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부품 제조회사인 ㈜프론텍(이하, 프론텍)은 경력단절여성을 고용함으로써 일터 혁신을 이루어냈다.시화공업단지에 위치한 프론텍은 자동차 공구 세트와 너트를 주로 생산하는 자동차부품 제조업체로, 1978년 창업 이후 2세 경영인인 민수홍 씨가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창업 후 IMF를 거치면서 위기를 맞기도 했으나, 현재는 부설연구소와 해외 공장까지 갖춘 강소기업으로 자리 잡았다. 사실 민수홍 대표가 취임할 당시 매출은 급격히 성장하고 있었지만 영업이익은 적자를 면하지 못하고 있었고, 낡고 침체된 조직문화로 인해 프론텍 내부에는 많은 문제들이 산적해 있었다. 이런 문제들을 민 대표는 시간선택제 일자리를 활용한 경력단절여성 채용 및 조직 혁신으로 극복해나갔다. 본 티칭노트에서는 프론텍의 민수홍 대표가 처했던 중소 제조기업의 경영 위기 상황에 대해 살펴보고, 시간선택제 일자리를 활용한 경력단절여성 채용이라는 새로운 노동력 유입 방식을 둘러싼 조직 변화 과정과 전략을 분석한다.
Q1. 당신이 출산과 육아로 경력이 단절된 여성이라면, 직업을 선택할 때 어떤 요소들을 고려할지 생각해 보자. 경력단절여성들은 어떤 경험들을 하고 있으며, 어떤 니즈를 가지고 있을까?
Q2. 2013년 민수홍 대표가 사장에 취임한 이후 맞닥뜨린 공구 조립 라인(생산2팀)의 문제점은 무엇이었으며,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에는 어떤 것들이 있었을지 논의해보자. 프론텍이 채택한 생산 라인 개선 방안과 시간선택제 도입 방안의 타당성을 분석하라.
Q3. 프론텍이 시간선택제 일자리에 경력단절여성을 채용하는 과정에서 맞닥뜨린 문제에는 어떤 것들 것 있으며, 이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경험한 긍정적인 변화는 무엇인가?
Q4. 다양성 관리 이론에서는 리더의 역할을 매우 강조한다. 프론텍이 조직을 혁신하는 과정에서 CEO가 어떤 역할을 했고, CEO의 이러한 노력은 왜 중요했는가?
Q5. 프론텍이 시간선택제 여성 근로자들을 적극적으로 고용해 가시적 성과를 올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동종업계에 이러한 방법이 확산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여성 고용을 통한 일터 혁신 – 자동차부품 제조회사 (주)프론텍
프론텍의 위기, 대한민국 중소 자동차부품 제조회사의 어려움
2013년 4월 15일, (주)프론텍(이하, 프론텍)의 창립 35주년 기념 행사가 열렸다. 자동차 공구 세트와 너트를 주로 생산하는 프론텍이 위치한 시화공업단지에는 9,000여 개의 기업이 입주해 있지만, 직원이 100명 이상 되는 곳은 10여 곳 정도다. 1978년 3명의 친구가 의기투합해 세운 삼우금속은 1995년 법인으로 성장했고, 그 어려웠던 IMF 위기에서도 살아남았다. 2001년에는 상호를 (주)프론텍으로 변경했고, 이후로도 지속적으로 성장을 거듭했다. 그 와중에 맞이한 창립 35주년 기념 행사는 매우 화려했다.
프론텍은 1998년에 현대자동차가 기아자동차를 인수하면서 매출 물량이 크게 늘었고, 2009년에 200억 원 규모였던 매출이 2011년에는 500억 원으로 늘었다. 이에 따라 부설연구소를 설립하고 시화 공장을 확장했으며 울산과 광주에도 공장을 세웠다.
35주년 기념 행사에는 프론텍의 이러한 성장을 축하하기 위해 많은 손님들이 초청되었으며, 그간의 매출 성장을 보고하는 자리가 마련되었다. 행사는 맛있는 음식과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치러지고 있었지만, 이날 대표이사직에 취임하게 된 민수홍 씨의 마음은 행사장의 분위기와는 대조적이었다. 대학을 졸업하던 1999년에 프론텍에 입사해 실무를 두루 경험하고 입사 14년 만에 사장 자리에 앉게 된 그는 책임감에 어깨가 무거웠다. 게다가 매출액이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어 외형적으로는 실적이 화려해 보였으나 영업이익은 오히려 적자를 기록하고 있었다. 회사의 규모는 커졌으나 생산성과 불량률은 개선되지 않았고, 이는 영업이익의 감소로 이어져 회사의 재정이 점차 어려워진 것이다. 그야말로 풍요 속의 빈곤이었다. 이날 수많은 사람들이 대표이사 취임과 매출 신장을 축하해주었지만, 민수홍 대표의 마음속에는 적자 상태의 회사를 어떻게 끌고 가야 할지에 대한 걱정이 크게 자리잡고 있었다.
특히 신경 쓰인 것은 프론텍의 경영 내실화였다. 프론텍은 2010년을 전후로 규모 면에서 급격하게 성장했으나, 내부의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로 인해 적자를 기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2009년에 201억 원이었던 매출이 2011년에 481억 원으로 늘어나는 동안, 영업이익률은 4.4%에서 3.2%로 떨어졌고, 민수홍 대표가 취임한 2013년에는 -1.1%로 적자를 기록했다(Exhibit 1). 프론텍의 사업은 크게 자동차 판매 시 트렁크에 포함되는 공구 세트와 자동차용 너트를 생산하는 일이다. 즉, 프론텍의 생산 현장은 자동차용 공구 세트를 조립하는 공구 조립 라인과 너트를 생산하는 단조1)라인으로 구성된다(Exhibit 2). 이 두 라인에서 발생하는 크고 작은 문제들이 프론텍을 어려움에 빠뜨리고 있었다.
공구 조립 라인은 자동화 설비(Exhibit 3)가 문제를 일으키고 있었다. 2003년 타 기업에서 해당 사업을 이관 받았을 당시에는 완전 자동화 설비를 구축해 향후 투입될 인건비를 최소화할 전략으로 설비에 큰돈을 투자했다. 하지만 해당 사업에 대해 잘 모르는 상태에서 설비를 주문한 탓에 고장이 잦고 순간적으로 정지하는 문제가 발생했고, 이는 민수홍 대표가 취임한 2013년까지도 해결되지 않고 있었다. 자동화 설비의 특정 부분에서 발생한 문제는 라인 전체를 멈춰 서게 해 작업을 지연시켰다. 또한 설비가 고정되어 있어 정해진 자리에서만 작업을 할 수 있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한 부분으로 이동해 작업을 돕거나 작업 물량에 따라 투입 인원을 변경해야 하는 등 생산 유연성이 제한되었다(Exhibit 4). 자동화 설비의 일부분에서 발생한 문제로 인해 전체 작업 대기 시간이 과도하게 길어지자 투입 인원 수 대비 생산성 지표인 공정 효율은 65% 수준으로 낮을 수밖에 없었다.
공구 조립 라인의 인력에도 문제가 있었다. 프론텍은 인건비를 최소화하기 위해 공구 조립 라인의 80% 이상을 외국인 근로자와 일용직 근로자로 구성해 왔다. 이들은 최저임금으로도 비교적 쉽게 채용할 수 있었지만, 그 만큼 문제점도 많았다. 외국인 근로자들은 의사소통의 어려움으로 품질에 있어서 많은 문제를 일으켰고, 일용직 근로자는 애사심이 부족하고 숙련도가 낮았다. 특히 외국인 근로자들은 초과근무를 하는 방식으로 급여를 더 받아가려고 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자연히 시간당 생산성은 낮을 수밖에 없었다.
