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과 ‘냉정’ 사이에서 – 딜라이트의 비즈니스 모델

기존 신문이나 방송에서 많이 회자된 회사인 딜라이트의 지속 성장 가능성을 인수합병 전후로 나누어 살펴본다. 딜라이트의 사례는 기본적인 경영 과목(특히 경영전략 과목)을 이수한 대학 3~4학년생과 MBA 학생들을 위한 창업 및 사회적 기업가 수업에서 활용도가 높다. 대학생들에게는 사회적 기업으로서 딜라이트의 비즈니스 모델을 평가하고 다양한 사회 · 경제적 이슈를 고민해봄으로써 사회적 기업이 초기에 겪는 어려움과 문제 해결 방법을 모색해볼 수 있다. 또한 MBA 학생들에게는 인수합병 이후에 벌어지는 사회적 기업의 생존전략에 대해 고민해보는 계기가 되리라고 생각된다. 나아가 비영리업계 종사자 들에게는 사회적 기업의 사회적 미션이 ‘시장의 논리’와 접목되는 과정에 대한 이해도를 높일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이런 점에서 이 사례는 경영전략, 창업 및 사회적 기업과 관련된 수업에서 여러 가지 목적으로 응용될 수 있다.

이 사례의 주된 내용은 딜라이트가 2010년 사업을 시작하여 2011년 3월 31일 대원제약에 인수합병되는 날까지의 사업내용 및 사업성과로 이루어져 있다. 즉, 처음 작은 대학 동아리에서 출발하여 사업을 시작한 계기, 보청기 산업의 구조 및 경쟁동학, 산업의 문제점을 창업 기회로 살려낸 창업 멤버들의 기업가정신, 그리고 지속 성장 가능한 사업모델을 찾기 위한 인수합병 과정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Q1. 딜라이트가 인수합병되기 이전인 2010년 당시의 보청기 산업환경을 분석해볼 때, 당시 딜라이트가 당면한 ‘높은 보청기 가격으로 인한 낮은 보청기 사용률’의 이유는 무엇인가? 딜라이트는 어떻게 이런 문제점들을 해결하려고 했는가?

Q2. 인수합병 이전 딜라이트의 초기 비즈니스 모델은 무엇인가? 이 모델은 당시 지속 가능하다고 생각하는가? 만약 지속 가능하지 않았다면 그 판단 근거는 무엇인가?

Q3. 대원제약이 딜라이트를 인수합병한 이유를 생각해보자. 인수합병을 통해, 어떤 산업 환경적 요소를 극복하여 비즈니스에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Q4. 대원제약에 의한 인수합병 이후, ‘사회적 가치와 (혹은) 경제적 이익’을 중심으로 딜라이트의 4P 전략(Price, Product, Promotion, Placement)을 도출할 경우 어떤 모델을 선택을 할 수 있는가?

0 0 votes
Article Rating

‘열정’과 ‘냉정’ 사이에서 – 딜라이트의 비즈니스 모델

“돈이 없어서 듣지 못하는 외로운 사람이 없는 세상을 꿈꿉니다.”

– 김정현 전 딜라이트 대표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에게 저렴한 보청기를 널리 보급하자.’ 이는 보청기 회사 딜라이트를 설립한 김정현 대표가 실현하고자 한 사회적 가치이다. 2011년 3월 31일, 그는 대원제약과의 인수합병 절차를 마무리하는 마지막 서명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건물 안으로 들어서는 김정현 대표의 머릿속에는, 그동안 진행한 다양한 사업과 성과들, 그리고 해결해야 할 문제점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딜라이트는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가? 돈이 없어서 보청기를 사용하지 못하는 사람이 없는 세상을 이루겠다는 꿈을 실현할 수 있을까? 그 꿈을 위해서라면 어렵더라도 저가 보청기를 계속 유지하는 것이 좋은가? 아니면 수익을 위해 고가 보청기로 사업을 확대해야 하는가? 보청기 제품의 마케팅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가? 현재의 비즈니스 모델은 어떻게 발전시켜야 하는가? 사실, 김정현 대표는 최근 한두 달 동안 ‘사회적 가치’와 ‘경제적 이익’ 사이에서 딜라이트를 어떻게 운영해야 할지에 대한 심도 있는 토론을 진행해왔기 때문에, 전체적인 방향성을 그릴 수 있었다. 그리고 대원제약이라는 든든한 파트너를 깊게 신뢰하기에 잘될 것이라는 기대감에 안심이 되기도 했다. 이제 딜라이트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김정현 대표는 인수합병 서명을 하기 위해 건물 내 사무실로 성큼 들어갔다.

보청기의 구성요소

보청기는 난청으로 진단된 환자의 귀에 장착돼 소리를 증폭시켜주는 기구로 난청인의 청력 향상을 도와주는 의료기기라고 할 수 있다. 아날로그 보청기는 모든 신호를 같은 크기로 증폭하지만, 디지털 보청기는 보청기 내부의 디지털 회로를 이용해서 소리를 식별, 원하는 소리를 원하는 만큼 증폭시킬 수 있다. 이러한 차이 때문에 일반적으로 보청기라 함은 디지털 보청기를 말하며, 아날로그 보청기는 증폭기라고 불리기도 한다. 보청기는 크게 귀걸이형과 귓속형으로 나눌 수 있다. 귀걸이형 보청기는 출력이 커서 난청의 정도가 심한 경우 사용하기 좋으며 귓속을 막지 않아 귓속형 보청기에서 나타나는 폐쇄효과(귀를 막았을 때 자신의 목소리가 울리는 현상)와 되울림현상(feedback, 소리의 누설로 인한 연쇄증폭)이 나타나지 않는다. 귓속형 보청기의 가장 큰 장점은 외부에서 잘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때문에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는 문화가 강한 아시아권에서는 귀걸이형 보청기보다 귓속형 보청기의 판매 비중이 높게 나타난다. 그 외에도 귓속형 보청기는 귓바퀴의 집음효과(귀의 형태에 의해 소리가 모이는 효과)를 이용할 수 있으며 소리를 방출하는 리시버가 고막과 가까이 있어 고음역 증폭에 유리하다.

귓속형 보청기는 종류가 다양한데, 분류 기준은 귓속으로 얼마나 깊게 들어가느냐 하는 것이다. 가장 많이 쓰이는 모델은 ITE(In-The-Ear, 귓속형)로, 일반적으로 귓속형 보청기라면 ITE 모델을 가리킨다. ITE 모델은 외이도 바깥쪽에 닿아 있으며, ITC(In-The-Canal, 외이도형) 모델은 외이도 안쪽에 들어가 있다. 마지막으로 가장 눈에 띄지 않는 CIC(Complexity-In-Canal, 고막형) 모델은 고막과 가장 가까이 있어 외부에서 거의 보이지 않는다(Exhibit 1). BTE(Behind-The-Ear)는 귀걸이형 보청기이며 2003년 이후로 시장에 등장한 RIC(Receiver-In-Canal) 모델은 귀걸이형과 귓속형의 장점을 모두 갖춘 모델이다. 귀걸이형으로 분류되기는 하지만 귀걸이형과 달리 본체와 분리된 리시버를 고막 가까이에 대어 소리를 더 명확하게 전달한다(Exhibit 2). RIC는 출력이 약하지만 귀에 이물감이 없으면서도 귓속형과 유사하게 명확한 소리를 들을 수 있고, 크기가 작아 머리카락으로 가리면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이러한 융합적인 특성 덕분에 RIC 모델의 시장점유율은 빠르게 상승하고 있으며, 전체 귀걸이형 모델의 시장점유율은 70%를 넘어섰다(Exhibit 3).

보청기의 구성

보청기는 크게 3단계로 구성된다. 소리를 전달받는 마이크로폰(microphone, 마이크), 전달받은 소리를 압축 및 증폭하는 앰플리파이어(amplifier, 앰프), 그리고 소리를 방출하는 리시버(receiver)가 그것이다(Exhibit 4). 추가적으로 소리를 전기신호로 바꾸는 ADC(Analog-to-Digital Converter)와 그 반대로 전기신호를 소리로 바꾸어주는 DAC(Digital-to-Analog Converter)가 마이크-앰프-리시버 사이에 있으며 그 외에도 배터리, 볼륨이나 메모리를 선택하는 컨트롤이 있다. 여기서 중요한 부품은 마이크, 리시버, 앰프이며, 그중에서도 소리를 처리하는 역할을 하는 앰프가 보청기의 엔진이라고 불리는 가장 중요한 부품이다.

하드웨어의 구성요소

키트

완제품으로 수입되는 귀걸이형 보청기와 달리, 귓속형 보청기의 경우 사용자의 귓본에 맞춘 셸(shell)을 만들어 그것과 나머지 부품을 조립해야 한다. 이때 사용하는 것이 키트이다. 키트 안에는 페이스플레이트, 마이크, 리시버, 앰프 등 보청기 제작에 필요한 부품이 모두 들어 있다. 반조립 형태의 키트를 들여와서 조립하기 때문에 귓속형 보청기는 국내 생산으로 집계되며, 귀걸이형 보청기는 완제품으로 들여오기 때문에 수입으로 집계된다.

