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방에서 중심으로’ 핀테크 스타트업이 금융 시스템으로 자리 잡는 법 – 센트비

센트비(Sentbe)는 해외 송금 전문 핀테크 스타트업이다. 센트비는 글로벌 시장과 정부의 영향을 크게 받는 금융 산업에서 모바일 기반 소액 해외 송금이라는 새로운 시장을 개척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센트비의 창업자 최성욱 대표는 국내 및 해외 금융 시장의 규제 장벽을 극복하고 동남아 지역을 중심으로 시장 확장에 성공했다.

금융업은 신뢰를 기반으로 성장한다. 핀테크 스타트업 센트비에게 시장 내 신뢰 구축은 매우 중요하다. 외환 송금 사업은 글로벌 환율, 국경 간 자본 이동, 국가별 금융 시장 규제 등과 같은 다양한 대외 리스크에 노출되어 있다. 센트비는 이런 대외적 위험 요소들을 지속적으로 관찰하고 재빠르게 대응하면서 시장 내 신뢰를 구축했다.

적절한 관계를 통해 금융 사업자의 명성은 높아지고 신뢰는 단단해진다. 창업 초기부터 센트비는 국내외 금융기관들과 파트너십을 구축하고 유지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파트너십 대상은 제도권 금융기관과 국내외 핀테크 스타트업을 모두 아우른다. 초기 이용자 상당수가 국내 거주 동남아 외국인인 점을 감안해 센트비는 필리핀, 베트남, 인도네시아를 포함한 동남아시아 지역 금융 사업자들과 파트너십을 구축했다. 이를 통해 센트비는 비용 절감, 국가별 규제 공동 대응 등 다양한 혜택을 누렸다. 

센트비의 파트너십에는 협업과 경쟁이 공존한다. 시장 한편에서는 협업 관계이지만, 다른 편에서는 경쟁 관계이다. 이는 해외 송금이라는 업의 특성과 불확실성이 높은 글로벌 금융 시장 환경이 반영된 까닭이다.

센트비와 파트너 간 관계 유지는 결코 간단하지 않다. 송금 수수료, 거래 안정성에 민감한 고객은 언제든지 센트비를 떠나 파트너의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오늘의 동반자는 언제든지 내일의 경쟁자일 수 있다. 그래서 센트비는 경쟁과 협업을 함께 하는 코피티션(coopetition)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센트비를 둘러싼 환경은 항상 녹록지 않았다. 그럼에도 센트비는 국내 소액 해외 송금이라는 시장을 만들고 개척했다. 그리고 오늘날 센트비는 시장의 리더로 우뚝 섰다.


Q1. 센트비의 최성욱 대표는 금융기관과 핀테크의 관계를 종종 코피티션(coopetition)이라 표현한다. 코피티션은 협력을 의미하는 영단어 cooperation과 경쟁을 의미하는 competition의 합성어로, 협력과 경쟁의 장점을 결합시키는 비즈니스 전략을 말한다. 실제로 사례 내에서 센트비는 여러 금융기관과 협업 및 경쟁을 하면서 코피티션의 양상을 보이고 있다. 사례 내 코피티션의 모습을 찾아보시오.

Q2. 사례에서 센트비는 글로벌 송금 업체 머니그램과의 파트너십으로 성장의 발판을 마련하려고 한다. 하지만 거대 금융 기업 머니그램과의 파트너십은 여러 대내외적 리스크를 동반한다. 파트너십이 가져올 리스크들을 찾아보고 이들의 장점과 단점을 살펴보시오.  

Q2-1. 학습자가 머니그램과의 파트너십을 고민할 당시의 센트비 최성욱 대표라면 해당 파트너십을 추진할 것인지 결정하고 그 이유를 함께 토의해 보시오.

Q2-2. (Optional) 핀테크 스타트업인 센트비와 거대 금융기관인 머니그램의 파트너십은 현재는 협업 관계이지만 장기적으로 코피티션 관계로 재설정되면서 양측 간 긴장이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 센트비 입장에서 코피티션으로 촉발된 긴장을 완화할 수 있는 전략을 고민해 보시오.

Q3. 개인 간(Customer to Customer, C2C) 소액 해외 송금으로 시작한 센트비는 이제 기업 간(Business to Business, B2B) 해외 송금 서비스 확장을 준비하고 있다. 기업 간 해외 송금은 송금 규모가 큰 만큼 매출 증가와 운영 이익에 도움이 되지만, 여러 대내외 리스크를 극복해야 한다. 센트비 B2B 사업 확장 여부와 손익을 토의해 보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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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하는 삶, 창업의 길 

세련된 양복과 고급 시계, 바삐 돌아가는 시세판과 쉴 새 없이 울리는 전화, 그리고 퇴근 후 즐기는 풍미 깊은 위스키…

모두가 선망하는 외환 브로커의 삶을 시작했지만, 이 모든 게 진짜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일상에 익숙해질 무렵 공포감이 몰려들었다. 안정된 직장에서 매일을 소진할 뿐, 성장과 발전을 위해 더는 노력하지 않았다. 평소 외환 거래 방식에는 개선할 점이 많다고 생각했지만, 이 역시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스스로 한심했다. 틀에 박힌 생활에서 벗어나 특별함을 증명하고 싶어졌다. 회사는 전쟁터고 밖은 지옥이라고 했던가. 정해진 미래를 순응하듯 기다리며 사는 게 지옥불보다도 괴로웠다. 앞으로 어떤 괴로움과 후회를 마주할지 모르지만 타고난 성격을 어쩔 수는 없었다. 어렵고 힘든 게 있다면 배우고 이겨내면 되리라는 생각뿐이었다. 30대 초반의 패기 넘치는 외환 브로커는 결심이 서자 온실 같은 회사를 박차고 나왔다. 핀테크 스타트업 센트비(Sentbe)를 창업하며 스타트업 전선에 뛰어들었다(Exhibit 1).


선택할 수 없는 금융 시스템 

금융은 시스템이다. 정부·기업·개인 등 각 경제 주체가 ‘돈’을 매개로 복잡하게 얽힌 관계와 상호작용의 집합체다. 돈에 기반을 둔 동적 시스템은 각 주체의 활동과 의지에 따라 시시각각 변화하며, 이는 법에 기반을 둔 시스템 안에서 작동한다. 금융은 현대 자본주의를 작동시키는 일종의 플랫폼이다. 센트비를 창업한 최성욱 대표는 이런 금융 시스템 내 외환 분야의 혁신을 목표로 2015년 센트비를 만들었다. 한국자금중개에서 외환 브로커로 일했던 그는 ‘빠르고, 저렴한’ 해외 송금을 해결 과제로 삼았다. 외환 시장에서 개인도 자유롭게 송금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겠다는 포부였다.

