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빈 대표가 2015년 창업한 수퍼빈은 환경 소셜벤처로 네프론이란 스마트 쓰레기통을 통해 폐기물의 재활용성을 높이는 소셜벤처다. 재활용 문제의 근본적 해소를 위해 소셜임팩트에만 머물지 않고 페트병 판매로 확보한 이윤을 바탕으로 재활용 생태계를 직접 재구축하고 있다. 최초 페트병을 네프론에 버리면 돈을 준다는 발상은 시민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지만, 기존 생태계 참여자들의 거센 저항과 예기치 못한 재무적 손실로 난관에 봉착했다. 정부 정책으로 작동하는 기존 재활용 생태계는 오랜 시간 고착화돼 변화에 예민하게 반응했다. 이에 수퍼빈은 ESG 흐름 속에 해외 수요를 발굴하는 한편 세아상역·롯데케미칼 같은 새로운 사업자들을 끌어들임으로써 생태계 전환에 나서고 있다.
본 사례를 통해 폐기물 재활용 플랫폼으로서 수퍼빈이 맞딱뜨린 수많은 갈등과 이를 풀어나가는 과정을 살펴보고, 사회적 영향력을 높일 수 있는 이익 창출과 생태계 설계, 이해관계 설정 방식을 이해할 수 있다. 특히 생태계를 설계함에 있어 각 참여자에 대한 동기부여 방식과 참여자 대체 등의 전략적 선택을 분석한다.
Q1. 소비자가 버린 페트병(물질)은 수거·선별된 이후 대부분 소각·매립된다. 제품의 중간·최종 생산자가 의무적으로 납입하는 EPR 지원금을 공제조합이 수거·선별업체에 지불함으로써 현재의 생태계가 작동하고 있다. ① 과정에 네프론을 배치할 경우 페트병 재활용 생태계를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첨부된 유인물을 활용해 이해관계자 모형을 구성하시오).
Q2. 네프론은 순도 높은 페트병을 수거하는 플랫폼으로 수퍼빈 순환경제 생태계의 핵심이다. 수퍼빈이 손실을 입지 않으면서 개인들의 참여를 최대로 끌어낼 수 있는 보상 수준은 얼마인지 계산하시오.
Q3. 수퍼빈은 재활용 페트병 수거·선별을 넘어 소재분야 진출을 꾀하고 있다. 수퍼빈이 소재분야로 사업을 확장한 이유와 기존 생태계에서 벗어난 기업들을 순환경제 생태계로 참여시킨 이유에 대해 논의하시오. 또 기존 수거·선별·재활용 기업들의 저항을 극복하고 소통할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인지 토론하시오.
소셜벤처는 어떻게 사회적 생태계를 만드는가 – 수퍼빈
저는 페트병입니다. 편의점이나 길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세상에서 쓰임은 다했고 지금은 인천의 한 소각장에 와 있어요. 컨베이어 벨트 위에 누워 소각 순서를 기다리고 있죠. 저는 페트병이지만 재활용이 안 된다고 하더군요. 담배 꽁초 같은 쓰레기를 담고 있어서…. 이제 어디에도 쓸 수가 없는 거죠. 잠시 뒤면 뜨겁게 타서 없어질 겁니다. 슬프지만 그게 제 운명이라 생각하고 받아들여야 할 것 같아요.제가 태어난 곳은 한 페트병 공장이에요. 플라스틱 원단을 틀에 넣어 성형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지죠. 그 다음엔 음료수 공장으로 옮겨 콜라를 가득 담아 한 편의점 냉장고에 자리를 잡았어요. 어느 고등학생이 저를 구입해 콜라를 한껏 들이키고는 아파트 단지 한 켠에 버려두고 가더군요. 그 뒤로 행인들이 멀뚱히 서있는 제게 담배꽁초와 종이조각을 잔뜩 버렸어요. 어찌해야 할지 몰라 당황하던 저를 한 어린아이가 고맙게도 플라스틱 분리수거 통에 넣어줬어요.
이제 재활용의 시간이 돌아왔다고 생각했어요. 플라스틱 원단으로 돌아가 다시 페트병으로 태어나겠죠. 이튿날 오전, 큰 집게를 단 트럭이 와 저와 커피컵·반찬통·장난감 등 수많은 플라스틱 친구들을 담은 분리수거 봉투를 싣더군요. 짐칸에 털석하고 떨어진 순간 뭔가 이상하다고 느꼈습니다. 트럭 안에는 온갖 캔과 통조림 통을 모아둔 봉투와 유리병을 꽁꽁 동여맨 봉투, 소각용 쓰레기 봉투가 한 데 어우러져 있었죠. 그 때까지만 해도 편의상 한꺼번에 싣는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드디어 선별장에 도착했어요. 여기서 누군가는 살아남고 누군가는 버림받겠죠. 어랏, 그런데 봉투를 모조리 뜯더니 플라스틱·철·유리·비닐 할 것 없이 모두 한 데 모아 컨베이어 벨트 위에 쏟아내기 시작합니다. 이리 채이고, 저리 채이고 무척 힘이 드네요. 팔 토시를 낀 아주머니들이 컨베이어 벨트 옆에 길게 늘어서서 저 같은 페트병을 분류하고 계시네요. 저는 아주머니들의 눈에 잘 띄기 위해 커피컵·유리병을 밀어내고 위에 올라섰습니다.
“저 여기 있어요. 어서 꺼내 주세요.”
