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사 없는 서비스 차별화, 테크 기업의 생존 전략 – 가우디오랩

본 사례는 미국 진출에 실패한 오현오 가우디오랩 대표가 한국에 돌아와 신규 사업에 진출하면서 추진했던 기술의 제품화, 시장 접근 전략을 살펴봄으로써 기술 기반 스타트업의 기업 간 거래(B2B) 비즈니스 모델 구축 과정을 이해하는 것이 목표다.

2015년 5월 출범한 가우디오랩은 최초 증강현실(AR)·가상현실(VR) 등 뉴미디어 시장을 겨냥한 오디오 기술로 주목받았다. 2016년 11월 콘텐츠 산업의 심장인 미국 시장에 진출해 VR 전용 오디오 플랫폼을 공개하고 ‘올해의 VR혁신기업상’ 등을 수상하며 높은 기술력과 사용자 편의성을 인정받았다.

그러나 VR 디바이스의 판매 부진으로 시장이 급랭하자 가우디오랩도 심각한 경영난에 봉착했다. 뛰어난 기술력을 갖고 있는 기술 기반 B2B 기업이지만 관련 산업의 후퇴로 발생한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했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그러나 이후 한국으로 돌아와 OTT·음악 스트리밍서비스 등 디지털 환경에 적합한 경쟁력 있는 오디오 솔루션을 내놓으며 다시 시장의 주목을 받아 회생에 성공했다. 한국의 온라인 플랫폼 환경 음향은 지상파 방송처럼 규격화된 음향 표준이 없기 때문에 영상·음악 플랫폼마다 사운드 품질과 크기가 들쑥날쑥했다. 가우디오랩은 이 문제 해결을 타깃으로 선택했고, 여러 고객사의 문제를 해소하며 성장에 탄력을 받고 있다.

가우디오랩은 신규 시장 발굴에 있어 SI 방식이 아닌, 기술 경쟁력의 가치를 유지하고 확산할 수 있는 라이선스 모델을 관철하는 한편 고객사의 의사결정 단계별 접근 전략과 체계적 마케팅 전략을 수립했다. 기술 기업은 시장의 목을 쥔 온라인 플랫폼이나 B2C 기업에 종속되기 쉽다. 그러나 가우디오랩 사례는 기술력을 핵심 역량으로 둔 B2B 기반 기업이 중장기 성장 비전을 구축함으로써 시장과 소통하는 전략적, 체계적 접근 방식을 보여준다. 학습자는 기술 기반 기업이 시장을 설계하는 방식과, 목표 달성을 위해 시장과 소통하는 방법을 알아보고 이에 대해 토론할 수 있다. 교수자는 기술 기업의 경영 전략과 마케팅 전략 등의 성공적 예시로써 가우디오랩의 사례를 활용할 수 있다.


Q1. 가우디오랩과 같은 컴포넌트 솔루션 기업은 플랫폼 기업에 자사의 개발·운영 능력을 제공하는 비즈니스 모델로 삼는 SI와, 솔루션의 경쟁력을 무기로 삼는 라이선스 모델로 접근할 수 있다. 가우디오랩의 비즈니스 캔버스를 그려보고(별첨), 이를 바탕으로 SI와 라이선스 모델을 선택할 시 각각의 유사점과 차이점, 나아가 사업에 있어서 장단점을 설명하시오.

Q2. 네이버는 최초 실무 미팅 당시 가우디오랩이 SI로 참여해줄 것을 희망했다. 그러나 가우디오랩은 심각한 경영난에도 불구하고 라이선스 모델을 선택했으며, 이를 관철시켰다. 가우디오랩이 라이선스 모델을 고집한 이유는 무엇이며, 이를 성사시킨 배경을 가우디오랩의 핵심 역량에 근거해 설명하시오. 또 기술 기반 B2B 기업이 라이선스 모델로 시장에 접근하기 위해 필요한 역량과 시장 접근 방법에 대해 토론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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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크 기업의 가설 검증과 시장 접근 전략 – 가우디오랩(GAUDIO LAB)

VR 산업의 신데렐라 탄생

2018년 1월, 인천공항에 몰아치는 칼바람은 유난히 매서웠다. 1년여 만에 한국 땅을 밟은 오현오 가우디오랩 대표는 강추위에 흠칫 놀랐다. 몸을 잔뜩 움츠렸지만, 서해의 바닷바람이 옷깃 사이사이로 스며들었다.

‘아, LA는 따뜻했는데….’

오현오 대표는 착잡한 마음을 애써 누르고, 식구들에게 전화를 걸어 한국에 무사히 도착했다고 안부를 전했다. 반가움도 잠시. 그는 짧은 통화를 마치고, 역삼동행 리무진 버스 티켓을 끊었다. 사무실에 가봐야 했다. 지난 1년간 변한 회사 모습이 너무도 궁금했고, 앞으로 난국을 어떻게 헤쳐나갈지 직원들과 논의해봐야 했다. 가우디오랩은 미국 진출 실패로 응급 수술이 필요할 정도로 상황이 나빴다. 앞으로 남은 시간은 6개월 남짓. 오현오 대표는 마음이 급했다.

오현오 대표는 2016년 11월 미국에 진출할 때만 해도 자신의 성공을 의심하지 않았다. 차세대 오디오 기술로 국내는 물론 미국·영국의 여러 가상현실(VR) 어워드에서 혁신상을 휩쓸었다.(Exhibit 1) 디즈니와 같은 세계적 콘텐츠 기업들로부터 만나자는 연락이 쇄도했다. 가우디오랩은 VR 업계의 세계적 신데렐라였다. 국내 벤처캐피탈(VC)들도 앞다퉈 투자계약서부터 들이밀었다.