페이스플레이트

페이스플레이트는 Integrated Faceplate Module이라고도 불리며, 키트를 조립할 수 있는 판(plate)이다(Exhibit 5). 마이크, 리시버, 앰프가 부착된 페이스플레이트에 셸(shell)을 접합하면 보청기가 완성된다. 사용자의 귀 모양을 본뜬 귓본을 이용해 만드는 셸은 사용 시 이물감을 최소화하고 되울림현상을 줄이는 역할을 한다.

마이크, 리시버와 앰프

마이크(송화기)는 보청기로 들어온 소리를 전기신호로 바꾸어 증폭기로 보내주는 역할을 한다. 리시버(수화기, 스피커)는 앰프에서 증폭된 전기신호를 사람이 들을 수 있는 음향신호로 다시 전환시켜 소리를 내보내는 역할을 한다(Exhibit 6). 보청기의 핵심 부품인 앰프(증폭기)는 자동차의 엔진 같은 역할을 한다. 앰프의 핵심 부품은 DSP(Digital Signal Processor)인데, 아날로그 데이터를 디지털로 바꿔 고속 처리하는, 다양한 신호 처리와 고속 연산에 유리하도록 특별히 제작한 프로세서이다. 하드웨어만 있는 DSP칩 안에 보청기 전용 알고리즘이 들어가야 비로소 보청기 전용 DSP라고 할 수 있다. DSP에 전기신호와 아날로그 신호를 교환하는 ADC와 DAC를 연결해 조립한 것이 보청기의 앰프다. 보청기 회사에서 직접 만드는 것은 앰프 안에 들어가는 소프트웨어이며, 그 외의 부품(페이스플레이트, DSP, 마이크, 리시버)을 오디오와 반도체 전문 업체에서 구매한 뒤 귀걸이형 보청기, 혹은 키트로 조립해 판매한다.

소프트웨어: 펌웨어와 피팅 프로그램

보청기 알고리즘이란 소리를 선별 및 증폭하는 공식, 혹은 명령집합이다. 주파수의 압축, 증폭에서 소음 제거까지의 다양한 소리 알고리즘을 프로그래밍을 통해 소프트웨어로 만든 것이 펌웨어이다. 알고리즘에 기반해서 만들어진 펌웨어는 보청기의 핵심 소프트웨어로, DSP칩의 메모리에 내장되어 알고리즘을 구현하는 역할을 한다. 피팅(fitting)이란 사용자의 청각을 검사한 오디오그램(청력결과지)을 바탕으로 각 주파수별 음을 적절하게 증폭시켜주는 것을 말한다(Exhibit 7).

피팅 프로그램이란 피팅을 위해 개발된 전문 소프트웨어로, 청력검사와 더불어 채널을 조절하는 기능을 갖추고 있다. 채널은 보청기 사용자의 좁은 역동범위(Dynamic Range: 불쾌역치-어음청취역치, 불쾌하지 않게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범위)를 최대한 사용해 정상인의 역동범위와 가깝게 들을 수 있도록 소리를 주파수별로 압축하는 것이다. 이전까지 아날로그 보청기는 단일채널로, 모든 소리를 같은 비율로 증폭시켰다. 이를 선형증폭이라고 한다. 이와 달리 2채널 이상의 디지털 보청기는 소리의 증폭 정도를 달리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한 채널 안에서 소리는 크기에 따라 Loud, Moderate, Soft로 나뉘며, 각각이 다른 압축비율(compression ratio)을 사용해 이득값(gain: output-input: 보청기로 증폭되는 소리의 값)이 다르게 나타난다. 이를 비선형증폭이라고 한다(Exhibit 8).

이처럼 일반인의 역동범위에 맞춰 소리를 압축하는 것이 채널의 역할이다. 채널의 수가 중요한 이유는 달팽이관의 부위별 손상 정도가 달라 각 주파수별로 역동범위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청력역치 곡선은 비선형을 그리는데, 주파수 채널이 많다면 주파수별로 해당 역동범위에 맞게 세부적인 조정이 가능하다. 예를 들어 1Khz 주파수대의 역동범위가 40dB이고 2Khz 주파수대의 역동범위가 30dB일 수 있는데, 이때 각 주파수별로 다른 압축이 필요한 것이다. 보청기 회사가 주로 제작, 관리하는 것은 펌웨어와 피팅 프로그램으로, 하드웨어 생산에 직접적으로 관여하는 바는 적다. 때문에 보청기 회사는 소프트웨어 개발사라고 할 수 있으며, 보청기 전용 DSP 프로세서의 메모리 512kb 안에 어떤 기능을 얼마나 담아내느냐, 그리고 피팅 프로그램이 얼마나 잘 구성되어 있는가가 보청기 회사의 결정적인 경쟁력으로 작용한다.

따라서 보청기를 개발한다는 것은 즉 보청기의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것이며, 이는 피팅 프로그램의 개발과 펌웨어의 개발로 나뉜다. 피팅 프로그램을 개발한다면 펌웨어가 들어간 DSP 프로세서를 구매해서 자신의 피팅 프로그램을 삽입하면 된다. 하지만 피팅 프로그램을 우월하게 만들기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피팅 프로그램으로 DSP 프로세서의 품질 차이를 넘어서기는 어렵다. 결국 보청기 업체로서 품질 면에서 경쟁이 가능한 자기 보청기를 만들려면 펌웨어의 개발에 집중해서, 빈 DSP칩에 자신의 펌웨어를 넣어 독자적인 DSP 프로세서를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펌웨어 개발에는 특허로 인한 기술장벽이 존재한다. 펌웨어, 피팅 프로그램, 보청기의 외형 등 보청기와 관련된 대부분의 기술은 글로벌 시장을 장악한 6개 기업(이하 빅 6)의 특허풀 안에 속해 있다. 빅 6는 기술공유를 통해 특허풀을 만들어 두터운 기술장벽을 형성했다. 때문에 기술진입을 위해서는 이러한 특허를 피해서 펌웨어를 개발해야 하는데, 이는 매우 어려울 뿐만 아니라, 비용 측면에서도 빅 6에서 보청기 키트를 저렴하게 공급하는 이상 경제적 가치를 찾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세계 시장: 빅 6와 기술독점

보청기 세계 시장 규모와 성장률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의 2013년 의료기기 품목시장리포트에 따르면 세계 보청기 시장은 2012년 기준으로 약 74.5억 달러이며, 지난 2005년부터 연간 6.2%의 성장률을 보였다. 경제력을 가진 베이비부머 세대가 노령인구에 진입하면서 성장세는 지속되어 2019년까지 연평균 6.7%의 성장세를 보여 118억 달러 규모의 시장이 형성될 것으로 추정된다(Exhibit 9).

시장점유율

보청기 시장은 2000년대 초반부터 치열한 인수합병을 거쳐 현재는 상위 6개 업체가 전체 시장의 98%를 차지하고 있으며, 이를 빅 6라고 부른다(Exhibit 10, 11). 빅 6는 모두 유럽과 미국에 집중되어 있으며, 특히 2위 William Demant(Oticon)와 4위 GN Resound, 6위 Widex는 덴마크 기업으로, 즉 덴마크가 전체 세계 시장의 50% 가까이를 차지하고 있는 셈이다. 또한 빅 6 중 Starkey와 Widex는 비상장회사다. 이들 빅 6는 DSP 프로세서, 마이크, 리시버, 페이스플레이트를 온세미(OnSemi), 놀스(Knowles), 소니온(Sonion) 등의 반도체 · 오디오 회사에서 구매해 자신의 펌웨어를 적용, 조립한 키트를 구성해 피팅 프로그램과 함께 판매한다. 보청기의 주요 부품인 DSP 프로세서, 마이크, 리시버 등은 대부분 위의 세 부품 제조사에서 생산하는 것으로, 어느 부품을 어디서 구매하느냐의 차이 외에는 하드웨어로 품질의 차이를 만들기 어렵다. 때문에 보청기의 품질을 결정짓는 것은 펌웨어와 피팅 프로그램이라고 할 수 있다.

펌웨어의 경우 DSP 프로세서에 내장된 부품 제조사의 자체 펌웨어를 사용할 수도 있고, 빈 DSP칩을 구매해 보청기 업체에서 개발한 펌웨어를 적용할 수도 있다. 일반적으로 시장을 점유하고 있는 빅 6는 자체적으로 회로 설계와 펌웨어 개발을 진행한 뒤 생산을 부품제조사에 맡기는 방식을 이용한다. 펌웨어는 1년 반에서 3년 주기로 새로운 모델이 나오고, 보청기 업체는 해당 기간 동안 회로 설계와 펌웨어를 독점적으로 공급받되, 다음 모델이 나온 이후에는 부품 제조사가 이전 모델을 시장 전체에 공급할 수 있다. 독점적으로 공급받는 기간 동안 보청기 업체는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고, 다시 신기술로 만들어진 DSP 프로세서를 독점적으로 공급받는 형태다. DSP칩의 메모리는 512k 수준으로 매우 작아 그 안에 필요한 기능만 정확하게 삽입하는 것이 중요하며, 어떤 알고리즘에 기반해 얼마나 뛰어난 펌웨어를 개발했느냐가 경쟁력의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반대로 펌웨어 개발 능력이 없다면 부품 생산자로부터 펌웨어가 내장된 DSP 프로세서를 구매해야 하는데, 이는 이미 기술적으로 뒤처진 부품이므로 기존 업체와의 질적인 경쟁은 매우 힘든 상황이다.

