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함은 더 이상 더할 것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더 이상 뺄 것이 없는 상태”라는 생텍쥐페리(Saint Exupery)의 말은 최근 제품 디자인의 화두 중 하나인 미니멀리즘(minimalism)의 의미를 잘 표현해준다. 로우로우(RAWROW)는 이러한 제품 디자인의 단순화를 넘어 경영 방식에 미니멀리즘(managerial minimalism)을 도입함으로써 일관된 브랜드 아이덴티티(brand identity)를 성공적으로 구축·유지해 나가고 있다. 이제 막 5년차에 접어든 로우로우는 일반적인 스타트업과 달리 단기적 매출 증대를 통한 빠른 성장의 유혹을 극복하고 장기적 관점에서 브랜드 관리를 비교적 체계적으로 수행해온 것으로 평가받는다. 또한 30대 중반의 젊은 기업가가 보여준 끊임없는 도전과 열정, 그리고 사회적 문제 해결을 위한 작지만 울림이 있는 노력들은 창업을 꿈꾸는 학생들의 기업가 정신을 제고하는 데에도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본 사례는 기본적인 마케팅 과목(마케팅 관리, 소비자 행동론 등)을 수강한 학부와 MBA 학생들을 대상으로 진행되는 브랜드 전략과 관련된 과목(브랜드 관리, 브랜드 커뮤니케이션 등)에서 효과적으로 활용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중소기업들은 유통매장 확대, 단기 프로모션 등 초기 매출 증대에 직접적 영향을 주는 단편적인 마케팅 활동에 집중하지만, 점차 규모가 성장함에 따라 브랜드 중심의 통합된 전략으로 전환하는 이른바 단계적 브랜드 집중화(stepwise brand orientation) 전략을 따르게 된다. 하지만 로우로우는 통상적인 중소기업들의 브랜딩 과정과 달리 태생부터 통합적 브랜딩 활동에 집중하여 고객들의 긍정적인 반응을 성공적으로 끌어냄으로써 중소기업이 취할 수 있는 브랜드 전략의 또 다른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이는 로우로우가 진행한 모든 브랜딩 활동이 바람직했고, 타 중소기업들이 따라야 할 브랜드 전략의 모범답안을 제시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로우로우의 브랜드 컨셉 선정 과정과 이를 중심으로 진행한 통합 마케팅 커뮤니케이션(integrated marketing communication, 이하 IMC) 활동 및 브랜드 확장 전략(brand extension strategy)은 보는 관점에 따라 분명 옳고 그름의 시각차가 있어 보인다. 오히려 이러한 논란의 여지가 있는 내용들이 사례 분석의 흥미를 더해주며, 이와 관련된 토의 문제를 제시함으로써 학생들에게 다양한 비즈니스 환경에서의 분석력과 문제 해결 능력을 배양시키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한편, 본 사례 연구는 브랜드 전략 분야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프레임들(framework) 중 하나로 손꼽히는 ‘브랜드 컨셉 매니지먼트(brand concept management, 이하 BCM)1)’를 적용하여 작성되었다. BCM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기업이 브랜드 이미지를 효과적으로 관리 및 통제할 수 있는 전략적 방향을 알려주는 규범적 프레임(normative frame)이다(Appendix 1). 세 가지 유형의 브랜드 컨셉 (즉, 기능적·상징적· 경험적 컨셉) 중 ① 하나를 선택하고(selection), ② 이를 시장에 도입한 후(introduction), ③ 정교화 과정을 거쳐(elaboration), ④ 더욱 강화하기 위한 브랜드 이미지 포지셔닝 전략을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fortification). 즉, 컨셉의 일관성을 유지하면서 브랜드 이미지를 효과적으로 구축·실행·관리할 수 있는 전략을 제시하고 있다. 비록 학생들이 본 사례 연구의 토의 과제를 해결하는 데 BCM의 이론적 배경이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강사가 해당 내용을 사전에 숙지하고 사례의 전체적 흐름을 BCM으로 설명한다면 학생들이 나무에만 집착한 나머지 전체적인 숲을 보지 못하는 한계를 극복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Q1. 브랜드 컨셉(brand concept)은 일반적으로 기능적 컨셉, 상징적 컨셉, 경험적 컨셉으로 나뉜다. 이중 로우로우가 선택한 브랜드 컨셉은 무엇이며, 시장 상황을 고려할 때 바람직한 선택이었는지 평가하라.
Q2. 로우로우는 중소기업들이 일반적으로 도입하는 단계적 브랜드 집중화 전략 대신, 시장 출시 시점부터 통합적 브랜딩 전략을 도입했다. 로우로우의 이러한 차별화된 브랜딩 전략이 가능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인지 설명하라.
Q3. 로우로우의 브랜드 컨셉은 R BAG의 출시와 동시에 도입되었다. IMC 전략의 관점에서 로우로우의 마케팅믹스 활동들(product, price, place, promotion)이 바람직했는지 평가하라.
Q4. 로우로우는 신발, 안경, 모자 등으로 브랜드를 확장했다. 이러한 로우로우의 브랜드 확장 전략이브랜드 컨셉의 강화 측면에서 바람직한 전략이었는지 각 항목별로 평가하라.
“본질만 남기고 다 빼라!” – 로우로우(RAWROW)의 브랜드 마케팅 사례
2015년 4월, ‘로우로우(RAWROW)’가 한국 패션잡화 브랜드로는 최초로 페이스북 본사 팝업 매장(pop-up shop)에 입점했다. 다음 달엔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MOMA)의 아트 스토어에도 입점했다. 2011년 월세 30만 원의 3평 남짓한 사무실에서 자본금 2천만 원으로 시작한 로우로우가 불과 5년 만에 연매출 40억 원을 기록하며 12개국에 수출하는 기업으로 성장했다. 흥미롭게도 로우로우의 모든 해외 진출이 제품 구매자들의 소개로 성사되었다고 한다. 패션잡화 카테고리의 치열한 경쟁 속에서 로우로우가 주목받을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구매고객들이 자발적으로 입소문을 내고, 해외 바이어들이 먼저 연락하게 하며, 입점 제안서 한 번 쓰지 않고 여러 매장에 입점할 수 있었던 이유는 도대체 무엇일까?