Exhibit 1. VR·AR 시상식을 휩쓴 가우디오랩

출처: 벤처스퀘어, 2016

가우디오랩이 기린아 대접을 받은 것은 독보적 3D 음향 기술 덕분이다. 묵직하고 입체감 있는 사운드를 자유롭게 제작할 수 있는 작업 환경과 다양한 디바이스에 대응할 수 있는 호환성까지. 대중과 VR 간에 거리를 좁히는 기술을 가진 회사로 인정받았고, 많은 국내 대기업이 손을 내밀었다. 그러나 오현오 대표는 이를 모두 뿌리쳤다. 이미 글로벌 콘텐츠 메이저들로부터 러브콜을 받고 있어서였다. 2016년 11월. 오현오 대표는 부푼 꿈을 안고 따뜻한 미국 LA로 떠났다.

미국은 기회의 땅이었다. 미국에 도착하자마자 디즈니·드림웍스·아마존스튜디오·블리자드 같은 글로벌 지식재산권(IP) 거인들과 연달아 미팅을 가졌다. 일부 회사와는 밀도 있게 대화를 나누고 비밀유지계약(NDA)을 맺기도 했다. 오현오 대표는 VR 사운드 기술 사업화의 첫 번째 열쇠를 콘텐츠 회사들과의 파트너십 확대라고 생각했다. 음향은 영상의 부속품처럼 따라다니는 요소 기술이기 때문에 유력 영상 콘텐츠 제작사와 손을 잡으면 VR 음향 부문의 표준으로 자리잡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에 가우디오랩은 VR 오디오 소프트웨어개발키트(SDK)1인 웍스(Works)를 콘텐츠 제작사들에게 저렴한 가격에, 혹은 무료로 배포해 자사 중심의 음향 제작 생태계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오현오 대표는 기술력만큼은 자신이 있었다. 그는 LG전자 연구원이던 시절 입체 음향의 압축표준인 ‘MPEG-H 3D Audio’ 기술을 제안했고 1000건 이상의 특허에 이름을 올린 실력 있는 엔지니어였다. 국내 내로라하는 음향 기술자들도 모두 가우디오랩으로 끌어모았다. 특히 VR 산업의 헤게머니를 두고 디바이스 제조사와 콘텐츠 제작사가 줄다리기가 한창이어서, VR의 요소 기술 개발사인 가우디오랩은 반사이익을 누릴 수 있었다. 유력 콘텐츠 제작사들은 앞다퉈 오현오 대표를 만나려 했고, 모든 일은 오현오 대표의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었다.

오현오 대표는 글로벌 콘텐츠 제작사들에 가우디오랩의 VR 음향 솔루션을 퍼트려놓으면 삼성전자·오큘러스 같은 VR 디바이스 제조사나 유튜브·네이버 같은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기업들이 콘텐츠 송출을 위해 자연스럽게 가우디오랩의 음향 솔루션을 사용하게 될 것이라고 봤다. 이에 이들이 웍스로 제작된 VR 콘텐츠를 대중들에게 제공하려면 가우디오랩에 라이선스료를 지급하고 솔(Sol)이란 소프트웨어를 사용하도록 했다. 유튜브가 VR로 제작된 마블 영화를 대중에게 공급하려면 반드시 솔을 사용해야 했다. 이런 구조가 맞물려 돌아가기 시작하면 가우디오랩의 포맷은 자연스럽게 VR 생태계의 표준으로 자리잡게 된다(Exhibit 2). 오현오 대표의 전략적은 첫 단추를 잘 꿴 듯 했다.

Exhibit 2. 가우디오랩의 VR 오디오 플랫폼 구축 전략

출처: 가우디오랩, 2019

[상황판: 2017년 6월]

독립기념일, 악몽이 시작되다

“내일 미팅하기로 한 날 맞죠? 근데 왜 스티브가 회신을 안 하지?”

“미국 사람들이 비즈니스 미팅 어기는 거 보셨어요? 대표님 여유 갖고 기다려보세요.”

“그렇겠죠? 미국도 한국처럼 연휴 후유증이 있나 봐요.”

이상한 일이었다. 2017년 7월 4일 독립기념일 연휴가 지나고 만나기로 했던 비즈니스 미팅이 줄줄이 깨지기 시작했다. 바쁘다거나, 일정이 연기됐다는 말은 애교였다. 대부분은 전화를 받지 않거나, 메시지를 읽고도 답하지 않았다. 불과 보름 전만 해도 함께 맥주를 마시며 음악 얘기를 나눈 사이다. 일단 AT&T·리틀스타와는 미팅이 성사돼 안심했다. 그러나 불길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경쟁사 최고경영자(CEO)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그는 모든 비즈니스 미팅이 문제없이 진행되고 있다고 했다.

‘아무 문제 없는 건가?’

오현오 대표는 일단은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다. 그렇게 시간은 하루, 이틀 흘렀다.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주변에 정보를 물어도 아무도 아는 이 없었다. 오현오 대표는 AT&T·리틀스타와 논의를 이어갔지만, 대화가 공전하는 것 같았다.

나쁜 예감은 항상 틀리지 않는다. 디즈니가 VR 시장에서 손을 뗀다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소문의 실체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오큘러스가 4월 내놓은 VR 디바이스 판매량이 10만 대 밖에 안 되자, 디즈니가 콘텐츠 제작 계약을 파기했다는 것이다. 독립기념일 연휴 직후 이 결정을 내리자 드림웍스·HBO·넷플릭스도 속속 발을 빼기 시작했다. VR 생태계에서 큰 의사결정권이 없는 가우디오랩은 뒤늦게 직격탄을 맞았다. 주변의 샛별 같던 기업들도 속속 사업을 철수하거나 짐을 싸서 떠났다. 오현오 대표는 싹트던 VR 생태계가 붕괴되는 장면을 미국 현지에서 지켜봤다. 미국에 상륙한 지 딱 1년 만인 2017년 11월 일이다. 오현오 대표는 선택의 기로에 놓였다. 선택지는 두 가지였다. 미국에 남아 VR 사업을 어떻게든 성사시키든가, 한국으로 돌아가 새로운 길을 선택하든가.

