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보로(소리를 보는 통로)는 음성인식 AI 솔루션 소보로와 typeX를 운영하고 있는 소셜벤처다. 2022년 현재 학교, 공공 기관, 기업 등 650곳 이상의 기관에서 소보로를 도입했으며, 총 누적 이용 시간은 51,000시간을 돌파했다. 윤지현 대표는 2017년 대학교 수업에서 청각장애인을 위한 실시간 음성인식 솔루션 프로토타입을 만들고 소보로를 창업, 같은 해 정주영 창업경진대회에서 우수상을 받으며 주목을 받았다. 소보로는 임팩트투자사 소풍벤처스, D3쥬빌리파트너스에게 잇달아 초기투자를 유치하며, 소셜벤처로 성장의 기반을 마련할 수 있었다.
소보로는 기업명과 동일한 소보로 브랜드로 청각장애인을 위한 음성인식 솔루션 시장을 개척했다. 2018년 첫 상용제품 출시 직후부터 PC 소보로, 소보로탭 등 청각장애인의 사용환경과 필요에 맞춘 업그레이드를 통해 음성인식 AI의 기술적 완성도를 높여갔다. 하지만, 소보로의 인지도가 높아지고 판매가 늘어나면서, 창업 이후 지적받아왔던 국내 청각장애인 시장에 집중한 성장의 한계에 대한 고민 역시 깊어졌다. 2020년 초, 소보로는 음성인식 AI 기술을 비장애인 시장으로 확장한 새로운 솔루션 개발에 착수한다. 실시간 자막을 제공하기 위해 고도화된 음성인식 AI 기술을 활용하여 녹취록이나 영상자막이 필요한 비장애인 소비자들에게 양질의 서비스를 공급하자는 게 기본적인 아이디어였다.
문제는 새로운 솔루션의 브랜드였다. 기존 소보로 제품군은 사용환경과 필요에 따라 PC 소보로, 소보로탭 등 소보로 브랜드를 확장하는 방식으로 브랜딩해왔고, 기업명과 브랜드가 일치한 덕에 높은 미디어 노출과 긍정적인 브랜드 이미지를 갖고 있었다. 하지만 새로운 솔루션이 비장애인 수요를 타겟으로 한 만큼, 새로운 가치와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브랜드가 필요했다. 다만, 새로운 브랜드를 출시할 경우 필연적으로 동반되는 마케팅 및 운영비용을 무시할 수 없었다. 윤지현 대표와 소보로의 전략적인 의사결정이 필요했다.
소셜벤처 소보로는 비장애인 소비자를 타겟팅한 새로운 음성인식 솔루션을 어떻게 브랜딩하고, 시장에 안착시킬 수 있었을까?
Q1. 소보로는 어떻게 청각장애인 시장에 접근하고, 안정적인 매출을 만들어 낼 수 있었을까? 청각장애인 개인(B2C : Business-to-Customer), 민간기관 및 기업(B2B : Business-to-Business), 정부 및 공공기관(B2G : Business-to-Governance)으로 소비자집단을 구분, 장단점을 비교하며 논의하시오.
Q2. 2020년 초 소보로는 음성인식 AI 기술을 비장애인 시장에 적용한 스크립팅 솔루션 개발에 착수한다. 브랜딩 전략의 관점에서, 소보로가 새로 개발한 스크립팅 솔루션에 인지도가 높은 기존 소보로 브랜드를 사용해야 하는가, 새로운 브랜드를 만들어 사용해야 하는가?
Q3. 2022년 현재 소보로는 청각장애인을 위한 음성인식 솔루션 소보로와 비장애인을 위한 스크립팅 솔루션 typeX 브랜드를 동시에 운영하고 있다. 매출 비중으로 따지면 소셜벤처로서 소보로를 알린 소보로가 압도적이다. 하지만, 녹취공증 시장을 타깃으로 한 typeX의 높은 성장잠재력이 기대된다. 향후 성장과정에서
둘 중 한 브랜드에 집중할 때 생겨날 수 있는 장단점은 무엇이 있을까?
소셜벤처 소보로의 브랜드 포트폴리오 전략 (Case Study)
마치 천국에 와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2016년 초, 겨울이었다. 청각장애인이 주인공인 자전적 웹툰 <나는 귀머거리다> 스크롤을 내리던, 당시 대학생이었던 윤지현 대표의 손이 멈췄다. 웹툰을 빌어, 작가는 중고등학교 교실이 청각장애에 얼마나 무관심한지를 담담히 그렸다. 교사는 수업 진도를 자꾸 놓치는 작가에게 그냥 짝꿍 책을 보고 따라가라는 무심한 조언을 했고, 학교 밖에서도 “자막 있는 인강 구하기는 하늘에 별 따기”였다. 학교 안팎으로 음성 컨텐츠에 대한 접근이 자유롭지 못했던 작가의 마음은 “메말라 쓰러진 상태”였다.
다행히도, 고등학교 졸업 후 작가가 다니게 된 대학에서는 청각장애 학생을 위해 수업 내용을 대신 필기해주는 학생 봉사자를 지원하고 있었다. 첫 수업에서, 학생 봉사자의 키보드를 거쳐 타전된 교수의 육성을 실시간으로 읽을 수 있었던 그 순간을, 작가는 이렇게 기억한다.
“그것은, 내 인생에서 가장 기뻤던 순간, 마치 천국에 와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1)
그 순간과 그 기분, 그 문장이, 윤지현 대표의 마음에도 담겼다.