또 다른 경쟁력의 요소는 피팅 프로그램이다. 언어적 특성과 인종, 성별 등의 요소에 따라 주파수별 이득값이 달라지기 때문에, 그에 맞춰서 피팅 프로그램을 설정할 필요가 있다. 빅 6의 경우 오랜 시장 경험을 바탕으로 많은 데이터를 축적했으며, 이를 이용해 각 상황에 대응하는 피팅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다. 빅 6의 피팅 프로그램은 회사마다 조금씩 차이를 보이지만 그 차이가 크지 않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그러나 피팅 프로그램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양의 청각데이터가 필요한데, 역사가 깊은 기업이 갖고 있는 누적데이터는 경쟁력이자 다른 보청기 업계의 주요한 진입장벽이기도 하다. 보청기는 청각사가 피팅을 하므로, 제조사인 빅 6는 보청기 키트를 제작해서 청각사에게 키트를 판매하는 역할을 주로 한다. 수직계열화를 통해서 빅 6 역시 자사의 리테일 채널을 구축했지만 자사의 채널을 통해서 판매되는 보청기는 전체 판매 대수의 1/3 정도로, 나머지는 외부의 리테일 채널을 이용한다. 이러한 보청기 리테일 체인으로는 대표적으로 Amplifon이 있다.

국내 시장

국내 시장 규모와 성장률

보청기 시장의 규모는 정확하게 집계하기 어렵다. 기본적으로 대리점 체제로 운영되어 판매가가 각 대리점마다 다르고, 현금 결제가 빈번하다 보니 판매에 대한 데이터를 얻기 힘든 실정이다.

“대리점 데이터를 알 수 없는 게 어르신들은 다 현금 결제를 하기 때문입니다. 현금 결제하고···. 그냥 계좌이체로 제품 대금 지불해버리면, 세금 계산서 거래를 할 이유가 없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식약처 데이터 보면 거의 판매가 안 된 걸로 나와요. 아무래도 그런 데이터로 취합을 할 테니, 대리점 판매가 얼마나 되는지 아는 건 불가능한 것 같아요.”

– 조성신 전 딜라이트 영업팀장

이런 이유로 보청기 시장 규모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수입원가, 혹은 생산가를 기준으로 집계해 소매가를 추정하는 방식을 사용한다(Exhibit12). 일반적으로 보청기의 원가는 판매가의 20~30%를 차지하므로, 2010년을 기준으로 한다면 국내 보청기 시장의 규모는 1,479억 원에서 2,218억 원 사이라고 볼 수 있다. 이처럼 시장의 매출 규모를 수입 원가로부터 추정해야 하는 까닭에, 자료에 따라서 적게는 1,000억 원에서 많게는 2,250억 원까지로 시장 규모를 다르게 추정한다.

시장구조: 빅 6와 대리점 체제

2011년 기준으로, 국내 보청기 시장은 글로벌 보청기 기업인 빅 6가 75%를 점유하고 있다(Exhibit13). 1996년 스타키 코리아의 설립을 시작으로 98년 지멘스, 2002년 GN Resound, 그리고 2009년 포낙, 오티콘, 와이덱스가 차례로 한국시장에 진출했다. 이들의 점유율은 스타키 30%, 포낙 15%, 지멘스 12%로 상위 3개를 차지했으며 GN Resound, 오티콘, 와이덱스가 약 20%를 차지하고 있다. 국내 기업 중에서는 세기보청기가 7%로 가장 크다. 2009년에 들어온 포낙, 오티콘, 와이덱스가 2011년 이미 시장의 25% 정도를 차지한 것을 보고 침투 속도가 빠르다고 할 수 있지만, 사실 이들은 한국 법인이 없었을 뿐 이미 대리점을 통해 국내 시장에 제품을 많이 공급하고 있는 상태였다. 또한 빅 6 간의 기술력 차이가 크지 않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이에 대해 웨이브히어링의 브라이언 송 대표는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제품의 특징이 거의 차이 나지 않음에도 종류는 너무 많습니다. 그런데다 직원들이 이직을 해요. 본사끼리요. 그러니까 신기술이 나와도 6개월이면 다 똑같아져요. 각 회사마다 고유의 음질은 갖고 있지만 특허기술 같은 건 많이 무너졌죠.”

대리점 구조

외국에서는 리테일 체인 위주로 판매가 이루어지는 반면, 한국은 일부 국내 기업(세기보청기, 대한보청기)의 직영점을 제외한 모든 판매처가 개인 대리점이다. 빅 6는 한국에 해외투자법인의 형태로 들어오며, 직영점을 운영하지는 않고 대리점을 통한 도매 영업에 집중한다. 대리점은 가맹점과 취급점으로 나뉘는데, 가맹점은 특정 브랜드의 이름을 걸고 해당 브랜드의 제품만 판매하며, 취급점은 여러 브랜드의 보청기를 판매한다. 가맹점은 특정 브랜드밖에 판매하지 못하지만 브랜드명을 이용할 수 있으며 가맹점 전용모델을 판매하기도 한다.

우리나라 보청기 판매의 70%는 대리점 판매를 통해 이루어지는데, 대부분이 개인 대리점이기 때문에 같은 브랜드를 판매하더라도 제품의 가격과 서비스가 통일되지 않는다. 강남에서 구매한 제품의 A/S를 강북 스타키에서 할 수 있다는 보증이 없는 것이다. 또 다른 중요한 문제는 가격인데, 따로 웹사이트를 갖추어놓을 만큼 규모가 큰 대리점이 아닌 경우에야 가격을 공시하는 일이 거의 없으며, 일반적으로 구매 시 흥정을 통해서 할인이 제공되는 경우가 많다. 종로에 산재한 보청기 대리점의 일부는 소비자가를 기준으로 적게는 30%에서 많게는 50%까지 할인을 제공하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오티콘은 대리점 63개, 포낙은 가맹점 48개, 스타키는 가맹점 278개(전문센터 25개 포함), 벨톤은 가맹점 24개, 그리고 세기보청기는 40개의 대리점을 갖추었다(2015년 9월 기준).

한국보건의료연구원(2011)의 ‘난청환자의 국내보청기 사용 효과성과 장애요인 분석’에 의하면, 국가 간 비교에는 보증기간, 보장범위 등의 차이로 인한 한계가 있지만, 우리나라의 보청기 가격은 대체로 비싼 편이었다. 특히 가장 저렴한 영국에 비해서는 2배 가까이 차이가 나기도 했다. 이러한 가격 차이는 우리나라 보청기 가격에 피팅 서비스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지만, 근본적으로 보청기 가격은 대리점에서 마진을 많이 가져가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대부분이다. 업계 전문가에 따르면 키트 가격은 소매가의 20~30% 선이며 대리점에서 50~70% 이상의 마진을 남긴다.

서비스 및 A/S

보청기를 판매할 시 피팅이 매우 중요하다. 피팅은 판매자의 경험에 많은 영향을 받지만, 기본적으로는 채널수에 제한을 받는다. 4채널 보청기의 피팅을 잘하더라도 8채널보다 좋아지기는 힘들다. 보청기 제조사들이 채널마다 스펙을 차별화했기 때문에 채널을 넘어서는 피팅 기술을 발휘하기는 힘들다는 것이다. 또한 워런티에 있어서도, 일반적인 제품 워런티의 개념과 보청기의 워런티는 다른 측면이 있다. 보청기는 ‘6개월 안에 분실한다면 해드리겠다’며 제품을 교환해주는 영업까지 할 정도로 구매자들의 A/S 요구가 매우 거세서 판매자들도 이에 맞춰서 따라가는 형편이다. 예를 들면, ‘구매자의 반려견이 깨물어서 보청기가 고장 났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1년 워런티 내이니 교환해달라’는 요구까지 들어줄 정도이다. 또한 워런티의 범위도 상당히 길고 A/S나 피팅을 위해 드는 상담시간도 최소한 1시간 반에서 2시간 정도가 소모되어 서비스 경쟁으로 인한 보청기 판매처 직원들의 정신노동이 불가피하다.