‘어려움이 있어도 결국 우리가 성공할 수 있고 또 성공하리라는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지녀야 하며, 그와 동시에 눈앞의 현실 속에 있는 가장 냉혹한 사실들을 직시할 수 있는 규율을 가져야만 한다.’

오현오 대표는 사업을 시작했을 때부터 ‘스톡데일 패러독스’를 항상 마음 속 깊이 품고 다녔다. 단기 목표에 목매지 말고 장기 비전을 향해 현실에 맞는 최선의 선택을 하잔 것이었다. VR 시장은 언제, 어떻게 복구될지 아무도 몰랐다. AT&T·리틀스타와의 논의도 별다른 성과 없을 게 분명했다. 오현오 대표는 한국으로 돌아가서 사업을 재정비하기로 마음먹었다.

인생사 새옹지마다. 오현오 대표가 귀국 결정을 내린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서울 사무소로부터 반가운 연락이 왔다. 네이버가 네이버TV 서비스 고도화를 위해 가우디오랩과 협업을 희망한다는 내용이었다. 오현오 대표는 지체할 이유가 없었다. 그는 서둘러 인천행 비행기 티켓을 끊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롤러코스터 같았던 VR 정벌의 꿈은 잠시 접고.

[상황판: 2017년 11월]

배짱으로 관철해낸 라이선스 판매

2018년 1월 오현오 대표는 한국에 돌아오자 네이버와 논의에 착수했다. 네이버는 네이버TV 음향 부문의 기술적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했다. 당시 네이버TV는 음향 부문에 골머리를 앓았다. 여러 제작사·크리에이트들로부터 콘텐츠를 공급받아 영상을 송출하다 보니, 콘텐츠마다 음질의 편차가 컸다. 특히 콘텐츠마다 음량이 다른 ‘라우드니스(Loudness)’ 문제는 사용자를 장시간 머무르게 하는데 걸림돌이었다. 다음 영상을 탭 할 때마다 소리가 갑자기 커지거나 작아져 사용자들은 불편을 호소했다.

이런 라우드니스 문제는 TV가 디지털로 들어오며 발생한 문제다. 기존 지상파·케이블 TV는 방송 음향 규격이 있어 제작사가 이에 맞춰 영상을 제작했고, 방송 송출 단계에서도 방송사가 음향을 시시각각 조정하기 때문에 모든 채널의 음량이 일정하다. 그러나 유튜브나 네이버TV 같은 개방형 온라인 방송은 제작 음향 규격이 없고, 있더라도 사용자들에게 이를 강제로 적용하기 어려웠다. 네이버는 사용자 충성도를 높이기 위해선 이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이에 가우디오랩이 서비스 말단에서 기술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해 주길 바란 것이다.

오현오 대표에게 라우드니스 문제 해결을 위한 ‘라우드니스 노말라이제이션(음량정규화)’ 기술은 도전해 볼만한 가치가 있었다. VR 음향과는 거리가 있는 기술이지만, 자동 음향 조절 기능을 응용해 사용자들이 만족할 만한 솔루션을 개발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특히 라우드니스는 네이버만의 문제가 아닐 것을 직감했다. 네이버TV와의 협업만 잘 성사되면 다른 콘텐츠 플랫폼으로 확장해 스케일업이 가능해 보였다. 일단 이 문제를 두고 네이버와 이견을 좁혀야 했다.

2018년 1월 말 경기도 분당구 정자동 네이버 본사. 오현오 대표가 가져온 사업제안서를 읽는 최재혁(가명) 네이버TV 이사의 미간에 얕게 주름이 생겼다. 뭔가 불만이 있어 보였다. 가우디오랩을 항상 도와주려 애쓰던 최재혁 이사였기에 오현오 대표는 살짝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오현오 대표님, 잘 봤습니다. 일단 저희도 상황이 급한지라 업무는 서둘러 착수했으면 합니다. 그런데 서로 간에 다소 오해가 있는 것 같은데, 저희는 가우디오랩의 솔루션을 라이선스를 구매해서 쓰겠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네이버TV의 서비스 고도화를 위한 기술인데, 저희가 독점적으로 사용해야 하지 않겠어요. 저희는 SI(정보시스템 통합, system integration)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최재혁 이사님, 저희가 네이버와 단독 SI 계약을 맺고 나면 다른 기업에 제품을 팔 수 없습니다. 라이선스는 타협할 수 없는 비전입니다. 작은 스타트업의 어려운 상황 양해 부탁드립니다.”

“SI로 계약해야 기술개발 비용을 저희가 일부 지원할 수 있습니다. 라이선스로는 어려워요. 그리고 네이버는 음향 전문 기업이 아닙니다. 라이선스 계약을 하더라도 가우디오랩 측이 서비스 최적화 작업을 해야 해요. 라이선스로 계약하면 그 용역비를 드릴 수 없습니다.”

“저희도 첫 상용화 서비스인데, 물론 안정화 작업은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요.”

“SI로 계약하시는 게 금전적으로 더 유리할 텐데요. 그리고 저희는 네이버TV말고도 가우디오랩과 함께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요. 다시 한번 잘 생각해보세요.”

