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기업: 가우디오랩
저자: SEP 팀 / 양소현 (이화여대), 김유겸 (포항공대)
지도교수: 김창훈 (이화여대)
소리가 있는 곳 어디든, 가우디오랩
전세계 ‘소리의 표준’을 꿈꾸는 스타트업이 있다. 음향공학 외길 인생 35년차, 오현오 대표가 이끄는 가우디오랩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중학교 시절 전축 위 LP의 선율에 빠진 오 대표는 평생 소리를 쫓는 일을 하겠다는 꿈을 꾸었고, 수년이 흐른 현재, 그는 44명의 소리광(狂)과 함께 오디오 기술의 새로운 역사를 써내려 가고 있다.
가우디오랩은 2015년에 설립돼 8년차에 접어든 AI 오디오테크 스타트업이다. 보다 나은 소리 경험을 제공하겠다는 일념으로 라우드니스(loudness: 음향정규화) SDK1를 비롯한 6개 음향 서비스(Exhibit1)를 개발 및 운영하고 있다. 회사명은 스페인의 유명 건축가 가우디와 오디오를 합친 말로, 2014년 4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MPEG2 표준회의에서 가상현실(VR)의 가능성을 엿본 뒤 지었다고 한다. 당시 최대 이슈는 페이스북의 오큘러스 인수였다. 전세계 1위 VR 업체를 인수함으로써 공감각적 소비자 경험을 제공하고, 신시장을 이끌 핵심 기술을 확보하려는 전략이었다. 한편, VR 시장의 본격적인 도래에 있어서는 현실 같은 청각적 생동감과 음향매체 간 균일성의 선제적 해결이 필수였다. 이러한 흐름을 파악한 오 대표는 누구보다 자신이 있던 소리 영역에서 1인자 돌비(Dolby)3를 제치고 VR 오디오의 표준이 되겠다고 결심한다.
Exhibit 1. 가우디오랩 서비스 제공 현황 (2022년 8월)
출처: 더브이씨 가우디오랩 대시보드
위는 2022년 8월 기준 가우디오랩이 주력하는 서비스이다. 제공하는 모든 시스템마다 단연 ‘음향’이 빠지지 않는다. 총 6개 사업 중 5개 영역은 VR/AR과 연관성이 있어, 소리를 매개로 메타버스 시장을 선도할 유망 테크 기업으로 기대 받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어엿한 글로벌 사운드테크 기업으로 도약하기까지 그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기술 하나에 승부사를 건 가우디오랩 또한 2017년 VR 산업에 몰아친 빙하기 속에서 중대한 피보팅을 감행했기 때문이다.
이 보 전진을 위한 일 보 후퇴
신사업 분야에 해당되던 VR 산업은 과도기의 기술적 한계가 해결된다면 유의미한 성장세를 보일 것임이 확실했다. 문제는 기기에 의존하는 음향의 특성상, VR 디바이스가 저조한 판매 실적을 보이자 수많은 대기업들이 사업 확장을 보류한 것이다. 이로 인해 국제적 러브콜 속에 갖은 비즈니스 미팅을 앞두었던 가우디오랩 또한 직격타를 맞게 된다. 결국 오 대표는 VR 시장 제패라는 원대한 목표를 뒤로 하고, 풍전등화의 기업을 회생시키기 위해 한국으로 돌아온다.
입국 후 가우디오랩의 돌파구는 바로 음량 정규화(loudness normalization) 영역이었다. 콘텐츠 시장이 성장하면서, TV로 송출되던 미디어가 휴대전화나 태블릿까지 확장되었기 때문이다. 더불어 각 배급사나 크리에이터 마다 각기 다른 음질의 영상을 제작하며 콘텐츠계 춘추전국시대(Exhibit 2)가 시작되자, 소비자들은 천차만별의 음향에 불편함을 느끼게 되었다. 라우드니스는 가우디오랩의 기존 목표였던 VR 시장과는 거리가 있었다. 그러나 수준 높은 자동 음향 조절 기술을 활용한다면 고객 만족도를 높일 품질 개선은 삽시간에 이룰 수 있음이 분명했다.