한 아주머니가 저를 집어 힐끔 쳐다보더니 다시 컨베이어 벨트에 던져 놓습니다. 저는 털털거리는 컨베이어 벨트를 타고 깜깜한 터널로 들어가 어딘가로 달그락 떨어졌습니다. 딱딱한 쇳덩어리에 부딪혀 찌그러지기도 했어요. 다시 주변이 밝아져 살펴보니 트럭을 타고 이동을 시작하더군요. 소각장으로 향하는 15t 트럭이었죠.
뭐가 잘못된 걸까요. 많은 사람들이 페트병은 100% 재활용될 거라 생각하지만, 산전수전 다 겪은 페트병들에게 물어보니 실제로는 소각·매립장으로 가는 비율이 훨씬 더 높다고 해요. 주변을 둘러보니 저처럼 쓰레기를 담고 있거나 겉면에 스티커 자국이 진하게 남은 친구들이 많더군요. 제법 멀쩡해 보이는 페트병도 적지 않습니다. 일부 깨끗한 페트병을 제외하곤 모두 소각되거나 매립된다고 합니다.
전 행운아는 아니었군요. 이제 저는 진짜 불타는 소각장으로 들어갑니다. 굴뚝 연기가 검은 걸 보니 이 소각장은 고온으로 연소 하지도 않나 보네요. 깨끗하게 타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그래도 그간 사람들에게 요긴하게 쓰였으니 여한은 없습니다. 그럼 모두들 안녕.
재활용 생태계의 폐쇄성
“어이 김정빈 대표, 젊은 친구가 건방지게 어딜…”
2019년 1월, 서울 여의도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회의실. 페트병 보증금 적용 여부를 둘러싼 공청회에서, 방청석에 앉아있던 한 폐기물 처리 사업자가 크고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웅성이던 회의장은 순식간에 조용해졌고, 김정빈 수퍼빈 대표의 등줄기에는 식은땀이 흘렀다. 그러나 김정빈 대표는 지지 않겠다는 듯 마른 입술에 침을 바르고 말을 이어갔다.
“한국도 해외처럼 재활용 페트병에 보증금을 지급하는 게 옳아요. 현재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EPR·Extended Producer Responsibility) 지원금[1] 제도로는 자원화 할 수 있는 페트병까지 대부분 소각·매립 되잖아요. 배출 단계에서 바로잡지 않으면 페트병 재활용 절대 못합니다.” 좌중은 또다시 웅성거렸다. 방청석의 한 무리는 서로 수근 대며 김정빈 대표를 노려봤다. 그도 그럴 것이 페트병은 폐기물처리 사업자들의 알토란 같은 수익원이기 때문이다.
현재 페트병은 재활용 폐기물로 분류돼 정부가 이를 운송, 선별하는 폐기물처리사업자에게 EPR 지원금을 지급한다. 그런데 유리병처럼 페트병에 보증금을 지급하면 별도 채널로 수거돼 분리수거 폐기물의 중량이 줄어들고, 감소한 무게만큼 EPR 지원금 역시 감소한다. 또 선별 과정에서 페트병을 따로 분류해 고물상에 판매하던 수익도 사라지게 된다. 폐기물처리사업자들로선 김정빈 대표의 주장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이유다.
사회·경제 생태계의 지속가능발전을 위해선 김정빈 대표의 주장이 타당하다. 보증금을 지급하면 많은 양의 페트병이 청결한 상태로 회수돼 자원화가 용이하고, 매립·소각 되는 양이 줄어든다. 그러나 고양이 목에 누가 방울을 걸 것이냐는 문제가 남는다. 환경 오염을 줄이기 위한 페트병 재활용률 향상은 대중의 지지를 얻지만, 반대로 이를 정작 처리하는 생태계 내부 이해관계자들은 이를 환영하지 않는다. 본인이 벌어들이던 수익이나 EPR 지원금이 감소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일단 폐기물 처리 사업자들의 반발이 가장 거세다. 폐기물 처리 사업자는 지방자치단체(지자체)가 지정한 업체로 일종의 이익단체인데, 폐기물 수거 보이콧 등 집단 행동에 나설 수 있어 영향력이 작지 않다. 유통 최전선에서 페트병을 수거하고 보증금을 지급해야 하는 대형마트·편의점도 반기지 않는다. 보증금 지급과 페트병 수거에 인력·공간 등 새로운 자원을 투입해야 한다. 음료수·페트병 제조사들 역시 재활용 페트병을 제품 생산에 사용하려면 별도의 공정과 설비를 추가해야 한다는 점에서, 이 문제 해결에 관심이 적다. 재활용 생태계의 참여자들이 강하게 반대하거나 미온적으로 움직이는 상황에서 정부·지자체 역시 문제 개선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유승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018년 12월 페트병 보증금 제도를 담은 ‘자원의 절약과 재활용촉진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대표발의 했지만, 결국 입법화되지 못했다. 여러 이해당사자들의 반대에 막혀 김정빈 수퍼빈 대표의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이다.
