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허에서 기술사업화까지 – 어썸레이

2017년 여름, 당시 네 번째 창업을 준비하던 연쇄 창업자 김세훈 대표는 대만으로 여행을 기획하였다. 여행의 목적은 서울대학교 대학원 재료공학연구실에서 함께 탄소나노튜브(Carbon Nano Tube, CNT) 관련 연구를 수행했던 연구실 후배들을 설득하여 공동창업자로 스카우트하는 것이었다. 세 번째 창업의 마침표를 찍은 그는 CNT를 실 형태로 제작하는 데 성공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자신의 전공을 살려 다음 창업을 준비하고자 하였다. CNT는 꿈의 신소재로 불릴 정도로 잠재력이 크지만, 관련 지식과 기술을 가진 연구 인력이 귀하고 상업화의 난이도가 높았다. 그래서 대학원 연구실 동료들의 참여가 중요했다. 결과적으로 김세훈 대표는 설득에 성공하였고 동료들과 함께 어썸레이를 창업하였다. 

기술 사업화 과정에서 특허의 관리 및 활용 이슈는 기술 기반 스타트업들이 공통적으로 마주하는 고민이다. 특히 소재, 부품, 장비를 다루는 소위 ‘소·부·장’ 영역에서 활동하는 스타트업은 뛰어난 기반 기술을 가지고도 성공적으로 사업을 전개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 원천 기술이나 특허 기술을 가진 창업자들은 기술의 차별점이 시장에서의 경쟁우위로 손쉽게 연결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지만, 이는 공학 배경을 가진 사업가들이 저지르는 대표적인 실수 중 하나이다. 모든 특허가 다 사업화 가능한 특허는 아닌 것이다. 

어썸레이도 소·부·장 기업이다. 소재, 부품, 장비 중 어느 영역 하나만 성공하기도 쉽지 않다. 하지만 어썸레이는 CNT 섬유의 생산 기술을 바탕으로 소재, 부품, 장비의 모든 영역에서 사업을 영위하며 성장하고 있다. 그 배경에는 1년여에 걸친 관련분야 특허 및 기술 트렌드 분석과 같은 세심한 준비, 전략적 차원에서 명확한 목적을 갖고 작성된 특허, 그리고 기술성숙도(Technology Readiness Level, TRL)를 바탕으로 짜인 기술 사업화 로드맵이 자리하고 있다. 본 사례를 통해 학습자들은 조직의 경쟁우위에 근간이 되는 무형자산으로써 특허의 활용, 기술 사업화 판단의 근거를 제공하는 TRL, 끝으로 사업화 우선순위 및 시기를 계획하는 기술 로드맵의 핵심 내용들을 학습해 본다.


Q1. 지적재산권의 권리가 정당하게 보호받기 시작하자 무형자산인 기술에 기반을 둔 하이테크 기업들이 속속 등장하며 특허의 출원과 등록이 폭발적으로 증가하였다. 기업들이 특허를 보다 효과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여러 전략을 활용하기 시작하였고 어썸레이도 5개의 특허를 전략적으로 출원 및 등록하였다. 다음 표는 특허의 전략적 활용방식을 정리해 놓은 표이다(Exhibit 8). 사례 속 어썸레이의 초기 특허 5개가 어디에 해당하는지 논하시오.

Q2. 어썸레이의 세 가지 핵심 제품은 1) CNT 섬유 소재, 2) 엑스레이튜브, 3) 공기정화 솔루션이다. 사례에 제시된 기술성숙도(TRL) 지표를 바탕으로 제시된 표의 빈칸을 채워 각 제품의 기술 수준을 평가해보시오. (첨부의 티칭노트 참고)

Q3. 사례에 등장하는 어썸레이의 C-level 구성원 3명은 각자의 관점에 따라 소재, 부품, 장비 중 어느 곳에 회사의 제한된 자원과 역량을 투자해야 하는가에 대해 미묘한 불일치를 보인다. (첨부의 티칭노트 참고)

  1. 어썸레이의 CEO, CTO, CRO의 시각 차이를 제품전략 측면에서 논하시오. 
  2. 위 논의를 바탕으로 어썸레이의 제품기술 로드맵을 작성해보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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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목적

2017년 여름 김세훈 대표는 인천국제공항에서 친구들을 기다리고 있다. 표정은 여유로워 보이지만 마음은 초조하다. 기내용 캐리어에 가만히 기댄 채 미리 짜둔 3박 4일 일정의 대만 여행 계획을 머릿속에서 다시 떠올려 본다. 대만은 그에게 매우 익숙한 나라이다. 지난 창업회사 비트루브 때 중화권 국가들을 돌아다닐 기회가 많았는데, 그중 대만에서 시간을 보낸 적이 있다. 볼거리도 많고 음식도 맛있다. 이번 여행의 목적을 달성하기에 안성맞춤이다. 

그는 네 번째 창업을 준비 중이다. 이전의 창업 아이템과는 다르게 이번에는 탄소나노튜브(Carbon Nano Tube, CNT) 소재를 활용한 기술 창업이다. CNT는 꿈의 신소재로 불릴 정도로 잠재력이 크지만, 기술개발 속도가 더뎌 아직 대중화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관련 지식과 기술을 가진 연구 인력이 귀하고 상업화의 난이도가 높다. 

공항 출발 층 멀리서 연구실 후배들이 밝은 표정으로 손을 흔들며 걸어오고 있다. 그들과는 서울대학교 재료공학부 대학원 연구실에서 함께 CNT와 엑스레이를 밤새 연구했던 막역한 사이다. 결혼해서 가족과 함께 걸어오는 후배도 있다. 발걸음에 행복이 가득하다. 

손을 흔들며 그들에게 응답하는 김세훈 대표는 굳은 결심을 다진다. ‘그들은 물론 반드시 가족까지 모두 설득해야 한다. 그래서 돌아오는 비행기에는 모두 창업 멤버가 되는 것이다.’ 외견상으로는 친목 다짐으로 보였겠지만 사실 여행의 목적은 따로 있었다. 그들을 공동창업자로 영입하기 위함이었다. 