Exhibit 2. 콘텐츠 춘추전국시대의 시작 2017년
출처: gearpatrol.com (2022)
기업 생존의 위기를 몸소 겪은 오 대표였지만, 당장의 시장성만을 고려해 VR 표준 음향의 목표를 포기할 수 없었다. 이에 그는 다소 배짱 넘치는 결단을 내린다. 경쟁이 과열되던 콘텐츠 시장의 클라이언트사들은 대개 ‘SI(system integration, 정보시스템 통합)’을 원했다. 가우디오랩의 독자 기술을 통해 시장에서 차별적이고 독점적인 지위를 확보할 것으로 예상되었기에 당연한 입장이었다. 그러나 오 대표는 강경한 고객사에 맞서 ‘라이선스’ 형태의 계약을 제시한다. 피보팅 과정에서 잠시 미룬 자사 중심의 음향 생태계 구성을 염두에 둔 선택이었다.
사업의 생존을 위해 B2B 기술 기업으로서 발을 땅에 붙여야 할 순간도 존재했다. 시장 침체라는 잡음에 휩싸인 와중에도 계속해서 ‘VR 음향의 표준’이라는 하늘을 그린 가우디안4들의 차분한 주파수 맞추기가 다음 장에서 이어진다.
소리를 즐기는 일류(一流)들의 모임
국내외적으로 희귀한 음향공학 전문가가 무려 8명이다. 이들은 가우디오랩이 가진 탁월한 기술력의 근원으로, 소리만큼은 애플이나 구글과 같은 대기업을 능가할 역량을 지니고 있다. 연세대학교 전자공학과를 졸업해 자대에서 음향공학 학위를 취득한 소리박사 오현오 대표를 시작으로, 최근 영입된 음악정보추출(MIR)에 특화 인재, 스포티파이 출신의 최근우 이사까지 하나같이 소리를 강점으로 삼은 인력들이다. 그래서인지 가우디오랩은 R&D 위주의 팀 구성을 보인다. 가우딘의 구성 비율(Exhibit3)은 다음과 같다.
Exhibit 3. 2022년 8월 : 가우디오랩 인력 구성 비율 현황 (C-level 제외)
출처: 가우디오랩 홈페이지 HR 현황
오디오 테크 스타트업인 만큼 당연하고 적절한 구성이기도 하다. 그러나 클라이언트사와의 소통이나 전략 개발에 온전히 힘쓸 프로덕트 영역의 구성원은 35%로 전체 비율 중 비교적 적은 축에 속한다. 특히나 가우디오랩의 주력 서비스인 라우드니스 SDK가 라이선스 모델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각기 다른 기업에서 요청할 서버 아키텍처 구축 및 최적화 작업 건수와 각 결재 단계별 이해관계자 수가 막대한 수치에 이른다는 점을 유추할 수 있다.
유사한 이유로 인해, 2017년의 오현오 대표는 네이버와의 라이선스 계약을 관철시키는 과정에서 사업의 중심축을 맡던 경영팀과 이별을 겪기도 했다. SI가 아닌 라이선스 조건으로 기술을 보급했기에 결재 과정에서 거쳐야 할 이해당사자가 수없이 늘어난 배경이 있었다. 용역 형태인 SI 방식을 선택했다면 가우디오랩 내부에서 즉각적인 대응과 빠른 업무 완수가 가능했을 것이다. 시스템 개발부터 클라이언트사 서버와의 연결까지를 총체적으로 관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라이선싱은 기술에 대한 사용료를 지급받는 구조라서 고객사 입장에서는 오히려 책임자가 명확하지 않다는 한계가 있었다. 결국 기업별 서버 최적화 작업, 오류 개선, 라이선스비 결재 요청까지의 다층적 과제에 지친 사업팀은 상황 타개라는 갈림길에서 가우디오랩과 갈라서게 되었다.
이는 비단 라이선스 모델의 약점이 아니다. 오히려 B2B(Business to Business) 사업을 경영하는 모든 기업이 겪고 있을 난제이다. 광범위한 일반 유저와 직접적으로 소통하는 B2C(Business to Customer)기업과 달리, B2B 사업은 브랜드 커뮤니케이션5 측면에서 다양한 장벽이 존재한다.