“음향 솔루션을 제공하는데 SI는 성립하기 어렵습니다. 라이선스가 아니면 저희는 네이버와 함께 일하기 어렵습니다.”

오현오 대표는 절박한 상황임에도 배짱을 튀겼다. 네이버가 라우드니스 문제 해결을 위해 손을 잡을 만한 회사는 가우디오랩 뿐이란 점을 잘 알고 있었다. 그보다도 SI로 계약을 맺어서는 돌비에 버금가는 음향 회사로 성장하기 어렵다고 생각했다. 당장 현금흐름을 만들기 위해 미래가치를 포기할 수는 없었다. 오현오 대표는 단지 음량정규화 기술로 사업을 피벗할 생각이 아니었다. 3D 사운드처럼 다양한 음향 기술을 개발해 플랫폼 서버와 클라이언트 애플리케이션 사이에서 발생하는 메타데이터를 추출, 서비스를 고도화하는 음향 전문 플랫폼 기업을 지향하고 있었다. VR 시절 준비한 플랫폼 시스템과 유사한 개념이다. 서버 아키텍처[2]를 구축하면 수많은 음향 기술을 접목해 판매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Exhibit 3) 오현오 대표는 네이버와의 줄다리기 끝에 라이선스 판매를 관철했다. 많은 디지털 플랫폼들이 시달리고 있을 음향 관련 문제를 목표 시장으로 삼았고, 자신이 세운 가설을 검증할 첫 걸음을 딛기 시작했다.

 “음량정규화 기술은 세계적으로 미개척 시장입니다. 넷플릭스처럼 제작사들에 자사 음향표준에 맞춰 제작하라고 지시할 수 있다면 편하죠. 그러나 네이버TV·유튜브 같은 개방형 플랫폼은 상황이 다르죠. 그런데도 서비스 고도화 단계에서 이 문제를 중요하게 다루지 않아요. 당장은 서비스 품질 개선보다는 다양화가 먼저니깐요. 실무자 입장에선 사용자 수에 즉각적 효과를 내기 어려운 음량정규화 기술의 필요성을 크게 느끼기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예산 확보도 마찬가지고요. 이런 내부적 저항이 가장 큰 리스크였습니다. 다만 앞으로 영상 표준화, 기술 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것은 자명한 사실이었죠. 이런 점을 진정성 있게 전달했습니다. 저희는 시장의 여건과 기술적 요구에 따라 다양한 서비스로 확대할 수 있는 고객사와의 관계 설정이 중요했습니다.”


오현오 가우디오랩 대표

Exhibit 3. 가우디오랩의 피벗 전략

출처: 가우디오랩, 2019

[상황판: 2018년 2월]

 

고객사를 잡았지만, 직원이 떠났다

가우디오랩은 자사의 개발 역량을 동원해 본격적으로 음량정규화 기술 개발에 나섰다. 라이선스 제품 형태에 걸맞게 소프트웨어 SDK 제작 환경을 만들었다. 2018년 3월 라우드니스 SDK 1.0을 출시했다. 서버 말단에서 가우디오랩의 음량정규화 기술이 작동해 소비자 불편을 해소하는 방식이었다. 네이버TV 서비스 말단과 고객 중간에 적용하려면 서버 소프트웨어에 음량정규화 기술을 덧대야 했다. 사용자 데이터를 확보하고 통행하는 데이터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별도의 서버 아키텍처도 필요했다. 이를 통해 콘텐츠→서버→소비자로 이어지는 가치 체계에서 품질 관리를 할 수 있게 됐다. 이런 식으로 제작된 라이선스 제품은 네이버TV의 품질 개선에 도움을 줄 것으로 오현오 대표는 기대했다.

문제는 사업개발 각 단계에서 많은 허들이 발생했다는 점이다. 가우디오랩이 네이버와 계약을 맺고 라이선스로 판매하더라도 네이버 내부의 다양한 이해당사자들을 새로운 고객으로 받아들이고 각 상황과 요구 조건에 맞춤 대응이 필요했다. 결제, 예산편성 등 회사 내 여러 이해관계가 엇갈릴 경우 서비스 도입이 중간에 좌초하거나 지연하는 경우도 적지 않기 때문에 한 걸음씩 신중히 움직였다.(GROUPsymmetrics, 2017) 네이버가 먼저 제안해 시작한 사업이더라도 실무적 저항은 전혀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가우디오랩은 네이버 내부의 구매·예산·개발 담당자들의 구미에 맞게 제품을 개발하고, 회사의 여러 이해당사자들을 만족시켜야 했다. 예컨대 서버 아키텍처를 넣으려면 서버 담당자와 보안관리자를 직접 설득해야 했다. 네이버 담당자들은 자신의 인사고과 평가에 반영 안 될 수도 있는 일을 도와줄 이유는 없었다. 가우디오랩으로서는 네이버TV 서비스 품질 관리자나 구매 담당, 보안 관리자들을 대상으로 각기 다른 가치를 제안해 그들의 행동을 끌어내야 했다. 용역 계약 형태인 SI였다면 겪지 않아도 될 문제에 부딪힌 것이다.