본질에 충실한 브랜드를 만들자!
“그런데 이걸 왜 하는 겁니까?”
대기업 패션사업부에 근무하는 30대 초반의 상품기획자(MD) 이의현. 그의 질문에 상사는 어이없다는 듯 한마디 툭 내뱉었다.
“몰라서 물어? 당연히 매출 때문이지.”
상사의 말에 이의현은 가슴이 답답했다. 그의 평소 지론은 ‘돈을 버는 것은 일의 결과일 뿐, 일의 방향과 의미를 알려주지 못한다’는 것. 결국 2011년 여름, 1년간의 고민 끝에 비슷한 생각을 가진 또래의 마케터, 상품기획자, 디자이너 등 5명과 함께 패션 아이템에 관련된 창업에 도전했다(로우로우의 주요 사건 히스토리 Appendix 1 참조).
이의현 대표는 첫 출발부터 자신만의 브랜드 철학을 세우는 것을 가장 중요한 목표로 삼았다. 고객들은 제품을 사는 것이 아니라 회사의 생각을 사는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이를 토대로 ‘사물 본연의 순기능에 집중하여 불필요한 요소를 제거함으로써 소비자에게 좀 더 단순하고 편리한 삶을 제공하는 브랜드’를 만들겠다는 철학을 세웠다.
이렇듯 강력한 브랜드 철학을 바탕으로 패션잡화 브랜드 ‘로우로우’가 탄생했다.
로우로우(RAWROW)는 ‘날것’을 뜻하는 ‘raw’와 ‘행렬’을 뜻하는 ‘row’의 합성어로, ‘본질의 반복’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의현 대표는 사물의 본연에 집중하는 브랜드 철학을 실천하기 위한 브랜드 아이덴티티(brand identity, 이하 BI)로 세 가지 핵심가치, 즉 ‘essence(본질), simplicity(단순함), fun(즐거움)’을 정했다. 로우로우라는 브랜드명은 이의현 대표가 ‘본질’과 관련된 simple, natural, normal, raw 등 4가지 키워드를 조합하는 과정에서 착안한 것이다. 이는 본질, 단순함, 즐거움을 추구함으로써 고객들에게 최상의 날것(raw)을 제공하는 것이 기업의 올바른(right) 생각이라는 브랜드 철학을 담은 것이라 할 수 있다(Exhibit 1).
“R BAG은 단순한 가방입니다”
로우로우가 2012년 2월 시장에 처음 출시한 제품은 가방 브랜드인 ‘R BAG’이다. 가방 중에서도 백팩을 가장 먼저 출시했다. 이의현 대표는 백팩이야말로 제품 본연의 순기능에 집중하는 BI를 가장 잘 반영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또한 당시 백팩 시장은 빠른 속도로 성장하며 소비자에게 다양한 혜택을 제공하는 백팩 브랜드들이 많았다(Appendix 2). 특히 가치소비에 대한 소비자의 관심이 증가하면서 실용성을 강화한 기능성 백팩에 대한 수요가 높았다(Exhibit 2). R BAG을 개발하게 된 동기를 묻자 이의현 대표는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제가 창업하기 전에 어떤 워크숍에 갔었는데, 거기 계신 분들 서른 명 중 80% 이상이 ‘저희는 단순한 가방이 아닙니다, OO입니다’라고 말하는 거예요. 저는 속으로 ‘가방이 가방이지, 뭐가 또 아니야’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저희는 가방의 본질, 가방의 원형부터 고민했습니다. 심플함과 기능성을 고민하다가 결국 R BAG을 처음으로 출시하게 되었죠.”
로우로우는 R BAG을 개발하기 위해 지게, 보자기에서부터 모세 이야기에 나오는 요람의 모양에 이르기까지 가방의 원형이 무엇인지 고민했고, 결국 가방의 본질은 ‘드는 것, 담는 것, 보호하는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제품을 구성하는 각 요소들은 이러한 가방의 본질과 관련하여 존재의 이유가 명확해야 하며, 그렇지 않다면 불필요한 속성으로 간주하여 제거했다. 로우로우는 고객들에게 “이것이 좋다”가 아닌 “이래서 좋다”는 논리적 근거를 만들어주고자 노력했다. 그 컨셉을 구현하는 수단으로 가장 먼저 가방을 선택했다. 불필요한 것은 모두 덜어내고 ‘드는 것, 담는 것, 보호하는 것’이라는 본질에 충실한 ‘가장 가방다운 가방’을 만들기로 했다. 모양새보다 쓰임새에 집중한 것이다.
손잡이를 크게 만들어 쉽게 들 수 있게 했고, 내구성과 방수성이 뛰어난 원단과 노트북 컴퓨터를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는 잠수복 소재를 사용했다. 모두 다른 브랜드보다 두 배가량 비싼 자재였다. R BAG은 백팩(backpack), 크로스(cross), 토트(tote)의 세 가지 형태로 활용할 수 있는 장점이 있으며, 내부에는 물통이나 우산, 노트북, 볼펜 등 다양한 물품을 안전하고 편리하게 수납할 수 있도록 디자인했다. 또한 가장 솜씨 좋은 기술자를 수소문하여 찾아가 제작을 의뢰했다. 처음에는 주문량이 적어 거절당했지만 여섯 차례나 찾아가 매달린 끝에 결국 승낙을 받았다.
