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누마는 2012년 이수인 대표가 미국 버클리에서 창업한 소셜벤처로, 2014년 학습 부진 아동을 위한 맞춤형 수학학습 애플리케이션 토도수학을 출시했다. 출시 1년만에 미국, 중국 등 20개국 앱스토어에서 400만이 넘는 다운로드 수를 기록하며 국내외 투자자의 관심을 받았다. 토도수학의 성공 이후 에누마는 K9벤처스, 소프트뱅크벤처스 등 국내외 유명 벤처캐피털에게 잇달아 투자를 받으며 시장에 안착할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에누마가 개발도상국가 아동의 기초교육 문제 해결을 위한 글로벌 오픈소스 소프트웨어 경연 대회인 ‘글로벌 러닝 엑스프라이즈’ 참가를 고민하면서, 사회적 미션과 조직 성장 사이의 긴장 관계가 본격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에누마의 투자자들은 많고, 다양했다. 에누마의 사회적 미션에 공감한 투자자도 있었지만, 에누마의 기술과 성장 가능성에 주목한 투자자도 있었다. 엑스프라이즈 도전을 논의했을 때, 경연대회 우승상금 만큼 투자할 테니 제발 기존 개발사업에 집중하라는 투자자도 있었다. 에누마는 기존 투자자에게 엑스프라이즈 참가의 타당성을 설득하는 동시에 생존과 지속적인 자원 투입을 위해 새로운 투자를 유치해야 했다.
본 사례는 에누마가 소셜벤처 특유의 딜레마인 사회적 미션과 조직 성장 사이에서의 지속적인 갈등 상황을 해소하면서 성장하는 과정을 담았다. 에누마는 어떻게 비영리 글로벌 경연대회에 참가할 수 있도록 기존 투자자를 설득하고, 새로운 투자자를 찾으며, 후속 투자를 이끌어낼 수 있었을까?
교수자는 이 사례를 기업가정신 및 벤처창업, 경영전략 수업에 활용할 수 있다. 최근 주목받고 있는사회적 기업가정신의 핵심은 단순히 사회적가치를 추구하는 ‘목적’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가치와 비즈니스 모델의 긴장과 직면하여 혁신의 기회를 만들어가는 ‘과정’에 있음을 이 사례를 통해 이해하고 토론할 수 있다. 에누마의 스토리텔링의 진화과정을 통해, 불확실한 시장과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기반으로 기업의 성장과정에 적합한 투자를 이끌어내야 하는 기업가의 스토리텔링의 구성 요소와 재구성 전략을 토론할 수 있다.
Q1. 태블릿 PC 기반의 교육 애플리케이션 토도수학은 에누마에게 첫 번째 상업적 성공을 가져다주었을 뿐만 아니라, B2C 모델로의 시장 확장을 기대한 첫 번째 시리즈 A 투자를 이끌어 내기도 했다. 하지만, 시리즈 A 투자를 받은 2015년, 에누마는 시장 확장에 주력하는 대신, 글로벌 오픈소스 경연대회인 엑스프라이즈에 참가를 결정하고 새로운 교육 애플리케이션 킷킷스쿨 개발을 시작했다. 소셜벤처 에누마가 비영리 경연대회 엑스프라이즈에 참여한 동기와 그 결과는 무엇인가?
Q2. 이수인 대표의 창업 동기는 장애아의 특별한 필요를 만족시킬 수 있는 재미있는 게임을 개발하는 것이었다. 투자자를 대상으로 한 에누마의 모든 프레젠테이션에는 이 창업 동기와 미션, 그리고 그에 적합한 비즈니스 모델에 대한 설명이 포함되어 있었다. 하지만, 모든 투자자가 에누마의 스토리텔링에 공감했던 것은 아니다. 어떤 투자자들은 다 좋은데 제발 ‘장애아의 특별한 필요’만 프레젠테이션에서 빼면 좋겠다는 불만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2020년 6월 현재까지 에누마의 시드(2012), 시리즈 A (2015, 2018), 시리즈 B를 포함한 누적 투자액은 220억 원을 넘어섰다. 영리 투자자에게서 처음 시리즈 A 투자를 유치한 2015년과, 임팩트 투자자에게서 두 번째 시리즈 A 투자를 이끌어 낸 2017년의 스토리텔링 전략은 무엇이 다른가? 각각의 스토리텔링이 효과적일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존재하지 않는 시장의 가치를 이야기하는 방법 – 에누마
미션이 이끄는 벤처, 에누마
“제가 왜 창업을 해야 하죠?”
마누는 조금 당황한 눈치였다. 마누는 실리콘밸리에서 잘 알려진 엔젤투자자다. 독특한 비즈니스 모델로 성공한 Lyft, Carta같은 IT 기업들을 발굴해 첫 번째로 투자했다. 그의 투자를 받기 위해 수많은 스타트업이 그와의 미팅을 꿈꾸며 기다린다. 그런 그에게 왜 창업을 해야 하냐고 반문하니 마누에게는 익숙한 경험은 아니었을 것이다.
“창업하지 않을 이유가 있나요? 실리콘밸리는 누구나 성공할 수 있고, 그 어디보다도 크게 성공할 수 있는 곳인데요.”