김세훈 대표는 얼굴에 남아있는 굳은 표정을 금세 지우고 웃음기로 채운다. 그들에게 다가가 일일이 반가움의 악수를 한다. 서로 맞잡은 손은 공동창업으로 이어지는 약속이자 어썸레이 창업으로 이어지는 또 다른 여행의 시작이었다(Exhibit 1)

 

세 번의 창업, 그리고 또다시

김세훈 대표는 과학고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에서 학사, 석사,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부모의 경제력이 다음 세대의 학력까지 영향을 미치는 오늘날의 세태에 빗대어 보면 유복한 집안에서 자란 것 같지만, 그의 어린 시절은 가난했다. 등록금이 저렴한 서울대학교 재학 시절에도 입시학원에서 일해야만 했다.

 

어썸레이를 창업하기 전까지 했으니 대략 15년 정도 한 것 같습니다. 대학 시절, 대학원 시절 모두 경제적 이유였습니다. 개인과외보다 학원 수입이 더 좋으니까요. 보통 주말에 입시 학원에서 강사 일을 많이 했는데 대학원을 졸업하고는 전업 강사로 일한 적도 있습니다. 기업에서 입학 전 등록금을 미리 납부해 주는 기업장학금을 받으며 대학원을 다녔는데요. 졸업하고 정작 해당 기업에 입사하지 않기로 결정해 받은 장학금을 다 토해내야 했습니다. 그래서 큰 금액을 갚아야 했거든요. 학원에서는 수리논술, 과학논술을 가르쳤습니다. 몇 명으로 시작한 수강생이 계속 늘어나서 그만둘 때는 오백 명, 천 명씩 받았던 것 같습니다. 제 입으로 말씀드리기 부끄럽지만 대한민국 교육 1번지 대치동에서 소위 일타 강사까지 해보고 업계를 떠났습니다. 그때 대학을 보낸 학생 중 둘이나 현재 어썸레이에서 일하고 있으니 정말 인연이란 게 있나 봅니다.

– 김세훈 어썸레이 대표이사

 

그의 첫 창업은 1998년이었다. 차량 구입 전 색상, 휠 모양 등 고객의 요구 사항을 반영해 인터넷에서 개인화된 차량 이미지를 제작해 주는 서비스였다. 오늘날에는 매우 대중화된 서비스이지만 당시에는 일본의 명문 대학인 동경대학교에서 시범적으로 구현해 세계적으로 화제가 되고 있던 터였다. 르노삼성자동차의 전신인 삼성자동차의 제안에 이를 눈여겨본 김세훈 대표는 서울대학교 학생들의 능력으로도 유사 서비스 제작이 가능하다고 판단하고 1년 만에 베타버전을 제작하여 출시했다. 그리고 삼성자동차에 해당 서비스를 제공하기로 하였으나 계약을 이틀 앞두고 삼성자동차가 부도가 나버렸다. 기대감이 가득했던 첫 창업은 허무하게 끝났다. 

두 번째 창업은 기술 컨설팅 회사였다. 첫 창업에서 돌아온 그는 대학원 연구실에 소속되어 있었다. 컴퓨터 시뮬레이션과 엑스레이로 물질을 분석하는 것이 박사과정의 주 업무였다. 이따금 지인들로부터 물질 분석 요청이 들어오면 전공을 살려 도와주곤 했는데 논문에 공저자로 들어가거나 연구비, 재료비로 받는 경우 부수입으로도 나쁘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면서 대기업으로 취업한 연구실 졸업생들로부터 문의가 많아졌다. 기업에서는 물질 분석이라는 단기 프로젝트를 위해 신규 인력을 고용하지 않았지만, 누군가는 반드시 수행해야 하는 업무였다. 수요는 있지만 공급은 없는 시장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점점 관련 요청이 많아지자 김세훈 대표는 대학원 졸업 후 사업자등록증을 내었다. 사명은 간단히 그의 성을 따서 ‘김랩’이라고 지었다.  

2009년 설립된 기술 컨설팅 회사 김랩은 오랫동안 1인 법인 사업자로 운영되었다. 일은 간간이 들어오는데, 상주인력이 필요한 정도는 아니었다. 그러나 전문지식과 업력이 필요하기에 다른 이들이 그의 역할을 쉽게 대체할 수도 없었다. 이는 장점이자 단점이기도 했다. 컨설팅업은 본질적으로 사업의 확장이 쉽지 않았다. 김랩을 운영하는 시간이 길어지며 그는 기술 컨설팅 회사의 성장에 한계를 느끼기 시작했다.

기술 컨설팅 업무를 하는 동안 인공지능의 세상이 다가오고 있음을 발견한 그는 이를 기회라고 생각해 김랩을 매각하고 인공지능 기술 관련 창업을 하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2013년 고등학교 동기 3명과 함께 교육회사 ‘비트루브1)’를 창업한다. 두 명은 인공지능 박사였고 한 명은 소프트웨어 개발자였다. 그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소프트웨어 배경지식이 적었던 김세훈 대표가 자연스럽게 비즈니스 운영과 전략, 그리고 투자 유치를 맡았다.

그는 맨땅에 헤딩하는 심정으로 투자자들을 만나 비트루브의 사업과 미래를 전했다. 투자유치는 생각보다 원활하게 진행되었다. 학원 강사로 활동하면서 습득한 화법과 발표 경험이 투자자 설득에 크게 도움을 주었다.

비트루브는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하는 수학 교육 서비스였다. 사용자는 비트루브에서 제공하는 수학 문제를 풀고 수리적 능력의 약점을 파악하여 보완할 수 있었다. 김세훈 대표는 전략적으로 국내보다는 중국 교육 시장 공략에 더 집중했다. 국내 온라인 교육 시장은 이미 포화상태여서 스타트업이 헤집고 들어갈 영역이 잘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중국 시장 공략의 전 단계로 대만에서 비트루브 서비스를 테스트해본 그는같은 한자 언어권인 대만에서 서비스가 문제없이 작동함을 확인하자 본격적으로 중국 진출을 결심했다. 