기술이 먼저인가, 영업이 먼저인가?
B2B 사업에 있어 고객사와의 협력은 사업의 성패를 가르는 핵심 요소이다. 달리 말하면 B2B 산업 생태계에서 고객사와 판매사가 상호 종속성을 지닌다는 뜻이다. 클라이언트의 입장에서는 본인의 기업에 핏(fit)한 제품, 기술 혹은 서비스를 제공받기를 원할 것이며, 제공업체는 이에 적합한 해결책을 제시하여 계약 관계가 안정적으로 유지되도록 하는 형태가 이상적이다. 특히나 기술 거래에 있어서는 솔루션 도입에 앞서 각 서버 별 최적화 작업이 필수이기에, 시간과 금전적인 측면 모두 초기 거래사와 지속적인 협력 관계를 유지해야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
그렇다면 가우디오랩의 라우드니스 SDK 사례에서 상호협력을 위해 어떠한 노력이 필요할까? 우선 B2B 사업의 모객 단계 표(Exhibit4)를 통해 단계별 구매 과정을 파악해보자.
Exhibit 4. B2B사업과 B2C사업의 구매 프로세스 비교
출처: 브런치 라퓨타 (2017)
일반적으로 B2C 사업은 구매 프로세스 앞단에서 마케팅 활동이 전개된다. 이후 고객의 환경적 요인에 기반하여 구입이 이루어지고, 자발적으로 내린 평가를 반영하여 구매의 새로운 사이클이 지속된다. 반면, B2B 구매 과정은 이보다 복잡다단한 구조로 구성되어 있다. 글로벌 리서치 회사 CEB에 따르면, B2B 기업의 거래에 있어 한 건의 구매 계약 체결까지 총 5.4명의 결재가 필요하다고 한다. 각 이해관계자가 수직적인 위계질서를 따르기에 구매 필요성을 인식하더라도 즉각적인 구매로 이어지지 못한다는 일차적인 제약이 있다. 이어 인지 단계를 벗어나면 입찰 혹은 리스트업 과정을 통해 공급자로서 제공 가능한 효용을 드러내야 한다. 해당 시점에서의 관건은 ‘얼마나 드러내느냐’에 달려있다. 염두해야 할 점은 가우디오랩이 오디오 테크 스타트업이라는 점이다.
다시 말해, B2B 기업은 입찰 경쟁에서 유의미한 공급자로 인지되기 위해 회사의 기술력을 적절하게 공개해야 한다. 그러나 특허 전쟁이 일상인 기술 산업에서 고객사로 확정되지 않은 기업에게 기술 전체를 내보이는 건 위험천만한 전략이다. 실제 동아일보(2009)6에 따르면 국내 기업들의 특허나 지식재산권 분쟁 상대는 발주 기업이 2위로, 전체 소송 중 10.8%를 차지한다고 한다. 이어서 협력사도 8.2%의 수치로 꽤 잦은 소송 대상으로 꼽힌다. 이처럼 기술력과 영업의 두 가치를 두고, B2B 기업은 브랜딩에 있어 끝없는 고민과 결단의 굴레에 갇히곤 한다.
가장 ‘조용한’ 소리 표준화 기업, 가우디오랩
VR 음향 표준화 기업을 꿈꾸며, 온 세상 소리가 있는 어느 곳이든 제패하겠다는 목표를 고려하면 성장기의 B2B 시장은 가우디오랩에게 잔혹한 곳으로 느껴진다. B2B 기업의 고객은 곧 ‘기업’이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70억 이상의 자연인과 달리 법인은 그 수가 한정적이다. 특히 가우디오랩이 주력하는 음향은 비가시적인 영역이다. 기업을 상대로 경영 활동을 영위하기에, 시장 점유율을 높여 업계의 TOM(Top of Mind, 최초상기인지도)로 연상되기 전까지는 애쓴 제품과 서비스의 공로가 고객사에게 돌아가기도 한다. 기업 대상의 판매 활동에 대한 정확한 성과 측정이 어렵다는 한계도 있을 테다. 어디에나 존재하는 소리를 다루지만, 역설적이게도 소리의 성질로 인해 음향 장비나 기기를 통하지 않고는 자립적으로 존재하지 못한다는 특성을 지니는 것이다.
