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씽(n.thing)은 CES 2020에서 농업 분야 처음으로 최고혁신상을 수상했다. CES가 엔씽을 주목하는 이유는 세계에서 처음으로 모듈형 컨테이너 수직농장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엔씽은 수직농장을 배에 선적해 수출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이에 노지에서 채소 재배가 어려운 아랍에미리트(UAE), 사우디 아라비아, 러시아, 우즈베키스탄 등 국가들로부터 발주가 잇달고 있다.
엔씽은 처음부터 수출에 무게를 둔 기술 및 비즈니스 모델을 개발하여 새 영역을 개척했다. 탄력적 설비 운용과 이를 위한 설계, 높은 수준의 공조 관리로 새로운 사용자 경험을 제공하고 있다.
2014년 창업 후 2020년까지 엔씽에는 크게 세 번의 변곡점이 있었다. 2016년 경영 악화 때 컨테이너형 수직농장을 선택한 것과 2019년 UAE와의 대규모 수출 계약 체결, 2020년 국내 B2C 마케팅 재개 시점으로 나눠볼 수 있다. 보고서에서는 각 시점을 구분하는 결정적 순간을 4개 Scene으로 구성했다. ⒸScene 1. 2016년 컨테이너형의 선택, ⒸScene 2. 2017년 엔씽의 본원적 경쟁력 확인, ⒸScene 3. 2019년 첫 해외 수주, ⒸScene 2020년 B2C 마케팅의 선택.
Scene 1과 2는 묶음 스토리로 엔씽의 경험 축적과 선택을, Scene 3은 시장 지향적 기술 개발의 성공을 각각 보여준다. Scene 4는 마케팅 확대와 전략의 변화로 설명할 수 있다. 엔씽의 사례는 성장 과정에서의 의사결정과 그에 따른 결과가 선명하게 드러나기 때문에 분석에 의미가 있다.
이를 통해 신산업 분야의 시장분석과 내외부 환경 평가, 기술 표준 형성 과정, 기업이 내려야 할 전략적 판단의 기준, 시장에서 경쟁 우위를 지킬 수 있는 전술적 행동, 사업 확대를 위한 마케팅 전략 등을 배울 수 있다. 본 사례는 ‘창업론’, ‘벤처경영’, ‘경영전략’, ‘기술경영’, ‘마케팅’, ‘공급 사슬’ 등 분야에서 활용 하기 적합하다.
Q1. 수직농장 중 창고형은 초기 투자금이 크지만, 매출을 올리기 쉽고 이미 미국에서 검증된 모델이다. 컨테이너형은 아직 검증되지 않았지만 다양한 품종을 재배할 수 있고 수출이 용이할 것으로 기대된다. 수직농장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기 시작한 엔씽은 어떤 선택을 내려야 할까.
Q2. 엔씽의 수직농장은 재배동과 관리동이 분리된 모듈형이다. 규모의 경제를 이루기 전까지는 일체형에 비해 생산량이 적다. 이 때문에 중·소형 시장에는 적합하지 않다. 대형 시장만을 겨냥한 엔씽의 모듈형 전략은 수출에 유효한가.
Q3. 엔씽은 수출 실적이 발생하면서 국내 B2C 마케팅으로 주의 전환(attention shift)을 시작했다. 기술 기업은 기술과 시장 간 괴리로 항상 고민하는데, 어느 시점부터 주의 전환에 나서야 할까.
- 기술 완성 시점
- 기술 개발과 동시에 시장 개발
- 시장을 먼저 파악하고 이에 맞는 기술을 개발
#Scene 1. 컨테이너형 수직농장은 어떻게 등장했나
2016년 9월, 경기도 용인시의 한 국도. 엔씽의 김혜연 대표는 외부 업체와 기술 미팅을 마치고 최고 기술 책임자(CTO) 백경훈 이사와 함께 차를 타고 사무실로 이동 중이었다.
해는 뉘엿뉘엿 지며 하늘은 발갛게 달아올랐고, 적당히 식은 바람이 차 안을 휘감았다. 전날 잠을 설친 탓인지 김 대표의 눈은 스르륵 감겼다.
‘폐업.’
이 흉측한 두 글자가 머릿속을 맴돌아 김 대표는 요즘 잠을 설치고 있었다. 창업한 지 어느덧 2년여. 세계 최고 스마트팜 기업이 되겠노라며 당차게 출발했지만, 상황은 녹록하지 않았다. 아직 사업 방향의 갈피를 못 잡았는데, 날로 경영 상황은 악화됐다.
외부 미팅을 오갈 때나 잠깐 눈을 붙일 수 있었지만, 이마저도 그리 안락한 휴식은 아니었다.
10분쯤 잠들었을까. 문득 김 대표의 눈이 떠졌다. 차는 용인에서 벗어나 수원으로 넘어가는 길이었다. 별생각 없이 차창 밖을 바라보던 중 잔뜩 쌓인 폐컨테이너 더미가 눈에 들어왔다(Exhibit 1).
‘저거라면 혹시…’
피로와 스트레스에 찌든 김 대표의 눈꺼풀이 번쩍 들렸다. 김 대표는 다소 흥분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백 이사님, 컨테이너는 어떨까요?”
항상 김 대표와 같은 고민을 하던 백 이사는 이 말의 의미를 대번에 알아차렸다. “음…”
잠시 말을 고른 백 이사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외부와 분리돼 있어 환경 조작이 쉽고, 어디에든 설치할 수 있겠네요. 재배와 작업 공간을 분리해 모듈형으로 만들면 생산 효율성도 높일 수 있고요. 그래도 개발 비용이 만만찮을 겁니다. 우리가 해본 적 없는 방식이고요.”
