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라우드펀딩 플랫폼 텀블벅의 견고한 성장방정식

텀블벅은 국내 최대 규모의 후원형 크라우드펀딩 플랫폼이다. 텀블벅 플랫폼에서는 언제나 평균 600개가 넘는 활성화된 프로젝트들을 만날 수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단 하나, “창작자들이 창조적인 무언가를 직접 만든다”라는 것이다. 텀블벅은 설립 후 3년 동안 매년 2배가 넘는 급진적 성장을 기록했다. 하지만, 2013년 11월 리뉴얼 직후 핵심고객이 경쟁 플랫폼으로 이동하고 매출액이 급감하는 정체 국면에 직면한다. 이 위기를 돌파하기 위한 텀블벅의 전략은 적자를 감수하고라도 외부유입을 늘려 빠르게 규모를 확보하는 일반적인 플랫폼 비즈니스의 성장방정식과 달랐다. 텀블벅은 성장의 의미를 재정의하고, 성장의 속도를 조절하며, 성장에 텀블벅만의 색깔을 입혔다. 새로운 유입을 늘리기보다는, 기존 사용자들의 재방문에 집중해 플랫폼 내 창작자와 후원자의 사용자 경험을 강화했다. 일 평균 활성화 프로젝트 수, 프로젝트 승인율 및 성공률은 텀블벅의 ‘견고한 성장’ 방정식의 핵심이다.

본 사례는 후원형 크라우드펀딩 플랫폼 텀블벅의 성장 과정을 살펴보고 리뉴얼 이후 정체 국면에빠진 텀블벅이 취한 성장전략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이를 통해 제한적인 자원과 경쟁적인 환경 속에서 브랜드 정체성을 지켜내면서 스타트업이 성장하기 위해 어떠한 전략적 선택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 고민할 수 있다.


Q1. 플랫폼 비즈니스로서 텀블벅의 성장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으며, 어떤 지표를 통해 성장을 확인할 수 있는가? 성장 지표를 개선하기 위해 어떤 전략이 필요한가?

Q2 플랫폼 비즈니스의 양면시장(two-sided market)적 특성을 생각해보자. 텀블벅 플랫폼의 양면 사용자는 누구이며, 각각의 특성은 무엇인가? 텀블벅 플랫폼의 성장 모멘텀을 만들기 위해 우선적으로 집중할 사용자는 누구인가?

Q3: 소비자가 서비스를 찾아오게 하거나 찾아온 소비자를 놓치지 않는 인바운드 전략(inbound strategy)과 소비자를 찾아 다니며 서비스를 적극적으로 알리는 아웃바운드 전략(outbound strategy)에 대한 이해를 중심으로 리뉴얼 직후 텀블벅 성장전략의 타당성을 검토해보자. 각각의 경우 어떤 조직적 의사결정이 필요하며, 전략의 타당성과 성과는 어떤 지표를 통해 측정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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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라우드펀딩 플랫폼 텀블벅의 견고한 성장방정식

 


텀블벅은 국내 최대 규모의 후원형 크라우드펀딩 플랫폼이다. 텀블벅 플랫폼에서는 
언제나 평균 600개가 넘는 활성화 프로젝트들을 만날 수 있다. 프로젝트 분야는 문화예술 분야의 독립영화 제작 프로젝트에서부터, 사회운동 성격의 페미니즘 굿즈 프로젝트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이들의 공통점은 단 하나, “창작자들이 창조적인 무언가를 직접 만든다”는 것이다. 텀블벅의 누적후원금은 2011년 1억 원을 넘긴 이후, 2017년 8월 200억 원, 2018년 2월에는 300억 , 6월에는 400억 원을 돌파했다. 2017년에만 2,275개의 프로젝트, 147억 원의 후원금, 445,040명의 후원자가 텀블벅을 거쳐 갔다텀블벅은 염재승 대표의 소망이었던 “작지만 파괴적인 서비스”1)라기엔 이미 너무 커져 버린, 한국 후원형 크라우드펀딩 업계의 거인이 되었다.

2011년 4월 오픈 당시 텀블벅은 결제시스템의 편의성, 업계 최저수준인 5% 수수료, 문화예술 창작자를 위한 크라우드펀딩으로 미디어의 관심을 받으며 초창기 크라우드펀딩 플랫폼 사이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창업 첫해인 2011년 후원금 총액 1억을 달성하고, 2012년 웹툰과 게임으로 펀딩 분야를 확장하며 2012년에만 총 후원금 4.8억으로 전년도에 비해 4배 이상 성장한다. 2013년 1월에는 소셜벤처 액셀러레이터 sopoong의 시드 투자를 받으면서 내부적으로 준비하고 있던 리뉴얼에 박차를 가할 수 있었다.

하지만 리뉴얼 서비스를 오픈한 2013년 11월 이후 문제가 발생했다. 일부 창작자들은 카네이션 색으로 선명하게 리뉴얼된 텀블벅 디자인에 만족했지만, 대부분 후원자는 이를 낯설어하며 불편하게 여겼다. 결국, 리뉴얼 직후부터 펀딩 성공률, 후원액 등 매출과 직결된 주요 지표들이 급속히 하락했다. 이와 함께 한때 텀블벅 매출의 상당 부분을 차지했던 웹툰 범주의 작가 다수가 경쟁업체로 옮겨갔고, 후발업체들이 공격적으로 시장에 진입하면서 경쟁이 심화되고 있었다. 생존을 위한 성장이 절실했다.

문화예술 창작자를 위한 크라우드펀딩

텀블벅은 2011년 4월 1일 만우절에 오픈했다. 군대 선후배 사이였던 영화 전공 염재승 대표와 디자인 전공 소원영 공동창업자가 “나와 같은 문화예술 창작자들이 돈 걱정 없이 창작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돕고 싶어”2) 해외의 유명 크라우드펀딩 플랫폼 킥스타터를 참고해 1년간 준비한 결과물이었다.