해외 송금은 외환 거래의 수요자와 공급자를 연결하는 중개자 우위 시장으로, 이 우위는 외환당국(정부)의 관리·통제 아래 보장된다. 경제학에서는 수요·공급이 만족하는 지점에서 가격이 결정된다고 보지만, 외환 시장은 금융 시스템을 안정시키기 위한 당국의 뜻이 가격에 반영된다. 환율이 국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안정된 수준에서 미세조정(smoothing operation)1) · 구두개입 등의 인위적 방식을 사용한다. 외환 거래 자격 역시 금융당국으로부터 라이선스를 받은 은행·신용카드사 등 일부 금융회사로 제한된다. 돈이 아무리 많아도 원하는 만큼 살 수 없으며, 많이 팔고 싶어도 마음껏 팔 수 없다. 외환 시장에서는 시장경제 논리가 제한된다. 해외 송금도 복잡하다. 한국 거주자가 해외로 송금할 경우 다음과 같은 절차를 거친다(Exhibit 2).

절차가 길고 복잡하기 때문에 개인은 높은 해외 송금 수수료를 부담하게 된다. (1)에서 (2)의 과정에서는 송금 수수료와 전신료가, (2)에서 (3)의 과정에는 중개 수수료가 발생한다. (3)에서 (4)로 넘길 때도 수취료를 지불해야 한다. 프로세스가 길어 송금에 오랜 시간이 걸리고, 구조적으로 비용이 크다(고영미, 2017).

많은 사람이 이 구조의 문제점을 오랫동안 비판했지만, 기획재정부와 금융위원회·한국은행 등 외환당국은 이 방식을 개선하지 않았다. 금융회사를 통해 해외 송금 과정을 투명하게 관리하면 국내 자금의 대규모 유출입을 감시·제어하고 환율 변동성을 낮춰 경제 안정성을 유지하기 쉬워지기 때문이다. 유학 자금이나 생활비를 송금할 때 개인은 불편을 겪지만, 안정된 거시경제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은행 간 국제 송금 결제 시스템인 스위프트(SWIFT)망2)을 통한 송금만을 허용해 왔다(Exhibit 3).

최성욱 대표 역시 현재와 같은 외환 송금 구조는 개선의 여지가 크다고 생각했다. 주로 환율의 안정과 불법적 외환 거래를 차단하기 위해 작동하는 현재 해외 송금 방식을 개인 거래에도 적용하는 것은 불합리했다. 특히 스위프트망은 실제 돈이 오가는 것이 아닌, 국제 은행 간에 메시지를 주고받는 단순 소통 파이프라인에 불과함에도, 송금을 위해 높은 수수료를 부담해야 한다. 국내 은행을 통해 해외로 송금할 경우 돈을 수취할 때까지 2~3일이 소요되며, 120만 원을 보낸다면 수수료는 6만 원에 달할 정도로 비쌌다. 게다가 국내 은행에서 일본이나 영국 은행으로 송금하는 경우에도 스위프트망 구조에 따라 미국 뉴욕 소재 은행을 거쳐야 한다는 점은 쉽게 납득하기 어려웠다. 개인이 송금 거래 내역과 신고 절차만 잘 수행한다면 정부는 스위프트망을 이용하지 않고도 외환 시장을 안전하게 관리할 수 있었다.

이런 해외 송금 문제는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 문제이기도 하다. 현재 구조상 은행 계좌가 없다면 해외 송금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동남아시아·아프리카처럼 금융 시스템이 잘 갖춰지지 않은 저개발 국가들은 은행 계좌 보유율이 30%에도 미치지 못한다. 은행 계좌가 없는 나머지 70%의 사람들이 해외로 송금할 수 있는 공식 채널은 사실상 없다. 국제연합(UN)이 2030년까지 해외 송금 수수료 인하를 지속가능발전목표(Sustainable Development Goals, SDGs)로 내건 것도 이 때문이다.

최성욱 대표는 해외 곳곳에 신용이 있는 현지 파트너를 은행 계좌가 없는 사람들의 대체 금융인으로 세운다면 금융회사를 통하지 않고서도 자유롭게 해외 송금이 가능할 거라고 생각했다. 이에 자유로운 해외 송금, ‘국경 간 외환 거래에서 발생하는 모든 비효율을 제거하겠다’는 미션을 바탕으로 회사를 설립했다. 센트비(Sentbe)는 ‘돈이 보내졌다’는 ‘be sent(비 센트)’를 뒤집은 말로 혁신적이고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의지를 담았다. 최성욱 대표는 전 세계 어디에서든 최소 5분 이내에 송금액을 수취할 수 있고, 수수료는 은행 대비 최대 90% 저렴한 외환 송금 생태계를 만들겠다고 결심했다.

최성욱 대표의 첫 관문은 외국환거래법이었다. 모든 상거래는 상법을 준수해야 하듯, 해외 송금을 포함한 모든 외환 거래는 외국환거래법의 적용을 받는다. 외국환거래법은 해외 송금을 할 수 있는 주체와 금액 등을 엄격히 제한하고 있으며, 외환당국은 해외 송금 횟수가 잦거나 금액이 큰 경우를 모니터링해 위법성 여부를 판단한다. 금융기관을 비롯하여 외국환거래를 위해 대통령령으로 정한 자격을 갖춘 곳만이 해외 송금 등 업무를 수행할 수 있으며, 나머지는 모두 불법에 해당한다.

해외 송금 시스템은 개선할 여지가 있었지만 법적으로 사업자를 규정하고 있어 센트비의 비즈니스 모델은 성립할 수 없었다. 그러나 다행히 2015년 6월 기획재정부가 ‘소액송금업 인허가제’를 도입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3,000달러 이하 소액 송금은 일정 요건만 갖추면 은행이 아니더라도 수행할 수 있도록 길을 터준 것이다. 최성욱 대표는 즉각 상표권을 등록하고 9월 회사를 설립했다. 팀빌딩이 급물살을 탔다.