백 이사도 김 대표의 아이디어에 공감했다. 그러나 실무 최고책임자로서 가능성보다는 현실성 문제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컨테이너 하나당 생산량은 얼마나 될까요?” “테스트를 해 봐야겠지만, 창고형에는 못 미칠 겁니다.”
창고형 수직농장은 공간이 높아서 재배판을 많이 쌓아 올릴 수 있어 비닐하우스나 노지에 비해 생산량이 압도적으로 많다. 이에 비해 컨테이너는 높이 쌓기 어려울뿐더러 높게 쌓으면 생산 관리가 힘들다.
그러나 김 대표는 결심한 듯 말했다.
“불량률만 낮추면 충분히 경쟁력 있을 거예요. 일단 컨테이너를 하나 구해서 만들어 봅시다.”
2014년 창업과 경영난 봉착
엔씽은 실내 수직농장을 만드는 국내 스마트팜 기업이다. 2014년 창업해 개인 고객에게 스마트화분을 팔다가 2016년 B2B 모델인 수직농장으로 사업을 전환했다. 김혜연 대표는 처음부터 대형 수직농장 구축을 염두에 뒀다. 그러나 수직농장은 많은 자본과 시간, 노하우가 필요한 관계로 먼저 B2C를 통해 수익과 데이터를 확보한 뒤 B2B로 전환하는 전략을 세웠다.
김혜연 대표는 1차적으로 오픈마켓에 스마트화분을 팔아 기업 운영자금과 연구·개발(R&D) 비용을 충당하는 한편 소비자들이 구입한 스마트화분에서 생육과 관련한 데이터를 확보하고, 이를 통해 LED 와 온도 센서 기술을 최적화할 계획이었다.
당시 수직농장은 아직 국내에서 시도되지 않았으므로 데이터와 노하우를 축적함으로써 구현 방식을 선택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무엇을, 어디에, 어떻게 재배할 것인가. 소비자들이 구입한 스마트 화분은 대형 수직농장을 짓기 위한 작은 퍼즐 조각인 셈이었다.
이러한 전략 아래 엔씽은 2014~2015년 비닐하우스, 온실 등 다양한 방식으로 스마트팜을 구현했다. 이 과정에서 적지 않은 노하우를 터득했고 새로운 딸기 품종을 개발하는 등 성과도 있었다. 그러나 이는 기존 농업인들을 통해 자리 잡은 생산 방식이며, 품종 및 재배방식에 있어 별다른 혁신을 가져오지 못했다. 특히 다량의 농약과 비료를 사용하기 때문에 친환경 등의 새로운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기도 어렵다고 판단하고 포기했다.
당시 글로벌 스마트팜 기업들은 도시에서도 누구나 농약·비료, 심지어 흙과 햇빛 없이도 채소를 재배한다는 비전을 세우고 접근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온실이나 비닐하우스와 같은 방식은 세계적 트렌드에 미치지 못하며, 혁신 경쟁에서 승리하기 어려웠다.
엔씽이 스마트팜 구현 방식을 두고 갈피를 못 잡는 사이 2년이 흘렀다. 사업을 확장할 때까지 시간을 벌어줄 것으로 기대했던 스마트화분의 판매량이 부진하면서 투자금이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사업 및 기술 개발에 쏟을 시간도 부족한데 김혜연 대표는 신규 투자자를 찾아다녀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Exhibit 2).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불안감을 이기지 못한 직원들이 하나둘 회사를 떠나기 시작한 것이다. 20명에 달했던 직원 수가 6명으로 줄어들어 업무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았고, 남은 사람들의 사기도 땅에 떨어졌다
수직농장의 세계적 성장과 트렌드
경영난에 봉착한 엔씽은 선택을 서둘러야 했다. 회사의 자금 사정이 여의치 않았고, 스마트화분 판매에 역량을 집중하기에는 성공 가능성이 불투명했다.
2015~2016년 당시 스마트팜의 세계적 트렌드는 수직농장 형태로 크게 곡물류와 채소류에 적용되는 기술로 나눌 수 있다. 쌀, 옥수수, 밀 등 곡물류의 생육 관련 데이터를 확보하고 병충해를 줄이는 등 건강한 생육관리를 통해 생산 효율성을 향상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공산품으로 비유하면 제품의 불량률을 낮추는 데 스마트팜을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곡물은 광활한 논·밭에서 대규모로 경작하기 때문에 재배 형태나 경작지를 바꾸는 식의 혁신은 일어나기 어렵다. 곡물 가격도 저렴하기 때문에 생산 혁신의 필요성도 크게 대두되지는 않았다.
이에 비해 채소류는 유통이 까다롭고 금방 시들지만 높은 부가가치를 창출하므로 생산 방식의 변화가 요구됐다. 예컨대 국토 대부분이 사막인 중동 국가들의 경우 중앙아시아에서 채소류를 수입하는데, 더운 날씨에 기차로 수송하면 채소가 모두 시든 채로 배송된다. 항공편은 운송비가 많이 들기 때문에 가격이 크게 오른다. 사막, 동토 등 극단적 기후가 아니더라도 채소를 운송하는 거리가 멀거나, 운송비용이 높은 지역에서는 채소 생산의 혁신적 변화가 필요하다. 단지 데이터 확보를 통한 생산량 증대에 머무는 수준이 아니라, 생산 및 유통 체제의 근본적 변화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표준 자리 잡는 창고형 수직농장
현재 수직농장 방식은 크게 창고형과 컨테이너형으로 나뉜다. 창고형은 2000년대 초 미국 동부 대도시를 중심으로 도시재생사업의 일환으로 시작되었다. 도시 인근의 폐공장이나 창고를 활용하여 채소류를 재배하고 도시에 직접 공급하는 비즈니스 방식이다.