마누의 질문에 이수인 대표는 조금도 망설임 없이 답했다. 이수인 대표는 게임 디자이너이자 기획자였다. 같은 회사에서 일하던 남편(이건호 공동대표)이 버클리로 유학을 가지 않고 출산계획이 없었다면, 다니던 회사에 만족하며 오랫동안 근무했을지도 모른다.
게임회사에서 새로운 게임을 개발하는 방식은 일반적 기업의 신규 프로젝트와 조금 다르다. 새로운 게임 아이디어가 제안되면, 그 아이디어를 중심으로 팀원이 모인다. 회사는 기획서와 프리젠테이션을 토대로 아이디어의 가치를 평가하고, 개발인력과 비용을 투자해 아이디어를 현실화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물론 완성하고도 여러 이유로 시장에 내놓지 못하는 프로젝트도 다수 있지만 소위 대박을 치는 게임도 대개 이런 과정을 거쳐서 만들어진다. 이는 벤처투자와도 비슷하다. 이수인 대표는 그런 구조에서 일하는 것을 즐겼다.
마누가 이수인 대표에게 연락을 한 계기였던 인지니 프로젝트도 그렇게 만들어졌다. 게임회사의 사회공헌사업의 일환으로 장애영유아들을 위한 학습 게임을 개발하는 프로젝트였다. 아이패드가 처음 출시된 2010년 일이다. 게임으로 아이의 호기심을 이끌어내고, 터치스크린의 직관성을 활용하여 인지반응을 자극하는 인지니 프로젝트의 게임 애플리케이션들은 앱스토어에 올라갈 때마다 좋은 평가를 받았다(Exhibit 1).
특히 미국에서의 반응이 뜨거웠다. 하지만 이수인 대표가 태블릿 PC를 사용한 게임이 장애아들에게 도움을 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회사 사정으로 프로젝트를 접을 수밖에 없었다. 이수인 대표 역시 아이에게 집중해야 할 시간이 더 필요했다. 그러던 어느 날, 인지니 프로젝트를 눈 여겨 보던 마누가 이수인 대표가 미국에 있다는 것을 알고 만나고 싶다며 연락을 해왔던 것이다.
이수인 대표는 게임 만드는 일을 좋아했다. 특히 장애아의 엄마로서 장애아에게 필요한 게임제작의 가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수인 대표는 자신이 굳이 창업까지 하면서 이 일을 해야 할지 확신이 들지는 않았다.
물론 창업 자체가 부담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에 앞서 이 일을 하는 데 과연 창업이 효율적인 방법일지 의문이 들었다. 이수인 대표는 인지니 프로젝트를 하면서 분명히 깨달았다. 자신의 아이에게 도움이 되는 정말 재미있는 게임을 만들고 싶다는 것을. 게다가 프로젝트 개발팀에는 이수인 대표뿐만 아니라 장애아동의 부모가 많았다. 모두들 아이가 최우선이었다. 내로라하는 전문가들이지만 일 때문에 아이의 일을 미루거나 포기하는 것은 애초에 선택사항에 없었다. 그래서 팀이 일하는 방식은 극단적 유연 근무가 원칙이었다.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최소화한 작업방식은 게임 프로젝트 경험의 노하우이면서 동시에 제약이었다. 이런 일하는 방식을 포기하지 않고도 회사를 운영할 수 있을까? 이런 구조의 회사에 투자하겠다는 사람이 있을까?
이수인 대표는 애초에 마누에게 남의 돈을 받아 회사를 할 생각도 없지만, 만약 투자를 받는다고 하더라도 장애아를 위한 게임을 만들고 싶고, 정해진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는 일하는 방식을 유지하고 싶다고 얘기했다. 이수인 대표 나름대로는 예의를 갖춰 거절하는 방식이었을 것이다.
“그거 좋은데요? 내 수표 받을 준비가 되면 언제든 다시 찾아와요.” 마누는 흔쾌히 말했다. 2012년 5월의 일이다.
2개월 뒤, 이수인 대표는 버클리 숙소 1층이 주소지인 법인을 만들어 마누를 찾아갔다. 30만 달러가 찍힌 마누의 수표는 11월에 도착했다. 에누마의 시작이었다.
토도수학의 성공
초기 벤처는 투자자가 유명하고, 적을수록 좋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름 있는 초기 투자자는 후속 투자자를 끌어올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초기 투자자가 적으면 의사결정구조와 지분관계가 단순해지는 장점이 있다. K9벤처스를 이끌고 있는 마누는 실리콘밸리에서 존경 받는 엔젤투자자로 첫 번째 조건을 충족한다. 그런데 마누의 투자금은 새로운 제품개발을 위한 팀을 꾸리기에는 충분하지 않았다. 돈이 더 필요했다.
에누마의 시드머니는 13명의 투자자에게서 받은 10억 원이었다. 1988~2012년 1억 8,000만 달러를 공교육 개혁에 투자해 왔던 비영리 벤처캐피털 뉴스쿨 펀드(NewSchools Venture Fund)와 개인 엔젤투자자들이 시드머니 투자에 참여했다. 마누는 에누마의 미션을 처음부터 긍정적으로 평가해 주었지만, 사실 장애아를 위한 게임을 만들겠다는 에누마의 미션은 다양한 투자자들이 존재하는 실리콘밸리에서도 독특한 사례에 속했다. 추가 투자유치는 생각보다 험로였다.