저는 스스로 구조를 잘 이해하고, 정보 비대칭이 큰 분야에서 창업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환전과 송금은 어떤 프로세스로 이루어지는지, 환율 우대 기준이 무엇인지 은행원들조차 정확히 알지 못합니다. 그런데 정작 고객에게 수수료가 부과됩니다. 송금을 받아야 하는 해외는 상황이 더욱 열악합니다. 은행 계좌가 없거나 사막·정글 등 오지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많으니 돈을 수취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배를 타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해결 과제가 명확했습니다. 특히 정부가 해외 송금 규제를 완화한다는 소식을 듣고 지금이 아니면 기회를 놓칠 수 있다고 생각해 마음을 굳혔습니다.

– 최성욱 센트비 대표

끝에 동남아시아로 범위를 좁혔고, 최종적으로는 필리핀을 겨냥하기로 했다. 한국에서 일하는 필리핀 근로자 수가 많고, 현지에서 돈을 받을 사람들도 은행 계좌가 없는 경우가 태반이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필리핀 현지 전당포 등을 통해 송금하는 한편 캐시픽업 서비스를 통해 수취인에게 돈을 전달하면 많은 사용자를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보였다. 특히 산세가 험준하거나 작은 섬과 같이 접근성이 떨어지는 지역에는 돈을 직접 배달해 주는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비용·속도와 더불어 편리함까지 제공할 수 있었다. 동남아 국가 중 드물게 영어 소통이 가능하다는 점도 매력적이었다.

2016년 1월, 최성욱 대표는 갓 창업한 센트비 팀원들과 함께 책상 2개와 의자 4개만을 챙겨 서울 혜화동으로 향했다. 매주 일요일마다 열리는 필리핀 장터에서 영업에 나설 요량이었다. 낙천적이고 상대의 친절에 꼭 보답하는 필리핀 사람들의 성향을 고려해 그들의 마음부터 얻고자 했다. 가판을 설치하고 전단지를 뿌리며 관심 끌기에 나섰다. 필리핀인들은 처음에는 의아해했지만 센트비 관계자들의 친절함과 적극적인 설명에 점차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특히 센트비를 이용하면 필리핀 송금 수수료가 90%나 저렴해진다는 말에 반색했다. 한국에 거주하는 필리핀인들도 큰 불편을 겪었는지 뜨거운 반응을 보였다. 최 대표를 비롯한 센트비 관계자들은 이때부터 매주 필리핀 장터를 찾았고, 한국에 거주하는 필리핀인들의 송금 업무를 돕는 한편, 필리핀회 회장 등과 친분을 돈독히 쌓았다. 이들을 통해 입소문이 퍼지며 1~2개월 지났을 무렵엔 필리핀항공과 공동 마케팅을 진행하게 되는 등 사업 성공의 가능성을 확인했다.

센트비가 저렴한 송금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풀링(pooling)’이라는 공동 구매 방식을 도입해서다. 송금자는 매번 돈을 보낼 때마다 고액의 고정수수료를 내야 한다. 그러나 기존의 스위프트망을 이용하더라도 여러 사람의 소액 송금을 한데 모아 통합해 한 번에 보내면 고정비를 낮추는 효과를 얻을 수 있었다. 일종의 공동 구매 방식으로 송금 대행업을 수행한 것이다.


보이지 않는 규제의 손 

센트비는 국내 거주 필리핀인들과 깊은 유대감을 형성하는 한편, 좋은 사용자 경험을 제공함으로써 고객들의 인식과 관심을 넘어 실제 이용을 확대하는 단계에 도달했다. 한국에서 보내는 송금 규모가 커지자 필리핀 현지에서 돈을 수취인에게 전달할 파트너들도 폭넓게 확보할 수 있었다. 그러나 풀링 방식은 근본적으로 스위프트망에 의존한 거래이기 때문에 이 방식만으로는 고객의 송금 수수료를 더욱 낮추거나 속도를 높이는 데 한계가 있었다. 최성욱 대표는 소액송금업 인허가제가 시행되기만을 기다렸다. 정부가 이 법을 도입한다고 밝힌 지 어느덧 1년이 지나고 있었음에도 감감무소식이었다. 금융감독원 등에 문의했지만, “알 수 없다”는 무덤덤한 답변만 돌아왔다. 그는 법 도입을 기다리느니 기존 법령을 통해 외국환 거래 자격을 획득하려고 했으나, 사실상 금융회사에만 문호가 개방돼 있어 불가능했다. 손 놓고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당시 최 대표는 정부의 법 도입과 시행은 단순 발표만으로 성사되지 않는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었다. 법제처의 정부 입법 심사, 외환당국 및 유관기관 간 의사결정 과정, 업무 조율 등 법안 처리는 복잡한 행정 절차와 의사결정을 거쳐야 했다. 소액송금업 인허가제가 외환당국의 설립 근거와 충돌할 경우 법안이 처리되지 않을 수도 있었다. 실제 정부조직법에 당연한 듯 열거된 단어들을 살펴보면 한국 외환당국의 설립 목적과 근거는 ‘진흥’보다는 ‘안정’에 무게가 실려 있다. 당시 소액송금업 인허가제는 대통령이나 국회가 의지를 갖고 통과에 속도를 내는 법이 아니었기 때문에 외환당국은 법적 쟁점이 없도록 현재 법령 아래에서 일을 처리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그는 외환거래업을 수행하고 있는 국내 시중은행들과 협력해 소액송금업을 우회적으로 운영하는 방안을 찾았다. 센트비의 비즈니스 모델을 시중 은행들을 통해 수행하면 센트비는 안정적 수익 기반과 사업의 영속성을 확보할 수 있고, 은행으로서는 수익 구조를 다변화할 수 있어 윈-윈(win-win)의 결과가 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는 최성욱 대표의 오판이었다. 은행 외환 담당자들에게 수없이 전화를 걸어도 응답조차 없는 경우가 다반사였고, 지인을 통해 소개를 받아도 돌아오는 답변은 “검토해 보겠지만, 가능성은 크지 않다”가 전부였다. 은행 입장에서는 센트비의 제안을 선뜻 받아들일 수 없었다. 금융당국으로부터 인허가를 받고 사업을 운영하는 은행으로서는 새로운 사업을 도입할 경우 반드시 금융당국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 근본적 문제가 있었다. 또 센트비 모델을 도입할 경우 알토란 같은 해외 송금 수수료 수익의 자기잠식(cannibalization)이 발생할 수 있었다. 센트비는 투자금을 소진하며 정부의 입법 발표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센트비 설립을 촉진한 소액송금업 인허가제는 2015년 6월 발표 이후 2년 뒤인 2017년 6월에야 윤곽을 드러냈다. 금융감독원이 예비 사업자들의 송금 한도와 등록 의무, 심사항목 등을 담은 준비업체 대상 설명자료를 내놓고 본격적인 사업자 유치에 나선 것이다. 허들은 예상보다 높았다. 자기자본 10억 원 이상, 3억 원의 이행보증금, 부채비율 200% 이내, 한국은행 외환전산망 연결, 전자금융업자 수준의 전문인력 5명 이상, 외환전문인력 2명 이상 등의 기본 자격 요건에 정보처리 시스템, 백업(Back-up) 장치, 정보보호 시스템 구축 등 스타트업에는 버거운 수준의 자격을 요구했다. 그러나 이 발표를 기다려온 최 대표는 발 빠르게 투자를 유치하고 인력을 채용하는 등 규정 준수에 공을 들여 마침내 2017년 12월 라이선스를 취득하는 데 성공했다. 2018년은 만사형통이리라, 그의 마음은 부풀어 올랐다.