너트를 생산하는 단조 라인의 경우 금형 세팅 과정에서 매뉴얼 없이 경력이 오래된 기술자에게만 의존한다는 것이 문제였다. 단조 설비는 일단 가동이 시작되면 비숙련자도 다룰 수 있다. 그러나 설비가 가동되기 전에 원료가 되는 쇳덩어리를 기계에 체결하고 원하는 결과물이 생산되도록 세밀하게 세팅을 해야 하는데, 이는 오랜 세월 현장에서 몸과 감으로 익힌 노하우가 필요한 일이다. 이러한 금형 세팅 업무는 표준화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대부분 현장에서 경력을 쌓아가며 어깨 너머로 기술을 배웠다. 숙련된 기술자들은 월급을 조금만 더 준다는 곳이 있으면 쉽게 직장을 옮기기 때문에 업계 내의 경쟁사들 사이에서는 소모적인 몸값 경쟁이 계속되어 왔다. 프론텍에도 단순 노동직보다 2배 높은 급여를 받는 30년 이상의 경력을 가진 오퍼레이터 A씨가 있었는데, A씨의 고집과 텃세가 민 대표의 고민을 가중시켰다. 민 대표는 현장에서 문제가 발생할 경우 A씨가 나이 어린 부서원들에게 노하우를 전수하며 같이 개선해 나가길 바랐지만, A씨는 젊은 직원들을 무시하고 엄포만 놓을 뿐, 조직적으로 불량률을 개선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 단조 라인의 묵은 관습과 변화에 저항하는 기술자들의 태도가 생산성 향상을 가로막고 있었던 것이다.
프론텍의 변화
민수홍 대표는 대표이사직에 취임한 이후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자체적으로 노력을 기울였을 뿐 아니라 외부에 적극적으로 도움을 청했다. 문제 해결 초기에는 기술 개선과 사업장 혁신 과정에서 경기중소기업성장지원센터의 도움을 많이 받았으며, 중소기업으로서는 어려울 수 있는 새로운 인사제도 도입과 정부 지원금 신청 과정은 정부의 무료 컨설팅 프로그램을 이용했다. 노무 전문 컨설턴트로부터 시간선택제 일자리 도입에 따른 인사관리제도 설계 전반에 관해 도움을 받은 것이다. 또한 시흥 여성새로일하기 지원본부(이하, 새일본부)에서 구인 지원을 받는 등 민 대표는 주변의 도움을 십분 활용했다.
프론텍의 변화는 경기중소기업성장지원센터로부터 기술 컨설팅을 받은 이후 본격화되었다. 경기중소기업성장지원센터의 컨설턴트는 공구 조립 라인의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자동 조립 라인을 U자형 셀 라인으로 개선하는 방안과, 외국인과 일용직 근로자를 충성도 높은 내국인 전일제 근로자로 대체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U자형 셀 라인은 고정 설비가 아닌 근로자의 수동 작업에 의해 진행되기 때문에 필요시 작업자가 이동할 수 있어 작업 유연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이점을 강조했다. 또한 자동 조립 라인에는 6명이 고정적으로 투입돼야 하는 데 반해 U자형 셀 라인은 평균 4명으로 표준 필요 인력을 줄일 수 있었다. 그뿐 아니라 물량 변동에 따라 작업 인원 수를 탄력적으로 조정할 방법을 고안했다. 즉, 생산 유연성을 극대화함으로써 필요 시 2명 혹은 3~5명이 한 조가 되어 작업을 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컨설턴트는 자동 조립 라인보다 사람의 손에 더 많이 의존하게 되는 U자형 셀 라인을 도입하려면 충성심 강하고 말도 잘 통하는 전일제 근로자를 채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외국인 근로자와 일용직 근로자는 의사소통이 어렵거나 일을 느리게 처리해 초과근무수당을 받아가려고 하는 경향이 있고, 생산성 향상을 위한 활동에는 참여 의지가 없기 때문이었다. 민 대표도 이전부터 이런 문제들을 인식하고는 있었지만, 결정적으로 정규직 근로자를 채용하기가 어려웠다. 민 대표에게 새로운 인력 풀을 개척해야 한다는 과제가 주어진 것이다.
새로운 인력 풀 개척: 시간선택제 일자리의 등장
프론텍은 시간선택제 일자리를 이용한 경력단절여성 채용이라는 대안에 주목한다. 민 대표는 인근의 경영자 모임에 참석했다가 새일본부로부터 정부의 시간선택제 일자리 지원사업에 대해 소개받는다. ‘시간선택제 일자리’는 전일제 일자리보다 짧은 시간 일하면서도 고용 안정을 보장받는 정규직을 이르는 말로, 정부는 일자리를 창출하고 일과 가정 사이의 갈등을 경감시키기 위해 시간선택제 일자리 근로자를 채용하는 사업주에게 인건비를 지원해왔다. 기업이 시간선택제 일자리를 만들어 근로자를 채용하면, 정부는 해당 근로자에게 소요되는 인건비의 80%를 지원해 주는 것이다. 이는 중소기업이 시간선택제 일자리를 도입하는 결정적 요인이 될 만큼 큰 돈이지만, 민 대표는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정부의 지원금을 받게 되면 해당 근로자에 대해서는 법정 최저시급의 120%2) 이상을 지급해야 하고, 초과근무를 시키기 어려우며, 최대 지원 기간도 1년으로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아무리 외국인 근로자의 생산성이 낮다 해도 전일제 근로자들이 초과근무까지 하면서 하던 일을 시간선택제 근로자들이 하루 5, 6시간 일하는 것만으로 해낼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다. 게다가 젊은 여성 근로자들이 자동차부품 조립이라는 남성적인 작업 환경에 잘 적응할 수 있을지도 걱정되었다.
컨설턴트는 시간선택제를 이용해 경력단절여성을 고용하는 안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컨설턴트 자신이 제안한 대로 자동 조립 라인을 U자형 셀 라인으로 개선하면 인당 생산량이 2배 이상 향상될 것이라고 가정했기 때문이다. 기존의 자동 조립 라인에 6명을 투입해 시간당 100개의 제품을 생산해냈다면, 새로운 U자형 셀 라인에는 4명을 투입해 시간당 140개의 제품을 생산할 수 있다고 봤다. 이는 자동 조립 라인에서는 하루 10시간 동안 하던 일을 U자형 셀 라인에서는 4.3시간 정도면 해낼 수 있다는 의미이다. 자신이 제안한 라인 개선 방안에 자신감이 있었던 컨설턴트는 민 대표가 걱정하는 경력단절여성과 시간선택제의 한계점에도 불구하고 U자형 셀 라인 도입에 찬성했다. 기존의 사람들에게 새로운 방식을 가르치는 것보다 새로운 사람을 뽑는 것이 조직에 새로운 방식을 이식하는 더 빠른 길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컨설턴트의 제안을 신뢰한 민 대표는 U자형 셀 라인과 시간선택제 일자리를 도입하기로 결심했지만, 그 과정은 처음부터 난관에 부딪혔다. 자동 조립 라인은 2003년, 지금의 회장이 현업에 있을 때 큰 자금을 들여 설치한 것이었다. 투자를 결정할 당시의 전략은 사람을 최소한으로 투입해 인건비를 줄이고 꾸준히 생산을 해 초기의 투자 비용을 상쇄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로부터 겨우 10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현 회장이 과거에 내렸던 의사결정을 뒤집어야 하는 상황이었기에 민 대표는 부담이 컸다. 게다가 이사진과 부서장들의 반대도 거셌다.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던 젊은 여성 근로자들을 전일제도 아닌 아르바이트처럼 쓰느니 외국인 근로자를 쓰는 게 낫다는 생각이 우세했다. 경력단절여성을 시간선택제로 고용하면 기존의 전일제 직원들과 반목이 심할 것이고 책임감 없이 행동할 수 있다는 우려도 강했다.
하지만 민수홍 대표는 포기하지 않았다. 이사진을 설득하는 데는 정부의 인건비 지원제도를 적극 활용했다. 새롭게 고용하는 시간선택제 근로자들은 1년까지 80%의 인건비를 지원받을 수 있으므로, 이 계획이 결국 1년 안에 실패로 돌아간다 하더라도 재정적 손실은 없을 것임을 강조했다. 정부 지원금을 이용해 재정적 리스크를 최소화한다는 점 때문에 이사진은 이 새로운 제도를 도입하는 데 크게 반대할 수 없었다. 반대자들도 경력단절여성 채용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있지만, 외국인 근로자와 일용직 근로자의 단점과 비교해보면 리스크가 크지 않은 선에서 시간선택제 일자리 도입을 시도해 볼만 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또 민 대표는 처음부터 전사적인 변화를 주장하기보다 시범 사업의 형태로 시작해 반대자들의 저항을 최소화하고자 했다. 처음에는 시범적으로 공구 조립 라인에 1개의 U자형 셀 라인을 설치해 시간선택제 근로자를 고용하고, 여기서 성공을 거두면 이를 근거로 전체 공구 조립 라인으로 확대하자고 제안할 계획이었다. 처음 도입하는 U자형 셀 라인은 기존 근로자들과의 상호작용을 차단했다. 서로 반목할 가능성을 최소화하고, 2개 라인의 생산성을 가시적으로 비교해보기 위해서였다.