“장애라는 말은 좀 뺄 수 없나요?”
에누마의 첫번째 제품인 토도수학의 프로토타입을 가지고 참가했던 한 교육 소프트웨어 컨퍼런스에서 있었던 일이다.
컨퍼런스 심사장에서 이수인 대표는 준비했던 대로 “장애를 가진 아이의 엄마로 살면서 장애아들을 위한 컨텐츠가 없다는 데 절망했습니다. 에누마는 장애아와 학습장애를 경험하고 있는 아이들의 ‘특수한 필요(special needs)’를 만족시킬 수 있는 최고의 제품을 만듭니다.”로 시작하는 프리젠테이션을 마쳤다. 발표가 끝나자 정면에 있던 심사위원이 기다렸다는 듯이 손을 들었다. “제품은 정말 좋은데.. 장애라는 말은 좀 뺄 수 없나요? 장애아들의 ‘특수한 필요’라는 말을 듣는 순간 나 같으면 안 살 것 같아요.”
사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건 이런 심사위원의 반응이 처음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이수인 대표가 여태껏 만나왔던 많은 투자자들은 에누마의 기술력과 교육·게임의 니치를 타겟팅한 게이미피케이션 (gamification) 이라는 제품 포지션에는 늘 높은 점수를 주었다. 그러나 장애라는 말이 나오는 순간부터 얼굴빛이 달라졌다. 그렇게 좋은 일을 하고 싶었으면 NGO를 할 것이지 왜 하필 벤처를 하려고 하는가라는 질문을 받기 일쑤였다. 게다가 장애아를 위한 제품은 지나치게 좁은 시장이어서, 어떻게 규모 있는 성장을 이룰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질문도 자주 들었다. 장애아를 위한 제품이어도 제품의 퀄리티가 좋으면 학습 장애를 겪고 있는 비장애 아이의 부모들도 분명히 좋아할 거라는 이수인 대표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어주는 투자자는 그리 흔치 않았다.
마누의 이야기처럼 실리콘밸리만큼 다양하고 많은 투자자들이 있는 곳도 드물다. 피치덱을 할 수 있는 기회는 적지 않았고, 투자가 절실했던 이수인 대표는 기회를 마다하지 않았다. 이수인 대표는 많은 프리젠테이션 경험을 통해, 에누마의 피치덱이 어떤 부분에서 열광을 불러일으키는지, 어떤 부분에서 실망을 안겨주는지 자연스럽게 깨달았다. 투자자들은 게임회사에서 일해 온 이수인 대표 부부의 경력과 인지니 프로젝트로 축적된 경험을 에누마의 게이피케이션 전략으로 쉽게 연결짓고 높이 평가했다. 그러나 프리젠테이션이 장애아와 학습부진아에게 타겟팅된 시장에 이르르면, 투자자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프리젠테이션을 끊고 공격적인 질문을 퍼부었다.
공격적 투자자들은 스토리텔링뿐만 아니라 동양인 여성인 이수인 대표의 어색한 영어 발음을 문제 삼았다. 앞으로 수많은 프리젠테이션을 해야 할 텐데, 대표의 억양이 어색하고 프레젠테이션이 부자연스러우면 좋은 기회를 놓칠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투자자는 투자의 조건으로 대표가 기업의 성장에 손해가 된다는 판단이 있을 때, 해임을 할 수 있는 권리를 계약서에 새기자고 했다. 이수인 대표는 그 제안을 거절할 여유가 없을 정도로 절박했다.
장애아를 위한 최고의 교육 컨텐츠: ‘개인화’된 ‘게임’
그래서 이수인 대표는 토도수학 개발에 더욱 집중했다. 장애를 가진 아이와 함께 일상을 보내면서 오랫동안 집중력을 유지하기 힘들고 학습속도가 느린 아이들을 위한 교육 콘텐츠 자체가 부족하다는 점을 깨달았다. 대부분의 교육 컨텐츠는 평균 수준의 이해력을 가진 아이들을 타겟으로 제작되고 있었고, 평균적인 진도에 따라가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장애아를 위한 컨텐츠는 적기도 했지만, 수준이 상당히 낮았다. 한 병원이 자폐아동에게 제공하던 인지치료용 게임은 색상이 온통 회색과 초록색뿐이었다. 그 이유를 물으니 이 두가지 색이 자폐아동에게 좋다는 답을 내놨다. 사실은 그 게임이 1990년대에 개발되어 한정된 색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었다.
게다가 ‘교육’ 이라는 이름이 붙은 컨텐츠들은 어찌나 지루하던지! 전 게임산업 종사자로서, 성인 대상의 게임에 얼마나 많은 기술과 자원이 투입되는지 아는 이수인 대표는 분노감마저 느꼈다. 단순히 종이(학습지)에서 터치스크린(태블릿 PC)으로의 하드웨어적인 변화만을 반영한 기존 학습 애플리케이션들은 콘텐츠의 재미를 일찌감치 알아버린 게임 기획자 입장에서 보기에 괴로울 정도였다.