헤어 나올 수 없는 시스템의 늪 

그러나 소액송금업 라이선스는 독이 든 성배였다. 라이선스를 받는 순간부터 기존 금융 시스템이 센트비를 옥죄기 시작했다. 소액송금업 사업자는 금융회사로 분류되기 때문에 투자 유치부터 난관에 부딪혔다. 법이 시행될 때까지 2년여를 큰 매출 없이 버텨온 센트비는 곳간이 바닥나 추가 투자 유치가 절실했다. 거기에 더해 센트비와 후속 투자를 논의하던 벤처캐피탈(Venture Capital)들이 돌연 계약 불가를 언급하며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 금융회사는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에 따라 투자조합 형태로 투자하는 벤처캐피탈이 일정 수준 이상의 지분을 확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최성욱 대표는 금융회사도 투자를 받을 수 있도록 백방으로 뛰어다녔지만 모두 손사래를 쳤다. 금융위원회를 찾아가 법 개정과 예외 규정 설치를 요청했지만, 상위법인 금융업법을 개정해야 하는 사안이라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센트비를 비롯한 몇몇 스타트업의 절규만으로는 법 개정이 이뤄지지 않았다. 절망적이었다.

2018년은 가혹했다. 뾰족한 방안이 없어 몸으로 부딪히며 시간을 보냈으나, 실탄이 바닥나 폐업까지 염두에 둬야 했다. 한 해를 마무리해 가던 11월,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이 주관하는 행사에 규제개혁을 주제로 이낙연 당시 국무총리가 간담회를 개최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앞뒤 가릴 것 없이 행사가 열리는 대전행 KTX 표를 끊고 달려간 그는 간담회에서 어렵게 발언 기회를 얻어 눈물을 흘리며 절박한 심정을 호소했다. 금융회사와 전자금융사업자의 분류가 달라 투자받지 못해서 회사가 존폐 위기에 놓였다며, 최소한의 유권 해석이라도 내려달라고 요청했다. 상황을 충분히 이해했다며 이낙연 총리를 비롯해 이 자리에 모인 유관 부처 각료들도 수긍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정부에 자신의 입장을 충분히 설명했으나, 이 역시 언제 바뀔지는 알 수 없었다. 회사로 돌아온 그는 11월 23일 무거운 마음으로 결단을 내렸다. 전 직원 60명 중 40명을 구조조정하기로 한 것이다. 지난 3년간 희로애락을 함께 한 동료들이지만, 이 모두를 끌어안고 갈 수는 없었다. 그럼에도 최 대표는 담담했다. 남은 자금은 앞으로 한 달에 달려 있었다. 이 사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자신도 곧 회사를 나와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 달 동안 투자를 유치하지 못하면 회사의 문을 닫기로 했다.

그의 결기는 대단했으나, 당시 투자시장은 혹한기였다. 특히 핀테크 산업은 실패 사례가 적잖게 나오며 벤처캐피탈 업계에서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란 말까지 돌았다. 규제가 촘촘해 ‘J커브’3)는커녕 안정된 매출조차 기대하기 어려웠고, 시중은행이나 보험사·증권사 등의 도움을 받아야 성장할 수 있다는 인식이 팽배했다. 특히 핀테크 기업은 자산규모나 사용자 수에 비해 기업가치가 고평가된 경우가 많고, 정부 정책 리스크가 상존한다고 판단했다. 당시 대출형 크라우드펀딩 기업들이 여러 사회적 문제를 일으킨 점도 핀테크 기업 전반의 이미지를 악화시켰다. 투자업계 분위기는 싸늘했다.

그러나 절박함이 기적을 낳았을까. 사방팔방으로 자금을 구하러 다니던 최성욱 대표에게 구세주가 나타났다.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D3쥬빌리파트너스가 전격적으로 투자를 결정했다. 서울 성수동에서 처음 만나 고작 1시간 미팅을 나눈 게 전부였지만, D3쥬빌리파트너스는 최 대표의 열정과 센트비 팀의 경쟁력을 높이 사 첫 미팅 때 계약의향서(Letter Of Intent, LOI)4)를 작성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금융 분야의 기술 혁신과 시장 수요가 바뀌면서 핀테크 시장이 본격적으로 열리기 시작하는 시점이었다고 판단했습니다. 센트비는 스파크랩스의 액셀러레이터 프로그램에서도 주목받던 회사라 이전부터 관심이 있었고요. 한 시간 반가량 미팅에서 핵심 질문은 금융업에 대한 이해와 철학이었습니다. 센트비는 수익모델이 약하기 때문에 외환 송금 과정에서 발생하는 환차익을 어떻게 확보할 것이냐는 질문을 던졌는데, 최성욱 대표는 환차익·환차손 리스크를 없애는 것이 최우선 목표라고 답변을 주셨습니다. 금융업의 본질을 이해하고 있고, 배가 고파도 철학을 확고히 지키는 회사라고 판단해 투자를 집행하게 됐습니다.