오픈 당시 텀블벅 첫 프로젝트는 둘이었는데, 하나는 한 동화책 작가가 곧 태어날 조카를 위해 <사슴을 타고 온 아이>라는 제목의 그림책을 만드는 데 필요한 출판비용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LETS라는 대학생 지식공유행사 준비를 위한 것이었다. 텀블벅의 첫 펀딩이었던 두 가지 프로젝트는 모두 목표액인 45만 원, 80만 원을 가뿐히 초과하여 성공을 거뒀다. 기분 좋은 출발이었다.



2011년 당시 텀블벅 프로젝트는 독립영화제작 등 문화예술 분야가 대부분이었고, 창작자 상당수는 예술전공인 염재승 대표의 지인이기도 했다. 물론 지인들만으로 플랫폼을 운영하기엔 충분하지 않아 따로 섭외하거나, 이미 텀블벅을 이용했던 창작자들에게 초대장 5장씩을 제공해 창작자의 지인들을 추천 받기도 했다. 지인 추천 방식을 거치지 않은 창작자는 운영진에게 메일을 보내 초대장을 받는 절차를 거쳐야만 텀블벅 홈페이지에 프로젝트를 신청할 수 있었다.

창업 초기 텀블벅의 ‘초대장 방식’은 비록 수가 많지는 않지만, 믿을 만한 창작자들을 충원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식이었다. 공동창업자 모두 예술전공이라 창작자 인적풀을 상대적으로 쉽게 확보할 수 있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신뢰를 확보할 수 있다는 장점과 함께 프로젝트의 품질관리(quality control)에도 유용했다. 특히 같은 필드에 있는 창작자들에 대한 상호인지가 높은 문화예술계에서 창작자 추천제는 기대 이상으로 잘 작동하여, 2011년 4분기부터는 염재승 대표가 창작자 섭외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꾸준히 목표한 수 이상의 창작자를 확보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추천을 받은 모든 창작자들이 프로젝트를 등록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창작자가 제안한 신규 프로젝트가 실제 플랫폼에 탑재되는 비율을 의미하는 승인율은 초창기 40-50%에 불과할 정도로 텀블벅의 프로젝트 승인 프로세스는 엄격했다. 우선 아무리 취지가 좋더라도, 프로젝트의 결과로서 유무형의 창작물을 산출하지 않는 프로젝트는 텀블벅 등록을 허가하지 않았다.

“프로젝트의 기획에는 오너십과 창조성이 필요합니다. 창업 당시에는 창조적인 목적성이 있는 프로젝트를 지향했고, 창작물이 없는 프로젝트는 펀딩을 하지 않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업 초기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해 모금하는 캠페인 프로젝트도 검토를 했는데, 취지는 충분히 공감했지만 프로젝트의 목표가 창작물로 이어지지 않아 당시 텀블벅 ‘커뮤니티’에 적합한 프로젝트는 아니라고 판단했습니다.”

– 염재승 텀블벅 대표

텀블벅은 ‘개인’ 창작자의 프로젝트에 집중했다. 문화예술계의 개인 창작자는 성적 지향과 대중적이지 않은 주제, 제한적인 펀딩 기회로 창작 아이디어를 현실화하는 데 고질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이들을 편견 없이 대중 앞에 선보이고, 후원금과 전시회 초대, 엔딩크레딧 기재 등 비금전적 보상의 교환을 매개로 창작자와 후원자를 연결해줄 수 있는 혁신적인 해결책이 크라우드펀딩이었고, 바로 이것이 텀블벅의 창업 동기였다. 하지만 개인 창작자에 대한 선호로 인해 텀블벅 창업 초기에는 개인이 아닌 기성 조직이나 기업의 프로젝트를 배제하는 의사결정을 하기도 했다. 당시 텀블벅 사무실의 화이트보드에는 “기업(사회적기업 포함), 출판사(소규모출판사 포함), 갤러리, 영화제 집행위, 대학(졸전이나 영화제), 각종 스튜디오, 극단, 음반사(인디레코드 포함) 등 전시, 기획 프로젝트는 생각하지 않는다”3)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추천해 준 프로젝트가 가이드라인에 맞지 않으면 않은 경우 거절하고, 초기는 창작자 펀딩을 주로 했기 때문에 창작자가 아닌 펀딩은 거절했어요. 텀블벅의 컬러에 맞게 조절했던 과정의 일환이었습니다.”

– 염재승 텀블벅 대표

문화예술 분야의 개인 창작자를 타겟팅(targeting)한 비즈니스 모델은 초창기 다른 어떤 크라우드펀딩 플랫폼과도 구별되는 텀블벅만의 특징을 부여했다. 문제는 개성이 뚜렷한 창작자의 프로젝트를 누가 구매할지, 그 후원 규모가 텀블벅 플랫폼을 유지할 수 있을 만큼 시장성이 있는지였다.

텀블벅에 오면 성공한다

“부천국제영화제에서 설문을 했어요. 여기 오신 분들은 창작자의 연락을 받고 오신 분이냐, 팸플릿을 보고 오신 분이냐 하는 내용의 설문이었죠. 창작자의 지인이 30-40% 정도 되더라고요. ‘찾아와 주기까지 하는 지인은 펀딩에서도 도울 확률이 높다’라고 생각했죠. 그걸 가지고 플랫폼에서 창작자 본인이 모을 수 있는 인원 비율을 산정했어요.”4)

– 염재승 텀블벅 대표

초기 텀블벅이 집중적으로 타깃팅한 후원자는 창작자의 지인들이었다. 대중성이 결여된 프로젝트로 보일지라도 텀블벅은 창작자의 사적인 네트워크를 활용해 초기 펀딩액을 일부 확보하였고, 이를 통해 누적된 펀딩 금액은 프로젝트에 매력과 신뢰감을 부여하는 긍정적인 순환고리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물론, 프로젝트 초반의 높은 지인 마케팅 비율은 대부분 크라우드펀딩 플랫폼들의 공통적인 요소이기도 하다.5)