프로젝트 – 청각장애인 대학생을 위한 음성인식 솔루션 프로토타입 만들기
포항공과대학교 IT융합공학과의 모든 학생들이 거쳐가야만 하는 수업이 있다. ‘창의 IT 설계’ 수업인데, 4학기 동안 제품을 구상하고, 설계해서, 프로토타입을 만들어 데모데이에서 공개하는 프로젝트 수업이었다. 수업 주제를 잡기 위해 브레인스토밍을 하던 윤지현 대표는 웹툰 <나는 귀머거리다>에서 만났던 그 순간을 떠올렸다. 청각장애학생에게 선물처럼 주어졌던 환대의 순간이 지속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작가가 다니던 대학처럼 몇몇 대학은 청각장애학생을 위한 필기 도우미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청각장애학생이 수강하는 수업을 중심으로 함께 수업을 듣고 수업내용을 필기해 줄 도우미를 찾아 매칭해주는 것이다. 하지만, 대학에서 제공하는 필기 도우미서비스의 공급은 주로 학생 봉사자의 자발적 의지에 의존하거나 속기사를 고용해야 해서, 모든 청각장애학생이 필요한 만큼 안정적인 필기 지원이 이뤄지기 어려웠다. 그나마도 필기 도우미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수업은 제한적이었고, 아예 필기 서비스를 지원하지 않는 대학이 많다. 그런데 만약, 특별한 인력이 필요없이 수업 내용을 실시간으로 번역하고 자막화해 청각장애학생의 컴퓨터 스크린에 바로 띄워주는 소프트웨어가 있다면 어떨까? 소리를 보는 통로, 소보로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윤지현 대표는 일주일에 20시간 이상을 투입하며, 실시간 음성인식 솔루션 프로토타입의 기술적 베이스를 구축했다. 실시간 음성인식을 가능케 하는 핵심 STT (Speech-To-Text)2)기술은 구글 등에서 개발자들을 위해 공개한 Open API (Application Programming Interface)3)를 활용해 빠르고 효율적으로 음성인식 기술을 구현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그러나 프로젝트를 진행할수록, 윤지현 대표는 기술적으로 음성인식을 향상시키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문제는, 음성인식 기술이 교실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작동하는지, 청각장애학생들이 불편을 느끼는 지점은 정확히 무엇이고, 어떻게 보완할 수 있을지였다. 이 문제를 해결해가는 과정에서, 윤지현 대표의 노력은 한 수업을 위한 팀 프로젝트 수준을 훌쩍 넘어섰다. 프로젝트의 시작과 함께 윤지현 대표는 직접 수어클래스에 등록했다. 농아인협회와 복지관을 통해 연결된 청각장애학생 인터뷰를 통해, 윤지현 대표는 지속가능한 솔루션을 제공하기 위한 창업에 대한 열망을 키워갈 수 있었다.
첫 3개월 동안 청각장애인 10명을 심층 인터뷰했죠. 듣고보니 그 당시에 청각장애인들은 초중고 때 지원이 거의 없었대요. 대부분 입모양을 보고 수업을 읽었던 것이에요. “12년 동안 책상만 보고 졸업했다”는 분도 계셨어요. 학교에 가서 책만 봤다는 것이죠. 수업은 들리지 않으니 선생님과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고요. … 청각 장애인들은 ‘대학교를 졸업하고 싶지 않다’고도 해요. 속기사 도우미가 붙으니까요. 일생 처음 느껴보는 지원이고, 대학을 졸업하면 그 도우미는 더는 없어요. 그분들께 언제 어디서나 꺼낼 수 있는 실시간 자막을 드리고 싶었어요. 대학생때만 잠깐 누리는 천국이 아니라, 초중고때도, 그리고 대학 졸업한 이후에도 만날 수 있는 ‘소프트웨어’의 형태로요.
– 윤지현 소보로 대표4)
윤지현 대표 팀은 청각장애인 대학생을 위한 음성인식 솔루션의 프로토타입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프로토타입은 교실에 있는 학생과 교수자, 교습환경을 제공하는 대학교와의 긴밀한 협력을 통해 작동했다. 우선, 학교 장애학생지원센터와 협의를 거쳐 교실 컴퓨터에 블루투스 마이크와 소보로 소프트웨어를 설치한다. 수업이 시작되면 화면에 소프트웨어가 인식한 음성 텍스트가 자막처럼 실시간으로 표시된다 (Exhibit 1).
프로토타입 자체는 나쁘지 않게 작동했다. 타겟이 문해력이 높은 청각장애인 대학생이었기 때문에, 더러 오타가 발생하더라도 맥락을 크게 놓치지 않고 수업을 따라갔다. 문제는 프로토타입이 교실을 벗어났을 때였다. 발화자와 청자가 서로 공유하는 상황이나 지식이 적은 상황, 예를 들어 공공기관이나 병원에서도 프로토타입은 만족할만한 수준으로 작동할 수 있을까? 또한, 청각장애인이 아니더라도 인터뷰를 녹취하거나 상담 기록지를 작성할 때처럼 음성인식이 필요한 상황에 소보로를 사용하면서 만족스러운 경험을 할 수 있을까? 창업에 대한 열망이 커진 만큼, 상용제품으로서 프로토타입이 가진 문제점들도 눈에 들어왔다. 좋은 학점은 더 이상 문제가 아니었다. 우리는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성장통: 창업, 그리고 정든 동료를 떠나보내는 일
학기를 마친 윤지현 대표의 선택은 창업이었다. 팀이름은 소보로(sovoro), 윤지현 대표의 가족 단톡방에서 어머니가 지어준 이름이다. 소보로의 핵심기술인 음성인식 기술, STT(speech to text)를 일상용어로 해석하면, 눈으로 볼 수 없었던 소리를 눈으로 볼 수 있도록 만드는 기술이다. 그러니까 청각장애인이 “소리(speech)를 보는(text) 통로를 만들어주는 스타트업”의 앞 글자를 따 소보로. 음성인식 솔루션이 전달하려는 핵심가치와도 일맥상통했기에, 브랜드 역시 자연스럽게 소보로로 부르기로 했다.
프로젝트를 수업과제로 끝내고 싶지 않았던 친구들과 함께 휴학을 신청하고 상경, 공유오피스 네이버 D2 스타트업 팩토리에 둥지를 틀었다. 낯선 서울생활과 시행착오가 이어지던 중, 정주영창업경진대회 참가는 팀의 핵심 아이디어를 객관적으로 평가받고 창업팀으로 거듭날 수 있었던 첫번째 모멘텀이 되었다. 특히, 경진대회에서 제공한 창업가 멘토링이 큰 도움이 되었다. 소셜벤처를 창업한 경험이 있는 임팩트투자사 소풍 한상엽 대표의 도움으로 윤지현 대표는 사회적 가치와 경제적 이윤을 동시에 추구하는 소셜벤처 특유의 긴장을 창업의 동력으로 자원화하는 법을 배웠다. 그리고 소보로팀은 대회 초반부터 두각을 나타냈다. 청각장애인을 위한 실시간 음성인식 솔루션이라는 아이디어와, 프로토타입까지 구현해낸 실행력이 특히 주목받았다.
하지만, 순항하는 것처럼 보였던 소보로의 행보는 뜻밖의 암초를 만났다. 팀원들은 모두 대학생이었고, 창업에 전념할 것인지, 학업으로 돌아갈 것인지 언젠가는 선택을 해야 했다. 새학기가 가까워지며 그 선택의 시간이 다가왔고, 결국 윤지현 대표만이 팀에 남게 되었다. 정주영창업대회 최종발표를 2주 앞둔 시기였다.