보청기 구입과 사용의 어려움

한국보건의료연구원(NECA)에 의하면, 2010년 설문조사 결과 보청기 처방 전후 전문의 진료 및 의료기관 방문비율이 낮고 보청기 판매기관 중 병원의 비율 또한 낮다. 또한 국내 보청기의 판매량 중 보청기 판매상이 70%, 의료기관에서 25%, 그리고 처방전 혹은 전문청각사가 없는 OTC(Over-The-Counter) 판매가 약 5%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보청기 판매상을 통한 평균단가는 약 110만 원, 의료기관은 190만 원, OTC는 30만 원 정도인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보청기는 가격이 저렴하다고 구입하는 물건이 아닌 의료기기이다. 높은 가격도 문제이지만, 보청기를 착용해야 할 때 오는 심리적 장벽이 큰 것이 사실이다. 딜라이트의 직원도 보청기가 필요한 자신의 어머님을 설득하는 데 대한 어려움을 토로한다. “저희 어머님이 보청기를 하셔야 하는데 현재 6개월 이상 설득 중입니다. 제가 보청기 회사 직원인데도 설득하는 것이 매우 힘듭니다.” 따라서 보청기를 착용해야 한다는 문제인식에서 실질적인 구매까지는 적게는 6개월 길게는 4년이 걸리기도 한다. 또한 귀 양쪽에 착용하는 비율은 한국은 20%, 유럽이나 미국은 70% 이상으로 차이가 많이 난다. 웨이브히어링의 브라이언 송 대표는 뒤늦게 매장을 찾아오는 분들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근데 이건 아픈 게 아니다 보니까 사람들이 그냥 버텨요. 서서히 불편해지기 때문에 잘 모르는 거죠. 상담받으러 오신 분들에게 여쭤봅니다. 지금 말고 딱 1년 전에는 어떤 느낌이었는지. 그러면 본인이 기억을 하시거든요. 그때보다 못 알아듣는 것 같다고. 이분들이 1~2년 전에 검사했을 때는 분명 잘 알아들으셨어요. 근데 점점 안 좋아지는 겁니다. 제가 보통 70%를 봐요. 보청기를 껴야 할 시점으로. 70%라는 건 조용한 곳에서는 문제가 없어요.”

또한 보청기를 착용하더라도 단숨에 청력이 좋아지는 게 아니라 꾸준한 관리를 통한 적응기간이 필요하다. J Korean Med 2005년1)의 연구에 의하면, 보청기를 소지하고 있지만 지속적으로 착용하지 않는 주 원인으로는 어음 분별력 불량(48%), 심한 이명(24%), 이물감(12%), 기계조작 미숙(4%) 되먹임2) 현상(4%) 등이었고, 경제적 문제는 8%였다.

청각장애인 현황과 지원

보건복지부에서 제시하는 청각장애 기준은 다음과 같다. 1) 양 귀의 청력손실이 각각 60dB(데시벨) 이상인 사람 2) 한쪽 귀의 청력손실이 80dB 이상, 다른 쪽 귀의 청력손실이 40dB 이상인 사람 3) 양 귀에 들리는 보통 말소리의 명료도가 50% 이하인 사람 4) 평형 기능에 상당한 장애가 있는 사람. 청각장애는 1급이 없으며, 일반적으로 양 귀 평균 60dB 이상을 청각장애로 본다. 보건복지부에서는 청각장애를 청력손실 35dB 이상의 난청인(hard-of-hearing person)과 70dB 이상의 농인(deaf person)으로 분류하고 있다.

보청기 착용 대상은 일반적으로 청력역치가 잘 들리는 귀 기준으로 40dB 이상인 경우이다. 경도난청은 20~40dB, 40dB 이후는 중도난청으로 분류되는데, 보청기를 권장하는 수준은 40dB, 즉 중도난청 이후이다. 그 외에도 중요한 요소는 어음명료도인데, 어음명료도란 소리가 들리는 것과 별개로 언어를 인식할 수 있느냐를 측정하는 기준이다. 예를 들어 어음명료도가 떨어지면 ‘감’과 ‘잠’의 두 단어를 구분하는 데 어려움을 느낀다. 물리적인 소리는 보청기로 얼마든지 올릴 수 있으나, 언어를 분별하는 능력인 어음명료도는 한번 손실되면 회복이 불가능해서, 70%의 어음명료도를 보이면 그때부터 보청기를 사용하는 것을 권장한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보청기를 사용하는 수준은 중도에서 중고도 난청인 50dB대가 많다. 이는 40dB 수준까지는 환자가 난청에 대해 큰 불편함을 못 느끼기 때문이다. 청력역치가 50dB 정도가 되면 일상적인 대화를 비롯한 생활에 불편을 느낀다. 이미 난청이 시작되고 몇 년이 지난 후이며, 어음명료도가 많이 떨어진 상태일 가능성이 높다. 청각장애 출연율은 30대 인구에서 0.1% 수준이지만 연령이 높아질수록 그 수가 급격히 증가한다. 60대부터는 2% 가까이로 증가하고, 80세 이상 인구 중에서는 6%가 청각장애 판정을 받았다. 청각장애는 노인 인구에서 많이 나타나는 질병인 만큼 사회적인 도움이 더욱 필요하다. 노인의 청력손실은 사회적 활동을 저해해 소외감을 증대시키며 우울증과 치매의 원인이 된다. 위의 통계는 청력손실 60dB을 기준으로 한 것이며, 청각장애 등록이 된 인원만 계산한 것이다. 해외의 청각장애환자(hearing loss)의 기준인 청력손실 26dB을 적용했을 때 미국은 전체 인구의 11.3%, 독일은 13.1%, 일본은 10.9%의 인구가 청각장애환자인 것으로 나타났다3). 2008년 국민건강영양조사에서 청력에 문제가 있다고 응답한 군은 11.97%로, 주관적인 평가이지만 미국, 독일, 일본의 청각장애자 비중과 비슷한 수준임을 알 수 있다.

청각장애인 중 기초생활수급자 현황

보건복지부의 장애인 실태조사4)에 따르면, 2011년 기준 청각장애자의 수는 27만 8,337명이며 그중 기초생활 수급자의 수는 조건부수급자 포함 12.1%, 3만 3,679명이다. 기초생활수급자의 선정 기준은 ‘부양의무자가 없거나 부양의무자가 있어도 부양능력이 없거나 또는 부양을 받을 수 없는 자로서, 소득인정액이 최저생계비 이하인 자’로, 2011년 최저생계비는 1인 가구 54만 3,583원, 4인 가구 143만 9,413원이다. 조건부 수급이란 근로의욕을 위해서 노동이 가능한 경우 자활에 필요한 사업에 참가하는 것을 조건으로 기초생활수급을 받을 수 있도록 한 경우로, 주로 정부에서 제공하는 일자리 교육을 받거나 정부 지정 사업체에서 일을 하게 된다.

2011년 장애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청각장애인 중 보청기를 사용하지 않는 비율은 39.6%이며 이 중 64%가 가격부담으로 인해 보청기를 구입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Exhibit 14). 2009년 기준으로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제공한 보청기 급여 총액은 63억 원(수급자 34만 원, 비수급자 27만 2,000원)이었는데, 보고된 보청기 구입 총액은 297억 원으로 평균적으로 구입 총액의 약 21%를 지원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내원환자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보청기 구입가격의 평균은 200만 원 중반대였다.

난청환자를 포함하면 보청기를 사용하지 않는 비율은 급격하게 높아진다. 2008년 국민건강영양조사에 따르면, 4083명의 응답자 중 11.97%가 자신의 청력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으며, 특히 65세 이상 응답자 중 38.93%가 청력 문제를 호소했다. 그에 반해 보청기 사용률은 청력에 문제가 있다고 응답한 전체의 5.46%밖에 되지 않았으며, 청력에 문제가 있는 노인군에서도 8.31%라는 저조한 결과가 나왔다. 미국이 24.6%(2008년 기준), 독일이 31.8%(2009년 기준)인 것에 비하면 매우 낮은 수치이며, 같은 동양권인 일본이 14.1%(2012년 기준)인 것에 비해서도 1/3 정도 수준이다5). 이러한 낮은 착용률은 첫째, 한국의 보청기 가격이 위 국가들보다 높게 설정되어 있으며 둘째, 국가에서 청각장애인에게 지급하는 보험급여가 10년째 34만 원(기초생활수급자 기준)이라는 낮은 금액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구조적인 문제 외에도 보청기의 보급을 저해하는 요소는 다양한데, 가장 큰 요소는 보청기 사용자에 대한 낙인이다. 아직 보청기 사용자에 대한 사회적인 편견이 남아 있어, 노인 혹은 장애인으로 인식되고 싶지 않은 이들은 보청기 착용을 꺼린다. 이러한 탓에 한국과 기타 70%가 귀걸이형을 구매하는 서양권과 달리 귓속형의 판매가 압도적으로 높다. 그 밖에도 청각손실을 노화의 자연스러운 과정이라 인식하는 점, 보청기의 효과가 기대보다 적거나 적응기간이 필요하다는 점, 피드백과 폐쇄효과6), 이물감 등의 불편함 등이 보청기 보급을 저해하는 요소로 인식된다.