텀블벅의 프로젝트 사전 설계의 핵심은 성공가능한 수준의 ‘합리적인 프로젝트 목표액 설정’이었다. 다른 크라우드펀딩에서는 프로젝트 이슈화를 위해 수천만 원이 넘는 펀딩 목표액을 가진 프로젝트가 많았지만, 텀블벅에 최초로 등록된 두 프로젝트의 목표액은 45만 원, 80만 원으로 일반적인 기준에서 높다고 볼 수 없었다. 여기서 중요한 기준은 ‘목표 펀딩액을 정해진 기간 내에 달성할 수 있는지’였다. 비록 한 창작자의 운명을 바꾸기엔 충분하지 않을지 모르지만, 적은 돈이라도 크라우드펀딩을 성공한 경험을 만드는 것 자체가 가치를 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지인의 펀딩액을 40%라고 가정하여 그것의 100%, 즉 창작자 본인이 모을 수 있는 금액의 두 배 정도를 펀딩 목표액으로 잡으시라고. 다소 러프하지만 처음엔 이렇게 권해드렸죠. 당시 펀딩 프로젝트를 하는 분들 가운데 1,000만 원, 1억 원과 같이 큰 금액을 목표로 잡은 분들이 있었는데, 당연히 실패했죠. 텀블벅이 집중했던 건 적은 금액이라도 성공한다는 경험을 만들어 주는 것이었어요. ‘텀블벅에 오면 성공한다’라는 인식 말이에요. 6)

트랜디한 창작자와 후원자, 그리고 합리적인 목표액을 핵심으로 한 프로젝트 설계가 결합한 결과 초창기 6개월 동안 텀블벅의 프로젝트 성공률은 89%에 이르렀다. 수많은 작은 성공들이 이어진 결과, 적어도 문화예술계의 개인 창작자들은 스스로 충당하기 어려운 제작비를 확보할 수 있는 대안으로 텀블벅을 고려할 수 있게 되었다. 그 결과 텀블벅은 초기 크라우드펀딩 플랫폼들 사이에서도 독특한 위상을 갖게 되었다. 창의적인 시도를 하는 창작자들과 트랜디한 후원자들이 모여드는 ‘힙스터 커뮤니티’로 진화한 것이다.

성장, 또 성장, 그리고 시드 투자

한국 크라우드펀딩 시장의 급속한 성장은 곧 시장 선도업체 중 하나였던 텀블벅의 성장을 의미하기도 했다. 창업 첫해인 2011년 텀블벅은 하루 평균 12개의 프로젝트가 활성화되어 있었으며, 그 해에 56개의 프로젝트를 성공시켜 총 후원금 1억 원을 기록했다. 이러한 지표는 다음 해인 2012년에 227개의 프로젝트 4.8억 원으로 5배 가까이 급등한다. 당시 한국의 후원형 크라우드펀딩 시장의 규모가 16.1억 원에 불과했던 것을 감안하면, 텀블벅의 성장은 경쟁사 중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것이라 할 수 있다.9 지인 중심의 초대라는 다소 폐쇄적인 창작자 모집방법을 택하고 있었음에도, 2012년 중반부터는 염재승 대표와 직간접적으로 연관되어 있지 않은 창작자들에게서도 제법 많은 프로젝트 제안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규모가 늘어나면서 급증하는 운영이슈에 대응하고 서비스를 보완하기 위해 텀블벅은 창업 멤버 외에도 임시직원 3명을 추가로 고용해야 했다. 창업 1년이 채 되지 않은 때의 일이었다.

워낙 빠르게 성장하다 보니 핵심성과지표가 무엇인지, 무엇이어야 하는지도 모르면서 학교 가는 시간을 제외한 모든 시간을 사업에 쏟아부으며 일했어요.

세계적으로도 크라우드펀딩 시장의 성장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현상이었다. 2012년 당시 전 세계적으로 500개 이상의 크라우드펀딩 플랫폼이 운영되고 있었다. 시장 조사업체인 Massolution에 따르면,8) 세계의 크라우드펀딩 시장은 2012년 26억 달러에서 2013년 61억 달러로 2배를 넘는 성장을 기록했다. 2014년에는 162억 달러, 2015년에는 344억 달러로 3년 연속 두 자릿수 이상의 성장이 예상되는 이머징마켓이었다. 2011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국내 후원형 크라우드펀딩 시장에서 주요 업체는 텀블벅 외에 2013년 현재 유캔펀딩, 오마이컴퍼니, 굿펀딩, 와디즈를 꼽을 수 있는데, 2013년 3월부터 2014년 2월까지의 통계를 보면, 성공률, 프로젝트 수에서 텀블벅은 1위 또는 2위 업체로 볼 수 있는 수준이었다.9)

세련된 리뉴얼, 매출은 반토막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후원형 크라우드펀딩 시장에서의 경쟁우위를 확실히 지켜가기 위해, 텀블벅은 2012년 말부터 대대적인 리뉴얼을 실시하였다. 애초 계획은 안정적인 시스템을 만들기 위한 개발 이슈까지 포함한 포괄적인 서비스 개편이었다. 하지만 개발역량의 부족으로 인해 리뉴얼 일정이 여러 번 지연되었고, 리뉴얼 범위 역시 내부적으로 핵심요소라고 판단한 디자인으로 한정되었다.

 

2011년에 론칭했을 때 로고나 디자인의 트렌드는 톤앤매너였는데 텀블벅도 론칭할 때가 그 무렵이어서 ‘반들반들한’ 느낌의 디자인을 추구했습니다. 2013년에는 그 디자인이 촌스러워졌어요. 텀블벅의 유입군이 힙스터, 세련된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텀블벅의 디자인을 바꿔야겠다고 결정했습니다. 텀블벅의 디자인이 바뀌면 브랜드 아이덴티티가 바뀌기 때문에 이에 맞춰 전체적인 사이트 디자인의 수정까지 염두에 두고 작업했어요.