로우로우는 불필요하게 높은 가격1)도 가방의 본질과 먼, 반드시 제거해야 할 속성으로 보았다. 패션 가방에 거품이 적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생산 초기 물량이 많지 않아 원가율이 37%(패션업계 평균 약 30%)가 넘어가자 가격을 올릴까 하는 고민도 잠시 했지만, 마진을 적게 남기 더라도 소비자와의 신뢰 구축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해 99,000원의 합리적인 선에서 결정했다. 일부 소비자들이 로우로우의 영문명을 ‘lowlow’로 오해해서 저렴한 제품이라 기대한 탓에 초기에는 가격에 대한 거부감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실제 구매한 고객들은 소재, 디자인, 기능성을 고려할 때 로우로우 제품의 가성비가 매우 좋다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제품 출시 초기에 고객들의 이러한 긍정적 구매 후기가 SNS를 통해 확산되면서 브랜드 홍보 및 매출 증대에 큰 기여를 했다. 초기 자본금 2천만 원을 들여 300개를 제작하는 것으로 시작한 가방은 출시 1년 동안 3만여 개가 팔려 35억 원의 매출을 기록할 수 있었다.
R BAG의 매출 증가에 힘입어 신사동 가로수길에 있던 스튜디오 분장실 한쪽의 3평 남짓한 사무실을 홍대 주택가에 위치한 번듯한 건물로 이전할 수 있었다. 본사 건물인 R Center는 ‘raw(원형)’한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자 낡은 건물에 회사 간판만 달았을 뿐, 어떠한 도색이나 장식도 하지 않았다.
네덜란드의 바이어가 R Center를 방문하고는 “너희들이 무엇을 하려는지 건물만 봐도 알겠다”고 말했을 정도이다. R Center는 1층 유통매장, 2층 디자인 작업실, 3층 사무실로 구성되어 있다. 매장을 방문하는 고객 수가 상대적으로 많지 않았던 초기에는 본사 직원들이 1층 매장에서 교대로 근무하며 고객들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 이를 반영한 제품 디자인을 2층에서 바로 진행할 수 있어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품 개발에 빠르게 적용할 수 있었다. 지금은 매장을 방문하는 고객들의 수가 많아 아르바이트 판매사원을 고용했지만, 디자이너들은 여전히 매장으로 내려가 고객들과 얘기 나누는 시간을 자주 갖는다고 한다(Exhibit 3).
로우로우가 다양한 온라인 편집매장에 입점하여 인기를 더해갈 무렵, 여러 개의 오프라인 매장을 오픈할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고 찾아오는 투자자가 적지 않았다. 하지만 로우로우는 지나치게 빠른 외형적 성장보다는 내실을 다지면서 BI를 지켜나가고자 모든 제안을 거절한 후, 자본 여력에 적합한 곳을 찾아 자력으로 오프라인 2호 매장을 오픈하고자 했다. 여러 곳을 물색하다 최종적으로 선정한 곳은 광장시장이었다. 당시 주위 사람들의 반대가 많았다. 젊은이들이 쓰는 패션 아이템을 재래시장에서
판매한다는 것은 자칫 브랜드 이미지를 실추시킬 수 있는 위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대표는 재래시장이 시장의 본질과 원형을 가장 잘 갖춘 곳이라고 생각하고 국내 최초의 상설시장인 광장시장을 선택했다. 또 다른 이유는 1호점을 방문한 고객들의 90%가 주변인의 추천으로 매장의 위치를 미리 확인한 후 방문한 목적구매 고객이라는 사실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매장 오픈 첫날, 재래시장에 모여든 많은 젊은이들이 줄을 서서 입장하는 낯선 광경을 볼 수 있었다.
특이하게 재래시장에 오픈한 덕분에 여러 언론매체의 관심을 끌 수 있었고, 로우로우에 대한 입소문은 더 빠르게 퍼져나갔다. 주변 상인들은 상가에 젊은 고객들이 많이 찾아와 시장에 활력이 생겼다고 좋아했다. 외관상으로 보면 2호 매장은 실내외 인테리어를 젊은 감성에 맞게 적용하여 1호 매장과는 다소 차이가 있어 보인다. 하지만 매장 운영에 있어서는 ‘raw’한 감성을 잃지 않고자 노력했다. 예를 들면, ‘바터 마켓(barter market)’이라는 물물교환을 하는 작은 실험을 해보았다. 시장의 본질적 기능은 가치 있는 것들의 교환이며, 물물교환이 그 원형에 가까울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집에서 잘 안 쓰지만 버리기 아까운 여러 소품, 잡화(예컨대 헤어진 애인이 선물로 준 지갑, 향수, 선글라스 등)를 가져와 흥정을 잘하면 로우로우의 제품과 바꿔주고, 이렇게 받은 물건을 필요한 사람들에게 되파는 이벤트였다. 바터 마켓의 독특한 아이디어가 SNS를 통해 소개되면서 적지 않은 잠재고객들의 관심을 받을 수 있었다(Exhibit 4).
로우로우가 R BAG을 출시하고 한창 반응이 좋았던 때는 패션잡화 브랜드에 대한 소비자들의 개인적인 취향이 부각되던 시기였다. 이를 반영하여 백화점들은 브랜드별 칸막이를 없애고 편집매장의 수를 늘려가는 추세였다. 이러한 변화가 로우로우의 유통망 확보에 도움이 되었다. 이의현 대표는 “원래 판로 개척이 가장 어려운 일인데, 우리는 지금까지 입점 제안서 한 번 안 쓰고 여러 매장에 들어갔다. 요즘 소비자들은 남들이 아직 모르는 것, 독창적인 것을 찾는다. 덕분에 패션업계 생태계가 정말 건강해졌다. 더 이상 옛날 방식으로는 안 된다. 정말 작은 브랜드들이 필요하다”2)고 말했다.
