 있던 백우현 이사와 업무를 분담하기로 한다. 이에 2008년 조직구조개편 시에 온라인팀과 오프라인팀을 분리하게 되었다(Exhibit 9). 이 과정에서 최은희 이사는 재충전의 시간을 갖기 위해 2007~2008년에 국내에서 MBA 과정을 밟는다.
2008년, 변화의 필요성과 이문재 대표 체제의 탄생
인터넷 쇼핑몰 산업 규모는 2006년에는 13조 5천억 원, 2007년에는 15조 7천억 원, 2008년에는 18조 1천억 원으로 성장했고, 2000년부터 2009년 3분기까지 평균 20% 이상의 성장률을 보였다(통계청). 인터넷 쇼핑몰 산업의 특성인 낮은 진입장벽은 많은 창업 기업이 쉽게 진입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했지만 격심한 경쟁을 거치면서 많은 기업들이 철수할 수 밖에 없게 만들기도 했다. 2002년에 옥션이 오픈마켓 형태로 인터넷 쇼핑몰 시장에 등장했고, 2003년에는 지마켓이 모회사로부터 독립해 인터넷 쇼핑몰 서비스를 시작했으며, 2004년에는 이마트가, 2005년에는 LG e-store가, 2008년에는 SK 계열사인 11번가가 서비스를 시작하는 등 현재 인터넷 쇼핑몰 산업을 이끌어가고 있는 많은 기업들이 그 당시 차례로 시장에 등장했다. 특히 이 기업들은 인터넷 쇼핑몰 사업 성공의 핵심 경쟁력인 소비자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사업 개시 당시 획기적인 마케팅 캠페인을 벌였다. 또한 2006년에는 디엔샵이 다음온켓을 인수했는데, 이는 사업을 성장시키기 위해 기업 간에 인수합병을 한 경우에 해당한다(Exhibit 10).
이러한 혼돈 속에서는 산업의 선두 자리가 쉽게 바뀌기 마련이다. 예를 들어, 인터넷 서점 강자였던 인터넷 교보문고는 후발 주자였던 YES24에게 1위 자리를 내주었다.
이러한 치열한 산업 경쟁 환경에서도 2008년까지 텐바이텐의 매출과 순이익은 꾸준히 증가했다(Appendix 1, Appendix 4). 기업의 영업활동에 투입된 자본에 대한 이익률을 보여주는 투하자본이익률 (Return On Invested Capital, ROIC)도 다소 부침은 있었지만 2002년에 25.138%에서 2008년에 33.172%로 상승세를 보였다(Appendix 3, Appendix 6). 단, 유동부채와 투하자본이 꾸준히 증가하는 것은 텐바이텐의 재무구조가 가진 구조적인 약점이었다(Appendix 2, Appendix 5). 텐바이텐은 외부 투자를 받지 못한 상태였기에 모든 경비와 투자는 부채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회사는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었지만 사실 내부적으로는 성장에 필요한 자금을 부채로 조달하고, 다달이 매출액으로 그 부채를 상환하는 것이 부담스러웠어요. 안정적인 투자자를 찾지 못한 것 때문에 답답한 경우가 많았죠. 특히 신규 사업에 대한 지원이 필요한 시점에서는 기존 사업을 위한 자금을 얼마나 줄여야 하는가에 대해 고민이 많았습니다.”
– 이문재 텐바이텐 전 대표
신규 사업과 기존 사업에 대한 회사의 지원이 어느 정도 선에서 균형을 이뤄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는 2008년 신규사업팀이 독립한 이후에도 계속되었다. 텐바이텐의 온라인팀을 이끌고 있었던 최은희 당시 이사는 회사의 주된 수익을 실현하고 있는 기존 직원에 대한 보상이 적절히 이뤄지지 않아서 인재 이탈이 일어나고 있다고 우려했다. 그런가 하면 경영관리팀을 이끌고 있었던 백우현 이사는 오프라인팀에서의 적자 보전을 위해 카페 등 수익성이 높은 사업을 중점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Exhibit 11, Exhibit 12).