2016년에는 컨테이너형 수직농장이 사실상 전무했던 데 비해 창고형은 시장의 주류로 자리 잡고 있었다. 도심 인근의 창고형 수직농장에서 채소를 대량 재배해 레스토랑, 마트에 납품하는 게 주력 비즈니스 모델이었다. 도시 내에도 새로 짓는 건축물의 일부를 도심농장으로 개발하는 사례는 있었지만 이런 경우는 대부분 곁가지 프로젝트에 불과했다.
창고형 수직농장은 채소 재배 및 판매의 공급 사슬을 전환할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창고형 수직농장은 온실, 솔루션 판매 회사에 비해 매출이 크지 않음에도 깨끗한 농산물 판매를 통해 사업 초기 수익 확보가 용이하다는 점에서 투자를 이끌어내기 용이했다(Exhibit 3).
에어로 팜(AeroFarms), 플렌티(PLENTY) 등 기업은 2016년 이미 1,000억 원 안팎의 대규모 투자를 유치해 사업을 넓혀가고 있었다. 이들 기업은 풍부한 자본을 바탕으로 뉴욕, 뉴어크, 뉴저지, 보스턴 등지에 대규모 창고형 수직농장을 짓고 채소 판매에 나섰다(Exhibit 4).
창고형 수직농장은 토지·건물의 매입·임대 비용을 비롯해 채소 생산을 위한 수도·전기 등 설비 투자 비용과 시간이 많이 든다. 그러나 설비를 구축하고 나면 채소를 대량 생산할 수 있어 사업 초기 수익을 올리기 용이하다. 채소 판매량이 증가하면 데이터 및 노하우가 축적되면서 생산 효율성이 오르고, 이를 통해 생산량이 더욱 늘어나는 선순환이 일어난다.
창고형 수직농장의 한계와 문제점
창고형 수직농장도 치명적 약점은 있다. 그것은 재배할 수 있는 채소의 종류가 적고, 균일한 결과를 얻기 어렵다는 점이다. 채소의 맛과 품질은 온도 차가 좌우한다. 온도 변화가 큰 환경은 채소에 스트레스를 준다. 채소가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표면과 육질이 단단해지고, 이파리가 두꺼워지며, 영양분이 증가한다. 창고형 수직농장은 높이가 지상 10여m, 좌우 폭은 30~40m에 달해 전체 면적이 크다. 따라서 창고의 바닥과 천장, 정중앙과 바깥 테두리 지점의 온도를 균일하게 관리하기 어려우며, 동일한 수준의 공조가 불가능해 채소의 품질에 악영향을 준다. 이를 동일하게 관리하기 위해선 창고 구석구석과 중·상층부에도 공조기를 설치해야 하는데 이 경우 공간 효율성이 떨어지게 된다.
하나의 수직농장에서 균일한 품질의 제품이 나오지 않으면 상품화가 어렵다. 창고형 수직농장은 상품으로 내놓기 위한 채소의 생육을 관리하는 데 한계가 있다. 이 때문에 다 키워서 먹는 채소는 기르지 않고, 이제 막 싹을 틔운 어린잎·새싹 등의 채소만을 취급하고 있다(Exhibit 5).
이는 재배 가능 채소의 다양성과 성체 재배의 데이터 및 노하우 확보를 제한하는 요인이다. 어린잎을 넘어 상품화가 가능한 균일한 품질의 대형 채소 재배는 창고형 수직농장의 과제로 꼽힌다.
창고형 수직농장의 주력 비즈니스 모델은 채소 판매다. 투자대비수익률(ROI)을 내기 위해서는 농장의 규모가 커야 한다. 이 때문에 제품 다변화보다는 생산 효율화에 초점을 맞추고 연구·개발(R&D)하는 실정이다.
현재 미국의 창고형 수직농장에서 재배한 채소의 소매가격은 노지나 비닐하우스에서 재배한 것보다 30%가량 비싸다. 고부가가치 채소 생산 등을 통해 수익성을 확보해야 하지만, 공조 문제로 인해 창고형 수직농장에서는 균일한 제품을 생산하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채소 재배의 전면적 생산 교체가 이루어지지 않으며, 친환경·무농약 등의 마케팅에 의존하고 있는 상황이다.
약점은 또 있다. 판매 시장이 내수로 국한된다는 점이다. 창고형 수직농장은 기존 유휴 공장을 재활용하면서 대도시의 신선 채소 시장을 겨냥했다. 창고형 수직농장 시스템을 수출한다고 가정하면 해당 지역의 기후에 맞는 건축 방식을 골라, 새로운 환경에서 채소를 재배할 수 있도록 원점에서부터 R&D를 다시 시작해야 한다.
예컨대 사막에 창고형 수직농장을 짓는다면 뜨거운 열기와 건조함을 견딜 수 있도록 기존에 철과 콘크리트를 사용했던 것과 달리, 목조를 사용하여 건축해야 할 가능성이 있다. 창고를 건축한 뒤에는 기후에 맞게 온도·습도 조절 노하우를 새롭게 쌓아야 한다. 특히 창고형 수직농장은 항공기 격납고와 마찬가지로 기둥 설치를 최소화해야 하므로 창고를 새로 짓는 데 건축비가 많이 소요된다. 공간이 크다 보니 에너지 손실도 커서 온도 관리를 위한 전력 사용량 또한 많다.
이 때문에 창고형 수직농장은 현지의 정부와 대기업 등으로부터 대규모 투자를 받지 않으면 사업 착수가 어렵고, 초기 시행착오가 불가피하다.
컨테이너형 수직농장의 등장과 가능성
엔씽이 선택한 컨테이너형 수직농장은 창고형이 처음 등장한 지 10여 년 뒤인 2015~2016년부터 등장했다.