재활용 없는 재활용 생태계
김정빈 대표가 수퍼빈을 창업한 것은 2015년으로, 그가 연강선재 제조사 코스틸 대표이사를 그만 둔 직후다. 김정빈 대표는 삼정KPMG 컨설턴트와 한국섬유기술연구원(KOTITI) 전략기획본부 본부장, 코스틸 대표이사 등을 거친 소재 부문 전문가다. 김정빈 대표는 평소 폐기물을 얼마든지 소재화 할 수 있음에도 소각되거나 땅에 묻히는 현실에 문제의식을 가졌다. EPR 지원금을 기반에 둔 재활용 프로세스가 있어 재활용품의 수거와 선별은 벌어지고 있지만, 그 뒤에 이를 소재화·자원화하는 체계가 없었다. 이 때문에 어렵게 폐기물을 분리 배출·수거를 해놓고도 대부분의 재활용품이 그대로 소각장으로 향하는 실정이었다. 이런 상황은 분리수거제도가 처음 도입된 1990년대 이후부터 30여년째 개선되지 않았고, 정치적·경제적 이익도 별달리 없어 그 누구도 제도를 개선하려고 시도하지 않았다. 시민들은 분리 배출을 함으로써 자신의 자연보호 책임을 다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분리 배출을 하든, 안 하든 환경에 미치는 영향은 크게 다르지 않은 게 현실이었다. 이 때문에 김정빈 대표는 체계적인 수거·선별·재사용 프로세스를 만들어 보자고 마음 먹었다.
김정빈 대표의 주장처럼 현재 폐기물 처리 프로세스는 구조만 있을 뿐, 생태계가 작동하지 않는다. EPR 지원금에 따라 수거, 선별, 재활용 프로세스가 작동하도록 설계했지만, 실제로는 재활용이 안 되는 순환성 없는 프로세스다(Exhibit 2).
폐기물 처리는 후속 부가가치를 창출하지 않기 때문에 정부가 경제적 유인을 제시해 처리하고 있다. 정부는 소비재(음료제조 업체)·포장재 제조사 등 생활 폐기물을 발생시키는 기업들과 지자체가 EPR 지원금을 공제조합에 지불하도록 의무화했다. 공제조합은 이들로부터 모은 EPR 지원금을 재활용 폐기물 중량에 비례해 폐기물을 수거·선별·재활용 업체에 지급하며, 수거·선별 업체는 EPR 지원금으로 이윤을 창출하는 방식으로 폐기물 처리 생태계를 작동시킨다. 그러나 현실에서 재활용품은 재활용이 어려운 불량한 상태로 배출되고 있고, 소비재(음료제조 업체)·포장재 제조사들도 제품의 안전성·비용 등 문제로 재활용품 사용을 꺼린다.
정부는 폐기물 처리와 재활용을 위해 각 절차 별로 분리수거제도·예치금제도·마킹제도 등 여러 장치를 마련했다. 이처럼 제도는 존재하지만 재활용 체계는 폐기물 처리 생태계의 외곽에 놓인 상태다(Exhibit 3).
이 때문에 중간 단계인 폐기물 수거·선별 업체들은 소재로 재탄생할 수 있는 폐기물을 선별하기보다는 EPR 지원금을 더 받아내기 위해 폐기물 양을 늘리는 데 집중하는 결과를 낳는다. 현재 한국에서 분리배출 되는 재활용 가능한 플라스틱 자원은 53.16%에 달한다(환경부, 2018). 다만 이는 어디까지나 배출 단계 기준일 뿐이다. 그린피스 등 시민사회단체들은 제품까지 이어지는 페트병의 재활용률이 정부 발표를 크게 밑도는 것으로 보고 있다(박기묵, 임진희, 2019).
김정빈 대표는 이런 재활용 생태계를 ‘생산-소비-폐기’로 이어진 ‘선형경제’로 규정하고, 이 문제를 완화할 방안으로 ‘순환경제’ 생태계를 설계하기 시작했다. 재활용 폐기물의 ‘순도’에 주목하는 한편 ‘생산-소비-분리-재활용-생산’으로 이어지는 페트병의 순환경제 고리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김정빈 대표는 단지 소셜임팩트 창출에 그치지 않고 돈 버는 소셜벤처를 지향했다. 선형경제를 순환경제로 만들려면 생태계 참여자들의 능동적 행위를 유발할 수 있는 경제적 이익이 있어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에 수퍼빈을 재활용품 수거, 선별은 물론 이익을 창출해 생태계를 관리하는 순환경제 플랫폼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순환경제 생태계 만드는 네프론·보상 모델
김정빈 대표는 순환경제 생태계를 만드는 첫 번째 열쇠로 여러 재활용 폐기물 중 페트병을 꼽았다. 캔· 유리병 등에 비해 재활용률이 낮아 환경 오염의 주범으로 지목돼서다. 플라스틱 폐기물은 해양생태계에 심대한 악영향을 끼치는 폐기물로 2015년 기준 국내 해안쓰레기의 67%를 차지한다(해양수산부, 2016). 그런데도 아직 재활용 프로세스를 갖추지 못해 다른 재활용품에 비해 소재화할 수 있는 여지가 크다.