 “고객사는 책임 소재 정리를 정확히 하기 위해 SI를 요구하는 측면이 있어요. 단지 소프트웨어를 사다 쓰는 경우는 해당 소프트웨어 구매 결정을 내렸거나, 운용하는 실무자가 책임을 지는 일이 많지만, SI 형태로 운영하면 SI 회사에 책임을 넘기면 되거든요. 어느 기업이든 상부에서는 혁신적인 것을 요구하는데 비해, 실무진은 현실적 한계를 주장하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저희는 서버 아키텍처를 구축할 때 네이버 미러 서버를 만들어서 공동 워크샵을 진행하며 문제 발생 가능성을 낮췄죠.” – 오현오 가우디오랩 대표

이에 가우디오랩은 결제 단계별로, 서비스 도입 수순별로 업무 절차와 담당자의 역할을 설정해 대안을 만들어 접근하기 시작했다.(Exhibit 4) 먼저 각 영역별로 의사결정자를 정의하고, 사용자 증가량·만족도·불만과 같은 의사결정에서 필요한 점을 가우디오랩 솔루션 도입 전후 함수로 측정해 설득하기 시작했다. OTT와 같은 영상 스트리밍 서비스는 각기 다른 콘텐츠를 고객에게 판매하기 때문에 사운드의 효과를 측정하기 어려워, 성과 측정 역시 까다롭다. 이런 점은 음향과 관련한 고객 불만 감소 등의 피드백을 기초 데이터로 삼았다. 특히 실무진의 반발이 심했던 서버 아키텍처 문제도 영상 송출 과정에서 음향 데이터를 확보함으로써 서비스 품질 개선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외부 소프트웨어의 도입에 대한 위험성과 업무량 증가에 대한 반발을 중화했다. 네이버 곳곳에서 근거자료를 모아 의사결정자들의 고민을 하나 둘 해결해갔다.

Exhibit 4. 가우디오랩의 고객사 업무 전개 순서

출처: 가우디오랩, 2021

2018년 3월, 네이버와 업무가 잘 진행되는 듯했다. 개발자를 파견해 서비스 실증 작업에 나섰고, 서비스 테스트도 시작했다. 그런데 예기치 못한 곳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대표님 죄송합니다. 전 이제 그만 하려고요. 대표님은 저 없이도 잘 이겨내실 겁니다.”

사업개발을 맡고 있는 김세진(가명) 이사의 한 마디에 오현오 대표는 심장이 내려앉는 듯했다. 오현오 대표는 ‘판단을 재고해 보라’라고 말 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미안함이 가득한 김세진 이사의 표정에서 그가 마음을 굳힌 것을 읽었다. 평소 맺고 끊는 게 확실한 오현오 대표였다. 떠나는 사람 잡지 말자는 게 그의 신조였지만, 이번만큼은 상황이 달랐다. 현재 네이버와의 프로젝트를 마무리하려면 김세진 이사가 꼭 필요했다. 그간 오현오 대표와 함께 고객사 의사결정자들의 다양한 니즈를 읽고 전략을 마련해왔다. 서비스 구축이 마무리되면 계약과 관련한 모든 일을 맡아줘야 할 핵심 인력이었다.

“그만 두려는 이유가 뭐죠.” 오현오 대표는 회사 상황이 개선되는 상황에서 김세진 이사가 그만두는 이유가 궁금했다.

“제 능력으로 이 상황을 극복할 자신이 없습니다.”

김세진 이사는 그간 자신의 헌신과 노력, 불만, 생각들을 쏟아 내기 시작했다. 급기야는 왜 비즈니스 부서의 의견은 경청하지 않느냐는 원망까지 터트렸다.

오현오 대표는 반론이 입 안을 맴돌았지만 자칫 논쟁으로 번질까 속으로 삭혔다. 서로의 뜻을 확인한 이상 더 이상의 이유나 명분을 교환할 필요가 없었다. 이튿날 김세진 이사는 짐을 싸서 회사를 떠났다. 오현오 대표는 마음이 급했다. 항상 김세진 이사와 함께 팀으로 움직이는 사업개발 부서의 직원 5명도 모두 회사를 그만둘 게 자명했다. 오현오 대표는 이들과 일일이 개별 면담을 갖고, 회사에 붙잡으려 애썼다. 그러나 허사였다. 한 달도 안 돼 모두 떠나버리고 말았다. 벼랑 끝에서 기사회생한 오현오 대표는 다시 궁지에 몰리고 말았다.

[상황판: 2018년 3월]

가설의 적중과 고객 확대  

사업개발팀이 모두 그만두고 나자 네이버와의 업무에 속도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제품 실증과 개발 업무는 계속 돌아갔지만, 서비스 범위와 가격 결정 등의 논의가 지체됐고, 전체 프로젝트의 활력은 저하됐다. 현재 가우디오랩의 인력은 20명 남짓으로 모두 음향기술·IT 엔지니어였다. 연구·개발(R&D) 인력만으로는 전체 사업에 속도가 나지 않았다. 오현오 대표는 이들도 동요할까 걱정하기 시작했다. 가우디오랩의 핵심 자산은 인재였다. 삼성전자·LG전자 출신 최고의 소리장인들과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들을 어렵게 모았는데, 이들마저 떠나면 회사를 지탱하기 어려웠다. 이에 오현오 대표는 전체 세미나를 열어 회사 상황을 설명하고, 동요하는 직원들을 진정시켰다. 더불어 VR 프로젝트는 입 밖에도 꺼내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비즈니스를 피벗하려면 핸들을 확 꺾어야 하며, 가우디오랩의 피벗이 성공적이라는 생각을 심어줘야 했다. 다행히 남은 직원들 모두 오현오 대표의 말에 수긍했고, 다행히도 더 이상의 이탈자는 발생하지 않았다.

오현오 대표는 이 때부터 오퍼레이션 영역에서 직원 한두 명 그만둬도 업무에 차질이 생기지 않는 시스템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또 고객사와의 논의가 지연되지 않도록 고객사의 복잡한 의사결정 구조를 분해해 대응책을 마련해야 했다. 실제 당시 네이버는 각 결제 단계마다 의사결정자들이 서비스의 성능 테스트를 요구했기 때문에 업무처리가 지연됐다. 시간이 늘어지다 보니 네이버의 업무 우선 순위에서도 밀리기 일쑤였다. 그렇게 시간은 하릴없이 흘러갔다.