주요 변화는 카네이션 색으로의 시각적 변화였습니다. 당시에는 파격적인 색상이었지만 대형 포털과 달리 조금 불편하더라도 세련된 디자인을 추구해야 타깃층에 어필할 수 있으며, 이러한 트렌드가 정착되어 장기적으로 볼 때 좋은 선택이 될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그런데 리뉴얼 직후 시장의 반응에서 이상징후가 포착되었다. 텀블벅 생태계를 구성하는 두 개의 축인 창작자와 후원자로부터 서로 반대되는 반응이 나타났던 것이다. 일부 창작자로부터는 바뀐 디자인에 만족감을 표현하는 팬레터를 받았다. 하지만, 특별한 반응이 보이지 않았던 후원자들은 다른 반응을 나타냈다. ‘뭐라고 딱히 말하기는 어렵지만’ 리뉴얼 이후 변화한 디자인, 인터페이스가 후원자들에게는 다소 낯설다는 것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매출과 직결된 주요 지표들이 급감하기 시작했다. 결제율, 펀딩 성공률 등 주요 지표들이 뚜렷하게 하락하기 시작했다. 공교롭게도 유일한 개발자였던 소원영 공동창업자가 리뉴얼 직후 개인 사정으로 퇴사하며 개발역량에 공백이 생겼다. 단기간일 줄 알았던 매출급감은 그 후에도 6개월 동안이나 지속되었다. 텀블벅의 장점이었던 낮은 수수료(5%)는 매출이 급감한 텀블벅의 발목을 휘어잡아 유동성 위기를 악화시켰다. 리뉴얼 직전 매출의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던 웹툰 범주를 고민 끝에 포기하자, 웹툰 창작자 다수가 경쟁업체로 옮겨버리는 악재도 겹쳤다. 이 때문에 매출에 직접적인 타격을 입게 되었고, 또한 이전보다 불리한 위치에서 경쟁업체들과 새로운 경쟁 구도에 놓이게 되었다.

웹툰을 통해 어떻게 수익을 올릴지에 관한 고민이 해결되지 않은 상황이었어요. 그래서 웹툰 수익화를 실험할 수 있는 장을 텀블벅에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펀딩을 계속하다 보니 웹툰에 맞는 구독서비스를 만들지 못하면 전체 플랫폼이 산만해지는 상황이 왔어요. 개발 쪽의 지원이 되었다면 웹툰에 맞는 형태로 피봇팅을 하는 것도 가능했겠죠.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더 이상 웹툰을 하지 않겠다는 결정을 내리게 되었어요.

 


리뉴얼 직후 봉착한 유동성 위기를 돌파하기 위한 텀블벅의 과제는
성장을 통한 생존으로 명확했다. 문제는 성장의 방법이었다.

크라우드펀딩 플랫폼의 성장의 의미

사실 텀블벅 성장의 규모와 속도는 2013년 초 소셜벤처 투자사인 sopoong의 투자자미팅 단골 주제이기도 했다. 텀블벅이 설립 이후 꾸준한 성장을 기록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업계 최저 수수료와 문화예술이라는 특별한 포지션으로 인해 텀블벅의 성장곡선이 완만해지는 것은 시간문제였기 때문이다. 투자자 관점에서 리뉴얼 이후 텀블벅이 직면한 유동성의 위기는 오히려 투자자와 기업가 사이에 성장과 관련한 중요한 이슈들을 보다 솔직하게 논의할 기회이기도 했다. 

매출 대비 이익률을 개선하기 위해 업계 최저수준인 5%의 수수료를 업계 평균인 8% 수준으로 조정한다고 해도 텀블벅이 직면한 유동성 위기를 해결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한 자금이 확보된다고 기대할 수 없었다. 수수료를 올리는 동시에 매력적인 서비스 환경을 제공하지 못한다면 플랫폼을 구성하는 두 축의 하나인 창작자들에게 매력이 떨어질 위험도 있었다. 이 때문에 텀블벅뿐만이 아니라, 텀블벅의 가치를 만드는 창작자와 후원자의 효용을 반영하는 지표를 찾아야 했다.

텀블벅과 텀블벅의 시드 투자사인 sopoong는 텀블벅의 핵심성과지표(KPI)를 ‘후원금 총액’으로 보는 데 합의했다. 후원금 총액은 후원자와 창작자 간의 상호작용 정도는 물론 크라우드펀딩 업계에서의 영향력과 지위를 반영하는 가시적인 지표로 볼 수 있었다. 결국, 후원금 총액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평균 펀딩 금액을 높이거나, 프로젝트 수를 늘려 규모를 확보하는 것이 텀블벅의 성장전략의 핵심이었다.

문제는 바로 여기에서 시작되었다. 펀딩 금액과 프로젝트 수 가운데 무엇이 텀블벅의 우선 과제가 되어야 할까? 무엇에 집중해야 텀블벅이 ‘성장’수 있을까?

투자자가 제안한 성장방정식 1: 크고 넓은 그물 던지기

먼저 검토된 것은 개별 프로젝트의 규모를 키우는 성장전략이었다. 2013년까지 적게는 수십만 원, 평균 수백만 원에 이르는 소규모 프로젝트 위주로 텀블벅이 운영되었다. 목표액 이상을 달성해 후원액 규모가 억 단위를 넘긴 프로젝트가 더러 있었지만, 이러한 프로젝트는 매우 드물었다. 상대적으로 낮은 펀딩 목표액은 텀블벅 런칭 초기 프로젝트의 성공률을 높이고 그 결과 ‘텀블벅에 오면 성공한다’는 인식을 심는 데 기여했지만, 목표액 100만 원의 펀딩 프로젝트 성공으로 텀블벅이 기대할 수 있는 수수료 수익은 단 5만 원에 불과한 것도 사실이었다.

그러나 프로젝트의 규모가 억 단위를 넘어가게 된다면 수익 자체가 달라진다. 1억 원의 5%는 5백만 원으로 프로젝트당 한 명 이상의 1달 인건비를 충분히 기대할 수 있게 된다. 특히 텀블벅이 주력해 왔던 문화예술 분야, 그중에서도 영화는 평균 십수억  제작 규모로 다수의 투자자가 필요해 크라우드펀딩의 필요성도 높고, 크라우드펀딩 시도와 성공사례가 상당히 축적된 상황이었다. 영화과 출신인 염재승 대표는 영화에 대한 지식과 경험이 풍부하고 인적 네트워크를 갖추고 있기 때문에, 영화 분야에 대한 전문성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다른 크라우드펀딩에 비해 경쟁우위를 기대할 수도 있었다.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상업영화가 크라우드펀딩에 성공한 사례가 많았어요. 당시 검토했던 해외 사례에서는 영화 후원자들의 50% 이상이 다른 프로젝트에 재투자했다는 점이 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임준우, 전 sopoong 파트너)