컨테이너형은 창고형의 단점들을 보완할 수 있다. 우선 크기가 작아서 내부 온도 관리와 공조가 용이할뿐만 아니라 외부 환경의 영향도 적게 받는다. 환경 통제가 쉽다는 점은 품종 다양화 등 수직농장의 여러 가지 가능성을 열어준다. 예를 들어 재배판 위치별로 온도 편차가 적어 채소를 성체까지 키울 수 있고, 균일한 제품을 생산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생육과 관련된 다양한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어 재배할 수 있는 채소 종류도 쉽게 늘릴 수 있다. 한국에서 재배하기 어려운 로메인상추 ⋅ 바질 등 채소를 재배할 수 있으며, 동시에 여러 종류의 작물을 키울 수도 있다(Exhibit 6).
컨테이너형은 창고형에 비해 초기 투자 비용이 적으며, 모듈형이라 생산 관리와 수출이 용이하다. 또한, 클라우드 서버처럼 필요한 양만큼 자유롭게 늘였다 줄이는 등 탄력적 운영이 가능하다. 예컨대 시베리아 동토에 컨테이너형 농장 1,000동을 수출할 경우 최초 1~2동만 먼저 보내 다양한 테스트를 거침으로써 사업자의 리스크를 줄일 수도 있다. 이런 환경 대응력은 기후 문제로 식량 재배에 어려움을 겪는 국가들에 대한 수출 가능성을 높여 준다.
컨테이너형 수직농장의 단점은 수익성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솔루션 설치 및 관리, 인건비, 전기⋅수도 등 유틸리티 비용 등을 따지면 생산 비용이 저렴하지 않다. 컨테이너형 수직농장에서 재배한 로메인상추는 노지에서 생산한 것보다 판매가가 30% 가량 높게 책정된다. 노지에서 생산하면 기후 변화에 따라 계절별 가격 편차가 심하지만, 평균적으로는 컨테이너형 수직농장에 비해 저렴하다.
만약 컨테이너형 수직농장을 5동 이상 가동해 규모의 경제를 이루면 인건비와 유틸리티 비용이 감소하기 때문에 노지와 가격이 비슷해진다. 그러나 이 경우 창고형에 육박하는 초기 투자 비용이 발생한다. 자본력이 부족한 스타트업으로서는 창고형과 마찬가지로 신규 외부 투자를 받지 않는 이상 대규모 농장을 조성하기는 어렵다.
컨테이너형은 채소 생산량이 적지만 초기 건축비가 적게 든다. 시장성 입증은 안 됐지만 부가가치가 높은 채소를 재배할 수 있다. 창고형은 채소 생산량이 많지만 초기 건축비 역시 많이 든다. 시장성이 입증됐지만, 부가가치가 낮은 채소만 재배할 수 있다. 두 방식을 비교하면 채소 판매 수익은 창고형 수직농장이 앞선다. 이에 비해 컨테이너형은 건축은 물론 생산 비용도 적게 들어 재무적 부담이 적은 편이다.
#Scene. 2 알고 있는 것에 투자하라
2017년 6월 서울 미아동의 공터에서 작업복 차림의 김혜연 대표와 엔씽 직원들이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컨테이너 곳곳에 구멍을 내고 꼼꼼히 전선을 설치하는 모습이 사뭇 진지하다. 비닐하우스·온실 등 안 다뤄본 농장이 없는 프로들이지만, 컨테이너 작업은 처음이라 행여 실수할까 동작 하나하나 조심스럽다(Exhibit 7).
컨테이너형 수직농장의 성능을 제대로 검증하려면 혹한·혹서가 좋다. 이제 곧 시작되는 여름은 최적의 테스트 기간이다. 이에 맞춰 시제품을 완성하기 위해 밤낮 가리지 않고 컨테이너에 매달렸다. 테스트 결과만 잘 나오면 곧바로 해외에 공개해 시장의 평가를 받아볼 생각이다.
김혜연 대표는 과감하게 컨테이너형을 선택했지만, 한편으론 걱정도 적지 않았다. 시장의 검증을 받지 못한 모델이라 수익을 낼 때까지 불확실성이 컸다.
엔씽의 자금 사정은 빠듯했고, 20명에 달했던 임직원들은 6명으로 줄어 있었다. 컨테이너형 수직농장이 실패한다면 회사는 존폐 기로에 놓인다.
‘창고형으로 만들었더라면…’
김혜연 대표는 컨테이너형 농장을 지으면서도 수없이 고민했다. 검증되지 않은 방식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확신이 흔들릴 때도 있었다. 수직농장이란 비즈니스가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하는 근본적인 의구심이 들 때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엔씽에 맞는 옷은 무엇일까
만약 엔씽이 창고형 농장을 선택했더라면 운신의 폭이 더 넓었을 수도 있다. 작게나마 부지를 매입하고 이를 담보로 대출을 받아 창고형 수직농장을 지었다면 곧바로 채소를 대량 생산해 판매할 수 있어서다. 어린잎·새싹은 대형마트와 레스토랑에서 많이 취급하는 품종이라 안정적 현금흐름을 발생시킬 수 있다. 이를 바탕으로 R&D와 사업 확장에 나설 수 있으며, 매출을 근거로 투자를 유치해 추가로 농장을 지어 사업을 안정화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역시 어디까지나 가정일 뿐이다. 우선 국내에는 수직농장에 대한 인식이 부족해 채소 납품이 잘 될지 불투명하다. 사업 초기부터 기존 채소 농가와 유통 사업자들의 반발에 부딪힐 수도 있다. 또 한국은 미국보다 농수산물 운송 비용이 저렴해 도시에 근접한 수직농장의 필요성이 낮다.
해외 시장으로 눈을 돌려도 이미 에어로팜, 플렌티 같은 대형 업체가 굳건히 버티고 있으므로 성공 가능성은 낮아 보였다. 그럴 바에 앞길은 불투명해도 안정적 데이터 확보와 수출을 노려볼 수 있는 컨테이너형에 승부를 거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다.