민 대표는 생산 현장에 시간선택제 여성 근로자를 투입하기 전에 사무직인 재경부에 먼저 시간선택제 경력단절여성을 채용함으로써 조직의 저항을 최소화하고자 했다. 당시 매출 규모가 커지면서 회계 업무가 많아지기도 했고, 때마침 회계 업무를 보던 여직원 K씨가 결혼 준비를 해야 하는 상황이라 충원이 필요하기도 했다. 민 대표는 정규직 1명 자리에 5시간 근무자 2명을 채용하는 조건으로 K씨를 설득했다. 다음은 기존의 전일제 재경 담당 직원인 K씨의 이야기이다.
첫 번째 시간선택제 여성 근로자의 상사가 된 재경부 K씨의 이야기
K씨에게 프론텍은 첫 직장이다. 고등학교 3학년 때 학교로 취업 의뢰가 들어와 면접을 보고 채용되었다. 처음 프론텍에 입사했을 때는 창업주인 민경원 대표이사가 경영을 맡고 있던 시절이었다. 현장에는 불량품 골라내는 일을 하는 아주머니들이 10여 명 있었고, 사무직으로 일하는 여성 근로자는 K씨를 포함해 단 2명뿐이었다. K씨는 입사 후 14년째 재경부에서 일해 왔다. 2013년 처음 시간선택제 근로자를 채용하던 당시에 계장이었던 K씨는 결혼 준비를 하고 있었다. 혼자 회계 업무를 담당해 왔는데, 회사 규모가 커지자 더 이상 혼자 감당하기 어려웠다. K씨는 회사에 충원을 요청했다. 결혼 이후에 임신과 출산을 하게 되면 휴직을 해야 하기 때문에 그에 대한 걱정도 있었다. 그런데 취임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사장이 아르바이트처럼 단시간 동안만 일하는 주부들을 채용하자고 했다. 시간선택제 일자리 제도에 대한 설명도 했다. 처음 말로만 들었을 때 K씨는 시간선택제 일자리 제도에 대해 탐탁지 않게 생각했다. 그냥 일반 전일제 남자 직원을 뽑아주기를 바랐다. 주부들이 와서 그 짧은 시간에 일을 얼마나 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그래도 5시간 근무자를 2명 뽑으면 총 10시간 근무하는 것이고, 새 사장이 적극적으로 설득을 하니 일단 사장의 뜻에 따르기로 했다. 2명의 경력단절여성 D씨와 E씨가 시간선택제 근로자로 선발된 후 K씨는 이들과 손발을 맞춰 일을 해야 했다. 처음에는 굉장히 어색했다. D씨와 E씨는 느지막이 출근해서는 K씨가 한창 일을 하고 있을 때 퇴근했다. 그 모습에 K씨도 집에 가고 싶은 마음이 불쑥 들었다. 어수선한 기분도 들었다. 신입 직원들이 K씨보다 나이가 많다 보니 처음에는 일을 가르치는 것도 부담스러웠다. 2달 남짓 시간이 지나자 K씨도, 시간선택제로 들어온 신입 직원들도 서로 적응이 되었다. 걱정했던 것과 달리 D씨와 E씨는 오히려 근무 시간 동안 더 업무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신입 직원들은 최근에 새일본부에서 회계를 배웠기 때문에 최신 지식에 있어서는 K씨보다 더 잘 아는 것도 있었다. 때문에 지금은 오히려 선배인 K씨에게 가르쳐주기도 하고, 의견 제시도 활발하게 하고 있다. K씨는 이것이 조직이 수평적으로 변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또한 회계 업무에 여유가 생긴 K씨는 혁신 컨설팅 과정에도 참여할 수 있었고, 여기서 좋은 성과를 내 사내 포상을 받고 과장으로 승진도 했다. 현재 E씨는 퇴사하고, 남은 D씨는 전일제로 전환해 근무를 계속하고 있다. D씨는 애초에 육아 문제로 시간선택제 일자리를 구했던 것인데, 친정어머니가 인근으로 이사 오면서 전일제로 전환하기를 희망한 것이다. 그동안 K씨는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다. D씨의 전일제로의 전환은 K씨의 출산과 동시에 이루어졌다. 덕분에 K씨는 큰 문제없이 출산 전후로 휴직을 했고, 이후 무사히 업무에 복귀할 수 있었다. K씨는 육아 선배인 D씨에게 여러 육아 정보를 얻기도 하며, 둘 사이는 더욱 돈독해졌다. K씨는 시간선택제 일자리 제도를 통해 좋은 사람이 들어와 일도 잘하고, 그 덕분에 자신이 결혼도 하고 출산휴가도 다녀올 수 있었다고 말한다. 스스로가 시간선택제 일자리 도입의 가장 큰 수혜자라고 생각하고 있다. |
민 대표는 첫 시간선택제 여성 근로자를 채용하는 과정에 이들과 함께 일할 K계장을 직접 참여시켰다. 시간선택제 근로자 채용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이 지배적이었던 상황에서 K계장이 첫 주자로서 긍정적인 태도를 보여주어야만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특별히 신경을 썼던 것이다. 민 대표는 K계장이 ‘철저히 본인 위주’로 사람을 채용했다고 느끼기를 바랐다. 덕분에 K계장은 시간선택제 일자리와 주부 사원에 대한 선입견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새로 뽑힌 직원들과 큰 문제없이 협조할 수 있었다. 이제는 K계장과 시간선택제 근로자가 최신 회계 지식과 새로운 의견을 공유할 뿐 아니라 서로의 가정을 지지하는 동료로서 시너지를 내고 있다.
공구 조립 라인의 시간선택제 경력단절여성 선발
사무직에 채용한 시간선택제 근로자들이 회사에 성공적으로 적응하자 이는 생산직의 시간선택제 근로자 채용으로 이어졌다. 재경부에서 시간선택제 경력단절여성들이 성과를 내는 것을 확인한 생산 현장의 부서장들도 조금씩 새 제도에 대해 마음을 열기 시작한 것이다. 민 대표는 새롭게 도입하는 U자형 셀 라인에도 시간선택제 경력단절여성을 고용하기로 했다. 하지만 프론텍 내부에는 여성 근로자들을 어디에서 모집하고 채용을 해야 하는지,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지 아는 사람이 전혀 없었다. 생산된 제품을 검수하는 작업에 한정해 나이 많은 여성 근로자를 고용한 적은 있지만, 나이 어린 자녀를 둔 젊은 여성들은 어디서 찾아야 할지 막막했다. 민 대표는 재경부의 시간선택제 경력단절여성 채용에 도움을 주었던 관내 경력단절여성 취업지원 전문기관인 새일본부와 파트너십을 형성하며 이 문제를 해결해 나갔다.
새일본부는 지방자치단체 및 여성부 등과 협력해 여성 고용 창출을 위해 다양하고 밀도 높은 사업들을 진행하는 공공기관으로, 새일본부 같은 여성일자리 창출 기관은 현재 전국에 155여 개가 있다. 일자리를 찾는 경력단절여성들은 인근의 새일본부를 찾고 있고, 새일본부는 이들을 대상으로 취업을 위한 교육부터 일자리 알선, 고용 유지 프로그램 제공, 퇴사 후 재취업 관리까지 전방위로 지원을 하고 있다. 단순히 여성 구직자와 구인 기업을 연결해주는 것뿐만 아니라 관할 지역 내의 여성 경제활동비율을 높이기 위해 다각도로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지역 내의 관련 인사들로 여성 일자리 창출 위원회를 조직해 여성 취업을 위한 직무를 개발하고 교육생 풀을 발굴하며 정부 지원 사업을 기획하고 기업과 연계하는 일도 포함한다.
