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달장애인 텃밭 프로젝트에서 매출 80배 성장 기업이 되기까지 – 동구밭

동구밭은 노순호 대표가 대학 동아리에서 시작한 프로젝트를 발전시켜 2015년 창업한 소셜벤처로, 초기 사업은 발달장애인 텃밭 가꾸기 교육프로그램이었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그 수가 늘어나는 장애 부문인 발달장애인의 자립을 도모한다는 특성과 실제적인 성과에 힘입어 빠르게 성장했다. 이후 400명이 넘는 발달장애인들이 스무 군데의 텃밭을 가꾸는 서비스가 되었다. 이런 과정에서 2015년 말에는 카이스트청년창업투자지주, 2016년에는 소풍의 씨드 투자를 받았다. 수많은 언론 인터뷰를 통해 소개됐고, 여러 지원 프로그램에서 좋은 성적을 기록하면서 성장에 대한 기대도 커졌다.

하지만 동구밭은 곧 발달장애인의 고용 연계를 위한 교육훈련 서비스의 한계를 마주한다. 사회성발달 수준이 높고 자립훈련이 잘된 발달장애인들에게 적합한 좋은 일자리가 많지 않았다. 그래서 원하는 목표 달성에 실패했고, 지속가능한 수익도 창출되지 않았다. 2016년, 이렇게 사회적 미션과 경제적 지속가능성의 한계에 부딪혀 초기에 뜻을 모았던 다수의 구성원들이 대부분 떠나게 된다. 자칫 잘못하면 사업이 좌초될 수 있는 이 위기를 들여다보면 사회적 미션과 경제적 지속가능성 사이의 갈등이 잘 드러나 있다.

동구밭은 이때 이 두 가치 중 하나를 포기하지 않고 오히려 발달장애인 고용에서 수반되는 어려움을 최소화하는 반면 이 사회적 가치 창출의 과정과 결과를 기업 경쟁력으로 만들 수 있는 방안으로 모색한다. 특히 이런 관점은 경제적 지속가능성 확보를 위해 사업모델을 피벗하는 의사결정에서 두드러진다. 당시 경합하던 두 개의 안 중에 초기 사업모델과 유사성이 높고 성장 기대치가 높은 스마트 농업보다, 당시에도 흔했던 장애인의 고용을 통한 천연수제비누 제조업을 선택한 일이 그것이다.

초기에 동구밭은 일반적인 장애인고용 사업장이 추진하는 사업방식과 다른 선택을 한다. 장애인고용을 통해 천연수제비누를 제조하는 조직들은 대부분 자체 브랜드를 만들고 상품을 판매하는 방식으로 수익을 창출하는데, 동구밭은 초기부터 다른 브랜드들의 천연수제비누를 위탁받아 제조하는 위탁제조를 핵심 사업으로 채택한다. 이는 안전한 고용이라는 미션을 추구하는 데 유리하고, 당시 시장 상황에서 영세 업체들 가운데 다소간의 생산비용 우위를 바탕으로 꾸준히 성장하기 위해 적합한 전략이었다.

이후 시장이 친환경과 웰빙이라는 흐름를 맞이한다. 동구밭 또한 안정된 생산능력을 갖추게 되고 장애 사원들의 숙련도가 올라가며 위탁제조뿐만 아니라 점차 자체 브랜드를 확장하는 데 성공하게 된다. 특히 천연비누 시장에서 제조품의 리딩포지션을 가지게 되면서 이 전략은 기업의 경쟁력과 수익률을 증대시키는 데 적절하게 기여했다.

본 사례는 동구밭이 고용형 소셜벤처가 자주 겪는 사회적 가치와 경제적 지속가능성 사이에서의 갈등관계를 어떻게 극복하고 성장해왔는지를 담고 있다. 동구밭의 사례 전까지만 해도 발달장애인의 고용을 통한 천연수제비누 제조는 매우 보편적인 모델이었으나 해당 모델로 사업을 성장시키는 건 불가능하다는 것이 통념이었다. 본 사례를 통해 학습자들이 어떻게 사회적 가치를 기반으로 경쟁력을 창출하는 전략을 추진할 수 있는지, 해당 관점으로 접근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학습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Q1. 동구밭은 초기에 발달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협업하여 텃밭을 가꾸는 서비스로 시작하지만 곧 수익성의 한계에 부딪히고 천연수제비누 제조를 새로운 비즈니스로 결정하여 추진한다. 동구밭이 추진하려 했던 또다른 비즈니스는 아쿠아포닉 스마트 농업이었다. 노순호 대표는 어떤 근거를 바탕으로 아쿠아포닉 스마트 농업이 아닌 천연수제비누 제조를 최종적으로 선택하게 되었을까? 나아가 이 영역에서 발달장애인 고용이 제약이 아니라 오히려 경쟁력이 될 수 있도록 설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Q2. 동구밭은 외부 브랜드의 천연비누제조를 위탁받아 생산하는 사업으로 성장하다가 어느 정도 규모에 이르렀을 때 일부 고객과의 갈등에도 불구하고 자체 브랜드 사업의 비중을 높이는 결정을 했다. 기존 사업 방식과 다른 방향으로의 성장을 천명한 것이기 때문에 새롭게 갖추어야 하는 역량도 있고 이에 따른 위험도 더 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자체 브랜드 사업 위주로 성장하겠다는 전략이 좋은 결정이었을까?

Q3. 동구밭은 초기에 월매출 400만 원당 1명의 발달장애인을 고용하겠다는 정책을 펼쳤다. 하지만 기업의 성장이 가속화되고 사업의 범주가 확장되면서 결국 해당 방침을 포기하고 전체 고용인원의 절반 이상을 발달장애인으로 구성하겠다는 새로운 제도를 수립한다. 동구밭의 강력한 소셜미션에도 불구하고 이런 변화가 왜 나타나게 되었으며, 이후에 유사하게 부딪칠 지점에서 주요하게 고민할 요소는 무엇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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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달장애인 고용 소셜벤처 동구밭은 어떻게 성장했는가

발달장애인 고용은 시작부터 난관

“텃밭에 나오는 장애인 중 농부가 되고 싶어 하는 경우는 없었어요. 저희가 마음대로 만든 틀에 그들을 억지로 끼워맞췄던 거죠.”

대학교 시절, 졸업을 앞둔 노순호 대표는 대학교 생활을 하는 동안 졸업 전에 딱 1년 정도만 뿌듯하고 의미있는 일을 해보자는 생각이었다. 창업을 해보자 라는 도전적인 마음보다는, 내 손으로 할 수 있는 일을 통해 뜻깊은 시절을 보냈다고 추억할 정도의 일을 하고 싶었다.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사회적 기업 동아리 활동을 한 것도 그 일환이었다. 당시 노 대표의 마음을 처음 사로잡았던 건 도시 농업이었다. 시골 출신인 노 대표는 외가나 친가에서 짓는 농사와는 뭔가 달라 보이는, 도시에서 농사짓는 일이 멋있어 보였고, 폼나 보였다. 도시 농업으로 뭔가를 해보고 싶어서 서울의 온갖 도시 농부들을 만나고 다녔다. 2013년의 일이었다.

그런데 주말농장에 나가 텃밭을 가꾸던 노 대표의 눈에 들어온건 성인 발달장애인이었다. 부모의 손에 이끌려 텃밭에 나오지만, 멍하니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어머니는 일을 하는데 하루 종일 멍하니 곁에 있던 그 친구가 눈에 밟혔다. 함게 프로젝트를 진행하던 친구들과 노 대표는 문득, 저 친구랑 같이 농사를 지어보면 어떨까 하고 생각했다. 발달장애인에 대해 조사해보니 성인 발달장애인에게는 일자리가 제일 문제라고 했다. “우리가 저 친구들을 공부시켜서 전업 도시농부로 만들어주면 일자리 문제도 해결되고 저들도 행복해지지 않을까? 그렇게 심각한 사회문제라는 발달장애인 취업, 우리라고 그 문제를 해결하는 혁신가가 되지 말란 법은 없지, 우리가 텃밭으로 이들에게 일자리를 선물할 수 있을 거야.”, 그런 자신감이 노 대표를 이끌었다.

노 대표는 10대후반의 성인 발달장애인들에게 농사를 가르치는 프로젝트를 계획했다. 프로젝트 후원자를 찾아 다니던 중 강동구청장을 만났다. 당시 강동구는 사회적 기업 양성에 나서고 있었다. 100m2 규모의 강동구 상일동 텃밭 제공을 약속받았다. 곧바로 교육 커리큘럼을 만들어 2014년 봄, 6개월간의 ‘동구밭’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발달장애인들과 함께 상추 등 채소를 함께 심고 가꾸며 농사 짓는 법을 가르치기 시작했다(Exhibit 1).