김정빈 대표는 페트병이 장난감·포장용기 등 여타 플라스틱 소재 제품에 비해 규격화됐고, 사용량이 많으며, 회수가 용이해 소재화 프로세스를 구축할 경우 적지 않은 이익이 발생할 것으로 기대할 뿐만 아니라 이 문제를 개선하면 큰 소셜임팩트를 얻을 수 있을 거라 판단했다. 소셜임팩트와 이익창출 두 가지 과제를 달성하면 순환경제 생태계도 자연스레 작동할 것으로 봤다. 김정빈 대표가 해결해야 할 가장 중요한 과제는 깨끗한 페트병을 폐기물 수거 업체가 수거하기 전에 확보해, 종류별로 구분해 확보하는 일이었다. 다만 수퍼빈이 직접 인력을 활용해 가가호호 방문하거나 아파트 단지 분리수거장에서 페트병을 수거하면, 각 가정의 저항을 부르거나 기존 폐기물 수거 업체와의 충돌이 불가피했다. 또 이런 식으로 수거한 페트병을 색상에 맞춰 일일이 세척·분류하는 데 막대한 인건비가 발생했다. 특히 페트병은 라벨과 라벨 접착제가 붙어 있고, 제조사별로 색상과 재질이 달라 재활용이 어려운 측면이 있다. 순도를 높이기 위한 페트병 세분류에 많은 인력이 필요한 상황이었다(Exhibit 4).
수퍼빈은 시민들의 도덕성이 깃든 자발적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는 방법이 필요했다. 또 인건비 감축을 위해 자동으로 페트병을 분류할 수 있는 장치가 필요했다. 이에 인공지능(AI) 기술을 활용한 ‘네프론 (Nephron)’이란 스마트 쓰레기통을 개발했다(Exhibit 5). 네프론은 수퍼빈이 2015년 12월 미래과학 기술지주로부터 투자를 받고, 한국과학기술원(KAIST)의 딥러닝 기술을 응용한 AI 알고리즘 ‘뉴로지니’를 인수해 만든 설비다. 수퍼빈이란 사명의 탄생 배경이기도 하다.
네프론은 재활용할 수 있는 페트병·빈병 등을 자동으로 분류, 압축, 수거하는 쓰레기통이다. 네프론에 재활용 폐기물을 넣으면 내부 컨베이어 벨트가 돌며 내용물을 품목별로 분류한다. 이미지 센싱기술로 폐기된 페트병의 색상과 뚜껑, 라벨 유무, 내용물이 들어있는지 등을 판독해 수거 여부를 결정하며, 수거한 재활용품은 네프론 내부 압축기를 이용해 부피를 줄여 기기 내부에 쌓아 둔다. 수퍼빈은 네프론이 모은 페트병을 정기적으로 수거해 순도 높은 페트병을 대량으로 확보하고 있다. 네프론은 머신 러닝에 기반을 두고, 지속적인 소프트웨어 개발을 통해 2016년 70~75%였던 판독률을 2020년 80~90%로 높였다(Exhibit 6).
그러면서 수퍼빈은 네프론을 통해 재활용품 폐기에 경제적 보상을 지급하기 시작했다. 페트병 분리 배출은 환경보호를 실천한다는 측면에서 이미 많은 시민이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있지만, 경제적 보상을 하면 페트병 분리 배출에 미온적이던 사람들도 자발적으로 참여하게 될 거라 판단한 것이다. 수퍼빈은 네프론의 시제품을 2016년 8월 내놓고, 같은 해 11월 경기도 과천시에서 시범사업으로 운영하기 시작했다. 페트병 크기와 지역에 따라 10~20원가량을 보상금으로 지급하자 과천 지역 시민들이 능동적으로 참여하기 시작했다. 페트병을 대량으로 수집해 네프론에 폐기하는 헤비 유저도 등장했다. 헤비 유저는 한 달에 15만~30만 원 가량 보상금을 받으며 수퍼빈 생태계에 기여했다. 경제적 보상은 단지 참여만 이끌어 낼 뿐만 아니라 페트병의 순도를 높이는 역할도 했다. 네프론은 불량 페트병을 받지 않기 때문에 소액이나마 보상을 받으려면 페트병의 내용물을 비우거나 세척하는 등의 자발적 수고가 필요했다. 수퍼빈은 과천시를 시작으로 정부·지자체의 지원을 받아 지역 시범 사업 형태로 청사·학교·도서관 등에 네프론을 설치했으며 별도의 페트병 수거 채널을 확보해갔다.
수퍼빈은 이런 식으로 모인 재활용 페트병을 고물상 등 재활용 전문업체에 판매해 수익을 얻었고, 이 수익을 시민들에게 보상금으로 지급했다. 순도가 높은 A급 페트병의 경우 재활용 전문업체가 1㎏ 당 1,000~1,500원가량에 매입했다. 이 프로세스가 자리잡으면서 기존의 수거·분류 전문 채널의 일부를 수퍼빈이 대체하기 시작했다(Exhibit 7).
2016년부터 수퍼빈은 본격적으로 네프론 보급에 나섰다. 덕분에 2017년부터 2020년에 걸쳐 서울· 경기도·충청남도·전라남북도·경상북도·강원도 등 지역에 총 158대를 설치했고, 수퍼빈은 이 생태계를 확장함으로써 순환경제 생태계를 구축하겠다는 그림을 그려갔다. 기존의 재활용 폐기물 수거·선별 채널을 수퍼빈이 바꾸기 시작한 것이다. 수퍼빈은 이를 위해 사업 초기 EPR 지원금을 받는 폐기물처리사업자 인가도 받지 않았다. 현재 페트병의 처리 체제를 변화하려면 외부로부터 개혁을 통해 기존 생태계를 전환해야 하는데, 이 생태계에 직접 뛰어들 경우 자칫 기존 사업자들과 마찰을 빚을 수 있고, 경영을 EPR 지원금에 의지하게 될 가능성도 있다고 판단했다.