“이제 계약 준비하시죠.”

기다리던 끝에 네이버로부터 제안이 들어왔다. 내부 검토가 끝났으니, 실무적 논의를 발전시키자는 것이다. 긴 시간을 기다린 보람이 있었다. 2018년 8월 일이었다. 재무적으로 하루하루 버티기 어려웠던 오현오 대표로선 축복과도 같았다. 그러나 아직 양측이 합을 맞춰야 할 일이 산적했다. 네이버에 라우드니스 SDK 1.0의 어떤 기능까지 제공할 것이며, 서비스 제공 기간과 가격, 계약 방식 등 앞으로 논의해야 했다. 사업개발팀의 부재가 뼈 아팠지만, 오현오 대표가 직접 나서서 논의에 속도를 높여야 했다.

 “개발을 시작한 뒤부터 실제로 서비스를 런칭할 때까지 시간이 오래 걸렸어요. 음량정규화 기술 개발은 끝났는데, 네이버의 일상 업무 큐 패치가 너무 많아 저희 업무 시작이 지연된 거죠. 이 때 커뮤니케이션 비용을 줄이는 방법에 대해 많이 고민했습니다. 또 SI가 아닌 라이선스였다는 점도 업무 개시를 늦춘 측면이 있죠. 저희는 원활한 서비스 도입을 위해 라이선스 도입에 따른 컨설팅 비용을 받지 않았어요. 그런데 여기서 또 문제가 발생하더군요. 컨설팅 예산을 집행하지 않으니, 책임자가 없게 되고, 책임질 일이 없으니 업무 진척에 더욱 더 많은 시간이 걸린 거예요. 이 때부터는 라이선스 비용을 깎아주더라도 서비스 도입 속도를 촉진하는 데 초점을 맞춰서 접근했습니다. 현재는 SI를 건너뛰는 것과, 미들 타임을 줄이는 데 에너지를 쏟고 있습니다.”


오현오 가우디오랩 대표

이런 가운데 가우디오랩의 음량정규화 기술과 더불어 3D 사운드 솔루션에 관심을 보인 여러 사운드 플랫폼들이 가우디오랩에 콜드콜을 보내기 시작했다. 당시 5세대(5G) 이동통신 도입을 앞두고 콘텐츠 플랫폼들은 영상 이외에 소비자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서비스를 찾았고, 가우디오랩에 관심을 가진 것이다. 특히 국내의 많은 음향 기초 연구자들이 가우디오랩에 몸을 담고 있기도 했다. 가우디오랩에 한 발 앞서 돌비의 디지털 음향 시스템인 아트머스(ATMOS)가 퍼지기 시작했지만, 차별성이 없다는 평가를 받았다. 디지털 환경으로 접어들며 음향 솔루션의 지형도가 바뀔 것이며 많은 콘텐츠 플랫폼들이 음향 부문에서 문제를 겪을 것이란 오현오 대표의 예상은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가우디오랩으로서는 비즈니스 기회가 발생했다. 그러나 가우디오랩에게는 여러 기업들의 다양한 요구에 일일이 대응할 여력은 없었다. 사업개발 인력은 모두 회사를 떠났고, 개발인력은 네이버TV 프로젝트와 3D 사운드 개발에 여념이 없었기 때문이다.

당시 가우디오랩과 접촉한 콘텐츠 플랫폼들은 스마트EQ 기술을 필요로 했다. 이들이 가우디오랩에 접촉했던 즈음인 2018년 9월 가우디오랩은 EQ SDK 1.0을 내놨고, 이듬해 1월에는 통합 오디오 SDK 1.0을 출시했다. 문제는 제품을 잘 만들었지만, 이를 적용, 최적화하는 데 인력과 시간이 필요했다. 이런 가운데 오현오 대표는 네이버TV와의 경험을 바탕으로 기술 적용과 협상에 나서기 시작했다. 가우디오랩은 네이버와의 업무 추진에서 가장 긴 시간을 소비했던 내부 확인 절차를 줄여가며 고객사들에 접근했다. 네이버TV에 서버 아키텍처를 구축하기 시작한 점은 큰 경험이 됐다.

새로운 고객사와의 협상은 라이선스 가격 산정 노하우를 쌓는 계기가 됐다. 네이버TV의 음량정규화 기술은 개발비를 포함했고, 양측이 사전에 합의한 바가 있어 가격 결정에 큰 이견이 없었다. 이에 비해 EQ SDK는 처음 판매하는 제품이었기 때문에 양측이 납득할 수 있는 라이선스 가격을 책정해야 했다. 이에 오현오 대표는 플랫폼의 매출과 고객 수를 정의한 뒤, 가격 구조를 분해해 가우디오랩의 소프트웨어를 얼마면 쓰겠는가, 이 회사가 정말 사운드 솔루션이 필요한가를 시나리오별로 분석해, 고객사가 원하는 라이선스 가격 책정을 공략했다.