딜라이트 창업

김정현, 원준호, 유병곤을 만나다

김정현 대표는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전자제품 중고거래로 돈을 벌기 시작했다. 중고거래가 아직 활성화되지 않은 시절이라서 가격 정리가 잘 안 되어 있었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차익을 얻을 수 있었다. 입시에 실패하고 그는 재수 대신에 사업에 집중하기로 했다. 카페를 운영하기도 하고 프랑스의 중저가 향수를 유통하는 일도 했다. 그렇게 1년 동안 여느 회사원 못지않은 돈을 벌었지만 그는 곧 회의감에 빠졌다. 돈 버는 삶에 대한 공허함을 느낀 그는 2007년 가톨릭대에 진학했고, 2008년 사회적 기업이라는 개념에 매력을 느껴 넥스터스라는 사회적 기업을 연구하는 동아리를 만들게 되었다. “그 모임 (넥스터스)이 되게 적극적인 사람들의 모임이었어요. 거의 다 사회적 기업 벤처를 창업했어요”라고 김정현 대표는 당시의 창업에 대한 열정과 분위기를 전했다.

2008년 가을, 아라빈드 사례를 접하다

김정현(가톨릭대 경영), 유병곤(경희대 경영)과 원준호(연세대 경영), 세 창업자는 2008년 가을 넥스터스에서 인도의 아라빈드(Aravind)의 보청기 케이스를 접했다. 저소득층에게 무료로 백내장 수술을 지원해주는 사업을 벌인 안과병원 아라빈드가 시도한 표준형 보청기에 관한 내용이었다7). 당시 인도에서는 보청기 판매 가격이 대부분의 대리점에서 높게 형성되었는데, 이는 대리점에서 귓본을 뜨고 피팅을 하는 등 전문적인 서비스를 이유로 상당량의 이윤을 남겼기 때문이다. 아라빈드는 이러한 서비스가 보청기 비용을 높인다고 판단, 전문성이 필요한 맞춤 관련 비용을 없애면 전체 비용을 낮출 수 있다는 생각에서 누구에게나 맞는 표준형 보청기를 만들었지만 결국 보급에 실패했다. 세 창업자가 보기에 아라빈드의 실패 이유는 표준형 보청기의 외형에 있었다. 미국, 유럽과 달리 아시아 지역에서는 보청기가 드러나 보이는 것을 매우 꺼려하는데, 아라빈드는 귀걸이형 보청기를 표준화한 것이다.

“아라빈드의 보청기는 가격을 낮추느라 중요한 점을 간과했어요. 인도 등 아시아에서는 구미와 달리 보청기를 끼고 있다는 것을 남들에게 보이기 싫어합니다. 안 보이게 하려면 귓속형으로 만들어야 하는데 이게 어려워요. 크기도 줄여야 하고, 사람마다 귓속 모양이 달라 맞춤형으로 하다 보면 값이 올라가는 겁니다.”

– 김정현 전 딜라이트 대표

그가 보기에 아라빈드 사례의 해결책은 명확했다. 표준화라는 아이디어는 그대로 두고, 귀걸이형 대신 귓속형 보청기를 만들면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개개인의 귀 형태에 맞춰야 하는 귓속형을 표준화한다는 것은 쉬운 문제가 아니었다. 보청기가 귀 안쪽 형태에 정확하게 들어맞지 않으면 소리가 누출되고 재증폭되는 피드백 효과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아라빈드의 또 다른 문제점은 사후관리였다. 제품 특성상 고장이 잘 나는 보청기는 A/S가 필수적인데, 국토가 넓은 인도에서 이를 관리하기는 어려웠다. 그에 반에 한국은 택배 시스템이 잘되어 있어, 김정현 대표는 택배 시스템을 활용한다면 사후관리가 용이하리라 판단했다.

아라빈드의 사례를 한국에 적용하기 위해서 끌어낸 두 가지 해결책은 1) 귓속형 보청기의 표준화 2) 택배 시스템의 활용이었다. 이를 해결한다면 저소득층 난청환자에게 보청기를 공급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기초생활수급자인 청각장애인에게 지급하는 보청기 보장구 급여는 34만 원이다. 만약 가격이 34만 원인 보청기를 만든다면 기초생활수급자이며 동시에 청각장애인들은 공짜로 보청기를 받을 수 있는 셈이었다. 상상만으로도 들뜨는 아이디어였지만, 너무나도 막연한 미래였다. 하지만 세 창업자는 그 가능성에 도박을 걸었다. 처음부터 사업을 하고자 한 건 아니었다. 공부로 끝내지 말고 실행해보자는 생각으로, 자신들의 아이디어가 어느 정도까지 가능할지에 대한 의구심이 앞섰다.

2009년, 카이스트 IT융합연구소와의 만남

2008년 가을에 제품 아이디어를 냈지만 학교를 다니면서 일을 하는 상태라 눈에 띄는 성과를 내지는 못했다. 세 창업자에게 가장 필요한 건 자금이었다.

“이것이 실제로 가능할지 불가능할지 테스트해보기 위해서라도 자금이 필요했어요. 저희는 학생들이라서 자금이 없었습니다.”

– 김정현 전 딜라이트 대표

지지부진하던 표준형 보청기의 개발은 2009년 3월 연세대를 통해 중소기업청의 실험실창업지원사업에 선정되면서 시작할 수 있었다. 2,000만 원이라는 창업자금을 지원받은 이들은 당장 표준형 보청기의 개발에 착수하려 했다. 하지만 협력을 받으려 했던 연세대의 연구실에서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아 개발이 난항에 빠졌다. 세 창업자에게는 표준형 보청기 개발에 필요한 전문지식이 없었기 때문에, 이를 보충해줄 전문가가 반드시 필요했던 것이다. 이때 넥스터스의 멤버 중 하나가 카이스트 IT융합연구소의 지인을 소개해주어서, 그때 이후로 카이스트 IT융합연구소의 장호종 연구원의 도움으로 개발을 시작할 수 있었다. 처음 표준형 보청기를 기획한 지 1년이 되어가던 때였다.

“사실 별로 돈도 안 되는 것이어서···. 그때 젊은 친구들이 좋은 취지로 한다고 실비 외 연구비를 안 받으셨어요. 원래 카이스트 연구를 하려면 절차가 복잡한데, 그런 것 없이 진행했습니다. (카이스트와 일하기 시작한 건) 그게 2009년 하반기쯤이에요. 2008년에는 주로 스터디를 했고요. 2009년 3월에 중기청에서 사업을 땄고 돈이 생겨서 사업을 시작했죠. 실제로 사업비 집행을 5~6월부터 할 수 있어서···. 그래서 수소문을 해서 2009년 3분기쯤부터 카이스트와 하기 시작했습니다.”

– 김정현 전 딜라이트 대표

그 뒤로 세 창업자는 어떤 부품을 어디서, 얼마에 구매할 수 있는지를 알아보았다. 보청기의 부품인 마이크, 리시버 등은 해외에서 수입을 해야 했기에 한두 개씩 소량으로 구매하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마포 청년창업지원센터, 부천 가톨릭대학 창업지원센터, 서울시 예비사회적기업 등의 다양한 지원을 받으면서 연구를 진행했다. 여러 시행착오를 거쳐서 마이크나 리시버 등 부품을 따로 사는 것보다 반조립 상태인 키트를 구매하는 게 훨씬 효율적이라는 것을 알았고, 그 외에도 보청기에 대한 지식을 차곡차곡 쌓아나갔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표준화 문제는 여전히 수수께끼였다. 김정현 대표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회상한다.

“당시 부품 구매를 위해 소개받은 업체가 독일의 보청기 회사 한사톤(Hansaton) 제품을 쓰고 있었어요. 그래서 조달받기도 쉬웠고 싼값에 몇 개씩 사오기가 수월했어요. 다른 부품업체도 알아봤는데, 부품 가격이 저렴한 중국 업체는 없고 주로 유럽이나 캐나다 업체들인데, 대량 판매만 했어요. 그래서 키트 형태를 중국에서 싸게 사보려 했는데 일정 수량 이상만 판매를 하더라고요. 그래서 고민을 하던 차에 아버지 지인이 운영하는 회사에서 한사톤을 키트로 사서 제조까지 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 김정현 전 딜라이트 대표

창업지원

사업 경험과 자본이 없는 초기, 딜라이트 창업을 위해 가톨릭대 창업지원센터, 중소기업청의 실험실 창업지원사업 및 마포 창업지원센터에서 도움을 받았다. 경기도 부천시 가톨릭대학 창업교육센터 107호실에 33m2(10평) 남짓한 사무실을 마련했다. 창업 자금은 8,900만 원이었으며, 그중 김 대표가 5,000만 원을 마련했고 서울시에서 창업지원금 1,200만 원을 받았다. 그리고 중소기업청에서 2,000만 원의 창업지원금을 유치하며 기업을 시작했다8). 그 이후 2009년 6월 서울시 ‘2030 청년창업프로젝트’에 선정되어서 마포 창업지원센터에 사무실을 마련하고 월 70만 원의 활동비를 지원받았다9). 김남욱 전 딜라이트 경영지원팀장은 당시의 노력을 담담하게 설명했다.