브랜드 커뮤니케이션의 정의를 다시 살펴보자. 이는 브랜드의 안정적인 운용을 위해 정확한 정보를 알리며 반응을 살피는 총체적인 활동으로 정의된다. 가우디오랩의 브랜딩에 있어 경영 안정, 타겟 도달, 피드백 수용 중 가장 도전적인 영역은 어느 부분일까? 사업의 안전성 확보는 가우디안의 근간인 기술력에서 충족된다. GSEP(Gaudio Source SEParation, AI 음원 분리 기술)이나 GTS(Gaudio Text Sync, AI 기반 가사 동기화 솔루션)은 VR을 넘어 메타버스까지 확장된 미래 산업에서 촉망받는 필수 기술이기 때문이다. 타겟 도달은 어떠한가. 전세계적으로 희귀한 소리꾼들이 모여 소리 하나만을 놓고 집중하기에 음향으로는 독보적인 타겟팅이 가능하다. OTT를 비롯한 다양한 매체와 콘텐츠가 파생되는 기조를 놓고 보았을 때, 음향 표준화는 곧 일상과 직결될 기술로서 다양한 기업을 타겟팅 한다는 사실을 유추할 수 있다. 결국 마지막 영역인 피드백 수용과 이를 통한 브랜드 이미지 형성이 가우디오랩 브랜드 커뮤니케이션의 도전 과제로 정의된다.
다양한 고객사의 수정 요청을 반영하며 고객 기업 전반이 겪는 문제나 니즈를 파악하는 과정은 중요하다. 피드백을 수용해 사업성을 확장할 수도 있으며, 기술력을 보완하는 과정에서 테크 브랜드로서 전문성이 강화되기도 한다. 문제는 동일 제품을 광범위한 표본 집단에 판매하는 B2C 사업과 달리, B2B 기술 기업의 공급은 규격화된 형태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각 고객사마다 상이한 플랫폼 매출과 고객 수를 가지며 서버에서 요구하는 솔루션의 결합 구조가 다른 탓이다. 따라서 사업개발 과정에서의 소통은 일률화나 표준화되기 어렵고, 고객사의 요청에 따라 대응 또한 천차만별로 이루어진다는 불가피한 특성이 존재했다. 위의 과정에서 가우디오랩은 특정 기업에게 독점성을 안겨주는 SI보다는 라이선스로 수많은 클라이언트의 활용도를 높이고, AS 요청도 제한 없이 해결해주겠다는 제안을 한다. 이는 도래할 VR/AR 시장을 선점하겠다는 목표가 있었기에 미래지향적이지만, SI 계약만큼의 책임과 노력을 요하는 다소 소모적인 선택이기도 했다.
결론적으로 가우디오랩이 브랜드를 형성하며 지향점으로 나아가는 데에 있어 효율을 떨어트리는 제약 요건이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보편성을 지닌 ‘소리’로 업계의 일인자를 꿈꾸지만, 과도기에서는 기술력을 제공하는 클라이언트사의 명성에 묶여 독자적인 주체로 인정되기 어렵다는 점. 고객 접근성의 허들을 낮추어 시장 점유율을 높이면서 TOM 기업이자 독점 솔루션으로 성장하기 위해 타겟 대상인 모든 클라이언트사의 요청사항에 적극 반응해야 한다는 점. 이로 인해 커뮤니케이션 대응 전략이 표준화되기 어렵다는 점 등이 B2B에 의존하는 현행 가우디오랩 사업 구조의 아쉬움으로 파악되었다.