시화공업단지 주변 지역에서는 시간선택제 일자리에 적합한 직무를 개발하기가 쉽지 않았던 새일본부에게 프론텍의 결단력 있는 채용 의뢰는 매우 반가운 일이었다. 새일본부는 프론텍이 시간선택제 일자리에 경력단절여성을 모집하고 선발하는 과정뿐 아니라, 이후 고용 유지를 위한 간담회를 열고 퇴직 사유를 수집하는 등의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프론텍은 경력단절여성을 채용하면서 매우 놀라운 일을 경험하게 되었다. U자형 셀 라인 1개에 필요한 6명의 인력을 선발하기 위해 새일본부에 구인 의뢰를 했는데, 무려 30여 명의 열정적인 지원자가 몰려들었던 것이다. 이전에는 지원자가 드물었기 때문에 마음에 드는 인재를 골라 뽑기가 힘들었다. 입사 면접을 보기 위해 30여 명의 지원자가 복도에서 기다리고 있는 모습은 민 대표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민 대표는 직원 선발 과정에도 공을 들였다. 낯선 환경에도 잘 적응하고 시간선택제 근무에 만족할 주부를 가려낼 선발 기준을 마련하기 위해 민 대표와 부서장들은 많은 논의를 거쳤다. 선발 기준 중 하나는, 최저임금이라는 조건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다닐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주 양육자로서 돈을 버는 사람보다는 배우자가 직장에 다니고 있는 여성을 뽑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또한 이런 경우에는 배우자에 대한 의존성이 높을 수밖에 없으므로, 배우자가 직장을 타 지역으로 옮길 때 따라서 퇴사할 가능성은 없는지도 가려내고자 했다. 무거운 부품을 다룰 만큼 신체적으로 건강한지, 집에서 하는 부업일지라도 몸을 써서 하는 제조업에 대한 경험이 있는지 등, 이전에는 적용해본 적 없는 기준들을 떠올리느라 고심했다. 이렇게 세심한 선발 과정을 거쳐 경력단절여성 6명이 공구 조립 라인에 시간선택제 일자리 근로자로 채용되었다.
아래는 시간선택제 일자리 도입 초기에 입사해 지금은 공구 조립 라인 여성 근로자들의 조장으로 근무하고 있는 A씨의 이야기이다.
시간선택제 일자리 도입 초기에 공구 조립 라인에 고용된 A씨의 이야기
프론텍의 공구 조립 라인에서 근무하고 있는 A씨는 아들이 셋이다. 결혼 후 세 아이를 낳고 육아로 정신 없는 나날을 보냈다. 그러다 막내가 3살이 되어 어린이집에 가게 되자 낮에 시간이 비게 되었다. 처음에는 낮 시간 동안만 할 수 있는 아르바이트를 찾기 위해 구직 상담을 받으려고 새일본부를 찾았다가 시간선택제 일자리에 대해 알게 되었다. 처음 프론텍에 왔을 때는 많이 놀랐다. 쇠를 다루는 작업장은 시끄럽고 기름 때로 더러웠다. A씨는 결혼 전에 반도체 회사에서 생산직으로 근무한 경험이 있었다. 그때의 깨끗했던 작업장과 미세먼지를 관리하던 작업 환경 등과 비교가 되었다. 그래도 막내가 어린이집에 있는 시간 동안만 일한다는 게 마음에 들어 계속 일을 하게 되었다. 초등학생인 첫째와 둘째가 8시 20분까지 등교를 하고, 8시 40분쯤 막내까지 어린이집 차에 태워 보낸 후 통근 버스를 타고 출근을 한다. 9시 30분쯤 작업장에 도착해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10부터 오후 4시 40분까지 작업을 한다. 퇴근할 때 막내를 데리고 집에 가면, 딱 초등학생 아이들이 학원에 갔다가 귀가하는 시간이 된다. 어떤 직장은 시간선택제 일자리라고 해도 일이 많으면 잔업을 해야 해서 결국은 일을 그만두게 된다고 들었다. 그에 비해 프론텍은 칼퇴근이 보장되고 많이 바쁠 때만 초과근무 희망자에 한해서 최대 2시간까지 근무하도록 하는 점이 특히 마음에 들었다. 처음에는 숙련자들과 한 조로 일하게 되어 속도를 따라가는 것도 어렵고 쇳덩어리를 다루는 일이라 몸에 무리가 가기도 했지만, 경력이 쌓이고 노하우가 생기니 힘도 덜 들었다. 직업 선택 시 A씨에게 임금 수준은 상대적으로 우선순위가 낮았다. 처음부터 당장 많은 돈이 필요해서 구직을 했던 게 아니고, 아이들이 양육기관에 가 있는 시간 동안 아르바이트라도 할까 해서 시작했던 일이기 때문이다. 비슷한 시간 동안 일을 하더라도 식당에서 서빙을 하거나 카운터를 보는 파트타임 일자리는 최저임금을 주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프론텍은 정부 지원금을 받아 최저임금의 120%를 지급하기 때문에 돈도 더 많이 받을 수 있었다. |
민 대표는 컨설턴트가 제안한 U자형 셀 라인을 도입하고(Exhibit 5) 해당 라인에 시간선택제 여성 근로자들을 투입했다. U자형 셀 라인을 구축해 입식 보행 작업을 실시해 개선 전 6.5명이 작업하던 것을 개선 후 4명이 작업하도록 했다. 시간당 1인 생산량을 22대에서 37대로 극대화하면서 생산 효율성도 극적으로 향상되었다. 시간선택제로 선발된 신규 직원들은 새로운 작업 방식을 당연하게 여겼고, 목표 생산량을 달성하고 시간 내에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중요했기 때문에 생산 효율을 높이려는 동기가 강했다. 결과적으로 시간선택제 여성 근로자들은 기존 생산 라인의 전일제 근로자들이 8시간 동안 생산하던 양을 5시간 안에 생산해냈다.
물론 시간선택제 근로자가 투입된 새로운 셀 라인의 생산성이 증명되었다고 해서 모든 근로자를 시간선택제 근로자로 대체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생산 물량은 유동적인데, 시간선택제 근로자들은 초과근무가 어렵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처음 6명이었던 시간선택제 여성 근로자 수는 2016년에 시화 본사의 10개 라인이 모두 시간선택제 근로자들로 채워지면서 총 50명으로 증가했다(Exhibit 6). 인원 교체가 진행되던 2~3년 동안 기존의 외국인 근로자들은 계약 기간이 끝나고 하나 둘씩 조직을 이탈했고, 돌발적 발주를 해결해야 할 때는 파견직 근로자를 활용했다. 2016년 초 시간선택제 일자리 근로자 규모가 안정화된 후로는 더 이상 파견직 근로자를 활용하지 않게 되었다.
그렇다고 시간선택제 일자리 근로자만으로 공구 조립 라인을 운영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공구 조립 라인에는 주된 조립 업무 외에도 전일제 근로자를 필요로 하는 돌발적인 업무들이 있기 때문이다. 민 대표는 전일제 근로자를 일부 둠으로써 이 문제를 해결했다. 소수의 전일제 근로자를 고용해 시간선택제 고용과 전일제 고용을 병행한 것이다. 민 대표는 또한 공구 조립 라인의 업무를 정기 업무와 돌발 업무, 개선 업무로 구분해 운영의 효율성을 높이고자 했다. 기존에는 전일제 근로자들이 정기 업무와 돌발 업무를 구분하지 않고 모두 처리했다면, 시간선택제 일자리 근로자와 전일제 근로자가 함께 일하게 된 지금은 정기 업무는 시간선택제 일자리 근로자가 맡고, 돌발 업무는 전일제 근로자가 맡도록 구분했다. 이렇게 업무가 구분되는 구조가 되고 나니 작업장의 묵은 문제들이 해결되었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개선안을 시도해볼 여유가 생긴 것도 성과였다. 이전에는 일이 구조화되지 않아 작업장 개선 업무에까지 투입할 인력이 없었는데, 이제는 전일제 근로자가 돌발 업무와 개선 업무에 집중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여성 근로자 인사관리에 도전하다
여성 근로자가 많아지자 민 대표는 새로운 문제들에 부딪히게 되었다. 남성 근로자들만 상대해 온 민 대표는 여성 근로자들의 니즈나 취향, 그들 사이의 인간관계 양상 등 모든 것이 이해하기 어려웠다. 남자 관리자로서는 상상조차 해본 적 없었던 불만사항을 처리해줘야 했고, 남성 문화적인 강한 의사소통 방식에 대한 반발이 있었다. 여성 근로자들 사이에서도 불화가 있었다. 그들 사이의 반목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많은 고민을 해야 했다. 자동차부품 제조 현장처럼 거친 작업 환경을 처음 경험해보는 여성 근로자들 입장에서도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기는 마찬가지였다. 지원자가 많았기 때문에 언제든 시간선택제 근로자를 쉽게 채용할 수 있었지만, 퇴직자도 지속적으로 발생했다(Exhibit 7).