중국 대륙에서 비트루브 서비스를 구매할 고객을 찾으러 백방으로 돌아다닌 끝에 ‘신동방’이라는 중국 교육 회사로부터 파트너십을 제안받았다. 당시에 신동방은 영어 교육으로 미국 나스닥 시장에 상장까지 한 거대 기업이었는데, 마침 수학 교육 사업을 준비하던 중이라 비트루브에 큰 관심을 보였다. 기회라고 생각했지만 국내 시장을 완전히 포기하고 중국 시장에 모든 것을 던져야 하는 순간이 오자 창업자들 간 의견이 갈라졌다. 

저는 중국 진출을 바랐지만 다른 공동창업자들은 중국으로의 완전 진출을 주저하고 국내 시장을 포기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국내 교육 시장의 출판 영역으로 나가는 결정을 했는데, 이에 동의하지 않았던 저는 창업 지분을 들고 회사를 떠나게 되었습니다. 떠난 지 5년 후쯤 기회가 되어 비트루브 지분을 매각했습니다. 규모는 작지만 그래도 창업으로 처음 엑싯(exit)2)을 경험했습니다.

– 김세훈 어썸레이 대표이사

비트루브를 떠난 그는 다음 창업을 준비했다. 바로 어썸레이다.

 

학과 통폐합과 새로운 기회

2000년 서울대학교 섬유고분자공학과는 재료공학부로 통합되었다. 재료공학의 포커스는 섬유에서 더 현대적이고 수요가 많은 물질, 예컨대 바이오와 태양광과 관련 영역으로 바뀌었다. 김세훈 대표는 재료공학부의 전신 중 하나인 섬유고분자공학 전공의 마지막 세대이다. 

CNT는 섬유 형태로 생산해야 부가가치가 높다. 과거가 철기와 합금의 시대였다면, 미래는 탄소의 시대라고 할 정도로 탄소는 미래의 핵심 소재로 주목받고 있다. 어떤 형태의 합금보다 단단하지만 가볍고, 전기까지 통하는 전도체이다. 지구에서 달까지 도달하는 엘리베이터를 만들 수 있다면, 이를 가능하게 할 현존 물질은 CNT뿐이다. 하지만 CNT를 포함한 탄소 소재는 합성이 어려워 오랜 시간 가루 형태의 결과물에서 진전이 없었다. 만약 실 형태로 생산되는 탄소 소재가 있다면, 2차, 3차 형태의 제작물이 가능하기에 효용성은 무궁무진하게 높아진다. 마치 선이 면을 만들고, 면이 공간을 만들어 내듯 2차원의 선형 탄소 소재의 개발은 잠재적 부가가치가 대단히 크다(Exhibit 2).

비트루브를 떠나 새로운 창업을 구상하던 김세훈 대표는 자연스럽게 그의 전공 영역으로 눈을 돌렸다. CNT 관련 국내외 회사는 여러 개가 있었으나 모두 가루 제작 상태에서 큰 진전을 보이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대학원의 연구실 후배들이 CNT를 실 형태로 제작하는 데 성공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아직 상업화는 멀어 보였지만 분명 의미 있는 진전이었다.

국내에서 CNT의 섬유화에 도전할 역량을 가진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탄소와 섬유 제작 지식을 모두 가지고 있는 분들이 거의 없거든요. 국내 대학들의 재료 공학에서 섬유 관련 전공이 거의 사라졌습니다. 서울대학교만 하더라도 제가 입학했던 섬유고분자공학과가 재료공학부로 통합되면서 섬유 관련 과목들이 없어졌습니다. 학과 통합의 목적은 융합인데 오히려 학과의 중심이 신생 재료로만 이동된 느낌이었습니다. 결과적으로 탄소는 알아도 섬유에 대한 배경지식을 가진 사람들이 업계에 드물었고, 그런 희소성이 저희 팀의 경쟁력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연구소 소식을 듣고 ‘이거다’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 김세훈 어썸레이 대표이사

그는 CNT 섬유, 그리고 CNT 섬유로 제작한 차세대 소형 엑스레이를 창업 아이템으로 정했다. 모두 대학원에서 그가 전공하던 영역이다. 그리고 회사명을 어썸레이3)로 정했다. 

 

어썸레이 준비의 청사진은 특허맵

회사가 아직 정식으로 설립되지는 않았지만 3박 4일간의 대만 여행에서 돌아온 그들은 모두 어썸레이의 창업자가 되어 직함을 하나씩 가지게 되었다.

 

저는 정말로 대만에 여행을 가는 줄 알았습니다. 대학원 연구실 선배가 대만 맛집 투어 해준다는데 마다할 후배가 어디 있나요. 김세훈 선배는 대만에서 일하며 지낸 적도 있으니 모든 것을 맡기고 마음 편하게 비행기를 탔습니다. 그런데 저녁 술자리에서 점점 창업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우리들만이 할 수 있는 창업 아이템이 있다면서요. 그게 CNT였고, 돌아오는 비행기에서는 이미 어썸레이의 구성원이 되어 버렸습니다. 저희들끼리는 우스갯소리로 대만에서 가스라이팅4) 당했다고 합니다.

– 정근수 어썸레이 CRO(Chief Research Officer)

이렇게 창업팀이 구성되자마자 그는 곧바로 시장 조사에 돌입했다. 우선 롤모델로 삼을 만한 소부장5) 스타트업이나 경쟁사를 찾아보았다. 아쉽게도 모방할 부분이 많은 국내 소부장 스타트업은 찾기 어려웠다. 반도체, 2차전지 등 호황 산업의 수혜를 등에 업고 떠오르는 소부장 스타트업이 있기는 했지만 그들은 패스트 팔로어(fast follower)6)였다. 대부분 소재보다는 부품이나 장비를 하청받아서 대기업에 납품해 이윤을 창출하고 있었다. 어썸레이는 CNT라는 섬유 형태의 신소재를 개발하는 퍼스트 무버(first mover)7)였기에 그들을 참고하는 것이 무의미했다. 같은 이유로 경쟁사도 크게 없어 보였다.  