지피지기면 백전불패
기술력과 영업 모두를 충족하기 위한 가우디오랩의 결단은 객관적 인지에서 비롯되었다. 지피지기면 백전불패라는 말이 있듯, 음향 솔루션 시장에서의 포지셔닝(Exhibit5)7을 면밀히 점검한 덕분에 기술 산업에서는 희귀한 데모 애플리케이션 기능을 선보일 수 있었다. 사실 오디오테크 기술은 1등이 다 먹는 시장이다. 예시로 1970년대부터 음향 시장의 명실상부한 대표 기업으로 기업 가치 20조원에 다다른 돌비가 있다. 돌비는 기술 포맷 하나로 특허를 선점하여, 현재도 매년 로열티로만 2조원 이상을 얻어 내고 있다. 따라서 가우디오랩을 포함한 여러 음향 기업들은 후발 주자로서 이미 독점된 오디오 시장에서 치열한 파이 싸움을 뚫고 입지를 넓혀야 했다.
Exhibit 5.
출처: 자료별 상이 (하단 각주로 표기)
이처럼 시장 점유율이 곧 기업 가치나 경쟁력과 직결되는 음향 기술 시장에서, 가우디오랩은 기술력에 자신감을 지닌 채 파격적인 선택을 내린다. 기존의 수주 과정은 고객사의 문의가 들어오면 적용 가능한 도메인에 자사의 솔루션을 입혀 데모 기술로 제공하는 온디맨드8 형식이었다. B2B 산업에서 고객사마다 각기 다른 제안서를 보내는 것은 너무나도 일반적인 관행이었고, 기업의 기술력을 선보이면서도 외부의 기술 침해나 유출을 막을 효과적인 방안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우디오랩은 기업의 실력과 가치를 정확히 꿰고 있었다. 국내에서는 음향 인재가 워낙 희귀해 가우디안 이상의 인적 자원을 확보한 경쟁사가 부재했을 뿐만 아니라, 시장을 선도하는 글로벌 AI 오디오 기업들조차 SDR(Signal to Distortion Ratio) 기술력에서 가우디오랩과 2-16배가량 성능 차이를 보이고 있었다. 디바이스별 표준성을 극대화하려면 가볍고 빠른 오디오 포맷이 필요하다는 사실은 저명했다. 근거 있는 믿음은 데모 애플리케이션이라는 독보적인 결단으로 이어졌다.
가우디오랩의 구매 프로세스에서 솔루션은 더 이상 고객사의 발주나 요청에 의해 구현되지 않는다. 기술 활용을 고민하는 기업이라면 누구든 웹사이트를 접속해 가우디오가 제공하는 데모 앱을 활용해, 원하는 기술을 원하는 시점에 활용할 수 있다.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기술임을 확신했고, 이를 세상에 공개하더라도 따라할 기업이 전무했기에 내릴 수 있는 선택이었다. 한편, 기술력이 관건인 B2B 스타트업계에 새로운 응대 방식을 도입하려는 시도는 시도 그 자체로 모험이었다. 일례로 오현오 대표가 데모 애플리케이션을 긍정하던 것과 달리, R&D 부서의 직원들은 개발 자원의 낭비와 기술 침해를 이유로 데모 앱 배포를 반대하기도 했다. 그러나 경영자는 문제의 단면이 아닌 구조를 파악해 냈고, 경영전략팀을 비롯한 가우디오랩 이해관계자 모두의 효율성을 높이는 결과를 이끌어냈다.
퀀텀 점프를 가르는 0.1의 디테일 찾기
오 대표는 구매 계약 체결에 있어 B2B 기업의 특수성과 가우디오랩만의 성장 전략(시장 점유율 증대)으로 인해 경영전략팀의 업무가 과중함을 인지했다. 관계 기업들 또한 가우디오랩의 사업팀이 그러하듯, B2B 시장의 고객사로서 복잡하고 다층적인 의사결정 구조를 따르고 있다는 사실도 인지했다. 마지막으로 B2C 시장과 마찬가지로, B2B 시장 또한 구매 경험에서의 차별성은 고객 경험의 개선이 전제되어야 함을 인지했다. 내부적 요인, 외부적 요인, 시장을 관통하는 특성을 일련에 꿰뚫은 오현오 대표가 데모 애플리케이션을 확신으로 밀어붙이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가우디오랩의 데모 앱은 사업팀이 미처 도달하지 못한 잠재 고객사까지도 수요를 넓히는 기반이 되었으며, 이들이개별적 응대에 시간을 소모하기보다는 경영과 기획 그 자체에 투자할 여력을 만들어주었다. 이와 더불어, 상대 업체와의 커뮤니케이션 과정에서 소모되는 시간이 유의미하게 줄어들자 클라이언트들의 의사결정 과정에도 혁신성이 불어오기 시작했다. 특히 주력 서비스 6개 모두에서 각기 다른 애플리케이션을 출시하며, B2C 시장이 따르는 고객 세분화(Exhibit6)를 실천해 도달율을 높일 수 있었다.