생산 과정을 총괄하는 이재호 생산부장은 여성 근로자를 이해하기 위해 매일 시간선택제 일자리 근로자들과 개별 간담회를 가졌다. 한동안은 그게 이재호 부장의 주된 업무이자 일상이었다. 일과 관련된 간담회는 그룹별로 진행해도 되지만, 직장 내 인간관계와 개인의 애로사항을 해결해주기 위해서는 개별 간담회가 필수적이었다. 근로자들이 그룹으로 진행하는 간담회에서는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는 듯해 바쁜 생산 일정 중에도 시간을 할애해 개별 간담회를 지속적으로 한 것이다. 필요한 경우 민 대표가 직접 생산직 여성 근로자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기도 했다. 이들과 소통하고, 이들을 프론텍에 정착시키기 위해 진심 어린 노력을 기울인 것이다.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퇴직률이 크게 줄어들지 않자, 제삼자인 새일본부와 시간선택제 근로자들이 별도로 간담회를 갖기도 했다(Exhibit 8). 그 결과 여성 근로자들의 속마음을 더 적나라하게 들을 수 있었다. 간담회에서 제기된 의견은 새일본부 담당자에 의해 1차로 정리되고, 제삼자의 중재적 의견을 더해 프론텍의 개별 부서로 이관한 후 처리했다. 구체적인 내용은 호칭 정리와 화장실 청소 문제, 출퇴근용 버스의 라인 확대 등이었다. 이때까지 프론텍의 여성 근로자들은 ‘아줌마’라고 불리고 있었는데, 이후로는 ‘OOO 씨’라고 존대하는 것으로 개선되었다. 또 처음에는 여성 근로자가 소수였기 때문에 화장실 이용도가 높지 않아 근로자들 스스로 화장실을 청소하도록 했는데, 간담회 이후 청소 전담 근로자를 별도로 고용하기로 했다. 이 과정은 민 대표에게도 프론텍의 관리자들에게도 신선한 경험이었다. 다음은 민 대표와의 인터뷰 내용이다.
“우리가 여성 근로자에 대해 너무 모르고 있었어요. 하루는 우리 회사가 상도 받고 사회적으로 주목을 받으니까 SBS에서 촬영을 하러 왔는데, 여성 근로자들이 촬영을 거부하는 거예요. 우리는 여성 근로자들이 이런 중소기업 현장에서 일하는 모습을 남한테 보여주는 게 싫어서 그런가 보다 하고 생각했는데, 이야기를 들어 보니까 화장을 안 하고 와서 얼굴이 안 예쁘게 나오는 게 싫다는 거였어요. 그래서 결국 마스크를 착용하고 촬영을 했어요. 이런 에피소드들이 꽤 있어요. 그 동안은 몰랐던 것들이죠. 그런데 기분 나쁘거나 한 게 아니라 좀 신선했어요.”
– 민수홍 프론텍 대표이사
퇴직률을 낮추기 위해 직원 선발과 퇴직 관리 과정도 더 세심하게 개선했다. 시간선택제 일자리 근로자 모집은 계속 새일본부를 통해 진행했는데, 선발 전 면접 과정에서 취업 응시자들이 현장을 미리 경험해 볼 수 있도록 했다. ‘동행 면접’이라는 이름으로, 새일본부 담당자들이 취업 응시자와 함께 현장 견학을 실시한 것이다(Exhibit 9).
퇴직자가 발생할 때도 새일본부의 도움을 받았다. 보통 근로자가 퇴사 의사를 밝히면 자체적으로 사유를 묻지만, 제삼자인 새일본부에서도 퇴직 사유를 확인하도록 한 것이다. 퇴직자들은 보통 프론텍의 상사들에게는 개인 사유 때문이라고 둘러댔지만, 새일본부 담당자에게는 프론텍에서 경험한 어려웠던 점들을 털어놓았다. 지난 10월에 퇴사한 T씨의 경우도 그랬다. 프론텍 관리자에게는 집안 사정으로 그만둔다고 얘기했지만, 새일본부 담당자에게는 다루는 제품이 무거워서 관절이 아프고 몸이 힘들어서 그만둔다고 얘기한 것이다. 실제로 작업장에서 다루는 설비와 제품들이 무거운 건 사실이다. 그래서 여성 근로자들이 근골격계 질환을 종종 호소하곤 했는데, 그 빈도가 남성 근로자들에 비해 높은 편이었다.
민 대표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셀 라인에 부분 반자동화 설비를 추가하기로 했다. 맨 처음 완전 자동화 설비였던 데서 모든 공정을 사람 손으로 진행하는 셀 라인으로 변경했는데, 이제는 사람의 근골격계의 부담을 감소시키기 위해 부분 반자동화 설비를 추가하게 된 것이다. 과부하가 걸리는 공정은 자동화하여 사람의 힘이 적게 들게 했는데, 그 비용은 예전의 자동화 설비에 비해 10분의 1 정도밖에 소요되지 않았다.
민 대표는 여성 근로자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질수록 프론텍을 여성 친화 기업으로 만들기 위해 더 다양하고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였다. 무뚝뚝하고 거친 작업장 분위기를 여성 근로자들이 쉽게 적응하게 하기 위해 웃음 치료나 케이크 만들기 같은 이벤트를 정기적으로 진행하기도 했다(Exhibit 10). 민 대표에게도, 중간관리자들에게도 처음 추진하는 여성적인 성격의 이벤트들이 쉽지만은 않았다. 나이가 많은 원로 경영진들은 쓸데없는 일을 벌인다고 생각했다. 민 대표는 이러한 저항을 의식해 주변 기관의 지원을 적극 활용했다. 지역 내의 건강가정지원센터에 진행 지원을 요청해 프로그램의 질을 높이고, 저렴한 가격으로 공공기관의 시설을 대관했다. 조직의 분위기가 바뀐다고 성과가 높아지는 것은 아니지만, 민 대표와 근로자들은 조직의 분위기가 변화되고 있다는 것을 확실히 체감하고 있었다.
민 대표는 공구 조립 라인의 시간선택제 여성 근로자를 관리하는 여성 조장을 별도로 두기도 했다. 여성 조장을 선출하기 위해 전체 시간선택제 근로자들을 일일이 면담해 추천을 받았고, 중간관리자들의 의견을 더했다. 그 결과 근로자 과반수 이상의 추천을 받은 김수진 씨가 조장으로 임명되었다. 말단 사원으로 입사한 시간선택제 여성 근로자가 관리자로 승진을 한 셈이다.
민 대표는 새로운 조장이 리더로서 책임감을 가지고 역할을 잘 수행할 수 있도록 리더십 육성에도 신경 썼다. 회사의 최고 경영진 모임에 참석할 수 있도록 했고, 부서가 달라 만나기 어려운 30년 근속의 타 부서장과 친해질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기도 했다. 외부 연수 기회도 우선 부여하고, 조직 차원의 컨설팅 과정에도 계속 참여시키는 등 소속감을 주기 위해 노력했다. 새 조장은 여성 직원들 사이의 갈등을 해결하거나 신규 직원으로 인해 발생한 불량 지적, 고충 처리 등을 담당하며, 여성 근로자들과 경영진 간의 마찰을 줄이는 연습을 했다.
현장 관리자들이 처음부터 여성 근로자들을 마음에 들어 한 것은 아니었다. 프론텍에 오래 근무한 베테랑들의 눈에는 신규 여성 근로자들의 업무 능력이 미흡해 보이는 게 사실이었다. 거의 모든 여성 근로자들은 난생 처음 기계 부품을 만져보는 것이었다. 불량은 하나만 발생해도 큰 문제가 되는데, 여성 근로자들의 실력은 쉽게 늘지 않았다. 답답한 마음에 현장 관리자들의 목소리가 높아졌고, 강한 어투는 여성 근로자들을 낙심하게 하고 현장 분위기를 망쳤다. 이에 민 대표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체적으로 불량 개선 교육을 10차례 이상 진행하고, 여성 조장이 임명된 이후에는 여성 조장이 보조 교사처럼 불량 건에 대해 교육하도록 조치했다. 초기에는 이 분야에서 오랫동안 일해온 관리자가 미숙한 여성 근로자들을 지도했는데, 수준 차이가 크다 보니 교육과 학습이 잘 이뤄지지 않았다. 그런데 여성 조장이 중간에서 교육을 하게 됨에 따라 눈높이 지도가 가능해졌다. 또한 중대한 결함을 발견한 사람에게는 현장에서 민 대표가 바로 현금으로 포상을 하거나 불량이 발생한 경우 바로 지적을 하는 등 즉각적으로 피드백을 하자 여성 근로자들의 실력도 점차 향상되었다.