 


결과는 실패였다. 발달장애인은 모종을 밟고 지나가거나, 멍하니 앉아 있다 가거나, 덥다, 아프다 핑계대며 쉬려고만 하기 일쑤였다. 빈둥빈둥 놀거나 하기 싫다며 호미를 내던지기도 했다. 농사에 재능도 없고 관심도 없었다. 이 길이 정말 발달장애인을 위한 길이 맞는 것인지 노 대표는 고심했다. 발달장애인의 부모와의 면담에서 노 대표는 말했다. “이 텃밭이 발달장애인들에겐 가기 싫지만 부모님이 끌고 오니까 나오는 학원 같은 곳인지도 모르겠어요” 그런데 정작 돌아온 대답은 달랐다. “우리 아이는 밭에 가는 걸 너무 즐거워해요.”, “우리 아이는 (밭에 오는) 주말만 기다려요”, “우리 아이는 일주일 내내 일기예보를 봐요. 비 오면 주말에 밭에 못 갈까봐서요.”, “우리 아이는 텃밭 활동이 있는 날은 그 전날부터 준비물을 다 머리맡에 두고 자요.”

이게 뭐지? 싶었던 노 대표의 머릿속엔 몇 가지 생각들이 떠올랐다. 그러고보니, 그렇게 농사는 싫어하면서 발달장애인들은 매주 꼬박꼬박 밭에 왔다. “아. 이 아이들은 농사가 아니라 친구를 만나는 것이 좋은거구나.” 그러고 보니, 농사엔 여전히 관심이 없는 발달장애인들도 옆 자리의 친구에겐 관심을 가졌다. 처음엔 보이지 않는 벽이 쳐져 있었는데, 어느 순간엔가는 “애는 왜 안 와요?” 간단한 질문도 하고 인사도 하고 있었다. “우리는 기술을 가르쳐서 일자리를 만들고 싶었는데, 저 친구들은 우리를 친구라고 생각해서 여기를 그렇게 즐겁게 온 거구나.”

“순호 씨는 우리 아이를 언제까지 기억할 것 같아요? 순호 씨는 나중에 잊을 수도 있지만 우리 아이는 순호 씨 얼굴을 평생 못 잊을 테지요. 평생 딱 한명 사귄 친구가 순호 씨인데 그 친구를 어떻게 잊겠어요.”

노 대표는 그때부터 발달장애인에게 더 초점을 맞춰서 생각하고, 더 공부했다. 발달장애인 3명 중 2명은 친구가 한명도 없고, 이들의 친구 평균 1.3명 중 1명은 같은 발달장애인이었다. 노 대표는 발달장애인에게 친구를 만들어주기로 마음먹었다. ‘발달장애인의 입장에서 필요한 것을 제공하자’라는 생각으로 공부했다. 이때부터 노 대표는 대학생 봉사자 등 또래 비장애인, ‘동구밭지기’를 뽑아서 발달장애인과 1대1로 매칭하여 텃밭에서 자연스럽게 친구가 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데 더 공을 들였다. 텃밭을 책임지는 동구밭지기장 1명과 평균 5명의 발달장애인, 그리고 1대1로 짝궁이 된 동구밭지기(대학생봉사자들)이 한 팀으로 구성되어서, 봄과 가을 분기별로 매주 토요일마다 3시간에 걸쳐 텃밭을 매개로 한 다양한 사회성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딱 1년만 좋은 일 하고 각자 갈길 가자고 모였던 동아리 프로젝트였지만, 강동구 외의 다른 지역, 예를 들어 송파구, 마포구 같은 곳에서 연락이 왔다. 발달장애인 부모들이 우리 지역에도 텃밭이 있고 우리 아이도 친구가 필요하니 와서 텃밭 좀 해달라는 것이었다. 사회적으로도 필요한 일이지만, 분명 어느 정도는 확산의 가능성이 있겠다는 판단이 들었기에 노 대표는 창업을 해야겠단 마음을 먹게 되었다. 지원금이나 후원금으로 운영하는 비영리법인, 협동조합 등의 형태를 추천받았지만, 노 대표는 주식회사로 결론 내렸다. 누군가에게 영향을 받지 않는 효율적인 의사결정을 위한 최선이었다.

2014년엔 사회적기업 육성사업을 받았고, 2015년 1월엔 법인을 설립했다. 창업 첫해부터 쉽지만은 않았다. 수익구조 마련과 사업확장이 우선적인 과제였다. 어떻게 경비를 마련할지 고민하던 노 대표는 첫째로 텃밭 가꾸기 참가자들에게 비용을 받기로 했다. 발달장애인이 참가비용의 절반을 부담하고, 나머지 절반은 지자체·기업·협회 등에서 충당하는 형태로 프로그램을 구성했다. 연간 운영비는 텃밭 1개당 500만 원, 1인당 월 개별 부담금은 약 6만 원 선이었다. 둘째로, 프로그램을 유료로 운영하는 것 외에도 수익성을 제고하기 위한 사업 확장을 시도해보았다. 농부들이 재배한 작물을 인근 레스토랑·식당·카페에 납품하기도 했고, 채소를 이용한 가공 제품으로 소소하게 비누를 만들어보기도 했다.

“선의의 유효기간은 생각보다 짧다.”

당시 동구밭의 가설은 ‘발달장애인에게 비장애인 친구가 생기면 사회적 적응력이 커져 취업 후 근속 연수가 늘어날 거다’라는 것이었다. 가설은 좋았다. 근데 문제는 첫째로 동구밭 자체가 지속가능하지 못했다. 가격을 올려서 수익을 맞추자니 발달장애인의 비용부담이 커지는 구조가 마땅치 않았다. 둘째론 사회성이 올라간다 쳐도 좋은 일자리 자체도 많지 않았다. 사회성을 열심히 잘 올려줘서 어느 직장에 가도 일을 잘할 것 같은 발달장애인도 막상 갈 데가 없었다. 취업을 시키고 근속기간을 늘려야 하는데, 점점 일주일에 하루이틀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만나서 노는 여가활동 같은 것에 그치는 느낌까지 들게 되었다.

2016년 말, 동구밭은 서울 시내에만 십수곳의 텃밭, 경기도까지 합쳐 20여 개의 텃밭, 장애인과 비장애인 각각 100여 명씩이 참가하는 규모로 거듭났다. 하지만 충분한 매출을 낼 수 없었고, 직원들도 소진되어 갔다. 사실상 회사를 한번 정리해야 하는 위기가 찾아왔다. 함께 일하던 구성원들도 다 떠나갔다. 원래대로라면 정리하는 수순을 밟아야 했다. 하지만 노 대표는 접을 수가 없었다. 사업이 안정되면 발달장애인을 직접 고용할 것이라고 이야기해왔지 않은가. 애초에 생각했던, 발달장애인에게 제대로 된 ‘일자리’를 줄 방법은 없을까? 선의의 유효 기간은 짧지만, 조금 더 잘할 수 있지 않았을까? 어떻게 하면 잘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고민들이 노 대표를 ‘다시 한번 해보자’라는 생각으로 이끌었다.

어떤 사업을 하는게 맞을까

“복지관이 어설프게 기업 흉내를 내고, 기업이 어설프게 복지관을 흉내내면 안 된다”

2016년 말 원점으로 돌아가 ‘발달장애인의 고용’을 고민하던 노 대표는 이런 문제의식을 가졌다. 흔히 장애인에게 커피 만드는 걸 가르치면 카페들이 고용하겠지 라는 접근이 많이 이루어졌지만, 그냥 둬선 사회가 장애인을 충분히 고용하지 않는다. 복지관들이 기업처럼 나서서 발달장애인들이 오랫동안 일할 수 있는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 정부 예산을 타와서 카페를 열었지만, 예산이 끊기면 바로 문을 닫고 발달장애인은 광야에 내쳐진다. 그렇다고 기업이 복지관처럼 “우리를 찾아오는 발달장애인이라면 모두 뽑아주고 일자리를 줘야 한다” 라는 식으로 접근해서 막상 뽑아놓고 제대로 임금을 줄 수 있을 만큼의 돈도 벌지 못하면 그것도 무책임하다.

한명이라도 제대로 고용해서, 발달장애인을 고용하는 회사도 ‘기업’으로서 지속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자. 이것이 노 대표의 새로운 목표였다. 그러려면 동구밭이 발달장애인을 직접 고용하면서도, 스스로 지속가능한 사업모델을 만들어내야 했다. 그 해답을 찾는 동구밭의 여정은 2015년 말 카이스트청년창업투자지주, 2016년에 에스오피오오엔지(sopoong)1)의 씨드 투자를 유치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한 발짝을 나아갔다.

당시 동구밭에 투자한 에스오피오오엔지의 한상엽 대표는 동구밭에 투자를 결정할 때 지속가능성 이슈를 인지하고 있었다. 발달장애인이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순간 국가로부터 받는 지원이 끊긴다는 것은 엄청난 사회문제이고, 발달장애인을 텃밭에 모아 교육한다는 취지는 좋다. 그러나 텃밭 교육 프로그램을 중심으로 한 비즈니스는 수익모델이 약하고, 사회적 임팩트 역시 지속가능하지 못하다는게 한 대표의 견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대표는 정부가 해야 할 발달장애인 교육비 부담이 발달장애인 부모에게 전가되고 있는 상황에서 동구밭이 그 당시로서는 최선의 대안이라고 생각하였기에, 지속가능성에 문제가 있다 할지라도 임팩트 투자사로서 투자를 결정하였다.