“온라인 사업에서는 흑자를 내고 있었지만 오프라인 사업에서는 사업이 자리를 잡지 못하고 계속 적자를 내고 있었어요. 게다가 신규 사업에서는 더 큰 적자가 발생하고 있었어요. 사실 어느 회사든 캐시카우(cash cow)나 스타 사업 등 기존 사업집단과 신규 사업집단으로 구성되는 포트폴리오를 갖게 마련이지만 텐바이텐에서는 각 사업부를 책임지는 이사들이 모두 독자적인 권한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각각의 사안에 대해 투자 비중을 조정해야 했죠. 특히 신규 사업에 대해서 이창우 당시 대표는 ‘나를 믿어달라’고 하고, 나머지 이사들은 ‘믿고 싶지만 각자 책임지고 있는 사업부들을 고려해달라’는 식의 논의를 이어가고 있었어요. 이것은 단순한 갈등이나 다툼과는 다른 차원의 문제였죠.”
– 최은희 텐바이텐 현 대표
2009년에 들어서면서 텐바이텐은 완전히 사업부제로 전환하게 된다(Exhibit 13). 팀제에서 사업부제로 바뀌면서 온라인사업부와 오프라인사업부가 완전히 분리되고, 오프라인사업부는 백우현 이사 관할로 정착되었다. 그리고 운영관리사업부는 이문재 이사가, 신규사업부는 이창우 당시 대표가 맡았다.
서동석 이사만 부서 대신 기존의 시스템팀을 전담했지만 의사결정권만큼은 동등하게 주어졌다. 사업부제로 전환한 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어느 날, 이창우 당시 대표는 회의를 소집해 친구들에게 당시 경영 체제에 대한 본인의 의견을 말한다.
“어느 날 이창우 당시 대표가 말했어요. ‘내가 계속 대표를 맡는 것이 어려울 것 같다. 장시간의 회의가 끝없이 이어지고 친구들을 설득해야 하는 것이 힘들다. 공동 의사결정이기는 하지만 내가 주로 설득을 해야 하는 상황에 대해 나 스스로 동기부여를 하는 게 어렵다’라고 했어요. 사실 우리가 대표를 선출했을 때도 어느 누가 대표를 맡든 상관없는 일이었기에 본인이 힘들다고 하면 대표를 교체하는 것이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어야 했어요. 사실 우리 모두가 지쳐있던 시기였기 때문에 이창우의 고민을 모두 이해했죠.”
– 최은희 텐바이텐 현 대표
창업 당시에는 이창우를 제외하고는 업무의 전문성이 확실하지 않았지만 2009년 즈음에는 상황이 달랐다. 이들의 의견이 대체로 일치했던 것은 프로핏 센터5)의 부서장이 대표가 되면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부서 간 이해가 충돌할 경우 또다시 장시간의 회의를 반복해야 하므로 일단 대표는 코스트 센터6)의 부서장이 맡는 것이 좋겠다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직원들의 성과 평가를 하는 데 있어서 직원이 20여 명이었던 창업 초기에는 최고경영진이 직접 평가를 하는 것이 가능했다. 그러나 정규직 직원이 95명에 달했던 2010년의 상황에서는 그들의 성과 평가를 하는 데 있어 아무래도 부서장의 평가가 가장 존중되어야 할 필요가 대두되었다. 또한 성과급을 어떻게 지급할지 결정하기 위해 핵심성과지표(Key Performance Index, KPI)를 적용해야 하는데, 영업부서 같은 프로핏 센터에서는 개인의 성과를 1급부터 10급까지 폭넓게 평가할 수 있는 반면, 지원부서 같은 코스트 센터에서는 4급부터 6급까지 제한된 범위에서 평가하는 등 부서에 따라 그 평가 방식도 다르게 적용해야 했다. 즉, 각 부서의 특성에 따라 부서장의 역할이 상이하고, 특히 온라인 사업부와 오프라인사업부, 신규사업부의 부서장들은 단지 개인의 이익이 아니라 부서원의 이익을 대표해야 하는 상황이 더 자주 발생하게 된다는 점이 부각되었다.