– 임성훈 D3쥬빌리파트너스 제너럴파트너

당시 핀테크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업계의 의구심이 컸던 데다 외환 시장에 대한 낮은 이해도가 투자 유치를 가로막았던 측면이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보면 산업의 성장 가능성보다 팀의 경쟁력을 높게 보는 것 같습니다. 센트비 팀은 투자자들의 좋은 평가를 받은 것이고요. 창업 이후 2018년까지 지옥과도 같았지만, 매를 먼저 맞아 다행이기도 합니다. 당시 기업가치를 높게 평가받아 큰 투자를 받은 스타트업들은 대부분 사라졌거든요. 이에 비해 센트비는 강하게 성장했고, 법령을 밀도 있게 해석한 끝에 B2B(Business to Business) 해외 결제 서비스도 선보이게 됐습니다.

– 최성욱 센트비 대표


시스템의 해석과 본질적 접근 

최성욱 대표는 금융업의 본질을 놓치고 있었다고 반성했다. 금융 산업을 혁신하려면 사용자 가치와 기존 시스템의 문제점만 바라볼 게 아니라, 금융 시스템의 작동 원리부터 따져야 한다는 점을 깨달았다. 금융업은 금전 거래를 통한 이자·수수료 수입을 확보하는 것이 주된 사업이므로 신용(credit)으로 작동한다. 신용은 충분한 자본금과 업계 평판, 신뢰할 수 있는 거래 기록, 안정된 자금 흐름 등 여러 요인으로 결정된다. 주택담보대출을 받을 때 은행이 구매자 담보 물건의 가치와 위험성, 자금조달 계획, 소득 수준, 소득의 지속성 등을 따지는 것처럼 금융회사 간 거래도 재무적·비재무적 상황에 따라 거래 가부 여부나 규모, 가격(금리) 등이 결정된다. 핀테크 기업이 기술력으로 무장했음에도 투자를 받거나 파트너십을 체결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이유도 신용이 부족해서다.

금융업계는 보수적이다. 정부가 산업의 규칙을 정하기 때문이다. 새로 등장한 기업이 차별화된 서비스나 혁신적 기술을 선보인다고 해도 기존 시스템을 대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소비자 입장에서도 거래 속도가 빠르고 비용이 싸다는 이유만으로 신뢰할 수 있는 기존 금융 시스템을 대체하지 않는다. 금융업계 신참인 센트비 역시 이 같은 금융 생태계와 문화를 벗어날 수는 없었다. 투자 유치로 숨통이 트인 그에게는 사업 확대를 위한 신용 확보가 필요했다. 자금력이 풍부하지도, 업력이 오래되지도 않은 센트비가 단기간에 신용을 확보하려면 유력한 파트너를 많이 확보하는 것 외에는 답이 없었다.

최 대표는 네트워크 확대를 위해 해외로 눈을 돌렸다. 보수적인 국내 금융업계에서 사업적 파트너십을 맺기까지 오랜 시간이 필요했던 데다, 안정되고 폭넓은 글로벌 송금 채널 확보가 필요하다는 판단에서였다. 소득이 많고 금융거래가 활발한 사람일수록 은행에서 더 큰 돈을 빌릴 수 있는 것처럼 외환 거래에서도 신용이 높으면 큰 금액을 저렴한 비용에 거래할 수 있다. 해외 송금을 더 많이, 더 저렴하게 하려면 외환 거래 기업 간에 신용 거래가 작동해야 했다.

스위프트망을 이용하지 않고도 저렴하고 빠르게 해외 송금을 할 수 있는 방법은 ‘풀링(pooling)’과 더불어 ‘포스트펀딩(post-funding)’, ‘프리펀딩(pre-funding)’ 등의 방식이 있다.

풀링은 여러 고객의 송금 요청을 한데 모아 일괄적으로 송금하는 방식이다. 공동 구매 방식이므로 송금에 다소 시간이 걸릴 수 있지만, 수수료를 절감할 수 있고 송금 건수가 많을수록 효율적이다. 프리펀딩은 미리 송금하려는 지역의 자금을 확보해 놓고, 고객의 송금 요청이 들어오면 확보해 놓은 자금으로 외환을 전달하는 방식이다. 송금 속도가 빠르고, 예측 가능한 자금 흐름으로 효율적인 운영이 가능하지만, 환율 변동에 따른 손실 등 리스크가 발생할 수 있다. 포스트펀딩은 고객이 송금을 요청하면 송금 국가의 현지 파트너에게 이를 알리고 현지에서 준비된 자금이나 신규 모금한 자금으로 수취인에게 돈을 전달하는 방식이다. 이는 파트너사 간에 잔고에서 서로 회계상 상계 처리를 하면 되기 때문에 실제로는 돈이 오가지 않아 사실상 비용 없이 송금 업무를 수행할 수 있다. 송금 업체로서는 유동성 관리에 유리하며, 고객 요청에 따라 실시간 또는 지연 없이 송금이 가능하다. 송금 금액 변동에도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한편 환율 변동의 영향을 받으며 송금 수요 예측이 어렵기 때문에 자금이 묶이는 단점이 있다.

빠르고 저렴한 송금을 위해서는 송금 요청 공유 즉시 사실상 무원가로 송금할 수 있는 프리펀딩이 가장 유리하며, 실제 소액 송금 산업에서도 가장 선호되는 방식으로 자리 잡고 있다. 송금자의 요청만으로 수취인에게 돈을 전달하기 위해서는 상호 회계적으로 상계할 수 있는 수준의 높은 신뢰 형성이 필요하다. 특히 외환당국은 외환 송금 기업이 환차익으로 수익을 얻을 경우 제재를 가하고 있어, 국내에서 환변동은 무조건 헷징(hedging)5)하고 있기에 거꾸로 환율 리스크도 낮다(Exhibit 4).

 

송금액과 관계없이 고정비는 동일하기 때문에 송금액을 모아 더 큰 금액을 만들어 한꺼번에 송금하면 수취인은 더 큰 돈을 받을 수 있습니다. 프리펀딩과 포스트펀딩은 결국 신용과 신뢰의 문제로 100의 자원으로 1,000만큼의 자금을 처리할 수 있는가, 얼마만큼 더 큰 금액을 송금할 수 있는가의 문제로 귀결됩니다. 센트비는 100개 이상(2024년 기준)의 회사와 안정적인 파트너십을 오랜 기간 유지하고 있어 이제는 신규 진입자가 모방하기 어려운 사업 구조를 갖추고 있습니다. 대형 은행들은 외환 거래 자격보다 더 엄격한 은행법의 규정에 따라 자금의 출처와 용도를 철저히 기록해야 하기 때문에 이 같은 비즈니스 모델을 수행하기 어렵습니다. 저희는 스타트업으로서 조금 더 자유롭게 사업을 확장할 수 있습니다.