또 창고형 수직농장에서 재배하기 어려운 고부가가치 기능성 채소를 키움으로써 틈새시장을 공략할 수 있을 것으로 봤다. 그간 온라인 마켓에서의 스마트화분 판매 데이터가 이런 판단을 뒷받침했다. 일반 소비자들이 관심을 두는 채소가 무엇이며 어떤 방식으로 재배해야 하는지 경쟁사보다 더 많이 알고 있었다.
특히 김혜연 대표는 대학생 시절 삼촌을 도와 토마토 재배용 비닐하우스를 우즈베키스탄에 수출한 경험이 있었다. 당시 국내와 기후가 다른 지역에서 건축해야 하는 창고형 농장은 수출이 어렵고 기존 노하우를 적용하기 어렵다는 점을 깨달았다.
골재, 공조기 등 비닐하우스 자재를 대륙 횡단 열차에 실어 보냈는데, 중국과 러시아를 거치다 보니 시간이 오래 걸리고 물류비용이 많이 들었다. 마적을 만난 일도 있었다. 이 때문에 창고형 수직농장은 B2B 영역으로 사업 확장이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에 비해 컨테이너형은 수출이 용이하고, 아직 수요가 없지만, 그만큼 시장을 선점할 수 있다는 판단도 섰다. 일찌감치 수직농장의 수출을 염두에 뒀기 때문에 신세계 등 국내 여러 대기업과 협력 관계를 맺고 있었다. 이들을 통해 중동, 아프리카, 중앙아시아 지역으로 판로를 넓힐 수 있을 것으로 보았다.
기초 경쟁력의 중요성
친환경·웰빙 채소에 대한 소비자 수요가 증가하는 가운데 수직농장 시장의 기준은 정해지지 않았다. 따라서 엔씽은 기술 개발 및 비즈니스 모델을 글로벌 트렌드에 맞추기보다는 엔씽의 핵심역량(core competence)에 맞춰 신규 시장을 개척하는 전략적 대응을 취하기로 했다.
모두가 농업의 선택권과 접근성을 가질 수 있도록 다양한 작물을 어디서든 똑같이 재배할 수 있어야 한다. 반복된 데이터를 갖고 있더라도 환경의 영향을 받아서는 안 된다. 초미세 데이터를 확보해야 한다. 또 이를 구현하기 위한 인터넷·센서 등 주변 기술도 함께 발전해야 한다. -엔씽 기업 비전
엔씽은 어디서든 누구나 농업에 종사할 수 있게 하는 기술을 개발하겠다는 비전을 갖고 출발했다. 스마트화분 이 비전을 구현하는 최초의 비즈니스 모델이었고, 이를 확장하는 과정에서 당시 주류였던 창고형 수직농장을 포기하고 컨테이너형 수직농장을 선택했다. 산업 환경의 변화와 자사의 경영 상황에 ♘매이기보다 최초의 비전대로 일을 벌이기로 판단한 것이다.
김혜연 대표는 우즈베키스탄에 비닐하우스를 수출한 경험을 통해 데이터는 하드웨어가 뒷받침돼야 하며 수출에 특화된 시스템을 가져야 하고 수직농장은 클라우드 서버처럼 탄력적으로 운영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Scene 3. 신규 시장 주도권 경쟁
2019년 9월, UAE 아부다비의 국방호텔.
“I have never seen such fresh vegetables(전에 본 적 없는 신선한 채소네요).”
호텔 구매총괄 담당자는 엔씽의 컨테이너형 수직농장에서 생산한 로메인상추의 색깔과 신선함을 보고 만족감을 나타냈다.
김혜연 대표는 “It tasts good, too(맛도 좋다).”라며 시식을 권했다.
아부다비 국방호텔은 호텔 투숙객에게 신선한 채소를 제공할 목적으로 호텔 뒤편에 컨테이너형 수직농장을 설치했다. 엔씽의 첫 기업 고객이자 수출 실적 성과다(Exhibit 8).
구매총괄 담당자는 두 달여간의 테스트 결과에 흡족한 듯, 그 자리에서 농장을 추가 주문하고 싶다고 밝혔다.
아부다비 국방호텔은 그간 여러 지역에서 채소를 수입해 고객에게 제공해왔는데, 장시간 육·해로를 거치며 채소의 잎이 시들고 색이 바래기 일쑤였다. 최고급 호텔의 자존심에 금이 간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채소 가격은 한국보다 50% 비쌌다.
UAE는 유휴 부지가 많고 인력이 풍부하며 전기·수도료도 저렴하다. 이에 직접 채소를 재배하기로 하면서 수직농장을 검토했다.
창고형 수직농장은 비용이나 품종 측면에서 일찌감치 탈락했고, 엔씽을 비롯한 여러 컨테이너형 수직농장 중에서 선택하기로 결정했다.
아부다비 국방호텔이 엔씽을 선택한 것은 모듈형 생산 방식 때문이었다. 개별 컨테이너보다 생산 관리가 편리하고 재배 효율성이 뛰어나서였다.
2019년 엔씽과 구매 계약을 맺은 아부다비 국방호텔은 테스트를 마치고 2020~2021년에 걸쳐 컨테이너형 수직농장을 최대 100동 규모로 늘리기로 했다.
대형 시장 타깃, 모듈형 선택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해운 수요가 감소하자 세계적으로 폐컨테이너를 활용한 비즈니스 모델이 등장하였다. 수직농장 분야에서도 그런 움직임이 나타났고, 북미 지역에서 엔씽과 같은 컨테이너형 수직농장 기업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글로벌마켓인사이츠가 주요 22개국을 대상으로 수직농장의 제품과 기술, 응용 분야의 시장 규모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2026년 220억 7,000만 달러(약 26조 7,000억 원)에 달할 전망이다. 이 시장의 1%만 차지해도 연 2억 2,000만 달러의 막대한 매출을 기대할 수 있어 신규 경쟁자가 다수 등장했다. 컨테이너형을 비롯한 수직농장 기업 간 경쟁이 더욱 치열해져 갔다. 이에 채소의 품질은 물론 가격 경쟁력과 생산 효율성 등이 중요한 평가 잣대로 작용하기 시작했다.