“현재 재활용 프로세스는 굉장히 저차원적이죠. 상황은 해외도 마찬가지예요. 재활용 프로세스가 없어서 대부분 플라스틱 폐기물을 태우는데 대개 600℃ 이하로 소각하기 때문에 다이옥신 등 독성 물질을 배출해요. 2차 오염을 발생시키는 거죠. 아프리카 사바나 초원에 실제 가보면 온통 플라스틱 쓰레기 천지입니다. 대부분 사람들이 환경을 보호하자는 데 동의하고, 재활용 프로세스가 있음에도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요. 시스템 설계가 잘못됐기 때문이죠. 당위성만으로는 사람들의 행동 변화를 끌어내기는 어렵습니다. 어떻게 해결할 것이냐를 두고 전략적으로 움직여야 합니다. 경제적 유인과 사회적 당위가 맞아떨어져야 시스템이 작동합니다.”
– 김정빈 수퍼빈 대표
벽에 부딪힌 순환경제 생태계
2017~18년 전국적으로 네프론 보급이 확대되자 수퍼빈의 뜻에 동참하는 시민들이 증가하며 수집되는 페트병이 크게 늘어났다. 이에 수퍼빈은 2017년 미래창조과학부(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미래성장동력 챌린지 데모데이 최우수상을 수상했고, ‘인공신경망 분석에 근거한 복합적 물체 인식시스템 및 방법’ 기술 특허 등록도 했다. 2018년 휴맥스로부터 20억 원의 시리즈 A 투자를 유치하며 사업은 순항하는 듯했다. 그러나 수퍼빈도 예기치 못한 어려움에 봉착했다. 시민들에게 지급하는 보상금이 늘어나면서 회사에 재무적 손실이 발생하기 시작한 것이다.
고순도 페트병을 많이 모으자고 시작한 일이지만, 페트병을 모으면 모을수록 손실이 늘어났다. 처음에는 재활용 전문업체에 페트병을 판매함으로써 시민 보상금을 얼마든지 충당할 수 있다고 봤다.
그러나 설치 1~2년이 지난 네프론에서 수리 비용이 발생했고, 페트병 수거· 운송· 저장 등 운영비가 예상보다 많이 들었다. 특히 일부 헤비 유저들이 보상금을 많이 얻기 위해 아파트 단지 재활용 쓰레기장을 헤집기 시작하면서 주민들의 민원도 발생했다. 당황한 지자체들은 수퍼빈에 문제 해결을 요구했다
이에 수퍼빈은 보상금을 줄이기로 결정했다. 수퍼빈 임직원들은 보상금과 운영비 둘 중 어느 쪽을 줄일 것이냐를 두고 깊이 고민했다. 그 결과 네프론이 지속적으로 가동해야 데이터가 쌓이고 각 거점별 네프론을 유지해야 향후 확장하기 용이하다는 점에서 인프라 영역은 손 대지 않기로 했다. 특히 운영 부문은 앞으로 네프론을 늘렸을 때 생산성이 크게 개선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현상을 유지할 필요가 있었다.
이에 비해 보상금을 줄이면 자신의 집에서 발생한 페트병을 버리는 사람들보다는 지역 페트병을 쓸어와 담는 헤비 유저의 감소폭이 더욱 클 것으로 예상했다. 일단 헤비 유저가 감소하면 페트병 수거량이 줄어 손실 문제를 해결할 수 있고, 지역 민원도 자연스레 사라질 것으로 판단했다. 이제 재무적 손실이 발생하지 않으면서도 많은 페트병을 수거할 수 있는 최적점을 찾아야 했다. 수퍼빈은 그간 페트병 보상금을 지역과 페트병 종류에 따라 개당 10·15·20원 세 분류로 나누되, 평균은 개당 15원에 수렴하도록 보상금 정책을 운영해왔다.
보상금이 15원일 때 평균적으로 매달 450만 개의 페트병을 수거해 9,000만 원의 이익을 냈지만, 운영비 3,000만 원과 보상금 6,750만 원을 지급하면 매달 750만 원의 적자가 발생했다. 수퍼빈이 보상금을 5원 단위로 조정해 테스트한 결과, 보상금 5원 조정에 따른 수거량 민감율은 약 30% 수준이었다. 20원으로 늘리면 수거량이 30% 많은 585만 개로 증가하고, 10원으로 낮추면 30% 적은 315만 개로 감소했다. 운영비 역시 수거량 200만 개 당 1,000만 원씩 증감하기 때문에 페트병 수거랑이 감소하면 운영비 역시 아낄 수 있었다. 보상금 조정율 대비 페트병 수거량 민감도는 낮다고 판단하고, 네프론 생태계를 확장하기 전까지는 생태계를 유지하기 위한 최소 수준의 보상금으로만 운영하기로 결정했다(Exhibit 8).