후원액 규모가 큰 프로젝트는 명시적인 ‘매출액 성장’ 그 이상의 효과를 볼 수 있다. 화제성이 큰 대규모 프로젝트를 통해 플랫폼에 유입된 소비자는 단지 하나의 프로젝트만을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플랫폼에서의 펀딩 경험을 기반으로 또 다른 프로젝트를 밀어주는 특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플랫폼 비즈니스 특유의 ‘블록버스터 효과’다.10) 매출지표가 급감하고 있는 상황에서 유명영화감독이 참여하는 대규모 영화 펀딩 프로젝트를 기획하여 진행한다면, 문화예술 크라우드펀딩 플랫폼으로서 주목도를 높이고 유입된 후원자들이 다른 프로젝트를 지원하도록 유도함으로써 실질적인 매출지표의 성장을 기대할 수 있었다.

설립 이후 문화예술 분야에 특화되었던 사업범주(category)의 확장범위도 논의 대상이었다. 텀블벅 창업에 영감을 주었던 해외 크라우드펀딩 플랫폼 킥스타터는 이미 음악, 영화부터 디자인, 기술에 이르기까지 16개 범주의 다양한 프로젝트들을 운영하고 있었다. 킥스타터에서 프로젝트 수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범주는 음악과 영화, 예술 순서였지만, 펀딩 성공액 기준 10만 달러 이상의 프로젝트만 놓고 보면 게임, 기술, 디자인 순서로 바뀐다. 텀블벅이 성장을 지속하는 동안 기술 영역의 프로젝트는 들어오면 좋고, 안 들어와도 어쩔 수 없는 영역이었다. 하지만, 유동성 위기에 직면한 상황에서 규모와 숫자 면에서 큰 잠재력이 있는 기술 범주로의 공격적인 확장은 매력적인 대안이었다.

 

 

스타트업의 성장은 정답을 찾기는 어렵고 결국 어떤 전략을 추구하는가의 문제로 귀결됩니다. 텀블벅은 애초에 ‘우리가 하고 싶은 것을 한다’는 생각을 강하게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텀블벅에 투자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스케일업을 고수하면서 방법론에서 보수적일 수는 없습니다.프로젝트를 늘리려면 영업을 하고 문턱을 높이지 않는 게 기본입니다.(임준우, 전 sopoong 파트너)

 

창업가가 선택한 성장방정식 2: 조화롭고 조밀한 정원 가꾸기

염재승 대표는 ‘작은’ 프로젝트 모델이 ‘창작자’를 위한 크라우드펀딩을 지향하는 텀블벅의 정체성이라고 믿었다. 어쩌면 정체성은 매출 이전의 문제였다. 비록 2012년 후반부터 게임제작자들이 텀블벅 창작자로 들어오긴 했지만, TRPG 등 ‘인디’ 게임을 개발하는 소규모 게임업체들이 대부분이었다. 제작비 규모가 십수억 원대에 이르는 중견 영화 프로젝트를 운영한다는 것은 상업적 목적의 전문적인 대형영화제작사들이 플랫폼에 본격적으로 합류하는 것을 의미했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규모의 프로젝트로 채워진다는 것은 단순히 몸집이 커지는 정도의 변화를 넘어 다른 가치와 내용을 가진 텀블벅이 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단순히 규모만 커지는 것은 오히려 창작자와 후원자 관계의 강도와 빈도를 감소시킬 위험이 있다고 판단했다.

유명 감독들의 새로운 영화제작 프로젝트를 받자는 아이디어도 있었어요. 물론 그런 분들의 프로젝트가 플랫폼에 올라오면 메이저가 될 수 있겠죠. 그런데 크라우드펀딩이 돌아가는 걸 뜯어보면, 유명 감독의 이름으로 프로젝트를 올리는 것이 중요하지는 않아요. 내(후원자)가 이 창작자와 연결될 수 있다는 가능성이 크게 작동을 하거든요. 창작자가 올린 프로젝트를 내가 직접 얘기하고 후원하는 것이 중요한데, 섣부르게 유명인사를 데리고 와서 그분들의 이미지만 이용하면 후원자 입장에서 크라우드펀딩은 매력이 확 떨어져요. 그럴 거면 그냥 시장에 나와 있는 상품을 돈 주고 사고, 거기에서 효용을 얻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요? 관계를 제거한 상태에서 크라우드펀딩을 진행하는 건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트랜디한 프로젝트를 매개로 한 창작자와 후원자와의 긴밀한 관계는 창립 초기부터 텀블벅이 추구해 왔던 핵심가치이자 매력 포인트였다. 텀블벅이라는 브랜드 자체에 대한 팬덤이 창작자와 후원자 양면에서 축적되어 왔고, 다른 플랫폼에 비해 충성도가 높다는 커뮤니티적 특성은 텀블벅이 시장에 안착하고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데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트랜디한 콘텐츠에 대한 필요가 높고 반응이 빠른 페이스북, 트위터 등 SNS와 텀블벅 팬덤들의 자발적인 프로젝트 공유는 때때로 폭발적인 시너지를 일으켰다.

초여명의 ‘던전월드’는 굉장히 기억에 남는 케이스예요. 제가 원래 TRPG를 잘 몰랐거든요. 장르도, 이 정도 팬층이 있는지도 잘 몰랐죠. 초여명의 경우 원체 작업 퀄리티가 높기도 하지만, 텀블벅을 굉장히 전략적으로 잘 이용하시더라고요. 단계를 설정하고 단계에 따른 리워드를 제공하던 방식을 처음으로 초여명이 사용했어요. 300만 원 넘으면 번역서가 나올 것이다, 500만 원 넘으면 양장본이 나올 것이다 이런 식으로요. 마지막에 재밌게 흘러갔던 게, 초여명이 부부출판사잖아요. 편집장님이 ‘3,000만 원이 모이면 우리가 못 갔던 신혼여행을 갈 것이다.’ 이렇게 올리신 거예요. 재밌으라고 올리셨겠죠. 근데 그게 트위터에서 확 뜬 거예요. 우리가 이 사람들 신혼여행 보내주자고. 그때 급격하게 펀딩 금액이 올라갔어요. 하루 만에 1,000만 원 넘게요.12)