[상황판: 2019년 3월]

수확의 계절이 찾아오다

2019년 들어 가우디오랩은 잇달아 계약을 성사시키며 숨통이 트이기 시작했다. SK텔레콤 플로(FLO)와 네이버 바이브(VIBE) 서비스를 2019년 4월 출시했고, 네이버TV의 음량정규화 서비스를 6월에 내놨다. 그러나 현 상태의 문제점을 간과할 수 없었다. 첫 사업인 네이버TV의 경우 사업에 착수한 지 1년 5개월이 지나서야 서비스를 내놓을 수 있었고, 플로·바이브 역시 1년 가까이 시간이 소요됐다. 네이버TV에 음량정규화 기술이 성공적으로 안착하자 네이버는 이 기술을 블로그·카페·뉴스·스포츠·V라이브·라인TV 등 네이버가 제공하는 서비스 전반에 접목하려고 했다. NHN벅스도 마찬가지로 서비스 고도화를 위해 음량정규화 기술을 도입하겠다고 찾아왔다. 삼성전자·LG전자 등 디바이스 제조사들도 음향 솔루션 도입을 희망하며 가우디오랩을 찾았다. 이들은 대개 가우디오랩이 독점적 기술을 제공하거나, SI로 활동해줄 것을 희망했다. 콘텐츠 플랫폼 간에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가우디오랩은 회사의 잠재력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성장할 수 있는 시장 접근 전략이 필요했다. 특히 20명의 임직원 대부분 개발자로 구성된 상황이었기 때문에 더욱 더 그랬다.

콘텐츠 플랫폼들이 가우디오랩에 관심을 가진 가장 큰 이유는 서비스 차별화다. 경쟁사에 비해 더 나은 품질의 콘텐츠를 제공하고자 했다. 거꾸로 경쟁사도 같은 기술을 사용해 서비스 차별화를 누리지 못하는 점은 경계했다. 당연히 음향 솔루션을 독점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SI 형태의 계약을 요구했다. 이에 가우디오랩은 라이선스 계약만을 체결한다는 원칙을 고수했다. 되레 경쟁사들이 가우디오랩 솔루션을 이용하면 서비스 경쟁력이 뒤처질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오현오 대표가 이렇게 강하게 나설 수 있었던 것은 국내에 경쟁사가 없었기 때문이다. 돌비 같은 음향 메이저 기업이 있지만, 국내 기업들로선 서비스 운영 지원을 맡기기 어려운 해외 업체를 선택하기 어려웠다.

특히 글로벌 주요 콘텐츠 플랫폼들이 음향 관련 빅데이터를 확보해 품질을 개선하고, MR 추출 등 다양한 서비스를 시작한 점도 국내 업체들의 마음을 급하게 했다. 이런 시장 환경은 가우디오랩이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하는 데 도움을 줬다. 가우디오랩은 고객사와의 계약에서 가격 허들을 낮추고, 기술의관리·운용과 애프터서비스를 약속했다. 더불어 고객사가 우려하는 점을 SI처럼 직접 관리함으로써 과도한 SI 계약 요구를 줄이고, 시장 진입에 속도를 올릴 수 있었다. 고객 접근이 용이한 제품을 무기로 고객군을 넓혀 시장을 확대하기 시작한 것이 가우디오랩의 피벗 전략이었다.

 

[상황판: 2019년 12월]

고객 고민 줄이는 데모 애플리케이션의 가치

오현오 대표는 늘어나는 고객사의 문제를 효과적으로 해소하기 위해 자원의 재분배가 필요했다. 가우디오랩이 돈을 벌기 시작하며 인력을 새로 충원할 여유가 생겼지만, 단지 인력을 늘린다고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다. 고객사의 내부 의사결정 속도를 높이는 방법이 필요했다. 이에 고객사가 직접 서비스 품질을 체감할 수 있는 데모 애플리케이션 제작에 나섰다. 고객사는 가우디오랩 홈페이지에서 오디오 플레이어와 같은 형태의 데모 앱을 다운로드 받아 자사가 가진 콘텐츠를 넣어 음향을 자유롭게 테스트할 수 있었다. 가우디오랩이 제공하는 기술적 솔루션을 모두 체험해 볼 수 있는 형태를 지향했다.(Exhibit 5)

데모 앱의 성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먼저 고객사의 문제 의식을 끌어냈다. 최초 고객사는 서비스 품질의 의심을 품는다. 가우디오랩과의 기술을 이용한다고 얼만큼 음질 개선 효과가 있을지 확신이 없다. 그러나 데모 앱을 통해 직접 시연해 봄으로써 자사가 가진 문제점을 발견할 수 있게 됐다. 또 데모 앱은 고객사의 의사결정 시간을 눈에 띄게 단축시켰다. 대개 고객사는 결제 단계를 넘어갈 때마다 가우디오랩이 음질 테스트 버전을 제공하고 이에 대한 피드백을 받고, 피드백에 따라 음향을 조절해 다시 검토를 받아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다. 그러나 데모 앱을 통해 의사결정자가 직접 음질을 체험함으로써 빠르게 판단을 내릴 수 있게 됐다. 고객사 입장에서도 편리함이 증대된 셈이다.

Exhibit 6. 가우디오랩이 제공하는 데모 애플리케이션들

출처: 가우디오랩 홈페이지, 2021

경쟁사가 가우디오랩의 기술력을 모방할 수 있으며, 개발 역량을 불필요한 데 쏟는다는 내부 반대도 적지 않았다. 그럼에도 오현오 대표는 데모 앱 개발을 밀어 부쳤다. 음향은 체험해보지 않고는 제품의 가치를 깨달을 수 없기 때문에 고객사가 한 번 듣고 깊은 인상을 받을 수 있을 정도의 데모 앱을 개발하자는 취지였다. 또 수준 높은 데모 앱을 만듦으로써 기술력을 한 단계 높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또 기술의 신뢰성을 확보하자는 이유도 있었다. 대개 음향 기술 회사들이 고객사에 데모 음향을 보낼 때는 기술력을 총동원해 일반적인 환경에서는 느낄 수 없는 수준의 사운드를 전달한다. 시제품과 실제 제품의 품질 차이가 발생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가우디오랩은 데모 앱을 통해 시제품을 특별히 포장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할 수 있게 됐다. 앱이 고객사와의 중요한 소통 수단이 된 셈이다. 이를 통해 가우디오랩은 고객사를 확보하기 용이해졌고, 업무 속도 역시 높일 수 있게 됐다.(Exhibit 6)