대회를 마친 윤지현 대표는 단신으로 소풍이 소재한 공유오피스 카우앤독으로 짐을 옮겼다. 한상엽 대표는 “여기서 그만두면 이후 창업을 다시 하더라도 출발선이 지난번에 멈췄던 여기일 수밖에 없으니 최대한 도전을 해봤으면 좋겠다.”는 조언과 함께, 프로토타입의 소보로를 상용화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춘 경험 있는 개발자를 우선적으로 영입할 것을 조언했다. 윤지현 대표의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공유오피스에서 만나 안면이 있었던 최승만 전 CTO였다. 풍부한 개발 경험을 가진 최승만 전 CTO 영입에 성공하며, 소보로는 기사회생할 수 있었다. 윤지현 대표와 최승만 전 CTO 2인 기업으로 소풍의 소셜벤처 엑셀러레이팅 프로그램을 시작한 소보로는 3천만원의 초기투자를 받고 2개월만에 2018년 5월 첫 상용 음성인식 솔루션 소보로를 출시한다. 같은 해 12월, 소보로는 D3 쥬빌리 파트너스로부터 5억원의 pre-a단계 투자유치에 성공하며 본격적인 실험을 위한 자원을 마련할 수 있었다.
PC 소보로 출시
2018년 5월 첫 상용화 제품으로 실시간 음성인식 솔루션 ‘PC 소보로’가 출시되었다. PC 소보로 프로그램을 다운로드 받고, 로그인한 뒤 버튼을 누르면, 컴퓨터에 입력되거나 재생되는 모든 소리를 자동으로 문자로 번역하는 직관적인 시스템이었다. 과금은 사용시간에 비례하여 매겨졌고, 개인 사용자(2천원/시간)와 기관사용자(교육기관: 5천원/시간, 일반기관: 1만원/시간) 사이 가격의 차이를 두었다.
사실 이전에 소보로와 유사한 서비스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구글이나 네이버, SK 같은 빅테크 기업들의 이미 범용 STT 기술을 독자적으로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빅테크 기업은 직접 플레이어로 뛰어들 만큼 음성번역 시장에 큰 매력을 느끼지 않았고, 구글 같은 일부 기업은 STT API를 공개하여 개발자, 스타트업 생태계를 만드는 방식으로 포괄적으로 시장에 접근하고 있었다. 빅테크 외에도 대학강의를 대필하거나, 기업의 사회적공헌 목적으로 음성인식 기능을 활용한 프로젝트 수준의 시도가 있었다. 그러나 다른 서비스로 피벗을 하거나, 조기에 서비스를 종료했다. 음성인식기술이 잘 활용되지 못하고 종료된 한가지 이유는 2017년 이전에는 공개된 음성인식 기술을 사용해 소비자가 만족할만큼 충분한 정확도를 제공하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PC 소보로는 빅테크가 주목하지 않는 니치 마켓을 타겟팅했고, STT 기술발전으로 전반적으로 향상된 음성인식 기술에 기반해 소비자가 접근할 수 있는 인터페이스를 갖춘 상용화 제품을 만든 점에서 앞선 시도들과 구분되었다. 특히, 프로토타입 때부터 고려되었던 실제 사용환경에 대한 고려는 마이크, 수신기 등 음성 하드웨어와의 연계를 강화한 개발로 이어져, 컨퍼런스, 세미나 등 상호작용이 활발한 환경에서 소보로 솔루션의 비교우위를 확보할 수 있었다.
문제는 어떻게 청각장애인에게 소보로를 전달할 수 있을 것인가였다. 전세계 청각장애인 규모는 3억 6천만명, 국내는 약 36만명에 달한다. 전체로 보면 적다고 볼 수 없는 숫자이지만, 문제는 타겟 소비자가 ‘잘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 있었다. 사회문제를 해결하려는 많은 소셜벤처들이 부딪치는 문제 중 하나는 그들이 솔루션을 제공하려는 장애인, 성소수자, 채식인구 등 핵심 이해관계자가 사회적으로 비가시적인 경우가 많다는 것에 있다. 사회가 이들을 낙인화하거나, 최소한 공적인 장소에서 일반인과 동일한 조건에서 활동할 수 있는 시스템을 결여하고 있기 때문에, 많은 경우에 소셜벤처의 타겟집단은 시장으로부터 유리되고 고립되기 쉬웠다. 이것은 이들이 사회는 물론 시장에서도 소외되기 쉬운 조건에 있다는 것이고, 따라서 일반적인 유통경로나 마켓팅으로는 접근하기 어려운 특징을 갖고 있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타겟소비자가 그들을 대상으로 한 소셜벤처의 상품이나 서비스를 인지하고는 있는지, 얼마나 필요를 느낄지는 이와는 전혀 다른 문제다. 이 상황은 소보로도 다르지 않았다.
소보로는 어떻게 타겟소비자에게 접근하고, 효과적으로 청각장애인을 위한 음성인식 시장에 안착할 수 있었을까?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소리를 보는 통로를 실시간으로 제공하겠다는 소보로의 미션은 시장에서 어떻게 구현될 수 있을까?
유통채널의 문제: 어떻게 청각장애인에게 닿을 수 있을까
2018년 초반 소보로는 두가지 유통경로를 찾았다. 청각장애인 개인 (B2C: Business-To-Customer)과 청각장애인과 관련된 기관 (B2B: Business-To-Business)였다. 우선, 소보로는 개인사용자에게 직접 판매될 수 있었다. 사실 기술적으로만 보면 가장 접근성이 높아보인 대안은 B2C였다. 개발자 정체성에 가까웠던 윤지현 대표도 B2C에서의 성과를 기대했다. PC 소보로는 홈페이지에서 가입하고 컴퓨터에 소프트웨어만 다운로드 받으면 바로 사용할 수 있도록 직관적으로 디자인되어 있었다. 인터넷강의, 뉴스 등 컴퓨터에서 나오는 소리에 대한 자동 문자통역을 제공하기 때문에, 인터넷 강의 등 실시간으로 자막이 필요한 수요는 물론 마이크를 사용할 경우 평상시 대화와 조모임, 면담을 위한 사용에 쓰일 수 있었다. 그러나 PC 소보로는 물론, 소보로에 대한 인지도 거의 없는 상황에서 유의미한 B2C 매출을 일으키기 위해서는 별도의 마켓팅 전략이 필요했고, 이는 인력과 홍보에 추가적인 자원이 투입되어야 함을 의미했다.
청각장애인과 교육, 건강, 복지와 관련된 기관들은 또다른 주요 유통경로가 될 수 있었다. 제도적으로 연수원, 병원, 관공서에서는 장애인 방문 시 지원할 수 있는 방안을 갖추어야 한다. 이때 매번 통역도우미를 이용하는 것보다는 항시 구비해놓고 쓸 수 있는 대안으로 소보로 소프트웨어에 대한 수요가 있었다. 뿐만 아니라, 이미 필기 도우미 지원체계가 갖춰져 있는 대학에서도, 도우미가 부족하여 지원을 못하는 수업, 학생들이 개인적으로 진행하는 조모임과 상담, 인터넷 강의 등에서 지원 공백이 생길 수 있었다. 게다가 마이크, 수신기와의 연계를 고려한 소보로의 실시간 음성인식 솔루션은 강의, 세미나와 같은 오프라인 현장에서 강점을 가지고 있었다. 다만, B2C와 마찬가지로 소보로에 대한 인지도가 낮은 상황에서, 청각장애인과 접촉면적이 넓은 기관을 발굴하고 계약을 창출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B2C가 온라인 마켓팅만으로 충분했다면, B2B는 전통적인 발로 뛰는 오프라인 마켓팅을 요구했다.