토도수학은 미국 유치원부터 초등학교 2학년까지의 커리큘럼을 700개 이상의 게임으로 만든 수학 교육 애플리케이션으로 설계되었다. 개발과정에서 특히 신경을 썼던 것은 ‘재미’와 ‘개인화’였다. 특히, 아이가 흥미를 느끼는 방향과 속도에 맞추는 개인화 작업(personalization)은, 정해진 진도가 있을 수 없는 장애아를 위해 필수적인 설계요소였다. 덕분에 토도수학은 장애아를 위해 기획되었지만, 학교의 진도를 쉽게 따라가지 못하는 학력부진 아동들까지 포괄할 수 있는 맞춤형 콘텐츠가 되었다(Exhibit 2).
자연스럽게 에누마의 피치덱 스토리텔링에서 토도수학의 타겟시장은 2013년 당시 미국의 공교육시장으로 넓어졌다, 미국 공교육의 학력부진은 OECD 국가 중 38위로 떨어질 정도로 심각한 문제였다. 미국 초등학교 저학년의 14%가 특수교육을 받고 있었다. 그러나 학습부진을 경험하는 저학년 아이들이 미국의 공교육 제도 하에서 체계적인 학습 지원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은 상당히 제한되어 있었다. 게다가 2014년부터 적용된 전미 공통 커리큘럼 (Common Core State Standard)은 기존 교재보다 난이도가 높고 많은 양의 계산을 요구해 아이들의 학습부담이 늘어났다. 마침 미국의 각 주별 교육위원회에서 태블릿 PC 등 IT 기술을 활용한 교육혁신정책을 경쟁적으로 도입하고 있던 시기였다. 토도수학은 기본적으로 모든 콘텐츠를 무료로 제공해 빠른 확산을 목표로 하는 한편, 유저의 일부를 정액 기반의 유료 모델로 전환시켜 수익성을 확보할 계획이었다.
토도수학의 성공과 시리즈 A 투자 유치
2014년 애플 앱스토어에 공개된 토도수학의 시장반응은 뜨거웠다. 첫날부터 앱스토어 교육 분야에서 가장 많은 다운로드를 기록하고, 미국에서 4주 동안 교육 분야 애플리케이션 다운로드 1위를 차지했다. 가장 고무적이었던 것은 토도수학이 장애아뿐만이 아니라 수학을 처음 접하는 아이들의 흥미를 끌 정도로 보편적 재미를 주었다는 점이었다. 교육 분야에서 높은 순위의 다운로드를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였다. ‘장애아의 필요에 맞춘 콤텐츠를 만들어도, 제품의 퀄리티가 좋으면 학습 장애를 겪고 있는 비장애 아이의 부모들도 분명히 좋아할 것’이라는 가설을 입증해 고무적이었다. 미국에서 가장 먼저 출시한 데 이어 한국, 중국 앱스토어에서도 토도수학의 인기는 유지되었다.
2014년 말, 중국의 메가스터디로 불리는 TAL 에듀케이션이 투자의사를 타진하는 메일을 보냈다. 성장하고 있는 중국 아동교육 시장을 타겟팅하자는 것이었다. 사실 에누마의 인기는 미국만큼이나 중국에서도 뜨거웠다. 사실 그 이상이었다. 토도수학은 중국 앱스토어 교육 분야 다운로드 1위를 8주 동안 차지했고, 이를 눈여겨보던 TAL에듀케이션이 먼저 연락을 취해 온 것이었다. 최초 장애아동의 이해를 돕기 위해 만든 토도수학에 미국의 학력부진 아동들은 물론, 언어가 다른 중국에서도 열광한 것이다. 그간 미국 공교육시장을 타깃한 토도수학의 글로벌 시장 공략을 기대할 수 있게 됐다
물론 TAL 에듀케이션과의 피치덱 자리에서도 장애가 있는 아이들을 위해 이 일을 시작했다는 에누마의 비전을 빼놓을 수 없었다. TAL에듀케이션에서 먼저 관심을 갖고 연락을줬기에 이전 피치덱과는 조건이 다를 것임은 분명했다. 그러나 투자자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는 여전히 확신할 수 없었다. TAL 에듀케이션은 방과후 교육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교육기관이기에 장애아에게 최고의 교육프로그램을 안겨주겠다는 에누마의 소셜미션에 얼마나 귀 기울일지 예단할 수 없었다.
결전의 날, 문제의, 창업동기에 대한 설명을 마친 이수인 대표는 자신도 모르게 투자자 쪽을 바라보았다. “오케이, 그 다음 페이지요.” 이미 토도수학의 성공을 보고 연락을 준 투자자였기 때문이었을까? 시드머니 10억 원을 만들기 위해 수없이 피치덱을 하고, 그만큼 수없이 거절을 당했던 날들이 무색하게 느껴질 정도로 수월한 프리젠테이션이었다(Exhibit 3). 2015년 2월 400만 달러 규모의 시리즈 A 투자는 이렇게 이루어졌다. 성장을 위한 한 고비는 넘어선 셈이었다.
고민의 시작: 에누마다운 성장은 무엇일까?