엔씽과 비슷한 시기에 미국에서 등장한 프레이트 팜(Freight Farm), 알레스카 라이프(Alesca Life) 등의 컨테이너형 수직농장 회사들은 개별 동에서 육묘·재배·작업 등을 모두 소화할 수 있는 구조로 제작했다.
이들 기업의 비즈니스 모델은 스마트화분처럼 개인이 운용할 수 있는 소규모 수직농장을 파는 B2C 모델이다. 농가나 레스토랑 등에 컨테이너 농장을 소량 판매해 텃밭 가꾸듯 원하는 채소를 재배할 수 있게 하는 방식으로 채소의 손상 가능성을 고려하기보다는 일체형 생산 관리에 주안점을 뒀다. 엔씽은 B2B 기업이다. 처음부터 해외 시장 개척과 수직농장 수출에 주안점을 두었고 이를 위해 수직농장의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할 필요가 있었다.
엔씽은 ‘모듈화’에 차별화 포인트를 뒀다. 컨테이너 두 동(관리동과 재배동)을 한 세트로 묶어, 관리동은 입구·살균·작업 등 오퍼레이션을 위한 공간으로, 나머지 재배동은 육묘·재배를 위한 공간으로 나눴다. 공간 활용을 극대화하기 위한 선택으로 균일한 품질과 불량률 저하, 생산량 증대 등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 한 동에서 모든 프로세스를 담을 경우 작업자가 이동·작업 중에 재배 중인 채소를 해칠 수 있고, 이산화탄소·온도 조절, 공조 등에 어려움이 생겨 채소의 품질이 떨어진다.
수직농장 유형별 기업 비교(Exhibit 9)를 살펴보면 창고형 수직농장은 병충해가 발생하면 농장 전체로 번질 수 있어 리스크 관리가 어렵다. 싱글 컨테이너형 역시 모듈형에 비해 오염 발생 관리, 데이터 수집, 스케일업 등의 측면에서 경쟁력이 떨어진다.
엔씽은 3인 1조로 4개 동을 관리하는 생산 관리 매뉴얼을 도입해 최적화된 시스템으로 운영하고 있다. 오퍼레이션 공간인 관리동 하나에서 채소만 키우는 재배동을 여러개 관리할 수 있어, 컨테이너 세트를 하나만 운영할 때보다 규모가 클수록 생산성이 급격히 향상된다.
엔씽 컨테이너 수직농장 생산량(Exhibit 10)을 보면 이를 상세히 이해할 수 있다. 컨테이너의 0.5동을 관리동, 0.5동을 재배동으로 하는 테스트 타입 모듈이 있다고 가정하면, 이렇게 기준이 되는 테스트 타입 모듈의 생산량은 1이 된다. 이 테스트 타입을 기준으로 다른 용도의 컨테이너 수직농장의 생산량을 비교할 수 있는데, 이 때 동 수가 증가할수록 관리동의 비중은 내려가고, 채소만 키우는 재배동의 비중이 커지면서 생산성이 가파르게 상승한다. 총 7.5개 컨테이너를 사용하는 R&D 타입의 경우 관리동은 0.5개 동이며, 나머지 7개 동에서는 오롯이 채소를 생산하므로 생산성이 오른다. 상업 기본 타입은 테스트 타입에 비해 생산량이 24배, 상업용 타입은 48배 늘어난다.
다만 2020년 기준으로 엔씽 컨테이너형 수직농장의 생산량은 운영 규모가 38개 동에 달하기 전까지는 프레이트팜 등 일체형 컨테이너형 수직농장보다 적어 영업 경쟁력이 떨어질 수 있다. 엔씽은 앞으로 수직농장 시장은 거대 자본가가 대규모로 운영하는 방식으로 성장할 것으로 판단해 품질과 규모의 경제로써 대형 시장을 공략해 큰 매출을 올리겠다는 목표다.
실제로 엔씽은 이마트와 손잡고 2020년 하반기부터 국내에 대규모 수직농장을 세울 계획이다. 중동· 중앙아시아 등지의 기관투자자들과도 협의를 진행 중이다. 이 때문에 엔씽은 브랜드 가치와 품질관리를 위해 현재 컨테이너형 수직농장을 개인에게는 판매하지 않는다. 엔씽은 핵심 기술 등 전체 컨테이너의 50%를 반조립 상태로 수출하고 현지 직원들이 마무리함으로써 기술 유출을 막고 있다.
수입 채소와의 가격 경쟁력 비교
수입산 채소와의 가격 경쟁력 확보도 엔씽이 수출 시장을 공략하기 위한 중요 포인트다. 수입산 채소의 품질이 수준 이하라고 해도, 가격이 압도적으로 저렴하다면 엔씽의 솔루션을 도입할 유인이 떨어진다.
아부다비의 채소 수입 가격은 엔씽 컨테이너에서 생산한 것보다 수입품이 대체로 저렴하다. 엔씽 수직농장에서 재배한 프릴아이스, 유러피안 소프트, 베이비 루꼴라 등 채소의 가격을 100으로 가정하면 아부다비가 중앙아시아에서 수입한 가격은 각각 75, 60, 90 수준이다. 아부다비의 수입 농산물 가격은 산지 가격과 물류비용 등에 따라 변동폭이 크기 때문에, 현지인들의 체감 가격을 조사 후 추정했다(Exhibit 11).