여성 근로자들이 책임감 없이 휴가를 자주 낸다는 것도 현장 관리자들의 불만이었다. 생산 라인은 시간당 생산량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자리를 비우기가 쉽지 않아 휴가 문화가 잘 발달되어 있지 않았다. 그런데 여성 근로자들은 집안일 등을 이유로 자주 휴가를 신청했다. 특히 어린이집 방학 기간이나 자녀가 다니는 학교에서 체육대회가 있는 날이면 근로자 중 다수가 동시에 휴가를 신청했다. 고효율의 라인 가동과 납품 기일 엄수가 중요한 제조업 경영진의 눈에는 한꺼번에 휴가를 내겠다는 여성 근로자들이 너무 책임감 없게 느껴졌다. 일을 아르바이트처럼 여긴다는 생각이 들었다. 간담회에서 이런 이야기가 나오자 여성 근로자들은 매우 섭섭해했다. 자신들은 현 직장의 일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으며, 주어진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면서 상사들의 이런 평가는 부당하다고 했다.
이 갈등을 해결하는 데는 꽤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먼저 민 대표를 포함한 프론텍의 관리자들은 시간선택제 여성 근로자들이 가정을 중요시하는 것이 결코 일을 하찮게 여기기 때문이 아니라는 점을 인정해야 했다. 여성 근로자들에게 가정일에 시간을 할애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을 인정한 다음에는 실질적인 해결책을 마련하고자 했다. 휴가자가 발생해도 공구 조립 라인의 생산 효율을 유지하는 방법을 찾고자 한 것이다. 민 대표는 이에 대비하기 위한 다양한 작업 표준을 확립했다. 평상시의 공구 조립 라인은 1개 라인에 3명3)이 투입되는데, 결원이 발생하면 2명 체제 또는 4명 체제로 진행하는 방식을 시도한 것이다. 투입 인원 별 업무 매뉴얼을 만들고 순환 보직 방식을 통해 근로자들을 학습시켰다. 3개월씩 순환하며 근무하도록 했으며, 근로자들이 모든 방식에 적응하기까지는 꼬박 1년의 시간이 소요되었다. 이 방식이 완성되기 전에는 단체 휴가가 발생하는 경우 일용직 파견 근로자로 결원을 대체해야 했으나, 2017년 1월부터는 일용직 근로자를 전혀 이용하지 않게 되었다.
경력단절여성, 전문 기술직에 도전하다
여성 근로자를 고용해 공구 조립 라인에서 성과를 거둔 민수홍 대표는 전문적인 기술이 필요한 단조 라인에도 여성 근로자를 활용하려는 시도를 했다. 조립 및 포장, 검수같이 비교적 단순한 업무를 하는 공구 조립 라인에 비해 단조 라인은 복잡한 기계 설비를 다뤄야 한다. 원료가 되는 쇳덩어리를 단조 설비에 체결하고, 주문 받은 대로 너트가 생산되도록 기술자가 설비를 세팅하면 기계가 돌아가며 너트를 만들어낸다. 일단 기계가 돌아가기 시작하면 사람은 기계가 잘 작동하는지 확인하는 일만 하면 되기 때문에 필요한 인력이 줄어든다. 반면 기술자가 설비를 세팅하는 과정은 시간도 오래 걸리고, 오로지 암묵지를 보유한 기술자 몇 명에게 의존하는 수밖에 없었는데, 이 과정에서 경영상의 여러 문제가 야기되었다.
민 대표는 우선 경험이 부족한 초보 기술자도 해낼 수 있게 단조 설비 세팅 작업을 표준화하도록 했다. 베테랑 기술자의 ‘손맛’에 의존해야 했던 일들을 표준화해서 개별 품목들의 세팅 과정을 모두 수치로 표현하도록 했다. 이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민 대표는 베테랑 오퍼레이터 A씨가 작업 표준화 과정을 이끌어주길 바랐지만, A씨는 이를 원치 않았다. 조직의 변화가 자신의 기득권을 위협한다고 여겼던 A씨는 작업 표준화에 비협조적인 태도를 보였고 신입 근로자 교육을 등한시했다. 결국 A씨는 여전히 기존의 작업 방식을 유지하고 있는 다른 회사로 이직했고, 이재호 생산부장이 단조 설비 세팅 작업 매뉴얼을 완성하게 되었다.
다음으로 민 대표는 근력이 약한 여성 근로자들이 다룰 수 있도록 기계를 개선했다. 지금도 일부 남아있는 구형 설비는 근력이 필요한 부분이 많아서 남성들도 다루기 힘들고, 다칠 위험도 있었다. 민 대표와 프론텍의 베테랑 직원들은 오랜 노하우를 살려 새 기계를 만드는 데 아이디어를 냈다. 새 기계를 주문할 때 사람의 근력 사용을 최소화할 수 있게 설계해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예를 들어, 기존의 기계는 사람이 볼트를 조여 체결하는 방식이었는데 새 기계는 원터치 방식으로 체결하도록 했고, 작업대의 높이도 여성의 평균 키에 맞춰 낮추도록 했다(Exhibit 11).
민 대표는 표준화된 매뉴얼과 새 기계를 준비한 후 이를 다룰 여성 근로자들을 채용했다. 이렇게 3명의 예비 여성 단조 설비 기술자가 채용되었다. 이 중 1명은 기존에 공구 조립 라인 직원으로 입사한 시간선택제 여성 근로자였다. 민 대표는 이들에게 단순한 공구 조립 라인에 비해 단조 라인의 일은 어렵고 복잡하지만, 앞으로 기술을 익히고 숙련시켜 전문 기술자가 될 수 있다는 비전을 제시했다. 단조 라인 최초의 여성 근로자 3명은 새 기계를 제작한 회사에서 3개월간 교육을 받았다. 기계 회사가 신입 직원의 교육을 담당하게 함으로써 새 기계를 파악할 시간과 직원을 교육시킬 시간을 절약한 것이다.
단조 설비를 다루는 여성 기술자의 등장은 인근의 공단 내에서도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여성 근로자들이 매뉴얼에 있는 단조 설비 금형 세팅 작업을 할 수 있게 되자 민 대표는 2015년 12월 29일 동종업계 대표 150여 명과 경기도 지방자치단체의 관계자들을 초대해 냉간단조 세팅 시연회를 열었다(Exhibit 12). 경력이 오래된 남성 기술자들의 일이라고만 여겨왔던 단조 설비 세팅 작업을 경력 3개월의 여성 근로자들이 십여 분 만에 해내는 모습을 많은 사람들 앞에서 보여준 것이다. 물론 시연회에
나온 여성 기술자들은 아직 교육받은 작업만 수행할 수 있지만, 앞으로 현장에서 핵심 업무에 지속적으로 참여하고 선배 기술자들에게 노하우를 전수받으면 충분히 우수한 기술자로 성장할 수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프론텍은 단조 라인의 현장 업무를 정비해 시간선택제 근로자와 전일제 근로자를 효율적으로 투입하고자 했다. 단조 라인 전체 업무를 정기적인 업무와 돌발 업무로 나누어 정리한 것이다. 기존에는 전일제 직원이 제품 A를 생산하는 전체 업무를 처음부터 끝까지 담당했으나, 이제는 전체 업무 중 정기적인 업무는 시간선택제 근로자가 담당하고, 돌발 업무는 전일제 근로자가 담당하도록 했다. 구체적으로 단조 라인의 경우, 우선 설비를 세팅하는 일은 시간선택제 근로자가 근무 시간 내에 처리하도록 했다. 세팅을 마친 기계는 시간선택제 근로자가 퇴근한 후에도 계속 가동되도록 하고, 전일제 근로자는 기계에서 발생하는 돌발 상황에 대처하도록 업무를 분장한 것이다. 이로써 민 대표는 단조 라인에서도 경력단절여성을 시간선택제 일자리 근로자로 고용해 소기의 성과를 달성했다.
다음은 프론텍의 단조 라인에서 시간선택제 근로자로 일하고 있는 B씨의 이야기다.