새로운 대표이사를 정하는 과정에서 대표직을 사임한 이창우 대표, 프로핏 센터인 온라인사업부의 최은희 이사와 오프라인사업부의 백우현 이사는 대표이사 후보에서 제외되었다. 그런데 시스템팀을 맡고 있는 서동석 이사는 대표직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남은 한 사람은 운영관리사업부를 맡고 있던 이문재 이사밖에 없었다. 이렇게 자연스럽게 이문재 대표이사 체제가 탄생하였다(Exhibit 14).
매출 성장 감소와 신규 사업의 독립
이문재 대표가 취임할 즈음 텐바이텐의 매출은 2009년 322억 원에서 2010년 500억 원으로 껑충 뛰었다. 그러나 내부적으로 신규 사업을 추진할 현금은 계속 부족했고 매출 성장이 꺾이고 있다는 전조가 감지되고 있었다(Exhibit 15, 자세한 자료는 Appendix 5 참조). 이때 이문재 대표는 지금까지의 원칙, 즉 동업자 각자의 의견을 최대한 존중하고 큰 이견이 없는 한 각자 하고 싶은 일을 하게 한다는 원칙과는 다소 거리가 먼 결정을 내린다. 신규 사업에 대한 투자를 사실상 중단하기로 한 것이다.
“이창우 이사는 유아러걸이라는 신규 사업을 계속 추진하기를 원했는데, 여기에 많은 비용이 들어갔어요. 사실 대표이사에서 이사로 전환되면서 개인적으로는 마음의 부담을 덜고 여기에 매진하게 되어서 잘된 일이었지만 회사 전반에 걸쳐서 현금이 지속적으로 부족한 상황은 개선되지 않았죠. 하지만 우리가 유아러걸을 계속 지원했던 것은 ‘각자 독립적으로 일하고, 일한 만큼 가져간다’는 초창기의 암묵적인 합의 때문이었죠. 그러나 이러한 현금 부족 상태는 2011년 정점에 달했어요. 뭔가 결정을 내려야 했죠. 이창우 이사 개인은 서운했을 수 있지만 회사를 위해 결과적으로 좋은 결정이었다고 믿고 싶었어요.”
– 최은희 텐바이텐 현 대표
이제 유아러걸 사업에는 텐바이텐의 자금이 더 이상 유입되지 않게 되었다. 따라서 유아러걸을 관할하고 있었던 이창우 이사는 새로운 자금원을 찾아야 했다. 새로운 자금원을 찾지 못할 경우 유아러걸 사업은 더 이상 지속되기 힘든 상황이었다.
이때 도움의 손길을 내밀며 등장한 기업이 대규모 유통기업인 A 사였다. A 사는 편의점과 슈퍼마켓, 리테일, 홈쇼핑 등 다양한 유통채널을 보유하고 있었으나 인터넷 전문쇼핑몰 분야에는 진출하지 않고 있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이 분야의 선두 기업인 텐바이텐에 관심을 갖고 있던 차였다. 그런 가운데 A사는 이창우 전 대표에게 유아러걸 사업에 49%의 지분을 투자하겠다는 제의를 했다. 거의 100억 원에 달하는 금액이었다. 이 자금을 통해 유아러걸은 사업을 확장할 수 있었고, 이창우 전 대표는 텐바이텐의 지분은 유지하되 에이플러스비라는 이름의 사업을 운영하기 위해 텐바이텐으로부터 독립하게 된다. 이 기업이 새롭게 개발한 브랜드가 바로 29cm(이십구센티미터)이다(Exhibit 16).
2011년, 텐바이텐의 선택
비록 이창우 전 대표가 더 이상 텐바이텐 조직에 속하지 않게 되었지만 그는 여전히 20퍼센트의 지분을 가진 동업자 신분을 유지했다. A 사는 에이플러스비와 관계를 유지하면서 텐바이텐에 대해 더 많은 정보를 수집했다. 텐바이텐 또한 A 사와 에이플러스비의 관계를 지켜보면서 대기업이 지분을 투자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상황에 대해 간접 경험을 쌓을 수 있었다. 그 결과 A 사와 텐바이텐 모두 지분 투자에 대한 불확실성을 감소시키는 유익한 경험을 하게 된다.