 

‘문화예술 창작자를 위한’ 플랫폼은 단순한 홍보문구가 아니었다. 염재승 대표 자신도 영화과 출신이고, 플랫폼에 축적된 창작자와 후원자들 역시 텀블벅을 문화예술 창작자를 위한 플랫폼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텀블벅의 성장방정식에는 언제나 텀블벅 안에서 새로운 기회와 취향을 발견하고 관계 맺으며 성장하는 창작자와 후원자가 함께 있었다. 그러므로 더 많은 혁신적인 창작자가 플랫폼에 들어와 후원자와 소통하며, 기성 사회와 산업이 외면했던 다양한 욕망을 자극하고 충족시켜 공동의 성취 경험을 만들어가는 ‘사용자 가치의 강도와 크기’가 성장방정식의 핵심변수로 포함되어야 했다.

염재승 대표의 고민은 텀블벅에 적합한 성장의 방향과 속도를 찾는 것이었다. 그 결과, 텀블벅의 성장전략은 일반적인 그림과 상당히 다른 모습을 가지게 되었다. 텀블벅이 유동성의 위기에 시달리던 상황 속에서도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거대한 식물원을 꿈꾸지 않고, 비슷한 종끼리 모여 서로 조화롭게 어울리는 창조의 정원을 가꾸어나갔다.

아직 스케일업할 상황이 아니라고 판단했고, 이런 서비스, 기술로는 성장을 장담할 수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까지 가지고 있었습니다. 제가 말씀드렸던 것은 ‘올해는 이것밖에 못 하지만 역성장하지 않도록 2014년에 기술적으로 잡아서 대비를 하겠습니다.’라는 것이었습니다. 투자자 입장에서 굉장히 답답했을 것 같아요.

 

방정식 풀이의 핵심은 숨겨진 변수 찾기: 활성화된 프로젝트 수  

투자자와 창업가는 기업의 성장에 있어서는 같은 방향을 바라보지만, 세부적인 방법론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을 수밖에 없다. 시장에서의 결과는 언제나 불확실성을 내포하기 때문에, 양자 사이에는 항상 갈등과 타협이 반복된다. 당시 염재승 대표의 생각은 투자자는 물론이고 시장의 일반적인 대응과도 다른 방향이었으므로 투자자와 팀원을 설득하고 자신의 판단을 밀고 나가기 위해서는 객관적인 근거가 필요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리뉴얼에 실패하고 원인을 복기하는 과정에서 플랫폼에 축적되어 왔던 데이터를 꼼꼼하게 들여다보게 된 것이 염재승 대표에게 도움이 됐다. 텀블벅은 리뉴얼 직후 소수 창작자의 긍정적 반응을 보고 낙관적인 기대를 하다가 매출 하락이라는 충격적인 결과표를 받은 바 있다. 위기를 빠르게 인지하지 못해 적기에 대응하지 못했던 경험이 각종 지표에 대한 관심과 분석으로 이어졌던 것이다.

그 전에는 사용자 행동 데이터라고 봤던 것이 결제 퍼널링 데이터, 주로 어디에서 많이 이탈하는지 정도였어요. 그 외에 수집되는 정보들을 지표화하거나 민감하게 살피지 않다 보니 디자인적 결정도 저희 취향대로 했었습니다. 매출 감소 이후 현상을 설명하고 고객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에 대한 부분을 스스로 공부해야만 했습니다. 나중에는 숫자의 관계에까지 집착하게 되어 DB, DATA, 실적을 위한 통계 등을 공부했습니다.

지난 2년간 축적되어 온 데이터를 살피던 염재승 대표에게 포착된 변수는 ‘활성화된 프로젝트 수’였다. ‘활성화된 프로젝트 수’는 텀블벅에서 일어났던 실제 거래와 가장 연관성이 크므로 텀블벅이 집중하려고 하는 ‘사용자 가치의 강도와 크기’를 보여주는 핵심적인 변수로 볼 수 있었다.

 


데이터 분석을 했을 때 저희 후원 규모, 거래량과 가장 관계가 깊은 변수는 하루 평균 몇 개의 프로젝트가 활성화되어 있는지에 관한 지표인 일 평균 활성화 프로젝트 수였어요. 소비자가 플랫폼에 들어왔을 때 보고 즐길 수 있는 콘텐츠가 몇 개인가. 그런데 그걸 관리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프로젝트는 끝이 있다 보니 시간이 지나면 사라질 수밖에 없으니까요.

텀블벅의 잠재적 후원자, 충성도 높은 고객들은 단순히 하나의 프로젝트를 후원하기 위해 텀블벅에 접속하는 것이 아니었다. 후원자들은 버릇처럼 플랫폼에서 접속해 텀블벅에 올라온 프로젝트들을 ‘콘텐츠’로 소비했다. 텀블벅의 다양한 프로젝트들은 그 자체가 뉴스처럼 SNS에서 공유할만한 흥미로운 이야깃거리였다. 콘텐츠로서의 프로젝트는 ‘규모’가 아니라 소재의 ‘매력’과 독특한 취향까지도 만족시킬 수 있는 ‘다양성’이 중요한 요소였다. 한편 창작자들은 플랫폼에 올라온 다양한 프로젝트들을 ‘표본’으로 삼아 최신 트랜드와 후원자들의 성향을 파악하고 프로젝트의 내용과 수준을 조정해 ‘될만한’ 프로젝트들을 새롭게 제안할 수 있었다. ‘활성화된 프로젝트 수’는 플랫폼에 머물 재미를 주는 요소인 한편, 플랫폼 자체의 활력을 주고 새로운 창작과 후원을 자극하는 직관적인 지표였다.