시간선택제 일자리 근로자로 단조 라인에 고용된 B씨의 이야기
단조 라인에 근무하는 시간선택제 일자리 근로자인 B씨는 7살과 4살 자녀를 두고 있다. 막내가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한 이후 새일본부를 통해 프론텍에 입사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단순 조립 업무를 하는 공구 조립 라인에 채용되었는데, 면담을 통해 단조 라인으로 전환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게 되었다. B씨는 미혼 시절 섬유 공장에서 일했었다. 생산된 섬유의 품질을 검사하는 일이었다. 기계를 다뤄본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처음 제안을 받았을 때는 단조 설비가 무엇인지도 잘 몰랐다. 공구 조립 라인과는 완전히 다른 일이다 보니 면담 후에도 선뜻 하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B씨도 의아한 마음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새로운 일에 대한 호기심과 도전 의식으로 제안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새로 하게 된 일은 힘든 점도 있었지만 재미도 있었다. 여자이지만 기계를 만질 수 있다는 자부심도 갖게 되었다. 교육을 마치고 나면 많은 손님들을 모셔 놓고 시연을 해야 했기 때문에 연습도 굉장히 열심히 했다. 신규 기계가 들어온 후 반복해서 계속 연습했다. 시연회에서는 3명의 동료와 함께 설비 세팅을 20여 분만에 완료했다. B씨가 다루는 제품은 15~20킬로그램이 나가는 금형이다. 무겁고 힘도 든다. 설비의 특성상 시커먼 기름이 많이 묻어 있다. 아직은 실력도 많이 미흡하다. 웨지(wedge) 조정 같은 설비의 세부적인 부분까지 알고 조정할 수 있게 되려면 더 많은 경험을 쌓아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후 4시 30분이 되면 퇴근해 피아노학원과 어린이집에 있는 아이들을 데리러 갈 수 있어서 좋다. 그리고 여성 최초의 기술자로서 주변의 많은 관심을 받게 된 것이 스스로 자랑스럽다. |
최근 민 대표는 단조 라인에 시간선택제 여성 근로자 2명을 추가 배치했다. 이 중 1명은 프론텍이 여성 기술자를 키워냈다는 소문을 듣고 단조 설비 세팅 업무를 하고 싶다며 자원했다. 민 대표는 이번에도 새 기계를 주문하고 이를 다룰 새 근로자들을 교육했다. 여성 근로자들이 다루게 될 두 번째 단조 기계를 주문할 때는 먼저 경험한 첫 번째 여성 근로자들의 의견을 적극 반영했다. 첫 번째 기계만 해도 너트의 재료가 되는 쇳덩어리를 기계에 거치할 때 직접 손으로 들어서 해야 하지만, 이번에는 소재를 고리에 걸면 자동으로 기계에 거치되도록 했다. 교육 과정도 더 전문화했다. 시흥시와 한국파스너공업협동조합, 시흥 새일본부, 프론텍이 함께 새로운 시간선택제 일자리 창출을 위해 여러 차례의 간담회를 진행한 결과 ‘경력단절여성 시간선택제 소성가공(단조 설계) 시뮬레이터 양성 과정’을 설계해 프론텍뿐 아니라 인근 공단의 동종기업들도 교육받은 여성 근로자들을 채용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민 대표는 지역사회 일자리 창출 프로그램의 기여자이면서 동시에 수혜자다. 프론텍에 두 번째로 채용된 여성 단조 설비 기술자들은 이 교육 과정의 혜택을 받을 수 있었다.
긍정적인 조직 변화와 성과
프론텍은 자동차부품 제조 분야의 여성 근로자 고용에 있어서 선두를 달리고 있다. 한때 프론텍의 여성 고용 비율은 35%로, 중소 제조기업의 평균 여성 고용 비율인 26.9%를 훨씬 웃돌았다. 시간선택제 경력단절여성 채용을 지속적으로 확대해 지금은 전 직원의 27.2%가 시간선택제 일자리 제도로 채용된 직원들이다. 평균 근로시간은 11.5% 감소했다. 단순 업무에서 시작되었던 시간선택제 여성 근로자들의 업무 영역은 이제 숙련된 남성 근로자들이 점유하던 전문 기술직으로 확대되고 있다(남녀고용평등 우수사례 발표 자료, 2016)
프론텍의 도전은 가시적인 성과로 이어졌다. 인당 생산성은 개선 전과 비교해 59% 향상되었고, 최종 검사 불량률은 개선 전과 비교해 67% 줄어들었다. 그 결과 일부 생산 라인의 제조가공비는 66%나 감축되었다. 이는 연간 2억 7천만 원에 이르는 재무 효과로 이어졌고, 납기 대응력을 크게 높이는 결과를 가져왔다. 2013년에는 전 공정 통합 생산관리시스템을 구축해 불량률 감소, 근로환경 개선, 신규 일자리 창출 등의 성과를 내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상을 수상했고, 2014년에는 고용창출의 공로로 고용노동부 장관상을 수상했으며, 2016년에는 남녀고용평등에 힘쓴 공로로 제20회 남녀고용평등주간 기념식에서 산업철탑훈장을 수상했다(Exhibit 13).
무엇보다 시간선택제 일자리를 성공적으로 정착시킨 후 구인 걱정을 덜었다. 인근에서 프론텍이 시간선택제 일자리를 제공한다는 소식이 입소문을 타면서 지원자는 더 늘고 있는 상황이다.
다음은 20년간 제조 현장에서 일해온 P직장의 소감이다.
“처음에는 우려했어요. 결정적으로 사장님이 밀어붙여서 추진한 것이거든요. 솔직히 아직도 다 좋지만은 않은 듯해요. 아무래도 우리 일이 쇠를 다루는 일이라 힘으로 쇠를 잘라야 할 때도 있는데, 여성들은 숙달도 잘 안 되는 것 같고, 신경 쓸 일도 많고요. 과거에 쓰던 구형 기계들은 다 힘으로 다뤄야 했기 때문에 남성들이 해야 된다는 편견이 있었어요. 사실상 남자들도 잘 안 들어오려고 하고, 젊은 사람들은 더더욱 안 하려고 하는 부분이 있었어요. 사람 구하기가 많이 힘들다 보니까 대부분 외국인들을 썼죠. 그런데 새 기계를 만들 때 여성들이 편하게 다룰 수 있게 바꿨어요. 여성도 일할 수 있는 작업장이 되면서 장기전으로 가게 된 거죠. 지금은 시간선택제 여성 근로자가 50명 가까이 돼요. 모집 공고를 내보내면 여전히 지원자가 많이 몰리고요. 지금은 누가 그만둔다고 해도 사람 뽑는 것 때문에 걱정할 일은 없습니다.”
– 프론텍 제조 1팀 P 직장
프론텍은 시간선택제 일자리를 도입해 경력단절여성을 고용한 결과 조직문화가 이전과 많이 달라졌다고 한다. 남성 100%인 프론텍의 조직에 여성 구성원이 유입되자 기존의 남성주의적 문화가 변하고 남성 근로자들의 작업 태도도 변했다.
다음은 현장 총책임자인 이재호 생산부장과의 인터뷰 내용이다.
“여성분들은 기존에 병역특례로 입사한 친구들하고도 잘 지내요. 젊은 친구들이다 보니 작은 일에도 기분이 왔다 갔다 할 수 있거든요. 여성분들이 그런 부분에 있어서 섬세하게 잘 대처하는 것 같아요. 사실 트러블이 생겨서 나간다고 할 때, 저하고 얘기하면 대부분은 울고 나가버리거든요. 원래 제가 되게 무뚝뚝한 사람인데, 그분들과 한 3년 일하고 면담도 하고 간담회도 하면서 아주 많이 배웠습니다. 저희 집사람도 제가 많이 부드러워졌다고 하더라고요. 회사에 여성들이 많아지니까 저도 그런 쪽으로 바뀌어가는 것 같아요. 여성들이 유하다고 꺾이고 그러지는 않잖아요. 유연하지만 더 강한 면도 있으니까요.”
– 이재호 프론텍 생산부장
동반 성장의 꿈
민수홍 대표는 시간선택제 일자리에 경력단절여성을 고용함으로써 2013년 사장직에 취임할 당시의 고민과 문제 들을 풀어왔다. 그 결과, 동종업계에서 크게 주목을 받았을 뿐 아니라 지방자치단체와 관련 기관에서 여러 차례 상을 받았고, 프론텍의 경영 성과는 우수 사례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이에 민 대표는 프론텍뿐 아니라 대한민국 부품 제조 산업의 동반 성장을 위해 본인의 경험을 주변에 적극적으로 알리고 있다.