소풍의 엑셀러레이팅 과정은 적합한 유통채널을 판단하기 위한 가설을 린스타트업 방식으로 검증해볼 수 있는 기회였다. 가격체계는 B2C 과금을 원가수준에 가깝게 낮추고 B2B 과금을 상대적으로 높게 책정했다. 개인 소비자는 시간당 2천원, 기관 구매는 시간당 8천원으로 가격을 설정하여, 특히 개인 소비자의 접근성을 최대한 확보하고자 했다. 높은 마진율보다 더 많은 사람들의 오랜 시간 사용으로 임팩트를 키우고, 소보로 브랜드의 시장지배력을 높이는 것을 우선순위에 두었다.
실험의 결과는 어땠을까?
B2B에서 길을 찾고, B2G에서 길을 넓히다
윤지현 대표의 첫 기대와는 달리, B2B 영업이 효과적이었다. 교육, 행정, 의료 등 장애인들의 일상생활에서 특히 소통의 빈도와 요구가 많은 상황에 집중함에 따라, 기술이 사용되는 맥락을 주의 깊게 살피고 솔루션으로 개발하는 소보로의 장점이 더욱 명확하게 드러날 수 있었다. 대학을 대상으로 했던 소보로 프로토타입, 강연에 특화된 소보로 PC는 소프트웨어뿐만 아니라 더 명확한 음성인식을 위해 마이크와 통합한 설계를 갖고 있었다. 소보로의 커스터마이징은 특히 청각장애인과 관계자의 상호작용이 이루어지는 환경에서 장점을 발휘했다. 소보로는 첫 거래를 시작으로 해당 기관과 장기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었고, 한 기관에서의 소보로 시연은 관련된 다른 기관에게 직간접적으로 소보로를 홍보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2018년 첫해 매출은 2천 4백만원, 이 매출의 대부분은 B2B에서 나왔다.
제일 첫 고객이 교육부 국립특수교육원이라는 곳이었어요. 우리나라 특수교육을 관장하는 중앙기관입니다. 대강당에서 세미나를 하는 셋팅이었어요. 특수학교 교장 선생님, 선생님들이 오시는데 그중에 청각장애인 선생님들도 계시거든요. 공공기관에서 청각장애인에 대한 배리어프리를 위해 구매해 주셨고, 그곳에 앉아서 영업을 하기도 했어요. … 그리고 한동안 일주일에 두세곳씩 수요가 예상되는 기관을 직접 찾아다니면서 영업을 시작했습니다. (윤지현 대표)
게다가, 기관을 타겟팅하고 영업을 지속하는 과정에서 소보로는 새로운 수요를 발굴할 수 있었다. 65-75세 인구의 40%, 75세 이상 노인의 최대 70%가 경험한다는 노인성 난청 보유자들이었다. 국내에서만 170만명 이상이 노인성 난청을 경험하고 있는 만큼, 시장성도 충분했다. 실제로 많은 병원에서는 진료분야와 상관없이 난청이 있는 환자들과의 의사소통에 불편을 겪고 있다. 정확한 의사소통을 위해 의사는 고성을 질러야 하고, 환자 입장에서는 재차 질문을 하게 되는 딜레마를 해결하는 데, 소보로의 실시간 음성인식 솔루션의 이점은 분명했다. 서울대병원 이비인후과, 흉부외과가 소보로의 고객이 될 수 있었던 이유다.
한편, B2B 영업으로 현장에 자주 나가면서, 윤지현 대표에게 한가지 확실해진 것이 있었다. 청각장애인에 대한 정보가 가장 풍부하며, 개개인과 어떤 방식으로든 연결되어 있고, 한번의 계약에 다수의 청각장애인에게 접근할 수 있으며, 높은 매출을 기대할 수 있는 곳- 바로 정부였다 (B2G: Business-To-Government). 이미 구축되어 있는 복지체계로 인해 정부는 청각장애인에 대한 접근성이 가장 높은 매개자였다. 사실, 휠체어, 보청기 등 하드웨어를 취급하는 장애보조기기 기업들은 정부보급사업을 통해 안정적이고 높은 매출을 올리고 있었다. 문제는, 정부지원사업의 특성 상 정부체계에 등록되어 있는 품목만 정부계약의 대상이 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정부체계에 새로운 품목을 등록한다는 것은 전문가의 심사와 각종 규제와 행정적인 절차를 통과해야 해야만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오랜 시간이 걸릴 뿐 아니라, 높은 전문성과 경험이 있는 인력이 필요했다.
2018년 12월, D3 쥬빌리 파트너스로부터의 pre-A 투자와 동시에 장애보조기기 영업에 전문성이 있었던 오성우 영업팀장이 영입된 이유였다. 오성우 팀장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B2G 사업 입찰을 준비했을 뿐 아니라, 정부 및 기관 영업과 소셜미션과의 연결성을 강화하며 영업전략을 재정비했다.
사실 정부사업은 저희에게도 당사자분들에게도 소중한 사업이죠. 사실 보조공학기기 자체가 시장이 워낙 작다보니까 한국에서는 비용 자체가 굉장히 높게 책정되어 있거든요. 국산이 아니면 수입된 제품을 구매해야 하는데 그것도 가격이 비싸고.. 그래서 정부지원 없이 장애인 보조공학기기를 활용하는 건 접근성이 많이 떨어져요. 정부지원사업은 매출도 무시할 수 없지만,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장애인분들께서 최대한 저희 제품을 신청할 수 있는 다양한 루트를 만드는 것이에요.