소부장 스타트업 중심의 시장 조사가 어려워지자 기술 조사로 방향을 전환했다. 시장 분석으로 경쟁이 적은 영역을 찾은 뒤 알맞은 기술을 개발하는 일반적인 접근법을 과감히 포기한 것이다. CNT를 활용한 엑스레이 관련 지식과 기술력에 대한 자신감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미 관련 기술과 관련된 특허들이 빼곡하게 있다면 상업화가 가능한 시장도 포화상태에 도달했을 거라 생각한 그는 공동창업자들과 함께 특허맵을 작성해 보기로 했다. CNT 및 엑스레이와 관련된 중요 특허 1,000여 개를 찾고 하나씩 빈 영역을 찾아 나가는 특허맵을 만들었다.

어썸레이에 합류하기 전 삼성종합기술원에서 일할 때 기술 특허 분석과 관련한 지식과 기술을 배울 기회가 있었습니다. 특허 분석은 보유한 기술의 정의입니다. 가능하면 하나의 문장으로 정의하는데, 이 문장을 구성하는 모든 단어들이 세부 기술, 즉 컴포넌트입니다. 이후 이 컴포넌트들이 어디에 속하는지 분류합니다. 분류의 깊이를 더해가다 보면 기술 분류표가 만들어지고, 이것이 특허맵의 근간이 됩니다. 

– 최홍수 어썸레이 CTO(Chief Technology Officer)

 

창업자들은 완성한 기술 분류표를 시장에 등록된 관련 기술 특허들과 비교하였다. 특허에는 여러 정보가 기록되어 있는데, 이들이 특별히 주목한 부분은 특허 문서에 씌어진 대표 청구항이다. 대표 청구항은 기술에 대한 주요 정보를 요약한 짧은 문장인데 이는 특허 내용의 핵심으로 소유권자의 권리와 직결되는 정보이다. 그리고 대표 청구항에서는 특허 범위가 축소되기도 하기 때문에, 특허 소송의 승부를 가르는 주요 기준이기도 하다. 

구성원들은 CNT 소재와 엑스레이에서 전자기파를 발생하는 장치인 에미터(emitter)의 요소를 세부적으로 나누고 이를 중심으로 특허 분포도를 작성했다. 그리고 이를 기반으로 파고들어 갈 만한 영역을 선정했다(Exhibit 3).

하지만 김세훈 대표와 구성원들은 특허의 빈도수 집계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CNT에 대한 관련 특허들이 적지 않게 있었지만 대부분 특허를 위한 특허나 연구 논문 실적을 위한 특허들이었다. 기술의 목적이나 사업화의 과정이 명확하지 않았기에 상업적 가치가 미미한 것들이었다.

어썸레이의 창업 아이템과 높은 연관성을 가진 특허의 유무와 숫자가 중요했다. 현미경을 들여다보듯 앞서 찾은 특허를 더욱 정교하게 살펴보았다. 그러자 어썸레이의 사업에 영향을 미칠 의미 있는 특허의 숫자와 영역이 줄어들었다. 핵심 타깃 영역도 함께 달라졌다(Exhibit 4). 이를 근거로 김세훈 대표는 비교적 경쟁 강도가 약한 CNT 정렬, 에미터 형태, 에미터 제조 영역, 그리고 관련 특허가 아직 없는 CNT 성장 영역을 우선 선점할 영역으로 결정했다.

1년의 분석 기간 동안 작성한 특허맵은 어썸레이가 업계의 퍼스트 무버라는 사실과 함께 진입예정영역 내 경쟁력을 재확인시켜 주었다. 타깃 영역을 찾았으니 이제는 해당 영역을 어썸레이의 특허로 채워야 했다. 

특허의 중요성을 잘 아는 어썸레이 창업자들은 유명 특허 법인에 큰 비용을 지불하고 창업에 필요한 주요 기술 5개의 특허 출원을 확실하게 해두었다. 어썸레이는 3개의 특허를 출원하고 2개의 특허를 등록하였는데, 모든 특허에는 명확한 목적이 있었다8)(Exhibit 5)

2018년 7월 주요 특허 기술 5개와 함께 어썸레이는 공식적으로 사업자 등록을 했다. 대만 여행에서 돌아온 지 1년 정도의 시간이 흘렀을 때였다. 여행에서 창업을 논의했던 후배들 역시 재직하고 있던 회사를 그만두고 공동창업자의 직함을 가지고 본격적으로 어썸레이에 합류했다.

 

기술 사업화에서 특허가 가지는 의미

많은 기술창업자들은 특허가 곧 제품이라고 착각한다. 보유한 특허기술이 곧바로 사업화로 이어질 것이라는 환상을 가진 창업자들이 있는데, 김세훈 대표는 이것이 교원창업과 기술창업자들의 대표적인 사업화 패착 요인이라 분석한다. 실제로 그는 박사과정 시절 연구소의 아이디어를 창업 아이템으로 응용하긴 했지만, 연구실 특허를 창업에 활용하지는 않았다.

김세훈 대표는 올해로 8년째 서울대학교에서 창업 관련 수업을 담당하고 있다. 과목명은 ‘연구자를 위한 기술사업’이다. 이 수업에서 그는 보통의 특허가 아닌 의미 있고 실용적인 특허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공과 대학에서 창업 수업을 하다 보면, 학생들이 특허 한 건을 들고 와서 창업 준비가 다 되었다고 말합니다. 기술을 만드는 것과 그것을 사업화하고 경영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부분인데 기술 배경을 가진 많은 분들이 유난히 경영 능력의 중요성에 무지합니다. 그래서 학생들한테 부탁합니다. 정말 사업화 가치가 있는 특허인지 특허맵을 그려보고 그것을 사업으로 만들 경영학적 지식과 기술을 보유했는지까지 확인하고 다시 오라고 말이죠. 

– 김세훈 어썸레이 대표이사

기술사업화에 대한 대표적인 지표로는 기술성숙도(Technology Readiness Level, TRL)9)가 있다. TRL은 성숙 단계에 따라 1단계에서 9단계까지 나누어진다. 절대적인 기준은 아니지만 대체로 순수 연구개발 단계는 1~3까지, 사업화 준비 단계가 4~6, 그리고 사업화가 바로 가능한 단계가 7~9로 평가받는다(Exhibit 6).