– 최성욱 센트비 대표


거인에게 밟히지 않고 어깨에 올라타려면 

센트비가 국제적 핀테크 기업으로서 신용을 얻게 된 계기는 ‘머니그램(MoneyGram)’과 손을 잡으면서부터다. 머니그램은 해외 P2P(Peer to Peer, 개인 간 거래) 지불 및 송금을 주력으로 하는 미국계 핀테크 기업이다. ‘아메리칸 익스프레스’의 증손회사로 1988년 설립됐다. 머니그램은 글로벌 여행 대기업들과 협업해 해외 소액 송금 업무를 진행했으며, 전 세계 지역 사무소가 있을 정도로 업력이 오래되고 업계 평판이 좋으며, 활동 지역이 광범위했다. 당시 센트비가 거래하는 국가가 17개국이었던 데 비해 머니그램은 200개국에 달했다. 센트비는 2018년 말 싱가포르에서 열린 핀테크 산업 포럼에서 머니그램과 만나 파트너십을 논의했다. 이는 센트비가 금융회사로서 자격을 갖추는 전기가 될 수 있었다.

당시 머니그램은 아시아 등 신흥 시장의 외화 송금 수요 증대에 발맞춰 실시간 송금과 낮은 수수료, 고객 중심의 서비스를 내세우며 사업 확장에 나섰다. 머니그램은 한국을 중심으로 동남아시아 국가들로 해외 송금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는 데 주목하는 한편, 센트비의 디지털 송금 능력과 운영 역량을 높이 평가하고 먼저 협업을 제안했다. 머니그램은 상호 협력은 물론 경영 자금까지 지원하겠다고 나서며 센트비에 러브콜을 보냈다. 당시 국내 투자업계에는 핀테크 기업에 운전자본 대출이 없었기 때문에 이 제안은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더구나 머니그램과 손잡는다면 신용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낮은 원가로 즉시 송금을 할 수 있는 프리펀딩을 확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였다.

다만 이는 센트비가 머니그램과 호혜적인 관계 구축을 가정했을 때 얻을 수 있는 이득이다. 머니그램은 센트비뿐만 아니라 싱가포르에서 만난 몇몇 핀테크 기업들에도 동일한 조건의 제안을 내밀며 다양한 파트너십 선택지를 열어두었다. 가장 좋은 조건과 비전을 가진 기업을 고르겠다는 것이다.

최성욱 대표는 센트비를 창업할 때 선택받기보다 선택하는 삶을 살겠다고 결심했다. 선택이 독선이 되지 않으려면 결국 남의 선택과 나의 선택이 일치하는 곳에서 길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달콤한 제안에는 이기적 본성이 담겨있기 마련이다. 서로의 선택이 일치하는 길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는 센트비 본연의 비즈니스 가치를 해치지 않으면서 머니그램과 어깨를 걸고 성장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했다.

센트비는 한국과 필리핀을 중심으로 한 외환 송금 서비스로 두각을 드러내고 있었지만 글로벌 시장 진출을 위한 자금력과 네트워크가 부족했다. 이는 머니그램의 탄탄한 글로벌 네트워크와 풍부한 경험으로 채울 수 있었다. 센트비는 머니그램의 광범위한 글로벌 네트워크를 활용해 빠르게 해외 시장에 진출하고, 서비스 보장 범위를 확대하는 한편 컴플라이언스 및 리스크 관리 노하우를 학습해 시스템을 고도화할 수 있다. 머니그램과의 협업을 통해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면 신뢰가 확보되고, 나아가 자금 조달도 한층 수월해질 수 있다. 한편 머니그램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질 경우와 파트너십이 해지되는 경우, 사업에 큰 타격을 입을 수 있고, 머니그램의 시스템과 프로세스에 맞춰 사업을 운영해야 해서 독자적 서비스에 제한을 받을 수 있다. 또 머니그램의 경쟁사와는 손을 잡을 수 없어 운동장이 좁아지는 결과로 이어지는 것도 신경 써야 했다.

머니그램 입장에서는 급변하는 핀테크 시장에서 아시아를 중심으로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고 있었기 때문에 디지털 기술과 필리핀 지역 네트워크를 보유한 센트비와 협업의 단추를 꿸 만했다. 또 신규 시장 진출 시 재무적 부담을 완화할 수 있고, 산업의 빠른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하는 데 센트비를 앞세울 수 있었다. 이런 기대와는 달리 센트비가 자신과의 파트너십을 발판 삼아 시장 내 신뢰를 쌓아 더욱 성장한다면 더 많은 고객을 확보해 독립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다. 이를 차단하기 위해 또 다른 경쟁사와의 파트너십을 가로막을 경우 센트비의 성장이 정체돼 동남아시아 시장 확대 전략은 실패로 돌아갈 가능성이 있다. 머니그램이 독점 계약을 앞세운다면 센트비는 파트너십에 적극적으로 임하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특히 센트비가 과욕을 부린다면 머니그램의 브랜드 이미지를 훼손시킬 리스크와 더불어 경쟁사들도 유사한 파트너십을 통해 시장에 진출함으로써 경쟁이 심화될 수 있다. 또다시 선택받는 입장에 놓인 최성욱 대표는 곰곰이 생각한 끝에 결론을 내렸다.


파트너사와의 친분과 경쟁, 균형점 찾기 

최성욱 대표는 협력 관계이자 경쟁 관계에 놓인 회사들과의 파트너십을 전방위로 체결함으로써 센트비의 성장을 이끌었다.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소액결제 시장이 성장하고 있어 상호 시너지 효과를 창출하기 유리한 환경으로 판단했다. 센트비는 필리핀에 비해 인도네시아·인도·네팔 등의 국가에는 송금 네트워크가 상대적으로 빈약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해당 국가들에 외화 송금 네트워크를 보유한 핀테크 기업들과 협력해 송금 요청을 수행하기로 했다. 말레이시아에서 필리핀으로의 송금 요청이 경쟁사를 통해 센트비로 접수되면 센트비는 자체 필리핀 송금 네트워크를 활용해 수취인에게 돈을 전달할 수 있는 방식으로 경쟁·협력 관계를 맺었다.