그렇지만 약한 수익모델과 낮은 지속가능성은 분명히 개선해야할 과제였다. 이는 투자사인 에스오피오오엔지 입장에서도, 동구밭 입장에서도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과제였다. 텃밭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텃밭 갯수를 늘리는 것만으로는 확장에 한계가 있었다. 상황을 타개하기 위하여 에스오피오오엔지와 동구밭 양쪽이 생각했던 사업 아이템은 각각 천연수제비누와 아쿠아포닉 스마트 농업이었다(Exhibit 2).


천연비누사업은 한마디로 기존에 운영하던 텃밭에서 재배한 케일, 상추 등의 농작물을 가공해서 천연수제비누를 만드는 사업이다. 원래도 사실 그냥 비누를 만드는 사회적 기업들은 꽤 있었다. 특히 발달장애인을 고용하는 작업장들에서 쉽게 만들 수 있는 제품이라서 그런데서 나오는 비누가 많았지만, 퀄리티가 낮은 경우가 많았고, 퀄리티가 괜찮다 하더라도 디자인과 브랜드가 잘 된 경우가 별로 없었다. 한편 동구밭은 기존에 외부 생산조직의 도움을 받아 비누를 만들어서 팝업 판매한 경험을 보유하고 있었다. 사업 추진을 위해 필요한 초기 투자 규모와 비용이 작고, 기존에도 비누를 제조하는 사업체들이 많아서 이미 시행착오와 연구가 많이 되어서 이미 검토가 많이 된 영역이었다. 그리고 2015-2016년 당시에는 친환경·웰빙 분위기가 조금씩 분위기를 타고 크기 시작하는 상황이었다. 무엇보다 천연비누는 발달장애인이 수행 가능할 만큼 제조 과정이 크게 복잡하거나 어려운게 아니였다.

당시 천연비누 시장을 조금 더 살펴보면, 천연비누는 뛰어난 세정력 외에도 클렌징, 아토피 치료, 미백, 주름 개선, 피지 제거, 피부 재생 등 다양한 기능과 더불어 기존의 약품이나 시술 등에 대한 대체재라는 점, 그리고 화학약품을 쓰지 않아 인체에 자극이 덜하다는 인식의 확산에 힘입어 성장이 시작되고 있는 시장이었다. 뿐만 아니라 손쉽게 집에서도 DIY 형태로 만들 수 있어 확장이 더욱 빨랐다. 심지어 당시 비누는 제품 산업 분류상 화장품도 아닌 공산품에 속해서, 생산과 판매를 위한 인증 등의 절차나 요건이 크게 까다롭지 않았다.

한편 아쿠아포닉 스마트 농업의 가장 주요한 특징 중 하나는 기술 기반으로 규모화가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아쿠아포닉(Aquaponics)이란 물고기양식(Aquaculture)와 수경재배(Hydroponics)를 융합한 기술로, 쉽게 말해 수조에서 물고기를 키우면서 그 물을 이용해서 수경으로 식물을 재배하는 농업기술이다. 물고기의 배설물과 음식물 찌꺼기는 식물에게 이로운 영양을 함유하고 있다. 동구밭이 원래 최초에는 도시 농업에서 시작했었기도 하거니와, 아쿠아포닉은 적절한 설비와 기술을 통해 수확량을 늘려서 수익성을 제고하기 유리한 사업이었다. 노 대표 생각에는 좀더 스타트업스러운 사업이었다. 발달장애인 고용 관점에서는 장애인의 생산성이 낮은 부분을 기계와 기술이 메이크업함으로써 수익성을 보완할 수 있다는 장점은 있지만 불필요한 노동력이 회사에서 배제될 가능성도 있었다.

우리나라 스마트팜 지원사업은 원예농업이 시설원예농업으로 발전하면서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으며, 당시에는 2014년 이후 본격적으로 ICT를 접목한 농업의 스마트화 사업이 추진되고 있었다. 국내의 스마트팜 시장규모는 지속적으로 성장하여 2017년 4조 4,493억 원, 2022년에는 5조 9,588억 원의 규모를 형성할 것으로 예측되었다. 아쿠아포닉스는 스마트팜 농업기술 중에서도 최첨단 농법중에 하나였고, 우리나라에서도 만나 CEA라는 농업회사법인에서 시작하면서 알려지기 시작했으며 다음카카오의 자회사인 케이벤처그룹에서 100억을 투자해서 더욱 유명해졌다. 그러나 당시 아쿠아포닉 스마트팜 농가 수는 만나 CEA는 구체적인 성공사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매우 적었으며, 만나 CEA의 성공을 본 여러 연구소 기반의 조직들이나 농업 관련 스타트업의 도전이 막 시작될 무렵이었다. 즉, 당시에는 만나 CEA가 가장 큰 규모일 정도로 산업 전반이 초기 단계에 머무르고 있는 상태였다.

고심 끝에 최종적으로 노 대표는 에스오피오오엔지의 적극적인 설득을 받아들였다. 천연수제비누 사업으로 아이템을 결정한 다음 순서는, 천연비누 사업이 실제로 추진해볼 만한지를 검토하는 작업이었다. 에스오피오오엔지와 동구밭은 파일럿 테스트로 천연비누를 팔아보되 300만 원 이상이 팔리면 성공이라 생각하기로 결정했다. 만약 실패하면 노 대표의 뜻대로, 성공하면 에스오피오오엔지의 주장대로 사업을 진행하는 것이 맞겠다는 합의가 진행되었다. 파일럿의 골자는 크라우드펀딩 플랫폼에서 동구밭 텃밭에서 재배한 농작물로 만든 천연수제비누를 올리고 300만 원의 펀딩을 달성하는 것이었다. 펀딩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면, 제대로 된 연구개발을 통해 천연비누 사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해보기로 한 것이다.

발달장애인 고용에 유리한 사업

파일럿 테스트를 통해 동구밭이 천연수제비누 사업에 대해 확인한 핵심 포인트는 두 가지였다. 첫째, 발달장애인을 고용한다는 동구밭의 본연의 목적에 확실하게 유리한 사업이라는 특징을 확인할 수 있었다. 둘째, 기업으로서의 성장 가능성과 이를 통한 지속가능성의 확보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첫째로 천연수제비누 제조는 발달장애인 고용 영역에서도 워킹할 수 있는 사업임이 확실히 입증되어있는 사업 영역이었다. 기존에 장애인을 고용하는 작업장에서 비누를 제조하는 경우가 워낙 많았고, 특히 당시 많은 사회적 기업들이 비누를 제조하고 있었다. 발달장애인은 특성상 의사소통능력과 사회적응능력이 떨어지는 등의 이유로 인해 규칙적으로 출근하여 특정 업무를 수행하도록 훈련하고 유지시키는 것이 쉽지 않다. 그럼에도 기존에 발달장애인 관련 일자리를 제공하는 다양한 작업장, 복지시설, 사회적 기업 등에서 비누 제조를 수행하고 있었다는 것은 다른건 몰라도 천연비누는 발달장애인도 만드는 것이 충분히 가능한 제품이라는 사실을 입증하였다.

구체적으로 예를 들면, 발달장애인은 초기에 아무리 훈련을 잘 시키더라도 고용되어 일을 하는 과정에서는 약간씩의 변수가 생기기 마련이다. 그런데 천연비누는 제조 과정상 전체 생산 기간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원재료를 숙성하는데 걸리는 기간이기 때문에, 약간씩의 변수가 발생한다 하더라도 그것이 전체적인 생산성에 심각한 위기를 만들지 않는다는 점이 유효하였다. 또한 당시 장애인 작업장에서 만드는 제품들 중 비누 외의 다른 제품들, 예를 들어 식품 같은 경우에는 일부 소비자들이 장애인이 제조에 참여하였다는 이유로 불신을 표출하기도 하는 등, 일반 대중의 인식이 꼭 좋지만은 않은 경우들도 종종 있었으나 비누에 대해서는 그러한 인식이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고 있었다.

둘째로 동구밭이 확인한 포인트이자, 천연수제비누가 ‘사업’으로서 매우 적합하였던 포인트는 성장가능성이었다. 당시에 천연수제비누는 사실 장애인 작업장, 사회적 기업 영역을 떠나서 다양한 영세 및 중소규모의 사업체들이 포진해 있는 사업 영역이었고, 친환경·웰빙에 대한 관심이 조금씩 생겨나면서 DIY 제작 등의 사례들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는 곧 동구밭이 천연비누 시장에 대해 학습할 수 있는 풍부한 레퍼런스들이 도처에 널려 있었음을 의미한다. 제조에 어떤 기술이 필요한지 배울 곳도 많았고, 재료들을 어떤 식으로 배합해서 어떻게 만들면 좀더 퀄리티가 좋아지는지, 어떤 향이 보다 보편적으로 부담없이 잘 받아들여지는지, 이런 것들을 학습하기에는 더없이 좋은 환경이었다.