“중소기업청의 실험실창업지원사업으로 2,000만 원의 제품개발비를 지원받았고요. 여기서 특허도 받고, 벤처기업 인증도 받았습니다. 그 이후에는 마포 청년창업지원센터로 옮겨, 임대료를 지원받았고, 2009년 때죠. 부천 가톨릭대 창업지원센터도 임대로. 그리고 특허나 광고를 낼 때 100만 원 캐쉬백도 받았어요. 그리고 벤처기업 인증을 받으면 법인세를 50% 감면받습니다”.

조성신 전 딜라이트 영업팀장은 사업 출발 초기 당시 일정액을 투자받고 나서 전후 1~2개월 이후에 다 써버릴 만큼 사업비 조달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딜라이트는 인건비와 마케팅 비용이 부족해 어려움을 겪던 창업 초기를 지나 마침내 2010년, 표준화 제품에 도전하게 된다.

2010년, 표준화 제품 개발

표준형 보청기 개발의 가장 큰 난관은, 귀에 정확하게 들어맞지 않으면 소리가 틈새로 새어나가서 다시 증폭되어 돌아오는 피드백 현상이었다. 귓속형 보청기를 맞춤형으로 해야 하는 이유도 바로 피드백 현상 때문이었다. 모두의 귀에 잘 들어맞고 빈틈이 없는 보청기 형태를 만들어야 하는데, 각자 귓속의 형태가 제각각이기 때문에 그것을 아우를 만한 보청기 형태를 만들기란 요원해 보였다.

“업체들이 돈이 된다는 걸 몰라서 안 하는 게 아닐 텐데… 과연 이게 될까 안 될까 하며 불안해했던 것이 가장 힘들었어요.”

– 김정현 전 딜라이트 대표

그렇게 머리를 싸매고 보청기 형태를 고민하던 중, 이어팁이 달린 이어폰이 사람들 사이에서 유행하기 시작했다. 부드럽고 얇은 고무로 만들어져 귓속을 불편하지 않게 꽉 채울 수 있는 이어팁은 표준형 보청기가 원하던 기능을 그대로 재현한 것이었다. 세 창업자는 장호종 연구원과 함께 이어팁을 적용한 보청기 개발을 시작했다. 1) 이어팁과 보청기 본체 간의 연결이 긴밀하며 2) 이어팁을 씌워도 겉에서 잘 안 보일 만큼 작은 동시에 3) 피드백 효과가 없도록 하는 것이 표준형 보청기 개발의 관건이었다. 중국의 이어팁 생산업체와 접촉하고 200개가 넘는 표본을 채취하는 등 집중적인 연구 끝에 2010년 초 대, 중, 소 세 가지 사이즈의 이어팁을 선택할 수 있는 표준형 보청기 디자인이 탄생했다. 여러 복지관을 다니며 프로토타입을 테스트한 결과 2010년 5월 최종적으로 제품이 드디어 개발되었다. 이 시제품으로 2012년 디자인 실용실안 특허를 획득했다(Exhibit 15).

“네. 처음에는 저희가 부품을 다 사서 하려고 했었거든요. 그래서 결국 각 회사들의 부품을 다 샀어요. 그런데 그렇게 하는 것이 비효율적이었고. 또 각 부품을 사용할 수 있게끔 세팅해서 판매하는 업체들이 있거든요. 키트를 구매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는 것을 그때는 몰랐어요. 나중에 실제로 제품을 판매할 때는 그렇게 구매를 했어요. 그래서 제품을 만들어보고, 테스트를 해보고. 근데 제일 문제가···. 기술적인 부분인데···. 이게 귀 안에 들어가는 것이잖아요. 그 사람의 귀에 맞춰서 만들어야 하는 이유가, 하울링(=피드백)이라는 현상을 막기 위해서거든요. 원래 맞춤형을 하려고 했던 이유가, 그렇게 안 하면 맞출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저희는 그런 조건을 표준화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어요···. 실패 가능성이 높아 보이는 연구였지만···. 결국 여러 모델을 만들어보니깐, 다 맞지는 않지만 95~98% 정도, 거의 모든 경우에 다 맞게 할 수 있더라고요.”

– 김정현 전 딜라이트 대표

표준형 보청기는 피드백이 줄었지만 맞춤형에 비해서는 많은 편이었고 무엇보다 맞춤형에 있는 베트(공기구멍)가 없어 자신의 목소리가 울리는 현상인 폐쇄효과가 컸다. 또한 95% 이상의 난청환자의 귀에 적합했지만, 이들 모두가 맞춤형처럼 불편 없이 잘 맞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한 단점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개발한 표준형 보청기는 정말로 보청기가 필요한 이들에게 필요한 기능을 제공해줄 수 있는 혁신적인 제품이었다.

딜라이트는 2채널과 4채널 제품이 약 150만 원으로 판매되는 시장에 자신만의 표준형과 귀걸이형 제품을 내놓았다(Exhibit 16). 2채널의 가격은 국민건강보험공단의 보장구 급여인 34만 원, 4채널은 그 두 배인 68만 원이었다. 보청기 키트는 한사톤(Hansaton)에서 공급받았으며, 키트를 완제품으로 제작하는 데에는 정밀한 조립 기술이 필요했기 때문에 표준형 보청기는 외부 보청기 생산업체에 외주를 맡겼다. 귓본을 떠서 셸을 만들고 거기에 맞춰서 부품의 위치를 수정해야만 하는 맞춤형에 비해 표준형 보청기는 조립이 간단했다. 셸 제작 등 복잡한 생산과정을 최소화한 표준형은 2채널은 약 20만 원, 4채널은 23만 원이라는 저렴한 원가에 제작할 수 있었다. 2008년 가을에 상상했던 것이 드디어 현실이 된 것이다(Exhibit 17).

미디어 노출과 유통

제품을 완성한 세 창업자는 2010년 7월 ‘돈이 없어서 듣지 못하는 외로운 사람이 없는 세상’을 사명으로 딜라이트 보청기를 법인으로 등록했다. 향후 경영지원팀장이 될 김남욱이 인턴으로 들어오고, 8월에는 창업을 함께한 유병곤이 퇴사했다. 딜라이트는 법인화 이후 독특한 혁신을 통한 파격적인 가격으로 서서히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특히 ‘대학생’이 ‘표준화 기술’을 가지고 보청기를 무상으로 제공하는 ‘사회적 기업’을 만들었다는 스토리에 언론에서 많은 관심을 표명했다. 별다른 마케팅을 하지 않았음에도 서서히 시작된 언론 노출은 8월부터 범람하듯이 쏟아져 이내 한겨레, 중앙일보 등 각종 유명 매체에까지 딜라이트 보청기의 이름이 등장했다. 제품을 구매하겠다는 문의 전화가 물밀듯이 걸려왔고, 딜라이트는 서둘러 계획했던 온라인 유통을 시작했다.

법인 설립 두 달 뒤인 9월, 딜라이트는 본격적으로 인터넷 판매를 시작했다. 온라인 판매는 난청환자가 병원에서 받은 청력검사 결과를 딜라이트에 보내면 거기에 맞춰서 보청기를 피팅해 보내주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구매자는 온라인 동영상으로 조작법과 착용법을 배울 수 있도록 했으며, 전화상담 서비스도 제공했다. 피팅이 잘 안 됐을 때는 되돌려보내면 피팅을 다시 해서 보내주기도 했다. 수리 역시 택배를 통해서 이루어졌다. 또한 만약 맞춤형을 원한다면 부천의 가톨릭대 창업지원센터 내의 사무실에서 맞출 수도 있었다. 가끔 8채널을 요구하는 손님이 있다면 따로 주문해 맞춰주었지만, 공식적인 제품 라인에 속해 있는 것은 아니었다. 맞춤형의 가격은 각각의 가격에 30만 원을 더한 64만 원, 98만 원이었으며, 8채널의 가격은 표준형 88만 원, 맞춤형 118만 원이었다. 8채널 표준형의 가격 88만 원은 당시 유행하던 88만 원 세대라는 말에서 따왔다.

게다가 아무에게나 보청기를 팔지도 않는다. 딜라이트는 고객의 기준을 정했는데, 나이가 65살 이상이거나 소득이 도시근로자 월평균의 130%(3인 가구 기준 505만 5,241원) 이하여야 ‘고객’이 될 수 있다.

“회사를 시작하니까 서울 강남에 사는 여유 있는 고객이 앞다퉈 연락을 해왔어요. 돈 많은 사람이 정보도 빨랐던 거죠. 저소득층에 저렴한 보청기를 보급한다는 원래 의도를 실현하기 위해 할 수 없이 조건을 붙이게 됐어요.”