핵심 파트너인 머니그램에는 한국·중국 간 송금이나 캐시픽업 서비스를 확대해 파트너십의 성과를 공유했다. 또 러시아와 우즈베키스탄·카자흐스탄·키르기스스탄·튀르키예·몽골 등 은행 계좌 개설률이 낮은 국가들로 머니그램의 캐시픽업 서비스를 확장함으로써 비즈니스의 상호의존성 및 신뢰를 높이는 데 주력했다.

센트비는 일종의 도매공급자(wholesaler) 역할로 송금 요청 중 일부를 다른 송금 업체에 제공하고 수익의 일정 부분을 지급하며, 거꾸로 타 송금 업체의 요청을 수행하는 유통 채널(role of retailer)로 역할하면서 수수료를 수취한다. 각 송금 업체가 가진 송금 요청을 공유함으로써 고객들은 지역을 불문하고 송금할 수 있으며, 이는 전체 소액 송금 시장의 성장으로 이어졌다. 각 송금 업체들은 더 많은 송금인을 확보하고자 더욱 향상된 서비스를 제공하려고 경쟁하기 때문에 소비자 편익 증대와 더불어 산업 발전에도 기여했다. 센트비는 송금 업체 간 협력 관계가 강화되면서 공동 마케팅, 기술 개발 등 더욱 깊은 협업도 가능해졌다. 여러 송금 업체와 협력할 경우 마케팅 및 시스템 개발 비용을 절감할 수 있으며 폭넓은 협력으로 특정 파트너에 의지하지 않고도 수익을 창출하고 위험을 분산할 수 있게 됐다(조일명 외, 2023).

만약 특정 송금 업체가 전략적으로 한국 시장을 공략할 경우 센트비는 파트너십을 중단해 사업적 균형을 맞추고 있다. 이런 파트너십 온앤오프(on and off) 방식은 비단 센트비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소액 송금 시장의 통상적인 룰로 자리 잡았다. 센트비는 이러한 형태의 파트너사 100여 개를 확보하고 있으며, 파트너사 간 API(Application Programming Interface)를 통해 송금 요청 및 교환을 진행함으로써 실시간 예약 관리, 송금 속도 향상 등을 일구었다. 센트비와 최초 해외 송금 파트너십을 맺은 메트로뱅크나 시장 확대의 발판이 된 머니그램 역시 한국 시장에 진출했으나, 이 같은 채널링 서비스를 통해 경쟁 관계이면서도 상시적 협력 관계를 맺고 있다. 센트비의 거래 기반의 신뢰 네트워크는 포스트펀딩·프리펀딩과 같은 저원가성 해외 송금을 늘리는 기반이 됐다(Exhibit 5).

센트비는 폭넓은 파트너십을 바탕으로 안정된 거래액과 매출을 크게 일으키며, 국내 소액 송금 시장 점유율 40%에 달하는 1위 사업자로 올라섰다. 국내 소액 송금 사업자는 법 개정 이후 난립하며 한때 40여 개에 달했으나, 치열한 경쟁과 안정된 수익 확보에 실패하며 현재는 한 손에 꼽을 정도밖에는 남지 않았다.

최성욱 대표는 사업이 안정되면서 아무런 파트너 없이 사업을 꾸리던 2016년이 떠올랐다. 한국을 방문한 필리핀 송금 업체를 수소문해 식사 장소까지 찾아가 미팅했던 일을 비롯해 수백여 통의 메일을 보냈으나 단 한 통도 회신받지 못한 적도 있었고, 무작정 싱가포르·홍콩의 금융회사들을 찾아갔다가 문전박대를 당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는 어엿한 국내 1위 사업자로 성장해 해외에서도 인지도를 갖추게 됐다. 이제는 파트너사들과 맺고 있는 채널링 서비스를 시중은행이나 저축은행 같은 제2금융권으로도 넓히며 사업을 확대하기 시작했다.


새로운 선택과 균형점, B2B 고객 찾기 

그러나 해외 송금 시장에 여전히 개선할 여지는 컸고, 최성욱 대표의 허기는 아직 채워지지 않았다. B2C(Business to Consumer) 시장에서는 소액 송금 서비스를 이용하는 고객층이 날로 두터워지는 데 비해 B2B(Business to Business) 시장은 여전히 스위프트망에 의존하고 있었다. 센트비가 거래액과 수익을 늘리려면 기업 고객을 공략할 필요가 있었다. B2B 시장의 강점은 뚜렷했다. B2C는 주로 외국인 근로자의 임금이나 유학경비 등 범위가 작고 금액 규모도 크지 않은 데 비해, B2B 시장은 결제대금 등 송금 규모가 크고 빈도가 잦은 것이 특징이다. 그래서 스위프트망을 이용하지 않아 수수료가 적고 송금이 빠른 센트비의 장점을 충분히 부각할 수 있을 것으로 보였다. 특히 수출입이나 해외 지사 운영 등 여러 산업 분야의 필요를 충족하면 고객 포트폴리오를 다변화할 수 있을 것으로도 기대했다. 센트비가 머니그램과 협력하며 대외 신뢰도가 크게 향상된 것처럼 이름이 알려진 기업 한두 곳과 거래를 트면 전문성을 대외적으로 알려 시장 신뢰를 확보하고 브랜드 이미지를 끌어올릴 수 있을 것으로 바라봤다.

그러나 모든 일은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듯, 기업 고객들의 니즈는 예상과 전혀 달랐다. 센트비가 기업 고객을 대상으로 해외 송금에 나선다는 소문이 돌자 조세 회피나 자산의 해외 밀반출을 염두에 둔 고객들이 먼저 접근하기 시작했다. 암호화폐나 도박사이트 자금 송금을 도와달라는 요청까지 받으면서 최 대표는 적잖게 당황했다. 외환당국이 가장 우려하는 종류의 거래 요청이 빗발쳤고 그는 이런 제안들을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윤리의 문제는 물론 자칫 사업 근간인 외환당국의 인허가와 글로벌 네트워크를 잃을 수도 있었다. 금융 산업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신용이라는 점을 되새겼다.