엔씽 제품의 소매가는 미국 창고형 수직농장보다 저렴하고 품질은 더욱 뛰어난 것으로 평가받는다. 특히 중동 시장의 경우 고소득층을 대상으로 고품질 채소를 공급할 수 있어 가치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를 노지에서 생산한 수입산 채소와 비교하면 가격이 크게는 2배 가까이 비싸다. 이에 엔씽은 신선한 채소를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고 가격 등락폭이 적으며 원할 때 필요한 채소를 재배할 수 있다는 점을 마케팅 포인트로 삼고 시장을 공략했다. 특히 좁은 공간에서도 압도적 생산력을 낼 수 있다는 점도 매력적이었다.
엔씽은 아부다비 수출 경험을 밑바탕으로 2020년부터 본격적 매출 상승을 일구고 있다. B2C 영역에 집중하던 2014~2018년 매출은 미미했으나, 2019년에는 예년에 비해 10배 안팎, 2020년에는 100 배 안팎으로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2020년 국내 대기업 등으로부터 신규 투자금을 대규모로 유치했고, 추가 납품처도 확보했다. 2020~2022년은 본격적인 수익 창출과 사업 확대 시기로 볼 수 있다(Exhibit 12).
더불어 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 2020에서 스마트팜으로는 처음 최고혁신상을 받은 것이 큰 전환점이 됐다. 모듈형 컨테이너 수직농장, 유연한 수요 대응, 안정적 생산 관리가 기존 수직농장의 패러다임을 바꿨다는 평가를 받았다. 동시에 자연스럽게 세계적으로 홍보가 되면서 엔씽에 더 많은 비즈니스 기회가 생기고 있다.
#Scene 4. 국내 B2C 마케팅 전환
“팀장님, 베이비 루꼴라 어디에 놓는 게 좋을까요?” “아무 데나 놓으셔도 돼요.”
2020년 6월 서울 신사동.
엔씽 임직원들이 플래그십 스토어 개업을 앞두고 분주하다. 본사 사옥을 이전하면서 회사 사무실 건물 1층에 채소 가게를 열기로 한 것이다(Exhibit 13).
제품이든 솔루션이든 브랜드가 있어야 팔 수 있다는 게 김혜연 대표의 지론이다. 수직농장에서 생산한 채소를 델몬트나 한돈처럼 브랜드화하겠다는 게 그의 다음 목표다.
“아직 국내에 수직농장을 리드하는 기업이 없는데, 엔씽이 수직농장을 상징하는 대명사와 같은 고유 브랜드를 구축하고 싶습니다.”
브랜드가 판매를 부르고, 판매가 브랜드를 키우는 되먹임이 반복되며 기업은 성장한다. 특히 스마트팜 등 분야의 기술 기업은 브랜드의 선점 효과가 중요하다. 회사가 무엇을 만들고 무엇을 하는지는 브랜드가 설명해 준다. 엔씽이 플래그십 스토어 개설 등 B2C 마케팅을 통해 국내 시장에서의 입지를 키우는 이유다. 특히 한국의 패션·문화의 상징인 압구정·신사동 일대에 사물인터넷(IoT) 기업이 만든 채소를 판다면 충분히 국내외 소비자들의 관심을 끌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매출 발생하자 다시 B2C 겨냥
스타트업은 항상 자금·인력·네트워크·경험·시간 모든 것이 부족하다. 이 때문에 사업의 방향을 정확히 설정하고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타깃시장을 정교하게 겨냥할 때와 포괄적으로 접근할 때를 정확히 짚지 못하면 좌충우돌하며, 자칫 기업의 본원적 경쟁력을 해칠 수 있다.
그럼에도 엔씽은 다시 B2C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B2B로 성공적으로 비즈니스를 전환하였음에도 이미 실패를 맛본 B2C로 다시 돌아온 것이다. B2C 마케팅은 브랜드 확보와 수직농장 판매 증대 등 여러 가지 효과를 노리기 위한 포석이다. 궁극적으로는 농업의 공급 사슬을 변화시켜 수직농장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농업 생태계를 구축하겠다는 것이 목표다.
한국의 농산물 유통체계는 복잡하고 비용이 높아 늘 비판의 대상이 돼 왔다. 농산물의 계절성과 보관의 어려움 등 때문에 현재와 같은 유통 구조가 자리 잡았다. 가격 결정 구조의 불투명성과 높은 유통 비용은 소비자 효용을 감소시킨다.
그러나 만약 도심형 수직농장 공급이 늘면 농산물 유통 구조는 급진적 변화를 맞이하게 될 수도 있다. 수직농장 운영자가 채소를 직접 생산해 e커머스, 대형 쇼핑몰, 프렌차이즈 식당 등 소매상으로 넘긴 뒤 바로 소비자에게 전달되는 2단계의 단순한 구조가 만들어진다. 수직농장을 이용하면 1년 내내 가격이 일정하고, 유통 비용이 적고, 구조가 투명한 농산물 공급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농업 유통에 큰 변화를 불러올 수 있다. 이는 엔씽이 B2C 마케팅을 통해 가고자 하는 길이기도 하다.
영업을 육군의 지상 침투작전에 비유한다면 마케팅은 공군의 융단폭격에 비유할 수 있다. 영업은 최종 소비자에게 지식을 전달하고 고객을 창출하는 일이라면, 마케팅은 최종 소비자들의 감성을 자극해 시장을 형성하는 일이다.
갈 길 바쁜 엔씽은 이미지 제고와 시장 형성, 고객 확보라는 세 마리 토끼를 다 잡아야 하지만, 자원은 한정돼 있다. 해외 영업과 판로 개척에 힘을 집중하기보다는 국내 시장에서 브랜딩과 마케팅 강화에 초점을 두고 있다.