“텐바이텐은 우리가 원했던 스펙을 많이 가지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진출하고 싶었던 분야의 선두 기업이었고, 규모가 그다지 크지 않아서 투자하기에 부담이 크지도 않았습니다. 물론 창업자들의 지분을 정리하는 데 있어서 회사 자금이 들어가기 때문에 협상은 필수적이었지만 회사도 이들에게 호의적이었습니다. 우리는 다섯 창업자의 10년간의 노력에 대해 정당한 보상을 해주고 사업을 인수하고 싶었습니다. 물론 인수 후에도 창업자들이 계속 경영을 맡아주기를 원했고요.”
– A 사 신규 사업 투자 실무자, 이후 텐바이텐 파견 CFO
“A 사가 제의한 투자 방식은 텐바이텐이 창업 초기부터 추구해온 방식이었습니다. 우리는 계속 외부 투자를 유치하기를 원해왔고 매번 부채를 상환하기 위해 고생하던 패턴에서 벗어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창업 당시부터 유지해오던 동등한 지분 구조, 동등한 성과 배분, 그리고 동등한 의사결정권이라는 원칙에서 벗어나는 것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 것인지에 대해서는 신중하게 결정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물론 창업 초기와 그 이후의 성장기, 그리고 현재의 상황이 너무 다르기 때문에 무조건 변화를 수용하지 않는 것은 좋은 결정이 아니라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었습니다. 지분 구조가 바뀐다고 해서 동창들의 친분 관계가 깨지는 것도 아니었고요.”
– 이문재 텐바이텐 전 대표
에이플러스비를 사이에 둔 두 기업의 약 1년간의 ‘약혼’ 기간이 지난 후 A 사는 텐바이텐의 지분을 인수하고 싶다는 제안을 했다. 그러나 조건이 있었다. 우선 A 사가 원래 원했던 것은 전문쇼핑몰 사업이었으므로 현재 텐바이텐이 보유하고 있는 오프라인사업부인 아이띵소는 정리할 것을 요구했다. 이 사업부는 백우현 이사가 담당하고 있었다. 두 번째, 텐바이텐을 A 사 그룹에 편입시키기 위해 본사에서 파견한 CFO가 텐바이텐에 부임하는 조건이었다. 현재 텐바이텐의 CFO는 경영지원부를 맡고 있는 백우현 이사였다. 세 번째, 에이플러스비로 독립한 이창우 전 대표가 텐바이텐의 지분을 계속 보유하면서 텐바이텐과의 관계를 유지하기를 원했다.
이러한 제안를 접한 이문재 당시 대표와 백우현, 서동석, 최은희, 이창우 이사는 지난 10년간 그들이 걸어온 길을 떠올렸다. ‘온라인 사업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겁 없이 뛰어들었던 것은 잘한 결정이었을까?’, ‘친구들과의 우정만을 믿고 공동 의사결정이라는 유토피아적 지배 구조를 유지했던 것은 과연 잘한 결정이었을까?’, ’경쟁 기업에 비해 좋은 성과를 거두었지만 과연 텐바이텐의 강점을 최대한 끌어내 최선의 결과를 거둔 것일까?’, 그리고 이제 A 사의 제의를 받아들여 지분을 정리하고 경영자로만 남게 되는 것이 최선의 선택일까?’ 하는 질문들을 스스로에게 던졌다.