이미 기존 업체가 많다는 것은 포화된 레드오션이라는 인식을 줄 수도 있다. 그러나 너무 큰 자본이 들어와서 경쟁하는 시장보다는, 진입장벽이 매우 낮지만 큰 자본이 들어오기엔 애매한 규모인 상태여서 영세한 업체들이 포진해 있는, 성장하고 있는 시장이라는 점이 오히려 매력적이었다. 일정 수준의 오퍼레이션만 탁월하게 해도 시장 내 경쟁력을 빠르게 확보해서 리딩 컴퍼니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점은 큰 메리트였다. 동구밭은 무엇보다 “우리가 잘만 하면 해당 시장 내에서 1등을 할 수도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여겼다.

이외에도 천연수제비누는 동구밭 입장에서 사업적으로 유리한 지점이 많았다. 예를 들어 기존에 농사에서 시작했기에 농작물을 하루 지나면 다 버려야 하고 했던 경험들이 있었기에, 동구밭은 사업에 원숙하지 못한 초기 기업의 입장에서 가급적이면 유통기한이 긴 아이템을 하고 싶었는데 수제비누는 여기에도 잘 맞아떨어지는 아이템이었다. 한편 자체적으로 텃밭 사업을 지속해왔기 때문에, 원재료를 퀄리티 있게 확보할 수 있다는 장점도 초기에는 유효하게 작용하였다. 또한, 천연비누는 기본적으로 수제비누이기 때문에 다품종 소량생산이 편리하여서 소규모로 생산하여 판매하는 방식으로 리스크를 최소화할 수 있다는 강점도 지니고 있었다.

“제조 품목을 정하기 위한 기준은 네 가지로 정했어요. 첫째, 발달장애인이 쉽게 만들 수 있는 물건이어야 한다. 둘째, 자본이 적게 들어야 한다. 셋째, 잘 안 팔릴 가능성을 대비해 유통기한이 긴 품목이어야 한다. 넷째, 1등 할 가능성이 있어야 한다.”

사업의 가능성을 확인하고 본격적으로 천연수제비누 사업에 착수한 동구밭은 1년여간의 연구개발을 통해 텃밭에서 재배한 농작물인 케일, 바질, 상추 등을 장기간 저온에서 숙성하는 CP공법(Cold Processing)으로 제조하는 천연비누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텃밭을 가꾸고, 관계를 가꾸고, 피부를 가꾼다는 의미에서 ‘가꿈비누’로 이름을 짓고 자체 홈페이지와 온라인숍, A랜드나 1300K 등의 오프라인 매장에서 판매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모든 제품을 자체 공장에서 직접 생산하고 있지만, 초반에는 가볍게 시작하기 위해 외부 업체에 위탁하여 제조하는 것으로 시작하였다.

파일럿 테스트를 통해 가능성도 확인하고, 초반에는 외부업체를 통해 생산하는 등 나름의 대비책을 쌓아가며 진입하였음에도 첫 제조업 시작은 맨땅에 헤딩이나 다름없었다. 제조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2017년, 망쳐서 버린 비누만 20만 개에 달했고, 전 직원이 대구, 강릉, 파주, 온 지방의 공장으로 흩어져 기술을 한달씩 배워온 후 본사에 모여 레시피를 공유하고 개발하며, 매일 같이 새벽 3시까지 일했다고 노 대표는 그 시절을 회고한다. 처음 만든 비누는 만들고 보니 비누가 아닌 기름 덩어리였을 때도 있었고, 너무 딱딱한 빨랫비누 같은 때도 있었고, 흰색 비누를 만드려고 했는데 노란 비누가 나오기도 하고, 밤을 새워 수천개를 만들어놓고 다음날 출근해보니 쓸 수 있는 것이 없어 다 버리고 새로 만든 적도 수도 없이 많은 시절이었다. 장장 6개월 동안 그런 시기를 보냈다. 어려운 시절이었지만 이 때의 고생이 있어서 현재 모든 제품을 직접 생산하고 그 품질에 대한 경쟁력을 자부할 수 있는 바탕이 만들어졌다고 할 수 있다(Exhibit 3).

 


한편, 이러한 과정에 노 대표에게 많은 영향을 미친 곳 중에는 발달장애인을 고용해서 생산한 제품을 B2B로 거래하는 사업모델을 가진 국내 1세대 소셜벤처 베어베터도 있었다. 사무실이 없던 시절 1년간 베어베터 안에서 사무실을 쓰면서 노 대표는 특히 베어베터의 김정호 대표나 이진희 대표와 이야기를 나누며 유의미한 조언들을 얻었고, 동구밭의 사업 방향성을 설정할 때에도 이를 많이 참고하였다. 예를 들어 발달장애인이 이해하기 쉬운 직무 체계를 설계하고, 발달장애인이 투입되기에 적합한 제조 품목을 선정하기 위한 베어베터의 고민들에 노 대표는 공감하였고, 동구밭의 천연비누 사업을 처음 결정하고 실행해가는 과정에서도 이를 고려하고자 노력하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기업으로서 스스로 지속가능해야한다’는 점이 노 대표가 베어베터 사례를 통해서 더욱 명확히 인식한 부분이었고, 이는 이후의 동구밭의 사업 전개에도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시장의 호응에 힘입은 성장

동구밭이 비누사업을 시작한 타이밍은 시기적으로 매우 좋은 선택이었다. 2010년 중반대에서 후반대로 넘어가던 이 시기는 일반 보급형 비누는 이미 과포화 시장으로 가격 경쟁이 심화되어 수익증대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이었고, 기능성 비누들이 한차례 화두가 된 이후에 화학물질, 화학제품에 대한 공포감이 확산되면서 친환경 제품을 찾는 소비자들과 웰빙·웰니스 라이프스타일의 확산과 관련 상품에 대한 수요 증가가 일어나는 시기였다. 때마침 터진 미세 플라스틱, 플라스틱 쓰레기 대란 등의 환경 이슈들은 친환경적인 제품에 대한 소비자들의 관심을 증폭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지구에 배출되는 폐기물을 없애는 제로웨이스트(zero-waste)나, 체내에 축적되는 화학물질의 양을 줄이는 바디버든(body burden) 이슈 같은 것들이 천연비누 시장의 규모가 성장할 것이라고 예측하는 당시의 분위기를 잘 보여주는 키워드들이다.

그러나 이제 막 비누사업을 시작한 동구밭이 성장중인 천연비누 시장을 평정할만한 브랜드를 단번에 쌓아올리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자체적으로 동구밭이라는 브랜드를 사람들에게 각인시키고 키워나가기 위한 작업은 결코 적지 않은 돈과 짧지 않은 기간이 필요한 일이었다. 또한 동구밭은 본연의 목적이 발달장애인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에 있었던 만큼, 장애인 고용을 지속하기 위한 안정적인 기반의 확보도 양보할 수 없는 우선과제 중 하나였다. 시장은 성장하고 있었지만, 매출이 전혀 예측이 안되는 상태로 발달장애인 고용을 유지하고 늘려나가면서 자체 브랜드를 확립해 나가기까지의 오랜 시간과 비용을 감당하는 것은 너무 위험한 일이었다.

이 시기의 노 대표는 장애인 의무고용제도를 활용하여 발달장애인 생산 물품 B2B 거래 사업모델울 기반으로 기업을 운영하고 있는 베어베터에서 주요한 힌트를 얻었다. 대형 브랜드, 기업들보다 어떻게 더 좋은 비누를 만들어서 팔고 경쟁할 것인가보다는, “저 회사들은 어떤 제품을 필요로 할 것이며 그걸 우리가 어떻게 만들어서 납품할 방법이 있을까?” 를 고민하는 관점이 바로 그것이었다. 굳이 초반부터 대형 브랜드들과 직접적인 싸움을 벌이며 힘을 뺄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었고, 그렇기에 초기에는 손쉽게 외부 조직의 주문을 받아 위탁생산하는 사업에 집중하여 성장하기로 결정했다.

기존의 빅 브랜드가 필요했는데 없었던 것, 동구밭이 납품할 방법을 고민했던 포인트는 무엇이었는가? 기존의 비누는 싼 가격으로 만들어 납품할 수 있는 곳들이 꽤 있긴 했다. 그러나 대형 브랜드들이 원하는 수준으로 안전하고 친환경적이며 균일한 품질을 유지할 수 있는 곳은 없었다. 하나의 비누를 잘 만들고, 그 비누의 브랜드와 디자인을 잘해내는 것보다는 전반적인 프로세스와 품질 관리를 더 우선적으로 챙겨서 그걸 원하는 대형 브랜드들에게 납품한다는 것이 동구밭이 찾은 포인트였다.