아래의 영업·마케팅·브랜딩 비교(Exhibit 14)처럼 엔씽의 마케팅 목적은 단기적으로 신규 고객을 창출하기 보다는 플래그십 스토어 개설 등을 통해 컨테이너형 수직농장에서 만든 채소를 레스토랑, 대형마트 등에 납품해 최종 소비자와 만날 기회를 늘리고 있다. 이는 고객과의 장기적이고 고유한 관계를 구축하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또 컨테이너형 수직농장과 여기서 재배한 작물을 브랜드화해 외부에 알리기에 나섰다. 엔씽이 궁극적으로 노리는 타깃 시장은 기업 고객이지만, 소비자들의 인식이 제고돼 전체 시장이 커져야 한다고 판단했다. 엔씽의 경우 수직농장이 식물 공장이라는 부정적 인식을 줄이고 자연에서 자란 것이 좋다는 소비자 인식의 허들을 넘는 수단이 될 수 있다. 또 이런 방식은 엔씽과 농가 간에 상생 관계를 구축할 수도 있다.
델몬트(Delmont)·돌(Dole)처럼 농업 공급사슬 전환 지향
엔씽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방향은 채소 재배와 관련한 솔루션 판매 및 공급사슬 구축이다. 엔씽 솔루션을 개별 농가에 판매하고, 농가가 재배한 채소를 엔씽이 수매해서, 소매 유통 사업자에게 판매하는 방식을 지향하고 있다. 닭고기 생산·유통 업체인 하림, 마니커, 돼지고기 업체인 한돈 등이 축산 농가의 닭, 돼지를 수매하는 조건으로 사육과 관련한 솔루션을 판매하는 것과 유사한 비즈니스 모델이다.
예를들어 하림의 닭고기 유통 구조(Exhibit 15)를 살펴보면 사료의 수급부터 생산, 관리를 도맡아 축산 농가에 생육 관리, 오염원 검증 등의 기술과 노하우를 제공하고 있다. 계육의 체계적 관리와 유통 시스템을 구축해 브랜드 가치와 소비자 신뢰도를 높여 축산 농가와 윈윈하는 전략을 택했다. 엔씽도 채소 수확 시기와 패키징 등 시점을 관리하는 한편 유통 경로를 실시간 공유함으로써 농가와 협업하겠다는 계획이다. 엔씽은 수직농장 컨테이너를 판매하는 한편 스마트기기를 이용한 관리 솔루션을 함께 판매한다.
델몬트, 돌과 같은 글로벌 브랜드도 자국 시장에서 안정적 생산·판매 기반을 구축한 뒤 해외 시장으로 보폭을 넓혀 성공한 바 있다. 한국 시장에서의 성공이 해외 B2B 영업에 긍정적 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
엔씽이 이런 전략을 펼치는 데 있어 한국 시장의 한계와 기존 농가의 저항 등 여러 허들이 존재한다. 델몬트, 돌과 같은 기업은 세계 시장에 진출하기 전부터 대규모 농장을 운영하고 있었다. 이미 조달· 유통·판매망을 갖고 있음은 물론 협상력이 강해서 미국 정부의 농산물 수출 전략의 한 축으로써 성장한 측면이 있다.
이에 비해 한국 시장은 세계적 무대가 아니다. 국내 브랜드의 구축이 해외 시장에서 얼마만큼 소구력이 있으며 경쟁력 향상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엔씽은 컨테이너형 수직농장 비즈니스의 선단에 서 있기 때문에 적어도 국내에선 신규 진입자가 등장해도 경쟁력을 유지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다만 시장이 성장할수록 농장·유통업자 등 기존 농업 종사자들의 저항을 부를 수 있다. 기업이 성장하고, 국내 B2C 마케팅을 통해 세력을 넓혀나갈수록 저항은 거세질 것이다.
기존 농가와 유통 사업자는 수직농장 확대를 저지하기 위해 정치권과 정부에 압력을 행사할 수 있다. 승차공유업체 ‘타다’가 높은 소비자 만족도에도 택시 업계의 반발에 서비스를 중단한 것처럼 신산업에 대한 사회·정치적 저항은 크다. 특히 농업은 다른 어떤 분야보다 정치적 이해집단과 강하게 연결되어 있어 이러한 저항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
엔씽이 마케팅을 늘리는 데는 수직농장 성장에 따른 기존 사업자들의 반발을 억누르고, 신규 시장을 확대하기 위한 목적도 있다. 이러한 활동을 통해 최종 소비자들의 충성도를 높이고 브랜드 이미지를 공고히 할 필요가 있다.
마케팅을 통해 기업 고객을 확대하고 시장 전체의 파이를 키울 목적도 있다. 재배부터 소비까지 엔씽만의 채소 공급 사슬이 자리 잡으면 쉽게 붕괴하거나 대체되기 어려우므로, 이를 위한 설득 작업이 필요하다.
엔씽의 도전, 시기적절한가
엔씽의 B2C 마케팅 목표는 뚜렷하다. 초기 시장에서 B2B2C 마케팅을 통해 시장 확대와 선점 효과를 누리는 것이다.
그러나 국내에서 수직농장 비즈니스는 아직 초기 단계이며, 엔씽이 이제 막 매출을 일으켰다는 점에서 시기상조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다. 특히 글로벌 시장의 기술 표준이 아직 굳어지지 않아 사업적으로 불확실성을 안고 있으며 앞으로 많은 R&D 비용을 지출해야 할 수도 있다. 더군다나 국내 농가의 반발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에서 B2B2C 마케팅 전환의 시기 적절성 논란을 빚을 수 있다.
B2B2C 마케팅은 대개 고객 가치의 신규 창출보다는 기존 소비자 가치를 유지 및 강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쓰인다. 초기 시장에서 기술 기업의 주의 전환(attention shift)은 역량 분산 등의 리스크를 수반한다. 또 마케팅 전략의 전환이 엔씽의 기술·제품과 맞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