2016년 10월 현재 로우로우는 7개의 독립 직영점을 포함해 국내 64개(서울 26개, 경기 12개 등), 해외 27개(일본, 홍콩, 싱가폴, 호주, 인도네시아 등)의 매장에 입점해 있다. 또한 자사가 운영하는 온라인 매장 이외에도 패션전문 편집 매장, G마켓과 같은 오픈 마켓에서도 로우로우의 제품이 판매되고 있다. 유통채널 별 매출 비율은 “국내 온라인 : 국내 오프라인 : 해외수출 = 3 : 5 : 2”로 오프라인 판매비율이 더 높으며, 수출은 매년 약 20%씩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로우로우는 SNS(특히 페이스북, 인스타그램)를 통해 제품의 우수한 기능적 특성을 알리는 광고를 하고 있을 뿐, 일반적으로 패션 브랜드들이 중요시하는 4대 매체를 활용한 제품 이미지 광고는 하지 않는다. 특히 패션업계에서는 매우 흔한 연예인 협찬을 전혀 하지 않는다. 아이돌 그룹 ○○○이 멘 가방이라는 소문으로 제품이 팔리는 건 유치하다는 생각 때문이다. 공동 창업자인 이은현 팀장은 어느 날 연예인 매니저가 제품 협찬 건으로 전화를 했는데, 다 쓰고 돌려달라고 했더니 매우 황당해 했다는 에피소드를 자랑스럽게 들려주었다.
대신 로우로우는 대중이 공감할 수 있는 사회적 이슈를 제기하고, 이를 마케팅 활동과 자연스레 연계시킴으로써 착한 브랜드로서의 인지도를 높이고 있다. 이의현 대표는 농담 삼아 본인이 TV 방송이나 외부 강연, 인터뷰를 자주 하는 편이고, 그때마다 매출이 조금씩 오르기 때문에 광고를 안 해도 될 것 같다고 얘기한다. 그만큼 로우로우의 브랜드 커뮤니케이션이 사회적 공감을 많이 얻고 있다는 얘기다. 로우로우는 모든 마케팅 활동에 공감할 수 있는 이유(why)를 찾아내고 이를 커뮤니케이션에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로우로우가 SNS를 통해 진행하는 커뮤니케이션의 내용은 대부분 구매고객, 협력업체와의 소통 그리고 컨셉이 맞는 타 브랜드들과의 협업(collaboration) 프로젝트에 대한 것이다.
예를 들면, 세계 최초로 첫 고객과 협업한 ‘민우 프로젝트’가 있다. 사업 초기에 가방을 직접 들고 벼룩시장에 나갔는데, 20대 초반의 한 젊은이가 다가오더니 가방이 너무 마음에 든다며 현금 10만 원을 주고 사갔다. 그가 바로 로우로우의 첫 고객 ‘민우’였다. 시간이 지나 로우로우가 어느 정도 알려지고 홍대 인근으로 이사한 후, 그 고객이 R Center에 찾아왔다. 로우로우 가방을 처음 본 순간 너무 좋아하게 됐고 항상 지켜보고 있으며 그때 산 가방을 지금도 잘 쓰고 있다며 서로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건넸다. 그는 입대한 뒤에도 첫 휴가 때 빵을 사 들고 다시 R Center를 찾아왔다. ‘친구들 만나기도 바쁠 텐데, 게다가 군인 월급이 얼마나 된다고 빵까지 사오다니!’ 이의현 대표는 깊이 감동해서 첫 고객인 민우 씨가 제대하자 즉시 협업 프로젝트를 제안했다. 함께 회의를 하며 민우 씨가 가장 원하는 가방을 같이 만들어보기로 했다. 결국 첫 고객과 함께 가방을 만들었고, 그 가방에 ‘민우백’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민우백’은 지금도 전 세계에서 같은 이름으로 팔리고 있다. 또한 로우로우 가방을 오래 사용한 고객들에게 추첨을 통해 새 가방으로 무료 교환해주는 ‘Change your R BAG’ 프로모션도 진행했다. 이처럼 로우로우가 꾸준히 실행하고 있는 프로모션 활동들을 살펴보면, 새롭게 구매할 고객뿐 아니라 이미 구매한 고객을 소중히 여기고 끝까지 책임지려 하는 ‘고객 집착’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이의현 대표는 가장 협업다운 협업이 무엇일까 고민하던 중, 실제로 매일 통화하고 함께 협업하고 있는 공장 사장님들을 떠올리게 되었다. 그리고 그 중 면목동의 가방 공장 사장님과 첫 협업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약 25년 동안 개수 2천만 개, 120여 개 브랜드의 가방을 만들어온 ‘김원학’ 사장님. 그분의 이름을 함께 만든 가방 안에 새겨넣었다. 또 ‘로우로우 x 김원학’ 협업 스토리를 SNS 카드뉴스로 제작했다. 이 프로젝트가 입소문을 타면서 SNS상에서 호의적인 반응들이 쏟아졌다.
이 대표는 광고할 돈으로 ‘옳은 일’을 하는 편이 낫다는 철학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연말 이벤트 회의를 하다가 노숙자의 자립을 돕는 <빅이슈> 사업3)에 도움을 주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로 했다. 추운 날씨에 <빅이슈> 잡지를 판매하는 빅판(<빅이슈> 판매원)에게 조끼를 만들어 드리자는 것. 로우로우는 ‘잡지를 판매할 때 입는 유니폼’이라는 본질에 집중하는 기능성에 초점을 맞췄다. 실제 현장에서 잡지를 판매하고 있는 빅판을 직접 찾아가 다양한 의견을 들었다. 방수가 되면 좋겠다는 얘기를 듣고 원단을 찾으러 한 달 이상 시장을 돌아다녔고, 밤에도 눈에 잘 띄도록 이전보다 밝은 톤의 빨강 원단을 사용했다. 자주 여닫는 지퍼 부분을 더 편리하게 보완했고, 수납 주머니는 3개로 분할해 1만 원, 5천 원, 1천 원을 단위별로 따로 보관하도록 만들어 잡지 판매에 편의성을 더했다. 그야말로 빅판 맞춤형 옷인 셈이었다(Exhibit 5).