보통의 벤처라면 이야기는 여기에서 마무리하고 해피엔딩으로 끝났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토도수학을 출시하고 사용경험에 대한 데이터가 누적되면서 이수인 대표는 예상하지 못했던 고민거리에 부딪혔다.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에서 토도수학이 소비되는 패턴은 에누마의 예상과 상당히 달랐기 때문이다. 토도수학은 장애아, 적어도 학습에 어려움을 겪는 학습부진아를 위해 설계된 컨텐츠다. 그런데 아시아에서 토도수학의 주 소비층은 충분한 경제적 여유가 있는 가정의 3~6세 유아들이었다. 초등학교를 입학하기 전, 수학 기초개념의 선행학습 도구로 사용하는 패턴이었다. 한편으로는 B2C 기반 시장의 잠재력을 보여주는 데이터였지만, 의도와는 달리 토도수학이 사회의 교육격차를 벌리는 역할을 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
이는 에누마가 원하는 방향일까? 토도수학의 재미와 퀄리티는 시장에서 검증되었다. 문제는 평균적인, 심지어 그 이상의 학습능력을 가진 아이들까지 타겟으로 확장하는 B2C 방식의 성장이었다. 게다가 가난하다는 이유로 콘텐츠에 접근할 수 없는 아이들이 있고, 그 수도 많을 수 있겠다는 데까지 생각이 미치자 이수인 대표는 아찔했다. 토도수학의 경험과 팀의 역량에 기반을 둔 정말 에누마다운 성장은 어떤 모습일까?
존재하지 않는 시장의 가치: 엑스프라이즈와 킷킷스쿨
“이제 우리는 우승을 할 수밖에 없어.”
이수인 대표는 2015년 4월 글로벌 러닝 엑스프라이즈(이하 엑스프라이즈)에 신청서를 낼 때까지만 해도 그렇게까지 절박한 마음은 아니었다고 말한다. 2014년 9월, 엑스프라이즈가 전세계에 처음 공개되었을 때만 해도, 엑스프라이즈는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가 후원하는 대규모 비영리 프로젝트라는 것을 제외한 대부분 정보는 베일에 쌓여 있었다.
토도수학이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고, 시리즈 A 투자가 확정되면서 에누마의 성장전략은 토도수학을 기반으로 유료사용자 수와 연간 구매액을 늘리고, 영어로 확장하는 B2C 시장을 중심으로 논의되고 있었다. 그러나 아시아 시장에서 토도수학이 선행학습 도구로 사용된다는 점이 이수인 대표의 마음을 복잡하게 만들었다. 시리즈 A 투자자가 추가된 이사회와 성장전략을 논의하면서도, 에누마의 미션과 가치에 더 부합하는 신제품에 대한 고민을 포기할 수 없었다. 이수인 대표는 장애아를 위한 게임에 전문성을 가진 에누마가 도전할 수 있는 프로젝트 중 하나로 엑스프라이즈를 지원하게 됐다. 처음에는 정유진 COO와 함께 ‘한 번 지원이나 해보자’는 생각으로 신청서를 제출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엑스프라이즈 지원은 고민의 끝이 아닌 시작임을 알게 됐다. 우선 경연대회의 정보가 여전히 불분명했다. 전 세계 2억 5,000만 명이 넘는 개발도상국의 아동 문맹을 해결하겠다는 목표, 5년의 솔루션 검증 기간, 우승작은 오픈소스로 공개한다는 점과 총 상금이 1,500만 달러라는 것 외에는 알려진 정보가 많지 않았다. 비록 토도수학이 글로벌로 반향을 일으키고 있었지만, 에누마는 전 직원 20명이 채 안되는 작은 벤처다. 이제 겨우 투자여력이 생겼지만, 토도수학의 보수·확장 외에 새로운 게임을 개발하는 것은 힘이 부쳤다. 조직 내부와 이사회를 설득하려면 조금 더 확실한 모멘텀이 필요했다.
엑스프라이즈는 에누마에게 어떤 기회와 위험, 그럼에도 불구하고 추구해야 할 가치가 있는가, 이수인 대표는 이 질문에 답해야 했다.
2016년, 대장정의 시작
2016년은 엑스프라이즈 주최측의 연락으로 시작되었다. 에누마를 비롯한 200여 참가팀과 엑스프라이즈 주최자들이 아프리카의 아동 교육 문제 현황을 논의하며, 대회정보를 공개하는 서밋을 파리, 워싱턴, 그리고 케냐의 나이로비에서 개최하겠다는 공지였다. 이수인 대표는 모험을 해보기로 했다. 가뜩이나 부족한 살림에, 모든 서밋에 참석하는 것을 목표로 인력을 배정하고 예산을 배분했다.
첫 번째 파리 서밋이 시작하기 전까지, 이수인 대표 일행은 불안한 마음을 안고 있었다. 그러나 엑스프라이즈의 기획자들을 직접 만나면서 불안감은 진지한 고민으로 바뀌었다. 세계적 기술력을 자랑하는 MIT 미디어랩의 기술도, 수십 년 동안 빈곤문제 해결에 노력한 UNDP의 헌신적 노력도 아프리카 아이들의 교육접근성 문제를 획기적으로 개선하지 못했다. 막상 교육 현장에서 선진국의 기술은 목적과는 다른 방향으로 쓰이거나 번번이 기대 이하의 성과에 머무르곤 했다. NGO, 국제기구의 활동 기간은 길어졌고 사업의 지속가능성 여부가 점점 문제로 부각되었다. 엑스프라이즈의 궁극적 목표는 학교와 교사 모두 부족한 아프리카에서 비대면 기술만으로 아이들이 스스로 학습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었다.