연구 개발을 중심으로 하는 대학에서의 결과물들은 실험단계 수준이기 때문에 TRL은 대부분 낮은 단계에 속한다. 특허 기술은 적어도 TRL 5, 6단계 이상이어야 시장에서 기업이 구매에 관심을 가진다. 그 정도가 제품 제작과 기본적인 성능 평가를 마치고 바로 시장 테스트가 가능한 수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기술 창업자들이 TRL 수준을 고려하지 않고 특허 보유만으로 창업의 성공을 호언장담하는 호기를 부린다.

결국 기술 기반 스타트업의 가치는 특허 유무가 아니라 실질적 유용성과 시장 활용 가치가 좌우한다. 그래서 창업을 꿈꾸는 기술자라면 보유 특허와 시장과의 실질적 연관성 유무를 파악하는 것이 급선무이다. 

그리고 명확한 목적과 치밀한 전략을 가지고 특허를 신청해야 한다. 예를 들어, 제품의 생산과정을 잘게 쪼개어 특허 포트폴리오를 만들어 두는 것이 바람직한 전략이다. 해당 생산 과정의 일부분에 해당하는 특허가 필요한 기업들이 빌려 쓰거나 구입하기 편하고, 만약에 회사를 매각하는 기회가 있다면 특허를 중심으로 부분 매각 협상도 가능해진다. 모두 특허에 유난한 어썸레이가 배운 교훈들이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 번 싸워도 위태로울 일이 없다고 했던가. 김세훈 대표는 시장에서 보는 특허 가치에 대한 냉정한 시선과 가치 평가 방법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2018년 주요 기술 특허 5건을 확보하고 시작한 어썸레이의 투자 유치는 일사천리였다. 창업 준비 기간 동안 1년의 시간을 들여 정성스레 만든 특허맵과 보유 특허의 경쟁력과 상업화 가능성을 일목요연하게 설명하자 투자자들은 어썸레이에 손쉽게 투자계약서를 내밀었다. 특히, 사업 초기 빠르게 등록한 CNT 섬유 제조 역량을 증명하는 설비 특허가 주효하였다. 완성 제품이 아직 나오지 않았음에도, 카카오와 서울대학교로부터 시드(seed) 투자금 그리고 공공기관의 지원금만으로 22억 원을 마련했다.

창업 초기 어썸레이의 투자 심사역이 기술 특허 전문가인 변리사 출신이었습니다. 저희가 보유한 특허의 목적과 효용성을 조목조목 물어보셨는데, 모든 질문에 충분한 대답을 드렸습니다. 저희가 보유한 모든 특허에는 목적이 있었으니까요. 까다로운 과정을 거치다 보니 심사에 오랜 시간이 걸렸는데, 저희는 모든 답을 잘 준비했으니 오히려 긍정적인 인상을 심어준 것 같습니다. 결국 투자 유치에 성공했습니다.

– 최홍수 어썸레이 CTO

이후로도 어썸레이는 특허를 중심으로 회사의 가치를 높였다. 2023년 6월 기준으로 어썸레이의 특허는 82건이다. 약 90%의 특허는 현재 어썸레이의 제품과 서비스에 실제적 가치를 부여하고 있으며, 일부는 미래 전략을 위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벤처기업은 물적, 인적 자원이 부족한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특허 등의 지식재산권 확보가 어려운 것이 현실이며, 특히 질적으로 우수한 지식재산권을 확보하는 것은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투자 당시에도 이러한 배경을 고려하여 기업실사에 임하였습니다. 하지만 어썸레이의 경우 특허권과 관련하여 지속적인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는 점이 기술기업임을 감안하더라도 탁월하다는 것을 인지할 수 있었습니다.

– 이기호 KB인베스트먼트 수석팀장

한 주 만의 피벗10), 그리고 공기정화 솔루션으로 

혁신적인 기술은 시장의 관심을 받는다. 하지만 관심이 항상 구매와 사용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CNT는 20년 전부터 미래 소재로 주목받아왔지만 상용화에는 진전이 없었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 라는 우리말처럼, 사용처와 수요가 있어야 발명은 혁신으로 거듭날 수 있다.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던 김세훈 대표는 연구실에서 다루었던 섬유 형태의 CNT 소재로 엑스레이튜브를 제작하기로 결정했다. 

어썸레이 창업자들은 CNT 섬유 소재로 제작한 엑스레이라면 수요처가 많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전구 필라멘트에 전기를 흘려보내면 가시광선과 열을 내뿜듯, 엑스레이튜브에 높은 전압을 흘려보내면 전자기파, 즉 엑스레이가 방출된다. 이때 많은 열과 에너지가 발생하기 때문에 보통의 엑스레이는 부피가 큰 냉각기가 감싸지는데, CNT 소재는 그럴 필요가 없다. CNT는 전계방출(field emission)11)이라는 독특한 현상이 구현되는 이상적인 소재였고, 낮은 에너지만을 필요로 하며 발열이 적으므로 엑스레이의 소형화가 가능하다. 다른 추가물질 없이 섬유 형태 전극을 만들 수 있다면 디지털 구동이 가능한 소형 엑스레이 제작에 아주 적합하다. 2019년 1월 그렇게 어썸레이의 첫 시제품이 출시되었다(Exhibit 7)

창업자들은 머리를 맞대고 소형 엑스레이 활용 가능성이 높은 산업들을 찾아 비교 대조해 보았다(Exhibit 8). 엑스레이는 전자와 반응하는데 이를 활용하면 입자에 정전기를 부여할 수 있고, 이는 존재하는 정전기를 제거할 수 있는 연쇄적 효과가 있다. 이런 특징을 고려해 잠재적 고객사가 될 만한 산업군을 찾아보았다. 다면적 평가를 통해 가장 높은 점수를 얻은 것은 선박회사의 평형수였다. 평형수는 선박이 좌우로 흔들리지 않게 내부에서 균형을 잡아주는 물인데, 엑스레이는 평형수의 살균에 이용될 수 있었다.