물론 어려움도 있었다. 필요한 수량은 80벌이었는데 200~300개가 되어야 제작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결국 로우로우 샘플실에서 직원들이 수작업으로 제작에 참여했고, 총 두 달이라는 시간과 예상보다 2배가 넘는 비용이 소요되었다. 하지만 <빅이슈>와 함께 한 프로젝트는 결과적으로 의미 있는 ‘빅 이슈’가 되었다. 큰돈이 소요되는 협찬 광고를 전혀 하지 않았음에도 서울 지하철역 40여 곳에서 로우로우 조끼를 입은 판매원들이 걸어다니는 광고판이 되어 브랜드를 알리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게다가 <빅이슈>와의 협업 스토리를 담은 소식이 SNS를 타고 확산되면서 네티즌들의 칭찬이 이어졌다. 이의현 대표는 <빅이슈>와의 협업 프로젝트를 떠올리며 “유명 연예인·디자이너와의 협업을 브랜드 마케팅의 최고 수단으로 여기는 세태에 새로운 시각을 던지고 싶었다4)”라고 말했다.
그 밖에도 산돌커뮤니케이션, 브래들리 타임피스 시계, 29CM, 배달의 민족(우아한 형제들) 등과 크고 작은 협업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로우로우는 협업 프로젝트들을 진행함에 있어서도 단순히 많이 알리기 위한 ‘도달률 증대’의 관점이 아닌, ‘가장 ○○다운 ○○’라는 로우로우만의 브랜드 컨셉을 잘 담아내는 ‘브랜드 경험 전달’ 관점에 입각하여 고객지향적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있다.
R BAG, 백팩을 넘어서다
백팩(backpack)에 대한 소비자의 뜨거운 반응에 고무된 로우로우는 기능적 속성을 강화한 다양한 가방, 즉 토트(tote), 크로스(cross), 클러치(clutch)를 차례로 출시했다. 각각의 제품을 출시할 때도 가방의 본질(드는 것, 담는 것, 보호하는 것)을 최적화할 수 있는 디자인을 개발하는 데 노력했다. 즉, ‘가방을 메는 사람들의 통점(pain point)은 무엇일까?’, ‘가방에 꼭 필요한 기능은 무엇일까?’와 같은 질문으로부터 출발하여 소비자의 다양한 기능적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는 ‘옳은 디자인’을 찾고자 했다. 이의현 대표는 한 언론사6)와의 인터뷰에서 로우로우의 디자인 철학에 대해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옳은 디자인을 찾는 과정을 문제 해결(problem solving)이라고 하죠. 제가 생각하는 옳은 디자인은 이런 겁니다. 가령, 트렁크에 달린 바퀴는 정말 옳고 좋은 디자인입니다. 가운데에 구멍이 뚫려 소스가 잘 스며드는 마카로니도 옳은 디자인입니다. 장식적인 요소가 아니라 삶을 조금이라도 가볍고 편하게 하는 디자인이 제가 생각하는 옳은 디자인입니다. 그래서 로우로우의 제품들은 옳은 디자인을 하기 위해 본질만 남기고 불필요한 것들을 빼는 것과 함께 소비자들의 문제가 무엇인지, 어떻게 해결할지를 고민합니다.5)”
이러한 옳은 디자인 철학으로 다양한 유형의 R BAG들이 탄생했다. 각 제품마다 차별화된 기능성을 담아낸 로우로우는 R BAG 브랜드 라인 확장(line extension)의 성공으로 연매출액과 이익이 각각 20%가량 성장할 수 있었다(Exhibit 6).
사활을 건 도전, R SHOE의 출시
주변에서는 ‘선택과 집중’을 언급하며 로우로우가 가방에 집중할 것을 조언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10만 원 초반대의 가방 시장은 이미 포화 상태였다. 로우로우가 선택할 수 있는 전략은 가방 카테고리 안에서 현재보다 고가의 가방 혹은 저가의 가방을 출시하는 수직적 라인확장(vertical line extension) 전략 또는 다른 품목으로 확장하는 영역확장(category extension) 전략이었다. 로우로우는 후자를 선택하고 그 첫 확장 아이템으로 신발을 선정했다. 국내 신발 시장은 성장세가 정체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로우로우는 그 동안 R BAG 판매로 얻은 모든 자본을 투자하여 새로운 신발 브랜드인 R SHOE 출시를 결정했다. 그야말로 사활을 건 도전이었다(Exhibit 7).
이의현 대표는 한 언론사6)와의 인터뷰에서 그의 어릴 적 영웅이 NBA 농구스타 ‘마이클 조던’이었으며, 한 번도 신지 않은 나이키의 조던 운동화들을 진열해놓고 쓰다듬으면서 도대체 매력이 뭘까 하고 고민할 만큼 평소 신발에 관심이 많았다고 말했다. 사실 신발은 이 대표가 창업 당시부터 반드시 출시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패션 아이템이었다. 다만 가방이 본질에 충실한 로우로우의 BI를 실현하는 데 더 적합했기 때문에 가방을 먼저 출시하게 된 것이다.