Exhibit 6. 가우디오랩 제품 개발 및 고객사 확보 현황

출처: 가우디오랩, 2021

 

다시 VR을 향해 항해하다

가우디오랩에게 2019년은 변곡점의 해, 2020년은 정착의 해였다. 라이선스에 기반을 둔 시장 접근 전략이 작동하며, 고객사는 증가했고 기존 고객들도 가우디오랩 솔루션을 늘리기 시작했다. 콘텐츠 업계에서의 위상, 매출 측면에서 아직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니지만, 새로운 스테이지로 도약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이제 다시 꿈을 꿀 수 있는 여력을 확보했다. 가우디오랩에 모인 장인들이 궁극적 지향하는 목표는 VR이다. 디바이스의 거대한 전환이 일어나며 돌비에 버금가는 음향 전문 기업으로 거듭날 수 있는 기회를 엿보고 있다. 가우디오랩은 그간 Exhibit 7처럼 VR로의 길을 모색했다. 음량정규화 기술이 성공한 뒤로 ‘VR의 때가 왔는가’, 3D 사운드 기술을 판매한 뒤로 ‘VR의 때가 왔는가’, 스마트EQ 기술을 개발한 뒤 ‘VR의 때가 왔는가’를 자문자답하며 궁극적인 골인 지점을 겨냥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2020년 세계적인 펜데믹 상황은 시장 전환을 재촉했다. 게임을 중심으로 한 메타버스 생태계가 자리잡기 시작했다. 시장의 커다란 변동을 글로벌 대기업들이 놓칠 리 없다. 애플은 무선 이어폰인 에어팟에 자이로센서를 심어 위상의 변화와 움직임에 대응하는 음향 기술을 개발했고, 소니는 PS5에 VR 대응 소프트웨어와 디바이스를 출시하며 다가오는 VR 생태계의 리더십을 노리고 있다. 오큘러스 역시 다양한 기기를 출시하며 시장 상황을 엿보고 있다. 가우디오랩은 2017년 미국 시장에 진출했을 당시의 비즈니스 모델을 여전히 품에 안고 있다. VR 열차가 출발하면 언제든 올라탈 수 있도록 기술력은 한 단계 더 끌어올렸다. 가우디오랩이 꿈을 먹고 살 수 있는 것은 비즈니스 피벗 과정에서 기술 기반의 B2B 스타트업에게 필요한 가설을 세우고, 가설을 실행할 수 있는 전략을 마련하며, 이를 신중을 기하며 검증한 결과다. 그런 와중에도 미래 가치를 훼손하지 않는 비즈니스 모델과 이 가치를 실현하려는 오현오 대표의 의지가 일을 성사시켰다.

저 같은 특정 기술 전문가는 보유 기술에 갇혀 피벗이 어려운 측면이 있습니다. 제가 갑자기 백신을 개발할 수 없는 노릇이죠. 저희 같은 기업은 진입장벽은 굉장히 명확하지만, 길이 좁아지는 특징이 있습니다. 이런 경우는 포지션을 명확히 세우고 독점 시장을 만들어야 합니다. 가우디오랩이 독점한 것은 실력 있는 사람들이죠. 워낙 희귀한 분야라 실력 있는 엔지니어를 확보하는 게 생존 전략이 됐습니다. 다만 피벗을 할 때 어려웠죠. 이렇게 모인 사람들에게 분명한 모티브를 주면서도 희망고문이 되지 않도록 해야 했으니깐요. 인생을 걸 정도로 큰 결정을 한 사람들이 포기하지 않도록 만드는 게 제 역할이었고, 그에 있어 제가 대표권을 잃지 않는 게 관건이었습니다. VR은 정말 가고 싶은 길입니다. 냉혹한 현실에서 꿈을 잃지 않고, 구성원이 지치지 않게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오현오 가우디오랩 대표

 


[주석]

1. SDK(소프트웨어개발키트, Software Development Kit): 소프트웨어 개발자가 특정 운영체제용 응용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게 해주는 소스(Source)와 도구 패키지이다. 가우디오랩은 OTT 등 영상·음악 플랫폼에 제공하는 모든 종류의 음향 솔루션을 SDK 형태로 해당 플랫폼이 직접 컨트롤할 수 있도록 제작했다. 

2. 서버 아키텍처(Server architecture): 네트워크의 구성 형식을 뜻한다. 중앙 컴퓨터에 자원을 저장하며 여기에 연결되는 여러 프로그램(클라이언트)은 서버의 자원을 공유하고, 네트워크 장비를 사용하게 된다. 클라이언트 서버 및 네트워크의 자원을 사용하기 위해 클라이언트 소프트웨어를 사용하며 서버는 클라이언트를 포함한 네트워크의 기능을 수행하기 위한 서버 프로그램을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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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진

김유경

김유경

김유경은 우아한형제들의 홍보기획팀장으로, 기업 홍보전략과 대외 메시지 관리 업무를 맡고 있다. 중앙일보·중앙SUNDAY에서 IT·스타트업·거시경제 분야 기자로 활동했고, 공인회계사회·폴인 필진, 포브스아시아의 30under30 한국 선발위원 등 여러 사이드프로젝트를 수행했다. 비즈니스가 미래를 앞당긴다는 믿음으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과 초기 스타트업를 찾는 한편, 사업전략·인적자원 관리 등을 고민하고 있다. 대학생 시절 e커머스와 외식 스타트업을 창업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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