하지만 선박회사와의 파트너십 체결은 쉬운 문제가 아니었다. 기업 간의 협업에는 상호 이득의 관계가 있어야 하는데 어썸레이가 선박회사에 즉각적으로 제공할 가치가 작았다. 기존의 기술에 비해 월등한 성능이 보장되지도 않았고 협업을 연결해줄 인적 네트워크도 없었다. 수요처 분석에서 평균적으로 가장 높은 점수를 얻었지만, 실현 가능성이 너무 낮았다. 

어썸레이는 수요군의 다음 우선순위인 반도체 제조 시장을 살펴보았다.

도체 제작 공정에 중요한 과정 중의 하나가 정전기 제거인데 거기서 엑스레이가 필요합니다. 반도체 회사들은 일반적으로 방사선으로 분류되는 고전압 엑스레이를 사용하고 있었는데, 어썸레이의 소형 엑스레이가 들어가면 공정에서 얻는 이득이 많았습니다. 소형이니까 공간도 덜 차지하고, 무엇보다 저전력 엑스레이라 총 전기 사용량이 감소해 비용 절감이 상당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방사선발생장치에서 제외되어 관리가 쉬워지는 장점도 있고요. 

– 김세훈 어썸레이 대표이사

당시 반도체 산업은 전례 없는 호황을 누리고 있었기에, 반도체 회사와의 파트너십은 순조로울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대기업들과 스타트업의 전략적 협업은 쉽지 않았다. 그들은 효과를 입증할 만한 결과값을 요구했는데 이제 막 시제품을 출시한 어썸레이는 아직 확보하지 못한 데이터였다. 그렇다고 대기업과의 협업만을 하염없이 바라보면서 시제품 효용성 입증 기간에 필요한 1년 정도의 시간을 흘려보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다른 선택지인 의료기기나 신선식품 시장은 시장 규모는 제외하고는 전체적으로 매력이 크게 없는 시장이었다. 또 다른 대안이 필요했다.

창업자들은 머리를 맞대고 다시 새로운 고객군 분석에 들어갔다. 고민의 깊이만큼 바닥에 버려지는 담배꽁초도 늘어나고 있었다. 누군가가 흘려보낸 담배 연기를 보던 김세훈 대표는 시간이 멈춘 듯 순간적으로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엑스레이를 담배 연기에 조사하면, 공기 질에 변화를 줄 수 있을 것이다’. 

무거웠던 분위기의 사무실이 갑자기 분주해졌다. 담배를 피우던 사람들 모두 담배를 꺼내기 시작했다. 금속판을 사이에 두고 한쪽에서는 담배 연기를 흘려보내고 다른 쪽에서는 엑스레이를 쏘았다. 흘러가는 담배 연기를 잡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담배 연기는 엑스레이와 부딪혀 정전기가 발생해 금속판으로 움직였다. 마치 정전기 물체에 머리카락이 달라붙듯 연기가 잡혔다.

‘만약 담배 연기가 미세먼지라면…’이라는 최홍수 CTO의 발언에 김세훈 대표는 속으로 유레카를 외쳤다. 소형 엑스레이를 부착한 공기정화장치에 공기를 통과시키면 미세먼지를 포함한 오염물질 제거가 가능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당시 한반도는 중국발 미세먼지 때문에 공기정화 시장이 급속하게 커지고 있었는데, 소형 엑스레이 기기의 경쟁력을 보여줄 신시장을 우연히 찾은 것이었다. 

모두가 공기정화 시장으로의 도전에 찬성하였고, 몇 번의 간단한 실험을 거친 피벗 과정에는 한 주의 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공기정화 아이디어를 가지고 공기청정기 시제품을 빠르게 만들기는 했는데, 사용 고객이 없어 난감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코트라(KOTRA) 본사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공기청정기를 사용해보고 싶다고요. 미디어에 짧게 소개된 어썸레이 공기정화 솔루션 시제품 기사를 보고 먼저 연락을 주신 것입니다. 고민 없이 당장 달려가서 만났습니다. 구매 수량은 한 개뿐이고 까다로운 요구 조건이 있기는 했지만 그래도 바로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어썸레이가 만든 공기청정기의 성능을 증명할 수 있는 기회였으니까요.

– 김세훈 어썸레이 대표이사

 

코트라의 까다로운 요구 조건은 짧은 시공 기간이었다. 공기정화 솔루션 설치에 단 두 달만의 시간을 주었다. 천금 같은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검증 시간이 부족했지만 무조건 시제품을 완제품으로 만들어야 했다. 구성원들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시공에 매달린 결과 2019년 12월 마침내 어썸레이의 첫 번째 공기정화 솔루션 ‘에어썸(airxome)’이 코트라 본사 건물 9층에 설치되었다(Exhibit 9). 창업 후 첫 매출이었다.

 

에어썸이 설치된 코트라 본사는 어썸레이에 이상적인 테스트 베드였다. 코트라 본사 빌딩은 층별 구조가 동일했기에 에어썸의 효과를 실험할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이었고, 에어썸이 설치된 9층과 다른 층에서 공기 질의 확연한 차이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이로써 에어썸의 효과는 충분히 입증되었다. 

어썸레이는 본격적으로 에어솔루션 회사로 정체성을 잡아가고 있었다. 그러던 중 2020년 초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COVID-19)가 전 세계를 휩쓰는 사건이 발생한다. 세계 경제는 전례 없는 위기에 직면했지만, 어썸레이에게는 기회의 시간이었다. 엑스레이가 장착된 에어썸은 미세먼지 제거뿐만 아니라 세균, 바이러스의 저감에도 큰 효과를 보였기 때문이다.

에어썸은 다른 공기정화 방법보다 유리한 점이 많았다. 일반적인 공기 필터는 주기적으로 교체가 필요하고, 사용한 필터는 처리가 어려운 폐기물이다. 반면 탄소 소재 엑스레이 방식의 공기정화 기기는 수명이 거의 영구적이기 때문에 총체적으로 친환경에 기여할 수 있다. 그리고 많은 인력이 투입되는 방역과 비교하면 큰 비용 절감 효과도 있었다(Exhibit 10).