-오성우 소보로 영업팀장
브랜드 소보로: 커스터마이징 소프트웨어
B2B, B2G에 집중하는 전략을 채택한 소보로는 기관과 정부의 필요에 맞춰 다양한 신상품을 출시하기 시작했다 (Exhibit 2). 소보로탭 비즈니스, 소보로탭 라이트, 소보로탭 프로는 각각 지원기관의 필요에 맞춰 특정한 기능이 더해지거나 빠지면서 출시된 제품들이다. 2019년 3월 출시된 소보로탭 비즈니스는 가장 먼저 출시된 제품으로 장애인 고용공단을 통해 등록하려고 했던 제품이다. PC 소보로와 달리, 하드웨어인 10인치 태블릿, 마이크 수신기와 연계된 상품으로, 청각장애인 근로자의 필요에 초점을 맞추었다. 특히, 태블릿의 채널링 기능을 이용하면 다른 스마트 기기에서 자막을 동시에 볼 수 있어, 직원 연수, 컨퍼런스 등의 강연에 참여하거나 공간의 제약 없이 태블릿 외 다른 스마트 기기를 활용한 동시 시청이 가능했다. 소보로탭 라이트는 정보통신 보조기기 지원사업을 위해 개발된 솔루션이었다. 정보통신 보조기기 지원사업은 청각장애인이라면 누구든지 신청할 수 있었지만, 정보통신부 예산 규정 때문에 일정 금액을 초과한 과금을 할 수가 없었다. 이 기준을 맞추면서 기존 소보로탭 비즈니스와 차별을 두기 위해, 채널링 없이 필수적인 음성인식/실시간 자막기능을 탑재하고 8인치 태블릿을 사용한 것이 소보로탭 라이트였다. 이렇게 분화된 제품군은 개발에는 부하를 주었지만, 시장 내 구별되는 니즈를 가진 다양한 소비자의 필요를 충족시키면서 소보로의 시장 안착에 기여했다.
2018년 매출은 2천 4백만원이었다. 그리고 B2B, B2G에 집중한 영업전략에 본격적으로 성과가 나기 시작한 2019년의 매출은 4억 1천만원이었다. 당시 250개가 넘는 기관에서 소보로를 사용해, 누적 사용시간은 3천 5백시간을 돌파했다. 청각장애인과 관련된 기관에서, 정부에서, 소보로의 이름은 이제 더 이상 낯설지 않았다. 소보로는 성공적으로 시장에 안착했다.
유니버설 서비스로의 한 걸음: AI 스크립팅 솔루션
소보로가 성장을 하긴 했지만, 사실 벤처캐피털이 흔히 기대하는 J 커브 성장을 보이는 회사는 아니거든요. 그것 때문에 굉장히 고민이 많았어요. 우리는 기존 투자자로서 성장을 지원해줄 필요가 있는데, 과연 지금 더 투자를 해서 우리가 원하는 만큼 리턴을 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있었어요.
-오승현 D3쥬빌리파트너스 심사역
비장애인 수요에 대해서 굉장히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인터뷰를 하러 오신 기자님이 인터뷰하는 동안 소보로 틀어놓고 스크립트를 받아 적어가도 되는지 여쭤보시기도 했고요. 청각장애인이 아니더라도 스크립트를 필요로 하는 대상들을 엄청 많다고 어딜 가나 항상 그런 이야기를 들었고, 투자 유치할 때도 시장 확장을 고려해서 유니버설한 서비스로 만들면 좋겠다는 방향성을 많이 들었어요.
– 윤지현 소보로 대표
2019년 목표했던 성장을 이루고, B2B, B2G 채널로부터 안정적인 매출을 기대할 수 있게 된 소보로의 다음 스텝은 무엇이었을까? 2020년 1월, 윤지현 대표는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비장애인 시장을 타겟팅한 신제품 개발을 위한 TF를 가동했다. 영업팀 매니저, 개발팀, 그리고 윤지현 대표로 구성된 작고 느슨한 TF였다.
외부의 시각으로 보면 갑작스러워 보일 수도 있었겠지만, 적어도 윤지현 대표와 소보로 직원들, 그리고 초기투자자인 소풍과 D3쥬빌리에게 비장애인 시장을 타겟팅한 신상품 개발은 낯선 이슈가 아니었다. 비장애인 시장으로의 솔루션 확장은 사실 첫투자때부터 꾸준히 논의되어왔던 문제였다. 소보로에 투자한 임팩트투자사는 물론 윤지현 대표조차도 국내 청각장애인 시장만으로는 장기적으로 성장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고, 향후 성장 방향에 대한 논의는 투자사와 정규, 비정규 미팅에서의 단골 소재였다. 소보로룰 인터뷰하러 왔던 기자들조차도, 추후 인터뷰 녹취록을 확인할 때의 수고를 줄이기 위해 인터뷰와 동시에 소보로를 키고 시작할 수 없겠냐고 요청했다. 청각장애인의 자유로운 의사소통을 증진하겠다는 소보로의 미션을 달성하기 위해서도 소보로의 성장과 시장 확장은 반드시 달성해야 할 목표였다. 문제는 방법론, 그리고 시기일 뿐이었다. 첫투자 때부터 논의했던 이슈인 점을 감안하면, 오히려 늦은 시작일지도 몰랐다.
아무래도 확장에 대한 건 모든 투자를 받을 때마다 이야기가 나와서, 이 팀이 왜 갑자기 새로운 걸 하지보다는, 드디어 투자받을 때의 그 약속을 지키는구나 이런 느낌이었어요. 잘 해보라고 환영해 주셨고, 론칭할 때도 기대감을 가졌던 것 같아요. 다들 약간 생각했던 방향이었어요.
-윤지현 소보로 대표
‘비장애인 시장으로의 확장을 위한 신제품 출시’라는 목적만을 공유하고, 모든 주제에 열려 있는 TF였지만, 첫미팅 자리에서부터 비장애인을 위한 스크립팅5) 솔루션 아이디어로 자연스럽게 기울었다. 지금까지 노하우가 쌓인 음성인식 AI 기술을 비장애인 시장에 적용했을 때, 정확도가 생명인 녹취공증, 교육 컨텐츠 시장에서 비교우위를 점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그만큼 내부에서는 공감대가 컸고, 창업 후 지난 2년 동안 축적한 경험이 일관적인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소보로 웨이 1: 과거의 나보다 빠르게
2017년 소보로 프로토타입이 개발된 뒤, 첫 상용화제품인 PC 소보로의 출시까지는 1년이 걸렸다. 하지만 새로운 스크립팅 솔루션의 개발에는 그만큼이 걸리지 않을 거라는 자신이 있었다. 그동안 가설을 설정하고, 제한된 자원 안에서 실험을 설계하고, 결과 분석을 통해 가설을 검증하고 피드백을 바탕으로 새롭게 가설을 설정하는 린스타트업 방식에 익숙해진 윤지현 대표는, 과연 누가, 얼마만큼의 비용을 스크립팅 솔루션에 지출할 것인가로 문제를 정의하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최소기능제품(MVP: Minimum Viable Product)를 빠른 시간 내에 만드는 것을 목표로 빠르게 일정을 잡았다.