플랫폼 비즈니스의 인바운드 성장전략 레시피

그렇다면 문제는 활성화된 프로젝트 수를 어떻게 증가시킬지에 관한 것으로 되돌아온다. 규모가 큰 프로젝트를 포기한다면, 훨씬 더 ‘많은’ 소규모 프로젝트들을 유치해야 한다. 사업범주를 기존 범위 이상으로 확장하고, 프로젝트 소싱을 전문적으로 담당할 영업 인력을 확보하는 적극적인 아웃바운드 전략은 유력한 검토대상이었다. 그러나 염재승 대표는 외견상 적극적인 아웃바운드 성장전략에서 벗어나서 오히려 운영의 효율성을 높이는 인바운드 성장전략을 구상했다.

다른 부분은 고려하지 않고 그동안 놓치고 있던 창작자와 후원자 양면의 잔존율을 높이고자 했습니다. 병목을 해소하는 방식에 집중했어요.

염재승 대표는 성장이 정체된 원인을 ‘병목’으로 분석했다. 문제는 절대적인 유입량의 부족이 아니라, 플랫폼으로의 재유입과 순환을 방해하는 비효율적인 시스템이었다는 것이다. 플랫폼에 유입되고 있는 사용자들을 잔존시키면서 창작자 단에서는 프로젝트 런칭을, 후원자 단에서는 후원을 자극하는 것만으로 유동성의 위기를 극복하고 의미 있는 성장을 달성하기에 충분한 성장잠재력을 확보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지금 들어오고 있는 인바운드에서 놓치고 있는 비율이 얼마나 되고, 퍼널(서비스에 접속한 사용자가 상품을 구매하기까지의 경로를 가시화하여 전환과 이탈률을 측정하는 기능)에서 이 부분을 어떻게 바꾸면 후원까지 이어질 수 있을까를 고민했습니다. 성장에 영향을 주는 구매를 높인다는 미션은 똑같았어요.



KEY 1. 신규 프로젝트 승인 프로세스 개선

우선 성공률만 높여보자고 생각했습니다. 새로 인원을 늘려서 인당 몇 개의 프로젝트를 채우거나 소싱하는 방법도 있겠지만, 그보다 먼저 시도한 것은 지금 이렇게 프로젝트 제안이 들어오고 있는데, 여기서 놓치고 있는 것이 얼마나 되는지 보자는 것이었어요.

염재승 대표가 가장 먼저 주목한 지표는 프로젝트 승인율이었다. 리뉴얼 당시 텀블벅의 프로젝트 제안 방식은 여전히 추천제로, 플랫폼 자체에 프로젝트를 제안하고 검토할 수 있는 기능이 없었다. 텀블벅의 엄격한 가이드라인과 평가 기준은 매력적인 프로젝트 기획을 가능하게 만드는 경쟁력이기도 했지만, 40-50%의 낮은 프로젝트 승인율을 만드는 요소이기도 했다. 바꿔 말하면 10개 중 5개가 넘는 프로젝트가 자체 승인 프로세스에서 탈락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단순히 승인기준을 느슨하게 하여 프로젝트 수를 늘리는 방법을 사용하고 싶지는 않았다. 느슨한 승인기준을 통과한 질 낮은 프로젝트는 플랫폼 자체의 매력을 떨어뜨릴 것이고, 저조한 성공률이라는 결과로 연결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창작품의 참신성 외에도 매력적인 리워드 설계, 합리적인 펀딩 목표처럼 텀블벅의 기획력이 투입되지 않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제한된 인력 내에서 질과 양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했다.

결과적인 승인율을 높였다기보다는 승인에 장벽이 되는 영역들을 많이 없앴어요. 예전에 우리가 직접 말로 했기 때문에 계속 반려할 수 밖에 없는 것들이 있었거든요. 프로젝트 메이커 시스템 개편할 때, 창작자들이 좀 더 쉽게 업로드할 수 있도록 가이드를 넣고 표나 그림 크기를 미리 계산할 수 있게 해서, 프로젝트를 만들 때부터 창작자가 알아서 퀄리티 컨트롤을 하게 만들었어요. 개선된 프로세스를 통해 처음부터 어느 정도 완성도 있는 것들이 오니까 승인율이 높아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죠. 이 프로세서로 바꾼 이후 하루 평균 활성화 프로젝트 수가 120개까지 올라갔어요. 연말에는 300개 수준까지 올라갔고요.

KEY 2. 정체성에 맞는 사업범주 확장

염재승 대표는 아웃바운드를 통해 새롭게 유입될 모든 소비자들이 유사할 것이라는 가정이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텀블벅은 2012년 중반에 이미 웹툰과 인디게임이라는 새로운 범주로의 확장에 성공한 바 있다. 2012년 중반 새로운 수익모델을 고민하던 유명 웹툰작가들이 실험적인 결재모델을 가지고 창작자의 다양한 실험이 활발하게 이뤄지던 텀블벅에 합류했다. 그러나 인디게임의 수요가 웹툰과 함께 올라온 것은 예상하지 못한 결과이기도 했다.

게임 쪽에서 처음엔 텀블벅을 주목하지 않았어요. 근데 웹툰 프로젝트가 연이어 성공하면서 게임 쪽 펀딩이 많이 늘었죠.  웹툰 쪽 오디언스들이 펀딩에 많이 참여하는 걸 보고 먼저 TRPG 쪽에서 텀블벅에 오셨어요. 웹툰과 타깃층이 비슷하고, 니즈가 있을 것으로 생각하셨던 것 같아요.그래서 그래프를 보면 웹툰 그래프가 올라간 다음에 파도처럼 게임 쪽이 확 올라갔어요. 1분기 정도 차이를 두고요.

 


웹툰에서 게임으로 이어지는 사업범주 확장 경험을 통해 텀블벅은 비슷한 성향의 고객을 공유할 수
 있고 기존 후원자들과 불화를 일으키지 않을 사업범주로의 안전한 확장전략을 학습했다. 이는 리뉴얼 전과 외견상 큰 차이가 없는 방식이었지만, 대중적인 취향을 벗어나 자신만의 독특한 취향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반응하는 인디 성향의 후원자 시장은 아직 성장잠재력이 있다고 판단하였다. 팬덤이 활발한 곳에서는 창작품과 창작품을 매개로 한 창작자와 후원자와의 관계에 높은 가치를 부여했다. 트위터와 온라인 커뮤니티는 팬덤의 수요를 발견하고 발굴할 수 있는 광산과 같았다.