Exhibit 6. 기자재 B2B 기업 시그노드(Signode)의 고객세분화 기준
출처: 동아비즈니스리뷰(DBR) (2016)
같은 음향 산업이라도 고객사마다 필요로 하는 기능과 구매 결정 요인은 다르기 마련이다. 네이버와 같이 여러 영역을 포괄한 비즈니스라면, 가우디오랩의 기술력을 확장하려는 니즈로 인해 일회성이나 단기적인 구매보다는 상호 호혜적 관계를 지향할 것임을 유추할 수 있다. 반면, 휴대전화 Aris를 생산하는 베트남의 대표 기업 빈 스마트는 기기 당 이용 라이선스가 존재하기에, 서비스보다 가격을 선제 가치로 두는 거래성 고객일 확률이 높다.
고래의 등에 올라타다
각기 다른 B2B 시장의 제약 조건을 해결해 나간 가우디오랩은 최초의 비전을 향해 고래의 등에 올라탔다. 작은 물고기가 거대한 등 위에서 물살을 가르듯, 대기업 네이버와의 긴밀한 협력을 토대로 순항을 도모한 것이다. 대한민국 내 1위 검색 엔진이자 통함 플랫폼으로 일반 유저 고객을 다수 보유한 네이버는 실제 가우디오랩의 확장성을 끌어줄 주요 협력사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이미 네이버의 다양한 서비스에 활용되는 가우디오의 기술은 네이버TV, 블로그, 카페, 뉴스, 스포츠, V Live, LINE TV와 더불어 최근 오디오북 영역까지 확장되었다. 오디오북(Exhibit7)은 텍스트에 그친 읽기 경험을 청각의 영역까지 확대하여 시각적 상상과 함께 즐길 수 있는 콘텐츠이다. 여기에 가우디오의 VR360 오디오 기술이 결합된다면, 텍스트에 등장하는 등장인물의 대화 주제, 장소, 톤과 어조에 따른 생동감 넘치는 미디어 소비가 가능하다.
Exhibit 7.
출처: 서울경제 (2022)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이번 오디오북 기술 제휴가 일반 유저와의 접점을 늘리는 데에 기여할 수 있다는 측면이다. 앞서 언급된 바와 같이 B2B 기업의 공로는 대개 클라이언트사에 가려지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일반 고객과의 접점을 최대한 확대하여, 유저들이 고객사에게 직접 판매사의 제품을 요청하도록 간접 노출과 경험을 이끌어내는 전략이 중요하다. 이러한 측면에서 VR 산업을 과감히 접고, 유저 친화적 콘텐츠 생산에 주력하는 네이버와 전략적 협업을 도모한 것은 가우디오랩의 장기적 비전과 일치하는 선택이었다. 사업 위기 앞에서도 SI 계약을 제안한 네이버에게 라이선스를 강하게 관철한 바 또한 시류의 파도를 날쌔게 극복하려는 오 대표의 큰 그림이었을 것이다. 결국 2017년 VR 업계의 동결에도 불구하고, 처음부터 ‘포기’가 아닌 ‘의기’로 사업 방향성을 그려온 가우디오랩은 메타버스라는 새로운 기회를 맞이해 당시보다 높은 퀀텀 점프를 앞두고 있다.