수퍼빈의 순환경제 생태계 비전은 난관의 연속이었다. 문제는 수거·선별 채널에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재활용 전문업체에 고순도 페트병을 비싸게 팔 수 있을 거란 기대와 달리 저순도 페트병과 비슷한 가격에 매입하는 것이었다. 매입가는 항상 똑같았다. 재활용 전문업체들은 고순도 페트병도 저순도 페트병과 섞어 대부분 중국에 수출하든가 섬유·포장재 등 저부가가치 제품을 만들었다. 고순도 페트병을 소재화 해 고부가가치 제품인 페트병·커피컵 등으로 만드는 프로세스가 국내엔 없었기 때문이다. 재활용 전문업체로선 입고되는 고순도 페트병의 양이 적기 때문에 이를 위해 별도의 소재화 설비를 갖출 이유가 없었다. 기존 수거·선별 업체들도 재활용 전문업체가 페트병의 순도와 무관하게 처리한다는 점에서 재활용품 선별에 큰 노력을 기하지 않은 측면도 있다. 악순환이었다. 고순도·저순도 페트병이 함께 처리된다면 수퍼빈은 재활용 전문업체에 가격협상력을 갖기 어렵고, 무분별하게 소각·매립되는 페트병을 줄이는 데에도 한계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 시장성 있는 제품을 팔아도 이를 재활용할 수 있는 후속 생태계가 없는 점은 수퍼빈으로선 치명적 문제였다.
“처음에는 순도 높은 페트병을 잘 모아 재활용 전문업체들에 팔면 이익이 충분히 발생하고, 환경 보호에도 기여할 수 있을 거라 기대했죠. 그런데 소재 회사들은 품질 구분 없이 처리하기 때문에 어렵게 A급 페트병을 모아서 판매해도 결국은 저순도 제품과 섞여 처리되고, 높은 가격을 받기 어려웠어요. 수퍼빈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사회·경제적 가치를 거두는 데 한계가 있었습니다.”
– 김응식 수퍼빈 CFO
기회의 발견과 소재업으로 확장
그러나 기회는 위기와 함께 찾아오듯 2019년 생태계 확장에 애를 먹던 수퍼빈에게도 해외로부터 여러 기회가 찾아왔다. 유럽연합(EU) 등 선진국들이 2015년 12월 체결한 파리기후변화협약을 달성하기 위해 플라스틱 배출량을 감소시키고 재활용률을 높이는 방향으로 정책을 추진하기로 한 것이다. EU의 정책 방향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 2019년 5월 EU집행위원회는 ‘해양 플라스틱 감소를 위한 일체형 플라스틱 지침’(유럽의회 및 평의회, 2019)을 마련하고, 식음료 제조사 등의 플라스틱 배출을 줄이는 한편 재활용 가능한 형태로 제품을 제작하도록 했다. 2024년 7월 3일부터 페트병과 뚜껑을 분리하지 않고 음료를 마실 수 있게 하는 음료 포장용기의 용기마개를 규제하기로 했고, 의류 제조 원사의 30% 이상을 폐플라스틱으로 제조하는 방안을 강제키로 했다. 독일의 경우 2022년까지 플라스틱 재활용률을 현재 17%에서 36%로 끌어올릴 계획이다. 이에 스위스의 글로벌 식음료 제조사 네슬레는 새 페트병을 만들 때 재활용 페트병에서 추출한 플라스틱을 35% 이상 사용키로 했고, 독일의 스포츠용품 제조사 아디다스도 2024년까지 소비재에 새 폴리에스테르 사용을 중단하키로 하는 등 제조사들이 발 빠르게 대응하기 시작했다. 앞으로 플라스틱 제품 시장은 크게 네 가지 변화를 예상할 수 있다.
1) 석유 유래 소재 사용 감소
2) 생분해 용기 및 재활용 가능한 재료 선택 증가
3) 재활용 기술 투자 촉진 및 재활용 공급 사슬 생성
4) 용이한 재활용을 위해 단일 재료만을 사용한 완제품 제조출처: 카오루 마노, 노무라 타케히코, 마츠라 유리코 (2019)
이에 재활용 페트병을 가공한 고순도 페트 플레이크(PET flake) 수요는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이며 전체 플라스틱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중량 기준 2019년 12.2%에서 2030년 30.6%으로, 부가가치로는 13.9%에서 30.4%로 각각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Exhibit 9).
둘째, 일반 기업들에게도 플라스틱 등 환경 유해 물질 배출을 줄이도록 자본시장의 투자 환경을 조성했다. ESG(Environmental, Social and Governance) 관련 펀드를 조성해 소비재 외 기업들에도 ESG 영역 평가를 경영 목표 중 하나로 세우도록 했다. 기업이 ESG 지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투자금을 회수할 수도 있다. 이에 일반 제조업체는 물론 정보기술(IT) 회사들도 환경 오염을 줄이기 위해 활용 가능한 형태로 폐플라스틱을 배출하는 등의 노력이 필요해졌다.
수퍼빈도 이런 변화를 직접적으로 체감하기 시작했다. 김정빈 대표는 2020년 4월 국내 종합상사들로 부터 고순도 페트 플레이크를 대량으로 공급할 수 있겠느냐는 문의를 받았다. 해외 대형 소비재 제조사들이 현재 고순도 페트 플레이크를 확보하지 못해 목표 시점까지 규정을 못 맞출 가능성이 커 한국 기업에 노크를 했다는 것이다. 다국적 소비재 회사들은 자국에서 고순도 페트 플레이크를 조달할 수 없어 대부분 일본 수입에 의존하고 있었다. 이마저도 양이 턱없이 부족해 한국에 문의를 한 것이었다. 더불어 8월에는 국내 한 IT 대기업으로부터 컨설팅 의뢰를 받았다. 3,000여 명이 근무하는 이 회사 본사 건물에 페트병 배출을 줄이는 한편, 페트병을 재활용할 수 있는 솔루션을 마련해 달라는 요청이었다. 미국의 투자사가 ESG 경영을 투자의 기준으로 삼기로 해서 일정 수준을 충족하지 못하면 외국인 투자자가 자금을 회수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ESG 경영 요구 강화에 따른 글로벌 시장 환경의 급격한 변화는 수퍼빈에게 ‘수요’와 ‘공급’ 양면에서 큰 기회를 가져왔다. 국내 고순도 페트병의 시장성이 낮은 데 비해, 해외 시장이 빠르게 크고 있다고 판단한김정빈 대표는 페트병 수거·선별 채널을 확대하는 한편, 페트병을 가공, 소재화 하는 비즈니스로 영역을 넓히기로 결정했다(Exhibit 10).