던전월드 프로젝트는 참여자 수도 상당히 많았어요. 그걸 통해서 많이 배웠죠. 저는 영화나 관련 예술만 보고 시작했는데 생각도 못 했던분야에 대해서도 이용자층이 많고, 펀딩을 잘 활용하시는 것을 보고 책임감 많이 느낀 계기였어요.13)

 

KEY 3. 두 번 하고 싶게 만드는 UX

결제시스템은 창업 초기부터 다른 플랫폼과 구별되는 텀블벅 사용자 경험의 핵심이었다. 후원자들은 펀딩 금액과 결제정보만 입력해 두면 펀딩 마감일에 맞춰 정해진 금액이 자동으로 빠져나갔고, 창작자에겐 수수료 정산을 마친 후원금이 펀딩이 끝난 바로 다음 날 입금되는 편리한 시스템이었다. 정확하고 빠른 정산은 이전에 프로젝트를 성공한 창작자들이 텀블벅을 다시 찾게 만드는 강력한 이유를 제공했다. 창작자단의 만족도 높은 UX 경험을 후원자단도 동일하게 느낄 수 있게 만드는 것이 핵심이었다. 기존 후원자들의 반복적인 구매가 장기적인 고객 확보라는 목표로 이어질 수 있었다.

2013년까지 텀블벅 회원들의 재후원율은 67%에 달하며, 10개 이상의 프로젝트에 후원한 회원이 전체의 5%를 차지합니다. 이는 국내의 다른 업체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성과입니다. 이러한 장기후원자의 특성이 무엇인지 분석한 결과 단기간에 복수로 후원한 후원자가 장기후원자로 연계된 것이 분명해졌습니다. 그래서 재구매율을 높이기 위해 후원자들에게 사이트 이용 대한 피드백 설문을 지속적으로 받으면서 이를 반영했습니다.

개발인력의 퇴사로 인해 불가피하게 염재승 대표가 직접 개발언어를 습득하게 된 것도 UX 개선에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염재승 대표가 직접 데이터를 분석할 수 있게 되어 사업 전반에 대한 장악력이 높아졌을 뿐 아니라, 매니저 관점에서 플랫폼 사용자들의 피드백을 깊이 있게 이해하여 적절하게 서비스를 보수할 수 있게 되었다.

사실 페이스북도 첫 번째 주자가 아니잖아요. 다만 성장해야 할 때가 왔을 때, 선발 주자들이 기술적인 준비가 안 되어 무너졌던 것에 비해 페이스북은 차근차근 성장을 이뤄냈잖아요? 그런 기술적 대비가 없이는 텀블벅도 성장할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저자 코멘터리: 텀블벅의 견고한 성공방정식

2013년 11월 리뉴얼 실패 이후 성장전략을 다시 수립하는 과정에서, 텀블벅은 성장 지표의 핵심을 프로젝트 수로 재정의했다. 창작자의 사용 경험을 텀블벅 정체성의 핵심이자 성장동력으로 인식한 것이다. 창작자 친화적인 환경을 만들기 위해 40-50%에 불과했던 승인 프로세스 개선에 주력했다. 큰 규모의 프로젝트에 욕심을 내지 않고, 규모가 작은 프로젝트들을 적극적으로 유치해 초창기부터 간직해왔던 ‘텀블벅에 오면 실패하지 않는다’는 신뢰를 지키면서, 인바운드 지표들을 개선해 활성화된 프로젝트 수를 늘리려고 했다.

텀블벅은 브랜드 정체성의 핵심이었던 문화예술 분야와 창의성을 공유하는 인접 분야로 보수적으로 확장했다. 스타트업 투자, 공익 캠페인처럼 창작의 범위를 크게 벗어난 프로젝트는 매출 규모가 아무리 크게 잡히더라도 무리해 확장하지 않았다. 창작이라는 특성과 문화예술이라는 주력 사업범주와 접점이 넓은 범주로의 확장을 통해 기존 고객을 유지하고, 인접 분야의 고객을 안전하게 확보하는 방향을 택했다. 공급자와 수요자의 상호작용을 긴밀하게 유지하고 증폭시키는, 느리지만 견고한 텀블벅만의 성장방정식을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로 2014년 하반기부터 텀블벅의 주요 성장 지표가 빠른 속도로 회복되기 시작했다. 리뉴얼 이후 매출액이 급감한 2014년 상반기의 부진한 실적에도 불구하고, 2014년 총 후원금은 2013년에 비해 14% 증가했다. 현재 텀블벅의 하루 평균 활성화된 프로젝트 수는 300개 이상으로 업계 최고다. 2015년에는 총 후원금 30억 원으로 전년도와 비교하여 2배 가까운 성장을 달성했다. 이후 총 후원금은 2016년 100억 원, 2017년에는 200억 원, 2018년 상반기에는 400억 원을 돌파했다. 2018년 현재 국내 최대의 후원형 크라우드펀딩 플랫폼은 텀블벅이다.

텀블벅은 잘 해왔어요. 리뉴얼 실수, 가파른 성장과 범위확장에 대한 주저 등이 있었지만 역설적으로는 그런 고집과 고수가 텀블벅 성장의 원인인 충성 고객을 유지하고 확장하는데 기여했다고 생각합니다. (임준우, 전 sopoong 파트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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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진

박윤중

박윤중

“새로운 경제와 사회를 상상하고 실험합니다.” 박윤중은 사회혁신 리서치랩 크래커즈의 대표로, 낡은 경제문법을 새로고침하는 소셜벤처, 임팩트투자, 조직변화에 대한 리서치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수행하고 있다.

이학종

이학종

이학종은 소셜벤처 액셀러레이터 에스오피오오엔지(SOPOONG)의 투자심사역이다. 교육소셜벤처 모티브하우스 공동창업, 서울시 사회적경제지원센터, 꿈마을 협동조합을 거치면서 섹터를 넘어 소셜벤처 창업과 지원기관, 지역공동체를 경험했다. 소셜벤처 임팩트투자와 액셀러레이팅을 하며 소셜벤처의 성장이 긍정적 임팩트를 창출할 수 있다고 믿고 있으며, 더 효과적으로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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