Exhibit 1. 인터넷 쇼핑몰 산업의 분류
출처: 박성희 외(2010) 내용 재구성
Exhibit 2. 초기 텐바이텐의 수평적 지배 구조(2001~2003년)
Exhibit 3. 통신서비스업체들의 멤버십 서비스
출처: 아이뉴스24, 2004. 8. 3. “IT 브랜드 특집”
Exhibit 4. 텐바이텐의 2002~2006년 매출과 이익
(단위: 천 원)
출처: 텐바이텐 내부 자료. 사례 목적상 수치는 조정되었음
Exhibit 5. 커플 편지컵
Exhibit 6. 텐바이텐의 경쟁사들
출처: 텐바이텐 내부 자료
Exhibit 7. 텐바이텐의 조직도(2004년)
Exhibit 8. 텐바이텐의 조직도(2005년)
Exhibit 9. 텐바이텐의 조직도(2008년)
Exhibit 10. 인터넷 쇼핑몰 산업의 연혁(2002~2008년)
Exhibit 11. 카페 1010 사진
출처: 네이버 블로그 https://blog.naver.com/k2dong2/90075762376
Exhibit 12. Bar 취화선 사진
사진 출처: 네이버 블로그 https://blog.naver.com/minluvsme/70078872042
Exhibit 13. 텐바이텐의 조직도(2009년)
Exhibit 14. 텐바이텐의 조직도(2010년)
Exhibit 15. 텐바이텐 매출액과 당기순이익 추세(2009~2011년)
(단위: 천 원)
출처: 사내 자료. 사례 목적상 수치는 조정되었음
Exhibit 16. 텐바이텐의 조직도(2011년)
<표 첨부 1> 텐바이텐의 요약 손익계산서 2002-2006
연도 | 2002 | 2003 | 2004 | 2005 | 2006 |
매출액 | 629,000 | 2,269,000 | 4,437,000 | 8,903,000 | 14,435,000 |
매출원가 | 355,000 | 1,463,000 | 3,082,000 | 6,519,000 | 10,693,000 |
매출총이익 | 274,000 | 806,000 | 1,355,000 | 2,384,000 | 3,742,000 |
판관비 | 253,000 | 734,700 | 1,280,000 | 2,163,000 | 3,528,600 |
영업이익 | 21,000 | 71,300 | 75,000 | 221,000 | 213,400 |
영업외수익 | 4,000 | 6,000 | 100 | 61,500 | 22,000 |
영업외비용 | 2,000 | 200 | 15,000 | 38,400 | 47,200 |
경상이익 | 23,000 | 77,100 | 60,900 | 244,100 | 188,200 |
특별이익 | 0 | 0 | 0 | 0 | 0 |
특별손실 | 0 | 0 | 0 | 0 | 0 |
EBTI | 23,000 | 77,100 | 60,900 | 244,100 | 188,200 |
법인세 | 0 | 10,500 | 11 | 54,000 | 44,900 |
당기순이익 | 23,000 | 66,600 | 60,889 | 190,100 | 143,300 |
(단위 천원)
<표 첨부 2> 텐바이텐의 요약 재무상태표 2002-2006
연도 | 2002 | 2003 | 2004 | 2005 | 2006 |
유동자산 | 152,500 | 441,500 | 1,000,000 | 2,102,000 | 2,788,000 |
비유동자산 | 99,500 | 143,000 | 268,000 | 304,600 | 1,015,000 |
자산계 | 252,000 | 584,500 | 1,268,000 | 2,406,600 | 3,803,000 |
유동부채 | 160,500 | 426,500 | 1,049,500 | 1,891,000 | 3,146,000 |
투하자본 | 91,500 | 158,000 | 218,900 | 515,600 | 657,000 |
부채자본계 | 252,000 | 584,500 | 1,268,400 | 2,406,600 | 3,803,000 |
(단위 천원)
<표 첨부 3> 텐바이텐의 ROIC(투하자본이익률 = 매출액이익률 x 자본회전률) 2002-2006
연도 | 2002 | 2003 | 2004 | 2005 | 2006 |
매출액이익률 | 3.656598 | 2.9352138 | 1.3723011 | 2.1352353 | 0.99272601 |
자본회전률 | 6.874317 | 14.360759 | 20.269529 | 17.267261 | 21.9710807 |
투하자본이익률 | 25.13661 | 42.151899 | 27.815898 | 36.869666 | 21.8112633 |
<표 첨부 4> 텐바이텐의 요약 손익계산서 2007-2011