김정빈 대표는 수퍼빈을 창업할 때부터 재활용품의 소재업 진출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다만 시점이 문제였다. 네프론 보급 확대 등 재활용 프로세스의 외곽 생태계가 안정되면 사업을 넓힐 계획이었으나, 운영 상 여러 저항에 부딪혀 기회를 찾지 못했다. 소재 가공업의 핵심은 ①제품의 높은 순도 ②대량 생산 ③안정적 공급이다. 이에 창업 초기부터 네프론을 통해 균일 품질의 페트병을 대량으로 확보할 수 있는 프로세스를 만드는 한편, 경제적 보상을 통해 원재료를 안정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는 파이프라인을 구축하려고 했다. 국내 시장 여건이 좀처럼 무르익지 않는 가운데, 해외 상황이 급변하고 있어 소재업 진출을 서둘러 변화에 빠르게 대응해야겠다고 판단했다. 해외 소비재 기업들은 A급 페트 플레이크를 원유에서 추출한 소재보다 3배가량 높은 가격에 사들이고 있어 시장 선점의 필요성이 커졌다.
“페트병 문제는 사회적으로 크게 공론화될 거라 예상했는데, 해외에서 움직임이 바빠졌죠. 예상보다 빠르게 기회를 맞이했습니다. 순환경제는 수거·선별은 물론 소재화까지 이뤄내야 생태계를 만들었다고 할 수 있어요. 각각의 참여자들에게 충분한 가치와 경제적 실익을 줌으로써 안정적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습니다.”
– 김정빈 수퍼빈 대표
기존 생태계 반발 무마
김정빈 대표가 구상하는 수퍼빈의 페트병 소재화 비즈니스는 그가 몸 담았던 제강업과 형태가유사하다. 제강은 제강업체가 국내외로부터 고철을 들여와 이를 전로(轉爐)에 녹여 주조 공정을 거쳐 후판 등 중간재를 만들어 제조사에 판매한다. 이를 수퍼빈에 대입하면 수퍼빈은 페트병을 대량으로 조달해 이를 A급 페트 플레이크로 가공, 소비재 회사에 판매하는 식으로 비즈니스를 설계할 수 있다.수퍼빈은 이를 위해 선별·회수된 페트병을 재생원료로 가공하는 설비 구축에 나섰으며, 이를 통해 페트병 수거부터 재생원료 생산까지 아우르는 독자적 채널을 형성하고 있다(Exhibit 11).
당장 손을 뻗어 확보할 수 있는 시장을 발견한 김정빈 대표는 조달 채널을 네프론에만 기댈 수는 없었다. 고순도 페트병의 수거량이 연 1만t 이상 돼야 해외 판로를 뚫을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네프론 확장 속도로는 이 조건을 충족하기 어려웠다. 때문에 페트병 수거량을 늘리기 위해서 면대면 회수 채널인 ‘수퍼모아’ 서비스를 시작했다. 또 해외투자 비중이 높아 ESG 달성 필요성이 크고, 본사 상주 인력이 많아 페트병 배출량이 많은 기업들을 대상으로 페트병 수거 솔루션을 제공하고 있다.