– 김정현 전 딜라이트 대표

매출과 출구 전략

반응은 뜨거웠다. 2010년 9월부터 시작된 매출은 폭발적으로 늘어나, 12월까지 단 3개월 동안 2억 4천만 원이 넘는 매출을 올렸다(Exhibit 18). 약 7대 3 비율로 표준형 2채널이 표준형 4채널보다 많이 판매된 것을 생각하면 놀라운 매출량이었다. 주말에도 쉴 틈 없이 일을 하면서 최저임금만 받아온 이들이었기에 2억 4천만 원의 매출은 더욱 뜻깊었다. 당시 직원으로 일한 김빛누리는 “수요 예측은 전혀 안 했어요. 팔리는 양이 훨씬 많았기 때문에 수요 예측 같은 건 할 필요가 없었던 거죠”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500만 원의 자본금으로 시작한 딜라이트는 영업이익 3,700만 원, 당기순이익 4,800만 원을 기록했다. 당기순이익률 20%라는 놀라운 성과였다.

물론 문제점은 있었다. 34만 원 제품의 만족도가 높지 않았던 것이다. 귓속형 보청기가 워낙 작은 탓에 사용법을 알려주는 동영상이 있더라도 노인들이 따라 하기가 쉽지 않았고, 타사의 맞춤형보다 피드백과 폐쇄효과가 심했다. 딜라이트 내부에서 자체적으로 조사한 결과 약 400명의 고객 중 30% 정도가 불만을 드러냈다. 이것만으로도 적은 수치는 아니지만, 그 당시 조사를 맡은 조성신 전 영업팀장은 애초에 34만 원 보청기에 대한 기대치가 낮은 점을 들어 나머지 70% 역시 데이터에 드러나지 않는 불만이 있을 거라고 판단했고, 밀착된 서비스와 지속적인 관리를 위해 결국 직영점의 증설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사람들은 34만 원짜리를 사면서 200만 원짜리의 효과를 기대하기 때문에 만족도가 낮아요. 200만원짜리와 비교했을 때는 퀄리티가 떨어지거든요. 근데 이런 비교 대상이 없은 분들이 반응이 좋아요. 불편하긴 한데 잘 들려서 좋다고. 그래서 후기를 보내주신 분들은 대부분 처음 구입하는 분들이었죠.”

– 김남욱 전 딜라이트 경영지원팀장

출구 전략

김정현 대표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34만 원 모델이 계속 시장에 남아서, 기초생활수급자들에게 꾸준하게 공급되는 것이었다. 법인화 이후 그는 딜라이트를 비영리단체에 넘겨주려는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들은 여전히 대학생이었고, 딜라이트에 모든 시간을 쏟기에는 학업이 발에 걸렸다. 특히 김정현 대표는 군 입대를 미루고 있는 상황이었다. 장기적인 계획을 가지고 사업을 시작한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걸 계속할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어요. 그냥 대학생이 프로젝트를 하다가 너무 멀리 왔다는 정도였죠.”

– 김정현 전 딜라이트 대표

한창 언론의 주목을 받던 2010년 9월의 이야기다. 그러나 비영리단체에서 딜라이트를 받아내는 데는 절차 문제가 있었다. 보청기를 판매하기 위해서는 식품의약품안전처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이때까지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비영리단체에 허가를 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창업자들이 관리를 하지 않는다면 비영리단체 역시 인수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김정현 대표는 당시를 이렇게 회고한다.

“다 거절당한 뒤에는 갈 때까지 가보자는 생각으로 셋 다 휴학하고 방법을 찾아보기로 했어요. 그래서 투자자를 찾아 다니고, 그런 식으로 시작되었어요.”

– 김정현 전 딜라이트 대표

하지만 투자자를 찾기란 결코 쉽지 않았다. 벤처 기업이 받을 수 있는 투자란 재무적 투자와 전략적 투자인데, 이들 모두 일정 수익률을 요구해 딜라이트의 방향성을 지킬 수 있을지에 대한 불안감이 들었던 것이다. 사회적 모델을 갖춘 딜라이트가 일반적인 투자자가 요구하는 수익률을 달성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었다. 소셜벤처캐피탈리스트인 소풍(sopoong)에서 투자를 받으려고도 시도했으나, 그마저도 투자받을 수 있는 자금이 적었다. 거기다 2008년 불어닥친 금융위기가 자금 융통을 더욱 어렵게 했다.

“당시 투자를 받아서 보호막을 치고 싶었어요. NGO 소속이거나 소풍 같은 VC에서 투자를 받으면 저희 모델을 지켜주지 않을까 싶어 여러 곳을 노크했죠. 그땐 정말 무서웠어요.”

– 김남욱 전 딜라이트 경영지원팀장

20대 초중반의 대학생들이 모여서 만든 딜라이트는 3개월 만에 2억 4천만 원이라는 매출을 올렸고, 이것을 감당하기란 쉽지 않았다. 늘어나는 수요 때문에 인력이 더 필요했고, 규모가 커지면서 지켜야 할 것도 많아졌다. 전문적인 경영지식과 경험이 없는 이들에게는 운영을 가르쳐주고 이끌어줄, 믿고 의지할 수 있는 파트너가 필요했다. 그러던 2011년 1월, 대원제약에서 신규사업을 준비하던 박신영 대리가 김정현 대표에게 연락을 했다. 딜라이트에 투자를 하고 싶다는 제안이었다.

대원제약을 만나다

대원제약의 인수합병 전략(R&D 역량 강화 및 수출 가능성)

1958년 설립된 대원제약사를 전신으로 한 대원제약은 창립자 백부현 전 회장의 장남 백승호 회장과 차남 백승열 부회장이 대표이사로 있다. 2010년 기준으로 종업원 수 531명, 매출액 1,446억 원, 영업이익 200억 원, 순이익 118억 원, 적립금 555억 원이며 창립 이후 단 한 차례도 적자를 본 적이 없을 정도로 견실한 기업이다.

특히 2005년부터 2010년까지 6년간 연평균 24%의 매출성장을 보였으며, 94년 베트남 수출을 시작으로 수출량을 꾸준히 늘려 2010년 1천만불 수출의 탑을 수상했다. 제품 포트폴리오는 만성질환 제품이 주류를 차지하며, 복제약(generic drug)에 한정되지 않고 국내 신약 12호 펠루비(07년)를 개발하는 등의 R&D 역량을 보이고 있다(Exhibit 19).

2010년 당시 대원제약을 비롯한 제약회사들은 신규사업에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2009년 8월 적용된 리베이트 약가 연동제, 2010년 2월 시장형 실거래가 제도에 이어 11월 적용된 리베이트 쌍벌제까지, 기존 제약사가 관습적으로 이어온 리베이트를 없애고 약가를 인하하려는 목적의 정책들이 계속해서 이어졌고, 이러한 정부의 약가인하 정책은 2011년에도 변함없이 유지될 계획이었다(Exhibit 20). 때문에 단일 제약회사들은 약가 인하로 인한 수익률 악화에 대비해서 신규사업을 통해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려고 노력했다.

“대원제약이 자회사를 두기 전엔 딱 단일 기업이거든요. 전문의약품을 만들어요. 일반의약품을 만들지 않고 처방전이 있는 처방 약품만 하는 곳이고, 그래서 자회사를 두고 싶은 마음이 많았어요.”

– 장석 딜라이트 상무

당시 2010년, 대원제약의 신규사업을 담당한 박신영 대리가 볼 때, 제약산업의 핵심 역량은 인허가 역량과 유통망이었다. 보건산업은 주로 보건제조산업인 의약품, 의료기기, 화장품, 식품과 의료산업인 의료서비스로 나뉜다. 대원제약은 의약품산업 단일 기업으로, 인근 산업으로 진출한다면 의료기기, 화장품, 식품, 의료서비스라는 네 가지 선택지가 있는 셈이었다.

“인근 산업에 진출했을 때 핵심 경쟁력을 갖추고 과연 지속할 수 있을 것인가. 또는 그 시장에 진입했을 때 계획대로 운영할 수 있을 것인가를 기준으로 분석했어요. 그 결과 제약산업의 핵심 역량은 시약 또는 인허가 역량과 유통망이 강점이라고 판단되었고, 화장품과 같은 B2C의 경우는 규모가 큰 업체가 많아 생존 가능성이 낮을 것 같았어요. 그래서 의료기기 쪽으로 방향을 잡았습니다. 병원 서비스는 제약회사가 들어갈 수 없기 때문에 제외했고요.”

– 장석 딜라이트 상무

의료기기 업체로 정한 뒤 보청기 회사를 선택한 계기는 수출 가능성이었다. 보청기는 DSP 프로세서에서부터 기술이 시작되는데, 그 칩을 제작할 수 있는 회사가 빅 6에 한정되어 있으며, 이들 간의 담합을 통해 기술적인 장벽을 형성하고 있다고 보았다. 만약 자체적으로 펌웨어를 개발해 DSP 프로세서를 생산하는 역량을 갖춘다면 수출 경쟁력을 갖추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R&D를 통해서 수출 역량을 강화하려는 것이 대원제약의 방향성이었다.