약 1년간의 준비기간을 거쳐 2015년 3월, 드디어 R SHOE가 시장에 첫선을 보였다. 로우로우는 가방을 출시할 때와 마찬가지로 신발의 가장 본질적인 속성, 즉 신발다운 신발은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한 후, 현재 신발을 신을 때 소비자들이 경험하는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에 대한 통찰을 담아 디자인을 완성했다. 그래서 찾아낸 결론이 신발은 ‘가볍고, 통풍이 잘되고, 발이 편해야 한다’는 단순한 원칙이었다. R SHOE는 우유 한 팩보다 가벼우며, 구멍이 있어 통풍이 잘 되지만 특수 코팅 처리를 해 방수기능을 갖추고 있어 비가 오는 날에도 착용에 문제가 없다. 또한 아웃솔은 접지력과 쿠션감이 뛰어난 이탈리아의 고급소재인 비브람(Vibram)을 사용했으며, 깔창은 착용 후 시간이 지나면 발 모양에 맞게 변형되어 가장 편안한 착용감을 느끼게 하는 메모리폼을 적용했다(Exhibit 8).
초기 생산물량이 적고 이상적인 소재를 사용하다 보니 목표 마진을 위해서는 가격이 높게 책정되어야 했다. 하지만 로우로우는 R BAG의 가격 책정 때처럼 업계 평균보다 높은 원가율을 가격에 반영하지 않았다. 단기적인 수익 증대보다는 장기적인 신뢰를 줄 수 있는 가격정책을 유지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R SHOE의 판매 가격을 139,000원으로 결정했다. 신발로의 아이템 확장은 성공적이었다. 단 2종의 디자인으로 1년 반 만에 1만 5천 켤레가 판매되었다. SNS에서 구매자들의 반응은 더욱 뜨거웠다.
“신발이라는 게 예쁘면서 편하기가 얼마나 힘든데 이렇게 두 가지를 다 갖출 수 있는 건가요? 하루 12시간 서서 일하는데 R SHOE 덕분에 다리의 피로도가 90은 감소한 듯. 정말 매번 내놓는 제품마다 감동이에요.”
“회색이 뉴x보다 더 밝고 고운 색상이라 맘에 들어요. 착화감은 말할 것도 없이 좋네요. 발 재활 중이라 다른 신발 신었을 땐 아팠는데 이건 안 아파서 신기할 정도네요.”
“이 아이는 신발이 아니라 그냥 제 발인 양 그렇거든요. 그렇게 함께 잘 지내고 있답니다.”
구매자들이 SNS에서 브랜드 전도사(brand evangelist) 역할을 하며 사진과 글로 콘텐츠를 생산하고 있다는 것은 주목할 점이다. 광고를 하지 않고도 소비자들이 스스로 브랜드에 대해 커뮤니케이션 하는 것은 모든 브랜드들이 지향하는 바이기 때문이다. 이런 입소문 덕분에 R SHOE는 R BAG에 이어 로우로우의 성장을 견인하는 또 하나의 대표 브랜드가 되었다.
R EYE, 로우로우의 선행을 알리다
로우로우는 R SHOE의 성공에 힘입어 또 다른 제품으로 확장을 모색한다. 많은 고민 끝에 선정한 아이템은 안경이었다. 30년 이상 티타늄 안경을 만들어 온 최고의 기술을 갖춘 대구의 한 제조공장이 경영난을 겪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이를 돕고자 1년 2개월 동안 공을 들여 ‘R EYE’라는 브랜드의 안경테를 2016년 6월 출시했다.
R EYE를 개발할 때에도 다른 제품과 마찬가지로 사물의 원형과 본성에 가장 충실한 제품을 만들고자 노력했다. 즉, 시야와 시력을 개선시키는 안경의 근본 목적을 달성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디자인의 안경테를 고안해 내고자 했다. 그 결과 4g 정도로 가볍고, 100 c 에서도 형태가 변하지 않으며, 구부림에 대한 복원력이 매우 뛰어난 안경테를 개발했다. 또한 코받침 부분에 공기층을 만들어 안경 쓴 자국이 거의 남지 않게 했으며 외부 충격까지 흡수하도록 했다. 귀가 닿는 안경테의 후면부에는 티타늄 팁을 부착하여 안경의 무게중심을 잡고 앞쪽으로 쏠림이 없도록 했다.
R EYE는 ‘세상에서 두 번째로 가벼운 안경’이라는 애칭으로 SNS에서 긍정적인 반응들이 나타나고 있다. 안경 마니아들은 세상에서 가장 가벼운 안경 린드버그(Lindberg, 2.8g)의 가격이 수십만 원대인데 반해 R EYE는 10만 원대로 합리적이라며 칭찬을 쏟아냈다. 하지만 언론사들의 관심을 끌게 한 건 R EYE의 뛰어난 기능성보다 안경테 옆면에 RAWROW와 함께 새긴 ‘DAEHAN’이란 글자였다(Exhibit 9). 대부분의 패션 브랜드들이 디자인만 담당하고 제조공정은 외주를 맡김에도 불구하고 완제품에는 디자인 회사의 브랜드만 사용하는 것이 관행이다. 하지만 로우로우는 자신의 브랜드와 함께 제조업체 ‘대한하이텍’의 브랜드를 제품에 표기한 것이다. 각종 언론에서 ‘착한 브랜드’라는 칭찬이 쏟아졌다. 로우로우가 R SHOE 신발의 밑창에도 제조업체 ‘SGX’의 로고를 새겨넣은 것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일종의 ‘로우로우 팬덤’이 형성되어 소비자들이 SNS를 통해 자발적 영업사원의 역할을 수행했다.