물론 2020년 전세계를 불확실한 미래로 끌고 갔던 코로나바이러스는 소보로에게 새로운 과제를 던져주었다. 소보로 입장에서 보면, 소보로가 집중해왔던 청각장애인의 보편적인 학습권과 정보접근권에 대한 논의가 재택근무와 원격수업의 비대면 시대를 맞이하여 사회적으로 보다 진지하게 받아들여진 계기이기도 했다. 초중고등학교에 재학중인 청각장애인 학생은 특히 원격수업 환경에서 학습권이 심각하게 침해당했고, 초유의 사태에 대응할 방법을 찾던 교육청은 이미 실시간 음성인식 솔루션을 제공하고 있던 소보로를 드디어 찾아냈다. 새학기 준비를 서두르던 9개 교육청에서 수천 시간 단위로 소보로를 구매했고, 서비스가 낯선 학생들을 지원하기 위해 영업팀은 물론 대표를 비롯한 모든 직원들이 원격으로 사용법을 안내하느라 5월까지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시간을 보내야 했다.
그러나 5월이 지나고 업무가 루틴화되면서 개발팀에서부터 조금씩 여력이 생기기 시작했다. 특히, 최승만 전 CTO를 비롯한 개발팀원들이 모두 경력이 많은 시니어 개발자여서, 랜딩페이지를 개발하는 정도의 가벼운 개발은 한 명이 개발을 맡아도 속도를 내 진행할 수 있었다. TF는 주, 일단위로 로드맵을 만들어 개발을 서둘렀고, 7월에는 큰 방향에서는 윤곽을 잡을 수 있었다. 신제품은 음성인식 AI를 활용한 스크립팅 솔루션으로, 소송에 필요한 녹취록, 교육에 쓰이는 영상 자막처럼 정확도가 중요한 시장을 타겟팅해하는 것이었다. 둘 중 어느 시장에 더 적합한지, 집중할 수 있을지는 런칭 후 소비자의 반응을 살피면서 유연하게 결정하기로 했다. 다만, 법적인 문제가 걸린 녹취공증시장은 음성인식의 정확도만큼이나 신뢰있는 전문가의 공증이 중요했고, 속기사가 그 역할을 했다. TF는 녹취공증을 담당해줄 공인 1급 속기사와의 컨택을 마치고,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과 24시간 내에 공증을 마친 녹취록을 제공하는 것을 경쟁자들과의 차별점으로 구상했다. 론칭 시점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일단 TF로 프로젝트로 가볍게 론칭이 된 상태라 속도가 빨랐고 부담도 최소화했던 것 같아요. 초창기 버전은 녹음 파일 올리고 이메일 연락처 적으면 스크립트 보내드리는 정도로 가볍게 론칭했어요. 사실 스크립팅을 많은 사람들이 원할 거라고 생각했지만, 구체적으로 타겟이 누구일까 확신을 못했어요. 그래서 과연 어떤 녹음 파일들이 들어올까, 어떤 목적으로 들어올까, 정말 어느 정도를 지불할까 몰랐어요. 그래서 그때는 음성인식을 심각하게 사용하지는 않았고 24시간 안에 스크립트만 결과물로 드리면 되니까 최소한으로 작동하는 랜딩페이지만 개발했던 거죠.
-윤지현 소보로 대표
단일 브랜드 vs 멀티 브랜드
문제는 브랜드였다. 소보로의 기존 브랜딩 전략은 소보로가 가진 긍정적인 이미지를 최대한 활용하는 확장적 전략이었다. 소보로탭 비즈니스, 소보로탭 에듀처럼 목적과 기능에 따라 브랜딩을 다르게 하기는 했지만, 소보로라는 대표 브랜드를 활용한 점에는 차이가 없었다. 하지만, 기존 제품군과는 완전히 다른 소비자를 타겟팅한 신제품에도 소보로 브랜드를 적용할 수 있을까? 아니, 적용해야 할까?
소보로 브랜드를 그대로 사용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했다. 소보로 브랜드를 그대로 쓴다는 것은 새로운 브랜드를 개발하는 것에 비해 홍보 비용 면에서 상당한 절약을 할 수 있음을 의미했다. 새로운 서비스의 판매 정도에 따라, 속기 검수를 위한 속기사 채용이 필요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마켓팅 비용 절감은 작은 이슈가 아니었다. 그리고 소보로의 스토리와 정체성은 하루만에 쌓아 올려진 것이 아니었다. 대표와 팀원은 물론 투자자까지 모두가 소보로라는 이름에 애정이 있었다. 소보로 브랜드를 아는 사람들에게, 소보로는 장애인에 대한 존중과 기술적 혁신이라는 가치를 의미했다. 실제로, 특히 론칭 단계에서는 신제품과 소보로 서비스는 기술적 차이가 거의 없었다. 오히려 신제품은 지금까지 소보로가 고도화해왔던 음성인식 AI에 기반하고 있었고, 그렇기 때문에 품질에 자신감을 가지면서도 속도감 있게 신제품 출시를 준비할 수 있었던 것이기도 했다. 어쩌면 ‘소보로 스크립트’라는 브랜드로 기존 브랜드와의 연속성을 강조하면서, 소보로의 기존 고객들에게 어필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윤지현 대표와 신제품 TF의 생각은 달랐다. 브랜드를 결정하기 위한 미팅에서 나온 다양한 이름들 중에, 최종적으로 결정이 된 것은 typeX. 자막, 녹취를 빠르게 전달하겠다는 Typing Express 의 줄임말이었다. 신제품의 기능과 역할에 집중한 네이밍이었지만, 강조점은 기존과는 다른 이름의 브랜드를 출시한다는 것 자체에 찍혀 있었다.
사실 저는 typeX를 어떻게 생각하시냐고 대표님이 물어보시길래, 왜 그렇게 정하셨냐고 물어봤거든요. 사실 아이덴티티와는 아무 상관이 없지 않나 했어요. 나중에 가서 이름을 바꾸고 하면 너무 손이 많이 가니까 지금부터 이름도 그렇고 사람들에게 가서 닿는 느낌부터 고려해야 하지 않을까 말씀을 드렸어요. 그런데 대표님은 typeX는 청각장애인이 타겟이 아니니까, 오히려 기존 정체성을 살리는 게 제한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신 것 같아요. … 어쩌면 대표님은 소셜벤처라는 태그를 떼고도 살아남을 수 있는 회사라는 것을 보여주시고 싶으셨던 것 같아요.
– 오승현 심사역
소보로 웨이 2: 남들과는 다르게
2021년 7월 말, 온라인으로 음성파일의 자막 및 녹취 주문이 가능한 typeX 랜딩페이지가 열렸다. 24시간 안에 국가공인 1급 속기사의 검수를 받은 정확한 속기록을 보내주겠다는 홍보문구와 함께, 파일 업로드 후 음성인식, 타이핑, 속기사의 검수 및 검증을 거쳐 결과물을 제공하겠다는 업무 프로세스에 대한 설명이 전부인 단촐한 페이지였다 (Exhibit 3).