경연대회도 윤곽을 드러냈다. 경연의 하이라이트는 파이널리스트에 진출한 5개 팀이 내놓은 솔루션이 정말 효과가 있는지 검증하는 것이다. 탄자니아의 탕가 지역에서 15개월 동안 정밀한 필드실험을 거쳐야 했다. 실험결과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간섭을 막기 위해 실험이 끝날 때까지 모든 외부인의 접근을 철저히 배제했다. 누구의 개입 없이 오직 애플리케이션만으로 아이들이 학습할 수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 유일한 규칙이었다.
첫 번째 서밋이 끝나기 전, 이수인 대표는 에누마의 미션·경험이 엑스프라이즈와 완전히 부합한다고 생각했다. 에누마는 토도수학의 경험을 통해 경제적 이유로 수준 높은 교육환경에 접근하기 힘든 아이들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또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스스로’ 학습에 몰입하는 데, 게임은 가장 매력적 수단이다. 에누마는 다른 영리기업들이 해 본 적 없는 장애아와 학습부진아를 위한 소프트웨어를 설계한 회사다. 이수인 대표는 엑스프라이즈를 통해 개발도상국 아이들의 교육접근성 문제를 해결하고 에누마의 역량을 객관적으로 검증, 세계에 알릴 수 있는 기회라고 확신했다.
엑스프라이즈에 참여하려면 이사회의 문턱부터 넘어야 했다. 사실 투자자 관점에서 에누마의 엑스프라이즈 참가는 일반적 기대를 한참 벗어난 옵션이다. 물론 1000만 달러의 우승상금이 적지 않지만 우승하려면 200개에 가까운 경쟁자들과의 경합해 눈에 띄는 성과를 내야 했다. 저개발국가의 교육문제 해결이라는 과제도 이미 경험과 전문성을 갖추고 조직이 존재했다. NGO, 정부 ODA와 연계된 원조기관이 다수였다. 에누마의 차별성과 강점은 무엇이며, 이를 이점으로 이끌 전략이 있나. 이사회는 엑스프라이즈에서 수상할 경우 솔루션을 공개해야 한다는 점도 우려했다. 에누마가 목표 시장에서 어떻게 이니셔티브를 가져올 것이며, 엑스프라이즈 경험에서 어떤 유의미한 비즈니스 모델을 찾아낼 수 있을까?
엑스프라이즈 기간 중 에누마의 생존 여부도 고민해야 했다. 벤처 기업은 5년은 커녕 한 달 뒤 생존도 장담하기 어렵다. 에누마에겐 수익성이 검증되지 않은 새로운 게임 개발과 토도수학의 유지보수를 동시에 진행할 충분한 자원이 미흡했다. 대회 참가에 오랜 시간과 비용이 필요하다면, 에누마는 팀 역량을 엑스프라이즈에 집중해야만 했다. 토도수학이 선전하고 있고 시리즈 A 투자가 결정된 직후라 당장은 어떻게든 버틸 수 있겠지만, 결국 5년이라는 시간 동안 투자금이 고갈되는 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이사회에서는 엑스프라이즈 참여의 명분은 물론, 참여 중 현금흐름과 관련한 대책을 요구할 것이었다.
모든 사회문제에는 저마다의 이름이 있다
탄자니아 어린이들을 위해 스와힐리어와 영어로 제작될 에누마의 새로운 교육 컨텐츠의 이름은 킷킷스쿨로 정했다. 개발목표는 수학과 문해에 익숙하지 않은 아이들이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 사용성, 그리고 아이들을 오랫동안 태블릿 앞에 붙잡아 둘 수 있는 재미였다. 에누마는 자신의 경험을 발휘할 수 있는 재미는 자신 있었지만 사용성은 확보는 낯설었다. 아프리카 아이들은 무엇이 어렵고 익숙한지 짐작만 할 뿐이었다. 주최측은 탄자니아의 스와힐리어 사용지역이라는 것 외에는 정보를 주지 않았다. 실험 장소인 탄자니아에 접근도 제한되었다. 제한된 정보 속에서도 에누마는 토도수학의 경험에 근거하여 킷킷스쿨의 사용성을 높이는 데 매진했다. 에누마는 이렇게 개발한 킷킷스쿨 프로토타입을2017년 1월 엑스프라이즈 예선전에 제출했다.
2017년 4월, 엑스프라이즈 사무국은 킷킷스쿨을 준결승 11개팀에 선발했다고 연락했다. 탄자니아 아이들이 킷킷스쿨을 사용하는 모습의 영상도 함께 보냈다. 기쁜 소식이었다. 그러나 영상을 보고 이내 실망했다.
“기대에 가득 차 팀원들과 함께 영상을 열어봤죠. 영상 속 어린이 중 일부는 게임을 진행하지 않고 그저 멍하니 앉아 있기만 하더라고요. 첫 화면을 열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촬영카메라를 쳐다보는 아이들의 얼굴을 보다 보니.. 사실은 우리의 교만이었어요. 최선을 다해 좋은 프로그램을 만들었다는 자부심이 어느새 부끄러움으로 바뀌었습니다.”