“제가 우리 회사의 노하우를 경쟁사에 알려준다고 해서 우리 회사가 뒤쳐진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오히려 그런 자극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지금 회사 내에서 ‘이제 할 만큼 한 거 아니야. 여성 채용 이 정도 했으면 된 거 아니야’ 하는 분위기가 감지되는데, 이게 끝이 아니거든요. 저는 앞으로 유연근무제를 도입해볼 생각을 하고 있어요. 노력은 하고 있는데, 이렇게 안주하려는 분위기 때문에 잘 안 돼요. 주변에 우리보다 더 특이하게 운영하는 회사들이 많이 나타나야 우리도 자극을 받아서 더 잘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 민수홍 프론텍 생산부장
민 대표는 일단 내부 사정을 잘 아는 프론텍의 70여 개 협력사에 시간선택제와 경력단절여성 고용의 효과에 대해 조언을 자주하고 있다. 관심을 보이는 기업에는 새일본부 같은 협력 기관을 소개해 주기도 한다. 또한 경영자 모임이나 정부 행사 등에서 사례 발표 요청이 들어오면 바쁜 와중에도 열일 제쳐두고 달려간다. 지방자치단체 및 지역의 새일본부와 파트너십을 맺어 경력단절여성 일자리 창출 간담회에 참석하기도 하고, 업계의 여성 고용 확대를 위한 사업을 추진하는 데도 열심이다. ‘제조과정 현장혁신 관리자 양성과정’도 그중 하나다. 민 대표는 경력단절여성을 위한 새 일자리로 ‘현장 개선 리더’ 업무를 제안하고, 한일산업 기술협력재단과 시흥 새일본부와 함께 여성 전문가 양성 과정을 개설했다. ‘모노즈쿠리’는 공정 개선이나 낭비 요인 제거, 공정 순서 변경, 작업 과정 분석 등을 통해 제조업체의 생산성을 높이는 생산관리기술을 말하는데, 일본이 제조 강국이 될 수 있었던 비결이 바로 모노즈쿠리에 있다. ‘제조과정 현장혁신 관리자 양성과정’은 여성들에게 모노즈쿠리를 교육시켜 시흥의 소규모 제조기업들에 취업하도록 돕는 프로그램이다. 그뿐 아니라 이렇게 제조 산업의 설계와 생산에 대한 지식을 두루 갖춘 여성 전문가가 체계적이고 효율적으로 생산 라인을 관리하게 함으로써 중소 제조기업의 경쟁력을 향상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제 2, 제 3의 프론텍은 아직 등장하지 않고 있다. 제조기업에서의 시간선택제 경력단절여성 고용은 여전히 그 수가 적고, 일부 사무직에 한정되어 있다. 프론텍처럼 새로운 직무를 개발한 사례는 아직 찾아보기 어렵다. 혹자는 오래된 제조업계의 보수성을 그 이유로 꼽았다. 오랫동안 해당 사업을 해오면서 사고가 보수적으로 굳어졌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특히 규모가 큰 제조기업일수록 보수적인 문화 탓에 시간선택제 근로자가 투입되기 어렵고, 노조가 반대하는 경우도 많다. 새로운 것에 대해 일단 의심하고 보기 때문이다. 또한 업종상 같은 자동차부품 업체이더라도 물품에 따라 장소, 인력 편재 등의 요인이 다를 수 있는데, 이 부분에 대한 후발 주자들의 고민이 부족한 탓도 있다. 노동시장 축소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국내 제조기업들이 어떻게 이 난관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이에 대해 민수홍 대표는 우선 시간선택제 일자리와 경력단절여성 인력의 가능성에 주목하길 권한다.
프론텍의 미래
2018년 4월 13일 프론텍은 창립 40주년을 맞았다. 사장 취임 후 다섯 번째 창립기념일을 맞은 민수홍 대표는 그 동안의 성과가 몹시 자랑스럽지만 5년, 10년 후에도 이러한 성과를 이어갈 수 있을지 걱정되는 것도 사실이다. 일단,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최저임금이 급격히 인상되었다. 정부의 시간선택제 일자리 지원금을 받으려면 해당 근로자들에게 최저임금의 110%4) 이상을 지급해야 하고, 조직 내 형평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전일제 근로자의 임금 수준도 여기에 맞춰 주어야 한다.
또한 원청사인 현대·기아자동차의 실적에 의존해야 하기 때문에 프론텍이 통제할 수 없는 시장 변화에 대해서도 준비해야 한다. 이 때문에 민 대표는 새로운 고객을 확보하기 위해 일본으로, 러시아로 바쁘게 뛰고 있는 중이다. 한 가지 다행인 것은 시간선택제 여성 근로자를 고용한 경험이 해외 바이어들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주고 있다는 것이다.
2017년, 일본의 한 회사 관계자들이 프론텍에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민 대표는 프론텍의 시간선택제 여성 근로자 고용 정책에 대해 소개했는데, 일본 측 대표가 아주 깊은 인상을 받고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일본 내에서도 시간선택제 일자리 제도를 통해 경력단절여성을 고용하기가 어려운데, 한국 기업에서 이미 성공적으로 도입한 것을 보고 깊은 인상을 받은 것이다.
정부 정책도, 시장 상황도 어느 것 하나 쉬운 것이 없지만 민수홍 대표는 지난 5년간의 도전과 경험을 발판 삼아 다시 힘을 내리라 다짐해 본다.
Exhibit 1. 2009 ~ 2013년 프론텍 매출액 및 영업이익률 추이
Exhibit 2. 프론텍의 생산 제품
* 출처: (주)프론텍 회사소개서, 2017. 1.
Exhibit 3. 개선 전 공구 조립 라인의 입식고정방식 작업도와 작업 광경
* 출처: Cell Line 구축을 통한 생산성 혁신, (주)프론텍 내부 세미나 자료, 2013. 12. 16
Exhibit 4. 공구 조립 라인의 개선 전/후 Line Balance 효율 차이
* 출처: Cell Line 구축을 통한 생산성 혁신, (주)프론텍 내부 세미나 자료, 2013. 12. 16
Exhibit 5. 개선 후 공구 조립 라인의 U자형 셀 라인 작업도와 작업 광경
* 출처: Cell Line 구축을 통한 생산성 혁신, (주)프론텍 내부 세미나 자료, 2013. 12. 16
Exhibit 6. 프론텍의 시간선택제 일자리 근로자 수
(단위: 명)
* 출처: 4차 산업혁명을 준비하는 파스너 산업의 변화와 혁신, (주)프론텍 글로벌 파스너 컨퍼런스2017(금속산업대전 2017) 발표자료, 2017. 10. 24.
Exhibit 7. 프론텍의 연도별 입사자 수와 퇴사자 수
* 자료제공: (주)프론텍, 년도별 입사자/퇴사자 현황
Exhibit 8. 시간선택제 일자리 근로자 간담회 보고서 샘플
* 자료제공: 시흥 여성새로일하기 지원본부
Exhibit 9. 새일본부의 시간선택제 일자리 동행 면접 일지
* 자료제공: 시흥 여성새로일하기 지원본부
Exhibit 10. 조직문화 변화를 위한 이벤트 기획안 및 사진
* 자료제공: (주)프론텍 내부자료
Exhibit 11. 냉간단조 여성 기술 인력 운영 장비 개선 내용
* 출처: 4차 산업혁명을 준비하는 파스너 산업의 변화와 혁신, (주)프론텍 글로벌 파스너 컨퍼런스2017(금속산업대전 2017) 발표자료, 2017. 10. 24.
Exhibit 12. 여성 근로자 단조 금형 세팅 시연회 장면(2015. 12. 29)
* 출처: 4차 산업혁명을 준비하는 파스너 산업의 변화와 혁신, (주)프론텍 글로벌 파스너 컨퍼런스2017(금속산업대전 2017) 발표자료, 2017. 10. 24.
Exhibit 13. 프론텍의 표창 및 수상 기록
[주석]
1. 단조(forging, 鍛造): 고체인 금속 재료를 해머 등으로 두들기거나 가압하는 기계적 방법으로 일정한 모양으로 만드는 조작(출처: 두산백과).
2. 정부 고시에 따라 매년 조건이 바뀔 수 있음. 2017년 11월 기준 고용창출장려금 지급 대상인 시간선택제 근로자에게 「최저임금법」 제5조 제1항, 제2항에 따른 최저임금의 110% 이상(단, 대규모 기업은 최저임금의 120% 이상)의 임금을 지급해야 함.
3. 셀 라인을 처음 설계하던 당시에는 4명이나 6명이 1개 라인에 투입되기도 했으나 라인을 지속적으로 개선한 결과, 현재는 1개 라인에 3명이 투입되는 것으로 정착되었다.
4. 정부의 인건비 지원에 따른 세부 지침은 지속적으로 수정되고 있으며, 본문에 제시된 최저임금 110% 이상 지급 조건은 2018. 1. 1. 고시 [고용창출 장려금ᆞ고용안정장려금의 신청 및 지급에 관한 규정]에 따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