오픈 첫날부터 주문이 들어왔다. 첫고객은 소보로 B2B 영업과 연계된 기관이었다. 행사 때 실시간 자막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방문했는데, 자막 윤문까지 마친 최종본이 필요하다는 이야기에 마침 런칭한 typeX를 이용해달라고 홍보했던 곳이었다. 두번째 고객은 법적 증거를 위한 녹취록이었다. 미리 컨택해 두었던 속기사의 검수를 받아 다음날 녹취록을 전달했다. 론칭 당시까지 백오피스 시스템을 특별히 만들지 않아 주문이 들어오면 엑셀시트에 정리되도록 설정을 해두었는데, 주문이 끊이지 않고 들어왔다. 8월에는, 온라인클래스를 운영하는 스타트업에서 대량 주문이 들어오면서 수천만원의 매출을 찍었다. 스크립팅 서비스를 누가 이용할 것인가에 대한 두 가설은 모두 검증되었다. 법적 증거를 위한 녹취록, 컨텐츠를 위한 자막 모두 시장이 있었고, typeX는 두 시장 모두에서 유의미한 매출을 내고 있었다. 소보로가 1년이 걸려 차근차근 성취했던 시장 안착을, typeX는 1달만에 달성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소셜벤처 소보로의 세가지 혁신
하지만 윤지현 대표와 소보로팀은 린스타트업으로 주요가설을 검증한 이후에 집중할 것이 무엇인지를 잘 알고 있었다. 바로 typeX를 안정적적으로 시장에 자리잡게 하는 것이었다. typeX가 스크립팅 시장의 기존 솔루션과 차별성을 가질 수 있는 영역은 크게 3가지였다: 음성인식 AI 혁신, 가격 혁신, 마지막으로 고용에서의 혁신.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음성인식 AI를 이용한 혁신이다. 녹취록 시장은 법적 효력을 갖기 위해 속기사를 통한 공증을 반드시 요구하는 행정적 장벽 때문에 기술적 혁신이 오랫동안 정체되어 있었다. 사람이 혼자 하면 1시간은 걸리는 10분 분량의 음성을 정리하는 작업을, 소보로의 음성인식 엔진을 이용한 AI 스크립팅은 30분만에 가능하게 줄여주면서도 정확도를 증진시킬 수 있었다. 가격면에서도 차별점을 두었다. 기존 속기 사무소들은 10분 파일에 6-9만원을 받고 있는데 반해, typeX는 녹취 공증 10분에 5만원, 영상자막을 만들어주는 데 10분에 2만원을 받고 있다. 시장에 새롭게 진출한 기업으로서 출혈을 각오한 출혈적 가격정책이 아니라, 음성인식 AI의 도움으로 효율화된 과정에서 절약한 시간과 비용으로 가능한 전략적 가격설정이었다.
마지막으로, 소보로는 특히 녹취공증시장에서 신뢰가 가장 중요한 자산이며, 속기사들이 이 신뢰를 생산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을 존중하고 솔루션을 설계했다. 녹취공증 시장의 작동을 확인한 직후, 소보로는 2명의 속기사를 정규직으로 고용했다. 녹취공증 시장에서 얼마나 매출이 정말 나올 것인지, 한 명의 속기사가 하루에 처리할 수 있는 양이 얼마일지 엄밀한 계산이 나오기에도 이른 시점이었다. 하지만, 윤지현 대표는 속기사의 직접 고용이 퀄리티 컨트롤에 결정적으로 기여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소셜벤처로서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소보로의 가치를 반영하는 결정이라고 확신했다. 윤지현 대표는, typeX가 소비자들에게도 양질의 상품을 제공할 뿐 아니라, 기존 시장에서 과중한 노동과 불안정한 고용계약으로 어려움을 겪어왔던 속기사에게도 가치와 의미를 줄 수 있다고 믿었다. 속기사의 정규직 고용은 첫번째 단추였다.
2020년 7월 말에 출시된 typeX는 그해 말까지 5개월 동안 3억 이상의 매출을 책임졌다. 눈에 보이는 성과만이 아니었다. typeX 출시 이후 속기사를 고용하고, 업무 프로세스를 안정화하며 B2C라는 새로운 유통채널 발굴에 성공했다. typeX와 소보로라는 멀티브랜드를 운영하는 소보로는 청각장애인을 위한 음성인식 솔루션을 제공하는 스타트업, 그 이상이 될 수 있음을 증명했다. 그렇다면 소보로의 다음은 무엇일 수 있을까?
소보로의 과제
2021년 10월, 소보로는 D3 쥬빌리 파트너스로부터 3억, 포스텍 홀딩스로부터 3억 등 총 6억 규모의 추가투자를 유치한다. typeX 런칭 이후 1년 동안, 8,433건의 파일을 처리하고, 50여곳의 기업 및 기관 고객을 유치한 성과를 높이 평가받았다.
사실 typeX초기 모델이 ui, ux도 가다듬어지지 않은 정말 베타버전이었는데 그런 것 치고는 지표가 괜찮았습니다. 그걸 3개월 동안 발전시키는 것을 보고 저희는 투자를 결정했어요. … 소보로가 지속적으로 질문을 받았던 스케일업과 청각장애인 시장만 타겟으로 했을 때의 좁은 길을 이제 방향을 조금 틀어서, 다른 것도 할 수 있는 회사라는 걸 보여주기에는 충분하겠다고 판단했습니다. 소보로가 청각장애인을 넘어 음성인식엔진으로서 어떤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솔루션 기업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보고 2차 투자를 결정했습니다.
-오승현 D3쥬빌리파트너스 심사역
하지만 이 투자는 향후 투자를 위한 브릿지투자의 성격이 컸다. 청각장애인을 위한 음성인식 솔루션 소보로가 어느 정도 안정적인 매출을 내는 가운데, 녹취/자막 시장을 겨냥한 스크립팅 솔루션 typeX의 성장이 지속되고 있었다. 이것은 좋은 신호였다. 게다가 미래를 궁금해하는 것은 초기투자자들만이 아니었다. 소보로의 과거를 지켜봤던 임팩트투자사뿐 아니라 일반 벤처투자사들도 소보로의 현재를 주목하고 성장여력을 재평가하고 있었다. 하지만 투자자마다 시각이 엇갈렸다.