– 이수인 대표
에누마는 최선을 다했다. 에누마의 개발자와 교육 디자이너들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생각을 했다. 다만 아이들이 좋아할 거라 생각하고 개발과정에서 추가한 기능들은 태블릿 PC을 처음 접한 아이들 앞에서 무용지물이었다. 개발자·디자이너들의 상식은 대도시라는 환경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 상식은 특수하고 상대적이며, 수많은 편견의 산물이다. 에누마가 장애아·학습부진아를 경험했다고 무언가 알고 있다는 전제 자체가 문제였다. 다시 세심한 관찰부터 시작해 사용성을 개선시키기로 했다.
그러나 곧바로 사용자 경험 데이터가 절대 부족하다는 벽에 부딪혔다. 탄자니아의 필드 실험장소로부터 얻을 수 있는 데이터는 대단히 제한적이었다. 주최측은 2주에 한 번 세계식량계획 담당자가 USB에 담은 사용데이터를 참가팀에게 공유해 줄 뿐이었다. 그나마 데이터는 숫자뿐이었다. 현장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알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창구였다. 숫자로만 가득 채워진 데이터를 어떻게 해석하고 제품을 개선할지 난감하기만 했다.
직접 현장에 접근하지 않고 제품검증에 필요한 데이터를 어떻게 얻을 수 있을까?
탄자니아 현장에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접근할 수 있는 모든 방법들을 검토하던 중에, KOICA가 눈에 들어왔다. KOICA는 국내 테크놀로지 솔루션을 개발도상국에 소개하는 기업을 지원하는 ‘혁신적 기술 프로그램(Creative Technology Solution)’을 운영했는데, 에누마는 여기에 지원했다. 처음에는 프로그램 참여로 주어지는 현금지원만을 기대했다. KOICA와 논의를 이어가던 중 KOICA가 국제개발협력분야의 네트워크 허브라는 것을 깨달았다. KOICA는 기업이 접근하지 않는 지역의 비정부기구와 원조기관들과 오랜 시간에 걸쳐 지역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었다. KOICA와의 파트너십은 탄자니아라는 미지의 세계에 접근하기 위해 NGO와의 네트워킹을 적극 추진하는 계기가 되었다. 국제아동구호비영리단체인 ICRI(International Child Resource Institute), 굿네이버스(GoodNeighbors)와 협력해 탄자니아 탕가와 가까운 음투와라 지역에서 킷킷스쿨 프로토타입을 토대로 한 3개월 동안의 현지 테스트를 진행했다. 김형준 수석 디자이너가 직접 거주하며 아이들의 행동을 관찰했다(Exhibit 4).
그 결과 엑스프라이즈가 보내주는 데이터의 의미가 점점 드러났다. 탄자니아 어린이들에게 익숙한 닭, 소. 쥐를 캐릭터로 만들거나, 개미를 세면서 숫자를 배울 수 있게 하는 등 킷킷스쿨을 점차 개선시켜 나갔다. 이 과정에서 에누마는 태블릿을 처음 접한 아이들이 숫자와 영어를 알아가는 과정에서의 어려움과 재미, 성취를 담은 세계에서 유일한 데이터와 그 데이터를 해석할 수 있는 경험을 함께 축적했다(Exhibit 5).
한편 이사회는 엑스프라이즈에서의 성과와 에누마의 성장전략에 대한 진지한 논의를 벌였다. 이수인 대표는 엑스프라이즈 도전이 B2G 시장진입에 최적화된 제품 개발의 산실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어필했다. 엑스프라이즈의 전례 없는 교육실험은 에누마와 같은 교육프로그램의 성과를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홍보할 수 있는 기회라고 강조했다. 이를 계기로 다른 저개발국가와 국제기구를 대상으로 B2G 경쟁우위를 확보할 수 있다고 했다. 킷킷스쿨이 오픈소스로 공개돼도 실질적으로 킷킷스쿨을 기반으로 프로그램을 만들어낼 수 있는 위협적인 경쟁자가 나타날 가능성은 낮다고 설득했다. 킷킷스쿨은 탄자니아와 케냐의 실험 데이터를 적용해 개발했다. 이 때문에 여타 개발도상국의 교육환경에 적합한 커스터마이징에는 많은 비용과 노하우가 필요해 자연적으로 진입장벽이 생길 거란 게 근거였다. 엑스프라이즈가 설계한 혹독한 필드 실험환경에서 킷킷스쿨이 객관적 성과를 증명한다면, 새롭게 생긴 시장에서 에누마의 경쟁우위는 절대적일 것이었다.
존재하지 않는 시장의 가치를 이야기하는 방법
2017년 6월, 에누마는 최종 결승에 오를 파이널리스트 5개 팀 중 하나로 이름을 올렸다. 파이널리스트에 오르기 전과 비교해, 이수인 대표는 두 가지가 달라졌음을 느꼈다. 엑스프라이즈에 참가해 ‘우승’이라는 목표가 얼마나 현실적인지, 이 목표에 기대하는 것이 얼마나 전략적인지에 대해 확신하기 어려웠다. 실제로 TAL 에듀케이션으로부터 받은 시리즈 A 투자금은 킷킷스쿨 개발과 함께 급속히 소진되어 가고 있었다. 불안감이 없었다면 거짓일 것이다. 킷킷스쿨을 개발하고 개선시키는 과정에서, KOICA, NGO와의 파트너십으로 비영리시장의 자금을 수시로 조달하지 않았다면 견디기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파이널리스트에 오르자 조직 내부와 이사회에서 모두 “이러다가 정말 우승할 수도 있겠는데?”라는 분위기가 서서히 달아올랐다.