제품은 경쟁적 우위를 보유하고 있었고, 시장 환경도 더할 나위 없이 호의적이었다. 2020년 5월 어썸레이는 60억의 추가 투자금을 받았다. 김세훈 대표와 어썸레이는 팬데믹 사태 이후 친환경 산업에 호의적인 시장 환경을 적극 활용했다. 친환경 기업으로 정체성을 강화하고 시장에서의 존재감을 확장하기 위해 정부의 그린뉴딜13) 사업에 지원했다. 2020년 10월 어썸레이는 환경부 선정 1호 그린뉴딜 유망기업으로 선정되어 30억의 사업 지원금을 받았다. 함께 선정된 30개 기업 중 3년 미만 기업으로는 유일했다.

 

소재, 부품, 장비. 무엇이 중한가?

어썸레이는 에어썸으로 에어솔루션 산업에 혁신점을 제시했다. 핵심 부품인 저전력 소형 엑스레이 덕분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CNT 섬유 소재 생산 기술을 보유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어썸레이는 CNT라는 소재로 시작한 스타트업인데, 부품과 장비까지 포괄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도 제대로 하기 힘든데 현재는 소부장의 모든 영역을 껴안고 있네요. 에어썸은 소재나 부품에서 즉각적인 매출 창출이 어려워 CNT의 상용화 가능성을 시장에서 증명하기 위해 시작한 것 인데, 아이러니하게도 결과물인 공기정화 솔루션이 회사의 메인이 된 상황입니다. 팔리는 제품과 매출이 있는 덕분에 후속 투자는 잘 받았지만 빠르게 달려오고 돌아보니 주객이 전도된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 김세훈 어썸레이 대표이사

공기정화 솔루션은 어썸레이의 효자 상품이다. 현재 회사의 확실한 캐시카우(cash cow)14)이기 때문에 향후 몇 년간은 어썸레이의 주요 매출원일 것이다. 상가형 건물에 주로 시공되었던 에어썸 공기정화 솔루션은 소형화 및 규격화되어 주거용으로도 공급될 예정이다. COVID-19 사태로 공기 질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며 공기정화 시장은 성장 중이다. 더 노력하면 여러 연관 산업에서도 가시적인 선점 효과가 기대된다.

그러나 CNT 소재 연구팀을 이끄는 정근수 CRO는 소재 개발에 대한 집중을 강조한다. CNT가 당장 매출을 발생시키기는 힘들지만 회사의 미래 가치는 소재 개발 능력이다. 초기 투자자들 역시 소재 개발 가능성을 보고 투자계약서에 사인했으며, 소재의 미래 부가가치는 장비의 그것에 비할 바가 아니라고 여러 번 강조했다.

에어썸 공기정화 솔루션에 가려져 있지만 CNT 소재는 어썸레이의 정체성이자 시작이었고, 기저 기반 기술이기에 어썸레이의 미래이기도 합니다. 창업을 준비하며 그려 나간 특허맵 역시 CNT 중심이었어요. 이제는 탄소 소재 연구팀도 응용처를 바라보고 가치 창출을 적극적으로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정근수 어썸레이 CRO

현재 어썸레이 총 구성원의 약 1/4 정도는 CNT 연구개발팀에 소속되어 있다. CNT의 경쟁력은 생산력과 물성이다. 국내 업체 수십 개를 포함한 세계적으로 많은 회사가 CNT 생산을 하지만 대부분 가루 형태이다. 섬유 형태로 뽑아내는 것이 경쟁력인데, 그런 업체는 글로벌 시장에서 어썸레이를 포함해 손에 꼽을 정도이다. 

그리고 균일한 물성을 유지하는 기술력을 가진 회사 역시 소수이다. 어썸레이는 균일한 물성의 CNT 섬유를 생산할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이제는 소재도 시장에 나가 적극적으로 응용처를 물색하고 이야기를 들어야 할 필요가 있다. 응용처에 따라 요구되는 물성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소재 개발도 광범위한 응용처가 아니라 구체적인 수요처를 가정하고 미래 방향을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 

김세훈 CEO와 정근수 CRO의 의견 뒤에, 최홍수 CTO도 자신의 의견을 공유한다. 최홍수 CTO는 그들의 의견에 부분적으로 동의할 뿐이다. 어썸레이의 현재 캐시카우가 공기정화 솔루션인 것도 맞고 어썸레이의 궁극적 미래 가치는 CNT의 소재에 달려 있다고는 하지만, 현재는 부품인 엑스레이튜브가 시장에서 가장 매력적이라는 주장이다.

소재는 아직 기술적 검증이 끝나지 않은 부분입니다. 섬유 형태의 CNT는 기술적 한계로 여전히 전 세계적으로도 생산량이 부족하고 가격이 대단히 비쌉니다. 아무리 좋은 소재여도 가격이 비싸면 시장의 수요는 제한적입니다. 이런 기술적 한계가 빠르게 해소될 신호가 보이지는 않고요. 그리고 장비 사업은 가성비가 높지 않은 영역입니다. 공기정화 솔루션이 인기인 것은 맞지만 상업용 장비는 건물 공간에 따라 맞추어 개별 시공을 해야 합니다. 당연히 부가가치가 높을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가성비도 좋고 수요처가 많은 제품을 새로운 캐시카우로 만들어야 하는데, 부품 영역이 제격입니다. CNT 소재 엑스레이 기기의 경쟁력은 이미 입증되었고 여러 상품에 모듈 형태로 붙일 수 있어 호환성이 높으니까요. 소품종 대량 생산으로 여러 시장에서 수요처 확보가 가능합니다.