시 단위 지자체들과도 협력을 늘려가고 있다. 최초 기존 재활용 생태계를 해치는 수퍼빈에 적대적인 공공 유관기관들이 많았다. 폐기물 처리 사업은 B2G(Business-to-Government)의 영역이고 생태계가 자리잡은 지 오래돼 신규 사업자가 뛰어들기 어려운 시장이다. 재활용 폐기물 처리 문제를 상의하기 위해 김정빈 대표가 그간 지자체 폐기물 처리 담당자에 미팅을 요청하면 거절당하기 일쑤였다. “폐기물로 돈을 벌 요량이라면 버려진 볼펜에서 열심히 볼이나 빼서 모으라”는 굴욕적 언사를 들은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러나 김정빈 대표는 포기할 수 없었다. 우선 스마트 시티 도입에 나서고 있는 지자체를 중심으로 접근하기 시작했다. 정부 시책으로 도시 행정의 시스템 선진화가 화두로 떠오르며 네프론을 페트병 재활용의 새로운 창구로 어필했다. 2021년에는 행정 기관의 정점인 청와대에도 네프론 설치를 추진하며 임팩트를 강화하고 있다. 청와대 설치가 성사되면 각 정부부처와 지자체들로의 확대가 용이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더불어 네프론을 설치해 재활용 폐기물 발생을 줄이는 한편 폐기물처리 업체에 지급하는 EPR 지원금을 감축, 예산을 아낄 수 있다고 설득하고 있다. 지역 민원 감소와 예산 절감은 지자체에게는 강력한 유인책이다. 김정빈 대표는 이런 식으로 B2G 뿐만 아니라, B2C와 B2B 영역에도 고르게 페트병 수집 채널을 확보함으로써 안정적으로 페트병을 공급받을 수 있을 것으로기대하고 있다. 더불어 국내 화학회사·종합상사와 함께 해외 판로를 확보하고 있어 생태계가 맞물려 작동하기 시작하면 페트병 영역에서 본격적 순환경제 생태계를 만들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그러나 여전히 기존 사업자들의 반발은 위험 요인으로 남아있다. 수퍼빈이 고순도 페트병을 모아 A급 플레이크 생산이라는 시장의 새로운 세그먼트(segment)를 만들었기 때문에 기존 재활용 폐기물 소재화 기업들의 저항은 크지 않다. 이에 비해 회사의 대부분 수익을 EPR 지원금에 기대는 기존 폐기물 수거, 선별 업체들의 반발이 컸다. 김정빈 대표도 저항을 가급적 불러일으키지 않기 위해 그간 폐기물처리사업자 인가는 물론 EPR 지원금을 받지 않았다. 그럼에도 2020년 초 경기 남부 지역 지자체에 네프론을 설치하는 과정에서 폐기물 수거 업체들로부터 거센 저항을 받아 설치가 지연된 바 있다. 기존 사업체들은 재활용 폐기물 수거량 감소가 예상되자 본격적으로 반발하기 시작했다. 이에 김정빈 대표는 수퍼빈이 일종의 플랫폼으로서 기존 폐기물 수거·선별 업체가 고순도 페트병을 별도로 수거, 제공하는 순환경제 생태계 참여자로 활동하도록 협의를 이어가고 있다. 앞으로 이들이 공급하는 고순도 페트병의 매입가를 올리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다.
시리즈 B 투자 유치와 생태계 확장
수퍼빈의 순환경제 생태계 구축은 이제 초입 단계다. 불합리한 생태계를 뜯어고치는 한편, 이익을 창출하고 분배함으로써 서로 윈-윈 할 수 있는 순환경제 생태계를 지향하고 있다. 이를 위해선 앞으로 더 많은 페트병을 수거해야 하고, 소재화 능력도 고도화해야 하며, 판매 채널도 다변화해야 한다. 환경 보호와 이익 창출이란 비전을 동시에 이루기 위한 여러 가지 과제를 풀어나가고 있다. 수퍼빈은 2020년 8월 200억 원 규모의 시리즈 B 투자를 유치했다. 시리즈 B 투자는 기술이 본격적으로 상품화되는 단계의 투자를 의미한다. 앞으로 네프론의 설치 확대와 소재 가공 설비 구축, 운송·관리 등 인프라 영역에 막대한 자금이 필요하기 때문에, 수퍼빈은 큰 규모의 투자를 유치했다. 이익이 아직 없고, 아이디어와 비전, 그리고 기술력만 가진 회사지만 투자 유치 과정에서 1,000억 원의 기업 가치를 인정받았다. 김정빈 대표는 사업의 확대를 위해 재무적 투자자는 배제하고 롯데케미칼·세아상역 등 전략적 투자자를 중심으로 투자를 유치했다. 순환경제 생태계 구축에 확신을 갖고 함께 갈 수 있는 동맹군에만 투자의 룸을 열어줬다. 수퍼빈은 소재화 및 수출이 원활히 이뤄지면 지자체의 도움 없이도 네프론을 전국적으로 확장할 수 있는 재무적 역량을 갖출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에 2020년 유치한 2020년 유치한 시리즈 B 투자를 바탕으로 2021년부터 본격 소재화 설비 구축에 나서는 한편, 페트병 조달 창구를 다변화하고 있다. 더불어 기존 재활용 폐기물 수거·선별 기업들과도 공생할 수 있는 생태계를 꾸려나갈 계획이다. 2020년 12월 8일 오전, 경기도 화성시의 한 공터. 김정빈 대표는 투자자들과 함께 소재 가공 설비와 창고를 설치할 1만 4,000㎡(약 4,000평) 규모 부지를 둘러봤다. 아직은 잡초만 무성하지만 이곳에 대규모 설비를 구축하고, 수출의 물꼬를 틈으로써 곧 순환경제 생태계의 스타트를 끊을 것이다.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님께서도 현대를 창업한 초기에 영국 금융기관 사람들에게 한 해변을 가리키며 이곳에 조선소를 세우겠다고 했잖아요. 저는 투자자들에게 어딘가에 설비를 세우겠다고 하고 투자 먼저 받았어요. 그리고 그 곳을 찾았고요. 세상에 증명할 수 있는 마지막 단추를 채우기 위해 사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 김정빈 수퍼빈 대표 12월 8일 페이스북 글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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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RL: https://www.nocutnews.co.kr/news/51597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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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상우. (2018. 05. 07). 플라스틱 컵에 알루미늄 덮개 붙어… 만들 때부터 ‘재활용 불능’.
URL: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5/07/2018050700176.html
환경부. (2018), 2016-2017 제5차 전국폐기물통계조사. 한국환경공단
해양수산부. (2016). 2015년 전국 해양쓰레기 6만8천톤 수거, 전년 대비 11.4% ↓.해양환경관리공단.
[주석]
1.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EPR): 폐기물 재활용 촉진을 위해 제품 생산자가 재활용에 투입되는 비용을 납부하는 제도로, 폐기물처리 사업자들의 주된 수익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