또다른 확장 방안으로는 자체 B2C 판로 개척이 존재한다. 가우디오랩은 아산기업가리뷰(AER)의 대학생 컴퍼티션 질의응답에서 비공식적으로 음향기기로의 확장 의사를 밝힌 바가 있다. 독자적인 디바이스가 될 지, 기자재 업체와의 협력으로 탄생할지는 미지수이지만 법인을 넘어 자연인 유저 사이의 시장을 공략하며 돌비의 뒤를 매섭게 추격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소리가 있는 어디든, 가우디오랩이 존재한다. VR로 시작해 AI 오디오 영역으로 사업을 좁히기도 하였으나 ‘소리’에 대한 팀의 열망을 담아 결국은 국경을 뛰어넘을 메타버스의 표준 음향으로 나아갈 것이다. 가우디오랩의 성장기는 그들이 사랑하는 소리와 닮아 있다. 가끔은 음파가 굴절되어 예상 밖의 시장을 만나기도, 갖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메아리처럼 반사되기도 한다. 그러나 주파를 바꾸어 Hz를 찾으면 반가운 음악이 울려 퍼지듯 VR 표준화 시장을 향한 대역을 맞춰가는 가우디오의 여정 또한 경쾌한 콧노래로 이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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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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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린. (2010.12). 시그노드의 고객세분화. 동아비즈니스리뷰 그래픽DBR 2010년 12월 Issue 2. URL: https://dbr.donga.com/graphic/view/gdbr_no/1607
Andreas Silzle. (2015.2.18). Fraunhofer IBP: Vision and Technique behind the New Studios and Listening Rooms of the Fraunhofer IIS Audio Laboratory. URL: https://www.iis.fraunhofer.de/content/dam/iis/de/doc/ame/conference/AES-126-Convention_Vision_and_TechniquebehindtheNewStudiosandListeningRooms_AES7672.pdf
David Herres. (2021.5.31). TEST&MEASUREMENT New Articles. URL: https://www.testandmeasurementtips.com/audio-measurements-and-dolby-dbx-noise-reduction-faq/
Fraunhofer IIS. 2022.8.13). 오디오 및 미디어 기술. URL: https://www.iis.fraunhofer.de/ko/ff/amm.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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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mes C. and Michael A. (1999.5.7). Julier Inter Corp. Chandler. Implementation of a High-Quality Dolby* Digital Decoder Using MMX™ Technology. URL: https://smtnet.com/library/files/upload/dolby-intel.pdf
Qualcomm. (2022.8.13). WHS9420 Overview: Specification. URL: https://www.qualcomm.com/products/application/audio/mobile-audio/whs9420
주석
1. SDK(Software Development Kit): 소프트웨어 개발 키트(SDK)는 개발자를 위한 도구 모음이다. 개발자가 다른 프로그램에 특정 기능을 추가하거나 연결하여 커스텀 앱을 제작할 수 있도록 돕는 기능이 포함된다.
2. MPEG(Moving Picture Experts Group): 국제 동영상 압축 표준 전문가 그룹(MPEG)은 국제표준화 단체 중 하나로 비디오와 오디오 등 멀티미디어의 표준 개발을 담당하고 있다.
3. Dolby: 1970년대에 설립된 음향 메이저 기업. 음향 포맷 특허로 매년 2조 이상의 로열티를 받는 업계의 선두 주자이다.
4. 가우디안: 가우디오랩의 임직원을 일컫는 말.
5. 브랜드 커뮤니케이션: 브랜드를 안정적으로 운용하기 위해 브랜드의 정확한 정보를 알리고 반응을 살피는 총체적인 활동
6. 동아일보(2009), 경제면 ‘특허 소송 상대, 알고 보니 70%가 국내 기업’, URL: https://www.donga.com/news/Economy/article/all/20091116/24154215/1
7. 기업별 SDR 참조 기사: 돌비(TEST&MEASUREMENT), 퀄컴(Qualcomm.com), 프라운호퍼 (Fraunhofer IIS Lab.), 프랑스텔레콤 (AP NEWS), 화웨이 (Huawei.com)
8. 온디맨드(on-demand): 이용자의 요구에 따라 제품이나 서비스가 제공되는 구조를 뜻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