이런 전략을 통해 동구밭이 얻고자 했던 가장 중요한 것은 먼저 안정적인 매출을 고정적으로 가져가는 것이었다. 비누를 생산해서 납품하면서 안정적이고 예측 가능한 매출을 고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다면, 발달장애인 고용 또한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었다. 그리고 신생 기업인 동구밭이 잘 하기 어려운 마케팅과 브랜딩은 대형 브랜드가 직접 해서 팔아오는 방식이니, 동구밭은 생산만 일정한 품질로 안정적으로 잘 해낼 수 있다면 이익을 남길 수 있었고 이것은 초기에는 적어도 매우 의미가 있는 것이었다.

다른 브랜드들을 경쟁사가 아닌 고객사로 두자는 결정이 당시 동구밭의 전략적인 포지셔닝이었고, 이러한 전략은 실제로 매우 잘 먹혔다. 시장은 점점 커져갔지만 안정적으로 일정 수준 이상의 품질의 비누를 제조하고 수급할 제조사는 부족했다. 이즈음부터 많은 기업들이 동구밭과 협력을 시작했고, 그 중 다수는 지금까지도 이어져오고 있다. 시장의 호응에 힘입은 동구밭은 가히 무서운 속도로 성장했다. 제조업에 첫 도전장을 내민 2017년, 망쳐서 버린 비누가 20만개였던 그 해 말에 출시한 고체 형태의 ‘설거지 워싱바’는 출시 3개월 만에 4만 개가 팔리는 기염을 토했다. 동구밭은 이처럼 제조업을 시작한 2017년 매출 6억 원을 달성한 것을 시작으로, 불과 3년밖에 지나지 않은 2020년 매출 55억 원을 돌파하며 10배의 성장을 일구어내기에 이른다(Exhibit 4).

 


발달장애인 고용은 어려워

그렇다고 마냥 순조롭기만 했던 것은 아니었다. 사업은 성장해감에 따라 발달장애인 고용의 장점들도 발견할 수 있었지만, 어려운 점들도 매우 많았다. 혹시 이게 잘못된 선택은 아니었을까 하는 고민이 노 대표의 머리를 스친 적도 있었다. 사업 초기에만 해도 노 대표는 발달장애인을 고용하기 위해 차린 회사라면 발달장애인이면 다 뽑아 줘야 한다라는 막연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으나, 왜 장애인들을 다 고용하지 않냐는 질문에 대해 베어베터의 이진희 대표가 한 대답에 대해 뒤늦게 절실히 공감하였다고 고백한다.

“비장애인이라고 해서 가고 싶은 곳을 다 가는 것이 아니듯, 기업은 기업에 맞는 사람을 뽑는 것이 당연하고 채용 가능한 범위가 아닌 사람은 분명히 있으며, 거기까지는 우리가 할 역할이 아니다.”

발달장애인은 기본적으로 교육과 훈련에 매우 오랜 시간이 걸리며, 개인마다 기능이 떨어지는 정도와 양상이 매우 다르게 나타난다. 의학적으로는 1급, 2급, 3급 등으로 구분할 수 있을지 몰라도, 1급이여도 함께 일하기 더 편한 사람이 있는 반면 비교적 장애 수준이 낮은 3급이어도 함께 일하기 훨씬 힘든 사람도 있다. 또한 출퇴근에도 어려움이 있어 장소 이동에 한계가 있으며, 의사소통능력과 사회적응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힘들어 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 것이 일반이다. 뿐만 아니라 발달장애인을 고용할 때는 발달장애인의 부모도 주요한 이해관계자가 되어, 종종 발달장애인 부모를 상대하여야 할 일들도 생기게 된다.

그럼에도 창업 초기부터 발달장애인 고용에 대한 미션을 가지고 있었던 만큼, 동구밭은 수월하지만은 않았던 이 과정을 노력을 통해 어느 정도는 상쇄하고, 필요한 부분은 극복해나갔다. 채용을 할 때에는 혼자서 신변처리가 가능한지, 독립적인 출퇴근이 가능한지 여부라는 2가지 기준을 통해서 고용을 위한 최소한의 기준을 충족하는 사람을 잘 선별하여 뽑았다. 그리고 발달장애인에 대해 공부해온 것들을 바탕으로 제대로 된 교육과 훈련을 제공하고, 발달장애인 사원들은 물론 함께 일하는 비장애사원들도 점점 더 좋은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도왔다. 또한 비장애사원들에게도 기업의 미션과 비전을 공유하고, 발달장애인의 부모들은 우군으로 만들어갔다. 완전한 극복이라고 할 순 없겠지만, 상당 부분은 상쇄가 되었다고 자신할 수 있다고 노 대표는 이야기한다.

금전적인 차원에서도, 발달장애인 고용은 그로 인한 비용을 전부 상쇄할 만큼의 혜택은 아니더라도 동구밭의 성장에 일정 부분을 지속적으로 기여해옴으로써 그 한계를 일부 극복해내는 형태로 나타났다. 발달장애인을 오랜 기간 교육시키고 훈련시키는 것에 드는 비용과 더불어, 비장애인 대비 낮은 생산성은 분명한 비용 요소이다. 그러나 발달장애인 고용은 일차적으로 장애인 고용장려금의 혜택을 동구밭에게 제공하고 있으며, 이차적으로는 장애인 고용이라는 사회적 가치 창출을 통해 획득할 수 있었던 다양한 지원금 등의 금전적 혜택(예를 들어 사회적기업 인증을 바탕으로 확보한 지원금 등)을 동구밭에 제공해오고 있다. 이는 매출이 충분히 늘고 지원은 잘 활용하지 않게 된 2020년 기준 약 3.2% 정도의 비중을 차지하는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발달장애인 고용이 본질적 전략으로

“어떻게 하면 더 잘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면 오히려 더 좋은 활동을 할 수 있다.”

발달장애인 고용은 동구밭에게 있어 어렵지만 일정 수준 상쇄되는 정도의 단순한 디스어드밴티지의 차원을 넘어선다. 그것이 기업으로서의 동구밭에게 분명하게 야기하는 한계점에도 불구하고, 발달장애인 고용이라는 요소를 동구밭은 전략적으로 설계하여 비즈니스 차원의 장점을 찾아내고자 노력하였다. 즉, 동구밭은 발달장애인 고용을 한계가 아니라 경쟁력으로 바꾸어내는 전략을 실천하였다. 그리고 그것은 오히려 발달장애인 고용이라는 사회적 가치를 잘 창출하는 데에도 더 나은 해답을 제시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발달장애인은 지적장애인, 자폐성장애인, 그 밖에 통상적인 발달이 나타나지 아니하거나 크게 지연되어 일상생활이나 사회생활에 상당한 제약을 받는 사람을 통칭하는 말이다. 하나의 장애로 명칭되지만 그 안에는 특성이 서로 다른 여러가지 유형의 장애특성이 섞여 있다. 실제로 동구밭의 장애사원도 자폐성 장애인 4명, 지적 장애인 30명, 지체 장애인 1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때문에 발달장애인 고용은 단순하게 접근하기 어렵다. 그결과 발달장애인 고용률은 장애유형 중에서도 가장 낮은 편이다. 실제로 2020년 통계청의 발표에 따르면 발달장애인 고용률은 23.2%로 지체장애인 고용률 44.4%의 절반 정도에 그치고 있고 이 고용의 상당부분도 일반적인 기업고용이라기보다는 보호작업장 등의 제한적 상황인 경우가 많다. 때문에 발달장애인 고용을 위한 동구밭의 도전은 장애특성의 한계점을 보완하고 장점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반드시 발전해야 했다.