– 최홍수 어썸레이 CTO

탄소 소재로 만든 엑스레이튜브는 저전력과 소형이라는 강점에 더해 기술적 검증까지 완료된 상황이다. 부품이기에 고객의 요구사항과 수요를 쉽게 맞출 수도 있다. 이런 경우 어썸레이는 핵심 부품인 엑스레이튜브만 설계 및 생산하고 수요처에 맞는 최종 생산품 제조는 외부에 맡기면 된다. 핵심 부품인 중앙처리장치(cpu)는 동일한 회사의 제품이지만 최종 생산 제품은 개별 고객의 요구를 반영한 제조사에 따라 다르게 출시되는 컴퓨터를 생각하면 된다. 최홍수 CTO는 엑스레이튜브가 CNT 소재의 상업화 가능성을 보여주고 공기정화 솔루션이 낮은 단가별 매출 문제를 모두 해결할 대안이라 믿는다.

한 자리에 모여앉은 김세훈 대표, 정근수 CRO, 최홍수 CTO의 고민은 깊어만 간다. 서울대학교 대학원 탄소나노재료설계연구실(Carbon Nanomaterials Design Laboratory, CNDL) 아이디어에서 그들의 창업은 시작되었다. 그때는 가진 것이 소재뿐이었기에 소재 개발이 최우선이었다. 그러나 투자를 받기 위해 부품과 장비를 더했고, 코로나 팬데믹 시대를 거치며 자연스럽게 공기정화 솔루션이 어썸레이의 대표 제품이 되었다.

보통의 스타트업은 하나의 영역도 관리하기 어려운데 어썸레이는 소재, 부품, 장비 영역을 모두 보유한 스타트업이 되었다. 김세훈 대표와 공동창업자들은 어썸레이의 청사진을 그려보고 있다. 더 나은 어썸레이를 바라는 그들의 마음은 모두 같지만, 창업자들 각각의 청사진은 다른 모습이다.


[주석]

1) 회사명 ‘비트루브’는 고대 로마의 건축가이자 기술자 비트루비우스(Vitruvius)에서 가져왔다. 정신이 없는 사람을 표현할 때 흔히 ‘나사 빠졌다’라고 말하는데, 창업자들은 교육이 빠진 나사를 조이는 역할을 해야 한다 고 생각하고 나사를 발명한 사람을 검색해서 비트루비우스를 찾아냈다. 후에 이는 잘못된 정보임을 알았는 데, 그때는 이미 회사를 창업하고 사업자명을 등록한 뒤였다.

2) 엑싯(exit)은 영어로 출구라는 뜻이지만, 스타트업 생태계에서는 회사를 성장시켜 기업공개(Initial Public Offering, IPO)를 하거나 다른 기업에 매각하는 행동을 지칭한다. 일반적으로 창업자가 회사를 성장시켜 성 공적인 최종 결과물을 얻었음을 의미한다.

3) 어썸레이의 영문 사명은 aweXome Ray이다. 영어의 awesome과 X-ray를 합쳐 만들었다. 

4) 타인의 심리나 상황을 교묘하게 조작해 타인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는 행위로, 연극 <가스등(Gas Light)> 에서 유래한 용어이다. (출처: 네이버 시사상식사전) 본래의 부정적 의미와 다르게 여기서는 김세훈 대표의 치밀한 설득력을 재치 있게 표현하고 있다.

5) 소재, 부품, 장비 업종을 통칭하는 약어이다. 

6) 새로운 제품, 기술을 빠르게 쫓아가는 전략 또는 기업을 지칭하는 용어로, 반대의 개념으로 퍼스트 무버가 있다. (출처: 네이버 시사상식사전) 

7) 산업의 변화를 주도하고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는 창의적인 선도자 혹은 기업을 지칭하는 용어로, 반대의 개념으로 패스트 팔로어가 있다. (출처: 네이버 시사상식사전)

8) 특허는 출원과 등록이 가능한데, 등록이 완결된 특허만이 권리가 인정된다. 출원은 특허청에 특허를 제출한 것이기에 독점권이 없다.

9) 1989년 미국항공우주국(NASA)에서 핵심기술의 성숙도에 대한 객관적 지표로 도입한 이후 전 세계적으로 널리 활용되고 있다.

10)피벗(pivot)이란 스타트업이 신제품을 출시한 이후 시장의 반응을 체크하고, 문제가 있을 시 다른 사업모델로 전환하는 것을 지칭한다.

11)전계방출(field emission)이란 진공에서 두 개의 물질 간 표면에 전기를 흘리면 전자가 방출되는 현상이다. 

12)본 사례의 목적에 알맞게 집필진이 재가공 및 구성하였다. 어썸레이는 총 5가지 측면에서 잠재적 수요 시장을 분석하였는데, 실현가능성과 시장규모는 클수록, 진입장벽과 경쟁은 낮을수록, 제도적 환경은 친화적일 수록 측정 지표에서 높은 점수를 주었다.

13)그린뉴딜은 넷 제로(net-zero, 탄소중립 사회)를 목표로 대한민국 정부에서 추진하는 과제이다. (출처: 대한민국 정책브리핑)

14)캐시카우(cash cow)는 수익창출원, 즉 확실히 돈벌이가 되는 상품이나 사업부문을 지칭한다. (출처: 네이버 시사 상식 사전)

 

[참고 문헌]

한국전자통신연구원(2023). 기술성숙도. [도표]. 한국전자통신연구원 기술이전홈페이지. 2023. 8. 1. 검색, https://itec.etri.re.kr/itec/sub01/sub01_07.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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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진

최화준

최화준

최화준은 AER지식연구소의 선임연구원이다. 연세대학교 일반대학원 기술경영학협동과정에서 공학박사를 받았으며 창업생태계와 데이터분석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학부에서 경제학과 영어영문학을 전공했으며, 경영전문대학원에서 석사를 취득했다. 유럽, 아시아, 한국 등 여러 지역에서 다국적 IT 회사와 창업회사를 경험했다. 통계와 영문학을 좋아하며 생각의 유연성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조민수

조민수

조민수는 AER지식연구소 선임연구원이다. 일리노이 주립대에서 정치학사, 한국외국어대학에서 경영학, 인사·조직 세부전공으로 석사 및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주 연구분야는 동기부여, 리더십, 임파워먼트(권한위임)이다. 이론 기반 연구와 데이터 기반 연구 양쪽 모두에 관심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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