문제는 우승자 발표까지 남은 15개월 사이에 투자금이 소진될 것이라는 현실적인 전망이었다. 이 시점에서 토도수학과 킷킷스쿨 외에 새로운 캐시카우를 개발할 여력이 없다는 점은 분명했다. 다시, 이수인 대표에게 피치덱의 시간이 찾아왔다.
비영리대회 참여는 무모한 도전이지만, 파이널리스트에 올랐다는 에누마의 성과에 관심을 보인 투자자들이 있었다. 2010년대 중반부터 한국 벤처생태계에서 조금씩 자리를 잡던, 소셜임팩트를 고려한 투자를 지향하는 옐로우독, 소풍, D3쥬빌레, HGI와 같은 임팩트투자자들이었다. 2017년 말엽 이수인 대표는 대표적 임팩트 투자자들 앞에서 발표를 가졌다(Exhibit 6).
이날 이수인 대표가 준비한 피치덱은 독특했다. 일반적인 피치덱에 기본적으로 들어가는 비즈니스 모델, 타겟시장과 예상매출에 대한 전표는 보이지 않았다. 대신, 피치덱의 첫 슬라이드에는 에누마를 시작한 이유였던 이수인 대표 부부와 아이의 사진이, 두 번째 슬라이드에는 작은 교실에 빼곡히 앉아 있는 탄자니아 아이들의 사진이 이어졌다. 세 번째 슬라이드는 기술이 발전했음에도 당연히 받아야 할 교육을 받지 못하는 아이들이 많다는 점을 강조했다. 아직 시장은 확실하지 않지만, 이 문제를 해결했을 때의 가치는 명백해 보였다.
그리고 아직 엑스프라이즈의 실험이 끝나지 않았지만 필드실험 데이터는 킷킷스쿨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하나의 검증된 솔루션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었다. 피치덱은 태블릿 PC에 킷킷스쿨 애플리케이션을 띄운 탄자니아 아이들의 사진으로 끝났다. 일반적이지 않은 피치덱의 메시지는 명확했다. 존재하지 않는 시장을 만들려고 분투하는, 그러나 엑스프라이즈 최종결과 발표까지 생존해야 하는, 에누마의 가치에 투자해 달라는 것.
2018년 4월, 에누마는 옐로우독, HGI, C-program 등 국내의 임팩트 투자사들로부터 두 번째 시리즈 A 투자(400만 달러)를 유치한다. 에누마는 엑스프라이즈 최종결과가 발표되는 2019년 5월을 향해 전속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엑스프라이즈 우승, 그리고 이제 존재해야 할 시장으로
엑스프라이즈 최종 결과 발표가 있기 전날, 이수인 대표는 투자자 모두에게 메일을 보냈다. 메일에는 에누마 뿐만 아니라 다른 결선 진출자 4곳까지, 5개 소프트웨어 모두가 탄자니아의 아이들에게 뚜렷한 효과를 발휘했다고 적혀 있었다. 학교가 없는 마을 150여곳의 아이 3,000명이 5개 중 하나의 소프트웨어로 학습했고, 아이들 다수의 학습 능력이 향상되었다는 이야기였다. 1,000만 달러의 상금이 어디로 가느냐와 상관없이 글로벌 러닝 엑스프라이즈 대회의 성과는 이미 그것으로 충분히 확인된 셈이다. 3,000명의 아이들에게 새로운 기회가 돌아갔고, 이제 중요한 것은 그 3,000명을 300만 명으로, 3억 명으로 만드는 일이다.1)
– 제현주 옐로우독 대표
2019년 5월, 일론 머스크는 장장 5년에 걸친 엑스프라이즈 경연대회의 우승자로 영국의 NPO 원빌리언과 에누마의 이름을 함께 불렀다. 공동 우승. 원빌리언이 오랫동안 아프리카를 중심으로 교육사업을 벌여왔던 유명 NPO라는 것을 고려하면, 에누마의 성장은 놀라운 것이었다. 500만 달러의 상금과 함께, 에누마의 누적 투자액은 어느새 1,000만 달러를 훌쩍 넘어섰다. 토도수학의 누적 다운로드는 700만을 넘어섰다. 킷킷스쿨은 탄자니아에서 케냐를 거쳐, 우간다의 난민캠프에서 사용되는 글로벌 기초학습 컨텐츠로 진화하고 있었다(Exhibit 7).
그러나 다시 이야기하지만 이것은 보통의 벤처도 NGO도 아닌 소셜벤처 에누마의 이야기다. 에누마는 다시 비용과 수익이라는 냉정한 시장의 계산, 엑스프라이즈를 통해 잠재력을 확인했던 B2G 시장의 현실화와 원조기관, NGO 등 기존 이해관계자들과의 협력과 경쟁이라는 긴긴 여정을 다시 시작해야 했다. 에누마의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참고 문헌]
1) 제현주, “일론 머스크와 1500만 달러”, 경향신문, 2019.05.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