연도 | 2007 | 2008 | 2009 | 2010 | 2011 |
매출액 | 17,561,000 | 23,048,700 | 32,187,100 | 50,006,500 | 62,792,600 |
매출원가 | 13,126,000 | 17,287,100 | 24,479,700 | 38,879,300 | 48,896,300 |
매출총이익 | 4,435,000 | 5,761,600 | 7,707,400 | 11,127,200 | 13,896,300 |
판관비 | 4,293,000 | 5,101,300 | 6,973,000 | 10,019,300 | 13,639,705 |
영업이익 | 142,000 | 660,300 | 734,400 | 1,107,900 | 256,595 |
영업외수익 | 147,300 | 61,600 | 91,800 | 324,200 | 99,600 |
영업외비용 | 67,500 | 127,700 | 133,000 | 101,600 | 373,000 |
경상이익 | 221,800 | 594,200 | 693,200 | 1,330,500 | -16,805 |
특별이익 | 0 | 0 | 0 | 0 | |
특별손실 | 0 | 0 | 0 | 0 | |
EBTI | 221,800 | 594,200 | 693,200 | 1,330,500 | -16,805 |
법인세 | 27,260 | 171,500 | 147,300 | 277,300 | |
당기순이익 | 194,540 | 422,700 | 545,900 | 1,053,200 | -16,805 |
(단위 천원)
<표 첨부 5> 텐바이텐의 요약 재무상태표 2007-2011
연도 | 2007 | 2008 | 2009 | 2010 | 2011 |
유동자산 | 2,403,000 | 3,697,000 | 5,843,300 | 6,781,700 | 8,384,400 |
비유동자산 | 1,125,000 | 1,160,200 | 1,377,100 | 2,546,800 | 3,739,500 |
자산계 | 3,528,000 | 4,857,200 | 7,220,400 | 9,328,500 | 12,123,900 |
유동부채 | 2,675,000 | 3,582,900 | 5,460,300 | 6,673,000 | 7,552,500 |
투하자본 | 853,000 | 1,274,300 | 1,760,100 | 2,655,500 | 4,571,400 |
부채자본계 | 3,528,000 | 4,857,200 | 7,220,400 | 9,328,500 | 12,123,900 |
(단위 천원)
<표 첨부 6> 텐바이텐의 ROIC(투하자본이익률 = 매출액이익률 x 자본회전률) 2007-2011
연도 | 2007 | 2008 | 2009 | 2010 | 2011 |
매출액이익률 | 1.10779568 | 1.83394291 | 1.69602108 | 2.1061262 | -0.0267627 |
자본회전률 | 20.5873388 | 18.0873421 | 18.287086 | 18.8312935 | 13.7359671 |
투하자본이익률 | 22.8065651 | 33.1711528 | 31.0152832 | 39.6610808 | -0.3676117 |
<표 첨부 7> 텐바이텐의 인적 구성과 조직 2004-2011
연도 | 2004 | 2006 | 2007 | 2008 | 2009 | 2010 | 2011 |
정규직 | 27 | 45 | 47 | 54 | 71 | 95 | 108 |
계약직 | 12 | 54 | 55 | 74 | 97 | 106 | 146 |
인원총계 | 39 | 99 | 102 | 128 | 168 | 201 | 254 |
사업부 | 0 | 0 | 0 | 0 | 4 | 4 | 4 |
팀 | 5 | 6 | 6 | 6 | 4 | 4 | 7 |
파트 | 9 | 10 | 10 | 10 | 10 | 11 | 12 |
오프라인점포 | 1 | 2 | 2 | 3 | 4 | 5 | 7 |
첨부자료(출처: 내부자료, 사례 목적상 수치는 조정되었음)
[주석]
1, 2. 디지털타임스, 2004. 7. 9. “디자이너 소품 전문몰에서 생활몰로 거듭나는 ‘텐바이텐’”
3. 텐바이텐이 론칭한 패브릭 소품을 위주로 일상 속 감성을 잡화, 생활 소품으로 풀어낸 캐주얼 브랜드
4. 텐바이텐 감성 패션 쇼핑몰
5. 프로핏 센터(profit center): 직접적으로 이익을 담당하는 부서
6. 코스트 센터(cost center): 이익을 위해 후방에서 간접적으로 관리하는 부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