동구밭이 발달장애인을 고용하는 과정에서 보이는 가장 특징적인 요소 중 하나는 퇴사자가 거의 없다는 점이다. 발달장애인 사원이 최초로 입사한 2016년 말부터 지금까지, 한번 입사를 했다가 이사 등의 불가피한 이유를 제외하고 중도에 퇴사한 발달장애인 사원은 단 한 명도 없다는 것이 노 대표가 자신있게 이야기하는 동구밭의 성과 중 하나이다. 보통 동구밭이 하고 있는 천연비누 사업과 같은 단순 제조업은 젊은 인력을 채용하기도 어렵고 만약에 채용에 성공하더라도 근로 환경이나 성장가능성 등의 이유로 짧은 기간 내에 퇴사하기 일쑤이다. 이는 새로 채용한 직원에게 업무 투입을 위해 필요한 훈련과 교육을 해야 하는 기업 입장에서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결국 이런 과정이 반복되면 당연히 생산성, 안정성 등에 대한 심각한 문제로 나타나게 된다. 그런데 동구밭에게는 이러한 종류의 불리한 요소는 거의 대부분 해소된 상태인 것이다. 물론 이유는 복합적이겠지만, 기본적으로는 동구밭이 발달장애인 사원들에게 좋은 직장이기 때문에 직장에 대한 로열티가 매우 높다는 것이 그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단지 오래 일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일을 하고 있는 발달장애인 사원들의 생산성도 점점 올라가는 현상이 나타났다. 일부 장애사원은 후임 장애사원을 가르치는 경지에 도달한 경우도 있다. 보통 발달장애인들이 많이 근무하는 장애인 작업장에서는 장애인 본인의 체력적 여건을 고려하여 4시간, 6시간, 8시간 등으로 나누어 기능과 체력에 맞게 근무를 시키며, 반드시 풀타임 근무를 하는 것이 꼭 좋은 것이 아닌 경우도 많다. 그런데 동구밭에서는 기능이 좋고 숙련된 발달장애인 사원은 8시간 근무를 넘어 추가근무를 하고 추가근무 수당을 받기도 한다. 야근이 필요한 날엔 함께 거뜬히 야근도 할 수 있는, 이미 발달장애인 사원의 기능 수준이라 보기 어려운 정도의 경지에 이른 사원도 있다. 동구밭에서 장기근속 중인 발달장애인들에게 직접 질문을 해보아도 다양한 만족요소를 들을 수 있다. 근로환경이 장애 유형에 맞게 고려되었고, 사무실 건물의 접근도 용이하다고 한다. 근로시간이나 휴식시간을 개인들의 상황에 맞추어 조정할 수 있게 배려하였고, 필요한 경우 근로지원인 지원이 되었다. 무엇보다도 함께 근무하는 비장애인 사원들이 가지고 있는 호의적 태도와 협력하려는 문화는 다른 곳에서 찾아보기 힘들다는 평가다.

천연수제비누는 기본적으로 장비만으로 해결하기에는 한계가 있는 영역에 해당한다. 만약 그런 방식이 통하는 사업이었더라면 진작에 대기업들이 이미 대규모의 자본을 들여 장비를 세팅하고 시장에 자리를 잡았을 것이다. 그러나 천연수제비누에 대한 기술력은 2000년대 초반 이후로 정체되어 있는 상태였고, 대규모 설비 투자를 진행해봤자 수익률이 별로 나오지 않는 영역이었다. 대형 브랜드나 기업들이 천연비누 시장의 성장세에도 섣불리, 혹은 구태여 본격적으로 진출할 엄두를 내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오히려 천연비누 시장은 정확히 말하자면 다품종 소량 생산이 유리한 점이 훨씬 많은 영역이다. 실제로 해당 시장은 동구밭이 본격적으로 비누 사업을 성장시켜나가던 시기에 니즈의 다각화가 매우 빠른 속도로 일어나고 있었다. 예를 들어 샴푸바, 설거지바 등의 제품은 요즘에야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지만, 초반에만 해도 시장 저항이 강했고 애시당초 설거지 세제, 샴푸, 린스 같은 카테고리들 자체가 각각 단일 카테고리여서, 액체형과 고체형으로 나뉘어 있지도 않았다. 그러나 이러한 제품들은 모두 단기간 내에 빠르게 수요가 매우 급격하게 증가하였는데, 이러한 상황에서 대규모 설비 투자나 대대적인 단위의 기계화와 같은 방식으로 접근하기에는 너무 수익성이 낮을뿐더러, 이런 대량 생산체계가 감당하기에 트렌드의 변화 속도는 너무 빨랐다.

이런 상황에서는 기존의 대량생산체계는 적합하게 돌아가기 어렵고, 그보다는 신뢰할 수 있는 적정한 규모의 OEM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 훨씬 중요했다. 그런데 문제는 그런 방식으로 일할 수 있는 곳들은 항상 상술한 바와 같이 근로자를 안정적으로 보유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는다는 것이었다. 동구밭이 발달장애인을 안정적으로 고용하고 장기 근속시키는 것은, 이 부분에 대하여 중장기적으로는 매우 유효한 장점으로서 작용할 수 있었다. 이를 통해 동구밭은 보다 확신을 가지고 고체 화장품계의, 말하자면 콜마나 코스맥스 같은 전략적 포지션을 잡는 방식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그동안에 발달장애인 고용 사업장 중에서는 위탁생산 전문 업체가 없었던 상황에서, 품질관리가 되고 안정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위탁생산 전문업체로서 포지셔닝함으로써, 신생 기업으로서 동구밭이 잘 하기 어려웠던 브랜드 경쟁에 드는 불필요한 에너지 낭비를 줄일 수 있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발달장애인을 고용한다는 사회적 가치 창출은 동구밭이 위탁생산 전문업체로서 포지셔닝하며 B2B 거래가 늘어나는 과정에서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었고, 홍보 차원에서도 큰 효과를 안겨주었다. 발달장애인을 고용한다는게 인터뷰나 기사를 통해서 수차례 소개되면서, 이 때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이미지가 ‘신뢰’라는 가치 소구를 브랜드에 담기 시작했다. 2018년에 미국 수출을 추진하였을 때 코스트코 등 글로벌 유통망 중 일부에는 아예 장애인 생산품에 대한 별도 포션이 있어, 해외 진출에 활용가능한 전략옵션이 하나 더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또한 국내에서는 장애인 고용장려금과 인증 사회적기업, 소셜벤처 등에게 제공되는 정부와 기업의 각종 지원금 등 장애인 고용 창출이라는 사회적 가치 창출로 인하여 동구밭에게 주어지는 지원금들이 동구밭의 실질 생산 원가 부담을 일부 낮추는 데 지속적으로 기여하였다. 특히 초기에는 전체 사업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았다보니, 이러한 지원금이 자칫 영업적자를 낼 수 있는 상황에서도 기업이 지속가능할 수 있도록 하는 영향력이 컸다. 이는 ‘발달장애인 고용’이, 장애인을 고용하는 제조업이라는 특성에도 불구하고 동구밭이 불과 3년이라는 짧은 기간 내에 매출액 10배 성장이라는 성과를 달성할 수 있게 한 요인으로서 작용하였음을 보여준다.

위탁생산(OEM)과 자체 브랜드의 갈등

“대기업을 고객사로, 그리고 고객이 원하는 제품을 찾는 것”

동구밭도 맨 처음에는 시장 파악을 위해 자사 브랜드 제품을 판매하는 것으로 시작했지만, 좋은 반응에 비해 저조한 판매량으로 수지타산이 맞지 않았다. 그래서 노 대표는 적극적으로 주문자 위탁생산(OEM) 및 제조업자 개발생산(ODM) 납품을 핵심 사업으로 추진했다. 노 대표의 선택은 결과적으로 옳았다. 2017년 천연수제비누 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이후 초반 1~2년간, OEM 사업 모델은 동구밭에게 안정적 매출이라는 확고한 기반을 마련하는데 매우 실질적으로 기여하였다.

당시 매출의 대부분은 자사제품 판매가 아닌 OEM 방식으로 기업에 청년비누, 입욕제, 위생용품 등을 납품하는 제조업에서 이루어졌다. 화장품 회사, 호텔, 리조트, 유통기업 등 납품처는 다양했다. 라인프렌즈, 생활도감, 마리몬드, 이랜드, 세븐일레븐 등 다양한 브랜드에 OEM 방식으로 비누를 납품했다. 몰튼브라운, 에르메스, 이솝, 록시땅 등의 쟁쟁한 브랜드들을 제치고 카푸치노 호텔, 워커힐 호텔 등의 국내 고급 호텔에 어매니티 비누를 납품하는데까지 이르렀다. 2018년 7월, 비누 제조를 본격적으로 시작한지 채 2년도 되지 않아 천연비누 OEM 기업으로 확보한 거래처가 30곳에 이르렀다. 2018년 하반기부터는 미국 수출도 시작하였고, 뒤를 이어 일본, 중국, 인도 등지로 수출을 확장, 4개국에 15만 달러 수출을 달성했다.

노 대표가 천연수제비누 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할 때 내부에 약속했던 3가지 목표가 있다. 해외 수출, 호텔 납품, 그리고 마지막은 누구나 아는 브랜드를 만드는 것이었다. 발달장애인 사원을 포함한 직원들이 “나 이런 곳에서 일한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일할 만한 회사를 만들기 위한 그의 목표였다. OEM 위주로 사업을 키워나가는 동안 동구밭은 그리 길지 않은 기간 안에 앞의 두 가지 목표를 달성하는 데 성공하였다. 한편으로 그 과정은, 노 대표에게 있어 낮은 수익성을 끌어올리고 동구밭의 다음 성장가도를 마련하기 위한 다음 징검다리를 찾는 과정이기도 했다. 9:1에 달하던 OEM과 자체 브랜드의 비중을 계속 그대로 가져가는 것이 맞을지, 한정된 자원을 어떻게 배분하고 조정해나가야할지에 대한 해답을 찾는 것이 노 대표가 마주한 새로운 과제였다(Exhibit 5).