사실 저희는 21년 투자할 때 저희 말고 commercial VC의 투자를 받으라고 말씀을 드렸어요. 여기에서 한번 더 임팩트투자를 받으면, 이 회사는 소셜벤처고 영리사업에는 별로 관심이 없는 회사라고 낙인이 찍힐 수도 있으니까요. … 그런데 어떤 투자자가 만약 typeX만 하고 왜 소보로를 하냐고 한다면 저희가 나섭니다. 왜냐하면 초기 투자자로서 지분이 많은 편인데요. D3의 역할중 하나는 대표님과 창업팀이 갖고 있는 임팩트가 희석되지 않게 지켜드리는 게 저희의 가장 큰 역할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오승현 D3쥬빌리파트너스 심사역
자원이 한정적인 스타트업으로 두 개의 브랜드를 동시에 운영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자원과 인력배분의 문제가 있었다. 소셜벤처로서의 정체성도 문제였다 2019년부터 소보로 브랜드를 성장시켜왔던 기존 팀원들은 물론, 대표 역시 급격한 성장과정에서 소셜벤처로서의 정체성이 흔들리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소셜벤처로서의 가치가 훼손되고 있다는 느낌을 주지 않기 위해 윤지현 대표는 외부적으로는 소보로와 typeX를 균형있게 홍보하고, 내부적으로는 소보로팀과 typeX팀의 상호작용을 늘릴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하나의 정체성을 유지하고자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수의 브랜드를 밸런스를 맞춰 운영하는 일은 스타트업 소보로에게 도전적인 과제임이 분명하다.
이 모든 기대와 긴장에 직면한 소셜벤처 소보로는 어떤 미래를 그릴 수 있을까?
소보로는 typeX에 집중할 수 있다. typeX 출시 후 검증되어왔던 비장애인 시장에서의 성장가능성에 높은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다. 투자자 시각에서 typeX는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쉽고, 시장의 규모에 대한 기대가 있어 선호도가 높은 경향이 있다. 현재 상태만으로도 typeX는 시장 평균 가격 (녹취 사무소)에 비해 30% 차별화된 금액으로 2배 이상 신속한 결과를 제공하고 있다. 음성인식 AI를 고도화한 음성인식 에디터를 활용한 효율적인 편집은 비용과 시간을 모두 절감할 수 있다. 이 경우에 추가투자는 typeX 솔루션의 성장에 집중될 가능성이 높다. 소보로는 이미 8의 1급 속기사를 고용하는 등 인력을 보강하고 있고, 5시간 내에 속기사의 검증을 받은 녹취록을 제공하는 프리미엄 서비스를 준비하고 있다. 소보로와 typeX 브랜드는 당분간 동시에 운영되겠지만, 장기적으로는 rev.com과 같은 대중적인 스크립팅 플랫폼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이 경우에는 소셜벤처로서 소보로의 정체성이 문제가 될 수 있다. 데이터도 문제다. 소보로의 음성인식 데이터 가체는 매우 가치가 높다. 한글로 되어 있고, 음성처리한 결과를 전문가의 수정을 거쳐 정교하게 교정하고, 모든 시간 기록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 소보로는 프라이버시에 대한 고려로 사용자로부터 들어오는 음성을 데이터로 활용하고 있지 않다. 음성처리에 있어서, 더 많은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는 네이버, 구글 등 빅테크와의 경쟁에서는 갈수록 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려워질 것이다.
소보로는 소보로 솔루션의 확장에 집중할 수 있다. 소보로가 설립되었을 때의 미션처럼, 청각장애인을 포함한 다양한 장애에 대응하여 기술적 편의를 증진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 기술들을 발전시키는 것이다. 업종으로 보면 보조공학기기 소프트웨어 기업에 가까운 정체성을 갖게 되는 것이다. 시장이나 매출이 충분히 나오지 않을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혁신이 정체된 장애 보조기기 분야에 고도화된 AI 기술 노하우를 적용시켜 혁신을 주도하며 임팩트 있는 성장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소보로 솔루션의 글로벌 진출과 같은 성장을 고려할 수도 있다. 이미 소보로는 한국어, 영어 등 6개국어를 지원하고 있다.
그러나 윤지현 대표는 마치 양자택일처럼 보이는 질문지에 의문을 제기한다. 소보로는 반드시 두 브랜드 중 하나에만 집중해야 할까? 윤지현 대표는 소보로와 typeX의 관계가 대립적이지 않고, 궁극적으로 통합된다는 비전을 갖고 있다. typeX를 통해 장애인을 위해 고도화된 기술을 비장애인 소비자를 타겟으로 다양하게 응용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고, 새로운 성장 동력 확보를 통해 초기부터 지적되어왔던 제한된 시장이라는 이슈를 해결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미 시너지를 창출하고 있다는 것이다. 동시에, 기술적으로 음성인식을 다루는 기술과 노하우가 소보로와 typeX 양쪽에서 다른 층위와 관점으로 쌓일 것이기 때문에, 빅테크와 구분되는 맥락화되고 전문화된 커스터마이징 AI로서 소보로의 핵심경쟁력이 꾸준히 축적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정부 지원도 근로자를 위한 지원, 학생을 위한 지원 다 개별적으로 운영되고 있는데 제품도 그렇게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실제로 근로자면 근로자들의 줌 회의 업무, 생산직, 서비스직 등 근로 특성에 맞게끔 기능이 편성되고 개발되어야 하고요. 그리고 내가 기기를 쓰고 있지만 아무도 내가 기기를 쓰고 있다는 걸 모른 정도로 컴팩트하고 자연스럽게 쓸 수 있고요. … 실제로 사용하시는 분들의 특성에 맞게 기능을 커스터마이즈하자, 그리고 근본적으로 자막 정확도에 있어서 가장 큰 변화를 주자고 하고 있어요.
-오성우 소보로 영업팀장
이미 소보로 솔루션을 사용하면서 필요한 경우 typeX 속기 서비스를 신청할 수 있는 메뉴가 개발되고 있어, 기술뿐만이 아니라 서비스적으로도 통합될 수 있는 가능성을 실험하고 있다 (Exhibit 4). 청각장애인을 위한 음성인식 솔루션 소보로, 비장애인의 녹취업무를 지원하는 프리미엄 음성인식 솔루션 typeX를 양손에 쥔 소보로는 소셜벤처의 꿈을 꾼다.
[주석]
1. 웹툰 <나는 귀머거리다>
2. 인간의 음성을 인식하여 오디오를 텍스트로 변환해주는 음성정보 처리기술.
3. API는 서로 다른 소프트웨어의 구성 요소가 서로 요청하고 응답하며 통신할 수 있는 일련의 정의 및 프로토콜을 의미한다. 공개 API는 특정한 기술 라이브러리를 무료로 제공하여 이 기술을 사용한 응용프로그램의 개발을 촉진한다.
4. 임경업. (2021.10.12). “아버지의 수첩, 딸은 IT 사업가입니다.” 조선일보. https://www.chosun.com/economy/smb-venture/2021/10/12/5AI67JBKWZAG3CPC2OO3KIVPI4/
5. 스크립팅은 영상 및 음성의 텍스트화를 포괄하는 영역으로, 스크립팅 솔루션은 기술을 활용해 자막, 녹취, 공증 등을 제공하여 수익을 창출하는 사업 영역을 가리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