그 밖에도 포트폴리오 측면에서 보청기는 좋은 선택지였다. 부목 등 다른 의료기기와 달리 보청기는 병원을 통해서 판매되는 비중이 30% 수준이며 나머지 70%는 시장의 대리점을 통해서 판매된다. 따라서 제약사의 기존 고객은 병원이나 약국과 고객층이 달라 리스크를 분산시킬 수 있었다. 또한 국내 시장을 점유하고 있는 빅 6는 모두 소자본의 투자법인으로, 7%를 점유하고 있는 세기보청기를 제외하면 국내 시장은 개인 대리점주들의 집합 수준이었다. 이러한 시장에서 일정 규모의 자산을 갖고 제조를 통해 원가를 줄이면 시장을 빠르게 장악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런 사업 구상에 따라 인수합병 이후 곧바로 공장 설립을 준비하고 R&D 인력을 딜라이트에 투입했다. 또한 딜라이트는 2011년 3월, 기술보증기금(KIBO)으로부터 2년간의 벤처기업 인증을 받아 연구와 특허에 있어 다양한 혜택을 받게 되었다.

“대원에서 딜라이트를 인수할 때 이걸 유통회사로 만들 생각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저가 제품은 중국에 더 많이 있었어요. 대원에서는 큰 회사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R&D 쪽으로 가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고, …자회사지만 크게 육성하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려면 유통만 가지고는 안 되니까 R&D와 제조를 통해 똘똘한 자회사로 키우려고 합니다.”

– 장석 딜라이트 상무

특히, 딜라이트의 R&D 계획은 2013년까지 피팅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2018년까지 펌웨어를 개발하는 것이었다. 2013년 피팅 프로그램이 개발되면 키트를 국산화할 수 있고, 이를 수출할 가능성이 열릴 것이라 추측했다. 그리고 2018년을 목표로 진행되는 펌웨어 개발은 보청기의 원천기술로, 빅 6와 경쟁하기 위한 핵심 역량이 될 것이다. 딜라이트는 제조에도 힘을 실었는데, 2011년 공장을 설립하면서 국내에서 두 번째로 RP(Rapid Prototype) 장비를 도입했다. RP 장비란 쾌속조형기라고도 불리는 3D프린터로, 귓본을 스캔해서 셸을 사출하는 것을 통해 대량생산이 가능하도록 하는 장비였다.

정부 정책의 변화: 2012 일괄 약가 인하 제도와 2011 리베이트 약가 연동제

2011년 5월 19일, 리베이트 약가 연동제 시행 이후 첫 적용사례로 동아제약, 종근당, 한미약품, 일동제약, 영풍제약, 구주제약, 한국 휴텍스 제약 등 7개 제약회사의 131개 품목에 대해 약가 인하를 결정했다(IBKS, 김신희). 동아제약은 11개 품목에 대해 20%, 종근당은 16개 품목에 대해 0.65~20%, 한미약품의 해당 품목에 대해서는 1.8~4.5%의 약가 인하를 8월부터 적용하기로 했다. 5월 20일 동아제약, 종근당, 한미약품의 주가는 각각 6.3%, 4.4%, 3.7% 하락했다.

2011년 8월 예고한 2012년 일괄 약가 인하 제도는 복제약인 제네릭의 가격을 낮추는 제도로, 4월 1일부터 전체의 47%인 6,500개 품목에 대해 평균 21%의 인하가 이루어졌다. 이로 인해서 가장 혜택을 보는 층은 약을 정기적으로 복용해야 하는 노인, 장애인, 만성질환자일 것이었다. 제네릭의 가격이 높기 때문에 연구개발보다는 영업에 힘을 더 쏟는다는 것이 정부의 설명으로, 의료비용 감소 외에 제네릭의 마진을 감소시킴으로써 신약개발 의욕을 증대시키려는 의도도 있었다.

협상결과

대원제약 신사업팀의 박신영 대리와 김정현 대표는 2011년 1월에 만나 빠르게 협상을 이어나갔고, 2011년 3월 31일 대원제약은 자사주 14.8만 주의 처분과 딜라이트의 구주 인수를 통한 계열사 편입을 발표했다. 사업을 이끌어줄 견실한 중견기업을 원한 딜라이트와 새로운 성장동력을 원한 대원제약의 만남이었다. 인수합병을 선택한 결정적인 동기는 이들 두 기업이 공통적으로 추구하는 사회적 가치였다. 대원제약 역시 선대 회장의 유언에 따라 이익이 거의 없는 제품을 일부 생산, 판매하고 있었고, 딜라이트의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비즈니스 모델에 동의하는 바가 컸다.

“저소득층 노인 등 사회적 약자를 위한 사업을 하겠다는 딜라이트의 좋은 취지를 계속적으로 살리고 사업 자체가 성공적으로 추진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

– 백승열 대원제약 부회장

“두 회사의 취지가 잘 맞았어요. 대원제약은 국민 건강의 동반자, 저희는 돈이 없어 듣지 못하는 외로운 사람이 없는 세상. 공익성을 추구하는 것이 비슷했죠. 파격적인 투자였어요. 500만 원 자본금에 이렇게 큰 투자는 전무후무하죠. 딜라이트가 초반에 가지고 있던 모델의 사회적 가치를 인정받았다고 할 수 있어요. 기업의 논리에서도 ‘너희는 돈을 벌 수 있다’고 인정을 받은 거죠.”

– 김남욱 전 딜라이트 경영지원팀장

딜라이트의 가치는 박신영 대리가 매장을 추가했을 때의 성장 가능성을 DCF(Discounted Cash Flow) 방법을 통해 평가했고, 인수는 구주 인수 방식을 사용했다. 딜라이트의 모든 주식은 김정현 대표의 소유였는데, 인수합병을 통해 대원제약은 현금 10억 원과 자사주 10억 원으로 김정현 대표가 소유한 60%의 주식을 인수했다. 김정현 대표를 포함한 6명 전원이 잔류하기로 결정했으며 김정현 대표는 2014년 2월 군입대 전까지 3년간, 즉 2013년 12월 31일까지의 대표직을 약속받았다. 딜라이트의 이사회는 딜라이트 측 2명, 대원제약 측 3명으로 구성되었다.

김정현 대표는 인수합병 약정서에 사인을 하고 건물을 나오면서 처음 가톨릭대 창업센터에서 즐겁게 일하던 모습이 머릿속에 뭉게구름처럼 떠올랐다.

“너무 재미있었어요. 하루하루가 행복하고 재미있었어요. 거의 인생의 황금기였던 것 같아요. 회사 만들어가는 과정이 너무 좋았어요. 지금 돈을 벌어도, 그때 느낀 행복을 따라갈 수 없을 것 같아요.”

– 김정현 전 딜라이트 대표

이제 딜라이트는 자신의 꿈을 함께 실현할 대원제약이라는 든든한 동반자도 생겼다. 김정현 대표는 1세대 사회적 기업가로서 창업기업의 매각에 성공했다는 자부심과 더 많은 사회적 가치를 창출해야겠다는 책임감에 가슴이 뜨거워졌다.


[주석]

1. 문성균, 이장우, 정연훈, 박기현, 보청기 재활 실패군의 임상적 원인 분석, Korean J Otolaryngol, 48: 13-17, 2005.

2. 되먹임(피드백, feedback): 보청기 출력의 일부가 보청기 입력으로 되돌아와 다른 신호와 같이 증폭되는 현상

3. 한국보건산업진흥원. 의료기기 시장 리포트, 2013.

4. 보건복지부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장애인 실태 보고서, 2011. (장애인 실태조사는 3년을 주기로 나오며, 사례시점인 2011년과 가까운 2010년 장애인 실태조사를 자료로 선택했다.)

5. 한국보건산업진흥원. 의료기기품목 시장 리포트, 2013.

6. 폐쇄효과: 본인의 말소리가 크게 울려서 들리는 효과

7. 아라빈드 병원은 본래 1976년 안과 의사 고빈다파 벤카타스와미가 세운 백내장 수술 전문 병원으로 창립 초기부터 병상의 절반 가까이를 할애해 극빈층 환자에게 무료 수술을 해주어 세계적인 주목을 받은 바 있다.

8. 정책뉴스, ‘난천 고통 서민 돕자···. 젊은이 셋 따뜻한 마음 통한다’, 2013. 04. 26.

9. 한국일보, 대학생이 만든 사회적 기업 ‘딜라이트’, 2010. 01. 04.

더보기

집필진

김태영

김태영

김태영은 성균관대학교 SKK GSB(Graduate School of Business) 경영전략 분야 교수이다. 스탠퍼드대학교에서 (조직)사회학으로 박사학위를 수여한 후, 홍콩과학기술대학교(HKUST)에서 경영전략 교수로 근무했다. Administrative Science Quarterly, Academy of Management Review, Organization Science 등에 연구결과를 게재하였고, 2007년 인사조직학회 국제연구상, 2010년과 2016년 Kelley-SKK GSB Executive MBA 및 SKK GSB Professional MBA에서 최우수 강의상을 각각 수상하였다. 비영리와 영리를 아우르는 경영전략, 조직이론 및 네트워크 분야 연구를 통해 강연 및 저술활동을 진행 중이다.
목록으로
사례
펼치기
blo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