 


현재 시장에 나와있는 전체 생산품 중 제조품 기준으로 동구밭의 점유율은 명실상부한 업계 1위다. 이처럼OEM 사업으로 탄탄한 기반을 다져오는 동안, 노 대표는 마지막 남은 약속인 자체 브랜드를 위한 기회에 대해서도 면밀하게 살피고 움직였다. 자체적인 R&D도 틈틈이 수행하였으며, OEM 사업 전선에서 빠르게 다변화되고 급증하는 천연비누, 고체 세제, 고체 샴푸, 린스 등의 시장 상황을 파악하는 노력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러던 중 노 대표가 발견한 것은 하나의 명확한 흐름이 보인다는 것이었다. OEM을 맡기기 위해 찾아오는 회사들을 살펴보았을 때, 2018년 정도만 해도 정체성 자체가 비건, 친환경, 웰빙 같은 데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고관여 브랜드들이 찾아왔다. 그 다음으로 새롭게 등장한 고객사는 트렌디한 화장품 업체들이었다. ‘클린 뷰티’를 표방하는 브랜드들이 동구밭을 찾아오기 시작했다. 그 다음 단계에선 대형 유통사들이 찾아오고, 마침내는 대기업으로까지 고객사가 확장되었다.

이처럼 고객사가 좀 더 대형, 메이저 브랜드로 확장되어갈수록 좋은 점도 당연히 많았지만, 한편으론 납품 시에 요구받는 조건과 인증의 수준도 점점 더 까다로워져갔다. 자연스럽게 비용 증가가 뒤따를 수밖에 없었다, 본래도 OEM 자체가 수익성이 높지 않다보니, 이런 상황은 노 대표에게 심각하진 않더라도 분명하게 사업적인 위기감을 느끼게 하는 요소였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노 대표가 발견한 또 한 가지는 친환경이라는 트렌드가 주는 기회였다. 어느 순간부턴가 동구밭이 발달장애인을 고용하는 소셜벤처라는 걸 모르고 OEM을 맡기러 찾아오는 회사들이 있었다. 자체 브랜드 제품을 사는 고객들은 파라벤, 경화제, 방부제 등의 화학물질이 없이 천연 재료로 만든 동구밭의 비누를 가족의 건강을 위해 좋은 비누라며 구매하기도 했다. 대표적으로 히트를 쳤던 제품 중 하나인 고체형 설거지 워싱바의 경우, 맘 카페 커뮤니티 등에서 입소문을 타며 공동구매로 판매가 되었다. 기존의 액상 주방 세제는 본래 물에 희석해서 사용해야 하는데 이런 표준 사용법을 잘 모르고 원액 그대로 쓰다보니 적정 사용량보다 과도하게 많이 쓰게 되고, 플라스틱 용기를 써야 하니 인체에도 환경에도 해로운데, 고체형 설거지바는 인체에도 좋고, 종이 포장재만 쓰니 환경에도 좋다는 것이었다. 심지어는 동구밭이 소셜벤처라는 것을 발달장애인을 고용해서가 아니라 친환경적이고 플라스틱 프리, 제로웨이스트 라이프스타일 등의 이유에서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생겼다.

동구밭 고객의 절대 다수는 여성이고, 아이를 가진 어머니들이다. 2018년 쓰레기 대란, 플라스틱 이슈 등이 국내와 글로벌 할 것없이 우리 사회를 휩쓸면서, 이런 사람들 중 일부가 점점 더 폐기물을 덜 배출하고, 플라스틱을 덜 쓰는, 우리의 건강은 물론 다음 세대와 지구에게 해롭지 않은 “친환경” 제품을 찾기 시작했고 그 수는 지금도 꾸준히 늘어가고 있다. 처음에 이들이 마주한 시장엔 선택지가 없었다. 친환경 제품을 쓰려고 찾아봐도 그런 제품이 잘 없었고, 있어도 쓰기가 너무나 불편했다. 그러다가 스타벅스가 종이빨대를 도입하고 이것이 확산되는 과정에서, 사람들에겐 “이 정도의 불편함은 감수하고 친환경적인 활동에 참여할만하다”는 이해도가 생겼다. 이런 상황에서 마침 동구밭이 시의적절하게 연구개발을 마치고 내놓은 고체 샴푸바는 “충분히 감수할만한” 불편함으로 “충분히 친환경적인” 활동을 할수있게 해주는 선택지로서 고객들의 선택을 받아 소위 말해 대박을 쳤다. 더군다나 이런 고객들은 대형 브랜드보다는 소위 말하는 개념 있는 중소형 브랜드들을 선호하는 특성이 있었기에, 동구밭의 입장에서는 더없이 좋은 기회이고 타이밍일 수밖에 없었다. 발달장애인 고용은 일반 대중에게 폭넓게 강점으로 작용하는 종류의 가치는 아니었지만, 친환경은 사회 변화에 힘입어 시장에서 구매요인으로 작용하는 중요한 강점요인이 되고 있는 것이다. 발달장애인이 만들었기 때문에 비싸다는 것은 시장을 충분히 설득하지 못했지만, 친환경이다보니 사용하기 불편하다거나 다소 가격이 높아질 수 있다는 사실은 고개들에게 받아들여지는 분위기는 노 대표에게 마지막 약속을 향해서도 한 발자국 나아갈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었다.

물론 동구밭은 발달장애인 고용으로 시작한 소셜벤처인만큼, 탄소 배출, 플라스틱 저감, 에코 마일리지, 제로 웨이스트 등에 대해 지금까지의 성장과정에서 각별히 유의를 기울였다고 할 순 없다. 그러나 자체 브랜드의 확장을 위해서는 이 시대의 고객의 요구에 맞게 보다 친환경적인 고민을 해야한다고 생각해서 조금씩 할 수 있는 노력들을 시작하고 있다. 화학 계면활성제 대신 먹을 수 있는 천연성분과 코코넛유래 천연 계면활성제를 사용하고, 제품 포장과 택배에는 최대한 자연에 해가 가지 않는 소재를 선택한다는 방향을 견지하고 있다. 이제는 국내 최초로 유기농 비건 동시인증 제조사(프랑스 이브 비건, 미국 농무부 USDA 오가닉 공식 인증)이기도 하다. 올해 들어서는 앞으로 5년 이내에 제조 전 과정에서 플라스틱 사용을 줄여나가 제로에 가깝게 만들고자 한다는 계획도 밝혔다. 노 대표는 “동구밭은 환경 문제를 해결하고자 시작한 회사는 아니지만 더 나은 사회 가치를 만들기 위해 환경에 대해 배우고 있는 회사”라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다만 여전히 남은 문제는 생산 설비를 비롯한 여러 자원이 제한된 상황에서 OEM과 자체 브랜드 사이에 충돌, 갈등이 일어날 때이다. 고정적인 매출이 안정되게 확보되는 건 좋지만, OEM 납품을 맞추다보면 정작 우리 제품은 못 만들어서 없어서 못 파는 경우도 생긴다. 생산량이 모자랄 땐 며칠 몇개월씩을 자체 브랜드 제품을 품절 상태로 내버려둔 채 OEM 납품을 맞추는데 여념이 없었던 적도 있다. 이게 맞는 우선순위인가에 대해 내부적인 혼란과 논쟁도 있었다. 자체 브랜드에 대해 충성적인 고객들도 처음엔 호의적으로 기다려주겠거니 했지만, 나중엔 이럴거면 왜 판매를 하느냐는 강도 높은 비난도 점차 많아졌다.

난감한 상황이 발생하기는 OEM 사업의 고객사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공들여서 R&D를 해서 자체 브랜드로 제품을 내놓으려고 하면 싫어하는 고객사들도 있었고, 아예 그걸 자체 브랜드 말고 우리에게 OEM으로 내주면 안되냐는 압박과 회유 사이의 기류도 있었다. 동구밭이 스스로 자체 브랜드를 광고하는 것과 같이 너무나 당연한 일에 대해서도 때론 고객사로부터 항의를 받았다. 자기들에게 납품하면서 왜 자체 브랜드 제품을 광고하냐며 공격받기도 한다.

결코 쉽지 않은 갈등과 어려움을 극복해나가며 자체 브랜드를 보다 가치 있게 만들고자 하는 방향 위에서 동구밭의 자체 브랜드 매출은 19년도 8억에서 20년도 31억으로 증가했다. 상품군도 많이 다각화되고 범주도 넓어지면서 이러한 변화는 점차 가속화되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한 비누 수요 증대와 샴푸바의 급성장도 한몫했다. 최근의 업계 브랜드 평가에서는 도브 바로 다음인 2위까지 올라선 적이 있고, 현재는 3등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현재 OEM과 자체 브랜드 비중은 20년도 매출액 기준 4:5 정도인데, 노 대표는 자체 브랜드의 비중을 지속적으로 늘려가고자 목표하고 있다. 이 같은 자체 브랜드 비중의 확장은 수익성을 끌어올리는 데에 기여하고 있다. 자체 브랜드가 몇 가지 항목에 대해서는 선두주자로서 자리매김하여야 한다는 노 대표의 생각은 확고하며, OEM과의 갈등은 겪어내고 풀어내야할 과제로 남아 있다(Exhibit 6).