최성욱 대표는 기업 고객들이 저렴하고 빠른 송금보다는 안정되고 신뢰할 수 있는 서비스를 선호한다는 점을 공략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B2C 시장과는 다른 환경에 맞춰 고객 니즈를 분석하고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앞세워 센트비의 경쟁력을 강화해 나가기 시작했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다. 최 대표는 선택하기 위한 삶을 위해 다시 선택받을 준비를 시작했다. 규제가 켜켜이 둘러싸인 금융 산업에서 핀테크 스타트업의 도전은 어디까지 성공할 수 있을까. 센트비의 비즈니스 모델이 금융 시스템으로 자리 잡을지의 여부는 현재진행형이다.

현재 B2B 해외 송금 시장에 뛰어든 기업은 없고, 아직 제도적으로 정비되지 않았습니다. 센트비는 B2C 시장에서 쌓은 노하우와 기존 법령을 새롭게 해석해 만든 비즈니스 모델로 새롭게 B2B 시장으로 나아가고자 합니다.

– 최성욱 센트비 대표


[APPENDIX]

외국환거래법 제2장 제8조(외국환업무의 등록 등)

① 외국환업무를 업으로 하려는 자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외국환업무를 하는 데에 충분한 자본ㆍ시설 및 전문인력을 갖추어 미리 기획재정부장관에게 등록하여야 한다. 다만, 기획재정부장관이 업무의 내용을 고려하여 등록이 필요하지 아니하다고 인정하여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금융회사 등은 그러하지 아니하다.

② 외국환업무는 금융회사 등만 할 수 있으며, 외국환업무를 하는 금융회사 등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그 금융회사 등의 업무와 직접 관련되는 범위에서 외국환업무를 할 수 있다.

정부조직법 제27조(기획재정부)

① 기획재정부장관은 중장기 국가발전전략수립, 경제ㆍ재정정책의 수립ㆍ총괄ㆍ조정, 예산ㆍ기금의 편성ㆍ집행ㆍ성과관리, 화폐ㆍ외환ㆍ국고ㆍ정부회계ㆍ내국세제ㆍ관세ㆍ국제금융, 공공기관 관리, 경제협력ㆍ국유재산ㆍ민간투자 및 국가채무에 관한 사무를 관장한다.

한국은행법 제1조(목적)

① 이 법은 한국은행을 설립하고 효율적인 통화신용정책의 수립과 집행을 통하여 물가안정을 도모함으로써 국민경제의 건전한 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

② 한국은행은 통화신용정책을 수행할 때에는 금융안정에 유의하여야 한다.

금융위원회의 설치 등에 관한 법률 제1조(목적)

이 법은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을 설치하여 금융 산업의 선진화와 금융시장의 안정을 도모하고 건전한신용질서와 공정한 금융거래 관행(慣行)을 확립하며 예금자 및 투자자 등 금융 수요자를 보호함으로써 국민경제의 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


[주석]

1. 스무딩 오퍼레이션(smoothing operation)이란 외환 시장에서 환시세는 원칙적으로 시장의 수급에 결정되지만, 환율의 급격한 변화를 막기 위해서 중앙은행이 시장에 개입하는 것을 말한다.
2. Society for Worldwide Interbank Financial Telecommunication의 줄임말로 세계 200여 개국 1만 1,000여 개 금융회사가 돈을 지급하거나 무역대금을 결제하는 데 활용하는 전산망이다. 세계 각국의 송금망은 스위프트를 거친다.
3. 하워드 러브(Howard Love)가 제시한 스타트업의 성장 모형을 말한다. 창업 초기에는 투자와 개발로 인해 손실이 발생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수익이 급격히 증가하는 패턴이 알파벳 ‘J’와 유사해 J커브(J-curve)란 이름이 붙었다.
4. LOI(Letter Of Intent)는 계약에 앞서 참여 의사를 표시하는 것으로, 최종 계약 전 당사자들이 협약의 대략적인 사항을 문서화하는 것이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5. 헤지(hedge)란 환율, 금리 또는 다른 자산에 대한 투자 등을 통해 보유하고 있는 위험자산의 가격변동을 제거하는 것을 말한다.

 

[참고 문헌]

고영미(2017). “핀테크 소액해외송금업의 도입과 관련한 법적 연구- 금융거래 안전 및 소비자 보호를 중심으로”, 안암법학, 52, 219-255.
금융위원회의 설치 등에 관한 법률 제1조, 법률 제19700호, 2023. https://www.law.go.kr
김동호(2022.02.16). “기업의 해외 진출 비용 줄여주는 핀테크 서비스 주목 끌어”, 서울경제.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11/0004019276?sid=101
외국환거래법 제2장 8조, 법률 제18244호, 2021. https://www.law.go.kr
정부조직법 제27조, 법률 제20289호, 2024. https://www.law.go.kr
조일명·이창원(2023). “공급망관리에서 전략적 파트너십이 기업성과에 미치는 영향”, 글로벌경영학회지, 20(2), 107-129.
한국은행법 제1조, 법률 제19409호, 2024. https://www.law.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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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진

김유경

김유경

김유경은 놀유니버스(NOL-Universe)의 커뮤니케이션실 실장으로 대외 메시지 수립과 리스크 관리, 홍보전략, 산업 생태계 분석 등 업무를 맡고 있다. 중앙일보에서 IT · 스타트업 · 자본시장 등 경제·산업 분야 기자로 일했고, 삼프로TV · 공인회계사회 · 폴인에서 출연진 및 필진으로 활동했다. 포브스아시아 30 under 30 한국 선발 위원으로도 활동했다. 고려대학교 일반대학원 과학기술학협동과정에서 박사 과정 중이다. 기술과 비즈니스가 미래를 앞당긴다는 믿음으로 AI와 IT, 비즈니스 모델, 사업전략, 조직관리, 투자 관련 공부를 하고 있다. 대학생 시절 e커머스와 외식 스타트업을 창업한 바 있다.

최화준

최화준

최화준은 AER지식연구소 선임연구원이다. 주요 연구 대상은 창업생태계와 창업실패이다. 다국적 기업과 스타트업 현장을 모두 경험하고 연세대학교 일반대학원 기술경영학협동과정에서 공학박사를 받았다. 이코노미스트 · 포춘코리아에서 필진으로 활동하고 있다. 통계와 영문학을 좋아하며 생각의 유연성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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