이의현 대표는 제조업체와 상생을 실천하게 된 배경을 묻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미국 패션업계를 살펴볼 기회가 있었다. 파슨스 스쿨(뉴욕의 유명 디자인 학교) 주변에는 단추, 지퍼, 원단 등 한국분들이 운영하는 업체들이 많이 있다. 세계적 브랜드들이 그분들과 함께 시작했는데, 브랜드만 슈퍼스타가 되고 뛰어난 기술에도 불구하고 그분들은 대접받지 못한다는 것이 서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브랜드 혼자 잘나서 성공한 게 아니지 않나, 제조업체들과 공을 나누고 그들을 빛나게 하는 게 브랜드와 디자인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7)”
로우로우는 소위 ‘디자이너의 갑질’과는 거리가 먼 기업이다. R BAG 제조업체 사장인 김원학 씨의 말에 따르면, 로우로우 디자이너만큼 합리적이고 말이 잘 통하는 디자이너가 없다고 한다. 보통 디자이너들은 제조업체의 의견을 무시하고 “무조건 따르라”고 주장하며 수시로 본사로 호출하는 일이 다반사라고 한다. 하지만 로우로우는 반대로 제품에 대한 협의가 필요할 때마다 디자이너들이 수시로 제조공장을 방문한다. 덕분에 김원학 씨가 지난 몇 해 동안 로우로우를 찾아간 것은 손에 꼽을 정도라고 한다. 또한 주문한 상품에 대해 익월 말일에 결제를 해주는 다른 디자인 회사와 달리 로우로우는 당월 말일에 결제를 해준다. 협력업체와 상생하기 위한 관계의 본질은 서로에 대한 작은 배려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배려 덕분에 제조업체와 로우로우는 안정적인 신뢰관계를 구축할 수 있었다. R EYE 제조업체 대한 하이텍의 박승영 사장은 로우로우와의 협력관계를 다음과 같이 얘기한다.
“제조업체 이름은 다들 숨기려 한다. 30년 동안 내 회사 이름을 새긴 안경은 이번이 처음이다. 로우로우가 홍보를 많이 해준 덕분에 다른 도매상들로부터 전화가 많이 왔다. 경쟁업체에서 로우로우와 똑같이 만들 수 있냐는 문의도 받았지만 하지 않겠다고 했다. 돈도 돈이지만 신뢰가 우선이다. 우리를 믿고 대한하이텍의 이름을 알려준 건데 딴마음을 먹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8)”
언론의 관심 덕분에 로우로우 홈페이지 방문자(unique visitor) 수가 220%가량 증가했다. R EYE는 출시 48시간 만에 온라인 판매로 첫 물량이 모두 매진돼 오프라인 매장에는 입점도 못했다. 소비자들은 R EYE를 사기 위해 한 달 이상 기다려야 했다.
비수기 매출을 위한 선택, R CAP
로우로우는 연이은 확장 전략이 성공을 거두면서 연매출이 증가했고, 자본 운용에 한결 여유가 생겼다. 하지만 주력 브랜드인 R BAG이 성수기와 비수기 간 매출 차가 커서 이를 보완해줄 수 있는 새로운 아이템이 필요했다. 오랫동안 고심한 끝에 로우로우 직원들이 평소 좋아하고 자주 쓰고 다니는 아이템인 모자가 어떻겠냐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그리하여 2016년 10월, 마침내 모자 브랜드인 ‘R CAP’이 출시되었다.
로우로우는 다른 제품과 마찬가지로 R CAP에도 사물 본연의 기능을 중시한 디자인을 적용하고자 했다. 하지만 모자의 본질을 반영할 수 있는 디자인 특성을 찾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오랜 고민 끝에 어떻게든 막 써도 어울리고 편한 모자를 만들기로 결정했다. 로우로우 홈페이지에는 “살짝 걸쳐쓰기, 돌려쓰기, 푹 눌러쓰기? 어떻게 쓰면 좋을지 얘기하기보다 어디든 막 쓸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만들었습니다”라고 R CAP을 소개하고 있다.
모자를 출시한 것은 가방, 신발, 안경만으로는 패션잡화 매장의 구색을 갖추기 힘들다는 판단도 작용했다. 이후 같은 이유로 로우로우는 지갑, 양말, 펜홀더 등의 패션 액세서리를 출시했다. 하지만 가방, 신발, 안경을 제외한 제품들의 매출은 전체의 5% 미만이다. 고객들의 구매 후기 내용도 나쁘진 않았지만 로우로우만의 디자인 철학이 효과적으로 적용되지는 못한 것으로 보인다. 이의현 대표는 모자 브랜드 출시와 관련해 다음과 같은 아쉬움을 드러냈다.
“제가 모자를 매우 좋아하고 자주 쓰고 다니는데요. 모자의 원형, 모자의 본질, 모자다운 모자 등 나름 많이 고민했는데 브랜드 컨셉을 적용하기가 쉽진 않더라고요. 사실 고백하자면, 비수기 때 매출 유지해보려고 패션잡화 브랜드들이 하고 있는 아이템들을 구색 맞추기 차원에서 추가했어요. 현재 가방, 신발, 안경을 제외한 제품들이 전체 5% 미만인데요. 모자, 지갑 같은 제품에 로우로우 브랜드를 넣는 게 좋겠다는 직원도 있고 아니라는 직원도 있어요. 이런 확장 부분에 대해 많이 생각하고 있어요. 예전에 고민했던 캐리어로 확장할 수도 있고, 엉뚱하게 자전거를 해보고 싶기도 하고요.”
사람엔 강하지만 숫자에 약한 로우로우
로우로우는 한번 고객으로 인연을 맺으면 끝까지 그들을 집요하게 탐구하고 만족시키려 노력한다. 또한 협력업체와 상생할 수 있는 신뢰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최고의 비즈니스 경쟁력이라 믿는다. 이런 점들을 고려해볼 때 로우로우는 그 어떤 기업보다 사람 냄새 나는 기업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생존에 대한 절박함이 부족한 탓인지 숫자로 된 지표관리를 거의 하지 않는다. 공동 창업자인 이은현 팀장은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지난 5년 동안 매년 20% 이상씩 성장했고 올해는 인원도 늘었으니 연매출 40억9)은 가능하겠다, 이런 큰 그림은 그리죠. 하지만 저희 브랜드 아이덴티티 자체가 ‘빼자’이다 보니 목표를 세우고, 그거 달성하지 못하면 직원들을 깨거나 하지는 않아요. ‘0.1%에서 0.7%로 올랐다’라는 식으로 얘기하려면 또 보고서가 필요하잖아요. 엑셀 장표를 빽빽하게 정리하고 분석할 시간에 구매해준 고객에게 무엇을 더 해줄까 고민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봅니다.”