 


성장, 그리고 다시 도전

“발달장애인을 고용해도 기업 운영을 잘 할 수 있다는 일종의 사회를 향한 외침”

동구밭이 본격적으로 천연비누 사업을 시작하던 때만 해도 비누는 저관여 시장에 가까웠고, 공산품으로 분류되었기 때문에 테이블 위에 놓고 만들어서 판매해도 아무런 지장이 없는 상황이었다. 그렇기에 당장 시작할 수 있는 일이어서 노 대표가 천연비누를 사업 아이템으로 확정할 수 있었던 것이기도 했다. 그러나 점차 시장 환경이 변화하면서 피부 미용, 건강 등 고관여 시장이 생기기 시작하였다.

또한 2019년에는 업계에 큰 변화가 있었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 이후 인체에 직접 적용하는 제품의 안전관리 강화 필요성이 높아짐에 따라, 비누가 공산품이 아닌 화장품으로 분류가 전환되면서 화장품 관련 법령에서 정한 제조, 수입, 유통, 판매에 관한 기준을 준수하여야 하게 된 것이다. 생산업체는 화장품 제조업 시설 기준을 따라야 하고, 품질관리, 안전관리 등에 대해서는 담당 관리자도 고용해야 하며, 사용이 금지·제한된 원료에 대한 기준도 기존의 공산품이 아닌 화장품 법령을 따라야 한다. 소비자의 오인을 유발하는 광고도 엄격히 금지될뿐더러, 1년간의 계도기간 이후에 화장품 업체로 등록하지 않고 영업하는 등 법령을 위반할 경우 형사처벌도 받게 되었다. 제도에 의해 만들어진 이 거대한 진입장벽으로 인해 무수히 많은 영세 업체들이 시장에서 퇴출되었다.

동구밭에게도 이 과정은 쉽지 않았다. 설비를 갖추고 관련 인증과 기준을 준수하기 위한 투입들은 비용 증가를 야기하였을 뿐 아니라 비장애인 사원의 비중을 이전보다 늘릴 수밖에 없는 상황을 초래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 대표는 이 장벽을 넘어가는 과정이 동구밭에게 있어 중요한 모멘텀이라고 생각했다. 결국은 품질이 동구밭의 차별성으로 만들어져야 한다는 결론이 그 저변에 자리잡고 있었다.

현재 동구밭은 이미 프랑스 이브비건 인증과 미국 농무부 USDA 유기농 인증을 동시에 받은 국내 최초의 화장품 제조사이다. 또한 화장품 제조시설 관련한 보다 엄격한 인증들에 대해서도 획득을 시도하고 있다. 이는 대기업 협력과 같은 더 큰 시장에서의 안정적인 자리매김을 위해 필요한 요건이기도 하고, 다른 경쟁업체들이 쉽게 따라잡을 수 없는 진입장벽을 세우는 일이기도 하다. 또한, 노 대표는 이런 과정을 거쳐 높여놓은 수준과 품질을 바탕으로, 글로벌 시장에서도 동구밭의 입지를 넓혀나갈 계획을 차근차근 세우고 있다(Exhibit 7).

 


동구밭의 성장은 실로 놀라운 수준이며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2020년 말 기준 매출 55억 원을 달성했고, 제품 기준으로는 50% 이상의 점유율을 보이고 있다. 현재 천연비누 자체만 놓고 보면 전체 일반 유통망에서 판매되는 제품의 거의 절반 이상이 동구밭에서 생산한 제품이다. 고객사는 클린뷰티 라인, 아기용 화장품, 아토팡, 궁중비책 등의 브랜드에서부터 네이처리퍼블릭, 로드샵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동구밭은 일반 제조업 대비 2~3배에 달하는 영업이익률을 기록하고 있다. 투자 검토를 받다가 사회적 기업이 이런 영업이익률을 보일 수 있냐며 깜짝 놀란 사람도 여럿일 정도다. 그렇기에 아직은 다음 단계의 투자도 거절하고 있고, 최근 하남 공장으로 확장할 때에는 외부 자금의 유입 없이 자체적으로 모든 비용을 충당했다. 영업이익의 성장은 잘 자리잡은 브랜드를 바탕으로 시작된 자체 상품의 판매가 위탁생산 사업에 비해 매출도 높고 영업이익률도 월등하게 높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서 외부의 고객이 위탁생산을 의뢰할 때 비누 하나의 생산에 대해 받는 매출이 2천 원이라면, 이 주문에는 최소 생산량이 있는 대신 이익률은 일반 제조업의 평균을 넘기 어렵다. 그러나 자체 브랜드 제품이 시장에서 팔릴 때에는 현재 가장 기본 비누인 가꿈비누 라인이 5천 원에서 6천 원 사이에 가격이 형성되어 있고, 최근에 잘 팔리는 샴푸바는 9천5백 원 수준이다. 그러니 자체 브랜드의 상품 판매가 크게 늘어난다는 것은 매출과 이익률 모두 제고된다는 뜻이다.

이러한 양적, 질적 성장을 바탕으로 기업의 가치도 가파르게 높아졌다. 2016년 에스오피오오엔지 지분 투자유치 당시, 에스오피오오엔지는 3.75억 원 밸류에이션으로 2천만 원의 씨드머니를 투자하는 뱃치의 1기로 동구밭을 선정했었다. 2020년 말 기준으로 동구밭의 밸류는, 상속세 및 증여세법에 의한 비상장법인주식평가를 바탕으로 한 공정가액 기준 100억 원, 시장에서 유사한 제조업 상황에 비추어보았을 때에는 시장가치는 300억 원 수준으로 추정되고 있다. 5년여 남짓한 기간 동안 무려 80배에 가까운 성장을 이룬 셈이다(Exhibit 8).

 


물론 여전히 도전이 남아있다. 사업 초기 수년간, 노 대표는 월 매출이 400만 원 증가할 때마다 발달장애인을 1명 더 고용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아 왔다. 그러나 최근 들어서는 이를 문자 그대로 지키는데에는 실제적인 어려움이 생기기 시작하여 전체 인원의 50% 이상을 발달장애인 직원으로 고용하는 것을 새로운 기준으로 삼고 있다. 현재 동구밭은 발달장애인 사원과 비장애인 사원이 각각 30명으로 새로운 기준을 잘 충족하고 있다. OEM 납품을 하는 고객사가 요구하는 인증 수준이 높아짐에 따라 부자재 검사, 위생 검사 등의 수준이 높아질 수록 전문인력이 계속해서 투입되어야 하고, 물류, CS 등 비장애인 사원이 투입되어야만 하는 업무의 비중이 높아지면서 발달장애인 고용의 비중을 꾸준히 늘려가는 것이 쉽지만은 않은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것은, 동구밭 사례가 발달장애인을 고용해도 사업을 성장시킬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동구밭은 발달장애인 고용을 한계가 아닌 경쟁력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가능성이 있음을 제시하고 있다. 처음 동구밭의 이름은 ‘마을 어귀(동구)에 있는 작은 텃밭’이라는 사전적 의미에서, 우리 사는 마을마다 작은 텃밭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는 소박한 취지에서 지어졌다. 그러나 이제는 발달장애인을 고용한 기업으로서 천연 비누를 고급 호텔에 납품하고, 해외에 수출하여 달러로 매출을 올리는 최초의 사례로 자리잡았다. 그리고 노 대표는 이제 해외에 사는 발달장애인들이 동구밭이 너무 부러워서 한국으로 이민이 오고 싶어질 정도로 매력적인 회사가 되는 것을 동구밭의 비전으로 제시하고 있다. 발달장애인을 고용한다는 것이 기업으로서 한계가 아닌 경쟁력으로 작용하도록 만드는 것, 좋은 일을 하니까 칭찬받을 만한 기업이 아니라 정말로 기업으로서의 가치가 있는, 성장을 증명해낼 수 있는 기업이 되는 것, 그것이 결코 쉽지 않은 일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동구밭은 여기에 대해 조심스럽지만, 동시에 자신있게 대답한다. “당신이 못하는 이유를 우리한테 찾지 마세요.” 


[주석]

1. 당시에는 에스오피오오엔지였으나 현재 해당 조직은 법인이 조정되어 소풍벤처스로 변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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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진

도현명

도현명

도현명 대표는 임팩트 비즈니스 개발 전문기관인 임팩트스퀘어를 2010년에 설립하여 운영하고 있다. 서울대학교에서 경영학 학사와 석사를 받았고, 네이버 게임부문에서 경험을 쌓은 뒤 창업하게 되었다. 특히 소셜벤처 액셀러레이션, ESG 통합 경영, 공유가치창출(CSV)전략 개발, 사회적 가치 측정 등에 집중해서 활동하고 있으며, 수년전부터는 서울대에서 관련 수업을 맡아 인재 육성에도 힘쓰고 있다. 2019년 국무총리상을 수상했고, 주요 저서로는 소셜벤처로 가는길(2021), 넥스트 챔피언(2019), 젊은 소셜벤처에게 묻다(2018)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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