다른 스타트업과 달리 별다른 지표관리를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로우로우가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불필요한 것을 최소화해 본질에 집중한다는 명확한 BI를 구축하고 이를 유지·관리하기 위해 제품 개발, 유통채널 관리, 가격 정책, 프로모션 전략에 이르기까지 통합적으로 일관성 있게 BI를 적용해왔기 때문이다. 나아가 마케팅 활동을 넘어 경영철학과 기업문화에도 이러한 미니멀리즘(minimalism)의 BI가 잘 녹아들어 경영활동 전반의 효율성을 극대화하고 있는 것도 성공의 요인이다. 즉, 불필요한 보고, 회의, 협력업체 직원의 호출 등을 최소화할 뿐 아니라 형식을 갖춘 이메일 작성을 자제하고 메신저로 소통하며, 함께 일할 팀원들이 대표의 간섭 없이 알아서 인재를 채용하는 등 일의 외형이 아닌 본질에 집중한다. 이를 통해 절약된 자원은 장기적 관점에서 고객 만족을 위한 투자로 활용된다. 로우로우는 대기업보다는 경영 환경이 상대적으로 불리한 중소기업의 열세를 이러한 일관된 경영철학으로 스마트하게 극복하고 있다.
하지만 성공적인 경영을 위해선 짚고 넘어갈 부분도 있어 보인다. 20명이 넘지 않는 현재와 달리 향후 빠른 성장을 통해 조직의 규모가 커질 때에도 지금처럼 고객에 대한 집중과 브랜드 전략만으로 높은 성장세를 이어갈 수 있을까? 지표관리가 그들이 추구하는 일의 본질에서 벗어난 불필요한 낭비라는 생각이 그때까지도 유효할까? 이 부분은 좀 더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현실에 대한 유연한 대처가 기업의 급작스러운 위기 상황을 막아준다. 또 하나 염두에 둘 것은 로우로우가 브랜드 확장에 있어 어떤 의사결정을 하느냐에 따라 기업의 성패가 갈릴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우로우가 앞으로 100년 이상 고객에게 사랑받는 브랜드로 생존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 대표의 다음 말처럼 일관된 철학으로 자신의 기업을 뚝심 있게 끌고 나가는 ‘기업가 정신’이 앞으로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하느냐에 달려 있는지도 모른다.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꾸라는 말이 있죠? 저는 이렇게 바꿔 말하고 싶습니다.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빼라고. 본질만을 추구하는 거죠. 나만의 ‘why’만 남기라는 말입니다. 내가 하고 싶은 이유, 내가 일하는 이유만 있으면 됩니다. 직장명이나 직위 타이틀을 빼고 오직 ‘나’만으로 승부하는 것. 그것이 ‘생날것’의 가치, 로우 정신이자 기업가 정신이라고 생각합니다.10)”
[참고문헌]
로우로우 홈페이지
https://www.rawrow.com
로우로우 페이스북 페이지
https://www.facebook.com/RAWROW
패션비즈. (2014). “프리미엄 백팩 & 테크니커즈 부상”, 3월 1일
http://www.fashionbiz.co.kr/article/view.asp?idx=145845
한국섬유신문. (2016). “2016 신발 마켓 트렌드 – 성장률 감소세 불구 패션시장 비중 갈수록 증가”, 9월 13일
http://www.ktnews.com/sub/view.php?cd_news=100467&cd_cate=A017
한국섬유신문. (2016). “2016 가방 마켓 트렌드 – 가방시장 세분화, 패션시장 비중 키운다”, 9월 23일
http://ktnews.com/m/sub.php?cd_cate=A017&cd_news=100558
한겨레. (2014). ‘가장 가방다운 가방’…6명 의기투합 “일냈네”, 1월 6일
http://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618610.html?_ns=c2
조선일보. (2014). “이 빨간 조끼, 영리한 브랜드 ‘로우로우’ 작품입니다”, 1월 28일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4/01/27/2014012702508.html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 (2014). “본질을 좇다: 마누라와 자식빼고 다 빼라”, 11월 24일
https://www.youtube.com/watch?v=0nhDB-EsrN8
월간IM. (2015). “패션브랜드 ‘RAWROW’의 이의현 대표, 삶을 가볍게 하는 디자인이 좋은 디자인”, 9월 27일
http://www.huffingtonpost.kr/2015/09/26/story_n_8200258.html
한겨레. (2016). “‘존경 마케팅’으로 완판 행진 브랜드 로우로우”, 7월 7일
http://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751380.html
SELLEV. (2016). “페이스북이 열광하는 가방 로우로우 이의현”, 9월 9일
https://www.youtube.com/watch?v=Ajpp3fYCeMA
[주석]
1. R BAG 가격정책과 관련된 내용은 창립 멤버 중 한 명인 김성태 팀장과의 인터뷰 내용을 재구성한 것임.
2. 한겨레, 2014. 1. 6.
3. <빅이슈>는 한 권(5,000원)이 판매되면 2,500원(50%)을 빅판(노숙자 출신 <빅이슈> 판매원)의 몫으로 주어 노숙인의 경제 자립을 지원하는 잡지다.
4. 조선일보, 2014. 1. 28.
5. 월간IM, 2015. 9. 27.
6. sellev, 2016. 9. 9.
7, 8. 한겨레, 2016. 7. 7.
9. 2016년 기준 월 매출액이 대략 5억 원으로 연매출은 약 60억 원 정도임.
10.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 강연 내용 중, 2014. 11.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